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강산(江山)은 둘러두고 보리라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서리 내린 울 밑의 황국화는 소설(小雪)이 지났건만 아직도 절개를 지키려는 듯 꽃이 향기롭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시를 읊조려 본다. 이성계에게 나라를 뺏긴 고려 말의 충신 이곡(李穀)은 정신적으로 기댈 곳 없을 때 찬 기운에 핀 국화로부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계절은 낮이 짧고 밤이 긴 동지로 달린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자연도 사람도 휴식이 길어지며 기운을 얻는다. 농부들은 가을 추수를 곳간에 쌓아두고 안정과 여유를 찾는다. 낮보다 밤이 긴 시간 속에 가족을 살피며 내면이 충만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쪽으로 무한정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달도 차면 기울게 하고 기울기가 극에 달하면 다시 차오르도록 한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면 올라가야 한다.

잘 간다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못 간다고 기죽지 말아야 한다.

늘 그대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한다.'

내가 다니는 보이찻집 주인이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수십 년을 고민하다가 거처를 옮겼다. 남들은 시골에서 대구로 나오는데 이분은 반대로 시골로 갔다. 집 앞 둥근 연못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터를 닦고 축대를 쌓고 집을 새로 지었다. 산 공기와 마시는 차와 커피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수돗물을 계곡물에 견줄 수 없듯이, 도시의 탁한 공기가 시골의 맑은 공기를 따라갈 수 없듯이 더 맑은 산과 물 그리고 공기를 찾아 숲을 찾는다. 산이나 들이나 바닷가에서 마시는 음료나 음식은 집 안에서 먹을 때보다 더욱 맛이 있다. 자연에서 맑은 산소와 햇볕이 음식과 같이할 때 몸이 활성화되므로 침샘을 자극해 맛을 돋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은 이렇게 읊었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초가집 한 채 지어놓고 세상을 다 들여놓았다. 내가 묵을 방 한 칸, 달이 들어올 방 한 칸, 청풍명월(淸風明月) 방 한 칸, 모두 가까이 불러들여 벗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기 자신은 남들이 보는 것처럼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더 들여놓을 데 없는 강산(江山)은 집 밖에 병풍처럼 둘러놓고 보니 남부러운 것 없는 집이다. 20년을 경영하여 왜관 금남리로 떠난 라온커피, 보이찻집 주인과 성향이 비슷하려나?

금강경 야부송에 이런 말이 나온다.

'竹密不防流水過(죽밀불방류수과) 대나무가 아무리 빽빽해도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山高豈碍白雲飛(산고기애백운비) 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떠가는 구름을 막을 수 없다.'

인생과 자연은 물과 구름처럼 막을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집은 초려삼간보다 크고 화려하니 위로받고 이 정권이 하수상하여도 자꾸만 자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어떤 역경이라도 뚫고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네 삶의 흐름이다. 어제의 결과는 오늘에 있고 오늘의 결과는 내일에 있다. 오늘을 성실히 보내야 내일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진리이다.

"산은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가 시멘트로 된 교실이 아니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숲속에서 움텄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맑은 산 공기와 청풍명월 가득한 시골집에서 탈속(脫俗)한 풍류를 그리는 그분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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