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권언유착과 공작정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제공)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제공)

"물론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이유야 수천 가지가 넘지. 그런데 막상 대려고 하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 독일에서 들었던 노래 가사다. 요즘 '검찰 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가사가 떠오른다. 나도 검찰 개혁에 찬성했다. 아니, 지금도 찬성한다. 검찰을 개혁해야 할 이유도 수없이 많다. 근데 정작 대려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왜 그럴까?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대통령은 그에게 "산 권력에도 칼을 대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이 빈말이 되는 데에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정작 그의 검찰의 칼이 조국을 향하자, 당정청은 물론이고 어용 언론과 어용 지식인, 광신적 지지자들이 일제히 검찰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들의 '검찰 개혁'은 애초에 공정이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검찰총장을 향한 공세는 파상적이었다. 1차 공격은 정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들과 한겨레신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검찰총장에게 성 접대의 누명을 씌우려 했다. 본인을 향한 공격이 불발로 끝나니, 주변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2차 공격은 그의 장모를 향했고, 한창 진행 중인 3차 공격은 그의 측근을 향하고 있다.

발단은 채널A 기자의 무리한 취재였다. 그가 빌미를 제공하자, 그들은 곧바로 '윤 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와 짜고 수감 중인 이철 씨를 협박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캐내어 4·15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MBC의 함정취재를 활용해 이 허구를 현실로 만들려 했다.

채널A 기자가 유시민을 낚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한 검사장은 "유시민에는 관심 없다. 신라젠 사건은 다중 피해가 발생한 서민·민생 금융범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반박한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이 발언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검사장은 애초에 유시민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총선 얘기도 마찬가지다. 녹취록을 보면 총선 얘기는 제보자 지모 씨가 꺼낸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미끼를 물지 않고 '선거 전이든 후든 상관 없다'고 대답한다. 기자는 선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검사와 기자가 짜고 유시민의 비리를 캐서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스토리의 골격이 무너진 셈이다. 이 음모론, 누구의 작품일까?

단서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의 SNS에서 찾을 수 있다. 제보자 지모 씨와 채널A 기자가 세 번째 만나던 날, 황희석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최강욱 의원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갑니다"라고 썼다. 이것으로 보아 문제의 음모론이 최강욱-황희석이 "작전"을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게다.

제보자 지모 씨가 거짓말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언론에 나와 자신이 이철 씨의 "오랜 지인"이라고 했으나, 실은 그와 전혀 면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를 이철 씨와 연결시킨 것은 여당 의원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또 지모 씨는 이철 씨가 로비를 한 정치인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철 씨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단다.

문제의 지모 씨는 사기·횡령·협박죄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 또한 처음이 아니다. 조국 사태 때는 언론플레이에 수상한 금융 브로커들을 활용했고, 한명숙 복권운동에도 역시 전과를 가진 이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황당한 것은 사기 전력이 있는 이가 거짓말까지 해가며 연출한 음모론 시나리오가 법무부 장관의 머리에까지 입력됐다는 데에 있다.

진상도 밝혀지기 전에 장관은 사건의 성격을 '검언유착'으로 규정하고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문제의 한 검사장은 이미 좌천되어 쫓겨나 있던 상태이니, 윤석열 총장을 노린 공작이라고 봐야 할 게다. 사상 두 번째로 이루어진 지휘권 발동 사태. 그 시작에는 사기꾼을 동원해 벌인 사기극이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 이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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