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신팔도유람] 호반의 도시 춘천서 낭만 감성

[신팔도유람] 호반의 도시 춘천서 낭만 감성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강원도 춘천시 서면은 시내에서 가려면 배를 타야 할 정도의 교통 오지였다. 이제는 의암호변을 끼고 이어진 도로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올 만큼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로 '핫'하다. 사계절 특유의 경관을 뽐내는 의암호와 중도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을 지닌 카페들은 서면을 SNS·인터넷 스타로 만들었으며 많은 이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카페만 방문한다면 이곳을 다 즐겼다고 할 수 없다. 주변에는 애니메이션박물관, 박사마을 어린이글램핑장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춘천 서면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다.  ◆의암호 보며 인생샷 '찰칵' 의암호와 중도의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힐링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각양각색의 카페들은 드라이브 코스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강에서 부는 상쾌한 바람을 타고 커피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가면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도로변 곳곳에서 성업 중인 카페만 어림잡아 5곳 정도다. 카페에서 보이는 리버뷰는 1분1초를 매번 셔터 찬스로 만들 만큼 매력적이다. 자신의 SNS에 사진 한 장을 게시한다면 "이곳이 어디야?"란 댓글이 끊임없이 달릴 것이다. 들어갈 때 휴대폰 배터리양을 확인해야 한다. 휴대폰이 꺼지는 순간 그 광경을 카메라 사진으로 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득 안고 카페 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카페 카르페와 이디아커피 춘천의암호점은 주말마다 매장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의암호가 보이는 야외 정원 때문이다. 주말에 야외 정원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소소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인근의 아메카제와 카페룬, 어반그린 등과 같은 카페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입맛대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명소다.  ◆중도에서 즐기는 로맨틱한 야경에 '심취' 해가 떨어진 시간에 춘천대교를 지날 때 어두운 중도를 홀로 밝히는 건물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제는 레고랜드가 들어설 중도를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화살표대로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비엔나커피하우스 춘천레고랜드점. 이곳의 3층 야외 테라스의 경치는 날이 풀릴 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이 치열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곳이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로, 드라이브 삼아 들어가면 제격이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는 소양강 건너편 춘천의 도심 야경을 한 눈에 감상 할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도 야경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추억과 낭만 '가득'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이고, 부모들에게는 추억을 제공하는 장소인 애니메이션 박물관도 춘천 서면의 명소다. 2003년에 개관해 누적 5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 만점인 공간이다. 지난해 50만명이 방문하면서 명실공히 전국구 이색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박물관에서는 애니메이션 역사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촬영 기법, 카메라, 자료 설명 등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1915년 흑백 영상부터 현재까지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변천사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많은 제작진의 노력과 손길로 그림 한장씩 모인 짧은 영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실감이 된다.  1층의 상상의 계단을 올라가면 2층부터는 국가별 애니메이션관이 조성됐다. 재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인 '재패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 월트 디즈니사 대표 캐릭터이자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까지 설명돼 있는 애니메이션관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가 봤던 만화다"라는 말을 절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이 밖에 본인의 얼굴을 구름빵, 뽀로로 등의 캐릭터와 자동으로 합성해주는 체험을 할 수 있고, 달려라 하니 등의 한 장면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히는 더빙관이 마련돼 있어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놀러가기에 제격이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에 가족, 연인의 목소리를 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경험이 될테다. 또 6m 높이의 로보트 태권V가 있는 공간은 1970년대 영화관·만화방을 재현해 포토존으로 손색이 없다. 애니메이션박물관 옆에 토이로봇관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리오네트 로봇 공연단이 아이돌 뺨치는 절도있는 칼군무로 아이들을 반기고 있다. 또 내부에서는 로봇 레이싱, 축구 등 게임과 함께 삼삼오오 모여 각자 흥미로워 보이는 게임들을 즐긴다. 토이로봇관의 꽃인 K-POP에 맞춰 로봇들을 따라 꼬물꼬물 춤추는 자녀들을 본다면 미소가 절로 나올 것이다. 공연은 오전 2번, 오후 5번 총 7번의 로봇 댄스타임이 시작되며 러닝타임은 13분 가량이다. 특히 키덜트(어린이 Kid와 어른 Adult의 합성어) 부모들에게는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로봇 게임과 공연을 즐기는 사이 어른들은 토이숍에서 로봇 프라모델이나 장난감, 피규어 등을 구경하면서 추억에 빠져든다. 토이숍은 관람 코스 마지막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자연 감성 놀이터로 '활력 충전' 춘천 서면에 들르기 전에 간단한 요깃거리나 도시락을 챙기는 것도 좋다. 박물관 뒤쪽에 1만5,000㎡ 규모의 넓은 잔디밭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암호가 보이는 이곳은 피크닉 장소로 유명하다. 강변 앞의 새파란 들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이보다 큰 힐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인근에는 올해 조성된 도내 최초의 동물없는 동물원이 있다. 'Jump AR'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이언트 캣, 자이언트 비룡, 웰시코기, 알파카, 아기비룡, 레서판다, 아기 고양이 등의 동물과 놀 수 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동물들의 사랑스러운 애교도 볼 수 있다. 박물관 방문객들은 실감나는 동물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 저장 또는 공유할 수 있다. 근처에는 박사마을 어린이글램핑장도 있다. 현재 동절기 휴장 중이지만, 다음달 말부터 운영이 재개되면 자연 속에서 낭만을 즐길 수 있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강원일보 김인규기자, 사진 강원일보 사진부

