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쿠팡, 사과까지…순직 소방관 '1일', 과로사 청년 '120일'

지난해 10월 과로사한 故 장덕준 유족, 상반된 대응 비판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 먼저, 아들 죽음 부디 헛되지 않길"
"제2 산재 막을 책임 사라질까 지난달 사측 보상 제안 거절"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 유족 제공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 유족 제공

쿠팡 이천물류센터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고 김동식 소방대장의 시신이 발견된 후 쿠팡이 평생 보상을 약속하고 애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그러나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로 숨진 대구 청년 고 장덕준(당시 27세) 씨의 유족이 쿠팡의 사과를 받기까지 무려 120일이 걸렸다. 산업재해가 인정되고 나서였다.

지난해 과로로 숨진 장 씨의 유족은 쿠팡의 상반된 대응에 대해 비판하며, 근로자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1년 4개월간 경북 칠곡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장씨는 지난해 10월 12일 심야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자택에서 쓰러져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2월 장 씨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장씨 어머니 박미숙(53) 씨는 22일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순직한 소방대원의 유족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한 것은 정말 다행스럽기도 하고, 당연하다"면서 "그런데 쿠팡을 위해 일한 근로자가 죽었을 때의 태도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쿠팡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책임 회피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달 아들의 죽음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쿠팡의 제안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덕준이와 같은 또래들이 물류센터에서 지금도 많이 일한다. 보상을 받으면 쿠팡이 '제2의 덕준이'를 막을 조치를 해야 할 책임이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건 쿠팡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작업환경"이라고 했다.

이번 이천물류센터 화재로 후진적인 기업문화가 조명됐다. 불안정한 작업환경과 쿠팡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19일부터는 온라인상에서 쿠팡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쿠팡에서 숨진 근로자는 지난 1년간 9명에 이른다. 장 씨의 어머니 박 씨가 쿠팡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이유다. 박 씨는 언제든 화재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물류센터에 대한 긴급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덕준이가 생전에 '쿠팡에서는 절대 책을 사지 마라'고 한 게 기억이 난다. 아들은 '창고 안에 먼지가 워낙 많아 비닐포장이 없는 책은 금방 먼지로 뒤덮인다. 먼지뿐 아니라 가연성 소비재가 대부분이어서 정말 위험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씨는 근로자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덕준이가 7, 8월 무렵에 정말 살이 많이 빠졌다. 근무하는 동안 몸무게가 15㎏ 줄었다"며 "물류창고 내부에 바람이 안 통해 바깥보다 훨씬 덥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씨는 "쿠팡이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나아가려면 근로자 안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라며 "우리 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쿠팡의 진실성 있는 답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지난해 쿠팡의 경북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한 뒤 숨진 고(故) 장덕준 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달여 전국 순회 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17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지난해 쿠팡의 경북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한 뒤 숨진 고(故) 장덕준 씨의 유가족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달여 전국 순회 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17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쿠팡은 유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야간노동 최소화와 특수 건강검진 시행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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