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종교칼럼] 신불의 꽃 백련(白蓮)이 피다.

[종교칼럼] 신불의 꽃 백련(白蓮)이 피다.

연꽃이 피는 7월이다. 백련이 피는 연밭을 산책하며 향기를 듣는다.꽃 중에 가장 크고 향기로운 꽃이 연꽃이다. 전국의 연지(蓮池)는 백련과 홍련의 출렁임 속에 많은 사람들과 차인(茶人)들을 설레게 한다. 연(蓮)과 함께하는 축제와 차회(茶會)가 열린다. 연과 함께 있노라면 연잎의 아름다운 자태와 연꽃의 우아함, 향기에 취해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한다.연꽃은 군자의 상징으로 동서양의 많은 문인, 사상가, 철인들이 서정을 붙이고 송가를 불러 애찬했다. 무릇 연꽃 피는 계절은 예나 지금이나 차인들과 문인, 학자, 예술인들을 집 안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 것 같다.인도에서는 백련(白蓮)을 '신(神)의 어머니'라고 하여 '라지브'라고 한다. 인도 최고 경전인 리그베다의 '마하파라다'(mahabharata)에 따르면 태초의 세상에는 물만 있었다. 그 물속에서 비슈누(visunu) 신이 나타나 세계를 창조할 때 그의 배꼽에서 흰 연꽃이 피어났다. 그 꽃잎에서 창조의 신 브라만(Brahman)이 탄생하여 세상의 모든 생명들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이유로 인도 사람들은 흰 연꽃을 지구에서 가장 성스러운 꽃으로 추앙한다. 국화로 제정했으며, 경사스러운 행사에 백련을 신불(神佛)에게 올리고 찬탄한다.옛 그리스에서는 연꽃을 영생의 상징으로 보았다. 연꽃이 태양보다 먼저 피고 먼저 지는 것을 보며 태양신이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인 호머는 그의 서사시 '오딧세이'에서 연꽃의 열매를 먹으면 나라도 집도 친구도 모두 잊어버리고 열락(悅樂)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전의 벽과 기둥, 조상(彫像) 주변에 연꽃, 파피루스, 종려 등을 조각하여 모든 예술의 모티브로 이용하였다. 연의 씨앗은 2천 년이 넘어도 발아해서 부활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시경(詩經)에서는 여인을 사모하는 애틋한 마음을 연꽃에 비유했다, 저 유명한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연꽃 피는 날이면 아아! 이내 마음 길을 잃고 헤매니, 내 어찌하리오"라고 노래했다. 도연명과 백낙천은 국화를 사랑하였지만 중국 송나라의 대학자 주돈이는 119자의 문장으로 연을 칭송하는 애련설(愛蓮說)을 지었다."물과 육지의 초목과 꽃 중에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목단을 사랑했는데 나는 홀로 연을 사랑하노라. 진흙에서 나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텅 비어 있고 겉은 곧으며 넝쿨과 가지도 뻗지 아니하고 향기는 널리 풍기어 더욱 청아하며 물 가운데 맑고 깨끗하게 서 있으며 가히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매만질 수는 없다."연꽃은 최대 가치 격인 군자에 비유되었다. 군자가 세속에 처신하면서 악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불교뿐만 아니라 동서양에서도 청빈과 고고함에 비유되어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옛 선인들은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보다도 연꽃을 으뜸으로 칭송하였다. 고대 민속에서 연은 창조, 부활, 염원, 청정, 다산, 장수, 풍요를 상징했다.망월사 백련연지에는 연꽃 봉오리가 수많은 병사가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많이 올라왔다. 일주일 뒤면 하얀 연꽃이 물결을 이룰 것 같다. 재작년 연밭을 넓히기 위해 옆의 땅과 소나무밭을 매입하고 정비하였다. 그곳에 작년 강진 금당지에서 옮겨온 백련 씨앗을 심었다. 금년에는 꽃을 엄청 피울 것 같다. 꽃이 많이 피는 토종 연근 종자로 바꾼 보람이 나타난다. 비로소 사바세계인 예토에 향기롭고 성스러운 극락세계의 연꽃 '푼다라카' 하얀 백련이 피어난다.처렴상정(處染常淨)의 연꽃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맑게 하는 진리를 전한다.세상이 그렇게 맑고 향기롭기를 염원한다. 서정주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2020-07-01 15:16: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의 영혼은 투명해야 한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의 영혼은 투명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어린왕자는 말했다. 광고하시는 분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설득한다. 상업 광고를 만들어 지갑 속 지폐를 꺼낸다. 공익 광고를 만들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돈을 꺼내든 1회용품을 쓰지 않든 설득이 우선이다. 설득이 없다면 성공한 광고도 없다.대구광역시 가정위탁지원센터의 광고 의뢰를 받았다. 위탁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가정을 위탁한다고?' 알고 보니 부모의 돌봄을 못 받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일이었다. 즉, 일정기간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다. 광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부모가 필요한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 준다니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내 자식처럼 돌본다니 말이다. 나 자신이 아이가 되어 보았다. 얼마나 부모가 그리울까? 부모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누구에게 그 애달픈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 마음이 묻어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아이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을 말이다. 그곳은 바로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이라면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았다.나에게도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나에게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그렇게 써내려간 글이다. 별다른 수사법보다 이렇게 담담한 글이 더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 엄마를 그려보았다. 잘생기고 예쁘게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가장 멋진 부모님의 모습을 그렸다.드디어 아이디어 발표일. 광고주는 아니나 다를까 이 시안을 선택했다. 그림일기가 아이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름 뿌듯했다. 우리 팀의 생각이 광고주와 통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렇게 시안을 넘겨드리고 일을 마무리 되는 듯했다.며칠 뒤 센터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시안의 수정 사항에 관련한 전화였다. 광고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정말 별 것 아닌 수정이었는데 그것이 나를 엄청나게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용은 이랬다. 광고에 아빠와 엄마가 떨어져 있으니 편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즉, 이 광고를 보고 편부모 아래의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봐 걱정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보통 광고주를 만나보면 느낌이 있다. 기업에 따라 영혼이 다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광고주의 영혼은 어둡다. 반면, 이런 공익적인 일을 하는 분을 만나면 영혼의 깊이 다르다. 그래서 더 도와드리고 싶다. 이 광고를 보고 혹시나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전화하는 모습이 내겐 큰 감동이었다.동시에 부끄러웠다. 나는 왜 그 아이의 마음을 미리 챙기지 못했을까? 나 자신이 아이가 되어 봤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도 지극히 세일즈의 관점에서 접근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역시 위탁지원센터에 계시는 분들은 영혼이 달랐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광고는 그 따뜻한 마음을 반영했다. 카피는 '나에게도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로 수정되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그랬던가? 광고인이 그렇다. 지구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그것이 광고인의 가장 큰 특권이다. 센터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영혼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광고인은 진심으로 투명한 영혼을 가져야 한다고. 정말 투명해야 광고주의 영혼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 그들과 같은 영혼을 가져야 그 마음을 잘 알릴 수 있다고 말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7-01 15:05:05

[도태우의 새론새평] 5·18 신화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도태우의 새론새평] 5·18 신화를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18 신화의 입구에 ''라는 황석영 작가의 책이 있었다. 사망자 수 2천 명부터 사망 경위까지 여러 세부 항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지만, 5·18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저 책의 영향력은 쓰나미와 마찬가지였다.40년이 지난 오늘, 5·18은 아직도 역사이기를 거부하고 한층 더 신화와 성역으로 치닫고 있다. 1980년대 골방에 숨어 저 책을 읽던 운동권 세대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4·15 총선을 거치며 모든 국가 사회기관을 접수한 양상이다. 그들은 '역사왜곡금지법' '5·18왜곡처벌법'을 통과시키려 한다.양향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폄훼하거나 피해자 및 유가족을 이유 없이 모욕하는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회 이상 재범 시 곧바로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5·18 특별법 개정안'은 인터넷과 출판물에서 5·18을 왜곡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5·18에 대해 조금이라도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은 아우슈비츠 대학살 같은 반인도범죄를 옹호하는 일이기에 처벌되어도 마땅하다고 한다. 정작 국제적인 반인도범죄의 표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 20만 피감금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인권 범죄를 자행하는 김정은에 대해서는 위인맞이 행사를 해도 관용해야 한다.5·18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항의한 평화적 시위와 같이 자유민주화운동의 요소를 분명히 품고 있지만, 좌익 사상범 등 2천700여 명을 수감 중인 광주교도소를 며칠간 무장공격한 것과 같이 자유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는 요소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반란수괴 등의 죄로 무기징역을 확정한 1997년 대법원 판결조차 "3공수여단 11대대 병력이 1980. 5. 21.부터 같은 달 23.까지 광주교도소의 방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무장 시위대로부터 전후 5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았는데, 같은 달 22. 00:40경에는 차량 6대에 분승하여 광주교도소로 접근하여 오는 무장 시위대와 교전하고, 같은 날 09:00경에는 2.5톤 군용트럭에 엘엠지(LMG) 기관총을 탑재한 상태에서 광주교도소 정문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총격을 가하여 오는 무장시위대에 응사"했다고 증거한다.5·18의 심각한 양면성을 무시하고 1995년 '5·18 특별법'을 제정한 이래 우리 사회는 25년간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 '역사 왜곡 금지'를 거쳐 '역사 새로 쓰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4·19나 1987년 6월과 달리 5·18의 성역화는 한국사를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양분하여 지고지순한 5·18 계승 세력 대 악마적 적폐 세력 간의 싸움이란 틀을 고착시킨다. 5·18을 절대화할수록 자유체제 건국과 6·25, 산업화와 평화적인 민주화 이행, 자유통일이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방향이 망각되고, 친일·독재·분단 세력 대 자주·민주·통일 세력 간의 영구한 대립만이 신념화된다.이제 더는 두려움과 움츠러듦으로 자유인의 상식이 가리키는 진실을 덮고 순응할 수는 없다. 1980년대에도 자유롭던 대학가의 정부 비판 대자보 부착이 처벌되는 데서 보듯 이미 우리 사회의 가치 역전과 권력 역전은 지나칠 정도로 진행되었다.'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쳤던 열정을 되살려 일그러진 운동권 공화국의 핵심에 놓인 거짓 신화와 성역화를 거부할 때다. 5·18은 자유민주화운동을 분명히 포함하지만 그에 포함될 수 없는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를 지적하는 자를 역사 왜곡으로 처벌할 때,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자유헌정에 반하는 요소를 성역화하여, 이것을 비판하는 자를 국가가 처벌한다면, 이미 그 국가는 자유체제이기를 멈추고 다른 체제로 변성된 것과 마찬가지이다.5·18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화화와 성역화의 방향에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순을 품은 삶의 역사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진정한 국민 통합, 생명의 역사, 축복의 통로가 시작될 것이다.

2020-07-01 15:04:53

[매일춘추] 대구는  ‘사람을 살리는’ 도시다 / 서성희

[매일춘추] 대구는 ‘사람을 살리는’ 도시다 / 서성희

위기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잘못 대처할 경우 개인이나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이나 피해를 주는 '중대한 위협'이 된다. 그러나 대개 위기를 이야기하면 가장 많은 반응 중 하나는 설마 우리한테 그런 일이 생기겠어! 하는 태도다. 올 2월 초까지만 해도 "설마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대구까지 전파되겠어!"라며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는 단숨에 강을 건너와 대구의 일상적인 업무를 마비시키고, 미래 활동을 어렵게 만들어 도시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위기에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거다. 그러나 모든 위기를 예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위기가 다가왔을 때, 위기를 감지하고 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막아 평상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시키는 '위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를 실패할 경우 인명 피해, 재산상 손실, 이미지 손실을 입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안정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한국전쟁이라는 위기에 대처하는 마을 사람들의 잘못된 태도로 전통마을이 붕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언례(이혜숙)는 어린아이 둘을 홀로 키우며 사는 과부다.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잘 지낸다. 그러다 전쟁이 난 어느 날 밤 미군에게 겁탈을 당한다. 그 일이 일어난 뒤, 마을 주민들은 언례를 따돌리는 정신적인 폭력에 허드레 일감도 주지 않는 경제적인 폭력까지 가한다. 결국 언례는 성폭력이라는 직접적인 계기가 아니라, 마을에서 소외되는 정신적 압박과 굶주림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마을을 붕괴시키는 불씨가 된다. 결국 '사람을 저버린' 마을 공동체는 무너진다.이 세상에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나 조직은 없다. 그리고 위기관리에 공짜는 없다. 부단한 연구와 관찰, 대비가 요구된다. 위기관리에서 최선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 차선책은 위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건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사람을 살리고 보호하는 일에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대구는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그 어떤 도시보다 슬기롭게 잘 관리해오고 있다.무엇보다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먼저 살피는 나눔과 온정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여기에 모든 생업이 멈춘 예술인에 대한 배려까지 놓치지 않았다.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다. 위기는 위험을 동반하지만, 잘 관리하면 전화위복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계기로, 대구 하면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도시, 위기관리 시스템이 잘 작동되는 도시라는 이미지 창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위기는 곧 기회다.