2020-02-26 14:01:19

우리나라 첫 커피·짜장면…뉴트로 감성 인천 '개항장 거리'

우리나라 첫 커피·짜장면…뉴트로 감성 인천 '개항장 거리'

이달 19일은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하던 개구리가 깬다는 경칩 사이의 우수(雨水)였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펴고선 19세기 후반 개항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천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인천의 시간 여행지는 중구청을 중심으로 멀지 않은 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걷기 여행의 최적지이다. 대한민국과 인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시설들과 옛 식당,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변모한 문화 공간과 특색있는 카페까지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여행객들은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보고, 먹고, 쉬면 된다. 도심의 특성상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 그중에서도 전철을 이용해 인천 중구까지 접근하면 좋다. 경인선의 동인천역과 인천역, 수인선을 이용한다면 신포역과 인천역을 기점으로 취향에 맞춰 동선을 짤 수 있다. 1~2시간 코스부터 여유 있게 걷고 즐길 수 있는 하루 코스까지 다양하다. ◆역사 여행 인천역에서 출발하면 길 건너편의 붉은 '패루(牌樓)'와 마주하게 된다. 패루를 지나면 차이나타운 거리가 펼쳐진다. 중국음식점이 몰려 있는 이곳은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북성동 행정복지센터 쪽으로 접어들면 '짜장면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짜장면의 발상지인 '공화춘' 건물을 리모델링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2층 규모의 이곳에선 짜장면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인천화교중산학교'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다 보면 조계경계석이 있다. 조계경계석을 정면으로 볼 때 왼쪽이 청나라 조계지, 오른쪽이 일본 조계지다. 조계지란 개항도시에 자리잡은 외국인 거주지를 뜻하며, 이들 외국인은 행정권, 경찰권을 포함해 치외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계석을 뒤로 하고 가다보면 왼편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1888년 건립됐으며, 2년 전 복원된 대불호텔을 만날 수 있다. '양탕국'으로 불린 커피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공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불호텔에서 일본조계지로 들어서면 '은행거리'가 시작된다. 이 거리에는 옛 '일본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이 줄지어 있다. 일본18은행 건물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재개관해 이 일대 근대건축물의 모형을 전시하고 기능을 설명하고 있어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 은행거리에서 자유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면 개항기 일본영사관 자리에 1933년 건립된 중구청 건물이 나오며, 중구청을 오른편으로 끼고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19세기 후반 개항장 일대에 거주하던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외국인이 사용한 고급 사교 클럽인 '제물포 구락부'가 있다. 제물포 구락부 옆 계단을 오르면 원래 '각국공원'으로 불리던 자유공원에 다다른다. 응봉산 정상에 조성된 자유공원에는 개항 당시만 해도 '존스턴 별장'을 비롯한 외국인 사택과 공장 등이 들어서 있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현재는 인천상륙작전의 시발이 된 월미도를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 등이 남아 있다. 공원에선 가깝게는 인천항, 멀게는 인천대교까지 내려다보인다. 이 밖에도 개항장 거리 일대에는 한국 야구가 처음 시작된 '웃터골 운동장' 터가 있는 제물포고등학교를 비롯해 인천기상대, 내리교회, 답동성당 등이 도처에 있다. ◆뉴트로 여행 인천 개항장 거리에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인 뉴트로에 부합하는 여행지 또한 다수 있다. 수십 년에서 100여 년 전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문화 공간이나 카페로 변모한 곳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공간들이다. 