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합창을 잘 만드는' 전효숙 대구코랄 음악감독

합창단 만들고 3곳 무료 지휘 봉사…"일상 되찾으면 다·시·합·창·합·시·다"
"코로나19로 잠시 멈춰섰지만 온택트 공연 준비하며 클래식 대중화 고민"

코로나19로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봄날 같기만 할 것 같던 인생이었다 할지라도. 하지만 고통 앞에 좌절하고만 있을 텐가. C'est la vie!,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다. 시련을 딛고 일어나 사회적 가치를 전하는 우리 곁의 인플루언서(influencer)들을 만나보자.

전효숙 대구코랄 음악감독 겸 지휘자가 피아노를 치며 단원들과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전효숙 대구코랄 음악감독 겸 지휘자가 피아노를 치며 단원들과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어릴 적부터 노래는 좋아했어요. 고향 경산에서 대구까지 시외버스 타고 다니며 어린이합창단 활동도 열심히 했죠. 하지만 음악가가 꿈은 아니었습니다. 고 3때 덜컥 폐결핵이 찾아오면서 취미가 직업이 된 셈이죠."

합창단 '대구코랄'을 이끄는 전효숙(64) 음악감독에게 대학 신입생 시절 추억은 별로 없다. 비활동성이긴 했지만 전염병을 앓았던 탓에 학교에 자주 갈 수 없었다. 캠퍼스의 낭만을 경험하지 못해 '미개봉 중고'란 자조가 나오는 요즘 20학번과 비슷한 처지였다.

완치 판정은 4학년 때 받았다. 곧바로 유학 준비에 들어갔다. 독일 서부 자르브뤼켄 시에 있는 자알란트 국립음대를 선택한 것은 등록금이 공짜여서였다.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죠. 대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마다 현지인들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많이 느꼈더랬습니다. 박사후연구원(포닥)이었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옮긴 뒤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요."

20년 타향살이를 마치고 2002년 귀국한 뒤 온기 넘치는 사회 만들기에 몰두해온 데엔 그런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주변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만큼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이동통신사가 청소년합창단을 만들고 음악감독을 찾는다길래 냉큼 지원했습니다. 형편 어려운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 공감했거든요. 대구 서울을 6년 동안 오가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이후 대학 강단에 서면서 여러 합창단의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2012년 자신만의 합창단을 만들었다. 서울 중심에서 탈피, 한국 근대 문화사의 선구자였던 대구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는 욕심에서였다. 아마추어 성악가 40여 명이 뜻을 같이 했다.

"정기연주회 주제가 2013년 '하이든과 대구', 2014년 '대구로의 여행', 2015년 '고향의 노래'였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엔 '아, 그날이 오면'이란 주제로 민족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여 함께 불렀습니다. 대구가 낳은 가객 고(故) 김광석의 노래들도 관객 호응이 뜨거웠죠."

그는 '합창을 잘 만드는 여자'다. 대구코랄 외에 모교 신명고등학교 동문합창단인 'SM코러스청라', 60세 이상 남성 어르신들로 구성된 '합창단 은빛메아리' 지휘도 맡고 있다. 그런 그의 합창 예찬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합창은 인생과 닮았습니다.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등 다양한 성부(聲部)가 하모니를 이루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잖아요. 합창은 중년들의 우울증 치유에도 최고예요. 고생 고생 끝에 공연을 마친 뒤 느끼는 성취감, 자존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저희 공연이 매번 만석을 이루는 비밀(?) 역시 엄마 아빠 며느리 사위를 응원하는 가족들이죠."

그는 노래 실력이 합창단 가입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귀띔했다. 신입 단원을 뽑을 때 성악 전공자에게는 꼭 인터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40년 합창 지휘의 노하우다.

"처음엔 저도 실력 뛰어난 사람 위주로 합창단을 꾸려야 편했는데 살아보니 노래 솜씨가 중간쯤에 속하는 40%가 가장 중요하더군요. 동호인인 저희가 세계 최고 합창단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행복한 마음으로, 감동을 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코로나19는 그에게도 큰 시련이다. 월급 한푼 받지 않고 매주 3개 합창단 단원 160여 명과 동고동락해오던 삶이 멈춰섰다. 거의 매년 진행해 온 해외 연주회는 언감생심이다.

"물론 답답하죠. 하지만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했던 제 인생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에 유튜브 제작도 배웠고요. 온라인을 통해 대면하는 온택트 시대는 클래식이 대중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라이벌은 요즘 인기 절정을 누리는 트로트예요. 그날이 오면, 거꾸로 읽어도 같은 말, 다·시·합·창·합·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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