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광장으로!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廣場)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다. 쾌적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엔 커피숍, 서점 같은 상가가 있으며 바닥엔 잔디나 붉은 벽돌이 깔려 있을 법하다. 둘레엔 드문드문 벤치가 있고 마로니에나 라일락 또는 배롱나무가 서 있을 법도 하다. 한쪽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다른 쪽엔 청소년을 위한 농구대 하나쯤도 마련되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광장은 우리 시대에 정신적으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우선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이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유롭게 차려입을 수 있지만 풍속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평등하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결국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도 부잣집 아이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늦게 온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기다려야 한다.

둘째, 광장엔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깨어지는 곳에 불화가 생긴다.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시민들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의 순(順)기능으로 인한 정화(淨化) 작용, 그것이 자정 능력이다. 편향된 이념에 중독된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엔 바로 이 자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끝으로,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 이념,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광장에 두 명 이상이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원칙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어긋남이 없도록 신독(愼獨)함에 힘써 자정 능력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위의 조건이 맞지 않는 비민주적 공간, 즉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반칙과 특권은 묵인되며, 자정 능력은 실종되고 없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린 폐쇄적인 공간을 '밀실'(密室)로 규정한다. 밀실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의가 죽어버린 공간이다. 홀로 거(居)해도 바르게 처신하면 그곳은 광장이다. 무리를 지어도 동반 타락하면 그곳은 밀실이 되고 만다.

결국 바람직한 삶은 밀실을 떠나 광장으로 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다. 용기와 지혜로써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고 이웃과 함께 광장에 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몸짓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거하는 곳을 광장으로도, 밀실로도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쓰면 온 누리가 광장이고, 잘못 쓰면 처처(處處)가 밀실인 것이다. 가자! 광장으로! 그곳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너와 내가 공정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자!

전 정부가 '광장의 밀실화'로 탄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현 정부는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은 누릴 대로 누리며 밀실에서 살았던 가정의 가장을 광장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다. 잘못된 인사다. 계속 국민과 역사에 눈감으면 파국을 부른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본 칼럼의 모티브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얻었다. 그러나 광장과 밀실의 개념은 작품 속의 그것들과 다르며 필자가 내린 정의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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