앞서 소개한 역사 여행을 하다가 휴식 차원에서도 들려도 되고, 이들 공간만을 추려서 여행 코스로 짜도 충분히 인천 개항장 거리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인천 중구청 인근의 카페 팟알, 인천아트플랫폼, 한국근대문학관 카페 팟알(Cafe POT R)은 1880년대 말~1890년대 초에 지어진 3층 일본식 점포 주택을 개조해 꾸며졌다. 이곳은 해방 전까지 인천항 하역 노동 인력을 공급했던 하역회사 사무소 겸 주택이었다. 건물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시 문화재로 지정됐다. 1층은 입식, 2층과 3층은 다다미방으로 이루어졌다. 1층에 인천 개항 역사를 소재로 한 머그잔, 엽서, 노트, 텀블러 등의 각종 문화 상품과 인천 관련 도서를 전시·판매한다. 대표 메뉴는 팥빙수, 단팥죽이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개항기 근대건축물과 1930~1940년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개조해 창작스튜디오, 공방, 교육관,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조성한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창의적인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사진, 그림, 조각 작품들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국적인 근대건축물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 있고, 설치작품들이 거리 곳곳에 전시돼 있어 포토존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 물류창고, 김치공장이었던 건물을 문학관으로 개조됐다. 옛 자취가 가득한 외벽과 목조 천장 구조물을 최대한 보존했다. 1890년대 계몽기부터 1948년 분단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대문학 자료를 총망라해 전시한다. 현진건, 한용운, 염상섭, 최남선, 김소월 같은 근대문학 대표 문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인천 근현대를 주름잡던 싸리재 애관극장에서 동인천역을 연결하는 고갯길이 싸리재다. 동인천역이나 신포역에서 접근하기가 좋다. 옛날 이 길엔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낙후한 거리가 되었지만, 100여 년 전부터 인천의 문화 교류는 신포동과 싸리재, 배다리를 거쳐 경인선 철도를 통해 서울로 이어졌다. 때문에, 싸리재에는 1970년대만 해도 병원, 한약방, 약국, 양화점, 포목점 등이 즐비했다. 서울 명동 못지않은 상권을 자랑했다. 최근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싸리재의 아날로그 정취를 살린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카페 '싸리재'는 지은 지 90년 된 목조 카페이다. 이 곳에선 노부부가 커피를 내리며, 카페 안쪽에는 노부부의 100년 된 한옥 살림집이 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부부는 축음기를 수집하고, 레코드판 음악을 들려준다. 대표 메뉴는 '커피봉봉'과 '싸리재'이다. 쌉싸래한 에스프레소와 달콤한 연유, 촉촉한 생크림의 조화가 감미롭다.백열전구를 만드는 일광전구는 폐업한 산부인과를 개조해 카페 '일광전구라이트하우스'로 개업했다. 병원의 흔적을 최대한 살려 공사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공간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LED가 백열전구를 대체하면서 전구 회사들이 백열전구 생산을 중단했지만 일광전구는 백열전구를 문화 공간에 접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브라운핸즈 개항로'는 싸리재 꼭대기에 있던 폐업한 이비인후과 병원이 카페로 바뀌었다. 황토색 타일을 붙여 지은 4층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접수창구였던 공간이 먼저 반긴다. 환자들이 대기했던 나무 의자와 서류 수납함, 캐비닛 등 병원 기물 등을 활용해 실내를 꾸몄다. 가파른 계단과 깨진 타일과 벽면을 고스란히 살렸다. 을씨년스러울 수 있는 공간에 초록 식물을 곳곳에 배치해 생기를 줬다.  문화공간 잇다스페이스는 1920년대 일제가 화약 원료인 소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소금창고를 리모델링했다. 해방 후 한증막, 책방 등으로 사용되다가 마지막으로 헌책방 동양서림의 창고로 쓰였다. 잇다스페이스 정희석 대표는 녹슨 양철지붕과 누렇게 빛바랜 태극기, 거친 바닥 등을 그대로 살려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 및 목공체험, 쿠킹클래스, 콘서트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인천관광공사가 최근 펴낸 '빈티지여행 인천'에 수록된 인천 중·동구의 문화 공간과 카페는 30여 곳에 이른다. 직접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한국지방신문협회 경인일보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 .사진 인천관광공사 제공

