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깡통전세 주의보…갭투자 후폭풍에 여기저기서 서민들만 신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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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주택'이 늘면서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대구와 경산은 물론이고, 서울 당산동, 전북 익산, 경기도 용인, 경남 창원 등 전국 곳곳에서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만 수백명을 넘어섰다. 수많은 세입자들을 악몽으로 몰아넣는 '깡통 전세'는 부동산 경기가 내리막을 걸을 때 특히 빈발한다.

◆세입자 보호 부실…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

피해자 대부분은 확정일자에 따른 '선순위 보증금' 현황을 세입자가 알기가 어려워 깡통주택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법상 전세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과 확정일자가 명시된 '확정일자 현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나 부동산 계약서에 나온 선순위 보증금 현황에 주목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조작될 수 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세입자들이 보유한 부동산 계약서를 보면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입자들은 보증금 400만~500만원에 월세로 계약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실상은 18가구 모두가 전세였지만 계약서가 거짓으로 작성된 것이다.

한 피해자는 "집주인이 마음먹고 세입자를 속이면 부동산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선순위 보증금이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다"며 "이번에도 일이 터지고야 깡통 주택인 걸 알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자들의 고소가 이어지면서 잠적한 건물주 B씨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수성서 30여건, 남부서 18건, 서부서 10여건 등 경찰서별로 피해자들의 고소장이 들어와 사건이 진행 중이다.

현재 수성서가 이 사건을 총괄하면서 B씨의 소재 파악에 나서고 있다. 현재까지 B씨의 출국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어 국내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집주인 잡아도 피해구제는 깜깜

문제는 잠적한 B씨를 찾아도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세입자 중 한 명은 "B씨가 이미 재산을 다 빼돌린 뒤 발뺌하면 어떻게 할지 정말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의 경우 경찰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B씨뿐 아니라 B씨에게 대출을 내준 금융기관, 개인 투자자, 허위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한 공인중개사 등을 상대로 B씨 범행에 대한 방조 또는 공모 혐의를 밝혀내 이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주현 변호사는 "만약 이들에 대한 형사 책임이 드러나면 민사소송을 통한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라며 "건축과 분양 경위 등을 파악해 은행과 투자자 등 기존 담보권자와 공인중개사, 도주한 피의자 간의 관계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해 피해 입주민 142명이 100억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 피해를 입었던 서울 당산동 라프하우스 전세 사기 사건의 경우 최근 경찰이 새마을금고 대출 담당자들에게도 사기방조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대출 심사를 똑바로 하지 않은 책임은 물은 것이다.

◆경기 따라 가격 변동 큰 원룸이 가장 위험

부동산 경기가 후퇴하면 비교적 가격이 안정적인 아파트에 비해 가격 변동폭이 큰 원룸과 오피스텔 등 다가구주택이 가장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다. 건축법상 단독주택으로 집주인이 1명인 다가구주택은 상당수가 거액의 대출을 끼고 있는데다, 여러 가구가 세들어 산다는 특성상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도 선순위 세입자에 밀려 전세보증금을 보전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다가구주택 세입자들 대부분은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 이른바 '주거 취약계층'이 많다.

수년 전부터 전·월세를 끼고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늘려나가는 이른바 '갭투자'가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아온 점도 최근 깡통 전세 문제를 키웠다.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매입해온 건물주의 경우 약간의 집값·전세금 하락으로도 재정 상태가 쉽게 위험수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 부동산자산관리연구소장은 "대구의 경우에도 3~4년 전부터 갭투자가 성행했는데 최근 집값이 내려가면서 문제가 터진 것으로 보인다"며 "다가구주택은 집주인이 담보대출을 받으며 설정한 근저당에 더해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까지 모두 채무로 잡힌다. 그래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 팔리더라도 금융권 대출금과 먼저 전입한 가구의 보증금을 뺀 범위에서만 전세금 회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깡통 주택=집값이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 아래로 떨어져 집을 팔아도 남는 게 없는 주택. 집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간 상황에서 낙찰금액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해 '깡통 전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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