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의 두 얼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긴급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그냥 검찰총장을 향해 "물러나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임명권자의 의사를 존중해 총장도 군말 없이 자리에서 물러날 게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물론 촛불 대통령의 이미지 때문이다. 명색이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총장을 미리 내쫓는 반(反)민주적 폭거를 자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착한(?) 대통령을 대신해 손에 피 묻히는 못된 짓은 부하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 험한 일을 시켜 놓고 청와대의 인권변호사는 본디오 빌라도처럼 대야에 제 손을 씻었다. 그의 부하들은 보통 사나운 게 아니다. 검찰총장에게 난도질을 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고마 해라, 마이 무구따."

조국 사태 이후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말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정권은 거의 매일 사상 유례가 없는 희한한 일을 벌이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역시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

왜 그러는 걸까? 무리수를 둔다는 것은 그들이 극도의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 대통령은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을 제거하는 데 '손타쿠'(忖度)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근데 이게 처음이 아닐 게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스산하게도 그 사건의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보다 더 불길한 것은 '명시적 지시' 없이도 직권남용이 성립한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의 판례다. 그 사건은 권력의 수사 방해로 인해 관련자들이 기소된 지 몇 달이 넘도록 윗선에 대한 수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도 발단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를 삭제하는 데 가담했던 두 사람은 이미 구속이 됐고, 검찰 수사는 청와대 비서실로 향하고 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청와대의 지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수상한 것은 당시 청와대 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의원. 그는 "월성 1호기 폐쇄는 19대 대선 공약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이라며 "선을 넘지 말라"고 검찰과 감사원에 '경고'를 했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이 그 정책을 '위법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닐 게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바보들은 자기들이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 말대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자료 삭제가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면, 그 모든 범죄가 대통령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얘기. 엉겁결에 천기누설을 한 것이다.

법무부 차관에 이용구 변호사가 임명된 것도 심상치가 않다.

그는 차관 임명 직전까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변호인을 맡고 있었다. 그는 당연직으로 윤석열 총장 징계위에 참여하고 있다. 피의자의 변호인이 수사 최종 책임자에 대한 징계를 맡은 셈이다. 이게 그저 우연이겠는가.

백 전 장관이 뚫리면 당연히 검찰의 수사는 청와대를 향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 변명하는 것을 보니,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 대통령이 연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수치고 염치고 다 버리고 법률과 절차를 무시해 가며 검찰총장을 내치는 데 목숨을 거는 것이리라.

법무부 감찰위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러니 대통령이 나서서 명분을 잃은 징계위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그 덕에 우리는 탁현민의 뛰어난 화장술에 가려져 있던 대통령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게 됐다. 봤는가? '촛불 대통령'도 결국은 권력자였던 것이다. 어쩌면 전임들보다 더 냉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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