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시(詩)를 공부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매일춘추] 시(詩)를 공부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몇 해 전, 대구 동구에서 문학애호가들을 상대로 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두 달에 걸쳐서 총 8시간의 강의를 했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의 첫 질문이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가 있나요?"였었다. "아주머니, 저의 오늘 강의료에다가 사비까지 보태서 돈 100만원을 아주머님께 다시 맞춰 드릴 테니 잘 쓰는 방법이 있으면 되려 좀 가르쳐 주세요" 라고 필자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그렇다. 글 쓰는 작업은 인고의 시간이다. 더욱이 번뇌와 초조함이 겹쳐지면 아무 것도 쓰질 못한다. 하지만 정답은 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후천적으로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 분명히 좋은 글을 남길 수가 있다. 그 노력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실천과 반복학습의 연장이다.시를 시작하려고 하는 애호가들께 감히 말씀드린다. 첫째, 소재와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길러라. 과학적인 사고보다는 심미안에 초점을 두는 것이 좋겠다. 사물에 대한 자신만의 마음 속 이미지화가 중요하다. 둘째,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라. 유명한 시인이라고 해서 시구가 마음대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좋은 글귀가 떠오를 때는 항상 메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책을 많이 읽어라. 언어를 창작할 수 있는 권한이 시인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그때 적절한 미사여구 사용을 위해서는 관계되는 서적을 많이 읽어서 기교를 넓혀야 한다. 넷째, 글쓰기 작업을 많이 하라. 어려울 때는 저녁마다 일기를 작성하는 습관도 괜찮겠다. 다섯째, 글쓰기 작업을 했다면 예전에는 '퇴고(推敲)'라고 배웠으나 글다듬기를 하라. 작성한 글을 읽어 보고 자연스러운 낭송이 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시란 낭독이 아니고 낭송이다. 시 낭송이 자연스러워졌다면 그때 작품을 발표하라. 여섯째, 무엇보다 간과할 수 없는 건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소재를 될수록 시구에 언급하지 마라.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주제와 소재에 관한 시를 쓰고 싶을 때 표현하는 시구 속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독자로 하여금 그 시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두서너 번 정독하고 난 뒤 독자의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고 열 번 정도를 읽었을 때 독자로 하여금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 때 그 시는 이미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특히 마지막으로 명심해야 할 것은 초심과 동심을 잃지 마라.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져라. 사회와 국가가 아무리 타락하고 더러워져도 시인의 글만 살아 있다면 그 사회와 국가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시란 꿈꾸고 노력하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에….

2020-07-12 15: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정선 ‘창범도해’(漲帆渡海)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정선 ‘창범도해’(漲帆渡海)

바다 한가운데 돛배 한 척을 그린 부채그림이다. 연푸른 담채의 물빛으로 일렁이는 물결의 부드러운 율동감이 더없이 멋지다. 이 부채로 훨훨 부치면 시원한 바닷바람에 더위가 싹 달아났을 것 같다. 배경이 대범한 대신 배와 인물은 꼼꼼하게 그렸다. 차곡차곡 접히게 그린 돛의 모양과 질감이며, 우뚝한 돛대와 용총줄이며, 이물에 놓인 닻과 닻줄이며, 방향을 조절하는 키와 물속의 따리 등이 자세하다. 선원은 뜸집 위에 줄을 잡고 앉아 있는 돛잡이와 고물에 서 있는 키잡이 겸 선장 두 명이고 선객은 셋이다. 다섯 명의 인물은 자세와 표정까지 세밀하다. 뱃전에 부서지는 고사리 모양의 아기자기한 물보라도 정성껏 그렸다.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힘 들이지 않고 슬슬 그은 것 같은 물결의 선(線)이 주는 감동이다. 겸재 정선의 독특한 수파묘(水波描)이다. 물 그리는 법을 수파묘라고 하는데 대가들은 모두 고유한 물 그리는 필치가 있다. 산수화는 산과 물을 그리는 그림이라 산봉우리와 언덕, 바위와 나무 등 산 그리는 법 못지않게 바다, 강, 계곡, 개울, 폭포 등 각종 물 그리는 법도 핵심이다. 조영석은 정선의 산 그리는 법, 물 그리는 법이 모두 우리나라 산과 물의 형태를 파악한데서 나왔다고 했다. 정선은 내금강, 외금강을 두루 드나들고 영남의 명승지도 답사한 현장 체험 위에 사용한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 붓 다루는 솜씨를 갈고닦는 일을 흔히 필총(筆塚), 붓 무덤으로 은유했다. 종이나 비단을 스칠 뿐인 붓을 붓털이 닳아 없어지도록(!) 쓰고 버린 것이 무덤처럼 수북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 각고면려와 답사의 체험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산수화는 정선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정선은 금강산에서 우리나라 산을 대표하는 산미(山美)를 찾아냈고, 해금강과 관동팔경을 유람하며 동해 고유의 수미(水美)를 터득했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렵다"는 관해난수(觀海難水)라는 말이 있다. 정선을 후원한 농암 김창협은 해금강 총석정에서 바라본 동해를 금강산 여행기인 '동유기(東遊記)'에 이렇게 썼다.'정자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니 시야 끝까지 오직 바다뿐 이었다. 내 가슴도 덩달아 잡념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사람을 호연하게 하여 신선이 사는 봉래섬으로 배를 저어 가고픈 생각이 들게 하였다.… 지난번 금강산을 보고 "반평생 보았던 것이 모두 흙무더기나 돌덩이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동해를 보니 또 반평생 본 것이 모두 도랑물이나 마소의 발자국에 고인 물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창범도해'의 물결은 동해의 장대한 수미(水美)를 한 눈에 체험시킨다. 정선이 물결을 그린 필치, 그의 손끝에서 나온 무심한 듯한 수파묘는 그가 이미지의 진정한 창조자임을 보여준다.미술사 연구자

2020-07-12 15:30:00

[이른 아침에]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

[이른 아침에]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

우격다짐.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이른바 7·10대책이 특히 그렇다. 정부는 3주택 이상의 경우 취득세율은 최고 12배로, 종합부동산세율은 2배 혹은 거의 2배로, 양도세 최고 세율은 최고 20%포인트를 한꺼번에 인상하기로 했다. 부동산을 사고, 팔고, 보유하는 모든 단계의 세금을 대폭 올리겠다는 것이다. 주택 임대사업자 혜택을 소급해서 없앤다는 대책도 나왔다. 법치주의와 예측 가능성 무시 등 세계 10위권 나라의 정책이라고 믿기 어렵게 거칠다. 국민에 대한 징벌이나 화풀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다주택 공직자의 집 팔기 강요 역시 우격다짐이다. 가뜩이나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상실한 마당이다. '반포 말고 청주' '아니 반포까지'로 이어진 블랙 코미디는 정부 정책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일단 정부의 조급함을 이해하려 해본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지만 정부 정책은 백약이 무효다. 정책 발표 때마다 집값이 오른다.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동반 하락 중이다. "부동산은 자신 있다"던 문 대통령의 공언이 역풍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여권에 비상이 걸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 해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문제가 많다. 22번째인지 5번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6·17대책 발표 한 달도 되지 않아 새로운 정책이 나온 사실 자체가 이전의 정책이 모두 실패했음을 방증한다. 과거의 문제점을 반추하지 않은 채 서둘러 내놓는 정책은 실패를 예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일차적 관점은 규제 강화이다. 지난 2017년 6월 19일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부터 규제 정책이다. 조정대상지역 추가 지정, 민간택지 전매 제한 강화, 조정대상지역 대출 강화 등이 내용이었다. 규제 지역을 확대하고 기존 규제책을 강화하는 8·2대책, 투기과열지구를 확대 지정하고,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용이하게 한 9·5조치 등이 이어졌다. 주택 관련 대출 규제인 10·24대책도 나왔다. 정책의 실효성은 논외로 하고 규제 일변도 정책이 주는 신호만은 분명했다. 앞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집 사기가 어려워질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수요 공급의 원리상 값이 오르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인사 실패도 한몫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기용부터 실책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한 과거 동료에게 문 대통령이 개인적 명예 회복의 기회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역량의 한계가 명확했지만 모두가 상처를 입은 뒤에야 물러나게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긴급 호출을 통해 특별 지시를 내려야 할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럼에도 김 장관은 누구에겐가 화난 표정으로 5번째 정책을 스스로 발표한다. 정치인 장관의 강점도 있지만 그 단점도 분명하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정무적 감각' 때문이다. 현 정부는 전 정권과 달리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민생 자체의 해결이 아니라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민주화 투쟁식 정책의 한계가 단적으로 드러난 게 부동산이다.부동산 가격 폭등은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이의 격차를 부채질한다. 집값이 오른 지역 주민 역시 불편하다. 시세 차익을 손에 쥔 것도 아닌데 세금만 다락같이 오른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유세 강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거위가 비명을 지르게 해서는 깃털을 뽑기 어렵다. 우선 실패를 실패로 인정해야 길이 열리는 법이다. 현재의 진용을 그대로 둔 채 규제와 징벌적 세금 강화 일변도로는 해결책이 보일 리 만무하다. 부동산 자체에만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된다. 지역 균형발전, 일자리 정책, 교육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정책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그에 앞서 투쟁식 정책, 국민과 싸우는 정책, 국민을 벌하려는 정책은 실패가 예정된 정책임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공약'임을 내세워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다른 정책 역시 다시 돌아볼 수 있다면 부동산 정책 실패의 교훈은 쓴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0-07-12 15:15:35

[2020 세상 읽기] 골목길 연가(戀歌)

[2020 세상 읽기] 골목길 연가(戀歌)

어딜 가나 공사중이다. 주택들이 뭉개지고, 저층 아파트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대형 가림막이 둘러쳐지고 굴착기 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얼마 뒤면 불쑥 30, 40층짜리 아파트들이 솟아있다. 동네가 통째로 후딱 바뀐다.차를 타고가다 보면 "아니, 저 아파트는 언제 생겼노?" 탄성 아닌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수국(水菊)이 한창이라는 한 카페를 찾아 나선 며칠 전도 그랬다. 두어해 전만 해도 차량들만 오가는 한적한 길이었는데 처음 보는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신기루를 보는 듯 했다.지난 해 초봄, 초등생 조카와 케이블카를 타고 앞산전망대에 올랐다. 밤이면 캄캄한 앞산에서 하얗게 빛나는 그것의 실체가 궁금해서였다. 거기선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파트 군락. 사방 어디랄 것 없이 회색 콘크리트군(群)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주택들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두 아이와 함께 대만(臺灣)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서울을 거쳐 대구에 처음 왔다는 부부는 시내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살짝 민망했다. 하필 그 날따라 분지의 도시는 매캐한 미세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기괴할 만큼 많은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을뿐 별 특색없는 도시의 전경이 그들 눈에 어떻게 비쳐질까 싶었다.노후 아파트들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고층 아파트 재건축이 봇물을 이룰 터이다. 요즘같은 추세라면 지금 남아있는 주택가들도 언젠가 아파트단지로 바뀌지 않을까. 20세기의 80년대초만 해도 지산·범물쪽은 한촌(閑村)이나 별다를 바 없었다. 지금에사 큰 도로들이 뚫려 있지만 그때만 해도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다시피 했다. 그속에 점점이 토박이집들이 있었고, 전답들이 있었다. 20번 시내버스가 다문다문 오갔다. 법이산 자락 쪽에는 저층 아파트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한적하던 마을은 90년대 들어 아파트 대단지로 급변신했다. 자연부락의 정취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비단 이곳만일까.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매일같이 경쟁하듯 아파트가 솟아오를 것이다. 좁은 국토라는 한계 탓에 어쩔 수 없다지만 아쉬움은 있다.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급속히 사라지는 골목길이다. 집들 사이로 이어지는 조붓한 골목길!지산동에는 아파트 단지 한켠에 아직 개인주택들이 좀 남아있다. 산책삼아 가끔 그곳 골목길을 걷는다. 구불구불한데다 샛길도 많다. 차가 못 다니는 좁은 길, 막다른 길도 있어서 '멍 때리며' 걷다간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그래도 이방인처럼 헤매며 골목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지난 날 동네 골목은 늘 아이들 차지였다. 여자애들은 땅바닥에 네모난 칸을 긋고 납작한 돌멩이를 한쪽발로 차서 칸 안에 밀어넣는 '올캐바닥' 놀이 , 노래 부르며 노는 고무줄 놀이, 작은 돌멩이 다섯 개를 손으로 갖고 노는 공기놀이 따위를 했다. 머스마들은 주로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했다. 여자애들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악동들도 있었다. 해질 무렵, 담 너머로 구수한 밥내가 퍼질 때면 엄마들의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골목길을 채우곤 했다. 땀 빨빨 흘리며 뛰어놀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뿔뿔이 흩어져 갔고…. 요즘의 도시 골목길에선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시골 골목길들은 아직 괜찮으려나…. 예전 시골에는 집마당 외에 대문 바깥에 또 마당이 있기도 했다. 외가 마을의 '배꾸마당'(배꼽마당)에서 누런 콧물을 흘리며 뛰놀다가 땟국물로 빤질빤질해진 소맷부리에 콧물을 쓰윽 닦고 야트막한 흙담에 기대 햇볕 쬐노라면 겨울도 그리 춥진 않았다. 그 배꼽마당을 끼고 긴 골목이 있었다. 늦봄의 감꽃부터 시작해 계절따라 풋감이며 홍시가 떨어져 있곤 했다. 이제 외가는 거기 없지만 추억여행 삼아 연전에 찾아가 보았다. 한데 마을은 놀랄만큼 볼품없어졌고, 가끔 생각나던 긴 골목길도 추레한 몰골로 변모해 마음을 아리게 했다.지산·범물에서 30여 년 살고 있으니 스스로 원주민이라 여긴다. 가끔 흑백 스틸사진 같은 잔영들을 재생해 본다. 진밭골 산자락 초입까지 이어지던 옛길과 지붕 낮은 집들, 20번 버스 정류장 옆의 당근밭, 여름밤이면 온 천지에 왁실왁실하던 개구리떼의 합창…. 점령군마냥 쳐들어온 아파트군(群)에 떠밀려 연무(煙霧) 흩어지듯 사라져 버린 풍경들이다.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몇 그루 노거수(老巨樹)들이나 그 시절을 기억하려나.골목길이 사라지는 시대! 생전의 김현식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부르던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이 오늘따라 이명(耳鳴)처럼 계속 들린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전경옥·언론인

