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글루미 선데이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우리말로는 '우울한 일요일'로 번역되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는 1999년 '롤프 슈벨'이라는 감독이 만든 독일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프닝 크레디트와 함께 유람선이 떠다니는 다뉴브강 양안(兩岸)으로 부다페스트 시가지가 펼쳐진다.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와 곳곳의 오래된 건물은 부다페스트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도시임을 알려 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다소 살벌한 도시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교과서에도 실렸던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가 강렬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40년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주인 겸 지배인인 '자보'는 연인인 아름다운 '일로나'와 함께 낮이면 일하고 밤이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피아노를 들여놓으면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모집해 오디션을 보지만 마뜩찮다. 그런데 음울한 분위기의 한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작곡을 했다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모두들 넋이 나간다. 한 때 가수를 꿈꿨던 일로나는 그 남자에게 푹 빠지게 되고 안드라스 역시 한눈에 반해 버린다.

이 영화는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일로나에게 나이가 많고 자상한 자보는 곁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열정적인 청년 안드라스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둘 다 필요한 남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관객의 눈에 여주인공이 부정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 같기도 하고 막무가내 투정을 부리는 막내딸 같아, 난처하지만 얄밉지는 않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든 편인 자보의 '그녀를 완전히 잃느니 일부분이라도 가지겠다' 라고 하는 결정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강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우리는 유독 남녀관계에서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체면이나 명분 혹은 사회적 통념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던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지구상 곳곳에는 아직 일처다부제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영화를 본 후 리뷰를 살펴보던 중,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랑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일편단심 종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세상에 사랑의 위선을 퍼뜨린다' 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다. 여자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엿 볼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랑은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혹은,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의 문제라는 어느 분의 지적은 수긍이 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일로나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지만 둘 다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했던 사랑이었다. 괜찮은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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