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굿바이 싱글

순수와 성숙 자유자재…역시 '퀸혜수'

김혜수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코미디 영화다.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싱글로서 또 여성 팬들의 지지가 더 높은 자연인으로서의 김혜수, 그리고 카리스마 있거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의 배우 이미지를 결합해서 만든 신선한 시도다.

이 영화로 상업영화계에 첫발을 내민 김태곤 감독은 '1999, 면회'(2012)라는 독립영화로 장편 데뷔를 했고, 2014년 독립영화계 최대 화제작이었던 안재홍 주연의 '족구왕'의 각본 및 제작을 맡았다. 독립영화계에서 상업영화계로 이동한다는 것은 한국영화계의 현실에서 매우 드문 일이기에, 김태곤 감독의 경우 그의 특별한 영화적 재능이 상업영화계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인정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참신한 캐릭터와 현실감 넘치는 대사, 탄탄한 서사적 전개를 잘 이끌 것으로 기대가 된다.

고주연(김혜수)은 서른아홉 살임에도 철이 안 든 발연기의 대가이자 톱스타다. 몰래 연애 중인 남자친구 지훈(곽시양)의 엄마 역할을 할 수 없다며 대작 드라마 출연을 거절하고, 주목할 만한 신인배우로 키운 지훈이 여대생과 양다리를 걸치면서 구설에 오르자 속상해한다. 좌충우돌하는 철없는 그녀 때문에 함께하는 동료들도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뉴욕패션스쿨 출신 스타일리스트 평구(마동석), 사고뭉치 주연을 뒷감당하는 김 대표(김용건), 주연의 전담 매니저 미래(황미영) 등 소속사 식구들이 주연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다.

어느 날 사랑에 실패하고, 드라마 주연인 줄 알았지만 감초 조연임을 알게 되면서 좌절에 빠진 그녀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진짜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 다짜고짜 주연은 임신을 발표했지만, 나이가 많아 임신을 할 수 없는 주연의 일은 점점 커진다. 평구는 주연이 벌여놓은 스캔들을 뒷수습하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세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어버린 골드미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바깥으로 나돌다 덜컥 임신이 되어 버린 중학생, 정글 같은 경쟁의 장에서 성공을 위해 한참 연상인 여성을 이용하는 젊은 남자, 유학파 실력 있는 디자이너이지만 고용주의 허드렛일까지 해야 하는 가장, 흥미위주의 가십거리만 찾아 벌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들, 이기적인 학부모들, 무관심한 교사들. 미운 짓거리와 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균열과 갈등, 혐오와 비아냥거림, 가난과 나이로 인한 주눅듦으로 가득한 헬조선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영화는 위와 같은 수많은 갈등 요소들을 캐릭터의 심리 안에 녹여내지 못하고 배경 정도로 단순화시킨다. 그리하여 좋은 소재와 이야기의 전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이없는 해프닝을 벌이는 한 여성의 좌충우돌 성장담으로 평범하게 마무리되어 버린다.

극 중 고주연의 대사처럼 "캐스팅을 기다리는 배우, 캐스팅을 선택하는 배우, 캐스팅을 만들어내는 배우 중 캐스팅을 만드는 배우" 바로 김혜수의 원맨쇼가 볼거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한 몸매와 미모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평소 패셔니스타로서의 감각을 유감없이 뽐낸다. 장면마다 매번 바뀌는 의상과 헤어는 길게 진행되는 패션쇼를 보는 느낌이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는 분명 있다. 인연으로 맺어진 대안가족의 미덕을 강조하고, 어린 임산부를 사회가 품어줘야 한다고 설득하며, 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것이 삶의 기쁨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의도는 명쾌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좌충우돌의 해프닝 후에 주인공은 현실을 자각하고 갑자기 성장한다. 그리고 이후 응당 따라붙는 눈물 흘리게 하는 장면의 배치는 진부한 코미디의 전형성을 답습한다.

영화 '차이나타운'(2014)과 TV 드라마 '시그널'(2016)을 거치며 성격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중견배우 김혜수의 성장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입장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엉뚱함과 순수함, 그리고 성숙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녀의 노력이 스크린에 묻어나지만, 어정쩡한 전개의 서사와 리듬감을 놓친 편집은 전체적으로 맥이 빠진다. 여성 주인공 원톱 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한국영화계 현실에서 고군분투한 영화라 더욱 안타까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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