2020-07-01 14:27:05

[취재현장] 참외 농민 위한 시설 참외 농민이 발 벗고 나서야

[취재현장] 참외 농민 위한 시설 참외 농민이 발 벗고 나서야

성주참외에 있어 2020년은 아주 특별한 해다. 올해는 성주참외가 본격 재배된 지 50주년인 동시에 미래 50년을 준비해야 하는 원년이다. 그만큼 정리해야 할 일도 많고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찮다.성주참외는 반세기 동안 많은 것을 이뤘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 이상을 점유하면서 명품 반열에 올라섰고, 단일 품목으로 조수입(비용 포함 수익) 5천억원을 돌파했다. 특히 농특산물 중 거의 유일하게 서울 청량리나 가락시장이 아닌 산지유통센터에서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성주참외가 지금의 위상을 자랑하는 것은 농민, 행정기관, 농협 등이 힘을 모아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가능했다. 성주참외는 2008년 '마니다라 참외'로 큰 피해를 입었고, 2014년에는 특정 종묘 회사의 일부 품종을 사용한 참외 농가들이 농사를 망쳤다. 그나마 작황이 괜찮은 농가도 출하 성수기 때 터진 세월호 사고로 판로를 잃었다.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도 성주참외에 큰 타격이 됐다. 사드 배치 당시 성주참외가 사드 전자파에 오염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하고 무책임한 말이 횡행하면서 민심은 더욱 흉흉해졌고 참외값은 곤두박질쳤다.다행히 올해는 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다.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외국 과일 수입이 줄면서 성주참외는 높은 가격이 이어져 상대적으로 덕을 봤다.하지만 코로나19로 성주참외 미래 50년 준비에는 차질이 생겼다. 올해 성주군은 '성주참외 50년사'를 단단히 기념할 작정이었다. 올 초 이병환 성주군수는 성주참외 50년사 준비추진위원회에서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의 성주 농업을 되짚어보고, 2020년을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원년으로 삼아 성주 미래 50년을 준비하겠다"면서 올해를 성주참외 역사의 터닝포인트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그렇지만 20·30대 젊은 층이 원하고, 미래 소비층이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 작업은 착수 보고회만 열렸을 뿐이다.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성주참외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계획했던 전국 순회 행사는 무산됐다.더 큰 문제는 아직도 비상품화농산물자원화센터(이하 자원화센터) 설치 부지를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원화센터는 저급 참외 등 비상품화 농산물을 퇴·액비, 기능성 원료 등으로 자원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설이다. 다른 것들이야 코로나19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부지 선정 작업이 무산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참외 농민도 자원화센터가 명품 성주참외 품질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시설임을 알지만 내 집 앞, 내 동네 앞은 안 된다고 하고 있다.성주군은 2008년부터 저급 참외 유통 근절을 통한 가격 안정을 위해 저급 참외를 수매하고 있으나 처리 물량 한계로 연간 저급 참외 발생량 일부를 수매하는 데 그치고 있다. 수매하지 못한 저급 참외는 논·밭두렁에 방치돼 환경 오염은 물론 명품 성주참외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자원화센터가 얼마나 시급한 사안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자원화센터 설치로 가장 큰 덕을 보는 쪽도, 설치되지 못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쪽도 모두 농민이다. 사업비까지 확보된 사업이 부지 문제로 차일피일하면서 성주참외 명성이 위협받고 있다. 명품 성주참외는 반세기 노력으로 이뤘지만 그 위상을 잃는 것은 반나절이면 족하다. 누구보다 참외 농민이 나서서 "내 집 앞, 내 동네 앞에 자원화센터를 설치하라"고 외쳐야 한다.

2020-07-01 06:30:00

[경제칼럼] 부동산 정책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경제칼럼] 부동산 정책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모래집을 지으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노래를 부르며 놀았었다. 새집을 달라는 이유도 모르고 그냥 아이들과 함께 따라 불렀다. 그 새집 마련이 최근 왜 이리 힘들게 되었는지 그 당시 노래가 문득 떠오른다. 서민들의 꿈은 내 몸을 뉠 수 있는 나만의 집을 갖는 것이다. 평생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독주택이 주된 거주 수단이었던 시절, 집 앞에 이름을 새긴 문패를 다는 것은 꿈이고 집안 행사였다.꿈이자 동요의 대상이었던 부동산에 시장 왜곡이 발생하고, 서민들의 거주가 불안정해지자 현 정부 정책의 주된 대상이 됐다.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 21번의 부동산 대책이라고 하니 참 많이도 했구나 싶다.대한민국은 고유의 '전세'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기면 집을 빌려주는 우리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최근 반 전세, 월세가 증가하고 있지만 전세가 우리에게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전세가격이 상승해 주택가격과의 차이가 좁혀지고, 상대적으로 시가의 20~30% 적은 돈으로 전세 보증금을 안고 주택을 구입하는 이른바 갭 투자가 태동해 시장에서 유행하게 된 것이다.전세(임대차)제도는 서민들에게 낮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에 갭 투자에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여러 사례에서 보여 주고 있다. 편리함과 독창적인 전세제도가 갭 투자로 인해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상황이 이러하자 정부와 국회는 임대차보호 3법이라는 강력한 정책적 수단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이 임차인 보호에 추가해 전월세 거래신고제, 세입자가 원하는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인상을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등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개인의 사유 재산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반론 등 현재 장점과 단점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전세 제도 자체가 우리만의 고유한 제도이다 보니 전 세계의 주거 안정을 위한 케이스와 비교해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한국은행의 최근 금융안전보고서(2020년 6월)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계·기업의 빚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었다.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은 201.1%로 처음으로 200%를 돌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결과라고 보여지나 결과적으로 소득인 GDP는 하락세인데 가계와 기업의 빚은 늘어나고 있다.더군다나 전세보증금은 개인 간 거래여서 은행을 통하지 않는 경우 정부의 가계부채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숨은 가계 빚이 대규모로 있는 것이다. 작년 말 기준 750조원에서 8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집주인이 전세를 놓는 경우 사실상 빚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새로운 신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복적인 갭 투자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집주인의 보증금 부채를 금융 부채로 평가해 관리해야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이라는 거품을 제거하고 진정한 안정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현재 부동산 시장에 코로나 불황으로 인한 저금리로 대규모 유동성이 공급되는 상황에서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결국 땜질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시장에 전세를 안고 여러 주택을 구입하는 투기 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집주인인 임대인의 보증금 부채를 차등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민간 부문의 금융 부채로 평가해 관리해야 한다. 넘쳐나는 유동성 관리가 부동산 시장의 기본에 충실한 장기 대책이라 생각한다.정부뿐만 아니라 무주택자, 1주택자 등 실수요자들도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내린 결정은 시장을 왜곡하게 되고, 결국 투기에 이용당하고 말 것이다.경제에서 심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동학개미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지수 하락 후 상승이라는 이전의 경험에서 코로나로 인한 폭락장의 큰 하락과 붕괴를 막았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고 빠른 안정을 가져온 사례이고, 심리전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일단 평가하고자 한다.부동산 시장 참여자의 심리는 신중하게 결정된 정부 정책을 유지하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기본과 원리를 준수할 때 유지된다. 무조건 수요를 차단하고 공급을 조정하며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과 결정만으로는 투기와 시장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2020-06-30 16:01:30

[매일춘추] 인성교육진흥법, 그 후

[매일춘추] 인성교육진흥법, 그 후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15년 7월부터 시행된 '인성교육진흥법' 제1조(목적)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 1학기 강의 참고용으로 찾아봤더니 여전히 시행 중이었다. 인성을 '세계 최초'라는 법으로 함양하겠다는 과감한(!) 발상에 지금도 놀란다. 과문 탓인지 이 법이 국민의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 함양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법이 인간의 격까지 높일 수 있다고 믿는 풍토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진 이유다. 국민의 품격을 근본적으로 높일 방도는 없는가.독문학도로서 필자는 200여 년 전 괴테와 실러의 독일 고전주의가 내세운 '인간의 미적 교육'을 독문학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인류사의 찬란한 일출"(헤겔)에 독일 지식인들도 열광했다. 그러나 혁명이 유혈참극으로 화하자 열광은 혐오로 변한다. 늦어도 '죄인 500명이 죄 없는 50만 명을 구한다"는 인민재판식 선동에 따라 며칠 만에 천 수백 명의 목이 잘려 나간 1792년 '9월학살' 이후 괴테와 실러는 '독일적인' 사회개혁 방법론을 심각하게 고민한다."모든 계몽은 인간의 성격에서 나온다. 정치 영역의 개선도 개인의 성격을 고귀하게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795년 실러의 '인간의 미적교육론' 핵심 구절이다. 개인의 성격, 곧 인성이 사회발전의 출발점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개인의 성격을 어떻게 고귀하게 만든다는 것인가? '아름다운 예술'을 통해서였다. "아름다운 예술이야말로 깨끗하고 순수한 마지막 샘물"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인간의 의식을 서서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유독 독일 사회가 문학과 예술을 통한 인성의 고양을 중시하게 된 배경이다. 독일 사회의 보수성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보수성은 사회적 안정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독일에는 현재 38개 국립극장, 28개 주립극장, 92개 시립극장이 경쟁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매년 4천만 명 이상이 극장을 찾아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을 즐긴다. 놀라운 것은 극장 운영자금이다. 미국은 개인이나 사기업에, 영국은 복권판매 수익금 등에 의존하지만, 독일은 대부분 공공예산이다. 정신문화를 국가와 공공기관이 보존해야 한다는 철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덕이다.언필칭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K팝 문화강국임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흔쾌히 선진국 반열에 든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제도로 국민의식을 조금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거기에는 국민의 품격이 국가 이미지로 이어지고, 국가 이미지는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자리 잡을 틈이 없다. 필자는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법이 아닌 문화예술로 승부하는 독일 문화정책의 느림의 미학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몸에는 역시 슬로푸드가 좋다.

