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육성 발언 전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발언 전문

(편집자 주: 독자분들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전달을 위해 이용수 할머니의 육성발언을 구어체 그대로 적었습니다.)

기자회견 할 때 이것 제가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다. 한 부 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것을 이따가 드리면 되고.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한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처음 기자회견을 할 때도 했고 한데, 너무도 많이 생각지 못한 것이 나왔습디다. 그것은 제가 생각했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정신대 대책 협의회입니다. 정신대 대책 협의회는 공장에 갖다 온 할머니들이다.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 정신대가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와 위안부 더럽고 듣기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달라.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곳이 다달라.

잠깐 제가 갔는데를 말씀드린다. 우리 나이 16살에 만으로 하면 14살이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다. 그 때는 성을 갈지 않으면 성을 갈아 야스하라 도시코라고 함. 학교도 일본학교 다나까를 알았다. 끌려가서도 대만 가미가제 협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가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다.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줘. 야수하 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꼬 같은 피해자 그 후에 겪으면서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해. 제가 쭉 30년동안 살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증언을 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 (...)

지가 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한테 25일날 했는데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해 갔어.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하고 돈을 천엔을 줬다 그러면서 100만원씩 나눠주더라.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모르겠어. 그 때는 어떤 모금을 하는 것을 봤다. 왜 모금을 했는지 당시는 몰랐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어.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 저는 그게 왜 그런줄 몰랐지만 부끄러웠어.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거둔 것을 받아 나왔다. 배가 고픈데 좀 맜있는 것 사달라고 하자, 돈 없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도 교회를 가도, 돈을 주면 그걸 어느갑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30년을 해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이다.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로 되어야 하는데 공장 갔다온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으로 빚어놓고, 속에는 팥있고 속은 위안부다. 그런 그걸 30년을 쭉해와도 나는 그걸 몰랐고. 그저께까지 몰랐다. 어제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뭐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왜 자기들이 정신대 할머니를 이용해서 이용해나왔나. 저는 그것도 당연한줄 알았다. 어제 생각하니 이럴 수 가 있나. 30년동안 앉아서 이야기 한 것이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이건 사죄하지말고,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니냐.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다.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이 돈 받아서

어제 잠 못잔다. 왜 뭐 때문에 정신대만 하지 자기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모금의 대상으로 사용했다. 이것을 생각하니 자다 일어나서 울어.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용당하면서 말도 못했나. 생각하니 그래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겠다.

사죄배상 받은 걸 막았다.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같지가 않다.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가 죽은 사람도 많다. 이 30년을 이용해 나왔다. 오늘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겠다.

일본이 바보냐, 뭐하러 정신대대책위원회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해당하지도 않는데 일본이 왜 사죄하고 배상하느냐. 이것은 할머니들 팔았다. 팔아먹었다. 내가 왜 팔려야 한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저 잘못한거 없다. 빌면서 살려달라 했어. 팔을 묶어놓고 지금도 귀에 소리가 들려. 그 때 얼마나 크게 엄마를 불렀는지,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어린 나이때부터 지금도 그날의 고통이 귀에 들려. 왜 그런지, 누구하나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면 이걸 밝혀줘야지. 할머니 어디 갔다 왔나 밝혀줘야하는데 한번도.

그책을 6천500원에 파는 걸 봤어. 그걸 챙기는지 모른다. 증언도 하고, 정신대 대책 협의회 박물관을 지을 때 서대문 형무소서 짓는다 했다. 박물관에 내 이름 대표라 돼 있어. 대표라 하지마라 챙피하다 했어. 대표라고 적어놨으면 대표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니냐

할머니가 미향 씨 이러면 안되잖아. 한번 오라고해 .안그러면 기자회견 할련다. 윤미향이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5월7일날 기자회견 한거. 하나하나 말을 다 못드리겠다. 빨리 생각이 안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 들어오니 문을 열어 달라고 해서 열어주니 윤미향 씨가 들어오는거야. 놀라서 넘어갈뻔해.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하느냐. 무엇(용서할 이유)이든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는데 뭐를 용서해?

그것은 경찰에서 할 것. 윤미향에게 며칠후에 기자회견 할 테니 오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데 말은 안해. 뻔뻔하게 차에 내려 휠체어를 타려고 하니 교수도 있고.. (불쾌한 듯) 이런 사람이 윤미향을 보호한다.

거기서 원수진것도 없고 한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에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여린 사람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 원수도 아닌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너무 (기침) 눈물이 나서 울었다. 이걸 가지고 기사를 내.

