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에는 '내동생고기'라는 식당이 있다. 내 동생 고기? 세상에 이런 엽기적인 이름이 있나. 한데 알고 보니 '내동에 있는 생고기 식당'이라는 뜻이란다. 띄어 쓰지 않은 글자 간판으로 인해 생기는 혼동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글은 헷갈리기도 하거니와 읽기도 어렵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소풍(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풍)', 피자 헛 먹었다(피자헛 먹었다) 등등.
띄어쓰기는 인류의 보편적 문자 습관이 아니었다. 띄어쓰기는 A.D. 7~9세기 라틴어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과 전 세계로 퍼졌다.
한글도 세종 창제 당시엔 한자처럼 붙여 쓰는 문자였다. 띄어쓰기는 훨씬 후대의 일이다. 한글에 띄어쓰기를 도입한 이는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다. 헐버트는 주시경 선생과 한글 맞춤법 연구 등을 함께 진행하면서 띄어쓰기와 구두점 찍기 등을 제안했다. 헐버트의 한글 사랑은 극진했다. 그는 1889년 트리뷴지를 통해 한글이 최소 문자로 최대 표현력을 갖는 완벽한 문자라고 극찬했다.
우리 국민들은 이 벽안의 선교사에게 큰 신세를 졌다. 한글도 띄어 쓰지 않았다면 지금만큼 가독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익히기 쉬운 자모음 체계와 띄어쓰기 덕분에 우리 국민의 문맹률은 1% 이하다.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문해율로 따지자면 사정이 다르다. 글을 읽으면서 복잡한 내용의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을 문해율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성인 5명 가운데 1명은 문장이 길어지고 은유, 수치, 전문 용어가 들어가 있으면 문맥을 이해 못 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문해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며 실질 문맹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독서 부족이 그 원인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서는 SNS, 유튜브 등 스마트 기기로 정보를 소비하는 게 일상화되다 보니 책 읽는 사람들이 날로 줄어들고 있다. 실질적 문맹은 사고의 깊이를 떨어뜨린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보다는 무분별하게 주입된 뉴스와 루머에 의해 휘둘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심각한 사회 및 세대 갈등은 그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지 않으면 뇌세포도 퇴화한다. 독서의 계절이다. 스마트폰을 놓고 책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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