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준비한다] 이두아 "이제 '낙하산' 소리 듣지 않아 행복"

4·15 총선에서 낙천한 이두아 변호사는 고향인 대구에 뿌리를 박은 뒤 4·15 총선에서 낙천한 이두아 변호사는 고향인 대구에 뿌리를 박은 뒤 "더이상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매일신문DB

경북 의성이 본적인 이두아 변호사는 대구 달서구에서 태어났다. 신흥초, 경화여중·고를 다닌 대구 토박이다. 아버지는 김천여고 등에서 교사를 지냈고, 삼촌 두 명도 지역에서 공직에 있었다. 누가 봐도 대구 출신인 그녀지만 이번 선거 기간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수식어는 '낙하산'이었다.

이 같은 수식어는 그녀가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고 나서부터로 보인다. 그녀는 경화여고 설립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입학 당시 적지 않은 선생님들은 '여자의 신분으로는 공무원이 맞다. 거기(서울 법대) 가지 말고 여성에게 적합한 다른 데로 진학해 지역에서 공무원이나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회유(?)도 받았다. 실제로 당시 서울법대 여대생 18명 가운데 대구 출신이 그녀를 포함해 3명이었으나, 나머지 2명은 사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남성 법관' 이미지가 지배했던 일부 지역 정서 때문이다.

그녀는 "머리 똑똑한 대구 여자애가 생소한 중앙 법조계에 들어가 고생할 것 같아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런 말을 한 것 같다"며 "하지만, 그때 제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서울 서초동 법조계에는 대구 출신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우려와 달리 그녀의 법조 생활은 순탄했다. 탄탄한 인맥과 깔끔한 일 처리 덕분에 사건 의뢰자들이 줄을 이었다. 서초동 전체에서도 수임료 상위에 랭크되는 인기 변호사였다. 그녀의 명성은 방송계까지 알려져 시사프로의 패널로 이어졌고, 일부 식당 주인들은 그녀가 올 때면 사인을 받아 입구에 걸어둘 정도였다. 그런 그의 위상은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입성까지 탄탄질주였다.

그녀는 서울에서 경험을 쌓으면 곧바로 대구에 내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국회에 입성하다 보니 중앙당 업무에 치여 대구로의 이사 예정이 다소 미뤄졌다. 19대 국회 불출마한 뒤엔 내구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려 했으나, 이번엔 어머니의 암 투병이 발목을 잡았다. 서울 삼성병원에서 수 차례나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그녀가 서울에서 모시며 병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에서도 낙천 후 곧바로 대구에 둥지를 틀지 못했던 이유도 어머니의 투병이었다. 미래통합당 경선에서 떨어진 그녀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수술을 권하면서 잠시 서울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미 노환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했다. 긴 설득이 소용없게 돼서야, 그녀는 지체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로 내려왔다.

달서구 법조타운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으나 아직 변변한 간판을 달지 못했다. '길일을 받아 제대로 개소식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요청 때문에 '길일'을 기다리고 있다.

수입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수임료 자체도 그렇지만 일면식 있는 주민 간 수임이면 '면이 받쳐서' 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가 비례대표에 입성한 것만 봐도 여성으로서, 또 대구경북 출신으로서 일종의 특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받은 혜택에 보은할 차례입니다. 항상 그리던 대구 생활이 이제야 실현돼서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더이상 낙하산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현실은 더욱 기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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