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래도, 아직은 봄밤

그래도, 아직은 봄밤 /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펴냄

경북 의성군 의성읍 남대천의 봄밤, 음악 분수가 야경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경북 의성군 의성읍 남대천의 봄밤, 음악 분수가 야경을 더욱 다채롭게 하고 있다. 매일신문DB
그래도, 아직은 봄밤 /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펴냄
그래도, 아직은 봄밤 /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펴냄

황시운 작가가 첫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을 냈다. 등단 14년만이다.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인 '그들만의 식탁'부터 2018년 테마소설집 '파인다이닝'에 실린 단편 '매듭'까지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렸다.

아홉 편의 단편 사이에 연결고리가 두껍다. 신문 사회면 기사 모음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확대경을 갖다대 기사의 이면을 읽어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술의 중심인물들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런 짐작은 작품 '어떤 이별'에서 확신으로 바뀐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아이를 고층에서 던진 이후 아이를 잃은 엄마의 심정과 이후의 삶을 상상해 썼다. 이 사건은 2014년 부산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 모티프였다. 실화 같은 핍진성에 외려 공포감이 밀려든다. 우리 사회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언급하기 주저하는 것들이다.

영화 '오아시스'를 통해 장애인을, '죽어도 좋아'를 통해 노인을 좀더 면밀히 볼 수 있었다면 '그래도, 아직은 봄밤'으로 독자는 가정폭력, 청소년 성매매, 가출, 고독사, 장애인이라는 키워드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의 종합적 시선이 더 궁금하다면 비교적 최근 발표된 '기도'(문장 웹진 2020년 2월호)를 읽어보자.

전동휠체어 이미지. 매일신문DB
전동휠체어 이미지. 매일신문DB

각 단편의 발표 연도에 최대 12년 차가 있다. 작품의 결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소녀들의 모습은 2007년이나 2018년이나 같다. 박한 외모 탓에 성형미인으로 거듭나길 원하던 2007년의 '우화(羽化), 혹은 우화(寓話)' 속 소녀는 필요하지도 않은 신발을 사며 무리에 끼고 싶어하던 2018년의 '소녀들'에서 되살아난 듯하다. 작가는 여고생들의 거친 일상에 집중했다. 그에게 장편소설소설상을 안긴 작품 역시 왕따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한 '컴백홈'이었다.

소설 속 신체적 장애와 불편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보며 작가의 인생 역정을 겹쳐본다. 작가는 2007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현대문학 4월호'에 '우화, 혹은 우화'를 발표한다. '현대문학 4월호'는 신춘문예 등단 작가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문예지다. 매년 초 전국의 신춘문예에서 눈길을 끈 신인 작가는 어김없이 '현대문학 4월호'의 원고 청탁을 받았으니.

앞서 말한 장편소설 '컴백홈'으로 작가는 2011년 창비장편소설상을 안는다. 그러나 서태지가 유일한 희망인 주인공의 삶을 다룬 이 소설은 공교롭게도 작가에게 절망을 안겼다. '컴백홈'을 출간한 다음날 밤 당한 사고였다.

"2011년 5월의 어느 봄밤, 토지문화관에 머물던 동료작가들과 함께 야간산행에 나섰다. 거창할 것은 없었고 보름달이 뜨는 밤이니 인근의 숲길을 산책하며 달구경이나 하자는 것이었다. 그 밤, 달빛 아래 하얗게 반짝이던 숲길이 나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중략) 정말이지, 그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을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아름다운 길의 끝에서 나는 추락했다. 말 그대로 추락이었다…(중략)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날 밤에 머물러 있었다…(중략) 2021년 5월의 어느 봄밤, 휠체어를 밀고 책상 앞으로 와 연필을 들었다. 작가의 말을 쓰기 위해서였다. 책을 처음 내는 것도 아닌데, 막상 작가의 말을 쓰려니 마치 처음인 듯 낯설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동안 공책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십 년이나 지나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작가의 말' 中)

칠곡 자고산(해발 303m) 정상에 세워진 칠곡 평화전망대 뒤편으로 '핑크 슈퍼문'이 떠오르고 있다. 매일신문DB
칠곡 자고산(해발 303m) 정상에 세워진 칠곡 평화전망대 뒤편으로 '핑크 슈퍼문'이 떠오르고 있다. 매일신문DB

그날 사고의 과정과 그 이후를 살아온 소회가 '작가의 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학작품을 소개하며 '작가의 말'을 장황하게 인용하는 것만큼 무성의한 것도 없을 것이지만, 단 한 작품에게만 그럴 수 있다면, 황시운 작가의 첫 소설집 소개는 이것이 최선이다. '작가의 말'만큼 지난했던 그간의 과정을 압축해 잘 말해주는 건 없었다.

작가는 그 시절, 끝도 없이 이어지던 추락에서 자신을 건져올린 건 소설이었다고 했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소설만은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끝내 살아남았고 그가 써낸 소설은 책으로 묶였다. 멀리 돌아 기어이 그 자리에 선 작가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느 한 시절의 내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되어 있다…(중략) 돌이킬 수 없이 낡아버렸다 해도, 아직은 봄밤이다."

30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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