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귀향

일제 군홧발에 희생된 소녀들의 넋 씻김굿

#열여섯에 위안부 강제 동원된 실화

#위안소 참상 재현…14년 만에 완성

이 작은 영화를 둘러싸고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대기업 영화의 스크린 독점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제작하고 배급하는 영화가 아닌 저예산 작은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스크린을 잡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홍보와 입소문을 타지 못한 채 조용히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 영화계의 상영 현실이다. 스타가 등장하는 거대 자본의 장르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저예산영화, 작가영화, 다양성영화 등 여러 용어로 불리는 영화들은 알게 모르게 극장에 잠깐 걸렸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겪는다.

저예산 영화, 손숙이나 오지혜 정도를 제외하고는 알 만한 배우가 없는 영화, '위안부' 실화를 다루는 영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 '귀향'은 극장가에 내어놓기도 전에 이미 상업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재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객이 '귀향' 보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개봉 첫날 예매율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이러한 관객의 반응은 대기업도 움직이게 하여,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스크린을 '귀향'에 대거 내주었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전개되는 한국인으로서는 복장 터지는 국내외 상황이 '귀향'에 관심을 두게 한다. 2015년 12월에 타결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위안부' 협의, 일본군 '위안부'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행동, 박유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에 이어 '위안부' 영화 '귀향'이 '위안부' 이슈의 중심부로 등장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는 사건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위안부'는 식민지 조선이 당한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이며, 현재 반일감정이 유지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위안부'를 다룬 미디어 재현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관련 영화나 책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역사적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에 힘겨워한다. 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극영화로는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어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91), '소리굽쇠'(2014), '마지막 위안부'(2014) 정도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재현물은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있다. '귀향'은 아마도 가장 성공한 '위안부' 소재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여 배급과 상영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기적의 연속이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하던 당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불타는 처녀'를 보며 영화를 구상했다. 그리고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제작비를 모금하기 위해 2014년부터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에 티저 영상을 게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7만5천여 명으로부터 후원금을 모았다. 2015년 12월부터 1월까지 국내와 해외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후원자 시사회를 열었고, 눈물의 후기가 기사화되었으며, 그리고 이번 주에 정식 개봉했다.

2차대전 당시 20만 명의 '위안부' 여성이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238명만이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46명만이 생존해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열여섯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소각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영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1943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차디찬 이국땅으로 끌려간 열네 살 정민(강하나)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군홧발 아래서 성노예로 부림당하지만, 끔찍한 삶 속에서 소녀들은 존재 자체로 서로 위안이 된다. 1991년 현재엔 성폭행을 당해 반쯤 정신이 나간 소녀 은경(최리)이 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밝힌 때이다. 은경은 만신 송희(황화순)의 신딸로 지내다 과거 위안소 생활을 했던 영옥(손숙)을 만난다. 은경은 꿈을 통해 영옥의 악몽을 보고 이들의 넋을 고향으로 데려올 씻김굿을 준비한다.

영화는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을 영화에 녹여낸다. 일본군을 위해 위안소를 운영했던 조선인 업자가 등장하고, 시골 소녀뿐만 아니라 기생도 위안소로 끌려갔다는 사실,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 등이 드러난다. 조정래 감독은 한 개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보다는 전장에 설치된 비참한 위안소 재현에 중점을 두어, 영화를 역사적 증거물이 되게 한다. 영화는 신파적 표현을 절제하고 있지만 보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은 소녀들이 훨씬 많다는 점, 살아있는 할머니들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점에서 영화는 사회적 각성을 일으키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영화의 역할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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