2020-07-11 06:30:00

[광장] 뭔가 이상하다

[광장] 뭔가 이상하다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식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식물이 우리 집에만 오면 살지 못했다.아파트는 층수가 높고 실내 공기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댔지만, 내가 식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8년 전 한옥으로 병원을 짓고, 마당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처음 2년간은 나무들이 무수히 죽어 나갔다. 소문으로 좋다는 것에 욕심을 내고 심었다가 관리가 되지 않아서 수시로 파고 뒤집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아파트 생활에서는 몰랐던 계절의 변화를 나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꽃은 각자가 원하는 시간 간격을 두고 피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봄에 매화가 피면 뒤이어 수선화, 벚꽃, 라일락, 수국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몇 달간 꽃을 즐기면 더운 여름이 왔다. 이런 간단한 즐거움만을 가지고 꽃에 관심을 가지니 나무가 죽는 일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언제, 어떤 꽃이 피는지 알게 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런 순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봄이 되면 꽃은 한꺼번에 폈다가 같이 사라졌다. 뭔가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느낌이다.올해 의사 된 지 40년이다.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면 환자 보기가 쉬워야 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고, 운동하고, 붉은 고기 적게 먹고, 채소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폐암의 30%가 비흡연자이고, 수유를 하고 채소만 먹어도 유방암, 대장암에 걸리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과거 젊은이들이 암을 걱정하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노인이 암 검진을 계속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암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성장이 느리니까 이상을 느끼면 방문하고, 그 돈으로 고기나 사 드시라고 돌려보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 젊은이들 암이 늘어나고, 80대 암도 예측 불가능하게 자라는 속도가 달라졌다.뭔가 이상하다. 식물들은 지구상에서 긴 시간 동안 각자 자라기에 맞는 장소를 찾고, 언제 꽃을 피워야 자기 종에 유리한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런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은 주위 환경이 식물에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아주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로 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인간이 암에 걸리는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이다. 그런데 암이 증가한다는 것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외부 환경이 우리 몸의 해결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변화의 원인은 단순히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원인을 쉽게 찾아서 명쾌하게 해결을 못 하는 이유다.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런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찾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르는 화학물질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불건강한 먹거리로 인해 인류에 무언가 큰 위협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재앙이었다. 그런데 몇 달간 찬찬히 점검해 보니 그게 전혀 다른 현상이 아니었다. 모습만 달리한 재앙이었다.연결 고리는 흙을 만지면서 알았다. 나무를 키우면서 흙을 만지니 뿌리와 그 주위의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도우면서 각자 살아가는 이치가 재미있다. 흙과 벌레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복잡하게 얽힌 이상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직감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

2020-07-10 14:00:30

[기고]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경북 청년!

[기고]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 경북 청년!

몇 달 전 경북 출신인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가 30년 만에 재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놀기도 바쁜 중학생 시절, 10권이나 되는 이 장편소설에 푹 빠져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학창시절 삼국지를 읽었던 사람이면 친구들과 삼국지의 영웅들을 상상하며 이야기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 많은 친구들이 유비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었는데, 필자 또한 유비 세력의 팬클럽(?)이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조조의 용인술과 결단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체감하고 있다.조조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 대패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은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도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하다. 이때 조조는 퇴각하면서도 역사에 남는 명언을 남겼다. 그게 바로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뜻의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다.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병사들을 신속하게 퇴각하게 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각한 말이었을 것이다. 적벽대전에서 만신창이가 됐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전진하는 조조의 모습이 우리 경북의 모습과 겹쳐져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지금은 다소 진정세로 돌아섰지만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경북은 코로나19 위기의 전초지나 다름없었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확진자가 나왔고 도민들은 불안감에 일상을 포기했다. 당시 미지의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두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는 사이, 경북 청년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장으로 뛰쳐나갔다.지역에서 창업으로 꿈을 키우고 있는 청년CEO, 지역 주민과 어울리며 농사일을 배워가는 청년 농부, 코로나19로 등교를 할 수 없게 된 대학생들까지, 많은 청년들이 자원해 봉사단이 꾸려졌다. 이들은 한 달이 넘는 기간 본인의 생업을 뒤로하고 경북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을 위해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 배달했다.청년들이 만들어낸 훈훈한 미담은 계속 이어졌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직장도 뒤로하고 2주 동안 간호한 손자 박용하 씨의 효성이 전국에 알려지며 경북 청년의 위상을 높였다. 경북청년연합회와 꾸준히 왕래해 온 제주도연합청년회 등 제주의 43개 읍·면·동 회원들도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경북에 기탁했다.이렇게 헌신하는 청년들과 의료진, 그리고 하나 된 공무원과 도민들 덕분에 경북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코로나19 전장에서 피해를 줄여가면서 희망의 길로 일사불란하게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병들어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만큼 무너진 지역 경제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게 현장의 요구다.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경북도에서는 370명 규모의 '다시 뛰자 경북' 범도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청년들을 대거 포함시켜 함께 도정의 방향타를 잡았다. 이제 생활 속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한다. 뉴노멀 시대에 맞춤형 일자리 창출로 지역민에게 살길을 열어줘야 한다.이 모든 것은 '청년'을 빼고서는 논할 수 없다. 청년은 현재의 경북을 있게 하는 '지지대'이고 경북의 미래를 이끌 '주인공'이다. 우리 앞에 위기가 다시 오더라도 경북 청년들은 끊임없이 공동체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고치고 이 지역의 주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조조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수차례 겪으면서 위나라를 건국했고, 결국 위나라가 삼국을 통일했다. 위기를 앞장서서 극복해내는 '경북 청년'이 경상북도를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다시 세우는 그날을 그려본다.

2020-07-09 15:53:17

[춘추칼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춘추칼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갤럽의 7월 1주 차( 6월 30일~7월 2일)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50%였다. 5월 1주 차(71%)와 비교해 두 달 만에 지지율이 무려 2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총선의 총유권자 수가 4천400만 명인데, 숫자로만 보면 무려 1천100만 명 이상이 이탈한 셈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한 대북 관계 악화, 6·17 부동산 대책 실패,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격돌 등 악재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근원적인 요인은 총선 압승 이후 드러난 정부 여당의 '견제받지 않는 권력' 때문이다.최근 대통령 한마디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행정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대통령의 하명에 역대 최대 규모의 35조원 추경 예산이 국회에서 5일 심사 만에 처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압박해 사퇴시키려고 하는 것도 실상 절제되지 않는 권력이 몰고 온 기현상이다. 이렇다 보니 "모든 권력이 국민이 아닌 문재인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주주의'(文主主義)라는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다. 통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도취된 정부는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자신들의 무능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탓만 한다.가령, 부동산 대책 실패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 장관은 "지금까지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책임을 회피했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규범과 관행이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있다. 제16대 국회(2004년)부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에 주었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했다. 제13대(1988년) 국회부터 의석 비율대로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나눠 가지던 협치의 전통마저 깨지고 여당이 17개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여하튼 민주화 세력을 자부하는 정부 여당이 '제도적 자제와 상호 존중'의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당 독재'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효율적이고 건강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권력은 스스로 견제받아야 한다. 야당,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 그리고 시민들에 의해 권력이 무차별적으로 견제받아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숙한다.그런데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떠한가? 보수가 몰락하면서 야당은 무기력해졌고, 일부 언론은 '진실 보도'를 외면한 채 정치적·정파적·이념적으로 이용되는 소재에만 치중하고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NGO)가 정치권력 비판의 칼을 내팽개치고 정치권 진입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오히려 권력화되고 있다. 양식 있는 지식인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가운데 '어용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몰염치한 인간이 활개를 치고 있다. 촛불 혁명 이후 시민들의 능동적, 자발적 참여는 늘어나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코로나19 재난 극복의 견인차 역할도 했다. 그러나, 최근엔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명 문빠로 불리는 열성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진영 내 어떠한 이견과 비판도 허용하지 않으며 정부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 적폐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이런 기형적인 상황에서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는 없다. 한국리서치는 '국정 방향 공감도'를 격주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 5월 1주 차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54%로 '올바르게 가고 있지 않다'(32%)보다 12%포인트 많았다. 그러나 7월 1주 차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43% 대 44%로 역전되었다. 더구나, 16개 정책별 긍정 평가가 대통령 국정 운영 평가보다 훨씬 낮았다. 주거·부동산 긍정 평가는 25%에 불과했다. 이것은 현 정부의 정책 능력이 아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실패로 인한 성난 민심을 잡으려면 정부 여당엔 지금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다. 더욱 겸손한 자세로 권력을 제도적으로 자제하고 최고의 전문가를 등용해서 정책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분명 겸손과 유능이 최상의 정책이다.

2020-07-09 15:44:15

[매일춘추]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

[매일춘추]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

나는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안녕하세요" 그리고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한 어린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전시장에 들어섰던 날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작품 보호 펜스를 줄넘기 삼아 넘나드는 것은 물론 온몸으로 감상하는 편이다. 결국 그 어린이 관람객은 작품을 손으로 만졌고 나는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이의 부주의를 방관했던 어머니는 도리어 나에게 불쾌감을 표현했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듯 한 작가의 작품도, 전시장의 공간도 그렇게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품 보존과 관람객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전시장의 수호자'이다.작품은 왜 눈으로만 봐야 할까? 다시 말해 왜 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작품 손상에 있다. 그 경우는 물리적, 화학적, 인위적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미술 작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여 높은 온도에는 곰팡이나 균이, 높은 습도에는 작품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는 18~24℃, 40~55%의 적정 온·습도를 유지하는 등 세심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최근 바로크 시대의 미술품이 복원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색이나 열화 현상이 있던 작품을 복원하고자 했으나 잘못된 방법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관의 부주의나 복원 과정에서의 실패로 인해 작품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지난날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비롯해 누군가 던진 돌멩이에 물감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페인트 세례를 받기도 하는 등 인위적인 훼손을 당했었다. 이후 보호 장치와 펜스, 그리고 방탄유리에 둘러싸인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됐지만 순회 전시 불가는 물론 재료의 질감이나 표현 기법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국내의 한 원로작가 작품은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고, 물에 젖거나 일부가 찢어지는 등 크게 훼손되었다. 미술관 측의 관리 부주의와 관람객의 잘못된 인식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로 인해 그 작품을 다시 만나볼 수 없게 된 것이다.작품 보존을 위해 지금의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갤러리 등 여러 전시장에서는 '전시 관람 예절'에 대한 유의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주로 '음료나 음식물 반입금지', '대화는 작은 소리로', '뛰거나 장난치지 마세요', '작품 보호선을 넘지 마세요' 등의 내용이다. 전시장 방문에 대한 기본 수칙과 타인의 감상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에서 주의를 요하므로 관람객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주면 좋겠다.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예술작품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함께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전시장의 수호자들은 관람객에게 인사말과 함께 건넨다. "작품이 아야(아파) 해.",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