2020-06-30 14:41:28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버뮤다의 흑인 노예 사라 바세트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버뮤다의 흑인 노예 사라 바세트

숨을 쉴 수 없어요! 무릎에 목이 눌렸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는 이 말을 반복해서 외쳤지만,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눌렀다. 미국에서 경찰의 폭력이나 인종 차별에 관한 사회적 문제들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었던 일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우울한 가운데 일어난 이번 일은 엄청난 후유증을 낳고 있다. 분노한 흑인들을 중심으로 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가 일어났고 일부는 폭동화되고 있다.18세기 영국 식민지였던 서인도제도의 버뮤다섬에 사라 바세트라는 할머니가 살았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뮤라토 혈통이었는데, 당시 흑인들과 뮤라토인 대부분은 지배층 백인들의 노예로 살았다. 그녀도 백인의 노예였는데, 주인은 나이가 많아지자 값어치가 없다며 그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여 노예에서 풀려나 궁색하게 살고 있었다. 1730년 백인인 포스터 부부와 그들의 하녀가 갑자기 아팠는데, 여러 치료에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녀가 집에서 숨겨둔 독극물을 찾았다며 경찰에 신고하였다. 독극물을 숨겨두었던 범인을 찾는 조사가 시작되었고, 이 집의 노예였던 바세트의 손녀 벡크가 취조를 못 견디며 할머니가 그녀에게 독극물을 투여시켰다고 증언하였다. 할머니는 강하게 무고를 주장하였으나, 교구의 마녀 재판은 독극물에 의한 살인미수죄로 화형 판결을 내렸다.그녀는 매우 더웠던 6월 21일 버뮤다 해밀턴 항구의 크로우 거리에서 화형되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평온하였고, 유머를 잃지 않았다. 화형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자기보다 앞서가는 군중들에게 "그렇게 빨리 서둘러 갈 필요가 없네. 내가 거기에 다다를 때까지는, 아무 볼 것도 없어"라고 했다.전설에는 그날 그녀를 불태웠던 장작불이 꺼진 뒤, 잿더미에서 보라색 '버뮤다 신세계 붓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처형 전 "내가 죽은 자리에는 무죄를 증명하는 증거가 나타날 것"이라 했는데, 버뮤다인들은 불덩이가 꺼지자 활짝 핀 보라색 꽃이 나타난 것이라 믿었다. 버뮤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다. 평생을 노예로 살았으나, 나이 들어 주인에게서 버려진 후 누명을 쓰고 화형당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버뮤다 민중들에게 구전되었다. 희망도 없이 살던 이 섬의 흑인 노예들은 할머니를 통하여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았고, 마침내 노예 해방 운동을 위해 봉기하게 된다.버뮤다섬 해밀턴시에는 양손이 묶인 채로 화형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당당한 최후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그러나 작은 청동 종 속의 그녀는 다른 모습이다. 구부러진 허리의 초췌한 늙은 노예 할머니의 모습이다. 공식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바세트의 후예 미국 흑인들은 이 종이 들려주는 무거운 소리로 그녀와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2020-06-29 17:00:00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숙청의 역사. 태종과 문재인,정몽주와 윤석열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숙청의 역사. 태종과 문재인,정몽주와 윤석열

◆정릉…형제 참살서울 정릉은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자 조선 초대 중전 신덕왕후 강씨의 묘다. 개성 권문세족 강씨는 함경도 무장 이성계가 중앙 정치 무대의 실력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한몫 거들었다. 장성한 이성계의 첫 부인 소생 아들들을 제치고 강씨 소생 막내아들 방석이 세자가 된 것은 강씨의 영향력이 반영된 결과다. 1398년 강씨가 죽었을 때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 언저리에 무덤을 조성했다. 경복궁 코앞이자 도성 안에 만든 거대 능에 강씨의 권세가 묻어난다. 하지만, 태종 이방원은 계모 강씨 소생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 형제를 참살하고 권력을 잡았다. 이어 강씨의 능을 도성 밖 오늘날 정릉으로 옮겼다. 맑은 물 흐르는 정릉 계곡 유래다.◆도담삼봉…개국공신 주살정릉 계곡물은 한강으로 흘러든다. 한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단양에 이른다. 도담삼봉. 충주댐이 조성되면서 호수처럼 물이 많아진 도담상봉 절경 앞에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다진 정도전 동상이 우뚝 섰다. 정도전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호를 삼봉으로 지었다. 정도전은 유교를 국가의 기본 철학으로 삼고, 민본사상에 입각한 이상적인 왕도정치,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 내각책임제와 유사한 재상정치 시스템을 고안해 낸 당대 최고의 정치개혁가다. 이성계의 신임 아래 국왕은 국가의 상징이고 역량 있는 재상 중심의 관료 국가를 추진하던 정도전은 왕권 중심 군주 국가를 꿈꾸던 이방원의 권력욕에 무참하게 주살됐다.◆여주…처가 일족 몰살한강 하류 여주로 내려간다. 4대강 사업으로 곱던 금모래 은모래 백사장은 어딜 가고 콘크리트 보와 제방만 흉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주대교 앞 영월루 공원에 '여흥민씨관향비'(驪興閔氏貫鄕碑)가 맞아준다. 여흥은 여주의 옛 고을 명칭이다. 고종 비 명성황후 민씨, 숙종 비로 장희빈에 수난당한 인현왕후 민씨가 여흥 민씨다. 조선 왕가 민씨 중전 계보는 태종의 비이자 세종의 모후인 원경왕후 민씨에서 비롯된다. 민씨가 남편 태종의 형제 참살과 정도전 주살에 이은 권력 장악에 힘을 보태며 날린 부메랑은 친정으로 돌아온다. 태종은 외척 견제를 명분으로 장인 여흥부원군 민제, 처남 민무구 4형제 등 처가 일족을 몰살시켰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을 따르던 세자 양녕대군이 미치지 않으면 제정신이 아닌 거다. 태종은 심지어 아들 충녕대군 이도, 즉 세종의 장인 심온에게도 역시 외척 견제 명분으로 사약을 내렸다.◆개성 선죽교…원칙의 충신 척살선죽교를 찾은 것은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6월이다. 숭양서원에서 황진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서경덕의 풍모를 되새기고, 정몽주의 충절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미었다. 이어 선죽교. 고려 왕건이 개성을 도읍 삼으며 남대문 남쪽에 만든 선죽교는 옛 모습 그대로다. 고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신의정성을 다하던 뛰어난 외교관이자 행정가 정몽주는 1392년 3월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수하 조영무, 조영규 일당의 철퇴를 맞고 쓰러졌다. 그해 여름 고려는 문패를 내리고, 이성계가 새 왕에 올랐다. 태종을 탄생시킨 사실상의 1등 공신 조영무는 태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아 궐 안 여인까지 손댈 정도의 내 세상 권세를 누렸다.◆문재인 정부의 정몽주는?지난 5월 8일 이광재 국회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은… 태종 같다"고 말했다. 섬뜩하다. 어떤 충신을 숙청하며 권력을 공고하게 다지려 할까. 노무현 정부 국정상황실장으로 문재인 정부 국정상황실장 윤건영처럼 막강 권세를 휘두르던 이광재는 노무현 정부 때 밝혀진 주요 뇌물 사건만 썬앤문 1억원, 삼성그룹 6억원 등이다. 이렇게 드시고도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아 출마 권한을 얻어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원주의 국회의원이 됐다. 태종이 정몽주 앞에서 읊었다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부패하더라도 칡덩굴처럼 얽혀서 권력을 공고히 다지면 그뿐인 모양이다. 그 걸림돌이 혹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헌법주의자 윤석열 검찰총장인가? 태종과 그 수하들에게 원칙을 지키는 정몽주가 걸림돌이었듯이 말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표를 던지고도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정당에 칡덩굴로 얽힌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요즘 윤석열에 무지막지한 철퇴를 들이댄다.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정몽주 묘소에 정몽주 어머니의 평시조 시비가 탐방객을 맞는다. 충신 아들에게 들려준 시를 윤석열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까마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가 흰 빛을 시샘할까 걱정되니, 맑은 물에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2020-06-29 17:00:00

[세계의 창]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을 충분히 활용하자

[세계의 창]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을 충분히 활용하자

이제 드디어 한 학기가 마무리되었다. 2020년 1학기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학생들과의 수업이나 학술 활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학생들과의 수업은 동영상 강의로 진행되고, 학술 세미나는 웨비나(webinar) 방식으로 개최됐다. 특히 웨비나의 대중화는 깊은 인상을 나에게 남겨주었다. 웨비나는 웹과 세미나의 합성어인데, 사람들이 현장에 모이지 않고 줌(zoom)과 같은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는 방식이다. 최근 4차례 웨비나에 참석하였다. 웨비나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첫 번째, 지리적인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세미나를 위해서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어떤 장소에 모여야 한다. 그렇지만 웨비나에서는 가상의 망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반드시 특정한 장소에 모일 필요가 없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행사임에도 부산, 대구에서는 물론이고 도쿄, 싱가포르, 홍콩에서도 참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다. 과거에는 불가했던 것이다.두 번째, 참여자들에게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홍콩에서 서울로 사람들이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사무실이나 집에서 가상의 망을 통하여 만남을 가지기 때문에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더 많이 모임에 쉽게 참석할 수 있게 된다.세 번째, 발표자가 발표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청중에게 보다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동 녹화 기능이 있어서 이를 유튜브에 올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된다.네 번째, 새로운 장비를 구입할 필요 없이 기존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하여 인터넷망에 접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이와 같이 많은 장점을 지닌 웨비나 소통 방식을 대구경북 지역의 행사모임에 적용한다면, 아래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재경영덕군향우회 등 군 단위, 도 단위 향우회가 서울에 있다. 향우들이 목표로 하는 고향의 발전에는 고향 주민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5시간씩 차를 타고 고향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행사는 항상 서울 사는 사람들만의 것으로 제한되고 만다. 재경향우회 회원과 고향 주민들 사이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웨비나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개회식을 하면서 군수가 현지에서 웹에 연결하여 축사를 할 수 있다. 향우회 주최 세미나에 군의 공무원이나 주민들이 웹상에 접속하여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역으로 군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에도 서울 향우들이 영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이제는 군민들을 위해 대학이나 문화원이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도 서울 혹은 군 소재지에서 개최가 가능하게 된다. 40명의 신청자를 서울과 군민들로부터 받아 10회의 강좌를 개설한다. 서울에서 2회, 군 소재지에서 2회 그리고 웹상에서 6회로 강좌를 기획하면 된다. 과거에 불가하게 여겨졌던 서울과 군민 간의 인문학 강좌가 가능해질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강사도 가상망을 통해 지방에서 열리는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행사 주최자 입장에서는 강사 섭외가 수월해질 것이다.군 단위 고등학교의 후배들을 지도하기 위한 멘토링 제도의 운영이 쉽지 않다. 이것은 선배들이 고향의 모교에 직접 내려가서 후배들을 만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선배 1명이 후배 5명을 담당하여 수시로 고향의 후배 학생들과 웹상으로 연결, 조언을 해 줄 수 있게 된다.지역 관광 홍보에 줌을 충분히 사용하여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의 관광지에 관심 있는 예비 관광객들을 망에 들어오도록 한 다음, 관광해설자가 그 관광지를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다. 맛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더 쉽게 그 관광지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하게 되면 외국인들도 유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소통 방식의 변화는 우리 대구경북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온라인 화상회의와 같은 비대면 소통 방식을 잘 활용하자.

