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 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⑫단순함과 소박함으로 영혼을 깨우는 시토(Citeaux) 수도원

 

"단 며칠일지언정 당신 집에 머물고 온 사람을 반기시는 당신의 감미로운 사랑을 맛본 이상, 어떻게 또 여기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시토 수도원의 삶을 그린 미국의 영성가 토마스 머튼의 단상이다. 천병석 교수와 나는 떼제 공동체에서 받은 감동을 가슴에 안은 채 시토(Citeaux) 수도원을 향해 떠났다. 자동차로 디종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1시간쯤 달리자 시토 수도원을 안내하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고속도로를 내려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 넓은 평원 한 가운데, 시토 수도원이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시토 수도원엔 높은 종탑도 거대한 건물도 없었지만, 평화가 머물고 있었다.

시토 수도원엔 높은 종탑도 거대한 건물도 없었지만, 평화가 머물고 있었다. 시토 수도원엔 높은 종탑도 거대한 건물도 없었지만, 평화가 머물고 있었다.

주차장 곁에 있는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치즈나 캔디 등을 파는 가게를 지나자 수도원 정문이 나왔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가로수길 저 멀리서 하얀 옷을 입은 수도사 한 분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도원을 등지고 작은 숲 속을 걸어오는 하얀 수도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고 다가온 그분은 여든도 넘어 보이는 노수도사였다. 비록 등은 굽고, 몸은 쇠약했지만 평온한 얼굴에 눈은 무척 맑았다. 노수도사는 우리에게 육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토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규칙"을 '문자 그대로'(ad apicem litterae) 따르고자 하는 이상에서 출발했다. 이집트 사막 수도생활의 이상을 꿈꾸었던 몰렘의 로버트(Robert of Molesme)는 1098년 3월 21일 알베릭과 스티븐 하딩, 그리고 다른 21명의 수도사들과 함께 디종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숲 속에서 새로운 수도회(Novum Monasterium)를 시작했다. 이곳은 Cistels라 불리는 늪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수도회를 그곳의 이름을 따서 "치스티움"(Cistercium)이라고 불렀다. 독거와 단순함, 그리고 자급자족의 삶을 통해 새로운 수도생활의 이상을 만들어갔던 그들은 12세기 가톨릭교회의 청교도들이었다.

 

교회당 내부.십자가 외에는 어떤 종교적 상징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단순하고 실용적이었다. 교회당 내부.십자가 외에는 어떤 종교적 상징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단순하고 실용적이었다.

 

시토 수도원은 설립자 로버트의 정신과 알베릭의 헌신에 이어 3대 원장인 하딩의 시대에 와서 기틀을 마련했다. 하딩은 '사랑의 헌장'(carta caritatis)을 통해 수도사들의 수도적 삶의 길을 제시했다. 그리고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의 뛰어난 영적 감화력에 힘입어 시토 수도회는 프랑스는 물론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전 유럽에 걸쳐 600여개의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12세기에는 유럽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번성하던 시토회의 열기는 13세기 들어 약화되었고, 14세기의 종교전쟁과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은 수도회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시토 수도회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 수많은 수도원과 회원을 가지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1893년 이후 수도회는 '일반 규정을 따르는 시토 수도회'와 '엄격한 규정을 따르는 시토 수도회', 즉 트라피스트(Trappist) 수도회로 나누어져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는 시토 수도원에 발을 디디면서 많은 상상을 했다. 한 때 이곳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와 그의 어머니가 방문할 정도로 유명했고, 수많은 성인과 복자가 배출된 곳이다. 또한 12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백 명의 시토회 수도원장들이 참사회로 모였던 모 수도원이 아니던가! 우리는 수도원의 규모와 위용, 그리고 위대한 역사를 되새겨 보고 싶었다. 하지만 수도원의 검소한 건물과 정원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그곳에서 거닐고 머무는 동안 이보다 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시토수도원 내부 시토수도원 내부

 

시토 수도원에는 초기의 건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역사를 자랑하는 장서와 도서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원을 가로질러 동쪽을 향하자 끝자락에 수도원 교회가 고즈넉하게 앉아 있었다.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수도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지만 수도사들의 생활공간과 교회는 그대로였다. 교회당 안에는 시토 수도회의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곳에선 로마네스크 건축의 웅장함은 볼 수 없었다. 낮은 천장에 야트막하게 지어진 사각형 구조의 단순한 교회당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당 전면에는 어떤 장식도 찾아 볼 수 없었고, 단지 나무로 만든 소박한 제단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십자가 외에는 어떤 종교적 상징도 거의 사용하지 않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건축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교회당은 우리를 오래도록 머물게 했다. 건물이든 장식이든 '기도'에 방해가 될 만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배제하고자 했던 버나드의 정신이 우리를 영적 세계로 인도한 것일까?

