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1. 대한민국 프리미엄

자카르타 지하철역에 설치된 광고에서 BTS를 보니 꼭 옛날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자카르타 지하철역에 설치된 광고에서 BTS를 보니 꼭 옛날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자카르타. 2억7천만 인구가 사는 인도네시아의 수도로 자카르타에만 약 1천만 명이 산다. 서울과 비슷한 인구를 자랑하는 큰 도시이지만 나는 자카르타에 오기 전까지 인도네시아를 잘 몰랐다. 인도네시아에 세계 그 어느 곳보다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타국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지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었다. 몇몇 외국인 직장 동료는 우리의 특수한 비자 상태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 건물에 있는 은행에서 계좌 개설부터 체크카드 발급까지 막힘 없이 이틀 만에 완료했다. 능통한 영어와 친절함으로 빠른 계좌 개설을 도와줬던 은행 직원이 있었는데, 카드를 수령하러 다시 은행을 찾았을 때 다시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이죠? 저 방탄소년단 좋아해요." 그녀는 BTS도 아니고 한국어로 또박또박 방탄소년단이라고 말했다. BTS가 은행에서 나를 도왔구나.

BTS는 자카르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로 치면 쿠팡과 비슷한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업체의 모델이 BTS였고, 이들은 자카르타 중심가 지하철역 광고와 영화관 중간 광고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택시를 기다리다가 택시 전면 광고에서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을 보기도 했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던 최시원 씨는 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판 불닭볶음면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8년간 살았던 인도네시아 친구는 "인도네시아에는 슈퍼주니어 진성 팬이 많다. 슈퍼주니어는 한국 아이돌 그룹 중에서 인도네시아에 맨 처음 진출해 케이팝 문화의 터전을 닦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마니아층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비단 인도네시아인들만 케이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 동료는 동방신기 출신 김재중(영웅 재중) 팬이었고, 노르웨이 직장 동료는 고등학생 때 4인조 걸그룹 카라 팬으로 열심히 활동했다고 했다. 아시아 대륙을 넘어 북유럽까지 진출한 케이팝의 영향력은 내 안의 국뽕을 꿈틀거리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일터 곳곳에 친한파가 포진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팀 동료 한 명도 한국 정부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서 석사 학위를 딴 한국 유학파이며, 협력 기관인 인도네시아 정부 부처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인재들이 곳곳에 있다. 회사 인사팀 부장님도 한참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데 말이야, 나는 한국이 먼 나라처럼 느껴지지 않아"라며 '사랑의 불시착', '쇼핑 왕 루이' 등 아직 나도 보지 못한 한국 드라마 이름을 열거했다.

자카르타 한 쇼핑몰에 마련된 한국 음식 판매대. 느닷없이 등장한 벚꽃 장식 때문에 일본 음식 판매대로 착각할 뻔했다. 자카르타 한 쇼핑몰에 마련된 한국 음식 판매대. 느닷없이 등장한 벚꽃 장식 때문에 일본 음식 판매대로 착각할 뻔했다.

자카르타 쇼핑몰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는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오뚜기 카레, 오징어집, 새우깡, 참기름 등 평범한 한국 제품을 위한 자리가 쇼핑몰 식품관에 따로 마련돼 있다. 자카르타의 고급 쇼핑몰 꼭대기에 CGV가 진출했고, 나는 지난해 화제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회사 근처 CGV에서 BTS의 광고와 함께 감상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성공적인 방역 덕분인지 한국에 관한 관심은 인도네시아에서 더 커진 듯하다. 회사 전체 직원들과 온라인으로 코로나 19 대책 회의를 할 때 "한국의 한 스타벅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갔는데 마스크를 쓴 직원들은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마스크 종류가 무엇이냐"라는 구체적인 질문이 회의 중간에 등장했다. '코리안 필터! KF-94'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재 구매하기 어려울 테니 말을 아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 문화와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이유는 케이팝 열풍 외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지원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유전자 증폭검사(PCR) 진단키트와 KF-94 마스크 등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전달했다는 뉴스가 인도네시아 주요 언론에 소개됐다. 나도 한국인인지라 이런 뉴스를 보면 괜히 뿌듯해진다. 나도 재택근무가 끝난 뒤 사무실로 돌아가면 아껴둔 KF-94 마스크를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해야겠다.

 

관련기사

AD

라이프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완독률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