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세상의 하루'를 지키는 힘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3.1절인 1일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도심 곳곳에 인적이 끊긴 가운데 한 노부부가 태극기를 손에 든 채 동성로를 걷고 있다. 3.1절인 1일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도심 곳곳에 인적이 끊긴 가운데 한 노부부가 태극기를 손에 든 채 동성로를 걷고 있다.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 들 때까지
어제처럼 하루를 보내지 못하면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변고가 생긴 것

힘든 세상이다.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 걱정하던 그때가 차라리 호시절이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시커먼 수돗물, 원인을 알 수 없는 유독가스, 여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120만t에 달하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사방에서 옥죄어 온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먹는 물이 걱정되면 정수기를 사고 마시는 공기가 나쁘다고 하면 공기청정기를 들여놓는다. 밖에 나갈 땐 KF80 황사마스크를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KF94, KF99를 착용한다. 그렇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매우 나쁜 날'에도 출근을 하고 수돗물 파동이 터져도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공기가 나빠 밖에서 운동을 못하면 집에서 이른바 '홈 트레이닝'이라도 한다. 그만큼 일상은 소중하다. 누구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각자의 하루가 모여 세상을 만들고 각자의 하루가 이어져 세상이 계속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일상이 깨지면 세상도 깨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늘 하던 일을 못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어제처럼 하루를 보내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다면 세상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개 전쟁 아니면 질병에서 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가 그토록 아득바득 지켜온 일상이 코로나19에 흔들리고 있다. 늘 하듯이 출근을 못하고 늘 하듯이 쇼핑을 못하며 늘 하듯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서로들 안녕하시라 말은 하지만 속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티를 내진 않는다. 두려운 마음도 꾹꾹 눌러 참는다. 이런 비정상적인 날들이 끝나지 않을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든 버티려 애쓴다.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동료와 이야기할 때도 몇 발짝 떨어져서 하며 점심은 가급적 도시락을 싸 오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손을 자주 씻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또다시 열심히 산다. 바이러스에 밀려나 확 좁아진 영역에서도 어떤 이는 운전을 하고, 어떤 이는 배달을 하며,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서류 더미와 씨름을 하며 각자의 하루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여전히 세상은 계속된다. 그들이 일상의 끈을 부여잡고 놓지 않는 이상 세상은 삐걱대도 멈춰 서지 않는다.

휴일인 1일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동 설치공사가 한창인 국군대구병원에서 간호장교들이 병실을 돌며 의료장비 배치 등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대구시와 국방부는 이곳에 3일까지 303개 병상 규모의 공사를 마친 뒤 자가격리중인 확진 환자 등을 받아 치료할 계획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휴일인 1일 코로나19 환자 치료 병동 설치공사가 한창인 국군대구병원에서 간호장교들이 병실을 돌며 의료장비 배치 등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대구시와 국방부는 이곳에 3일까지 303개 병상 규모의 공사를 마친 뒤 자가격리중인 확진 환자 등을 받아 치료할 계획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박 사장은 벌써부터 다다음 달을 걱정한다. 지금 영업을 못하니 그때 가면 더 어려워질 거란 이야기다. 그에겐 코로나19 못지않게 그것도 무섭다. 어쨌든 월세는 내야 하고 월급날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처져 있던 목소리를 높이며 성을 낸다. 이 판국에 틈만 나면 대통령 비난하고 대구시장 욕하고 정부 관계자들의 말꼬리를 잡아 시비 거는 사람들은 대체 뭐냐는 거다. 하긴, 그건 적군이 앞마당까지 쳐들어왔는데 우리 장수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의 처절한 모습과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대구시장의 얼굴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부르튼 입술이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서울 사는 최모 씨도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다 '문재인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한 예비후보의 사진을 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구사람인 것이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그 역시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 애쓰는 '각자' 중의 한 사람이다.

사실 이들의 말처럼 변고가 생기면 "이건 다 쟤 때문이야"라며 증오를 부추기는 자들은 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갖다 대는 이유가 쉽고 빠르고 간단할수록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를 낳았다. 중국과의 내왕을 제한했을 때, 우리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 섰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이 왜 더 세게 막지 않았냐며 아우성이다. 코로나19를 빌미로 국민혈세를 퍼붓지 말라던 야당대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부를 비난한다. 이웃집에 암 환자가 있다고 해서 그들을 '암 가족'이라고 부르지 않는 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최소한의 양식임에도 여전히 코로나19를 우한폐렴, 대구폐렴이라 부르는 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전열을 흩트러뜨린다. 하지만 역사에서 그들은 이긴 적이 없고 '세상의 하루'를 만드는 그 '각자'들은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버티고 버텨 이길 것이다. 이겨서 빼앗긴 우리의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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