2020-07-09 15:30:00

[김은아의 북돋움] 똑똑한 호구의 똑똑한 배려

[김은아의 북돋움] 똑똑한 호구의 똑똑한 배려

친구가 직장 동료들로부터 뒤통수 맞은 일로 괴로워하고 있다. 3년을 같이 일하는 동안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대신해 야근을 대신한 것은 물론이고 황금연휴에 주말 당직 순서를 바꿔주는 일도 허다했다. 나는 싱글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심지어 후배가 힘들어할 만한 일은 먼저 나서서 처리했고, 인센티브도 비슷하게 나눠 갖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사이좋게 나누었다.그런데 2주 전, 동료들끼리 속닥거리는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내용인즉 이러하다. "○○ 씨는 참 해맑아. 어쩜 사람이 저렇게 속없이 좋기만 할까." "이번에 ○○ 씨가 승진할 차례지. 그것도 양보해 달라고 해볼까. 하하하." 자신이 호구가 된 줄도 모르고 지내 온 시간이 너무 후회된다며 다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친구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러고는 왜 그렇게 퍼주기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동료애이고 배려인 줄 알았다고 한다.배려는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자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배려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정답이 없거니와 '배려' 하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배려심이 지나친 이들은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대인관계 치료를 보급하는 데 힘쓴 미즈시마 히로코는 '혼자 상처받지 않는 법'(시공사)이라는 책에서 배려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지치는 배려'이고 다른 하나는 '힘이 나는 배려'이다.지치는 배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면 좋겠고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고 잘 보이는 데 집중한다. 이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신경 쓰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배려의 에너지가 '상대방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사용되기 때문에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상대방이 좋아하면 마음이 놓이지만, 그런 기색이 없으면 신경이 쓰인다. '기분이 상했나?'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내가 이만큼 배려했는데도 전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화가 나고 원망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다시는 배려 따윈 하지 않겠어!' 하고 다짐한다.반면 '힘이 나는 배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영역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좋은 배려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나의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상대를 기만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호구처럼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 3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의 교수이자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앤테이크'(생각연구소)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기버 giver)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테이커 taker)과 '받는 만큼 주는 사람'(매처 matcher)에 비해 업무 성취도나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가설이다.착한 사람은 이용만 당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는 상식을 뒤엎으며 '바쁜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돕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람, 즉 '기버'가 성공 사다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사례와 체계적인 분석, 빈틈없는 논리를 통해 입증해 보였다.그런데 성공의 사다리 제일 밑에 있는 이들도 '기버'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덤 그랜트는 두 '기버'가 사용하는 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기버'는 최대한 남을 도와주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즉 이들은 착하지만 당하고 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제일 밑에 있는 '기버'는 남들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 정작 자신의 일과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말 그대로 호구가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똑똑한 호구'가 되고 싶은데 참 어렵다.

2020-07-08 16:30:00

[종교칼럼]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는 행복

[종교칼럼] 지나치지도 넘치지도 않는 행복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까? 도전적인 질문이다. 아버지는 경제학자, 아들은 철학자인 스키델스키 부자(父子)가 오랫동안 함께 씨름한 주제이다. 두 사람은 '물질적 욕구는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한 케인즈와 달리 '물질적 욕구는 충족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물질적 욕구를 전 문명의 심리적 토대로 만들었다거나 죄의 결과라는 말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본성상 필요가 채워지고, 불편함이 사라진다고 해서 만족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가 충족되면 또 다른 필요에 목말라하는 존재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분투하는 존재인 것이다.스키델스키 부자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에서 재화도, 성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본재(basic goods)를 구현하는 데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행복한 삶은 끝없이 욕구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기본적인 좋음'을 실현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 조화' '우정' '여가'라는 7가지 '기본적인 좋음'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행복한 삶이 이러한 '기본적인 좋음'을 구현하며 사는 데 있다고 보았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끝없는 욕구 충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좋음'에 만족할 줄 아는 '절제'의 삶에 있다.어느 날, 다른 사람 평가하기 좋아하는 자공이 공자님께 물었다. 선생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어-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 자기 절제가 곧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는 중도(中道)를 이야기하고, 그리스철학과 유학은 중용(中庸)을 논했던가.창조신학은 기독교의 근간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깊고 다양하다. 하지만 창조 과정은 인류에게 깊은 통찰과 지혜를 남겼다. 창조 전 이 세계는 공허, 무(nihil)의 세계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 공간을 마련하셔서, 하늘과 땅을 있게 하시고, 들의 꽃과 풀, 공중의 새를 만드셨다. 하나님만으로 가득한 세계에 다른 존재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창조는 하나님이 자기 자리를 타자에게 내줌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비움으로써 세계 창조의 공간을 만드셨다. 이것이 바로 '침줌'(zimsum) 즉 '하나님의 자기 제한'(Gods self-limitation) 이론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축소, 자기 왜소화 과정의 발현이다.요즘 우리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말의 과잉, 생각의 과잉, 힘의 과잉, 폭력의 과잉 등등, 온갖 것의 과잉이다. 얼마나 더 넘쳐나야 만족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하신 말씀이 시대의 영혼을 울렸으면 좋겠다."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나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 5: 3~8)

2020-07-08 15:21:46

[기고] 독립운동의 ‘성지’에 기념관이 없어서야!

[기고] 독립운동의 ‘성지’에 기념관이 없어서야!

필자의 조부이신 수봉 선생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살아생전에 유학(儒學)과 적선(積善)으로 큰 덕을 쌓았으나, '집안일을 남에게 자랑하지 말라'는 소신을 엄격하게 지켜 송덕비 하나 세우지 못하게 하셨다. 선생은 일제강점기 내내 상해 임시정부에 막대한 군자금을 보내 독립운동을 도왔지만, 그 일은 가족조차 몰랐다.선생이 돌아가시자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추조(追弔)와 특발(特發)의 글을 동시에 보내 선생의 업적을 기렸다. 그러나 이 문건은 당시 빈소에 전달되지 못했다. 밀파된 이교재 선생이 창원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옥사했기 때문이다. 그 후 무려 33년이 지나 이교재 선생의 후손이 집수리를 하다가 천장에서 문건을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필자가 새삼 조부의 옛일을 꺼낸 것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 대구·경북에는 수봉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부지기수로 있다. 그 사연들도 구구절절하다. 살펴보면, 구한말 명성황후 시해 후 최초로 창의(倡義)한 문석봉 선생이 대구 출신이다. 국채보상운동에 활활 불을 지핀 서상돈 선생도 예의 대구 사람이다.경술국치 이후 무단통치가 시작되고 나서도 독립운동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기미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대구 출신으로 최연소 민족대표 33인이었던 이갑성을 필두로 이만집의 기독교, 홍주일의 천도교, 동화사의 학승들, 성유스티노 신학생들, 계성학교·신명학교 학생들, 서문시장 상인들 등 너나 가리지 않고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그 무렵 달성공원에서 창립, 눈부신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대한광복회 역시 대구 사람이 이끌었다. 총사령관 박상진과 지휘장 우재룡 외에도 채기중과 최준이 이름을 올렸다. 1920년대 항일운동을 이끈 의열단도 대구 사람 이종암이 서상락 등과 함께 창단했다. 대구 기생 현계옥, 시인 이육사도 의열단원으로 '광야'에서 활약을 했다.윤봉길, 이봉창 지사에게 폭탄을 전한 이상정 장군과 '빼앗긴 들'을 노래한 그의 동생 이상화도 대구 사람이다. 이 밖에도 소설가 현진건은 '일장기말살사건'을 주도했고, 윤상태는 조선국권회복단 통령(統領)으로 항일에 앞장섰으며 서상일은 조양회관을 세워 민족의식을 북돋웠으니 그 숫자가 하도 많아 일일이 다 밝힐 수가 없다.그래서 대구야말로 독립운동의 성지(聖地)다. 대구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분이 159분 계신다. 1925년 인구를 기준으로 비교할 때 서울의 1.6배, 부산의 3배, 인천의 5배나 되는 숫자이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신 독립유공자가 그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보다 더 많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서울, 부산, 광주뿐만 아니라 김포, 밀양, 나주 같은 중소도시에도 건립되어 있는 독립운동기념관이 대구에만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인지 기가 찬다. 내 탓도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 든 사람으로 죽어서 선열들을 보기가 못내 부끄럽다.기미년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훌쩍 지나면서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우자는 범시민운동이 시작되었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한광복회 리더로 무장투쟁을 이끌다 두 차례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백산 우재룡 선생의 장남 우대현 씨가 동구 용수동의 땅 4만7천㎡를 기증했다 하니 참으로 가상하다.독립운동기념관 건립운동은 여야를 따질 일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한 애국애족 운동이 되어야 한다. 범시민 모금운동도 있어야 하고, 중앙정부의 예산 확보 노력도 있어야 한다. 국난 극복의 상징인 대구 사람답게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모아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하루라도 빨리 세웠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2020-07-08 15:11:10

[오정일의 새론새평] 부동산 열풍과 피케티(Piketty)

[오정일의 새론새평] 부동산 열풍과 피케티(Piketty)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다. 부동산정책의 목표는 집값을 하락시키는 것인가? 상승시키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목표는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사람들은 집값이 하락하는 것을 원하는가? 일부는 원하고 다른 일부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집값이 상승하기를 바란다. 전세나 월세를 사는 사람들은 집값이 하락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집을 사기 전에는 집값이 싸고, 내가 집을 산 후 집값이 폭등하기를 원한다. 자본소득, 아니 불로소득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다. 이 꿈이 이루어지려면 집값은 영원히 상승해야 한다. 풍선이 터지지 않고 영원히 커져야 한다.한 나라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집값이 꾸준하게 오른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생산과 고용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생산과 고용이 증가하면 소득이 증가하므로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소득이 늘면 사람들은 양질의 넓은 집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국은 저개발 국가에 비해 소득, 집값, 물가가 모두 높다. 동일한 논리를 한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집값은 경제가 호황일 때 상승하고 불황일 때 하락한다. 경제 상황과 집값은 같이 움직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산과 고용은 하락, 집값은 상승하고 있다. 경제 상황과 집값이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를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한다.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투자시장이 아니다. 부동산이라는 실물자본을 매개로 한 투기(投機)시장이다. 투기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내가 산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아야 돈을 번다. 이는 폭탄 돌리기이다.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폭탄이 터진다는 것을 안다. 내 손에서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도 투기시장이다. 경제는 불황인데 주가가 상당히 높다. 일부 언론은 소액투자자들을 동학개미라고 치켜세운다. 이는 저열한 수사(修辭)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은 없다. 서민들의 쌈짓돈으로 대기업 주가를 떠받치는 것은 애국이 아니다.인간 세상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과 자본이다. 토지는 넓은 의미에서 자본이다. 사람들이 만든 가치는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분배된다. 예를 들어, 100원의 생산물이 노동소득 40원과 자본소득 60원으로 분배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40%, 자본소득분배율은 60%가 된다. 경제학자들의 관심사를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하면 분배와 성장이다. 분배는 소득을 나누는 것이고 성장은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소득을 어떻게 분배해야 성장하는가?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면 소비가 증가한다. 자본소득분배율을 높이면 투자가 증가한다. 성장의 동력은 소비인가? 투자인가? 소득주도성장론은 성장의 동력을 소비로 본다.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가 분배와 성장에 관한 중요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피케티는 두 개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첫째,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즉,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 격차는 커진다. 둘째, 경제가 불황일 때 자본소득분배율과 노동소득분배율의 차이가 커진다. 이 두 개의 법칙은 사람들이 왜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열광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열심히 일만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 경제가 불황이면 자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뛰어난 경제학자인 피케티가 발견한 법칙이 우리나라에서는 상식에 불과하다.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았다. 투자에 필요한 돈줄을 죄고 거래를 신고하게 하였다. 주택 공급도 늘린다고 한다. 부동산 보유세도 인상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정책은 효과가 없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법칙, 경제가 불황일 때 자본의 몫이 커진다는 법칙이 작동하는 한 부동산 열풍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부동산정책은 중산층의 투자를 어렵게 만들어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뿐이다. 피케티가 발견한 법칙을 깨트리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2020-07-08 14:50:23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심장에 암이 전이된 반려견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심장에 암이 전이된 반려견

