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1970년대 새로운 미술흐름의 전조

[매일춘추] 1970년대 새로운 미술흐름의 전조

1960년대부터 대구에는 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62년 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자대학교)에 생활미술과가 신설된 후 1970년엔 회화과가 생겼고, 1964년 계명대학교에 미술공예학과, 1968년 영남대학교에 응용미술과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부터 대학에서 교육받은 젊은 작가들이 지역 미술계에 배출되기 시작되었고, 이들은 지역 화단에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계명대에서는 신진들의 여러 모임이 만들어졌다. 1971년에는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학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모여 청목회(靑木會)를 만들었고, 1972년에는 이집회(二集會)가 창립되어 박종갑, 박무웅 등 계명대 출신 당대 신진들이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1975년에는 추상 경향의 작가들의 직전(直展)이 만들어져 작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미 1972년에는 추상화가들의 모임, 신조회가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이영륭, 유병수 등 당시 중진작가들이 중심으로 창립되었고, 이들은 학교에 재직하면서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비구상계열은 지역 화단에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그런데 1970년대가 시작될 즈음 한국미술은 이전의 국전과 반국전, 보수와 진보, 기득권과 재야세력, 구상과 비구상 등의 구분을 넘어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해프닝 등 더욱 급작스러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테 포베라, 모노하 등 서구와 일본에서 일어난 반예술 운동은 유신 체제와 같은 억압된 정치 환경과 기성세력에 대한 반감을 가진 신진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대구에서는 지역 대학 출신의 신진들과 더불어 서울권에서 대학을 나온 지역 출신 작가들이 대구에 내려왔고,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국제 미술의 흐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하면서 평면을 벗어나 당대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습득하고자 하였다. 1973년 김기동, 이향미, 김종호의 〈Exposé전〉, 같은 해에 열린 〈현대작가초대전〉(대구백화점 화랑)과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은 전위 혹은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평면을 벗어난 설치와 사진, 오브제, 여러 매체로 표현한 개념미술 등을 보여주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예술 언어를 구사하였다.몇 차례 전시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을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확장시키고, 더불어 대구가 동시대 미술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미술의 판도를 만들어보려는 꿈을 기획한다.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들을 배경으로 1974년 10월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대구현대미술제'가 새로운 형식의 미술축제로 열렸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폐쇄적인 데서 개방적인 데로', '침체에서 흐름'으로 그 방향성을 설정하였다. 이강소는 이러한 기획이 1970년대 세계적인 흐름을 익히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삼고자 했던 작가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부응해 계획되었다고 말한다. 미술제의 추진은 이강소를 비롯해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이 함께하였고, 첫해 70여 명이 참여한 대구현대미술제의 작가 가운데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룹 'S.T', '신체제'의 작가 30여 명도 함께 해 동시대 미술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었다.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2020-05-26 10:50:16

[권미강의 생각의 숲] 일제를 찬양했던 문학판 카포(Kapo)

[권미강의 생각의 숲] 일제를 찬양했던 문학판 카포(Kapo)

