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오기에는 디테일이 못 산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요즘 손흥민이 상종가다. 이름대로 '흥'하다. 아시안컵 좌절로 프리미어리그에 조기 복귀한 뒤 고작 사흘 쉬고 매 경기 풀타임 선발로 나서 4경기 연속 골망을 흔들었다.

리그 3위 성적인 토트넘은 손흥민의 부재에다 핵심 전력의 부상으로 패전을 거듭하며 파장 분위기였다. 그런데 손흥민이 합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영국 언론과 전문가 입에서 "슈퍼소닉"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챔피언스리그 16강전 홈경기는 손흥민의 가치를 입증한 중요한 경기였다. 도르트문트를 맞아 전반전 내내 수세에 몰렸지만 후반전 초반 손흥민이 선제골을 넣고 결국 낙승했다. 매체마다 손흥민을 '게임 체인저'로 치켜세우며 높은 평점을 줬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고 승부를 결정지었다는 뜻이다.

'게임 체인저'는 결과나 판도를 통째로 바꿔 놓을 만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건이나 인물, 물건, 서비스 등을 일컫는 용어다.

정치·경제·외교 등 각 분야에도 게임 체인저의 사례는 많다. 고정된 상황이나 판을 뒤흔들어 새 흐름을 만들어내고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욕심이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도 그렇다. '무역적자=불공정무역'이라는 패러다임을 덧씌워 상대를 압박하고 주도권을 쥐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게임 체인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일본과 중국, EU, 캐나다 등에서 들여오는 철강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매겼다. 또 그제 독일·일본산 자동차를 겨냥해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이 조항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미국과 거래하는 무역 상대국에는 거의 카운터펀치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규정까지 끄집어내 게임 판도를 뒤바꾸면 미국 기업의 사정은 확 달라진다. 당장 철강 관세 효과로 미국 철강업체 순이익이 2, 3배 급증한 점을 볼 때 트럼프 행정부의 노림수가 맞아떨어졌다.

우리의 게임 체인저는 무엇일까.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과 적폐 청산을 게임 체인저로 봤다. 과거 권력의 부정·불의를 징벌하고, 사회 양극화를 개선한다는 논리다. 그런 국가적 변화가 필요하고 또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성급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정부 정책 방향이 게임 체인저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정부의 논리도 조금 변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하고 실업률이 치솟자 '혁신성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힌 기업 활동이 계속 가라앉고 재도약의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어서다.

우리에게는 독일의 '인더스터리 4.0'이나 중국 '제조 2025'와 같은 중장기 전략도 없다. 이런 국가 전략의 부재는 한국 경제가 내외적 변수에 휩쓸려 표류하거나 좌초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위험신호다. 최근 정부가 띄우는 '수소 경제'도 경제성과 기술적 한계 등 논란만 무성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게임 체인저 전략에는 척박한 혁신 환경과 크게 뒤떨어진 정책 디테일이라는 약점이 있다. 여기에서 혁신이 싹트고 정책 효과를 내기란 애초 무리다. 이제는 오기로 버틸 때가 아니다. 거시적인 관점과 긴 호흡으로 국가 전체를 봐야 한다. 게임 체인저로서 새 가치를 만들어내려면 구호가 아니라 디테일에 충실해야 한다. 설익은 정책은 과적(過積)과 마찬가지다. 이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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