테리(비글·13살)가 병원을 찾았다. 배를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걷는 걸음걸이가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보호자는 "이전에 비해 기력이 못해지며 최근 들어 목이 붓고 설사를 자주 한다"고 말했다.테리는 혈액검사와 X-ray, 초음파 검사를 실시했다. 초음파 검사에서 복수와 담낭의 확장,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낭에도 물이 차 있음이 확인됐다. 테리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들이 별개의 질병이 아니라 악성 종양의 전이를 의심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CT검사가 필요했다.동물병원에는 혈액검사와 X-ray.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되어 있다. 대다수 질병들이 이러한 검사를 통해 확진되고 약물 처방과 수술이 결정된다. 하지만 복합적인 질병을 가지거나 종양환자들은 적합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CT검사가 필요하다.사람의 경우라면 교통사고, 종양, 뇌혈관 질환이 의심되면 CT와 MRI 검사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건강 검진에도 CT와 MRI가 포함되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 혜택으로 검진받는 사람이 부담하는 개인분담금은 저렴하며 검사 과정도 간단하다.반면에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신중하게 선택된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전신 호흡마취를 하고 검사가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촬영에 협조할 수 있지만 동물은 검사에 필요한 자세를 취하기도 어렵다. 만약 혈관조영제가 각 장기에 도달하는 중요한 촬영 타이밍에 조금이라도 움직여 버리면 검사 결과는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동물의 CT와 MRI 검사를 위해 전신호흡마취가 이루어지는 이유다.동물의 CT와 MRI 검사비가 사람에 비해 비싼 이유는 전신호흡마취를 위해 마취 전 혈액검사가 이뤄져야 하고, 마취 유지에 더 많은 의료진이 참여해야 하며, 검사 후에도 마취 회복 과정까지 동물환자를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물의 CT와 MRI 검사는 사람에 비해 평균 3배 이상의 검사 시간이 소요된다.동물의 CT와 MRI 검사를 주치 수의사가 우선적으로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검사 과정에서의 마취에 대한 위험성과 검사비 부담 때문이다.테리의 경우 수술이 적절한 선택인지, 항암 치료가 선택되어야 하는지, 앞으로의 질병의 예후는 어떠한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CT검사가 필요했다. 보호자에게는 CT 검사의 필요성과 함께 동물은 CT 검사를 위해 전신호흡마취가 이뤄져야 하며 그 위험성과 검사비용에 대하여 설명드려야 했다. 테리는 보호자의 동의 하에 전신 CT 검사가 진행됐다.테리의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심장에도 종양이 증식되어 중요한 혈관으로 침습되어 있었고, 폐에는 20여개의 크고 작은 종양들이 관찰되었다. 담낭의 비대도 종양으로 확인됐으며, 난소 주변에도 종양이 관찰되었다. 경부임파절의 부종도 종양 전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담낭이나 난소에서 유래된 악성 종양이 폐와 심장, 임파절로 전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보호자는 상심이 크셨다. 수술을 해서라도 건강해지기를 고대했건만 정작 수술조차 할 수 없는 말기암 상태라는 설명에 어쩔 줄 몰라하셨다. 테리는 노령의 나이에 암이 심장과 폐, 임파절로 확연히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 치료도 도움되기 어려우며, 심장과 혈관에 침습한 종양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발생 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임을 보호자에게 설명해 드려야 했다.보호자와의 상의 끝에 테리는 가정에서의 호스피스 관리를 결정하셨다. 테리의 남겨진 삶을 가족들이 함께 하며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약물 처방을 요청하셨다.며칠 뒤 보호자와의 전화 상담을 통해 테리가 야간에 통증 때문인지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으며, 어제는 실신하듯 잠시 쓰러진 적도 있음을 설명하셨다. 그나마 아프지 않을 때는 유동식을 먹으며 가벼운 산책 정도는 즐기는 편이라 추가적인 약물 처방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로 협의했다. 수의사로서 동물환자에게 도움주지 못하는 경우는 참 난감하다. 그저 보호자의 애로점을 들어주고 안타까움을 공감해드리는 수 밖에 없다.반려동물의 CT 검사는 점차 보편화 될 것 같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종양 발생도 증가하는데 종양을 조기 진단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CT검사이기 때문이다.종양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반려동물을 위한 의료복지이자, 반려인의 동물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7-08 07:19:47

[매일춘추]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린다”

[매일춘추]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린다”

국립대학 총장직선제가 부활되었다. 근 8년만이다. 직선제가 최선의 제도는 물론 아니지만, 필자가 재직 중인 K대학에서는 대다수 대학구성원들이 바라던 대로 교수·직원·학생에 의한 직접선거로 다음 주에 치러진다. "우리 총장을 우리 손으로!" 얼마나 와 닿는 구호인가. '우리 손으로'라는 부분은 괜히 마음을 설레게까지 한다. 머리보다 가슴에 호소하는 듯한 이 구호가 한낱 감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누구보다도 교수 유권자들(K대학의 경우 반영비율 80%)이 마음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참 유권자 없는 참 총장은 존재할 수가 없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의 수준은 그 집단의 수준에 비례한다. 리더가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리더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가도 그렇고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총장의 인물 됨됨이에는 교수들의 수준과 안목이 숨어있다. 그 점에서 직선제는 양날의 칼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무딘 날이냐 예리한 날이냐는 순전히 유권자들의 몫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어버리기도 한다지만, 대학은 배를 띄우는 곳이지 엎는 곳이 아니다. 일반 정치권과 달리 대학이 애초부터 엎어지지 않을 튼튼하고 좋은 배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흔히 대학을 '지성의 전당', 교수들을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모르겠으나 국립대학이 더욱 그런 경칭으로 불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지식'과 '지성'이 같은 뜻이 아니듯, '지식인'과 '지성인'도 동의어가 아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치중립적인 지식인과 달리 지성인은 당위(Sollen)와 욕구(Wollen)가 일치된 가치지향적인 태도를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체의 사심을 배제한 칸트(Kant)적 정언명령에 충실한 지성인들이 대학에 굳건하게 포진해 있는 한, 사회와 국가도 건강하게 유지된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후보들 중에 뽑을 만한 인물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잘 보면 참 총장감이 없지 않다. 진정한 대학 지성이라면 수고를 무릅쓰고 그런 인물을 찾아내어야 한다. 문제는 '그레샴의 법칙'이랄까 대학에서도 그런 인물이 반드시 다수의 지지를 받아 선택되지는 않는 데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지만, 수년전 겪은 좋지 못한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도 가끔 필자의 정신을 사납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선거라서 그런지 투표일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K대 캠퍼스는 미동도 없다. '정중동'이라 했으니 물밑 움직임이 없을 턱이 없겠으나, 다행스럽게도 여태껏 듣기 민망한 잡소문은 들려오지 않는다. 문득 고교시절 입문한 흥사단('고등학생 아카데미')에서 처음 접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우국충정에 찬 말씀이 죽비처럼 등짝을 후려친다.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리듯, 독립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있고, 노예 될 자격이 있는 민족에게는 망국의 열매가 있다."

2020-07-07 13:33:50

[경제칼럼] 부동산 세금 인상의 전제조건

[경제칼럼] 부동산 세금 인상의 전제조건

2019년 12·16 부동산 대책의 핵심 내용은 투기과열지구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 강화와 다주택자의 금전적 부담을 높이기 위한 종합부동산세 인상이다.올해 1월 정부는 다주택자와 고가 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종합부동산세 법률 개정안'을 상정했으나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2017년 8·2 부동산 대책, 2019년 12·2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2020년 6·17 주거안정화 대책은 공통적으로 부동산 투기 억제 수단으로써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및 종합부동산세 인상 방안을 담고 있다.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정책은 오히려 양도소득세 절세를 위한 가족 간 부담부 증여(전세보증금이나 대출금을 공제한 차액 증여) 및 1인 및 가족법인 거래와 같은 편법 거래를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과다한 양도소득세 인상은 다주택자의 매도 의사를 저하시키거나 매도 시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매물 품귀 현상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모른다.그동안 역대 정부는 부동산 경기 변화에 따라 부동산 세금 인상과 인하 정책을 반복적으로 시행해왔다. 국민과 시장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정책에 대한 내성을 키워가고 있는 듯하다. 국민과 시장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학습효과로 더 똑똑해지는 인공지능 알파고인 것 같다.부동산 정책은 기본 원칙에 입각해 수립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될 때 국민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받는 성공한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다. 필자와 다수의 부동산 전문가가 동의하는 '부동산 조세(세금)정책의 기본 원칙'에 대해 얘기해 보자.부동산 매입과 처분 시 지불하는 취득세, 양도소득세, 증여·상속세 등과 같은 거래 과정상 발생되는 세금은 '거래세'라 한다. 반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처럼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간 동안 부과되는 세금은 '보유세'라 한다.경제학의 신제도학파(New Institutional Economics) 거래비용이론에 의하면, 세금과 같은 거래 과정상 발생하는 높은 거래비용(취득세와 양도소득세)은 매매 협상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부동산 소유권 이전(부동산 거래)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양도소득세(자본이득세)는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매도 의사를 위축시키며, 현재 부동산의 소유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자산의 잠금현상(Lock-in Effect)'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양도소득세 중과정책은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나, 고소득 다주택자의 매도 물건을 축소시키고 나아가 부동산 시장에서 매물 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부동산 시장 활성화 및 시장 친화적인 측면에서는 거래비용 인하를 통한 부동산 매매 활성화와 부동산 이용 및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토지공개념을 최초로 주창한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토지로부터 발생한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임대 수익 전액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토지가치세(지대세)를 주장했다.조지 학파의 주장에 의하면, 토지가치세는 부동산으로부터 발생하는 불로소득의 근원을 차단하고, 부동산 투기를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필자 역시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방안보다 조지의 토지가치세 개념을 도입한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하는 방안이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효과가 높다고 생각한다.다주택자의 매도 물건을 늘리고 갭투자와 같은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것보다 보유세를 대폭 인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유세는 거래세 인하를 통한 다주택자의 매도 물건 증가를 유도할 수 있을 만큼 대폭으로 인상해야 한다.정부는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인 핀셋 정책에서 과감하게 탈피하고 '거래세를 완화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는' 부동산 조세 원칙에 입각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재정립할 시점이다.

2020-07-07 11:37:46

[기고] 코로나19, 국가직 소방에 꼭 필요한 청렴

[기고] 코로나19, 국가직 소방에 꼭 필요한 청렴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4월 1일 소방공무원의 신분은 지방공무원법 제정 이후 47년 만에 국가직으로 전환되었다.그동안 지방직 소방 시스템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인력, 장비 수준과 보유량 등에 편차가 있었다. 또 소방공무원의 근무 여건과 복지의 차이로 국민에게 균등한 수준의 안전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불가능했다. 특히 시·도 인접 지역에서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현장에서 가까운 소방서가 아닌 담당 소방서에서 출동해야 하므로 신속한 초기 대응이 어려웠다.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소방공무원은 화재와 구조, 구급 등 재난 현장에서 언제나 최상의 소방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지난해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 현장에는 전국에서 소방차와 인력이 동원됐다. 올해 2월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전국의 구급차 1천586대 중 147대가 대구에 몰려와 확진자 이송을 도왔다.일사불란하게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감동은 물론 안심을 전해 줬다. 이러한 소방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가직 소방'의 시대를 맞아 지역에 관계없이 균등한 안전 서비스를 제공함은 물론이고, 어느 지역에서 민원 업무를 보더라도 같은 수준의 청렴친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청렴 문화 조성은 소방 조직을 지키는 최우선 과제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소방인 만큼, 소방 조직이 청렴하지 못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국민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따라서 소방공무원에게는 다른 어느 직업보다 더 높은 청렴 의식이 필요하다.청렴은 공직자의 기본 덕목이자 공직사회에서 항상 강조되는 단어다. 이전의 청렴은 금품 수수, 청탁 등의 부정부패 방지에만 적용되던 개념이었다면, 현재의 청렴은 공직자로서의 기본 자세와 민원 친절에 대한 부분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공직자는 자신이 담당하는 일에 대하여 열과 성을 다하고 혈연·지연 등 특혜 없이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며, 양심에 가책이 없어야 한다. 민원 업무 시 민원인들이 간혹 제공하던 음료수와 교통 편의 등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민원인과 대면할 때 내 가족과 친구처럼 한 발 더 다가가고, 한 번 더 인사해야 한다.대구소방은 '부패 Zero, 청렴 1등급' 달성을 목표로 시민 감동 민원 서비스를 위한 청렴 모니터링과 부서별 청렴 평가제를 실시한다. 아울러 시민 감동과 민원 만족도 향상을 위해 현장민원실과 행복민원벨 등도 운영한다.무엇보다 소통하는 대구소방을 위해 소방공무원 반부패·청렴 교육을 강화하고, 본부장과 함께하는 청렴토론회·청렴정책 공유를 위한 공감캠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청렴도 향상에 매진한 결과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측정한 전국 소방 민원 분야 외부 청렴도 점수 1위를 달성하였다.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해치는 일이 알려지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공용 마스크를 빼돌린 경찰관과 신천지교회 예배 사실을 숨기고 방역 업무를 하다 동료를 감염시킨 보건소 공무원,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자가 격리 의무를 어기고 주민센터를 방문한 공무원 등이다. 모두 함께 전염병 종식을 위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에 드러난 청렴 의식이 결여된 사례다.어려운 시기이지만 지금까지 지켜왔던 청렴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굳건히 지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위해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 국민이 더욱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빈정직(淸貧正直)의 자세로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

