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개미, 그리고 소중한 노동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어린 시절, 마당에서 개미를 관찰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동료들에게 더듬이로 신호를 보내고 쉴 틈 없이 집을 들락거리는 모습은 박진감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개미집은 어떨까 궁금해서 병 속에 흙과 개미를 넣고 물을 부어 관찰하면서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었다.

마당이 생기고 벌레들을 관찰하자 개미가 가장 먼저 보였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무얼 하는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밤새 폭풍우가 몰아친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갔더니 어제 떨어져 있던 빵 조각에 개미가 새까맣게 붙어 있었다. 밤새 일을 한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개미들은 밤새 일을 하고 있었네? 너희들은 뭐하니?" 아들 카톡이 왔다. "나도 밤새 밀린 일 하고 이제 잠깐 쉬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잠자는 사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개미나 아들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새벽 4시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을 깬 적이 있었다. 문 밖에 차 소리, 사람 소리가 들려서 내다봤더니 쓰레기를 청소하고 있었다. 구청에서 골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이른 새벽에 움직이는지 몰랐다. 한번은 골목 맨홀 뚜껑을 열고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이 보였다. 전기선 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공사를 자주 했는데 처음 보느냐고 되물음이 왔다.

내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나 가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한테까지 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받는 편리한 세상이라고만 생각했지 어떻게 배달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내가 먹고 배설하는 것이 그냥 물을 내리면 내 눈에서 사라지는 것만 봤지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니까 내가 잠자는 중에도,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도, 까마득한 공중에서도 매일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편리하고 당연한 내 일상생활을 유지해 주는 공사들이었다. 그렇게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서, 기계에 끼어서, 가스에 질식해서 죽는 사람이 하루에 7명, 1년에 2천400명인지 몰랐다. 내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하루에 2명, 1년에 700명인지 몰랐다. 나에게 빨리 물건을 배달해 주는 택배기사가 소변 볼 시간도 없이 일하다가 올해 들어 8명이 과로로 죽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사용하는 수술기구가 누구의 녹은 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시를 통해서 알았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의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 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그 쇳물 쓰지 마라')

어린 시절 개미와 베짱이는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을 잡아주는 동화였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한 가족이 먹고살고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 하지만 요즘은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노동 현장도 안전하지 않다. 노동만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젊은이들이 주식시장에 위험한 개미로서 뛰어들고 있다. 안전하고 소박하게 개미같이 일하는 노동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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