2차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는 '존더코만도'와 '카포'(Kapo)라 불리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잡혀왔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았다. '존더코만도'는 수용소에서 잡일을 담당했다. 주로 가스처형실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그 일을 하며 아주 조금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카포는 존더코만도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다. 카포는 주로 살인과 강도, 강간 전력이 있는 전과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관리했다. 나치 대신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행정사무 처리도 맡아 했다. 같은 민족인 수용소 유대인들 위에 군림하며 자기 맘대로 구타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당연히 나치의 묵인이 있었다. 수용소 안 유대인들 간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부류였으니 그들에겐 개인 주거공간도 주어졌다. 나치와 같은 식사가 제공되고 당연히 체력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렇게 길러진 체력으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나치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용소 질서를 유지하고 유대인들끼리 반목하는 데 카포를 철저히 이용했다. 말 그대로 나치의 개를 만들었고 카포들은 충실한 개가 되어 자신의 동족을 물어뜯는 역할을 서슴없이 자행했다.일제강점기에도 나치의 카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젊은이들을 전장에 몰아세우고 꽃다운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팔아넘기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나쁜 짓거리들을 했던 사람들. 해방이 되고 그들 중 누군가는 미군정과 독재정권에 아부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갔다. 그들은 변명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독립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그 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라고. 그것이 결코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의 변명이 될 수 없음에도 한편에서는 흘러간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버린다.문학판에도 그런 카포들이 있다. 그들의 펜은 일본의 칼이 되어 동족들을 대동아전쟁의 희생양으로 내몰았고 일제의 비호 아래 권력이 됐다. 해방 이후에는 소위 잘나가는 작가로 존경받으며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그들에게 죗값은 없다. 허울 좋은 문학성으로 무장한 채 그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발자취로 남아 있다.작가 김동인은 조선총독부에 찾아가서 자신이 짠 친일계획을 전하며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였다. '광명의 원천인 태양의 단순간결한 표시인 일장기. 국체(國體)의 위의(威儀)를 넉넉히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장기는 가장 우수'라고 일본을 찬양했다. 그럼에도 모 언론사에서는 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몸에 가득 아침하늘 햇볕을 받아/ 공송하게 가지런히 허리 굽혀서/ 우리 임금 천황폐하 계신 곳을/ 마음모아 정성모아 요배 드리'자는 이광수,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라는 노천명,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神風) 특별공격대원'이라고 노래한 서정주, '허리 굽은 할머니도 기를 흔들어/ '반자이' 소리는 하늘에 찼네'라던 이원수 등등. 우리의 언론들은 그들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문학적 성과로만 평가하고 문학상으로 그들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더 슬픈 것은 그런 문학상을 받으려는 작가들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2020-05-25 17:30:00

[박원재의 삶 갈피] 인간과 사람

[박원재의 삶 갈피] 인간과 사람

뜻이 비슷한데 꾸준히 함께 통용되는 말들이 있다. 뜻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말은 한자와의 오랜 인연으로 비슷한 뜻을 지닌 한자어와 고유어가 혼재되어 쓰이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과 '사람'이다. 이 두 어휘는 의미가 유사하지만 놓이는 언어적 환경에 따라 때로 무시할 수 없는 의미상의 차이를 드러낸다. 단적인 예가 "이 인간아!"라고 할 때와 "이 사람아!"라고 할 때의 뉘앙스 차이다. 앞의 말이 상대에 대해 얼마간의 비하와 경멸의 의미를 지닌다면, 뒤의 말에는 상대적으로 걱정과 애정이 묻어 있다.'인간'과 '사람'의 이런 용례상의 차이는 이 어휘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은 우리 고유어이다. 어디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추정컨대 '살다-살음-삶'으로 이어지는 어휘군에 속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이 추정이 맞다면, '사람'은 '살다' 혹은 '살아가다'는 의미를 품은 동사적 뉘앙스가 스며 있는 말이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인간'은 영어의 'human being'에 대한 번역어라는 혐의가 짙다. 문화의 수입은 상대방의 생각을 자기의 말로 옮기는 일이다. 근대에 들어 서양과 만나면서 동아시아 세 나라(한국·중국·일본)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일들이 진행되었다. 이 흐름을 선도한 것은 개항이 가장 빨랐던 일본이다. 당시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 문화에는 생경한 서양의 개념어들을 한문 고전 속의 어휘들을 매개로 번역하였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 아무런 어색함 없이 쓰이고 있는 '사회' '개인' '과학' '자유' 등이 그와 같은 경로를 통해 만들어진 '근대'의 어휘들이다.'인간'(人間)도 마찬가지다. 한문 고전에 이 말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그러던 것이 'human being'이라는 서양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기에 '사람'의 의미가 덧보태져 새로운 개념어로 안착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라는 말이 좀 더 개념적이고 딱딱한 명사적 뉘앙스를 띠는 이유이다. 이에 비해 '사람'은 무언가 살냄새 나는 분위기를 풍긴다. 이것이 "이 인간아!"와 "이 사람아!"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의 갭일 터이다. '사람'에는 이처럼 다른 이들에게 기꺼이 곁을 내주고, 또 그들이 내준 곁에 마찬가지로 기꺼이 안기는 '더불어 삶'의 이미지가 녹아 있다.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나이 칠십이 되자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리를 넘지 않았다"고 한 공자의 말은 칠십에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공자가 평생을 추구한 가치인 '인'(仁)은 곧 '사람다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되어간다"고 하는 것이 실제에 더 부합할 듯하다. 요컨대, '사람'이 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이제부터 연대기는 B.C.(코로나 이전: Before Corona)와 A.C.(코로나 이후: After Corona)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 사태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근래 공영방송 한 곳에서 코로나19를 헤쳐 나가고 있는 시민들의 의식을 조사한 내용을 보도하는 것을 들었다. 합심하여 난국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국가 역량과 시민 역량이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보다 낫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설문 결과를 보도하면서 리포터는 "그만큼 함께 코로나19를 버텨내고 있는 이웃들의 힘을 믿는다는 말일 겁니다"라는 멘트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다른 이들에게 곁을 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들린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면 지나친 긍정일까?