2020-07-06 16:33:47

[세계의 창] 작아지는 일본

[세계의 창] 작아지는 일본

1868년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근대 아시아에서 획기적 사건이다. 그 후 일본은 중국을 대신해 아시아의 맹주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1980년대에 일본의 위상은 하늘을 찔렀다. 세계 최고의 일본(Japan as No.1)이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야 한다는 기관차론(Japanese locomotive theory)이 등장한다. 한때 ODA(공적개발원조)가 미국을 능가했고, 일본의 세기(Pax-Nipponica)를 예측하는 호사가들의 시나리오도 회자되었다. 한일 관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기까지였다. 1990년대에 들어 일본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지고, 정치도 혼란을 거듭했다. 잃어버린 20, 30년의 시작이다.2010년은 일본에게는 위기와 굴욕의 순간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다. 이를 상징하듯, 같은 해 9월 조어도(센카쿠) 부근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는 사건이 발생한다. 중국 선장을 구금하자 중국은 전자제품의 핵심 원료인 희토류 수출을 제한했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중국 선장을 석방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G2 반열에 오른 중국에 일본이 속절없이 무너진 것이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재개하고 전세기로 선장을 데려왔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일본은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ODA를 비롯해 중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를 발판으로 중국은 급성장했고, 일본에 부메랑이 되었다. 충격이었다.10년의 시차를 두고 꼭 같은 일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작년 말 일본에서 '이제 일본은 후진국'이라는 책이 화제를 불렀다. '일본은 가까운 장래에 1인당 GDP(국내총생산)에서 한국에 추월당할 것이다'는 경고였다. 몇 년 전부터 IMF와 세계은행 등도 머지않아 한일 관계가 역전될 것이라는 예측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는 2018년 일본 관련 주식을 전부 팔았다. 2019년에 펴낸 일련의 저서에서는 '망하는 일본 흥하는 한국'을 설파했다.지난 1일로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를 한 지 꼭 1년이다. 강제 동원 문제가 원인이었으나 풀릴 기미가 없다.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는 예상은 빗나가, 외려 일본이 손실을 입었다는 평가다. 한일 관계 악화로 양국이 입은 피해는 강제 동원에 대한 배상액보다 훨씬 크다. 1차 공격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듯, 일본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한국의 G7 참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출마 등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한국을 옥죄려 한다. 2차 보복 조치도 예고하고 있다. 수출규제로 인한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추가 공격을 하겠다는 것은 일본의 한국 정책이 경제적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강제 동원 문제가 해결되어도, 아베 정권이 바뀌어도, 관계 호전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예견한다(다소 변화는 있겠지만).일본은 왜 이토록 한국에 대해 안달일까? 최근의 한일 관계는 미중 관계와 무척 닮았다. 남중국해 문제, 무역, 과학기술, 코로나 문제 등 미국은 전방위적으로 중국을 공격한다. 왜일까. 패권 불안이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이 더 크기 전에, 성장을 늦추거나 저지하려 한다. 중국이 타고 오르는 사다리를 걷어차야 하는 것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지금 아시아에는 근대 이후 일본 중심으로 형성된 역학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고 있다. 아편전쟁 이후 약 200년 만의 질서 재편이다. 일본은 아시아 패권국의 지위 상실을 용인하지 못한다. 마지막 자존심일까. 한국에 대한 옹졸한 대응은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초조감의 표출이라는 분석이다. 그럴수록 일본은 작아진다(아베 총리의 코로나 마스크처럼). 오히려 한국이 여유가 있다.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관용을 낳는 걸까. 반일 구호보다 소리 없는 불매운동이 그들을 더 불안하게 한다. 이제 한일 관계는 자기 주장에 자존심을 걸고 논의할 단계는 지났다. 어떠한 틀(framework)에서 문제를 해결할지, 관계 악화로 인한 손실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인식 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2020-07-06 16:30:20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선조들의 무더위 극복기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선조들의 무더위 극복기

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한 상황에서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전통시대에도 무더위는 극복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에도 체면을 갖추기 위해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답답하다. 그래도 전통시대에도 더위를 극복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총동원되었다. 먼저 얼음은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대표 음식이었다.신라 시대 경주에 석빙고 유적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얼음을 이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하였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기슭에 있었다.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한여름인 음력 5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종친과 고위 관료, 퇴직 관리, 활인서의 병자, 의금부의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얼음은 겨울에 네 치 두께로 언 후에야 뜨기 시작하였다. 난지도 등지에서 갈대를 가져다가 빙고의 사방을 덮고 둘러쳤는데 냉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얼음을 빙고에서 처음 꺼내는 음력 2월 춘분에는 개빙제(開氷祭)를 열었다. 얼음은 3월 초부터 출하하기 시작하여 10월 상강(霜降) 때 그해의 공급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나라에서 설치한 빙고가 있었지만, 얼음의 수요가 늘어나 공급이 부족하게 되자, 18세기에는 사적으로 얼음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어 한강 근처에만 30여 개소의 빙고가 설치되었다고 한다.선비나 백성들은 계곡이 있는 산의 산행을 통해 더위를 이겨냈다. 선비들 중에는 산행을 통하여 더위도 이기고 스승과 제자들이 회합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행에서 느낀 감흥과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담아 기행문으로 남겼는데, 16세기 영남의 선비 조식은 지리산 기행문인 '유두류록'을 남겼다.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산은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 오대산, 묘향산, 속리산, 가야산 등 예나 지금이나 명성이 높은 산들이었다.서울에서는 삼청동이나 북악산, 인왕산, 남산의 계곡들이 대표 피서지였다.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 정약용은 1824년 여름에 '소서팔사'(消暑八事), 즉 '더위를 씻어버리는 8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다산시문집'에 전하는 8가지 소서법은 소나무 단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시원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달 밝은 밤 발 씻기 등 여덟 가지였다.전통시대 더위를 쫓는 대표적 물품은 부채였다. 조선시대 풍속화에는 부채를 들고 한가롭게 더위를 피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19세기의 학자 이유원은 '임하필기'에서 부채의 여덟 가지 장점인 팔덕선(八德扇)이 기록되어 있다. 팔덕이란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산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 등 8가지로 부채의 실용성을 흥미롭게 표현하였다.우리 속담에 '단오 선물은 부채요 동지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있다. 음력 단오는 곧 여름이 시작되니, 더위에 대비하여 부채를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조선후기 서울의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단오에 부채를 서울 관원에게 나누어주는데, 부채 면에 새나 짐승의 그림을 그렸다'고 하여 부채에 그림 그리는 풍습은 오래도록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이 부채에 그린 세검정 모습은 세검정의 복원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코로나와 무더위의 기세를 피해 조용하고 한적한 산과 계곡을 찾아볼 것을 원한다. 여력이 되면 정약용이 시에서 읊었던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2020-07-06 16:30:00

[일상중국] 사대(事大)와 공중(恐中)의 짬뽕

[일상중국] 사대(事大)와 공중(恐中)의 짬뽕

중국이 두려운가? 아니면 미국에 맞서는 중국이 존경스러운가? 우리는 같은 이웃 나라인데도 일본에 대해서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맞상대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좀처럼 비난하거나 항의하는 등 외교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유난히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대해 비난하거나 부정적인 언급을 애써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궁금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 '일국양제 50년'이라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정부의 입장을 알지 못한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 시행하면서 그동안 시위를 주도해 온 민주 인사들을 줄줄이 체포하는 등 홍콩의 남은 미래는 잿빛으로 변했다.중국과의 갈등을 서슴지 않는 미국은 원색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면서 홍콩보안법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특별한 위상을 가진 홍콩에 대한 특별 대우를 전격 박탈하는 제재에 나섰다. 일본과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등 27개국도 공동성명을 통해 홍콩보안법을 비판했다. 이들 국가 역시 중국이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정부가 홍콩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중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에 관한 문제인데도 인권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된 국가에서 아무런 입장이 없다.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애써 침묵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다.반면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SNS에 게시하면서 반일 선동에 나선 바 있다. 중국과 일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천양지차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부당한' 보복 조치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나 풀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항의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하지도 않았다.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면서 외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겁박을 가해도 항의하거나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경고하지도 않는다. 이 정부의 대(對)중국 '눈치보기'는 눈물 겨울 정도로 딱하다.'우한발(發)'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1월 말, 중국으로부터의 감염원 차단이 필요하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의사 단체의 권고에 대해서도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신천지로 불거진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로 대구경북이 쑥대밭이 됐어도 방역 당국은 신천지 탓만 늘어놓을 뿐 코로나 발원지 책임론은 도외시하고 중국을 감싸는 태도로 일관했다.정부의 대중국 저자세 외교 기조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취임 7개월여 만에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방중 일정은 국빈 방문이라는 형식과 달리 별다른 환대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식사 때마다 홀로 밥을 먹어야 하는 '혼밥' 사태가 벌어졌다. 2003년 취임 후 첫 방중에 나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진타오 전 주석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중국인들에게 감동까지 안겨줬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은 국민에게 충격을 준 '외교 참사'였다. 중국을 '대국'이라 치켜세우면서 우리나라를 '소국'이라고 낮췄는데 이런 표현은 정상 외교에서 볼 수 없는 저자세 외교라는 지적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며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우리나라도) 중국몽과 함께하겠다"고도 했다. '중화제국의 부활'이 중국의 꿈이라는 것을 천하가 다 아는데, 문 대통령의 중국몽 동참은 '굴종적 사대주의의 최종판'이라는 독설을 자초했다.문 대통령이 사대주의자는 아닐 것이다.지금까지의 사정을 되짚어보니 문 대통령은 사대(事大)라기보다는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는 공중(恐中)에 가깝다. 아니 '사대'와 '공중', 그 두 가지 기조가 복합돼 있는 것 같다. 친중(親中)과 지중(知中)이 사대와 '공중'처럼 종잇장 한 장 차이로 구분할 수 없듯이 말이다.'무작정 사대' 기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교의 기본은 당당함과 대등한 관계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중국이 오히려 축구에서처럼 '공한증'(恐韓症)을 갖게 될 것이다. 상대를 모르면 두렵다. 이 정부의 '중국 공부'가 바닥 수준이라는 것을 새삼 재확인한다.

