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유시민의 사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왼쪽부터) 진중권, 유시민
(왼쪽부터) 진중권, 유시민
진중권
진중권

유시민 씨가 사과를 했다. 언뜻 보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동기야 어쨌든 사과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요하는 일. 그 용기를 냄으로써 그는 적어도 자신이 김어준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한 안도감까지 느꼈다. 그 사과문을 읽고 나는 그를 거의 용서할 뻔했다.

하지만 아직 화가 안 풀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누군가 조만대장경에서 기어이 2010년 조국 교수의 말을 찾아내 SNS에 올렸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내 말을 추가하자면,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다."

사과를 했는데도 왜 많은 이들이 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사과의 범위가 너무 좁다. 조국 사태 이래로 그는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해 왔다. 그가 유포한 그 많은 '대안적 사실들' 중 사과한 것은 검찰의 계좌추적 건뿐. 다른 거짓말에 대해서 그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가령 조국 사태 당시에 그는 '검언 유착'의 프레임으로 애먼 기자들을 검찰 받아쓰기나 하는 '기레기'로 싸잡아 매도한 바 있다. 그로 인해 많은 기자들이 대깨문의 양념 리스트에 올라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KBS 법조팀이 날아가고, 기자가 대낮에 테러를 당했으나, 이에 대해 그는 아직 아무 말이 없다.

그가 계좌추적 건만 꼭 집어 사과를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것과 달리 이 거짓말에는 명확한 검증의 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 계좌추적을 할 경우 금융기관에서 늦어도 1년이 지나기 전에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체스에 비유하면 '체크메이트'에 걸린 셈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것과 달리 이 거짓말이 법적 처벌이 예상될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는 점이다. 그의 거짓말로 한동훈 검사장은 온갖 수모를 겪으며 한직으로 좌천됐고, 채널A의 이동재 기자는 고작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까지 당했다. 이 모두가 그가 유포한 검찰 음모론이 배경이 되어 발생한 피해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는 사과 없이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중형을 선고받은 조국 일가보다는 현명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사과를 한 것은 '용기'의 발로라기보다는 유난히 많다고 그 스스로 인정하는 '겁'의 산물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사과문은 그 나름 치밀한 법적 검토를 거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그는 제 거짓말을 '확증편향'의 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단순한 오해로 치부한다. 허위 사실이라는 인식이 없었음을 강조하여 미리 위법성 조각 사유를 만들어 두겠다는 얘기. 하지만 그는 대검과 한동훈 검사장의 거듭된 해명에도 같은 주장을 계속해 왔다. 즉 그 거짓말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었다.

그것은 확증편향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실수가 아니었다. 행여 있을지 모를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그는 '검찰 개혁'이라는 권력의 프로젝트에 편승해 어용 매체 및 극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함께 그 허구를 현실에 아예 '사실'로 등록시키려 했다. 즉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탈진실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과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피해에 대한 복구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의 사과문에는 그저 '검찰 관계자'라는 막연한 표현만 있을 뿐, 정작 그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개인이 아닌 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은 법정에서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사과는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국한되어 있고, 그마저 도덕적 책임만 인정하는 가운데 마땅히 져야 할 법적 책임은 교묘히 피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 글은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놀랍지 않은가? 과연 유시민이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유시민이 쓴 사과문이 유시민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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