기자님들 부탁드린다. 명확히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아니다. 너무 황당합니다(흐느낌)

25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탄 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25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탄 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이걸 명백하게 하려고 했다. 혼자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두라 하지마라 할 수 가 없어 그냥 있었다. 이사람은 (윤) 자기 마음대로 한다. 30년을 같이 해나왓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팽개쳤다. 우리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대모(정신대모임)에 나와, 그 분들 다 아무것도 아닌냥 , 자기 마음대로 사리사욕 채우고,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 나가. 저는 몰라 저한테 이야기도 없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거니까. 무엇을 용서하느냐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마음대로 했으니 그건 자기 마음대로, 저한테 물어볼 필요도, 이유도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라냐. 여러 수십가지 것들을 다 말을 못해 내가, (나를)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넘고 예산은 돈은 자기가 받아먹어. 30년이 넘게...

이런것도 모르고 무슨 용서를 바라느냐. 해서 저는 대모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지 위안부 할머니 투쟁을 끝내는 것 아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했고,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다가가려면 이걸 바꿔야 한다. 먼저도 이야기 했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 미운 나라.

이 학생들이 나라의 주인, 학생들이 알아야. 뭐 때문에 사죄배상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일본 아베는 한국이 거짓말 한다. 그 학생들 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일본학생들모 모르고 한국 학생들도 모르고. 일본과 한국의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너희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고 하는지 뭐 때문에. 이런것들을 이야기하고 가르쳐야. 일본은 왜 하지 않노.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는 일본인의 인식. 학생 교육과 시일이 가더라도 왕래하고 친해지면 속에 할말도 있고 배워야 한다. 배워야 알지요. 제 짧은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었어. 대구에 역사관. 이것도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다. 이걸 누가 했느냐. 대구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걸 했다.

그래놓고 지금은 윤미향을 밀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라. 김복동 할머니 존경 받지 않느냐. 나비 기금이라든지 하는거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됐다고 김 복동 할머니 돈이냐. 어느날 내가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600만원 모금을 했다. 저한테 하는 말이 할머니 예산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제가 간다고 했습니까 이런 등등 그 뿐 아니다. 많다.

30년간 그것만 얘기했는데 줄줄줄 엄청나게 나옵니다. 말도 못하게 나옵니다.

할머니들 팔아갖고 했으니까, 택도 없는 할머니 아닙니까. 이것도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 받아야 합니다. 한데 그래도 끝까지 사죄, 무슨 사죕니까.

저는 김복동 할머니요. 김 할머니는, 이 할머니를 끌고 댕겼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댕기면서로 낸주 회관 생겨준다고. 고생시키고 할머니 이용해 먹고 뻔뻔시리 그 묘지에 가가지고 눈물 흘리요. 그거는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주고 약주고 하는 이런 그것도 죈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 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가지고 했는거는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끝까지 제가 나이가 들다가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은 올바르게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를 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 배상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 기자회견장에 앉아 감기약을 복용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 기자회견장에 앉아 감기약을 복용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천년 만년이 가도 일본이 해야 합니다. 이런걸 가르치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꼭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시켜가지고 이 억울하고 누명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늦게까지 살았는게 죕니까.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늘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나는 윤미향 앞에서 하나도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위안부입니다 위안부.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 하지마는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떡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를 해가지고 모든 여성분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메로.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위안부는 여자다.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한테 이 확실한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라는 본성을 있다는게 참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끊습니다.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거는.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가지고 이 역사를 아셔가지고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받아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하니까 미국에 들으라고, 미국사람들 겁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뭐를 했습니까. 그렇게 - 한줄 몰랐습니다.

쉽터를 지어놓고, 화려하게 지어 놨습니다. 그래서 그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 그 아버님이 사신다 카더라고요. 이런거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다 검찰청에서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소리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공은 닦은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서 살리야 됩니다. 살린다고 제가 마음이 풀리는 거는 아닙니다. 고치야지요. 이런 일 없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꼭 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제가 정말, 여러분들이 오셨는데 그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여러분들이 다 오시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장소를 바꿨습니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는 말 그대로 해 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건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겁니다.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번 다시 이런일이 없도록 제가 오늘 바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다. 무수히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가슴아파할 것같아 요점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저 지금 정말 죽겠습니다. 그 좁은데서 만약 했다면 코로나가 터졌다 카는데 걱정돼서 여러분을 이렇게 큰데 모셨습니다. 기사 있는 그대로 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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