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김재용 금부모터스 대표 할머니 허소순 씨

故 허소순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故 허소순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성주군 수륜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품을 떠나, 어린 시절부터 대구에서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고향 성주를 떠나 대구에서의 유학 생활을 거친 뒤 군대에도 다녀오고 아직 이곳에서 살고 있으니 여기가 나에겐 제2의 고향이다. 이곳 대구에는 나의 소중한 어릴 적 추억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추억은 25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신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있다 보니 학교생활을 하며 많은 방황을 했었다. 그때 그 시절 할머니는 나를 바른길로 인도해주기 위해 애를 쓰셨다. 한 번도 내 편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 우리 할머니는 "우리 용이는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면 모두 잘 될 거야"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그 흔한 혼도 한 번 내지 않으시고 나를 감싸 주셨다. 할머니는 나에게 버팀목 같은 분이었다. 할머니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나에게 부모 같은 분이셨다. 밥을 먹더라도 할머니는 좋아하는 생선도 아까워 몸통은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대가리만 드셨다. 생선 대가리가 정말 맛있어서 드시는 지 알았다. 그땐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보니 조금이나마 할머니의 그 큰 마음을 알 것 같다. 아껴서 나에게 좋은 것만 주시려고 생선 대가리를 드셨다는 것을...

우리 할머니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항상 기듯이 집안일을 하셨다. 아파도 병원비가 아까워 아끼신다고 참으셨다. 지나고 생각하면 너무 죄송스럽다. 그런 감사한 할머니 밑에 자란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1988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재용 씨와 할머니 허소순 씨가 집에서 찍은 기념사진. 가족제공. 1988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김재용 씨와 할머니 허소순 씨가 집에서 찍은 기념사진. 가족제공.

나는 군대 전역 후 취직을 한 뒤 첫 월급을 받아 할머니를 호강 시켜 드리겠다며 월급을 드렸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달 뒤 뇌출혈로 쓰러졌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와 이별을 했다. 지금도 조금만 더 잘 해드렸어야 했는데, 말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든다. 할머니만 생각하면 잘못한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할머니가 떠나신 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집에 남아 살다 보니 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할머니가 방에서 다니시던 모습부터 밥을 지으시던 모습까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아련하다. 새벽이면 연탄재를 버리러 나가시던 할머니의 뒷모습도 생생하다. 우리 할머니는 몸빼바지에 꽃무늬 마 셔츠를 참 즐겨 입기도 하셨다. 어려운 형편에 우리를 기르시느라 할머니는 명테 껍질과 오뎅, 감자로 반찬을 많이 해주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에게 사랑을 주셨다. 아끼시던 금과 비녀를 나에게 남기셨는데, 할머니를 항상 생각하기 위해 그 금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고 있다.

할머니 어릴 때 말도 안 듣고 말썽을 많이 피웠지만, 항상 믿어주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싶다. 하늘나라에서라도 무릎 아프지 말고 편히 계셨으면 좋겠다.

할머니(허소순)를 사랑하는 손자(김재용 금부모터스 대표) 올림

 

관련기사

AD

사회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