2020-06-29 16:45:43

[기고] 일자리 창출의 든든한 울타리, 일학습병행

[기고] 일자리 창출의 든든한 울타리, 일학습병행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있다. 공부로 성공하는 사람은 밤에 반딧불을 가져다가도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을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취업난이 지속되면서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이 수십 대 일, 높은 곳은 수백 대 일에 이른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만큼 바늘구멍보다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겨우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이 막상 기업 현장에서는 실무의 벽에 부딪혀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아는 것은 많은 데 비해 경험이 적어 업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해 독일과 스위스에서 시행하고 있는 '도제제도'를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했다.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일학습병행'이다. 기술자와 후계자가 함께 일하며 기술을 전수하는 도제식 교육훈련을 통해 근로자의 직무 능력을 강화하는 제도다.기업은 취업을 원하는 청년을 학습 근로자로 채용해 NCS(국가직무능력표준)를 기반으로 교육훈련을 통해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직접 가르친다. 구직자들은 무의미한 스펙 쌓기 대신 선(先)취업해 학습 근로자가 된 뒤 기업의 훈련에 참여해 실무 능력을 쌓아가는 시스템이다.그러나 일학습병행은 도입 초기에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기업은 업무시간 외에 별도의 시간을 내 학습 근로자를 교육해야 하고, 학습 근로자는 실무를 하면서 따로 교육훈련을 받아야 해 육체적, 심적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법적 근거 없이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기업의 지원과 학습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가 미흡해 지속적인 고용 유지에 한계를 드러냈다. 학습 근로자가 모든 과정을 마치더라도 수료증 외에 별도의 공인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만족도가 낮았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이 시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이다.이에 정부는 2019년 제도 개선 및 보완에 나서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일학습병행법)을 제정, 올해 8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일학습병행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학습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일학습병행법이 제정되기 전 일학습병행에 참여하는 기업의 담당자들은 "사업이 갑작스레 종료돼 지원이 끊기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학습 근로자는 학습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을 법적으로 보장받아 일학습병행으로 인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또한 차별적 처우 금지와 일학습병행 자격 취득 가능, 외부 평가 합격 시 계속 고용 등을 규정함으로써 안정적인 고용과 근로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법률 제정이라는 날개를 달아 학습 근로자에게는 권익 보호를 위한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기업에는 맞춤형 인재 양성의 지름길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이다. 사업 주관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과 수행기관인 대구경북기계협동조합(DGMC)도 제도 확산과 지원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일학습병행이 일자리 미스 매치와 취업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제도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법 시행 원년을 맞아 모두가 행복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2020-06-29 15:30:00

[매일춘추] 천개의 별, 대구문화예술의 리좀(rhizome)

[매일춘추] 천개의 별, 대구문화예술의 리좀(rhizome)

2019년은 일제의 만행과 핍박 속에서 민족이 독립 의지를 갈망하고 표출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아카이브 구축 업무로 대구문학관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거화(巨火)를 찾습니다'전(展)을 통해 3·1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학인들과 그들이 발간한 미발굴된 프린트판 동인지 '거화'를 조명하였다. 이에 앞서 대구미술관에서도 '1919년 3월 1일 날씨 맑음'전(展)으로 지역기관 중 가장 앞서서 3·1 만세운동을 기념 전시하였다. 문학관도 이 전시에 소장 자료와 함께 지역 문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현대기 문화예술인 교류-대구문단을 중심으로' 리좀을 제작하여 협업하였다. 리좀(rhizome)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천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철학적 용어로 지하경(뿌리줄기식물)을 의미한다. 관계도에 있어서 근대성의 표상방식이던 위계질서로 고착된 '수목형' 형태가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전화된 수평적 형태로 경계와 영역을 벗어나 실재와의 접촉을 통해서 만든 복합 다양한 관계망을 말한다. 대구미술관과 대구문학관 기획전시에 활용된 '근현대기 문화예술인 교류' 리좀은 하나하나 장르와 분과별로 분산, 나열되어 있던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을 접점이 되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를 매개로 형성된 관계를 조사, 연구하여 서로 엮어서 구축한 일종의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관계 조망도였다. 조선 말기의 흥선대원군과 석재 서병오, 이여성과 김원봉, 추사 김정희로 시작되어 근대 위창 오세창과 월탄 박종화, 빙허 현진건, 이상화, 간송 전형필의 연결, 독립투사 장진홍과 이육사, 백기만, 유치환에서 현대의 박목월, 구상, 이중섭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중앙을 망라한 예술인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 지역에서 형성된 문화예술의 지형을 새롭게 바라보는 작업이기도 하였다.우선적으로 문학사에서 서로 연관되는 인물이 중심이었지만 이 작업을 진행하며 그 사이사이 이질적인 다방면의 문화예술인들과 각계 인사, 독립투사 등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도 다양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있음을 발견하였으며, 조선말에서부터 근현대 시대의 변혁을 맞이하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문학이 여타의 예술 문화적 장르와 그 궤(軌)를 같이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기, 초토(焦土)에서 피란문화의 르네상스를 맞이한 지역이 대구임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사는 이곳을 중심으로 한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관계 또한 실로 다양하였을 것이다. 대구문화예술의 아카이브 구축에 있어 그 세밀함도 중요하지만, 상호 간의 융화로 새롭게 표현, 발현되는 것이 문화예술임을 감안할 때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등 경계를 넘어 다양한 문화예술인 및 각계 인사를 총망라하여 리좀을 확장해 봄은 어떨까? 이를 바탕으로 지나온 100년 동안 대구라는 토양 위에서 자양분이 되어온 문화예술인들과 문예활동을 올바르게 현창하여 가치확산을 추구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100년, 지역 문화예술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다양한 소재로 활용되어 시민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지역 고유의 크나큰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2020-06-29 14:59:14

[기고] 지방 소멸과 ‘1:8:25:81’ 공식

[기고] 지방 소멸과 ‘1:8:25:81’ 공식

지난해 10월 말 서울에서 지인 10명을 모시고 자칭 '선비길'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토·일 1박 2일로 경북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 영주 무섬마을에서 우리 선비들의 생활상을 본 데 이어 오후에는 소수서원을 찾아 '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라는 소수의 의미를 새기고,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 떨어지는 낙조를 보았다.그리고 순흥 선비촌에서 1박 후, 안동 도산서원으로 가서 아플 때 매화분을 치우게 한 이황 선생의 깨끗함과 절개를 듣고, 석주 이상룡 선생의 임청각 방문으로 여행은 끝났다.여행의 끝에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여행은 이제 단순한 먹거리, 볼거리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더해 정신적인 품격 함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후에 각자 그 코스 그대로 지인들을 데리고 왔었다고 들었다.지금 대한민국의 지방 도시들은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키워드에 몰입해 어떻게든 정주 인구를 늘리기 위한 수많은 정책들이 지자체마다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는 지방의 문제를 한마디로 쉽고 누구나 공감하게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지방의 문제를 정주 인구, 특히 가임 여성 인구의 문제로 좁게 해석하게 함으로써, 지자체들 간 인구 유치 경쟁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더 나아가서는 과연 정주라는 문제가 단위 개별 지자체만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를 만든 일본도 이 단어가 가지는 한계를 깨닫고, 지방의 문제를 정주가 아닌 이동의 시각으로 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1:8:25:81'이라는 공식이 있다.일본의 경우 지방 인구 1인이 감소하면 1년간 그 지역 내에서 순환되는 재화의 감소가 연간 1천250만원이라고 한다. 이것을 만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구 1인을 다시 채우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해외 관광객 8명이 지역에서 1박을, 국내 관광객의 경우는 25명이 1박을, 숙박을 하지 않는다면 국내 관광객 81명이 다녀가면 인구 1인이 줄어든 1천250만원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일본은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전국 11개의 광역관광 주유 루트를 지정, 수도권에 편중된 점(点)으로 된 관광지를 선(線)으로 이어 지방 관광을, 이동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그 결과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2015년 1천974만 명, 2017년 2천869만 명, 2018년 3천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 4천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김난도 교수가 쓴 트렌드 코리아를 보면 경험 소비가 소유보다 소비자의 행복에 더 크게 기여한다고 한다.이동을 통한 경험 소비의 확대가 소유하면서 사는 정주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에 더욱 잘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제 지방 소멸의 문제에 대한 답은 어떻게 이동을 강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수도 있다.지난해 방문했던 지인들도 무섬마을, 소수서원, 부석사를 각각 점으로는 방문했지만 이렇게 하나의 '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박 2일로 돌아본 것은 처음이라고 얘기했었다. 대구경북의 통합 위에, 끊어졌던 점들을 선으로 연결하듯, 광역관광 루트를 만드는 것이 이동을 촉진하기 위한 그 시작일 수 있다.

2020-06-28 16:51:41

[매일춘추] Grand Finale

[매일춘추] Grand Finale

흘러가는 시간을 곱씹을 수 있다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던 6월도 거의 다 끝이 났다. 폭염과 장마가 번갈아 찾아오는 날씨 속에 숱한 야외행사들이 혹여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일쑤였던 6월의 모습은 사라지고 날씨가 이렇게 무더웠던가, 비가 이렇게 자주 왔던가, 이때쯤이면 나는 뭘 하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스쳐갔다. 또한 2020년의 절반이 이렇게 끝이 났구나 하는 아쉬움에 마스크 뒤에 숨어 오늘도 작은 한숨을 뱉어본다. 매일 땀에 절여지고, 늘 마음을 졸이고, 밤 10시쯤이 되어서야 겨우 첫 끼를 뜨던 축제이지만 후련함 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아쉬움이 클수록 마스크가 없이 생활하던 때가 더 그리워진다.딤프(DIMF·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매년 18일간 진행이 된다. 매주 스케줄에 맞춰 쏟아져 들어오는 해외 공연팀들과 국내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들이 함께하는 창작지원작, 각 지자체에서 지역을 대표해 만든 작품들을 선보이는 특별공연 그리고 국내외 대학생들의 펼치는 선의의 경쟁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까지 짧다면 짧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한 18일을 보낸다. 하지만 가장 흥분되고 떨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딤프어워즈가 있는 축제의 마지막 날. 딤프어워즈는 축제 기간 진행되는 전 공연과 함께 지난 1년간 대구지역에서 진행되었던 작품들을 총 망라하여 시상하고 축하하는 진정한 축제의 자리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에는 토니어워즈가 런던 웨스트엔드에는 올리비에 어워즈가 있듯이 한국에는 딤프어워즈가 있다. 물론 국내에도 몇몇 뮤지컬 시상식이 있긴 하지만 현재 가장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시상식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뮤지컬 단일 분야 시상식으로는 독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축제 기간 동안 그리고 지난 1년간 달려온 모든 이들의 땀과 눈물, 노력이 화려한 조명 아래 큰 빛을 발하는 날이 이 딤프어워즈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조명을 잠시 꺼두기로 한다. 다만 전 세계 모든 관객과 뮤지컬 종사자들이 건강하게 다시 만날 날을 온 맘 다해 소망해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려보려 한다.첫 매일춘추 원고를 써내려가던 3개월 전이 떠오른다. 내 안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뮤지컬을 그리고 딤프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그 생각 하나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던 날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쉽고 또 아쉬운 마음들만 무수히 쏟아낸 건 아닌지 하는 뒤늦은 후회도 남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낯설기만 한 팬데믹의 나날들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우리가 기약도 없이 이 상황들을 안고 가야한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들만의 방식을 찾아야겠다. 바이러스가 끝이 없듯이 삶이 계속되는 한 사람과 문화의 관계에도 끝은 없다. 의식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삶에 풍요를 안기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 없는 불확실의 시대에 서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모두가 축배를 드는 딤프어워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2020-06-28 15:30:00

