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광석길' 방문객 급감…그의 감성은 없고 가게만 즐비

'김광석' 묻히고 프랜차이즈 카페·음식점 우후죽순
임대료 치솟고 젠트리피케이션…'경리단길' 선례
연구용역 했지만 제시된 방안 실현되지는 않아
"김광석길·방천시장 장소DNA 찾아 브랜딩해야"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방문객 수가 감소하면서 14일 오후 김광석길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방문객 수가 감소하면서 14일 오후 김광석길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지난 2010년 첫 선을 보인 뒤 대구의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하 김광석길)'이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140만788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 전년(159만6천423명)에 비해 12%가량 줄어든 수치를 나타낸 것이다.

김광석길의 방문객이 전년 대비 하향곡선을 그린 건 10년 만에 처음이다. 김광석길을 만든 예술인들과 관광 전문가들은 고(故) 김광석 개인의 이미지에만 의존하고 지나친 상업화를 방치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판 경리단길' 된 김광석길

올해 10주년을 맞은 김광석길은 '뉴트로'(New-tro·새로운 외양을 갖춘 복고) 열풍 속에 연간 100만 명이 넘게 찾는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지나친 상업화와 젠트리피케이션에 신음하는 골목이 있다.

지난 13일 오후 찾은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길. 기타를 치는 모습의 김광석 동상을 거쳐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운 선율이 귓가에 울렸지만, 안으로 조금 걸어들어가자 여느 관광지와 다를 것 없이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격이나 인형뽑기를 할 수 있는 오락실이 두 곳 있었고, 즉석사진관과 액세서리숍 등 김광석과 상관없어 보이는 가게가 많았다. 그나마 김광석에 관련된 기념품을 파는 곳은 기타 모양의 빵을 파는 가게 정도였다. 벽에 그려진 김광석의 모습과 형형색색의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14일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14일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5년째 매년 3~4차례 김광석길을 찾는다는 최겸(48) 씨는 "거리에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상업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초기의 그리운 분위기가 유지되기보다는 상업적인 분위기만 늘어 아쉽다"고 했다.

관광지로 떠오르며 크게 치솟은 임대료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을 불러모았다. 평범해진 분위기에 방문객들이 발길을 끊는 전형적인 '핫플레이스'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임대료 폭등으로 예술가들이 사라지자 활기를 잃어버린 서울 '경리단길' 사례를 보는 듯 했다.

대봉동 일대 한 부동산 관계자는 "평당 400만~500만원 수준이던 매매가가 4~5년 전부터 1천만원까지 올랐고,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크게 오른 상태"라고 했다. 이처럼 임대료가 치솟고 방문객은 줄어들자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 김광석길 곳곳에선 '임대' 현수막이 붙은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을 닫지 않은 가게들도 오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편의점주 B(54) 씨는 "지난해 1월 이후로 관광객이 체감할 정도로 줄면서 가게가 많이 나갔다. 12평짜리 매장의 월세가 350만원이나 되는데 매출이 줄어드니 방법이 없었다고 하더라"면서 "관광객들이 '거리가 짧고, 김광석 노래 틀어둔 것 외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 연구용역 했지만 실현된 방안 없어

김광석길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미 몇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김광석' 개인의 이미지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다 관련 콘텐츠 개발도 한계에 부딪혀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 중구청이 지난 2018년 한 민간업체에 위탁해 진행한 김광석길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용역에서도 '방문객 만족도 개선'과 '콘텐츠 확보 방안 마련'을 두 가지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방문객들의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71.6점에 그쳤고, 대부분 카페나 음식점에서만 시간을 보냈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연구용역은 김광석길의 인기를 유지할 방법으로 '포크 인디문화 거리' 구축을 제안했다. 김광석의 후광을 넘어 지역 음악문화의 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김광석길과 방천시장의 역사를 살려 인근 12개 골목을 연계하고, 예술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다시(Re:) 학교'를 만들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거리 내에서 이뤄지는 예술사업을 지원하자는 방안도 나왔다.

그러나 연구용역이 끝난 지 1년이 넘은 지금, 이 가운데 실현되거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방안은 없다. 중구청은 당시 용역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려면 66억3천만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올해 대구 중구청이 편성한 김광석길 관련 예산은 국·시비 매칭사업을 제외하면 활성화 방안 공모 사업비 7천200만원뿐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들일 수 있는 예산에는 한계가 있고, 민간 사업자들의 사업에 관여하기도 어렵다"면서 "부족한 예산은 정부 및 대구시 공모사업에 응모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방문객 수가 감소하면서 14일 오후 김광석길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의 방문객 수가 감소하면서 14일 오후 김광석길이 다소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 "'장소DNA' 찾아 브랜딩해야"

전문가들은 김광석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방천시장 일대에 깃든 '장소 DNA'를 특색있게 살린 브랜딩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고 갖가지 화려한 조형물이 설치되면서 원래의 소박한 '김광석DNA'가 조금씩 지워졌고, 결과적으로 방문객들이 느끼는 매력이 줄었다는 것이다.

오익근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장소 고유의 정체성을 브랜드로 연결하려면 향토사학자들과 문화연구자들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역 이야기'를 찾는 게 우선"이라며 "김광석과 해당 지역을 연결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아 다른 지역과 차별화하지 않는다면 김광석길은 그저 그런 카페 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응진 대구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도 "천편일률적인 음식점과 커피숍이 늘어서면서 김광석과 그가 살았던 1980~199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테마성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라며 "감성과 예술을 키워드로 한 가게들을 적극적으로 입주시키고, '뉴트로' 콘셉트에 맞춘 콘텐츠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전충훈 공동체디자인연구소 소장은 "더 이상 신기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없어지면서 문화콘텐츠로서의 폭발력이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라며 "임대료가 오르면서 상권이 배후지인 대봉동 방향으로 조금씩 확장되는데, 그곳에서 예술 혹은 상업적인 '실험'이 일어난다면 원래의 길까지 살려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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