2020-07-06 16:30:00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결국 한 끗 차이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결국 한 끗 차이

매번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일주일 새로운 이벤트도 없었고, 엄청나게 더 먹은 것도 아닌데 집 안 한 편에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양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이 재활용 쓰레기의 9할을 차지하는 것은 생수병, 주스병, 비닐 등 단연 플라스틱이다.코로나19로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일시적으로 완화되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배달 음식과 택배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일회용품이 미친 듯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부터 두 달간 재활용 쓰레기 배출량을 계산한 결과, 플라스틱은 총쓰레기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작년 대비 25%까지 증가했다.반면,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플라스틱 재생 원료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재생 원료 수출의 급감으로 지난 4월 PET 재생 원료 판매량은 9천116t으로 46% 감소했으며 재활용 쓰레기 수거 업체들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수거 포기 상태에 직면했다. 우리가 더 사용하고 덜 재활용한 만큼 플라스틱 쓰레기는 이 땅 어딘가에 쌓여가는 중이고, 8월이면 집 앞에 플라스틱 쓰레기산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들려온다.플라스틱! 버려지는 순간 골칫거리지만,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가볍고, 저렴하고, 새지 않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요샛말로 '띵'작이다. 그래서 몇 년 전엔 플라스틱 판타스틱이란 전시도 열렸었다. 플라스틱은 의자의 역사도 바꿨다. 전통적으로 의자는 나무로 만들어 왔지만, 플라스틱은 다리가 없는 첫 번째 일체형 의자를 탄생시켰다.유려한 곡선이 아름다운 '팬톤체어'(Panton chair)가 그것이다.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1926~1998)에 의해 디자인된 이 의자는 1967년 처음 세상에 나온 후 지속적인 소재 연구를 통해 현재는 100%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만큼 열을 가하면 재가공이 가능하고 합성 물질과 천연 섬유로 분리가 가능해 완전 재활용도 가능하며, 의자의 일부는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진다.게다가 팬톤체어는 50여 년 전 디자인되었어도 여전히 감각적인 데다 내구성이 좋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진정한 스테디셀러로 평가받는다. 변치 않는 디자인은 생산설비를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설비 구축을 위해 자원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고, 인위적 폐기를 부추기지 않는다. 그래서 팬톤체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지만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표면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문제로 보이지만,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행동양식이 문제이다. 플라스틱도 천연자원인 원유에서 왔다. 우리가 그 원유에서 인위적으로 특정 물질을 추출, 합성해서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을 만들어냈다.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우리 손에 들려 있는가 아니면 버려졌는가, '상품'과 '쓰레기'는 결국 한 끗 차다. 플라스틱을 합성하는 기술만 있고 분해하는 기술을 만들지 못한 지금, 기술의 완성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있다. 결국 플라스틱이 판타스틱한 '띵'작일지, 대환장 '땡' 처리 대상일지는 우리의 인식 전환에 달려 있다.

2020-07-06 16:30:00

[이른 아침에] 권언유착과 공작정치

[이른 아침에] 권언유착과 공작정치

"물론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이유야 수천 가지가 넘지. 그런데 막상 대려고 하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 독일에서 들었던 노래 가사다. 요즘 '검찰 개혁'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가사가 떠오른다. 나도 검찰 개혁에 찬성했다. 아니, 지금도 찬성한다. 검찰을 개혁해야 할 이유도 수없이 많다. 근데 정작 대려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왜 그럴까?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대통령은 그에게 "산 권력에도 칼을 대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이 빈말이 되는 데에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정작 그의 검찰의 칼이 조국을 향하자, 당정청은 물론이고 어용 언론과 어용 지식인, 광신적 지지자들이 일제히 검찰을 공격하고 나섰다. 그들의 '검찰 개혁'은 애초에 공정이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검찰총장을 향한 공세는 파상적이었다. 1차 공격은 정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자들과 한겨레신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검찰총장에게 성 접대의 누명을 씌우려 했다. 본인을 향한 공격이 불발로 끝나니, 주변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2차 공격은 그의 장모를 향했고, 한창 진행 중인 3차 공격은 그의 측근을 향하고 있다.발단은 채널A 기자의 무리한 취재였다. 그가 빌미를 제공하자, 그들은 곧바로 '윤 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A 기자와 짜고 수감 중인 이철 씨를 협박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캐내어 4·15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MBC의 함정취재를 활용해 이 허구를 현실로 만들려 했다.채널A 기자가 유시민을 낚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한 검사장은 "유시민에는 관심 없다. 신라젠 사건은 다중 피해가 발생한 서민·민생 금융범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반박한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이 발언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검사장은 애초에 유시민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총선 얘기도 마찬가지다. 녹취록을 보면 총선 얘기는 제보자 지모 씨가 꺼낸다. 하지만 채널A 기자는 미끼를 물지 않고 '선거 전이든 후든 상관 없다'고 대답한다. 기자는 선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검사와 기자가 짜고 유시민의 비리를 캐서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스토리의 골격이 무너진 셈이다. 이 음모론, 누구의 작품일까?단서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의 SNS에서 찾을 수 있다. 제보자 지모 씨와 채널A 기자가 세 번째 만나던 날, 황희석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최강욱 의원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갑니다"라고 썼다. 이것으로 보아 문제의 음모론이 최강욱-황희석이 "작전"을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게다.제보자 지모 씨가 거짓말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언론에 나와 자신이 이철 씨의 "오랜 지인"이라고 했으나, 실은 그와 전혀 면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를 이철 씨와 연결시킨 것은 여당 의원의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 또 지모 씨는 이철 씨가 로비를 한 정치인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철 씨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단다.문제의 지모 씨는 사기·횡령·협박죄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 또한 처음이 아니다. 조국 사태 때는 언론플레이에 수상한 금융 브로커들을 활용했고, 한명숙 복권운동에도 역시 전과를 가진 이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황당한 것은 사기 전력이 있는 이가 거짓말까지 해가며 연출한 음모론 시나리오가 법무부 장관의 머리에까지 입력됐다는 데에 있다.진상도 밝혀지기 전에 장관은 사건의 성격을 '검언유착'으로 규정하고 들어갔다. 왜 그러는 걸까? 문제의 한 검사장은 이미 좌천되어 쫓겨나 있던 상태이니, 윤석열 총장을 노린 공작이라고 봐야 할 게다. 사상 두 번째로 이루어진 지휘권 발동 사태. 그 시작에는 사기꾼을 동원해 벌인 사기극이 있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 이 사람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2020-07-05 15:36:15

[기고] “사랑해요, 건강보험” 심평원 설립 20주년

[기고] “사랑해요, 건강보험” 심평원 설립 20주년

7월은 건강보험 시행 20주년이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설립 20주년이 되는 달이다. 올해 시작과 더불어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덮쳤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아직도 진행되는 가운데 건강보험 시행 20주년을 맞는 올해는 특히 감회가 새롭다.코로나19로 인한 국가적 재난 사태를 성공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의료현장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의료진, 그리고 지역사회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정부의 감염병 예방수칙을 잘 준수해 온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다.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 및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국내외 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이 이야기하고 있다.지금의 건강보험은 19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된 후 12년 만인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거쳐 2000년 7월 시행되었다.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던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심평원은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중추기관으로서 직원 현장 파견, 국민안심병원 지정,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증상 모니터링 등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적극 대응해 오고 있다.신속하고 폭넓은 진단검사가 가능했던 것은 진단검사와 치료약제의 신속한 승인, 검사비용 지원 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확진환자 중증 정도에 따라 의료기관 입원, 생활치료센터로의 전원, 입소 등 환자 관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환자이력관리시스템을 개발하였고, 의료기관별 음압병상·시설 현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환자에게 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압격리병상 모니터링 시스템이 활용되었다.평소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하는 DUR(Drug Utilization Review) 시스템과 ITS(International Traveler Information System) 시스템이 감염병 발생국 방문 입국자, 확진자의 접촉자 등 고위험군 정보를 의료기관에 실시간 제공하였고 국내 완제의약품의 생산, 수입, 유통 정보를 관리하는 의약품관리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코로나19 치료약제의 수급 상황을 파악하였다. 온 국민을 힘겹게 했던 마스크 공급의 불안정 해소를 위해서는 단 1주일 만에 '마스크 중복 구매 확인 시스템'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여 활용토록 하였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조기 발견, 적절한 치료, 지역사회 확산 방지 등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소개되고 있고,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하면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국민의 높은 의식 수준, 우수한 의료진의 노력, 적절한 정부의 방역정책, 건강보험이라는 든든한 제도적 뒷받침,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이 어우러짐으로써 가능하였다.21세기 들어 우리는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수많은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앞으로도 이러한 신종 감염병의 위험은 계속될 것이며, 이에 대한 철저한 방역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다양한 기능과 축적된 운영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지난 20년간 한국의 건강보험은 사회계층 간의 의료 이용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 건강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을 뿐 아니라 안전한 의료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다. 앞으로도 한국의 건강보험은 국민의 기대 수준과 의학기술의 발전에 맞는 국민건강 수호자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0-07-05 15:32:34

[매일춘추] 대구의 재발견

[매일춘추] 대구의 재발견

대구는 낙동강과 그 지류인 금호강으로 둘러싸이고 신천이 관통하는 기름진 들판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구석기시대부터 문화의 꽃을 피웠다. 신석기시대를 거쳐 특히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고인돌)와 고대 부족국가시대의 고분군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옛날부터 존재한 이 지역의 상당히 큰 정치세력들과 생활상을 알려준다. 현존하는 전 세계 고인돌 6만여 기 중, 82.5%인 4만 9천510기가 한반도에 치중해서 있고 대구에도 약 3천여 기가 있었다.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정원석과 근대개발에 의해서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약 100여 기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모두 현존한다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전남 고창과 화순지방 보다도 더욱 유명한 거석문화의 도시, 고인돌의 도시였을 것이다. 또 구암동, 대명동(교대, 영남이공대), 비산동, 내당동, 두산동, 앞산정상, 불로동 등이 토착지배세력의 고분군 지역이거나 고분이 현존하고 있는 곳이다.비산동 제 37호 고분군에서 발견한 금동관은 신라 천마총에서 발견한 금동관보다 상위의 것이다. 일본인들이 발견하였지만 다행히도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가 예전에는 큰 못이었는데 비산동, 내당동에 소재하고 있던 88개의 모든 고분군의 흙으로 이 못을 메웠다. 대구에 존재하던 모든 고분군 역시 일제강점기부터 근대 개발사에서 거의 사라지고 불로동 지역의 수백 기와 군데군데 몇 기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옛날 옛적부터 이 지역의 산과 물이 좋아 사람이 살기 좋은 터였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대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교했을 때 비슬산과 팔공산에 둘러싸인 아늑하고 따뜻한 자궁자리다. 또는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포란 형상이란다. 그래서 예전부터 인물이 많이 탄생했었고 최근에는 몇 분의 대통령이 배출된 고장이며 비록 인재(人災)는 간혹 발생했으나 천재지변과 내란, 외환, 우환이 적었다. 대한민국 근대에는 부패한 여당과 맞서는 대단한 진보도시였으며 6·25 때도 마지노선을 지켰고 조국이 위태로울 때 마다 선구자처럼 들고 일어나 국채보상운동이라든지 2·28 같은 각종 학생운동, IMF 때도 금 모으기 운동을 최초로 시작한 곳이다. 또 미녀도 많은 도시다. 물론, 한민족이 아플 때 마다 어루만져 주다보니 옛날부터 약령도시가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의료도시로서 각광받고 있다. 사람들마다 정이 넘쳐 나는 도시다.만약에 일제의 수탈을 피하고 자연 친화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면 대구는 스톤헨지와 로마가 부럽지 않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멋진 역사문화 도시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다시 한 번 세계의 중심도시로 우뚝 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의심해마지 않는다.