2020-02-19 18:00:00

[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정조의 염원 깃든 수원화성·화성행궁

[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정조의 염원 깃든 수원화성·화성행궁

찬바람이 남아 있지만 볕이 따스해졌고 코 끝에 와 닿는 부드러운 봄 기운이 밀려오고 있다. 대지의 기운은 봄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여파로 야외활동이 크게 위축된 요즘, 도통 계절의 변이를 느끼기 힘들다는 게 이구동성이다. 하지만 마냥 실내에만 있기도 아닐 듯 싶다. 대자연의 기운과 역사의 향기가 숨 쉬는 곳은 어떨까?이번 답사기행은 대구 달성군 문화해설사와 함께 성곽에 둘러싸인 역사 도시 경기도 수원(水原)을 찾았다. 경기도 수원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꿈이 깃든 도시다.◆정조의 한이 서린 수원화성아버지 사도세자를 비통하게 잃은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가 가까이 있는 수원에서 그를 기리는 뜻으로 거대한 성을 지었다. 근대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은 다산 정약용이 활차와 거중기를 활용해 정조 18년(1794) 2월에 시작, 2년 6개월만에 완공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근대성곽이다. 수원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문 팔달문, 동문 창룡문, 북문장안문, 서문 화서문을 통해 성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성곽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했다고 여긴 정조가 아버지를 죽인 세력들이 가득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궁궐을 수원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보통 읍성은 2km 내외이나 수원화성은 둘레가 무려 6km나 되는 큰 성이다. 수원화성에만 있다는 공심돈은 서북·동북공심돈 2개가 있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화성 성곽에서 가장 특징 있는 건물 중 하나다. 공심돈은 멀리 있는 적의 상황을 관측할 수 있는 초소이며, 공격과 수비가 가능한 구조물이다.또한 비밀문이라 할 수 있는 암문은 팔달산 정상과 화홍문 방향에 있다. 유사시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된, 문루가 없는 석축 모퉁이 사잇문이다. 문을 닫으면 성벽처럼 보인다. 성곽 모퉁이에는 전망과 감시초소 역할을 하는 각루 등을 갖추고 있다.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됐다. 성문의 바깥에는 성문을 보호하고자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듯한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파괴됐지만, 다산은 화성의 공사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을 남겨 원형과 똑같이 복원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해설상의 오차를 줄이고자 간단한 글씨와 그림으로만 설명돼있다.성곽을 둘러보는 동선은 동문 쪽 주차장에 주차 후 성곽 위를 도보로 답사하는 방법과 창룡문에서 화성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드라마 배경으로 유명한 화성행궁(華城行宮)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하기 위해 머물거나 지방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잠시 휴양삼아 지방으로 나들이 할 경우 머무는 곳이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겨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건립했다.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여러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힌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가 행차 시에는 행궁에 머무르며, 진찬연 및 과거시험 등 여러 행사를 했다. 그러나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일제의 민족문화·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이후 화성행궁은 복원돼 '대장금', '왕의 남자',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입구에 오른쪽 끝 깊숙한 곳에는 정조의 어진을 모신 사당인 화령전이 있다. 검소하면서도 품격을 갖춘 영전(影殿)이다. ◆정조의 효심 깃든 융건릉(隆健陵)융릉은 장조, 즉 사도세자와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며 그 왼편에는 있는 건릉은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 22대 왕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같은 영역에 있으므로 두 능을 합쳐 융건릉이라 부른다.사도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남쪽 중량 배봉산에 있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곧바로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으로 추상하고 묘호를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바꾸고, 이어서 현륭원으로, 다시 융릉(장조)으로 올렸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릉 40여 개(북한지역 4기 제외)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국보·보물 가득 담은 용주사(龍珠寺)융건릉 오른쪽 1.7km 거리에 위치한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됐다. 그 후 조선 제22대 정조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님의 크고 높은 은혜를 설명한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 받아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융릉의 원찰로 179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꿈을 꿨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절 이름을 용주사라 지었다.이 절은 대중포교를 통해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고 정조의 효심을 계승하기 위해 효행교육원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찰에는 없는 솟을대문에 행랑채가 붙어 있으며 행랑채 앞에 홍살문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대웅보전 왼쪽에는 고려 범종으로는 처음으로 삼존불이 조각돼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결가부좌한 삼존불과 비천상이 정교하게 조각된 국보 제120호인 범종이 있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가 중함을 기록한 '부모은중경' 목판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웅보전(보물 제1942호)에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인 '삼세여래후불탱화'가 있다.글 ·사진=대구답사마당 이승호 원장(leesh0601@hanmail.net)tip:*가는 길:대구→경부고속도→북수원 IC→수원화성(소요시간 약3시간)*화성열차 요금은 성인 4천원, 어린이 1천500원이다.*화성행궁 주차료는 유료이며, 입장료는 성인 1천500원이다.*융건릉은 주차료는 없으며, 입장료는 성인 1천원이다.

