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지구 내 점포 새출발" 피해 상인들 소망

서문시장 4지구 화재 3년 8개월, 재건축 감감
서문시장과 거리 먼 데다 코로나19 이후 입주 상인 이탈도 심화
베네시움에 이전하는 대신 주변 상가에 옮겨 임차료 부담하기도
재건축 4지구 주차장 진·출입로 설치 두고 1지구·노점상 반발

6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은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6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은 찾는 손님이 거의 없어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서문시장 4지구 화재 이후 상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으로 점포를 옮긴 상인이 가장 많고, 일부는 다른 지구 상가에 점포를 임대했다. 한시적으로 장사를 접은 상인들도 있다. 이들의 소망한 단 한 가지. 새로 지은 4지구 상가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늦어지는 재건축에 이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베네시움에 임시 둥지를 튼 상인들은 임차료 유상 전환과 고객 급감으로 울상을 짓고 있고, 다른 지구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임차료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반면 일부 주변 상인과 노점상인들은 4지구 재건축에 따른 상업 입지 변경이나 상권 지각변동 등으로 이익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내심 재건축에 반대하는 기류도 없지 않다.

◆점포 크게 준 베네시움

지난달 29일 오전 찾은 대구 중구 장관동 베네시움 1층 매장. 이곳은 2016년 4지구 화재 이후 대체상가로 지정돼 2017년 8월 개장했다. 4지구 상인 650여 명 중 254명이 입주했다. 이들은 대구시 도움을 받아 상가 1~4층 점포를 무상임차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매장에서 장시간 머문 고객이 거의 없었다. 잠시 방문한 한 고객은 상가 내 수선실에 옷을 맡긴 뒤 곧장 나갔고, 또 다른 고객은 인테리어 소품·의류 매장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고 서둘러 떠났다.

1986년부터 4지구 3층에서 임대 점포를 운영했던 여성복 상인 A(69) 씨는 "매출 8할을 차지하던 도매 거래선이 거의 다 끊겼다. 월 2, 3차례 오던 단골 거래처 사장님도 지금은 2개월에 한번 올까 말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매장에 장시간 버티는 사람은 점포 상인뿐이었다. 한 상인은 탁상용 거치대에 스마트폰을 올려 두고 이어폰을 낀 채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고, 바닥에 돗자리를 펼친 채 상인 서너 명이 둘러앉아 대화하거나 식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예 주인이 자리를 장시간 비운 점포도 있었다.

상인들의 '탈(脫)베네시움' 현상도 심각하다. 7월 현재 상인이 120명에 불과하다. 입주 당시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인들이 베네시움을 빠져나가면서 임차료 대신 점포당 월 20만원씩 분담하던 관리비는 월 30만원으로 올랐다.

입주 당시 4층까지 점포로 찼지만 현재 1층 매장만 사용하고 있다. 손님들의 동선 낭비를 막기 위해 2~4층을 폐쇄했다. 각 층 계단 출입문을 폐쇄했고 상가 한가운데 에스컬레이터도 작동이 멈췄다. 5층 상인회 사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만 정상 작동한다.

6일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1층 외 나머지 층은 사용하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폐쇄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6일 대구 서문시장 4지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에서 상인들이 장사를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 1층 외 나머지 층은 사용하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폐쇄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탈베네시움 현상에 코로나19도 한몫했다. 장기 불황을 예상한 상당수 상인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이곳을 떠났다.

A씨는 "베네시움 입점 이후 월 평균 매출이 과거의 30% 수준이라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종전의 10분의 1로 급감했다. 지난 4, 5월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덕분에 매출이 반짝 늘었으나 금세 3월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화재 직후 금융권에서 빌린 긴급경영안정자금 1억원을 갚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했다.

임차료 유상 전환을 걱정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베네시움 관리단이 올 2월까지였던 무상임차 기간을 내년 9월까지 연장했지만 상인들의 우려는 여전했다.