2020-07-05 15:30:00

[2020 세상 읽기] 이제는 국민이 주인공인 헌법을 가질 때

[2020 세상 읽기] 이제는 국민이 주인공인 헌법을 가질 때

완전성을 상징하는 숫자 '3'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나 신화 속에 깃들어 있다.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불교의 삼존불, 고대 로마의 3신과 게르만 신화의 최초의 신도 삼형제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단군신화의 환인, 환웅, 단군은 삼신으로 모셔졌고, 세상의 이치를 '천(天)·지(地)·인(人)'으로 구성하여 삼태극으로 그려 내었다. 이처럼 성스럽게 여겨졌던 3이라는 숫자는 오늘날 국가 통치원리와도 무관치 않는데 대표적인 것이 3권 분립이다. 인류는 고대 신분사회, 암흑의 중세시대, 그리고 절대군주제의 폭정과 파시즘을 거치며 주어진 질서에 대한 의심과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으려는 인간관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우리 헌법도 입법권은 국회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정부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여 3권 분립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국회의원의 장관 등 각료 겸직과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등 의원내각제 요소가 가미된 결과 여당이 국회 과반이상을 차지하거나 여당의원들이 총리나 장관으로 입각할 경우, 입법부가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가 어렵다. 사법부도 그 수장인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에 행정부의 우위는 부인하기 어려우며,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점, 4대 권력기관장(검찰총장·경찰청장·국세청장·국정원장)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권력이 행정부에 집중된 면이 있다.21세기가 한참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1987년 체제인 6공화국 헌법을 가지고 있다.헌정사상 최초, 여야 간의 합의로 탄생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 시대를 연 상징과도 같지만 이제는 상생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헌법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개헌이 경제와 민생 등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며 개헌 반대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개헌은 도대체 언제 해야 되냐'고 오히려 되묻고 싶다. 이제는 개헌을 할 때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 방향성은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잠재된 독재를 방지하는 데 있다.먼저, 국회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감사원을 대통령 직속이 아닌 국회의장 직속으로 하여 행정부의 권한남용과 정부회계에 대한 실질적 감독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례상 여당 다선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는 방식을 바꾸어 국회의원 총선거 시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지역구가 아닌 전국단위로 국민들이 직접 선출케 하여 의장단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시켜 감사원을 지휘하게 해야 한다. 또한 삼권분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국회의원의 각료 겸직을 금지하여 본래 역할인 행정부 견제와 입법 활동에 전념케 해야 한다. 부수적으로 총리나 장관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 자리를 거쳐 가는 폐해도 방지할 필요가 있다.두 번째로, 사법부의 위상 및 대표성 강화를 위한 대법원장 선출방식 변경이다.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대법원장도 직접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면 좋겠지만 직선제의 적합성여부, 법원이 가지는 전문성 등을 고려해 보면 선뜻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차선책이지만 전체 법관들이 선거로 대법원장 후보를 복수로 선출하여 그 중 2인을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 이럴 경우, 조직 내 신망을 받는 인사가 대법원장이 될 확률이 높아지고 조직 내 민주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세 번째로, 대통령 중임제와 부통령 신설이다.현행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을 직접 헌법에 명시할 만큼 독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러나 단임제는 레임덕과 짧은 임기 내 성과에 대한 압박을 가져와, 근시안적 국정운영을 초래하였고 포퓰리즘의 먹이감이 되었다. 국가 발전의 장기적 비전실행을 위해 중임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나올 때 마다 회자되는 것이 책임총리제이다. 하지만 총리는 선거로 직접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하며 그 운영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통령제 신설을 주장하고 싶다.대통령 선거를 정·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하여 국정의 운영권을 나눈다면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부통령이 경제나 외교, 안보 등의 전문가일 경우 안정적 국정운영에 큰 도움이 되며 부통령후보가 정당 간 연정의 형태로 추진될 경우 협치와 공화주의의 완성으로 귀결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마지막으로, 지방분권과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이다.원칙적으로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재정권·자치복지권 등 지방자치권을 확대·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견제장치도 필요하다.먼저, 공적결정에 대한 민간참여 보장과 공직개방이다.현행 주민자치위원회의 기능과 독립성 및 위상을 강화시켜 지방자치단체의 핵심결정에 있어 공론화 과정에 그 참여권을 보장하고 과거 제2공화국 헌법에 명시된 읍·면·동장 선거를 부활하여 일선행정의 결정권과 집행권을 분권화시켜 풀뿌리 책임행정을 구현할 필요가 있다.특히 전문성이나 대표성을 요하는 직위들은 과감히 민간에게 개방하여 만성화된 관료주의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요즘 국민들은 웬만한 고위공무원들보다 똑똑하다. 맘카페에서 정책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정치인들도 상당수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니 말이다.또 하나는 부단체장의 직접 선출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최근 부산시장 사태에서 보듯이 보궐선거까지 중앙에서 임명된 부단체장이 1년 가까이 시정을 이끄는 것은 지방자치제도의 근본취지와 맞지 않다. 지자체장 선거도 정·부 러닝메이트로 하여 유고나 궐위 등 비상시에도 시정추진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부단체장이 해당 지역에 필요한 분야인 경제, 보건, 문화, IT산업 등의 전문가일 경우 지역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아울러 중앙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선 기존의 협력관제도를 개선·확대하여 다양한 중앙부처의 인력들과 지방정부 인력들이 상호 협력·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면 좋겠다.우리 민족이 반만년 역사의 경험과 투쟁 속에서 얻어낸 가장 위대한 성과를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국민이 주인이다."는 문장으로 집약될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이 모든 일에 관여할 수는 없기에 대리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머슴처럼 일하겠다며 큰절을 연신해대던 대리인이 알고 보니 '하자투성이'일 경우, 분하고 괘심한 마음은 숨길 수 없다.요즘 구매한 상품은 웬만하면 교환·반품이 가능하나 선출된 정치인들의 리콜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국민소환제 신설과 주민소환제 요건 완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나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이와는 별도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아낄 수 있는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하나 내 보자면, 종전 국회의원 지역 선거에서 2위 득표자에게 그 직을 승계케 하면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선거 전 후보자 간 야합을 방지하는 동시에, 특정지역에 특정정당이 싹쓸이 하는 현상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후보들이 선거법을 준수하는 경향이 강해질 거라 예상되며 보궐선거 비용 또한 아낄 수 있다.아무리 청렴하고 위대한 철인이라도 너무 강한 권력은 늘 위태롭다. 세계 최고의 헌법으로 손꼽히는 바이마르 헌법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나치 정권을 탄생케 하였다. 아무리 법이 훌륭해도 대리인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면 주인인 국민은 어느새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한 번의 선거 승리로 국가권력의 자의적 지배를 허용하는 나약한 법치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영원히 지킬 수 없다. 제7공화국의 시대를 열 새로운 헌법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단순히 유권자의 지위를 넘어 헌법 안에서 '영원한 캐스팅보터'로서 권력을 견제·감시하고 국가의 주요사항을 결정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내장되었으면 좋겠다.패권정치의 부활은 결국 피의 보복을 부를 뿐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분권'과 '협치'라는 아름다운 정치기술로 이제는 국민이 주인공인 헌법의 시대를 열자!자유기고가 이상철

2020-07-04 06:30:00

[광장] 뜻하지 않게 의뢰받은 정원 이름 '모네 연못정원'

[광장] 뜻하지 않게 의뢰받은 정원 이름 '모네 연못정원'

10여 년 전 학교 기숙사의 조그마한 연못정원 설계를 맡은 적이 있다. 참으로 난감하게도 그 일을 의뢰한 총장은 모네정원을 만들어주기를 요청했다. 의뢰인은 가보지도 않은 채, 모네의 유명한 그림만 보고는 막연히 그런 정원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매사 열심히 사시는 분의 말씀이라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을 맡은 나로서는 고민이었다. 몇 달의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모네정원이 아닌 바이올린정원이라면서 의뢰인에게 설계안을 보였다. 그랬더니 의뢰인은 못내 아쉬워하면서 이름이라도 모네연못이라고 명명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연못의 정식 명칭은 모네연못이다. 모네의 정원을 보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엉뚱한 정원이 나와서 당황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나의 의뢰인은 모네의, 연못 중심의 아름다운 정원을 상상한 것 같다. 모네는 왜 그런 연못정원을 만들었을까? 모네의 연못정원은 프랑스 지베르니의 집에 실제로 있는 곳으로 그곳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산책을 한 그의 삶의 터전이었다. 30여 년 전 그곳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이미 오래전의 일이라 내 기억도 상당히 퇴색해 있다. 당시 나는 '모네의 정원'을 비롯한 멋진 그림을 기대하며 지베르니의 모네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 집의 반은 요리 기구로 채워져 있었고, 반은 일본 채색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모네의 그림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러나 수많은 꽃으로 장식된 정원과 정원 깊숙이 감춰져 있는 연못을 보면서 그림과는 다른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모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녹색의 아치형 일본식 나무다리와 다리 아래로 늘어진 수많은 바빌론 능수버들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수련과 한쪽에 멈춰진 녹색 나무배가 내 눈앞에 현실로 펼쳐져 있었다. 모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이 현장을 화폭에 담으려고 수없이 찾았을 것이다. 모네의 연못정원은 화가로서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모네의 삶이 녹아있는 곳, 순전히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단지 우리는 그 연못정원을 보면서 모네라는 한 화가의 삶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그렇다. 정원은 주체자의 삶의 일부이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 가꾸는 일이 귀찮다면서도 매일 나가서 정원 일을 했다고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대학 기숙사의 연못정원 역시 학생들의 삶의 공간이다. 나는 오랜 고심 끝에 모네의 정원 모방을 포기하고, 학생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연못정원을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연못정원의 주제를 음악으로 정했다. 연못의 형태는 바이올린을 연상하게 그렸다. 또 무대도 필요했다. 무대에 앉으니 초화류(草花類)의 청중도 장식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무대의 장막으로 능수버들을 심었다.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모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베르니의 모네정원을 방문한다. 학교 기숙사의 모네의 연못정원은 학생들이 이용하고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다. 두 정원은 이름은 같으나 주체자가 다른 공간이다. 주체자가 다르니 장소도 만든 사람도 당연히 다르다. 지금도 나는 모네의 정원이 학생들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느껴지기를 바란다. 내가 만든 모네의 정원을 오가면서 그들이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위로받고, 힘을 얻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그들 중 누군가가 프랑스 지베르니의 모네정원에 서서 바이올린의 선율이 흐르던 기숙사 옆 바이올린정원을 떠올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행복한 감상이 그들 삶을 더욱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2020-07-03 15:50:04

[기고] “형님!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방법 있심더!”

[기고] “형님!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방법 있심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을 만나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다. 특히 대구시민들은 정신적 충격과 육체적 고통으로 속칭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4·15 총선이라는 또 다른 폭풍 하나가 지역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한국 근대사회의 고질병이었던 동서의 깊이 팬 골에 또 한 번의 상처를 남겼다. 50년 동안 해결해 왔던 국민적 숙제가 우리 앞에 유령의 모습으로 다시 어른거린다.이러한 코로나19 사태와 사회적 갈등이 우리 지역 실물경제에 엄청난 충격으로 와닿아 있음은 대구의 경제를 견인하는 성서공단이 써낸 지표에 고스란히 나타난다.공단의 가동률은 1년 전인 2019년 1분기 71.84%에서 2020년 1분기에는 66.13%로 하락했고, 올해 말쯤에는 가동률이 더욱더 곤두박질칠 것이다.어두운 앞날이 예고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산업 현장의 중소기업 경영자들과 일과를 보내는 필자로서는 절박한 경제 현실과 심각성에 전 국민은 현실적 위기감을 가져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규제 관련 법안을 좀 더 심도 있게 재고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야만 사업을 포기하려는 중소기업이 줄어들 것이다.아주 오래전부터 격의 없이 지내다 서로가 일상의 바쁜 관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1년여 만에 만나게 된 고향 후배와의 얼마 전 대화는 필자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면서 머리에 오버랩돼 왔다.그 후배는 척박하고 어려운 깡촌 마을에서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나 70년대 후반에 한국 산업 역군의 전형적인 과정으로 여겨졌던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자격증으로 대기업 현장 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이후 가내공업으로 독립해 외환위기(IMF) 등으로 몇 번의 부도 과정을 거쳐 이제는 연 매출 27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그렇게 어렵게 세운 기업을 1년 정도 전부터 규모를 줄이고 동남아시아로 투자처를 옮겨야겠다고 한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 만난 그 고향 후배가 결기에 찬 말을 했는데 필자는 그 말에 함의된 깊은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고,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몇 잔의 술이 들어 간 후 그 후배는 갑자기 "형님! 기업을 하면서 여지껏 몰랐습니다만 그 어떤 경쟁에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았심더~"라고 말했다.필자는 그 소리에 이 후배가 드디어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기술개발을 통해 기업 경영을 우량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그것이 어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필자의 아둔함이었다는 것을 좀 지나 알게 됐다.몇 잔의 술과 분위기가 어우러질 때쯤 그 후배의 취기 어린 눈에 물기가 젖어들면서 던진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형님! 어떠한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멋진 방법은 말이죠…. 그건 경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아뿔싸!' 내 눈에는 코로나19에 걸려 병상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지역 기업의 처절한 모습같이 어른거리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그러나 필자는 국난 극복의 고비마다 저력을 보여왔고, 이번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모범 모델로 인정받은 우리 대구시민의 힘이 지역 경제를 병상에서 일으킬 것이며 그 후배 또한 결코 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2020-07-02 15:59:41