2020-05-25 17:30:00

[일상중국] 양회와 ‘돼지고기’의 정치학

[일상중국] 양회와 ‘돼지고기’의 정치학

지난 3월 초순경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한 아파트단지에 쓰레기차에 실려 온 냉동 돼지고기 봉지가 뒹구는 사진이 웨이보 등 중국 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중국인들의 생필품인 돼지고기를 쓰레기 운반차에 실어 배달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중국 최고지도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우한코로나 사태' 종식을 선언하기 위해 봉쇄령(1월 23일)이 내려진 우한을 처음으로 다녀간 다음 날이었다. 이날의 돼지고기 배송은 봉쇄령 속에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감염 공포 속에 돼지고기 등 식재료를 제대로 배급받지 못한 주민들이 '우리도 고기를 먹고 싶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 주석 우한 방문에 맞춰 소홀했던 당국의 대책에 항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그에 대한 화답인지, 시 주석 방문 다음 날 쓰레기차가 냉동 돼지고기를 한 트럭 가득 싣고 한 아파트단지에 도착, 바닥에 돼지고기를 쏟아 내렸다. 식품운반차가 아닌 쓰레기차에 실려 온 돼지고기 봉지를 보고 주민들이 항의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아파트 관리위 당서기 등이 면직되는 사태도 빚어졌다.돼지고기는 중국인의 주식이자 생필품이다. 중국에서 '고기'(肉)라고 하면 '돼지고기'(猪肉)다. 중국 요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탕수육(糖水肉), 동파육(東坡肉), 오향장육(五香醬肉)은 물론 마오쩌둥 주석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홍샤오로우'(紅燒肉), 탕수육의 원조인 '궈바오로우'(鍋包肉) 등이 모두 돼지고기가 주재료인 요리다.그런 중국에서 돼지고기가 최근 '금값'으로 치솟고 있다.지난해 하반기에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 전역을 강타하면서 대충 1억3천여 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거나 폐사했다. 중국 내 전체 돼지 사육 두수의 30% 수준이다. 중국은 돼지고기 자급 국가가 아니다. 돼지고기를 활용해야 풍성해지는 중국인의 식탁은 중국을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소비국이자 수입국으로 만들었다. ASF가 수그러지지 않고 있는 데다, 코로나 사태는 돼지고기 파동을 부추기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서민을 가리지 않는 중국인의 식욕은 돼지고기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된 요즘의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116% 상승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4월 발표한 올 1분기 중국 내 돼지고기 생산량은 1천38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나 줄어들었다. 돼지고기 품귀 현상으로 시장에서는 1인당 한 근(500g) 내지 1㎏으로 제한하는 식육점도 생겼다. 돼지고기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중국 경제지표를 악화시키는 물가 상승의 주범이다.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자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물론이고 경쟁업체인 '징둥'(京東)과 '헝다'(恒大)그룹, '비구이위안'(碧桂園), '완커'(萬科) 등 대형부동산 그룹들까지 양돈업 진출에 나섰다. 바야흐로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확보가 ASF와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 경제의 화두가 됐다.'알리바바'는 돼지 사육과 유통에 자신들이 앞서 있는 인공지능(AI) 기술과 IT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양돈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중국에서의 양돈업이 수익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돼지고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민심은 요동치게 마련이다. 경제 대국 중국이 생필품인 돼지고기로 인해 중국공산당의 집권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ASF가 휩쓴 2019년 하반기, 후춘화 부총리는 "돼지고기 공급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경제 문제일 뿐 아니라 긴박한 정치 임무"라면서 "돼지고기 공급 문제는 샤오캉(小康)사회 달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당과 국가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불가능한 '대기업의 양돈업 진입'을 내버려두거나 독려하는 것은 중국 당국이 그만큼 돼지고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이다.코로나 사태가 야기한 '미·중 냉전'의 재점화도 돼지고기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돼지고기 수입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코로나 사태 속에 열리고 있는 중국의 '마스크 양회'가 돼지고기 대책도 수립할 수 있을지 번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20-05-25 17:30:00

