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뉴TK 문화운동'을 시작하자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종교 경전을 제외하고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할뿐더러 많이 읽힌 책일 것이다. 보물 1245호로 지정돼 있다. 책이 보물로 지정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그만큼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독서 풍토를 보면 이 책의 존재와 제목 정도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 꼼꼼히 완독한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내가 그런 본보기이다. 나도 이 책을 초등학교 때 요약본을 읽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의 소원' 부분을 읽고는 이 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제목이 공무적인 일기에 해당하는 '일지'(日誌)가 아니라 '일지'(逸志)라는 한자 표기도 눈에 띈다.

1990년대 후반 우연히 백범의 손자인 김진 선생에게 친필 사인을 한 '백범일지'(도진순 교수 주해)를 받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니 하면서 책장에 모셔 두었다가, 최근에 이사하면서 발견해 다시 읽었다. 모든 책이 읽는 시기나 환경, 독 횟수에 따라 느낌이 각기 다를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개인의 내면이 드러난 일기이면서, 성장 소설이면서,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이면서 웅혼한 정치적 포부를 드러낸 정론서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 상권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범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갔다가 과거가 매관매직되고 있는 현실에 좌절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백범에게 과거는 포기하고 풍수나 관상 공부를 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백범은 관상 공부를 한다. 관상은 우선 거울로 자신의 관상부터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백범이 본 자신의 관상은 '어느 한 군데 귀격(貴格), 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몸에 천격(賤格), 빈격(貧格), 흉격(凶格)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비관에 빠진다. 그러다가 그 책의 구절 중에 '관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구절을 읽고 관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이 결심의 결과가 짐작하건데 백범이 동학(東學)에 입교해 접주가 되고, 그 이후 생사를 뛰어넘는 지난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암살로 생을 비극적으로 끝마치는 게 그의 전 생애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에 보면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잘사는(부강한) 나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이유는 인의(仁義)와 자비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마음을 키우는 게 바로 문화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찍이 우리 앞에 이런 세상이 있었던가?' 하는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정치는 정치대로 진영이 나뉘어져 옳고 그름을 분별할 만한 합리적 정론이 실종된 지 오래고, 경제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소득 격차,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 지방 소멸로 양극화가 심화된 지 오래이다. 언론도 사회의 목탁으로 효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듯하고 지식인도 소금 역할을 잃어버렸다. IT의 발달로 SNS 등에서 막말과 가짜 뉴스의 범람, 민초들의 과잉된 의사 표시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혼탁한 현실이 돼버렸다.

고결하고 기개 높은 영남 사림의 자긍심과 오랜 선비 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먼저 문화를 통한 마음 공부, 상대편을 존중하는 겸손과 관대함, 열린 태도, 올바름을 지키는 정의감을 갖는 문화운동을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뉴TK 문화운동, 정신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와 세계 인류에 새 마음과 희망을 주는 신축년 새해가 됐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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