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층 주상복합 들어서면 '북성로 100년' 사라진다"

[개발·역사 보전 갈림길, 대구 북성로] <상>개발 여파에 사라져가는 시간의 흔적들
49층 주상복합 만든다고…100년 넘은 건축물도 헐었다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앞에 놓인 거북이석상.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중부청소년경찰학교 앞에 놓인 거북이석상.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상권이 활성화하면서 주목받았던 대구 중구 북성로는 한국전쟁을 거쳐 전국 최대 규모의 공구골목이 됐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재개발로 또 한 번 변화의 중심에 섰다. 개발과 역사보전이라는 갈림길에 선 북성로 일대 이야기를 2편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개발 여파에 시간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있다. 성장과 쇠퇴를 되풀이하면서 진화하는 도시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무분별한 역사의 훼손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구역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중구 북성로는 대구에서 근대의 흔적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지만, 이곳 역시 개발 열기를 피하진 못했다. '시간 여행지'로 관광객을 그러모으고 있는 전북 군산처럼 많은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곳이지만, 이제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면서 옛 정취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개발에 지워지는 역사

대구 중구 북성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현장.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 주상복합아파트 공사현장.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부경찰서 역전치안센터 앞에는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조선시대 석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龍)의 장남이라고 알려진 비희(贔屭)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상상 속의 동물이 무거운 것을 들기 좋아한다고 믿어 비석의 받침돌로 새겼다.

현재 역전치안센터 앞에 놓인 비희는 과거 한 파출소장이 대구읍성·경상감영 해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숱한 변화를 겪는 사이 원래 자리를 잃은 채 버려져 있던 유물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비희는 최근 역전치안센터가 재개발 부지에 포함되면서 또 한 번 자리를 옮아앉게 됐다.

북성로(중구 태평로 2가 7-1번지 일대)에는 오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8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민영개발로 1만7천432.6㎡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49층 아파트 5동(803가구)과 오피스텔 1동(150호)을 짓는 것. 사업은 지난 5월 대구시 건축위원회에서 조건부 의결돼 9월 20일 승인을 받고 현재 철거작업이 한창이다.

애초 이곳은 대구의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근대 건축물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논란이 일었다. 보존가치가 뛰어난 건물들도 대책 없이 헐려버렸다. 이공주 피아니스트의 부친 이상근 씨가 1940년대부터 운영했던 카페를 수선한 '백조다방', 1907년에 지어진 목조건물과 1937년에 지어진 소금창고를 수선한 카페 '소금창고' 등이 포함됐다.

2014년부터 진행된 북성로 근대건축물 개보수(Renovation)사업으로 31곳 근대 건축물이 개·보수를 거쳤지만, 재개발 부지 안에 4곳이 포함돼 사라진 것이다.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재생·보존하자는 도시재생사업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버티거나 떠나거나'

주민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재개발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15년간 철물점을 운영한 A(72) 씨는 "공구골목을 활성화하자며 세금을 들일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는 재개발 허가를 내주며 건물을 다 부수고 있다"면서 "나지막하고 오래된 귀한 건물들 옆에 49층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옛 모습이 다 죽어버릴 것이다"고 걱정했다.

현재 철거지역에 마지막으로 남은 3층 건물 안에는 세입자 B(64) 씨가 공사 분진을 그대로 견디며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B씨는 "건물주였던 지인으로부터 장기 사용 허락을 받아 2017년 이곳에 들어왔는데 청소·수선에만 세 달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시행사가 불법점유라며 명도청구·인도명령 소송을 걸어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같은 건물에 살던 세입자 1명은 먼지세례에 결국 두드러기가 나 합의를 하고 떠나버렸지만 끝까지 버틸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가를 운영하던 세입자들도 문을 닫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이 가운데 대구 1호 독립서점 '더 폴락'은 지난달 초 인근 골목 쪽방 밀집지역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김인혜(36) 더폴락 공동대표는 "시행사와 협의가 잘 안돼 지난 9월 철거 1주일을 남기고 이주했다. 시간이 촉박해 결국 3주 동안 문을 닫은 채 새로운 곳에서 개업 준비를 해야 했다"며 "애초 위치보다 외진 길 안에 있어서 손님이 5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김 대표는 재개발로 인해 부서지는 옛 건물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이주였지만 마음은 불편하다"며 "북성로가 워낙 적산가옥이나 근대건축물이 많은 곳이라 사실 쭉 보존될 줄 알았다"고 했다.

행정기관은 "법적 문제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개발 승인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면서 "여러 건축 승인 조건을 통해 북성로 경관 보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시 관계자는 "주상복합 남측 상가가 북성로에 접하게 돼 경관과 정체성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며 "지금은 철거단계라 문제가 없지만 시공 전에는 반드시 관련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물론 거리박물관, 대구읍성 트레일 등 이미 조성된 관광자원 역시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북성로=대구읍성의 북쪽 성벽을 허물고 만든 길로, 대구읍성은 1906년 10월 일본에 의해 철거됐다. 이후 북성로는 일제강점기 지역 최대 상권이 됐고,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를 파는 상인들이 들어서면서 공구골목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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