[기고] 코로나 이후의 시대, 방역의 주체가 되자

[기고] 코로나 이후의 시대, 방역의 주체가 되자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100일이 되었다. 이후 확진자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하루 700명을 훌쩍 넘어서기까지 했다.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과연 끝이 있기는 할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성숙한 대구시민들과 의료진, 소방대원들은 묵묵히 버텨내왔다.힘들었던 싸움이 오래된 탓인지 지난 4월 10일 신규 확진자가 53일 만에 처음으로 0명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우리 대원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시민의 안전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대구소방안전본부는 자원집결지를 운영해 소방력을 총집결해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소방청 동원령에 따라 전국 각지에 있는 구급차가 대구에 투입됐다.대구 소속 23대를 포함해 최대 147대의 구급차가 현장을 누비며 지금까지 8천800여 명을 이송했다. 철저한 예방으로 이송한 대원들이 감염되거나 전파가 되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필자가 있는 대구 서부소방서 구급대원들도 가족들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며 감염병 차단에 힘을 보탰다. 우리 서부 구급대원이 코로나19 출동으로 이동한 거리는 서울과 부산을 23번 왕복할 수 있을 정도였다.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후를 이야기하고 있다.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신문인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가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코로나 발생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과 생활 속 거리두기에 대한 우리 시민들의 꾸준한 참여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누그러지고 있지만, 최근 무증상 감염 및 재확진으로 인한 지역사회 전파와 재유행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우리 스스로 방역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한순간의 방심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힘들고 안타깝지만 우리가 경험한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자비가 없다. 우리 대원들도 환자를 이송하거나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할 때에도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소독과 감염 방지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바이러스는 우리 대원들의 선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 여러분들 스스로 방역과 안전의 주체와 대상이 되어 주어야 한다. 생활 속 거리두기 개인 방역은 5대 기본 수칙과 4개 보조 수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 수칙은 ①아프면 3, 4일 집에 머물기 ②사람과 사람 사이, 두 팔 간격 건강 거리두기 ③30초 손 씻기, 기침은 옷소매 ④매일 두 번 이상 환기, 주기적 소독 ⑤거리는 멀어져도 마음은 가까이 등 5가지이며, 보조 수칙은 ①마스크 착용 ②환경 소독 ③65세 이상 어르신 및 고위험 생활 수칙 준수 ④건강한 생활 습관 등 4가지다.우리는 이미 엄청난 사태를 온몸으로 견뎌낸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되 방심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지난 몇 개월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방역 활동에 더욱 담금질해야 한다. 앞서 여러 번 경험했다는 기억에 사로잡혀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기가 편한 대로 상황을 인식하려는 '경험의 역기능'을 경계한다면 코로나19를 물리친 자랑스러운 대구시민이 될 수 있다.

