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경제정책의 위험성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유럽은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를 대발견의 시대(Age of Discovery)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에 남북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발견과 인도로 가는 항로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는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이 경쟁적으로 선단을 만들어서 대항해를 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선원 200만 명이 괴혈병으로 죽었다. 이 엄청난 사망자 수는 적과의 전투, 폭풍, 난파 등으로 죽은 선원의 합계보다도 많다고 한다. 괴혈병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낫는지 오랫동안 전혀 알지 못해서, 유럽의 항구를 출발하는 선단은 사망 확률을 계산해서 더 많은 선원을 싣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횡단한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이 항해를 끝냈을 때 선원의 3분의 2를 괴혈병으로 잃었다고 한다.

이러한 비극을 종결할 수 있는 방법을 쓴 책이 1753년에 스코틀랜드의 젊은 의사인 제임스 린드에 의해 출간되었다. 린드는 괴혈병이 생기는 원인은 밝히지 못했지만, 괴혈병을 치료하는 정확한 처방을 책에 기술했다. 200년 동안 2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무서운 괴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단지 오렌지와 레몬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괴혈병이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생기는 병임을 알지만,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그 처방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린드의 처방이 받아들여지기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그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1980년대까지의 경제학이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이론이 지배했었다면, 현대 경제학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Evidence)가 지배하고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루어지는 정책의 효과는 수많은 경제학자에 의해서 분석, 평가가 거의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고, 많은 분석 결과들을 이용한 메타 분석(Meta-analysis)을 통해서 경제정책의 효과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작업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그래서 '꼭 해야 할 경제정책'과 '해서는 안 될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은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분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은 경제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 서울대의 김대일 교수·이정민 교수, 서강대의 전현배 교수가 경고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였다. 부동산 임대차 3법에 대해서도 공공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된 '정책의 배신'이라는 책을 쓴 윤희숙 의원이 국회 연설로 분명하게 경고했음에도, 여당은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선의로 실시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및 강사법 시행, 임대차 3법의 시행 결과는 참혹한 통계 수치와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드러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일괄 적용 등은 고용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과 대학에 큰 타격을 주어 전체 취업자 수를 줄였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오히려 늘었으며, 대학의 시간강사는 58% 줄었다.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그 법을 만든 경제부총리는 뒷돈을 주고 들어갈 집을 찾아 웃음거리가 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세로 살던 많은 사람들은 갈 집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데이터에 기반한 증거에 근거한 경제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결과이다. 현 정부는 이 참혹한 결과 앞에서 반성하고 고치기보다는, 손쉽게 재정을 풀어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거나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의 원리와 경제학이 발견한 정형화된 사실을 무시하고 행해지는 경제정책은 린드의 발견을 무시해서 50년 이상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것처럼, 많은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고 상하게 한다. 현 정부의 경제 팀은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증거에 기반해서 경제정책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경제 팀을 일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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