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을사5적 군부대신 이근택 응징한 기산도

"너희 5적을 죽이려는 것이 어찌 나 한 사람 뿐이겠느냐. 단지 나는 너를 죽이려던 것이 서툴러 탄로 나게 된 것만이 한스럽다. 5적을 모두 죽이려고 시일을 지연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오로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묻느냐. 너 역적이 오늘 나를 쾌히 죽이겠구나!"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나 일찍이 기독계 학교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일제의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 등 조선식민지화 획책에 맞서 을사 5적의 처단을 결심, 결사대를 조직하여 저격무기를 구입한 뒤 1906년 오늘 새벽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집을 습격했으나 실패한 기산도(奇山度'1878~1928)는 체포 뒤에도 당당했다. 후실(後室)과 잠자던 을사 5적인 군부대신 이근택은 침실에서 그를 비롯한 결사대 3명의 습격으로 칼에 10여 군데나 찔렸으나 구차한 목숨을 건졌다.

이들의 습격 이후 매국노들은 일본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했고 습격자 검거에 혈안이 된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힌 그는 갖은 악형과 고문에 시달렸고 출옥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20년에는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려고 동지를 모으다 또다시 일제 경찰에 체포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일제의 잔악한 고문으로 결국 절름발이로 감옥을 나온 뒤 유랑생활을 하다 전남 장흥(長興)에서 병사(病死)했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고 200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해 기렸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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