[이른 아침에] ‘볼턴 회고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른 아침에] ‘볼턴 회고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미 양국을 흔들고 있다. '그 일이 일어난 방'이라는 제목처럼 볼턴의 책은 당대에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운 백악관 내부 모습을 폭로하고 있다. 미국 정가는 볼턴의 책이 오는 11월 대선에 미칠 영향력에 관심을 쏟는 듯하다. 우리는 볼턴이 밝힌 북핵 협상 관련 기록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김여정의 언어 폭탄에 이은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군사적 도발 예고, 김정은의 군사 행동 보류 지시 등으로 모두 예민해진 시점에 회고록이 공개되어서일까. 볼턴의 책은 본토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관심 대상이 된 것 같다. 청와대와 전·현직 참모들도 말을 보태고, 정치권과 언론도 한마디씩 거든다.이른바 진보 진영은 볼턴이 일본과 함께 "한반도 통일의 역사적 전환이 될 천재일우의 기회"를 방해한 존재라고 본다. "존 볼턴 스스로 누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눈물겹게 애쓰는지 말하고 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말이다. 반면 소위 보수 진영에 볼턴은 구세주다. 트럼프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한 채 영변 핵시설 파괴와 제재 해제를 교환할 수도 있었던 재앙적 선택을 볼턴이 막았다는 것이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분식평화, 남북 위장평화 쇼와 관련된 여러 의문에 대해" 국정조사라도 하겠다고 한다. 언론의 시각도 진영에 따라 극단으로 나뉜다. 아쉬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정치권과 언론은 늘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초당적 대처를 주문한다. 하지만 실제는 대개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 이번 사안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외교 비사가 공개된 마당에 '토착분단세력' '대국민사기극'으로 상대 진영 비난과 험담만 주고받을 뿐 진지한 성찰과 대안 모색에는 관심이 없다.국제 정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식견과 경험 부족, 참모들의 분열이 초래한 백악관의 외교적 난맥상은 사실 새롭지 않다. 볼턴 회고록은 그에 관한 자세한 실상을 밝힌 것뿐이라는 게 6월 25일 자 미국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평가이다. 포린 폴리시의 분석은 우리 청와대와 진보 진영의 평가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볼턴은 이란 문제와 관련, 미국 국익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익을 앞세운 인물이다. 볼턴은 트럼프가 이란과의 협상 결정을 내리면 즉시 그만두려고 두 줄짜리 사직서를 준비했다고 한다. 반면 북한과의 협상은 큰 불만이 없었다. 볼턴은 김정은의 북한에 대해 '용인할 수 있었다'(can stomach)고 한다. 사실이라면 북핵 협상 실패는 볼턴의 방해보다 '완전한 핵 폐기'라는 미국의 원칙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이를 포함해 볼턴 회고록은 다방면에서 우리에게 큰 과제를 안겼다. 볼턴이 새로운 비밀을 폭로하진 않았어도 미국 외교의 깊숙하고 내밀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외교문서 해제 시에나 알 수 있는 일들을 시차를 두고 중계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자신의 관점에서 본 사실관계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놓고 보수·진보가 진영에 따라 아전인수만 해서는 우리가 얻을 게 없다. 이념을 떠나 모든 전문가들을 모아 상황과 맥락을 덧붙이며 볼턴 회고록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미래의 지침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북핵 해법은 미국에만 맡길 수도 없고, 볼턴만 없으면 만사형통일 수도 없다. 한반도 평화가 우선인 대한민국. 체제 생존이 당면 과제인 북한. 국민과 언론에 비치는 모습이 가장 큰 관심사인 미국 지도자. 그 사이에서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놓고 벌이는 협상이 수월할 리 만무하다. 트럼프가 재선이 되든,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든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피지기라고 백전백승할 수는 없지만 지피지기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최근 북한 도발에 직면하여 민주당과 통합당은 외교안보 연석회의를 가진 바 있다.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 정치권이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볼턴 회고록을 놓고 지피지기를 위한 분석과 대안 모색이 있어야 한다. 북한 핵 문제는 보수·진보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0-06-28 14:39:57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홍도(1745-1806) ‘경작도’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홍도(1745-1806) ‘경작도’

김홍도의 존재를 처음 알리고 출세시킨 그림은 신선도이다. 불로장수의 아이콘인 신선은 생일 축하그림으로 인기가 많아 도화서 화원들도 많이 그렸다. 고전에 충실한 실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중국풍과 달리 기름기가 빠진 김홍도의 18세기 조선풍 신선도는 지금도 여러 점 전한다. 18세기에 유행한 문화 풍조 중에는 명승지를 기행하며 자연과 국토의 현장성을 체험하는 산수 유람이 있었는데 최고의 여행지는 금강산이었다. 직접 답사에 나설 수 없었던 정조는 김홍도를 보내 그림으로 그려 오게 했다. 김홍도가 어명을 받들어 스케치 여행에 나선 것은 44세 때인 1788년이었다. 50여 일 간 금강산과 영동 9군을 여행하며 한국의 자연을 사생한 김홍도는 신선도를 그리던 인물화가를 넘어 조선의 산하를 그리는 산수화가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의 기회를 주며 김홍도를 단련시킨 패트론은 정조였다.강세황이 '파천황(破天荒)'으로 극찬한 김홍도의 그림 솜씨는 34세 때 그린 '행려풍속도' 8폭 병풍그림을 비롯한 풍속화에서 더욱 잘 알 수 있다. 대규모 병풍화로 감상용의 풍속을 그린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김홍도는 파천황이라는 말 그대로 전례가 없던 일을 처음 해냈다. 신선그림처럼 정해진 유형이나 화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겸재 정선이 큰 틀을 마련해 놓은 금강산그림처럼 기댈 언덕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김홍도는 자신이 본 길거리, 나루터, 가게, 원님행차 등의 광경 중에서 그릴거리를 찾아냈다. 소재를 정한 다음 여행객과 장사꾼, 노소의 시골여성, 양반과 동자, 원님과 수행원 등을 하나하나 묘사하고 당시 생활모습까지 배경으로 넣어 조선의 일상을 현실감 나게 그림화 했다. 이에 더해 장면마다 삶의 이야기와 해학까지 담으면서도 감상화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경작도'는 강세황이 북돋운 김홍도의 풍속인물 실력과 정조가 준 기회를 120%로 완성한 실경산수 실력이 결합된 산수풍속화이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고 그런 풍경 속에 마땅히 있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파종을 앞둔 농부는 소에 쟁기를 매어 밭갈이를 하고, 밭 언저리 나무 아래에서는 두 노인이 한담을 나눈다. 까치집과 까치 한 마리가 있는 나무는 농담으로 원근감을 준 짧은 사선을 이리저리 그어 마른나무가지를 표현하는 김홍도 특유의 붓질이고, 먹색의 강약으로 리듬을 주며 삼각형 사각형으로 수북하게 쌓은 자갈돌도 김홍도 고유의 필치이다. 쟁기질하는 농부 옆 삽살개도 소소한 정겨움을 더한다. 김홍도는 조선인의 삶의 한 모습을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장면으로 남겨놓았다.김홍도가 1796년 병진년에 그려 '병진년화첩'으로 불리는 화첩에 들어있는 20점 중 한 점이라 따로 낙관이 없는데 이 화첩을 소장했던 김용진(1878-1968)의 수장인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 찍혀 있어 그의 높은 안목과 이 명작의 소장이력을 알려 준다.

2020-06-28 06:30:00

[광장] 달성(達城)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광장] 달성(達城)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관한 우리 지역 얘기를 끝으로 필자의 칼럼도 마치고자 한다. 1808년 프랑스 정치인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로 해석된다. 로마 공화정이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기원전 202년)을 치르는 동안 최고위직 집정관 13명이 전사했다.1440년 헨리 6세에 의해 설립된 세계적 사학 명문 영국 '이튼 칼리지'(Eton College)가 있다. 교내 운동장 건물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전장에서 죽어간 1천900여 명에 달하는 이튼 칼리지 출신의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두고 있다. 미국도 1950년 한국전쟁에 142명의 장군 아들이 참전하여 3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은 어떤가? 물론 훌륭한 지도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논문 표절, 신분적 갑질, 탈세, 횡령, 성추행,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병역 기피, 불법 증여, 이중 국적 등 종류도 많고 다양하여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쉽지 않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스럽다. 오히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라는 용어가 더 어울린다. 병들고 부패한 귀족이라는 의미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반대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미담(美談)이 들려온다. 오늘은 우리 지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대구읍지』와 『달성 서씨 학유공파보 권상(卷上)』의 기록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세종께서 구계(龜溪) 서침(徐沈) 선생이 살고 있는 달성의 지형이 말(斗)처럼 우묵하고 천혜의 환경을 갖춘 성(城)이므로 국가에 바치고 대신 남산 옛 역터에 더하여 연신지(蓮信池)와 신지(新池 또는 蓮信新池)를 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침 선생은 나라 땅이 모두 국왕의 땅인데, 보상을 받음은 당치 않는다고 하면서 사양했다. 그러자 세종은 그에게 다른 청을 하라고 했다. 이때 서침 선생은 개인의 사사로운 보상보다는 대구 지역민 모두에게 혜택을 주었으면 한다면서 대구 지역민들에게 상환곡 이자를 한 섬당 5되 감해주기를 청했다. 이 말을 들은 세종은 서침의 인간됨을 높이 사고 그의 청을 들어주게 되었다.이로부터 대구 지역민들은 상환곡 이자를 탕감받게 돼 그 보답으로 서침 선생의 공덕을 찬양하여 1665년(현종 6년), 대구의 진산인 연귀산(連龜山·현 제일중학교 교정) 북편에 숭현사(崇賢祠)를 짓고, 1675년(숙종 1년) 서침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다. 서침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대구의 진산 연귀산에 있었던 숭현사는 1718년(숙종 44년) 중구 동산동 지금의 신명고등학교 옆으로 이건하여 '구암(龜巖)서원'이 된다.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24년 유림에서 다시 세웠다. 1995년 지금의 자리인 북구 산격동 연암산 연암공원 내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밖에도 지역에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았다. 경주 최씨 가문을 중심으로 지역 유지들의 노력에 힘입어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한 일, 1778년(정조 2년) 대구 판관 이서가 그의 사재(私財)와 지역민 후원으로 신천에 제방(상동교-수성교)을 쌓아 신천 범람으로부터 대구 사람들의 인명과 재산을 지켜준 일은 참으로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지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체를 통해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지역민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6-26 16:12:26

[춘추칼럼] 코로나 이후

[춘추칼럼] 코로나 이후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졌다. 몇십 년은 뒤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적막하다. 길거리 자동차들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행인들도 줄었다. 어쩐지 그것이 딴 세상에 온 듯 낯설고 서툴다. 공주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의 횟수가 줄었다. 배차 간격이 떠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공주 시외버스 터미널의 표지판을 보았더니 인천공항행 버스 시간표 위에 까만 표시가 모두 붙어 있다. 공항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는 증거다. 그것은 또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얘기다.가치관이 바뀌었다. 이전에 가치 있는 것들이 가치가 없어지고 예전에 가치 없던 것들이 다시금 가치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대단위로 무슨 일인가를 하는 일부터 불가능하다. 무조건 사람 많은 데는 피하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이 되었다.비대면, 비접촉,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는 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는 혼자서 무슨 일인가를 하면서 사는 연습을 해야만 하겠다. 코로나 사태를 건너오면서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절실히 학습해야만 했다. 인생이 외롭고 쓸쓸한데 더욱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게 되었다.이렇게 오프라인의 삶이 위축된 데 비하여 여전히 작동하는 것은 온라인의 삶이다. 절대적인 단절과 고독과 속박의 시대에 온라인마저 막혔다면 어쨌을까? 사람들은 걱정하고 또, 안도한다. 그런대로 답답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의 역할이 컸다. 어쩌면 앞으로는 이 온라인의 영향이 더욱 증대되겠지 싶다.내가 주로 만나거나 소통하는 사람들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한 분과 이야기하다가 조용히 놀란 일이 있다. 그분은 출판사 대표인데 코로나 사태 속에서 자기네 출판사에서는 매일같이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코로나 이전보다 책의 매출이 더 늘었다는 것이다.무슨 일로? 문제는 책의 종류다. 그분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부분 생활실용서인데 그 가운데서도 꽃 기르기, 실내 화단 꾸미기, 반려동물 돌보기와 같은 책들이 그렇게 잘 나가더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달 실내에 갇혀서 사는 동안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종이접기나 종이 오리기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그러니까 디지털과 어울린 아날로그의 삶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 방식은 디지털이되 그 내용은 아날로그로 가야 한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코로나 이후의 우리네 삶의 새로운 국면이요 피하기 어려운 한 방향이 아닌가 싶다.이런 시기를 맞이하여 시 쓰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본다. 비대면 비접촉이 강화되다 보면 인간은 더욱 고립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고독감, 소외감, 우울감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이런 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려 주는 그 무엇일 것이다. 울퉁불퉁해지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고 쓰다듬는 그 어떤 심리적 작용일 것이다.그것이 그러할 때,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 시라는 문학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문장 형식이다. 산문이 작정하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쓰는 글이라면 시는 작정 없이 언뜻 떠오르는 감정을 급하게 쓰는 글이다.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문장이라 하겠다.그러므로 좋은 시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격한 마음을 다스려 준다. 말하자면 마음의 묘약인 셈이다. 만약에 시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만 한다면 시를 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나의 책은 변함없이 팔렸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라인 주문을 통해서였다.코로나 시대. 코로나 이후 시대. 활기차게 자유롭게 살았던 어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대. 정작 그것이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평안해야 한다. 마음의 평안이 행복의 기초다. 그렇게 소중한 마음의 평안을 위해 시인들은 더욱 정성껏 시를 써야 하겠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다.