2020-02-19 18:00:00

낚싯대 넣기만 해도 입질, 고사리손도 '손맛'…화천 산천어 낚시

낚싯대 넣기만 해도 입질, 고사리손도 '손맛'…화천 산천어 낚시

올 겨울은 따뜻한 날씨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겨울철 얼음낚시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겨울 축제 중 평창 송어축제와 인제 빙어축제, 화천 산천어축제는 대표적인 얼음낚시 축제다. 특히 화천 산천어축제는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 겨울철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관심과 집중을 받고 있다. 매년 150만명 이상이 찾으며, 지난해에도 170만명이 방문했다.◆오랜만의 추위로 산천어 축제장 찾아올겨울 따뜻한 날씨로 얼음이 두껍게 얼지않아 축제를 즐기지 못하는가 걱정했는데, 입춘이 지나 지난주에 가장 추웠던 일주일. 이때다 싶어 두터운 외투와 산천어 얼음낚시 장비를 챙겨 부리나케 강원도 화천으로 겨울을 즐기러 출발했다. 화천 시내에 도착해 예전부터 즐겨 찾던 30년 이상 된 국밥집을 찾았다국밥집 주인인 할머니는 "올해는 작년보다 국밥 손님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화천 경기가 좋지 않다. 날씨 탓으로 송어 축제장 얼음이 두껍지 않고, 신종 뭐시긴지 하는 것 때문에 낚시인과 관광객이 찾지않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후 축제 기간 내내 산천어 조형물인 선등이 밝히는 별빛 거리와 축제장까지 한 바퀴 둘러봤다. 다음날 아침 화천 산천어 축제장의 개장 시간인 9시에 맞춰 현장에 도착하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인파가 얼음 위에서 산천어를 낚고 있었다. "내가 늦었나, 개장 시간을 맞춰 왔는데"라고 생각하며 얼음구멍에 16g의 은빛 고추장 메탈지그를 넣었다. 옆 자리에 앉은 분에게 몇 시에 왔는지 물었다."요즘은 특별한 상황이라 새벽 6시에 개장합니다. 기온이 예전보다 포근해 개장시간을 날씨 상황에 맞춰 입장시간을 조정해 산천어 축제장 홈페이지에 공지를 합니다. 그리고 아침 해 뜰 무렵에 물고기가 잘 나오는데 왜 이제서 입장 했어요?"라는 말에 주위를 보았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이곳 저곳에서 산천어를 낚는 모습들이 보이기에 여유롭게 낚시 채비를 준비했다. ◆산천어 낚싯대와 미끼낚싯대는 플라스틱 견지채나 솔리드 민대 같은 것을 인터넷이나 축제 현장에서 5천원 정도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80cm 전후의 릴 낚싯대도 1만5천원 정도면 쓸 만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이곳 축제장은 살아있는 생미끼는 금지다. 1~2인치 웜을 핑크색, 금색, 은색 등으로 준비하고, 마이크로 스픈도 금색과 은색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이중에서도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16g 정도의 메탈지그다. ◆설레는 첫 얼음 송어낚시16g의 메탈지그를 달아 얼음 구멍 속으로 담그고, 메탈이 바닥을 치면 들어올렸다, 내렸다하는 '고패질'을 반복했다. 