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아가씨

섹시한 영상 남성 관객 눈요기밖에 안 되나

#일제강점기, 아가씨·하녀·백작 얽혀

#서로 착취하고 속이며 반전에 반전

#감각적 카메라 구도'화려한 의상 향연

#과감한 연기 더해져 지루할 틈 없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에 개봉도 하기 전에 화제가 만발한 작품이다.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를 거치면서 탐미적 영상, 도착적 취향, 클래식에 대한 오마주가 특징이 된 영화감독 박찬욱의 개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예술 취향의 영화이기보다는 볼거리가 풍부한 상업영화에 가깝다. 칸에서 공개된 후 '재미있지만 메시지는 애매하다'는 평이 이어졌고, 소문대로 눈을 뗄 수 없는 재미를 가진 영화다. 화려하고 웅장한 프로덕션디자인, 패션쇼를 보는 것 같은 주인공들의 의상의 향연, 감각적인 카메라 움직임, 배우들의 과감한 연기, 주연 김민희의 신비로운 매력과 신인 김태리의 풋풋한 에너지,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는 반전 구조까지 2시간 24분이 지루하지 않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조선 땅에 세워진 영국풍과 일본풍이 어우러진 기이한 대저택에서 조선인 하녀, 일본인 귀족 아가씨, 백작으로 위장한 사기꾼, 친일파 백작 등 4명의 주요 인물이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고 속이다가 최후를 맞이하는,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 드라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인 조선인 출신 코우즈키(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상속녀 히데코(김민희)에게 백작(하정우)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 숙희(김태리)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이다. 그녀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코우즈키의 저택으로 들어간다.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숙희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을 다루고, 2부는 히데코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을 전달한다. 처음에는 아가씨를 속이기 위해 들어간 숙희가 오히려 속게 되는 사건이 펼쳐지고, 이후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지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난다. 1부와 2부의 시점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3부는 숙희와 아가씨 사건 이후 백작과 코우즈키의 현재를 관찰하는 방식이다.

18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로맨스 소설 '핑거 스미스'가 원작이다. 원작자 사라 워터스는 영문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영문학자로 빅토리아 시대의 외설문학을 연구한 성과 위에 레즈비언 소설을 썼다. 그녀는 레즈비언 로맨스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제와 견고한 계급 구조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박찬욱은 탄탄한 원작 소설을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로 각색했다. 시대 배경으로 인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원래 원작이 가지고 있던 가부장제, 계급, 성별 문제 위에 민족 문제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심오함을 영화는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는 이 온갖 모순과 경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로와 조소라는 카타르시스를 가질 만큼 영리하게 구성되어 있지 못하다.

'라쇼몽 효과'라는 것, 즉 누군가의 시각에 따라 사건을 다르게 보는 방식은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가 1950년도 동명영화 '라쇼몽'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이후, 이미 익숙한 영화적 장치가 된 지 오래다. 또한 비선형구도를 차용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 스릴러 영화의 장르적 관습이므로 새로울 것이 없다. 영화가 가질 새로움은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양극단 계급에 위치해있으며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두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통해 꽉 막힌 가부장제의 위선, 군국주의의 오만한 폭력을 시원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오시마 나기사의 걸작 에로영화 '감각의 제국'(1976)의 한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오프닝인, 행진하는 일본 군인들과 그를 뒤따라가는 조선 아이들 장면이 영화에 커다란 기대를 품게 했다. 하지만 여배우들의 신비로운 연기와 눈부신 나신이 '섹슈얼리티를 통해 각종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라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남성 관객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낭비된다는 점에서 불편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은 시각적 화려함과 이국성을 위한 장치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탐미적 영상미가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결합되지 않을 때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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