화재 1년 전 4지구에 입점했다가 화마 피해를 겪은 한복 판매상 B(55) 씨는 "베네시움 소유주도 우리들과 맺은 무상임차 재계약이 내년 9월 끝나면 결국엔 유상임차로 전환할 것이다. 세입자들이야 과거 4지구에서도 임차료를 내고 장사했으니 부담을 비교적 덜 받겠지만 점포 소유 상인들은 불필요한 임차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수년째 난항을 겪고 있는 4지구 재건축 상황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서문시장 4지구 재건축 조합 추진위원회가 조합 구성에는 손을 놓은 채 이권 다툼에만 열을 올린다고 비판했다.

상인 C씨는 "조합추진위원들이 좋은 입지를 받겠다며 다툰다고 들었다. 그럴 시간에 재건축을 일찍 마쳐 하루라도 더 빨리 장사를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상인들은 화재 직후 지원받은 긴급경영안정자금 원리금 상환 시점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대출금 거치기간이 끝나고 향후 5년간 상환을 시작한다.

오성호 서문시장 4지구 대체상가(베네시움) 상인회 회장은 "당시 대구시 이자 지원을 받아 최대 1억원을 빌리고도 매출 하락을 극복하지 못해 원리금을 갚지 못할 상인이 상당수다. 재건축이 한시바삐 이뤄져 서문시장 안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을 벗어날 수 없어"

일부 4지구 상인들은 서문시장 내 다른 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여러 상권이 밀집한 서문시장 특유의 공고한 인프라를 벗어날 수 없어서다. 고객들이 '서문시장' 구역 내에서 쇼핑하려고 하는 탓에 다소 떨어진 베네시움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서문시장 4지구에서 섬유 도매업을 하던 상인 D(54) 씨는 화재 이후 1지구로 가게를 옮겼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던 4지구 시절과 달리 월 120만원 수준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D씨는 "불이 난 직후 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우선 빈 상가에 입점한 탓에 입지조건이 좋지 않은 데다 코로나19로 더 힘들다"며 "우리 집에서 장사하다가 남의 집을 빌려 장사하는 심적인 부담도 크다. 빨리 재건축이 이뤄져 '내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베네시움에서 장사를 하다가 지난 2월 1지구로 이사한 상인 E(47) 씨는 "연 매출 1억2천만원에 연 2천500만원의 임차료를 내야 한다"면서도 "유동인구가 적은 베네시움에서 제대로 못 버는 것보다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시장에 들어오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4지구 재건축만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일부 주변 상인들 재건축에 반발

일부 주변 상인들이 4지구 재건축에 반대하는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4지구 차량 진·출입로 위치를 두고 주변 반발이 노골화하고 있다.

현재 유력한 진·출입로는 큰장네거리에서 1지구 북쪽을 거쳐 4지구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경로다. 이를 신설하면 1지구 북쪽 1층·2층 외향상가(건물 바깥에 난 점포)와 노점상을 철거하거나 점포 면적을 축소해야 하고, 지금껏 이곳을 다니던 보행자 불편도 커진다는 우려가 높다.

2층 외향상가 침구류 상인 G(72) 씨는 "기존 1차로 소방도로를 확장해 진·출입로를 내려면 해당 구역 기둥 위에 놓인 2층 외향상가 복도도 없애야 할지 모른다. 점포만 남고 사람은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라 점포주 8명도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지구 상인회에 따르면 노점상 및 주변상인 213명이 지난달 중구청에 '진입로 설치 반대' 민원을 제출했다. '재건축 공사 차량이 상가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인도 상당수로 알려졌다.

1지구 1층 상인회 관계자는 "4지구가 사라진 뒤 주변 상권도 고객이 감소했다. 4지구 재건축이 시급하다"면서도 "다만 그 과정에서 기존 상가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4지구 상인들은 '이미 예상했다'며 담담한 반응이다. 2005년 서문시장 2지구 화재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설명이다.

4지구 한 상인은 "과거에도 '2지구를 번듯하게 재건축하면 손님 다 빼앗긴다'며 주변 상인들이 노점상인들과 함께 집단 민원을 냈다. 전례가 있었던 탓에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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