얼마 되지 않아 산천어의 입질이 온다.산천어 낚시는 특별한 기술이나 테크닉이 필요 없는 낚시여서 온 가족이나 초보자가 즐기기에 적합하다. 구태여 낚시방법을 언급하자면 메탈지그를 1.5호 원줄에 묶고 얼음구멍에 넣어 메탈지그로 바닥(수심 1.5m)을 찍은 후 얼음을 향해 있는 낚싯대 끝을 본인의 가슴 정도까지 고패질을 크게 해주면 된다.고패질 시 낚싯대를 들 때는 힘차게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입질은 들어 올리는 상황에 무게감이 낚싯대에 전달된다. 이것이 입질이다.또한 1~2인치 웜이나 마이크로 스픈을 사용할 때에는 메탈지그처럼 큰 액션의 고패질 대신 손목만 탈탈 터는 느낌의 액션을 주면 산천어가 후두둑하고 입질이 온다. 그 때 낚싯대를 툭 하고 위로 올리면 되는 것이다. ◆나눔이 있는 축제장이렇게 일반인이 즐기기에 손쉬운 낚시이기에 지난해에는 외국인 포함 170여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이곳 축제장은 산천어 낚는 개체수는 제한이 없지만 반출하는 양은 3마리로 제한이 돼있다. 많이 낚은 낚시인은 못 낚은 사람에게 베풀기도 하고, 축제장 입구에 준비된 '나눔통'에 넣어 두면 손맛을 못 본 사람은 나눔통에서 산천어를 가지고 갈수도 있다. 손맛이 아니면 입으로도 즐길수 있는 것이다의정부에서 부모와 함께 온 박서윤(7) 양은 "제가 가자고 졸랐는데 아직 아빠는 못 낚고 엄마와 저만 물고기를 낚았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작년에는 썰매도 탔어요."라고 말했다.경기도 시흥에서 온 백형규(22) 씨는 "산천어가 워낙 많아서 낚싯대를 넣기만 해도 물고기가 나와요. 올해는 춥지 않아 낚시하기 좋은 대신, 얼음 상태가 좋지않네요. 많은 사람이 들어 올 수 없는지라 축제장 홈페이지에 예약을 해야만 했지만 잘 온 것 같아요. 즐겁습니다"라고 말했다. 화천 산천어 축제는 얼음낚시장과 산천어 맨손잡기, 눈썰매와 얼음썰매장, 세계 최대 실내 얼음조각 광장, 온 가족의 입맛을 즐길 수 있는 공식 먹거리까지 다양하게 준비가 돼있다. 가족 또는 연인과 낚시를 하는 것 이외에도 즐길거리가 많다.또한 얼음낚시 이외에도 수상에서 즐기는 루어낚시가 있어, 산천어 물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강릉에서 온 권오주 씨는 "매년 이곳을 찾는데 올해처럼 사람이 없는 것은 처음입니다. 낚시하는 사람보다 산천어가 더 많아 잘 낚이지만, 그래도 축제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해야 즐거운 것인데…. 내년에는 날씨가 올해보다 춥겠지요. 코로나 19도 없어질테니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삼분선생 신국진 < 한국낚시채널 FTV 제작위원 / ㈜아피스 홍보이사 >