시토 수도원 수도사들의 삶은 그 시작부터 단순하게 기도하고 노동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시토 수도원 수도사들의 삶은 그 시작부터 단순하게 기도하고 노동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시토 수도사들의 삶은 그 시작부터 단순하게 기도하고 노동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수도원 건축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그곳이 '기도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시토 수도원의 엄격함과 단순성, 규칙성의 건축 미학은 프랑스를 넘어 이탈리아와 폴란드 건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시토회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단지 수도사들의 뛰어난 건축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건축을 통해 순수하고 단백하게 하느님을 만나고자 했다. 이러한 시토 수도원 건축의 독특성과 아름다움을 돔 앙드레 루프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토 수도원의 단순함의 정신은 오늘날 바로 이 돌들에 새겨져 있다... 아름다움과 단순함은 그 정신을 산만함으로부터 보존하여 하느님께로 이끈다. 아름다움은 관상으로 이끌고 영원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사이다."

수도원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가로수길 저 멀리서 하얀 옷을 입은 수도사 한 분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수도원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좁은 가로수길 저 멀리서 하얀 옷을 입은 수도사 한 분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시토회 수도사들은 "베네딕트 수도규칙"에 기초하여 침묵 가운데 전통적인 수도공동체의 생활양식에 따라 생활했다. 클뤼니 수도회에 비해 그들의 예배는 간소했지만 생활의 중심은 여전히 예배였다. 첫 기도(Prime) 이후 수도사들은 챕터 하우스에서 수도규칙을 읽으며 자신의 죄와 잘못을 고백했다. 수도사들은 옷을 입은 채 잠을 잤고, 제단에서 성경을 읽는 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했다. 시토 수도사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기도와 노동이 있었다. 그들은 교부들이나 사도들처럼 자신의 노동에 의해 살아가는 것을 진정한 수도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수도원에 노동에 전문화된 평신도 형제들이 있었지만, 수도사들은 결코 노동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추수철이 되면 수도사들은 들로 나가 노동에 참여했다. 그들에게 노동은 단순한 육체적 활동이나 의식주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노동은 기도를 온전하게 하고 기도는 노동을 거룩하게 했다. 기도와 노동은 수도사의 삶을 단순함과 순수함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신적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 무엇보다 시토 수도사들은 노동을 기도로 받아들였다. 어떻게 노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 아래서 손과 발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 일은 곧 기도가 된다.

시토 수도원 전경 시토 수도원 전경

 

천병석 교수와 나는 수도원의 이곳 저곳을 돌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의 온전한 고요와 평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곳이 주는 단순함과 소박함은 누구의 영혼에서 온 것인가? 자연과 건축물이 온전히 하느님께로 수렴되는 이 놀라운 힘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온 것도 아니요, 인간의 뛰어난 재능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영혼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낮은 천장에 야트막하게 지어진 사각형 구조의 단순한 시토 수도원 교회당 내부. 낮은 천장에 야트막하게 지어진 사각형 구조의 단순한 시토 수도원 교회당 내부.

 

시토회의 설립자 로버트의 삶이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는 시토 수도회를 설립하기 이전에 이미 생 미쉘 드 토네르(St. Michel de Tonnerre)의 수도원과 몰렘(Molesme)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했었다. 그 당시 유럽의 수도원은 지상 낙원과 마찬가지였다. 잘 가꾸어진 수도원에는 부와 명예가 가득차 있었다. 수도원은 드넓은 초원과 거대한 건축물, 기념비적 교회와 부속학교를 소유했다. 중세 수도원은 세상 속의 낙원이었다. 수도원이 성취한 위대한 성공이 로버트에게는 벗어나야할 속세였다. 그는 매번 부유하고 안락한 수도원을 탈출하여 유럽의 사막이라 불리는 밀림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스스로 노동을 하며 소박한 집에서 간소한 음식으로 살았다.

시토 수도사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기도'와 '하느님' 자체로 향할 수 있게 한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시토회의 살아 있는 영혼 버나드의 삶에서 나왔다. 버나드는 수련 수도사 시절 1년 동안 수도원 독방에서 홀로 머물렀지만, 그 방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뿐 아니라 그가 제네바 근처 호숫가에서 하루 종일 말을 탔지만, 바로 옆에 호수가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독거하면 그냥 독거를 했고, 말을 타면 그냥 말을 탔던 것이다.

시토 수도원을 방문한 관람객. 시토 수도원을 방문한 관람객.

 

시토 수도원에 머물면서 우리는 찰나였지만 천국에서 누리는 고요와 평화를 맛보았다. 시토 수도사들은 단순하고 담백한 삶 속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시토 수도원은 우리에게 단순할수록 행복하다는 진리를 새삼 느끼게 했다. 나는 이곳에서 월든 호숫가의 작은 오두막 생활을 이야기했던 헨리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말을 떠올렸다. "소위 화려하고 편안한 생활이라는 것은 대부분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발전을 저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이라면 가난한 이보다도 더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야말로 물질과 생명의 본질 사이에 있는 상벽을 없애는 힘이 있다."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유재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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