2020-06-25 15:30:00

[매일춘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매일춘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목만으로도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 오늘은 그 동심을 현대 오페라로 탄생시킨 작곡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진은숙은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접했다. 이후 그는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작곡가 시절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2002)으로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2004년에 수상하며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로도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07년 첫 오페라 작품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 되었고, 2014년 루체른 페스티벌을 비롯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 무대에서도 그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2017년에는 작곡 분야에서 최고 권위로 알려진 핀란드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다졌고, 윤이상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작곡가로 언급되고 있다.그의 대표작품으로 손꼽히는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의 스승인 리게티와의 인연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리게티가 큰 관심을 가졌던 오페라의 소재였고, 진은숙 역시 앨리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리게티가 앨리스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한편 작곡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말년 그의 건강이 허락치 않자,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남다르게 아꼈던 제자 진은숙에게 이 오페라의 작곡을 맡겼다고 한다. 이렇게 진은숙은 첫 번째 오페라를 그가 마음속에 늘 지니고 있던 주제를 가지고 작곡하게 되었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읽었을 법한 동화책이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진은숙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면서 내 개인적 경험으로 오페라를 쓰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도 내가 꿈속에서 경험했던 것이 책을 통해 다시 반복되는 듯해 굉장히 놀라워하던 것이 기억난다"라고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판타지 문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실이 답답할수록 우리는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상의 세계를 추구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새로운 나를 준비하기도 한다.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를 통해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술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벗어나고플 때 큰 마음먹고 진은숙의 오페라로 일탈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 시절 우리가 생각한 앨리스와 그가 그려낸 앨리스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쯤은 감상해보길 바란다.어쩌면 당신의 눈앞에 동화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2020-06-25 15:30:00

[기고] 통합신공항 해법, 발상의 전환 필요

[기고] 통합신공항 해법, 발상의 전환 필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을 놓고 군위와 의성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다.군위는 우보 단독 후보지를 고수하고 있고, 의성은 공동 후보지(군위 소보·의성 비안)에 대한 군위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방부·대구시·경북도가 제시한 인센티브 중재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중재안에는 군위에 민간공항 터미널 및 진입로, 군인 가족 아파트(영외 관사), 시·도 공무원 연수시설 등을 짓고, 경북도가 조성하는 총사업비 1조원 규모의 항공 클러스터(공항신도시) 가운데 절반인 330만㎡를 군위에 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항 유치에 따른 핵심 인프라를 대부분 군위에 몰아주겠다는 것이다.그러자 당장 의성이 반발하고 나섰다. 24일 의성군 이장연합회는 "중재안은 속된 말로 '의성에는 껍데기만 가져오고, 알맹이는 군위에 주라'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의성군민은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중재안을 마련한 대구시, 경북도의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고 비판했다. 의성군의회도 25일 반대 입장을 밝혔다.이렇게 되면 군위는 공동 후보지에 반대, 의성도 공동 후보지 합의안에 반대가 돼 4년을 끌어온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얽힌 실타래를 풀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국방부와 대구시·경북도는 군위와 의성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공동 후보지에 대한 합의안을 수용하라고 요구하지 말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공동 후보지는 군위 입장에서는 입지 선정 시작 단계부터 주민투표에 이르기까지 단독 후보지만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기에 받아들일 수 없고, 의성 입장에선 공동 후보지 합의안이 공항 유치에 따른 혜택을 모두 군위에 주고 소음만 떠안으라는 격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설령 현재의 갈등을 억지로 봉합해 공동 후보지로 밀고 나간다고 해도 최종 이전지 선정 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양 지자체 군민들의 반발로 앞으로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쌓인 감정적 앙금에다 각자의 이익에 대한 경쟁심리로 사업 단계단계마다 물어뜯고 싸울 게 뻔하다.이런 차원에서 공동 후보지가 아닌 단독 후보지에 대한 합의로 대구경북이 방향을 트는 것도 현 난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우보 단독 후보지로 군위와 의성이 합의하면 의성은 공동 후보지로 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군위 우보에는 공항을 건설하고 의성엔 항공클러스터와 관통도로 등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또 단독 후보지는 이미 유치 신청이 돼 있어 법적으로 결격 사유가 없으며 군위 한 곳에만 걸쳐 있는 입지여서 사업 추진에 별다른 장애가 없다. 군위 군민의 76%가 단독 후보지를 지지했기 때문이다.혹자는 국방부의 입장이 공동 후보지로 확고하기 때문에 단독 후보지는 불가하다고 주장하지만 지역에서 단독 후보지로 합의만 한다면 국방부가 이를 거부할 명분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공동 후보지는 군위와 의성 모두에 답이 없는 카드이고, 대구시의 무산 후 제3의 후보지 선정안도 주민 반발 등 절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독 후보지로 합의하면 빠르게 통합신공항 이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무엇이 사면초가에 처한 대구경북의 백년 미래를 보장하고 군위와 의성 양 군민들의 바람을 담은 상생발전의 길이 될 수 있는지, 이제는 대구경북민이 냉정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판단을 내릴 때다.

2020-06-25 13:32:03

[신창환의 같이&따로] 빵 사먹을 자유

[신창환의 같이&따로] 빵 사먹을 자유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말이다.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정치의 목표는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에 있다고 하는 김 위원장의 말에 기자들이 구체적 의미를 묻자, 예를 들어 한 말이다.형식적 자유가 보장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제공되지 않으면 자유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보수의 핵심적 가치인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기본소득 논쟁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하였다. 차기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여권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논쟁에 가세하면서 기본소득 논쟁이 차기 대권의 핵심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론도 호각지세이다. 6월 5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오차 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찬성 48.6%, 반대 42.8%로 찬성하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설령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기본소득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재원 확보가 가능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의 지급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에 따라 소요 예산은 달라지겠지만,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매달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려면 연간 300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2020년 국가 예산 512조원의 58%에 해당하는 규모이니, 이러한 돈을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재원이 만만치 않다 보니, 기본소득의 시행 방식에 있어서도 의견이 서로 갈린다. 혹자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 원리와 상충되는 것으로, 혹자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가 우선이며 기본소득은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기본소득을 이해한다. 한편에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시행하면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또 한편에서는 고용보험부터 먼저 시작하고 기본소득은 국민의 합의로 증세를 한 이후에 추진하자는 주장을 한다.기본소득 시행에 있어 문제는 재원과 시행 방식만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재정 마련이 가능한지 여부 논의가 주로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지만, 보편적, 무조건적, 현금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시행에 있어서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의 '인식'이다. 기본소득은 우리 삶의 방식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울러 분배의 문제를 둘러싼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나 한계와 관련된 이념의 문제이기도 하다.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기본소득 논쟁은 우리 사회에 있어 사회복지제도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전환점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바로 일(work)과 삶(life)의 방식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며, 그에 따른 소득, 세금, 분배와 관련된 정책과 법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이다.일을 해서 소득을 얻으면, 소득으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납부하고 필요한 소비를 하는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은 일에서 시작된다. 결국은 일자리 문제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경제성장과 산업 구조 변화와는 다른 양상을 가져오고 있다. 과거의 산업혁명이 인류의 생산시스템과 부(wealth)의 창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듯이 4차 산업혁명도 부가가치의 획기적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일자리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증가된 부는 일부 집단에 편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그래서 서구에서는 로봇세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의 독일 공장에서는 자동화된 로봇이 상품 생산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2016년 유럽의회는 로봇세 도입 법안을 마련하였고, 빌 게이츠는 2017년도에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점차 로봇세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들이 확대되고 있다.인간의 일자리가 완전히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나 노동투입 생산비용이 더 낮다고 생각되는 영역에서만 인간의 일자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플랫폼 노동으로 불리는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은 이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 가속화된다면, 우리의 빵 사먹을 자유는 어떻게 될까?

2020-06-24 16:30:00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인도를 변화시킨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압둘 칼람 대통령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인도를 변화시킨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압둘 칼람 대통령

필자가 40대 시절 미국 하와이대학 도서관에서 친교를 맺은 동갑내기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과 헤어진 지 20여 년 만인 2002년 처음으로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는 자랑과 함께 그의 저서 The Argumentative Indian을 소개했다.그 책 제목 속의 'argumentative'라는 말의 의미가 알쏭달쏭하여 필자가 이듬해 미국 뉴욕주의 몬클레어 주립대학교 부설 아동철학연구소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학자들과 그 책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인도 민족은 고대부터 어느 다른 민족보다 지적탐구욕(argumentative)이 강하다는 주장과 함께 그 주장에 대한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다.숫자 '0'의 발명을 비롯하여 수에 대한 개념이 다른 민족보다 일찍 개발되었다는 사실, 또 천문학 지식과 불경 전달을 위해 인도불교대학에서 발명한 인쇄술이 중국으로 전파된 후 중국의 제지기술과 병합되어 인도로 역수입되면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과정 등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었다.그러나 필자는 그 책을 읽고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수가 많으니 군계일학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을 뿐이지 인도의 대다수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계급제도에 억눌려 사는 후진국이라는 종래의 고착관념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참에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으로부터 또 다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가 2002년도에 인도 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 칼람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소개했다.압둘 칼람을 통해 인도 출신 노벨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인도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운 지적탐구욕의 대표적 화신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 남부 타밀주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압둘 칼람은 인도의 주류사회에서 따돌림받는 이슬람교도였지만 어릴 적부터 지적탐구욕이 뛰어났다.누나의 헌신적인 학비 보조로 마드라스 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는데 그의 지적탐구욕이 워낙 강했기에 학교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마침내 그의 연구 결과로 최고상을 받게 되자 인디라 간디 총리가 그를 축하만찬에 초대했는데 만찬장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불참했다는 일화도 소개되었다.압둘 칼람은 인구 12억 명의 대국 인도 대통령에 오르면서 "2020년까지 인도를 지식 초강대국으로 변모시키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자"고 했다. 그가 인도의 국방개발연구소 소장을 맡게 되었을 때, 당시 주변의 국제 상황 변화에 따라 인도가 핵실험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마침내 핵실험에 성공하자 국민들의 열화 같은 환호를 받아 그가 대통령에 추대된 것이었다. 그는 애초에 세속적인 욕망이 없었기에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소유물이라고는 달랑 가방 두 개에 불과하여 모든 인도 공직자들에게 청렴결백의 모범을 보여주었다.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과학자 대통령 압둘 칼람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백면서생이나 정치 교수(폴리페서)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인도에는 세습된 신분을 이용하여 출세를 노리는 사이비 수행자나 도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러기에 필자와 다년간 흉금을 트며 친교를 유지해온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이 인도 민족정신의 귀감으로 그 두 인물을 나에게 소개한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신분제도가 세습되는 인도에서 지적탐구욕 하나만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고 12억 인구 대국의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의 진의를 새삼 되새기며 신나는 기분으로 그들의 삶을 반추하며 읽었다.

