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고스톱과 포커게임

권혁성 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권혁성 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12종류 48장으로 이뤄진 화투는 한때 왜색을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면치 못했다. 화투는 일본의 카드놀이인 하나후다(花札)가 19세기경 조선으로 전해져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왜색을 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56년 10월 29일 자 경향신문에 게재된 광고 하나가 이색적이다. 오복실업주식회사 명의로 게재된 광고에는 "왜색화투(倭色花鬪)는 정부정책(政府政策)에 의하여 말소폐지(抹消廢止)되어야 하고 그 대체로 미장특허(美匠特許) 제323호 새 화투"라고 선전하고 있다. 일찍이 왜색을 떨쳐내려는 노력과 함께 화투의 그림을 디자인으로 등록받은 사실이 이채롭다. 화투를 이용한 놀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칭 고스톱이라 불리는 게임이 가장 대중적이다.

포커는 영어권 국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한다. 미국에서는 1850년 이후 '내셔널 게임'(國技·국기)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성행하기 시작했다. 다른 카드게임이 모두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진 반면, 포커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유일한 놀이이다. 20세기 초에 마침내 포커게임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게임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바둑이나 체스는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 상태로 진행된다. 반면에 고스톱과 포커는 상대에게 자신의 패를 감춘 상태로 진행되기에 심리전이 상당히 중요한 게임이다.

게임 진행 규칙을 들여다보면 무척 재미있는 사실이 대비된다. 고스톱은 특정 점수를 낸 자가 중간에 게임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추가 점수를 얻기 위해 소위 '고'(go)를 하면 이때부터 피아의 구별은 일대다(一對多)의 대결 구도가 된다. 가진 자에 대해 다수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셈이다. 대신 한번 게임에 참여하면 중간에 그만둘 수 없다. 또한 '박'이라 해 특정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곱절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약자는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보장하되 의무를 다하지 못함에 대한 응징이 명확하다.

반면에 포커는 언제든지 게임을 포기할 수 있다.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는다. 철저히 혼자 판단하며 승패의 원인과 결과 또한 자신에게만 국한된다. 동종의 카드게임인데 도드라지는 규칙의 차이가 단순한 게임 규칙의 차이로만 보이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방역의 1차 성공 여부는 마스크 착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방역의 효과가 명백함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경우 여전히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주위를 의식하고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우리는 주변 이웃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흔쾌히 불편함을 감수한다. 마스크 미착용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극히 이기적 행동의 산물이라는 관점이다. 공동체 의식이 기초한 까닭이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각자의 관념이 우선이다. 개성을 중시하기에 마스크 착용과 관련한 지침이나 공동체 의식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상대에게 종속되지 않으며 감염의 원인과 결과 또한 자신이 수용하면 그만이다. 포커 규칙이 만들어 낸 게임의 운영이나 결과와 흡사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일상인 우리에게도 지적받아 마땅한 현안이 있다. 부동산 시장이다. 현 정권 들어 스물세 번이나 대책을 내놓았으나 소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정책 실패라는 여론도 존재한다. 정책 실패라면 그 대가가 상당히 치명적이다. 다주택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전 국민적 공분과 함께 대통령의 임기 전 레임덕 현상까지 거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절대다수의 국민이 패배자가 돼 버린 것이다. 현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철학이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책 입안자의 잘못된 부동산 철학만을 탓할 것인가 싶다.

우리 자신의 부동산 철학은 어떠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인 이익 추구는 마땅하다. 그러나 합법적 이익 추구 대상이 유독 주택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 결과가 얼마나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공동체 의식은 공평한 위기 앞에서만 발휘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그만인 것이 우리의 민낯인가 싶기도 하다. 정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어떠한 형태로든 약자에 대한 배려의 여지를 남겨 놓은 고스톱 게임의 규칙이 한낱 오락의 규칙으로만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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