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내 심장이 머무는 곳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과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과 교수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과 교수

모든 존재는 무엇인가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연어는 생명의 부화를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강가를 찾아 하루에 100마일씩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먼바다에서 청년기를 보내고도 정확하게 돌아간다. 신천옹이라는 새는 장장 32일, 4천120마일을 날아서 고향을 찾아간다. 인간도 열망과 향수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런 움직임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여정자(viator)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시가 외롭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되었으면 고맙겠다던 시인 윤중호. 그는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이렇게 노래했다. "왜정 때 부역질로 만들었다는 신작로 따라 고향을 떠나왔다. 그 뒤로도 자꾸 신작로가 자라서 당재 너머로, 뱀맞테 서금리 단전리 지나 뒷구리까지 뒷구리 넘어 부상까지 칡넝쿨처럼 타고 넘더니, 아는 얼굴들 모두 신작로 따라 대처로 떠나고, 이제 내가 아는 얼굴 되어, 신작로 끝 빈집, 불 밝혀야 하나."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자기의 열망을, 향수를 잠재울 곳을 그리워하며, 움직이고 있다.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다. 인상파는 그가 출품한 작품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작품 '수련 연작'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시실은 모네의 생각대로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타원형으로 지어, 빛을 통해 작품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네는 화가 이전에 꽃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미술 평론가 프랑수아 티에보-시손에게 "내가 화가가 된 것은 꽃 덕분인 것 같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는 죽는 날까지 40여 년을 지베르니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았다. 지베르니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땅, 센강 계곡 외진 곳이었다. 모네는 그곳에 정원을 만들었다. 최신 원예 서적을 탐독했고, 세계 각지에서 나는 다양한 꽃과 식물의 씨앗, 구근을 주문했다. 모네의 화실을 방문했던 기자들은 미학 서적보다 원예 카탈로그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모네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미리 원예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했다. 그는 정원을 위해 온실을 두 개나 만들고, 정원사를 6명이나 고용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정원에 쏟아부었다. 모네에게 정원은 곧 그의 작품이었다. 모네는 아내 알리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내 심장은 항상 지베르니에 머무르고 있소." 지베르니 정원은 모네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다.

우리 존재의 근원적 열망과 향수를 잠재울 영원한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이 여정자인 이유는 존재의 중심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의 중심을 외부에서 찾았다. 실로 우리 존재의 중심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사피엔스가 사피엔스된 것은 사피엔스가 외부 세계를 지배한 데서 온 것이 아니라 내면의 발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성취, 내일의 안전을 찾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열망과 향수를 잠재울 영원한 고향은 영혼의 내면세계에 있다. 그곳이 참된 자기를 만나는 곳이고, 초월자를 만나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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