2020-06-24 16:30:00

[기고] 한국전쟁 호국 영웅 유치곤 장군

[기고] 한국전쟁 호국 영웅 유치곤 장군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다.한국전쟁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 지켜온 호국보훈 인물들이 많지만 그중 대구지역 출신인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 호국영웅 유치곤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유치곤 장군은 경북 달성군 유가읍에서 출생하였으며 1951년 4월 공군 소위로 현지 임관하여 1953년 5월 30일 한국 공군 역사상 유일하게 200회 출격 기록을 돌파했으며 전쟁 중 총 203회 출격하였다. 특히 유 장군은 1952년 1월 15일에는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 참가하여 적의 치열한 대공 포화를 뚫고 4천 피트 상공에서 강하, 초저공인 1천500피트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공격을 감행하여 유엔 공군이 파괴에 성공하지 못한 철교를 폭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평양 대폭격 작전, 351고지 탈환 작전, 송림제철소 폭격 작전 등 한국 공군이 출격한 주요 작전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워 전쟁 중 을지무공훈장 3회, 충무무공훈장 3회, 미국 공군비행훈장, 수훈비행십자훈장 등을 받아 전투조종사로서 최고의 영예를 획득하였으며, 모든 출격 조종사의 표상과 영웅이 되었다.한국전쟁 후에는 전후방의 각급 부대장으로 근무하며 공군의 전력 증강 및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공군 제107기지 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1965년 1월 1일 과로로 순직하였다.지역의 호국 영웅 유치곤 장군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한 방안으로 세부 추진 방향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 활성화가 필요하다. 호국기념관 인근의 부지 매입으로 기념관 확장과 기념물·전시시설 현대화, 탐방객의 안보 체험 공간 확보, 기념관 내 호국 순례의 길 조성, 휴게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둘째, 유치곤 장군 생가복원 및 명예선양 사업을 추진하자. 달성군은 유치곤 장군 생가복원 사업과 명예선양 사업을 위해 유가읍 쌍계리 소재 기념관 시설과 부대시설 확충 추진을 위해 현재 기존 면적 4천527㎡에서 3만㎡로 확대하고 참배 탐방객을 위한 참여 및 편의시설 설치와 이를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연구 용역 및 예산 확보에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셋째, 유치곤 장군을 선양 홍보하는 방안으로 호국보훈상 제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세부 운영 방안으로 보훈학자, 공무원, 군의원 등으로 구성된 유치곤 장군상 공적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군 파일럿 대상, 호국·보훈 분야의 탁월한 교육이나 연구 업적을 이룬 대학교수, 국가유공자 자녀 중 생활이 어려운 초·중·고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여 매년 유치곤 장군 추모식에서 시상할 수 있도록 달성군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넷째,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명칭을 유치곤 공항으로 추진하자. 세계적으로 역사적 인물로 명명된 공항 이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 미국 영화배우 존 웨인 공항, 영국 리버풀의 비틀스 멤버 가수 존 레넌 공항,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공항,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 몽골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이 있듯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명칭을 보훈 교육 및 상징적인 의미로서 지역 호국 영웅, 대한민국 공군의 살아 있는 전설 유치곤 공항으로 명명하는 방안을 대구시, 경상북도, 학계, 시민,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하자.

2020-06-24 15:25:51

[강규형의 새론새평]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은 웃음거리

[강규형의 새론새평]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은 웃음거리

지키기 어려운 것이 정치인의 공약이긴 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급으로 그의 공약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의 시대를 열겠습니다" "한미동맹을 강화시키겠습니다" "방송 장악을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등등 끝이 없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단 하나 확실하게 지킨 공약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인 듯하다. 그렇다. 지금 한국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심하고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KBS, MBC 등 관영·노영 매체들을 총동원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덮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몇 개 실천했다고 하는 정책 공약들은 탈원전(脫原電)처럼 오히려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그런데 그중 가장 실패한 공약은 단연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에 지금처럼 북한 체제가 우습게 알고 막 대하는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 이미 북한 조평통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작년 8·15 경축사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할 노릇"이라는 역사에 남을 조롱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북핵 폐기를 이뤄내서 한반도 평화를 펼치겠다는 약속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북핵 폐기를 세일즈하면서 벌인 무리수들이 지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역시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라는 공약과는 정반대로 불가능한 북핵 폐기를 내세우며 국민과 국제사회를 농락했다. 조평통 기관지 '우리민족끼리'도 8월 16일 독자 감상글 댓글에 "문재인이… 여느 대통령들보다 훨씬 모자란 멍청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역대 가장 우습게 보는 한국 대통령임을 인증한 셈이다.문 대통령이 20년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6·15공동성명 서명식에서 착용한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남북한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지만, 북한은 바로 그다음 날인 6월 16일 국민 세금이 수백억원 들어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보란 듯이 폭파했다. 요즘 '당 중앙'이 된 김여정 북한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그다음 날인 17일 담화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놨다"고 비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 정권 인사들은 일제히 북한 옹호에 바쁘다. 국방장관은 남북 협의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 책임이다" "대북 전단 때문이다" 혹은 "미국 책임이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기 바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는 기가 막힌 말을 했다. 뭔가 물려도 단단히 물려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북한의 당국자들이 이 정권에 대한 경멸과 협박을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모란봉 냉면 음식점 주방장 오수봉이란 여성이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문 대통령에 대해 역사에 남을 독설을 퍼부었다.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이제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것들의 망나니짓을 묵인하며 한 짝이 되여 돌아친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막말을 했다. 아마도 북한의 문 대통령 능멸의 절정인 듯하다.현재 대통령이 무슨 장담을 하면 곧 현실은 거꾸로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동북아 평화가 곧 올 것이라고 얘기하면 곧 위기가 닥쳐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곧 종식될 거라고 하면 여지없이 확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면서 국민의 정권 불신(credibility gap)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물론 '대깨문'(대가리 깨져도 문재인 지지)족이나 "우리 이니(문재인)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라고 하는 묻지 마 지지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현 정권을 지지할 것이다. 이런 지지층 때문에 정권은 점점 더 무모한 일을 하게 되고, 허위로 문제들을 덮으려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 체제 자체의 침몰이 될 것이다.

2020-06-24 14:57:11

[매일춘추] 불청객

[매일춘추] 불청객

물건은 놓여야 할 곳에 놓여야 어울린다. 사람도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어색하지 않다. 한번쯤 이곳이 나와 어울리는 곳인지 돌아봐야 한다. 물건은 안 어울리면 치워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라면 치적이나 실정을 두고 법적 책임공방까지 벌여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고 그 자연이 가공의 무엇으로 인해 훼손되면 돌이킬 수조차 없다.그래서 사람에게는 사람다워야 할 덕목을 제일로 꼽는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이는 체면이나 위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보다 겸손해야 할 사람도 그들이고, 누구보다 격을 갖추어야 할 사람도 그들이라는 말이다. 체벌 금지 이후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낙담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인식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60년대 이후의 부모세대는 알고 있다. 그 당시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 중에 상당수가 교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TV나 자동차 수까지 조사를 했던 가정환경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불평등이 조장된 바가 많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긴 고등학교에서 군사교육까지 실시했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면 어울리는 불평등이긴 했다. 뿐인가. 대학생들은 병영이라고 해서, 며칠 군부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오면 3개월의 단축복무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다. 입대를 하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선임자보다 일찍 전역하는 후임자도 다수 있었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다.순우리말 중에 '그냥'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그냥은 그대로 대가나 조건 없이 쓰이는 부사어다. 그냥이란 표현은 어른들의 무책임한 표현에도 많이 쓰인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실망이나 좌절이 있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번 해보는 것에는 부담조차 없다. 심지어 '그냥'이란 표현이 점점 그 의미를 넓혀가고 있는 요즘이다.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에 '그냥 그렇지. 뭐'라고 하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 내지는 별다른 진전도 없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우리와 어울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의사가 그냥 진료를 하고 판사가 그냥 판결을 내리면 우리는 그냥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판단되면 즉시 벗어던지고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부르지도 않은 자리에 불쑥 자리하는 이를 두고 불청객이라고 한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에도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으로 살아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냥 살아가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일, 단 한 번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2020-06-24 14:43:20

[종교칼럼]존재세계와 생명의 신비

[종교칼럼]존재세계와 생명의 신비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보는 나의 주변 세계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아폴로 우주비행사가 달에 가고 오고 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조금 더 크고 푸른색이라는 것 외에는 여기서 달을 보는 것과 거의 같은 형태였다.내가 지금 체험하는 이 땅은 엄청나게 크고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진에 의하면 한없이 큰 진공 상태인 공간에 떠 있는 공과 같다.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은 저 멀리 수많은 별들 중에 옳게 구별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여서 안내가 없이는 알 수도 없었다.그런데 이 지구와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천체와 물체는 물리적 법칙을 따라 어김없이 움직이고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이 짧은 칼럼에 물리 법칙을 좀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비하다는 것이다.여기서 나아가 생명현상의 신비도 언급하고 싶다. 지구 표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은 햇빛을 통해 전달된 태양에너지와 지구 내부의 대류현상 그리고 중력의 복합작용에 의한 것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최종적으로 중력의 지배를 받아 아래로 끌려 내려온다. 그런데 생명체만은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풀과 나무가 그렇게 자라고,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새는 하늘에서, 사람을 포함한 온갖 동물들은 지표면에서 그렇게 움직인다.이러한 현상은 신비하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옳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본래 그런 것인데 뭘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신비하여 놀랍고 감탄스럽다. 이성적 노력으로 아무리 많은 탐구를 한다 해도 이 모든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정갈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성에 의한 논리적 탐구의 대상 이전의 것이고 또한 이후의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배우고 탐구하면 최종적으로 이러한 신비의 요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앞에서 이성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장벽도 만나게 된다.하지만 호기심 많은 인간은 이것에 대해서도 어떤 말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때 동원되는 단어가 바로 '신비'이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도 이 장벽 앞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동원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없었다.여기서 진정한 종교의 영역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싶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나약하고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 기대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강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 중에도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많다.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롭거나 병든 사람, 가난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귀의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마저 없다면 이들은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종교단체들의 조직과 활동에서 비난을 던질 일들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주변의 많은 비난을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 비난의 대상이 된 조직과 활동은 종교의 주변적인 요소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올바른 종교는 있는 것은 있다 하고 없는 것은 없다 하며, 선한 것은 권하고 악한 것은 하지 말라 하며, 신비한 것에 대해서는 신비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외치는 것은 존재 세계와 생명에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이다.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니 그것을 믿는 마음으로 희망하며 사랑으로 살아가자고 한다. 이 외침은 종교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어떤 경우에도 신뢰의 대상이 될 것이고 인간의 삶에 늘 함께할 것이다.

2020-06-24 13:30:00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여름철 위험한 유혹, 자두씨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여름철 위험한 유혹, 자두씨

여름이 다가오면서 상큼한 제철 과일들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살구는 6월 중순, 자두는 6월 말 부터 출하되기 시작하고, 복숭아는 7월 초 부터 출하되어 여름내내 다양한 품종의 복숭아를 맛볼 수 있다.반려동물 건강 스토리에 과일이 소개되는 이유가 뭘까? 복숭아, 살구, 자두가 의외로 반려견에게는 매우 위험한 유혹이기 때문이다.터키(포메라니언·10살·3㎏)가 동물병원을 방문한 시기는 지난 2월 이었다. 보호자는 터키가 2주 가량 먹지를 못하고 체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1년 전 디스크질환으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인근 병원에서 관련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이 되질 않아 우리 병원으로 의뢰된 케이스였다.터키의 혈액검사 결과는 심한 전신염증 소견이 관찰되었고, 초음파 검사에서는 소장의 장염 소견과 장관내 내용물 정체가 두드러져 있었다. 의외로 대장은 정상적인 소견으로 관찰되었다. 이러한 증상은 종양 또는 이물에 의해 장이 불통(장폐색)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기본 X-ray(엑스레이) 상에서는 복강 내 종양이나 이물질은 확인되지 않았다. 뼈, 돌, 단단한 이물질, 거대한 종양은 X-ray 상에서 그 윤곽이 구분되는 편이지만 작은 종양, 비닐, 천, 목재, 과일씨 등은 복강 내 장기와 대변에 가려져서 구분이 쉽지 않다.그래서 장폐색과 관련된 검사에는 X-ray 조영 촬영이 이용된다. X-ray 조영 촬영은 액체 조영제를 먹인 후 조영제가 위-소장-대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시간차를 두면서 반복 촬영하는 검사법이다. 촬영 각도를 다르게 하면 장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터키의 경우 X-ray 조영 촬영을 통해 장폐색과 그 부위를 진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을 막고 있는 이물질의 정체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크기와 형태로 보아서는 자두씨가 의심스러웠지만 터키가 내원한 시기가 한 겨울이고, 자두를 먹인 적이 없다는 보호자의 주장에 나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수술이 진행되었고 예상되로 소장 말단 부위가 막혀 있음이 확인되었다. 소장의 안쪽 지름보다 3배나 큰 이물질이 소장을 이동하며 장내 점막층을 찢어 충혈된 흔적이 길게 연속적으로 나 있었다. 자칫 소장이 일부라도 구멍이 뚫려버렸다면 심각한 복강 오염이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물이 제거되고 괴사된 폐색부위는 절제한 후 건강한 장관을 연결해주는 장문합술이 이루어졌다. 소장을 폐색시킨 이물의 정체는 자두씨였다.수술을 마치고 터키의 장에서 제거한 자두씨를 보호자에게 보여드렸다. 그제서야 작년 여름에 자두를 먹은 사실을 떠올리시며 황당해 했다. 터키는 4일 후 건강하게 퇴원하였고 장문합술을 받은 만큼 1주 정도는 정해진 처방식을 잘 지켜주실 것을 가족들에게 당부드렸다.여러 정황 상 터키를 괴롭힌 자두씨는 수 개월 전에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동물의 사망원인을 분석하고자 시행되는 부검에서 사망의 원인과는 관련없이 위 내에 자두씨를 비롯한 각종 이물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공간이 넓은 위 내에서는 자두씨가 불편을 초래하지 않지만, 위액에 의해 소화되면서 거친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크기가 작아져 소장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소장의 안쪽 지름보다 자두씨나 복숭아씨가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살구씨, 자두씨, 복숭아씨는 여름철 반려견에게 위험한 유혹이다. 과일을 먹고 무심결에 버린 씨를 반려견은 뛰어난 후각으로 금방 찾아낸다. 과육이 붙어있는 상태의 씨는 미끄러워 삼키기 쉽지만 위액에 의해 과육이 소화되면 거친 표면이 드러나 구토를 하더라도 제거되기 어려워진다.체중 5㎏ 이하의 소형견은 살구씨와 자두씨에 의해서도 곧잘 장폐색이 발생한다. 중형견도 복숭아씨가 장페색을 유발한 사례들이 많으므로 반려견에게 복숭아씨는 반드시 피해야 할 위험한 존재인 셈이다.무심결에 길거리에 내 뱉는 자두와 복숭아씨는 이웃 반려견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임을 명심하고 주의하자.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6-23 18:30:00