[시대산책] 후계자 김여정

[시대산책] 후계자 김여정

흔히 사람들이 북한은 모든 것이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한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법률과 명령, 자치단체 조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정교하며 광범하다. 융통성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융통성 없이 엄격하게 지킨다. 그러나 북한은 법이 그렇게 정교하지도 않고 광범하게 포괄하고 있지도 못한 데다 법치국가가 아니다 보니 법을 한국처럼 그렇게 엄격히 집행하지도 않는다. 법의 사각지대가 많은 데다 법규가 있더라도 융통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북한은 부정부패가 아주 심하기 때문에 법령이 유연하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뇌물을 뜯어낼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기 때문에 관료들은 이런 현상을 아주 좋아한다. 이렇게 융통성이 많은 북한이지만 딱 한 가지에 관해서는 절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바로 수령제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헌법 위에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있다. 다른 법은 지키지 않더라도 '유일사상 10대 원칙'은 절대 어겨서는 안 된다. 매우 엄격해서 그 어떤 융통성도 발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더라도, 아니 지위가 높을수록 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 '유일사상 10대 원칙'이다. 수령의 가족이라도, 2인자, 3인자라도 절대 봐주는 법이 없다. 김정일이 가장 아끼던 여동생 김경희도,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오랫동안 2인자로 간주되어 왔던 장성택도 이를 철저히 지켰고, 선을 조금만 넘는 것처럼 보이면 철퇴가 가해졌다.최근 대북전단과 관련한 남북 갈등의 전면에 김여정이 나섰다. 이런 악역에 최고 지도자의 최측근 가족이 나섰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이를 보도하는 각종 미디어나 군중집회에서의 김여정에 대한 태도는 더욱 충격적이다.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①"김여정 제1부부장은 5일 대남사업 부문에 지시를 내렸다"(6월 5일 통전부 담화) ②"김여정 동지는 8일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해 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6월 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 ③"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6월 13일 김여정 담화) ④"다음 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밝혔다.(6월 13일 김여정 담화) ⑤"김여정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6월 17일 '노동신문') ⑥조선중앙TV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축사를 비난한 김여정의 담화 전문을 그대로 읽었다. ⑦청년동맹·직업총동맹·여성동맹 등 노동당 외곽기구 주도의 대북전단 항의 군중집회에선 예외 없이 '김여정 동지 담화 낭독'이 이뤄졌다.위의 내용들 중에 단 하나라도 북한에서는 수령과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표현들이다. 지도자의 가족이든 최측근이든 아무리 높은 권력직에 있는 사람이건 절대 쓸 수 없다. 이런 규정들이 매우 정교하고 엄격해서 조금이라도 위반하는 사람이 있다면 총살이나 정치범수용소행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신문이건 방송사건 통신사건 그 결재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고강도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령제 위반 사항은 이를 지시한 선전선동부 간부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시를 그냥 실행하기만 한 신문사나 방송사 관련자들도 광범하게 처벌받기 때문에 김여정이 후계자가 확실하지 않은 조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표현들이 다양한 미디어와 군중집회들에서 광범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은 김여정이 이미 후계자로 임명된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김정은이 언제 갑자기 사고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평소에 후계자를 지명해 놓는 것이 안전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젊은 김정은이 건강하다면 과연 후계자를 지명할 마음이 생길까? 김정은이 건강한데도 만일을 대비해서 후계자를 지명해 놓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할 용기가 있는 간부가 있을까? 젊은 김정은이 후계자를 지명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강 이상이 있다는 신호로 봐도 될 것 같다.

2020-07-02 15:50:54

[매일춘추] 예술 작품의 ‘제목’

[매일춘추] 예술 작품의 ‘제목’

얼마 전 전시장에 찾아온 관람객들이 물었다. "이번 전시는 캡션(명제표)이 없네요?" 그들은 작품의 사이즈나 재료, 제작연도 보다 '제목'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했다. '제목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이름이 있듯 작품에도 '제목'이 있고, 우리에게 신분증이 있듯 작품에는 '명제표'가 있다. 주로 작품의 제목, 사이즈, 재료, 제작연도가 적혀있는데, 바로 이 명제표를 통해 관람자는 작품의 세부 정보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제목'에 대한 요구는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한 연구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근대적 형태의 전시회가 자리를 잡고 미술 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이다. 다른 작품과의 구별을 위해 붙여진 '제목'은 미술사적인 해석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모든 작품에 제목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보자면, 제목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작품과 제목의 불일치이다. 마르셀 뒤샹의 'L.H.O.O.Q'(1919)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Mona Lisa'(1503~1506)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독특하게도 화면 하단에 'L.H.O.O.Q'라는 제목을 적어놓았는데,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다'는 말이 된다. 바로 이 제목을 통해 감상자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무제'와 같이 제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감상자는 제작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순 없겠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화면에 파이프를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했다. 작품과 제목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제목'의 유무에 따라 감상자는 작품의 제작 의도 파악, 미술사적인 접근, 사고의 전환 등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같은 작품이라도 '제목'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뭉크의 '절규'가 '환희'였다면, 그에 따라 감상자의 생각은 물론 미술사적으로도 해석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시장에서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아이를 만났던 날이다. 그 아이는 식물 형태의 그림을 보고 "바나나 같아요"라고 했지만 작품의 제목은 '정원'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정원'이 아닌 '바나나'였다면, 우리는 바나나의 형태가 작가에 의해 재해석 됐다고 생각했을 거다.오늘도 전시장을 찾은 일부 사람들은 '명제표'의 행방을 묻거나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혀 그것을 바라본다. 우리는 작품의 '제목'에 의존하고 있진 않을까? 물론 '제목'은 18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작품과의 구별 혹은 미술사적인 해석 등을 위해 분명 필요하다. 그렇지만 작품을 감상할 때 제목이나 명제표에 의존하기보다는, 제목을 맞추어본다던가 또 다른 제목을 붙여보는 등 폭넓고 재미있게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2020-07-02 15:30:00

[기고] 공사장 용접·불티, 작다고 방심할 수 없다

[기고] 공사장 용접·불티, 작다고 방심할 수 없다

최근 공사현장의 용접·불티로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특히 지난 4월 29일 경기도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가연성 가스와 용접 등 불씨가 발생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 38명이 숨지고 1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이뿐만이 아니다. 국가화재정보 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장 용접·불티로 인한 화재는 2천310건이 발생했고 181명의 사상자가 나왔다.무엇보다 용접작업 때 발생하는 불티는 1600~3000℃ 정도의 고온체로 작업 장소의 높이에 따라 수평 방향으로 최대 11m까지 흩어진다. 불티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화재가 시작될 때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공사장 용접 화재의 주요원인을 살펴보면 관계자 등의 화기 취급 현장 감독 소홀과 작업현장 임시 소방시설 미설치, 가연물질 제거 조치 미이행, 무자격자 용접 작업 등 부주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해마다 반복되는 공사장 용접 작업 화재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경우가 많다. 화재를 예방하고 피해를 감소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화재 예방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첫째, 용접 작업 전 건축물 안전관리자에게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업주는 화재 예방을 위해 화재감시자를 지정해 배치해야 한다.둘째, 용접작업 전 해당 장소에 물통과 건조사(마른모래), 소화기를 비치하고 용접 불티 등을 받는 불꽃받이나 방염시트를 설치해야 한다.셋째, 용접작업 중 가연성·폭발성, 유독가스 존재 및 산소 결핍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며, 용접가스 실린더나 전기동력원 등은 밀폐 공간 외부의 안전한 곳에 배치하고 작업자는 무전기 등 관리자와 비상연락수단 확보 및 개인보호장비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넷째, 용접작업 후 작업장 주변에 불씨가 남아 있는지 30분 이상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마지막으로 불꽃을 사용하는 용접·용단 기구를 사용할 시 소방기본법 시행령 제5조에 의거, 작업자로부터 반경 5m 이내에 소화기를 갖추고, 작업장 주변 반경 10m 이내 가연물을 쌓아두거나 놓아두면 안 된다. 또한 특정 소방대상물의 건축, 대수선, 용도변경, 설치 등을 위한 공사현장에서는 간이소화장치, 비상경보장치, 간이피난유도선 등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한다.이런 내용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용접·용단 작업 시 화재예방 기술지침'에 포함돼있다.용접·용단 작업이 원인이 돼 화재가 발생하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 소방기본법에 따라 1회 100만원, 2회 150만원, 3회 이상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해 작업하는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조치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공사장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용접작업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건축공사장 용접작업 시 화재 안전수칙을 준수해야 하며 무엇보다 공사장 내 관계자의 자발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많은 공사장 화재로 인명·재산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법령 강화, 불나면 대피 먼저, 소화기 사용법 등 소방안전교육 확대로 안전의식을 더욱 강화해야 반복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공사장 관계자 및 작업자는 현장 안전관리 준수사항을 잘 지켜 귀중한 인명, 재산피해가 없도록 더욱 노력을 기울여주길 간절히 당부드린다.

2020-07-01 17:04:21

[최재목의 아침놀]  젊음이여, 뒷배 없이 홀로서 가라

[최재목의 아침놀] 젊음이여, 뒷배 없이 홀로서 가라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이육사는 이렇게 노래했으나, 어쩌랴! 이 땅엔 한동안 주저리주저리 스토리텔링할 희망의 청포도도 전설도 없을 듯하다. 지속되는 코로나 사태, 마이너스 성장, 취업난으로 젊음은 불안한 시대를 건너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시대가 정착하는 지금은 현대가 저무는 가을인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봄인가.심정이 착잡한 요즈음, 젊은 세대 앞에 서면 좀 난감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솔직히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며 조언할 용기도 언어도 부족하다. "그냥, 살아봐!"라며 혼자 속으로만 중얼대고 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청년들이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뒷배 없이 그냥 홀로서 가라!"고 권하고 싶다. 뒷배란 '보이지 않게 뒤를 봐주는 사람'(후견인), '배후'(백), '부모 찬스' 같은 것이다. 이런 것에 젊음은 개의치 않아야 한다.길의 좌표를 잡던 창공의 별도, 아우라 있는 어른들의 덕담도 사라졌기에, 깜깜한 삶의 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차라리 잘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로운 길은 새로운 정신으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낡은 사유는 좀 비껴 서고, 신선한 기풍이 잰걸음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비록 미숙하고 불완전한 걸음이더라도, 젊음이 이 시대의 전면에 나서도록 도와야 한다.하여, 젊음이여! 어떤 기존의 이념에도, 철학에도, 도덕에도, 가치에도 기대지 말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지나간 건 모두 저네들의 삶이었고, 이제부터는 당신들의 몫이라 생각하라. 폐허와 황무지 위에 새로 집을 지을 각오를 하자. 무근거・맨바닥에서 출발해야 한다. 직업도, 결혼도, 인생도 스스로 구상하라. 기성세대들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양식과 판단을 믿고, 서로와 서로의 지성을 연결하며, 해결해 가는 게 차라리 낫다.더 이상 기성세대에게 기대고 배울 것은 없다. 교육도, 정치도, 관습도 이제 신물 나지 않는가. 그 무엇에도 기대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서 가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한다. 진일보의 '진'은 나아갈 '진'(進)이 아니라, 참 '진'(眞)이어야 한다. 발 디딘 곳의 진실을 스스로 찾고, 삶을 위한 진리를 캐물어라. 그 방법론은 원효가 말한 저 "두 변을 떠나되 그 중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변이비중'(離邊而非中)을 권하고 싶다.이쪽도 저쪽도 떠나라(離邊)! 그렇다고 그 둘을 아우르는, 중간이라는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고도 생각 말라(非中). 이쪽도 저쪽도, 그렇다고 둘을 아우를 중간마저도 차 버려라. 둘이건 하나건 모두 환상이다. 진실은 그대들 자신의 '삶'이리라. 어떤 개념과 사상은 단지 그것만을 이야기한다. 다른 편을 포용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담을 언어와 그것을 펼칠 필드는 그대들이 만들어야 한다.쉽게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줄 서는 것과 같다. 어떤 줄이든 같은 유니폼으로 같은 방향을 쳐다보는 것처럼, 편향성을 갖는다. 줄 서는 것은 편하나 그것이 썩고 끊어지면 함께 몰락한다. 고독하고 불안할 땐 패거리 속에 몸을 숨기고자 한다. 이것은 단독자의 자유를 버리고 도피하는 것이다. 그때 집단적 이념과 가치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그렇다. 자유로우려면 고독을 견딜 수 있어라! 기댈 뒷배를 걷어차라! 기존의 가치와 이념, 관습과 도덕을 일단 의심하며 새로 모색하라. 벽 쪽이 아니라 나를 향해 제사상을 차리라던 해월 최시형의 '향아설위'(向我設位)처럼, 젊음 쪽에서 세상을 새로 읽는 법을 찾아야 한다. 쳐다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해방되어, 스스로가 배우로 살아갔으면 한다. 그러려면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I prefer not to)는 필경사(筆耕士) 바틀비처럼, 기성세대의 명령에 무행위[無爲]로 맞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자.뒷배 없이 홀로 갈 수 있는 젊음이 희망이다. 칠월, 꽃보다 더 붉어야 할 젊음 앞에 몇 자 고백해 본다.

2020-07-01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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