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책 읽어주는 남자' 최병철 한국창직역량개발원장

10여년 전부터 독서 강연…작은도서관 보급에도 앞장서
"책의 사명은 멋진 책장의 장식품이 아니라 읽히는 것"

최병철 한국창직역량개발원 원장이 24일 대구 수성구립범어도서관 '북새통' 강좌에서 강연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최병철 한국창직역량개발원 원장이 24일 대구 수성구립범어도서관 '북새통' 강좌에서 강연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금 당신이 불타는 선박 갑판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갑고 시커먼 바다에 뛰어들거나 머뭇거리기만 하다가 최후를 맞이하거나…. 저자는 바다를 4차 산업혁명에, 곧 가라앉을 배를 기존 세상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4일 대구 수성구립범어도서관 한 강의실. 청바지 차림의 한 중년 남자가 거리 두기를 유지한 채 투명 플라스틱 칸막이가 놓인 책상에 앉은 수강생 10여 명에게 질문을 던지자 이런 저런 대답이 돌아왔다. 간간이 웃음도 터져 나왔다.

강좌는 최병철(56) 한국창직역량개발원 원장이 4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북세통'이다. 북(book·책)으로 세상을 통찰하자는 독서 프로그램이다. 이날 교재는 '리딩으로 리드하라' 등의 베스트셀러를 쓴 이지성 작가의 2019년 작 '에이트'였다.

"독서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누군가로부터 책 내용을 들어보고서 마음이 끌리면 구입해 정독하라고 권합니다. 저는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 전달하는 역할이고요."

북세통은 토론 형식이 아니다. 최 원장이 매주 수요일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문학·역사·철학·경영학 분야 책 한 권을 요약해 설명해준다. 저렴한 수강료(분기당 1만원)에다 부담스럽지 않은 강의 덕분에 수강생은 젊은 직장인부터 머리 희끗한 장년층까지 다양하다.

"토론 프로그램의 단점은 회원들의 수준이나 준비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칫 하향평준화될 수도 있는 것이죠. 저는 독서 대중화가 목표이다 보니 지식 공유만 되더라도 성공인 셈입니다."

독서가 자기 과시 수단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하는 그가 후원받은 책을 중소기업, 카페, 식당 등에 전달해 '마중물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대구경북에 16곳이 운영 중이다. 책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책의 사명은 멋진 책장의 장식품이 아니라 읽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이 각자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도서관으로 이동하는 데 그친다면 뭔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북 텔러'(book teller)를 함께 양성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사실 이름이 꽤 알려진 '스타 강사'이다.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간 500회 이상 강연하고 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듯한 그런 그가 10년 넘게 재능기부 차원에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자임한 이유가 궁금했다.

"전국에 강연을 다니다 보니 독서법을 여쭤보는 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고민들이죠. 특히 대구는 자영업자가 많다 보니 정작 필요한 이들이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독서 불평등이 심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경력 20년의 기업교육 전문강사가 된 데에는 시대적 아픔이 있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처럼 1997년 외환위기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옛 청구건설 등 건설업체에서 10여 년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퇴사 뒤 시작한 사업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적자원개발 업무를 오래 맡았던 터라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경북대와 금오공대에서 경영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외환위기가 제 인생 항로를 완전히 뒤바꾼 셈입니다."

그는 코로나19 역시 위기이자 기회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보람은 많이 줄었지만 새로운 변화에 눈을 뜨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택트 시대 생존독서 30권 읽기'란 유튜브 강의도 하고 있다.

"팬데믹으로 뉴 노멀(New normal)이 갑자기 불어 닥치면서 메시지 전파자로서 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가르치는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걸 가르치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과거의 낡은 지식을 밥벌이에 써먹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히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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