[경제칼럼]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공존의 해법을 기대한다

[경제칼럼]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공존의 해법을 기대한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다. 예년과 달리 내심 더위를 기다렸던 것은 코로나19의 위력이 기온 상승과 함께 한풀 꺾일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수도권과 충청 지방을 중심으로 지역 감염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감염 초기 엄청난 홍역을 치른 대구경북 지역은 다시금 들려오는 감염 확대 소식에 새삼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인 치유책만이 초유의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듯하다.예방접종에 해당되는 백신과 감염을 치유하는 치료제의 개발이 핵심 관건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올해 연말이면 1, 2개의 백신 개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현재 전 세계에서 200여 종의 백신 후보가 연구되고 있으나, 일부 전문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워낙 다양하여 백신 개발 자체가 의미 없다고 주장한다. 치료제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을 포함해 전 세계 연구진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니 빠른 희소식을 기대할 뿐이다.백신 또는 치료제 개발 후 국제사회가 직면할 또 하나의 이슈는 개발된 의약품 공급과 분배의 문제이다. 일찍이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백신 개발 국제공조 논의체 합류를 거부하며 독자 행보를 예고한 바 있다. 반면에 파키스탄과 남아공 등 제3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백신과 치료제의 무상 공급을 촉구하고 있다.과거에도 유사한 사례는 있었다. 2005년 조류인플루엔자와 2009년 신종플루가 인류를 위협할 때 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글로벌 기업인 로슈사의 치료제 타미플루의 복제약 생산을 강행하고자 한 바 있다. 상대적 빈국인 제3세계 국가의 국민은 고가의 치료제 수급이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 복제약 생산 여부는 자국민의 생명이 걸린 절박한 사안이기 때문이다.신약 개발은 인적 물적 투자에 기초한 장기간의 개발 기간은 물론 임상시험까지 수반돼야 하는 개발 성공도가 낮은 산업 분야이다. 특히 백신은 반복 사용되는 타 의약품과 달리 일회 사용이면 족해 경제성이 낮아 제약사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개발을 망설이기 마련이다. 이에 특허권에 기초한 독점권을 인정하여 연구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투자 회수에 따라 재차 새로운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이익 구조가 일정 부분 보장돼야 한다.그러나 문제는 이익 구조의 정도와 독점으로 인한 공급의 불평등이다. 2004년 2억5천800만달러였던 타미플루 매출액은 2005년 10억달러에 이르렀으며, 2009년에는 상반기에만 9억3천8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실제 타미플루 특허권자는 최근에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인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개발 소식을 전한 미국의 길리어드사이다. 대량생산 능력이 없었던 길리어드사는 로슈에 특허사용권을 판매했으며, 로슈는 판매액의 14~22%를 길리어드에 로열티로 지불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국내의 경우 통상 의약품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 제품의 가격은 기존 약가의 30%가 인하된다. 출시 1년 후에는 오리지널과 복제약 모두 53.55% 수준으로 다시 인하된다. 그렇다면 독점으로 인한 기업의 몫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이윤의 크기를 떠나 더 큰 문제는 특정 기업의 독점 공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축량, 즉 공급의 불평등이다. 2009년 당시 선진국은 인구의 25~50%에 투여할 수 있는 양을 비축하고 있었던 반면 개발도상국가들은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비축하고 있지 못했다. 통상 신종 감염병의 경우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서 유행하는데, 해당 국가들은 백신이나 치료제를 구매할 능력이 없으니 상황이 더 악화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조류인플루엔자와 신종플루 대유행 시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상태였다. 47만여 명이 희생된 현 시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는 여전히 개발이 진행 중일 뿐이다. 개발 완료 희소식과 함께 백신, 치료제 가격과 공급은 엄청난 지구촌의 불평등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 명확하다.특허법은 기술 확산을 목적으로 정해진 기간 내 독점권을 부여하는 법제도이다. 당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인류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면 공존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다른 기술은 몰라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인류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 간 패권 경쟁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쪼록 진정한 솔로몬의 해법을 기대해 본다.

2020-06-23 15:00:47

[매일춘추] 1990년대 대구의 미술가들

[매일춘추] 1990년대 대구의 미술가들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를 언급하는 데 있어, 큰 변화의 계기를 만든 두 개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고, 다음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사건인데 사회 전반 뿐 아니라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화, 여행자유화와 같은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1990년대 들어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은 점점 잦아들었다. 예술에서도 이념이나 투쟁, 무거운 역사의식보다는 큰 명제에 가려졌던 주변부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여성, 약자, 환경, 신체, 성 등의 주제가 부각되었다. 또한 형식적으로 주도적 흐름이 없는 다원화 양상이 나타났는데, 추상과 구상, 모더니즘과 리얼리즘과 같은 대립적 구조가 아닌, 혼성, 차용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두 번째 사건은 1998년 IMF로 국내 경제는 곤두박질 쳤던 것이다. 국내 경제의 타격으로 미술시장 역시 붕괴되었다. 기존의 미술계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작가들은 기존 시스템과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탈중심, 탈주류의 움직임을 나타났다. 작가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성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생존을 모색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단체의 조직과 협업과 같은 활로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대구에서는 국내 최초의 대안공간이 탄생한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결성된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이듬해 1998년 6월에 '스페이스129'를 만들었다. 스페이스129는 서울로 옮긴 인공화랑이 1996년까지 있던 중구 삼덕2가 129번지에 자리 잡았다. 이 공간은 상업화랑과는 다른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으로 작가들이 직접 작가의 자유로운 발표를 지원하는 협동조합(Co-Op)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공간은 회원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비회원들에게도 개방되었고, 전시장 사용료는 기존 상업 화랑의 절반수준으로 낮췄다. 이곳은 작가들에게 형식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발표의 장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경향, 지역, 학연을 불문한 모임들이 다수 나타났다. T.A.C(The Area of Colloquy)는 노중기 등이 중심이 되어 출발하였고, 1995년 창립전 '시대정신'에서 미술 형식의 제한 없는 풍토 형성과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유표현을 표방하였다. 이들은 작가들의 기획으로 시의성을 반영한 주제전을 개최하였고, 홍보지를 발행하고, 후원회가 조직되기도 했다. 아트신테(Art Synthe)는 1995년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고, 주도적 힘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대한 논의와 실천을 이들의 과제로 생각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30에서 40대 중심으로 180여 명의 많은 작가가 모였고, 그들이 함께 스스로 필요한 일들을 찾아 해결하는 거점이 되었다. 1998년 '스페이스129' 개관을 비롯해 2004년 전국 대안공간 네트워크전 개최, 2007년 가창창작스튜디오를 개관하는 등 작가들에 의해 작가들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2020-06-23 14:18:55

[기고] 지식지능형 청년기록가를 양성하자

[기고] 지식지능형 청년기록가를 양성하자

'시경'(詩經)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로 고대 중국 시대의 시가(詩歌)를 모아 엮은 책이다. 3천여 편 중 공자가 편집해 300여 편이 보존됐다고 한다.이 중 150편을 '풍'(風)이라 칭하는데, 황하 유역 15개 제후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집한 것으로 알려진다. 채시관(采詩官)들이 마을에 들어가 목탁을 두드리며 수집한 민요다.백성들의 노래엔 전쟁터에 끌려간 고통과 가혹한 부역, 억압에 시달렸던 고달픈 삶이 담겨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정서와 생활을 담아냈기에 이 시집은 수천 년간 경전으로 거듭 읽혔을 것이다.필자가 몇 년간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채집'과 '수집'이라는 목적의식적인 활동이다. 백성들은 노래와 이야기를 구술했고 채시관들은 이를 받아 적는 기록 행위를 통해 문자로 남겼다는 점이다.근대화 이후 기억과 기록은 더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가공되고 있다. 단지 정보를 생산하는 도구가 필사에서 인쇄, 사진, 영상, 인터넷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우리 민족이 걸어온 근현대 100여 년은 파란만장했고 성취 또한 대단했다. 그만큼 지역 공간에서 삶을 영위해 온 주민들은 풍부한 기록물을 생산했다.그러나 사진·서지(문서류)·영상·음원 등 다양한 원천자료가 흩어진 채 사라지고 있고, 이를 설명해 줄 기억은 소멸 중이다.척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생산한 기록물이 더 값진 유산이고 더 소중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 중심의 중앙단위 기록물만 중요하다고 세뇌당해 왔다.공동체의 혼이 담긴 민간기록물은 아직도 하찮게 취급되고 있으며 수집과 보존, 나아가 지역 가치와 자산으로 전환시키려는 상상력에는 무감각하다.안타까운 마음에 2016년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을 결성해 근현대 시기 경북도민의 기록물을 수집하고 보존, 재정립하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지역적 삶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설파해 왔다.4년 동안 지역과 주민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기록과 자취, 기억이 가득한 보물창고였다. 은빛세대를 만나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지역과 사람을 재발견할 수 있었고, 유산과 기억이 담긴 기록물을 수집하게 되었다.기록과 자취, 기억이 스며 있는 생활 현장이야말로 깊이 있는 문화와 풍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동시에 지방소멸을 극복할 지혜가 묻혀 있었고 미래의 자산으로 재창출해 낼 기록·기억 콘텐츠도 엿볼 수 있었다.늦었지만 하루빨리 '채집'과 '수집'의 현대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문제는 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은 쇠퇴하고 있고 은빛세대는 기억을 고증해 줄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청년들은 중앙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지역을 떠나고 있다.민간의 풍부한 기록과 기억을 매개로 삼고, 디지털 청년세대와 구술자 은빛세대의 접점을 통해 청년기록문화일자리를 창출해낼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고 있다.청년아키비스트를 양성해 지역과 삶의 현장으로 파견하고, 현장에 능숙한 지식지능형 청년일자리로 전환해낸다면 양질의 문화콘텐츠 구축은 물론이고 명랑한 지역사회 건설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청년아키비스트들이 지역사회에 잠재돼 있는 민간 기록유산을 모으고 갈고닦는다면 경북형 청년기록문화 일자리 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지나온 30년, 50년, 100년의 지역사와 지역적 삶을 얼마나 잘 기록하고 알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2020-06-22 14: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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