[경북 양봉산업의 위기] "벌통 1개 꿀 3kg…평년 90% 줄었다"

이상기후 덮치苦, 꿀벌 개체수 줄苦, 아까시나무 늙苦
잦은 비로 벌 활동 제한, 수년째 벌꿀 생산량 급감
양봉농가 폐업에 채밀 감소…인근 과수 생산량마저 줄어

상주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는 고재찬 씨가 훈연기를 뿌리며 벌통을 열어보고 있다. 고도현 기자
상주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는 고재찬 씨가 훈연기를 뿌리며 벌통을 열어보고 있다. 고도현 기자

경북 양봉 농가들이 유례없는 흉작으로 신음하고 있다. 극심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최근 몇 년간 벌꿀 생산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올해는 평년보다 10분의 1 정도로 꿀 생산량이 줄어 양봉 농가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벌통 1개서 30㎏→3㎏으로 '뚝'

예천에서 29년째 양봉업을 하고 있는 엄승일(55·예천군양봉협회장) 씨는 벌통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 올해 꿀 채집량이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다.

엄 씨는 "벌들은 꽃 냄새를 따라 일을 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와 많은 수분을 머금은 꽃에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채집 활동이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1개 벌통에서 보통 30㎏ 이상 꿀이 나오지만, 올해는 3㎏도 채 넘기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아까시꽃에서 채집한 꿀은 국내 꿀 생산량의 80%가량을 차지하는데, 5월에 내린 잦은 비로 벌의 활동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공직에서 퇴직한 뒤 상주에서 10년간 양봉을 해온 고재찬(65) 씨도 "올해처럼 꿀이 나오지 않는 시기는 처음"이라며 "지난해에도 아까시나무 등에서의 냉해 피해 탓에 벌꿀 생산을 제대로 못했는데 최근 3년간 피해가 막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로 23년째 양봉업을 한다는 박훈근(58) (사)한국양봉협회 경산시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이어 올해도 대흉작이다. 주변에서는 4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양봉농가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600통 정도의 벌통으로 양봉을 한다는 박 지부장은 "평년에는 아까시꿀과 야생화꿀 등 30드럼 정도를 생산하는데 올해는 3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면서 "올해는 전체 꿀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아까시꿀도 평소보다 30%밖에 안 된다. 피나무꿀과 밤꿀, 야생화꿀도 생산이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순배 (사)한국양봉협회 경북도지회장은 "2019년부터 3년째 벌꿀 흉작으로 생산비(100통 기준 3천8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각종 채무가 늘어나는 등 양봉농가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산업이 붕괴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벌통을 여는 모습. 매일신문 DB
벌통을 여는 모습. 매일신문 DB

◆양봉 산업 붕괴, 생태계 흔든다

양봉업계 관계자들은 연이은 흉작이 올해 최악으로 치닫아 돈이 안 되는 양봉업을 포기하는 농장이 잇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양봉농가 폐업이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점도 큰 우렷거리다. 양봉농가 폐장이 줄이어 꿀벌 개체수가 줄면 채밀 활동도 덩달아 줄어 화분 저하 등으로 생태계 균형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엄승일 씨는 "벌이 꿀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식물들이 수정을 하는데, 수정을 돕는 매개충인 벌이 줄어든다면 모든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상기후로 벌이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최근 인근 과수농가의 과수 생산량도 기존보다 30%가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양봉농가를 지키기 위해 지난해 8월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했다"며 "전국에 있는 양봉농가를 파악하고 관리감독 및 지원하기 위해 전산상에 등록하는 작업을 8월까지 진행하고 있다. 지차체 별로 밀원수종 파악도 하고 있다"고 했다.

박순배 지회장은 "꿀벌은 식량작물의 화분 매개 작용과 생태계 유지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가 6조원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한 정부, 지자체의 인식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청도의 한 양봉농가 모습. 매일신문 DB
청도의 한 양봉농가 모습. 매일신문 DB

◆아까시 의존 벗고 수입 다변화 절실

250여 농가에서 2만8천500군의 벌통을 사육하고 있는 영천지역 양봉업계 역시 이상기후에 따른 극심한 벌꿀 흉작으로 존폐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최대 밀원수종인 아까시나무 노화로 인해 꿀을 딸 수 있는 기회 자체도 줄어든 모습에 주목한다.

영천시농업기술센터는 산림과와 함께 양봉농가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 없이 지역 내에서 채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개화 시기가 서로 다른 25종의 밀원수종 식재를 추진하고 있다.

개화 시기가 1~4월인 동백·사스레피·매실·산벚나무를 비롯해 ▷5, 6월 오동·헛개·백합·참죽·황벽·다릅·밤·감나무 ▷7~9월 다릅·산초·두릅·쉬·음나무 등 다양한 밀원수를 심어 벌꿀 채취기간을 늘리는 등 양봉환경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영천시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이상기후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양봉농가에 기자재 및 보조사료 지원과 함께 산림자원을 활용한 밀원수 조림 등 양봉장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시책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이 활짝 핀 무궁화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꿀벌이 활짝 핀 무궁화 사이를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농가 수입 다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훈근 지부장은 "벌꿀 생산에만 의존하다가는 소득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해 최근에는 경산에서 1시간 정도 거리인 성주 참외와 밀양 수박 비닐하우스에 200통 정도의 수정벌을 임대해주고 관리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며 "양봉농가는 앞으로 수정벌로 어느 정도 수입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료 및 약제비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요구도 잇따른다.

박순배 지회장은 "이상기후, 농약 중독, 꿀벌사료 공급 부족 등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각종 질병 발생 및 꿀벌 폐사 등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향후 지속가능한 양봉업을 위해 사료(설탕) 구매자금 및 약제 구입비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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