2020-02-19 18:00:00

[신팔도유람]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 '제주목 관아'

[신팔도유람]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 '제주목 관아'

제주성(城)은 조선시대(1392~1910년) 518년간 제주의 중심지였다. 성곽 길이는 3㎞에 이르렀고, 바다 방면을 제외해 동문·남문·서문 등 3개문이 있었다.이 고도(古都)는 제주목 관아(濟州牧 官衙)에서 다스렸다. 조선시대 제주목사는 군사·행정·사법 등 전 분야를 지휘·감독했다. 이런 까닭에 제주목사의 동헌은 8도 관찰사가 머물던 감영과 마찬가지로 영청(營廳)이라 불렀다.제주목사는 병마수군절제사(兵馬水軍節制使)라는 군직을 겸임, 육·해군을 통솔했다.조선시대 286명이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가족을 데리고 오지 못하는 변방의 수령 임기는 2년 6개월(900일)이지만 평균 재임기간은 1년 10개월이었다. 아울러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상피제(相避制)를 엄격히 적용, 제주 출신은 제주목사로 임명될 수 없었다.일신상의 이유로 부임하지 못했던 이도 12명이 됐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한 목사는 28명(10%), 1년을 채우지 못한 목사도 65명(23%)이 됐다. 파직되거나 탄핵을 받아 압송된 목사는 68명(24%)에 이르렀다. 재임 중에 노환·질병으로 사망한 목사는 21명(7%)이 나왔다.◆선정과 폭정을 일삼은 제주목사들.이경록은 제주목사로 6년이나 부임했다. 임진왜란 발발로 이임하지 못했고, 성산일출봉에 성곽을 구축하던 중 풍토병에 걸려 1599년 제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제주목사 중에는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한 반면, 폭정으로 원성을 사기도 했다. 기건 목사(재임 1443~1445)는 겨울에도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를 안쓰럽게 여겨 평생 전복과 미역을 입에 대지 않았다.이약동 목사(1470~1473)는 겨울 백록담에서 한라산신제를 지내면서 동상으로 죽고 다치는 백성이 나오자 신단을 아라동 산천단으로 옮겨 제를 봉행하도록 했다. 이임 시 관물과 관복 모두를 두고 떠나는 도중 말채찍을 손에 쥐고 있자 이마저도 관덕정에 기둥에 걸어 놓고 제주를 떠났다. 그는 말년에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청렴하게 살았다.허명 목사(1814~1815)는 채무로 백성들의 고통이 심해지자 임시방편으로 차용문서를 만들어줬다. 더 나아가 이 문서를 태우고 무효를 선언해 민초들을 구원했다. 효력이 없는 문서를 '허명의 문서'라 불리는 이유다.폭정을 일삼은 목사도 있었다. 1619년 부임한 양호는 탐학이 극도로 심해 여러 차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광해군의 비호로 무마됐다. 백성들은 그를 호랑이를 대하듯 두려워했다. 벼슬에 쫓겨나도 제주에 남아 행패를 부리던 그는 1623년 반정이 일어나 인조가 즉위하자 체포돼 사형 당했다.역사 속 인물도 제주목사로 부임했다. 인조반정 이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이괄의 난'을 일으킨 이괄은 1616년부터 3년간 제주목사로 재직한 바 있다. 16세기 중반 황해도에서 일어난 '임꺽정의 난'을 제압한 남치근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1552년 목사로 부임해 왜구를 무찔렀다.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은 1864년부터 2년간 목사로 재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홍종우는 1905년부터 1년간 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김옥균을 1894년 상하이에서 암살한 인물이다. ◆제주목 관아제주목 관아(국가사적 380호)는 500년간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1434년(세종 16) 대화재로 관아 건물이 모두 불타면서 소실됐다. 22대 목사인 최해산이 재건을 시작, 이듬해인 1435년 골격이 갖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