2020-05-25 15:30:00

[세계의 창] 미중의 대립과 한국의 슬기로운 선택

[세계의 창] 미중의 대립과 한국의 슬기로운 선택

중국은 1978년에 경제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 일본과 한국 등이 앞서 겪은 고도성장을 경험하면서 2010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 인권의 신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일당독재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태도는 국제적으로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소련의 붕괴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완성한 미국은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달성된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은 경제성장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 타이완 등에서 확인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환영하고, 경제성장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자신들이 믿었고, 확인된 사실 즉 시장이 경제성장을, 경제성장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로 이어지는 필연성이 중국에서는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회의를 갖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회의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미중 무역전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 MIT의 오터 교수가 중심이 된 연구팀이 발견한 미국 제조업 종사자 수 감소의 4분의 1이 중국 제품과의 경쟁으로 설명된다는 사실도 있지만, 인공지능, 5G, SNS, 로봇, 자동운전, 사물인터넷(IoT) 등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혁명에서 미국과 유일하게 경쟁하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사실 1978년 이후의 중국 개혁개방정책에 따른 공업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체제의 일부로 편입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이후 국가 간의 경제적 관계가 더 긴밀해져서, 각 나라가 자신의 비교우위를 살려 생산공정을 특화하고, 생산물을 중간재로 수출입을 하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 형성, 심화되어 갔다.대표적인 예로 애플사의 iPhone을 들 수 있다. 애플사는 생산공장을 직접 가지지 않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디자인과 판매 전략만을 담당하고,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부품을 조달, 중국에서 조립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가치사슬에 의해 생성된 부가가치는 참여국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가치사슬의 상류에 있는 미국이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한국과 일본이 그다음을, 중국에 주어지는 부가가치는 아주 적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옷, 신발, 가방 등도 선진국 기업들이 이처럼 생산공정을 여러 나라로 나누고 가치사슬을 연결하여 생산 판매를 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가치사슬 중 부가가치가 낮은 하류의 생산공정 대부분을 담당하면서 규모의 경제 이익을 취하고, 해외직접투자 유치와 기술이전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서 지위를 확립,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전체 수입의 40% 정도를 기계와 수송설비가, 10% 정도를 화학제품이 차지할 정도로 수출을 위해 필요한 생산설비와 부품을 대량으로 수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덕분에 2003년부터 한국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으로 바뀌었고, 한국의 제조업은 크게 성장했으며, 2011년에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다.그러나, 중국이 공업화를 추진할 때 나라를 개방해서 자유무역 체제의 일원으로 참가한 반면에, 디지털 혁명에 관해서는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서 폐쇄적인 노선을 견지하여 인공지능, 5G, SNS, 전기 자동차, 자동운전 등에서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규격으로 혁신을 이루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식재산권과 기술 유출 방지를 강화하면서 패권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압력을 높이고 있다. 또한, 코로나19가 2002년에 발생한 사스 때와는 달리 팬데믹이 되면서, 미국은 중국 힘의 원천인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려 하고 있다.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옛 속담처럼 우리에게 힘든 상황이지만,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에 경도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으며, 전 세계 시장으로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쪽을 선택하는 슬기로움이 있기를 바란다.

2020-05-25 15:30:00

[매일춘추] 박연(博淵) 속에서 금붕어으로  지다

[매일춘추] 박연(博淵) 속에서 금붕어으로 지다

이장희는 박연(博淵)속 자유를 꿈꾸며 살다간 시인이다. 박연(넓은 연못)은 모순적 조합으로 그의 짧은 생애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단어이며, 육필 원고조차 남기지 않은 그의 유일한 친필이다. 이 글귀는 자살 후 백기만이 펴낸 의 책 속에 사진으로 박제되어 있다. 이장희는 섬세하고 관능적이면서 특유의 회화적 기법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근대시의 선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반일과 항일의 지역문인인 이상화와 현진건, 이육사의 빛에 가려 오랫동안 저평가 받았다. 그는 1900년 대구 태생으로 초명은 양희이고, 아호는 고월이다. 20세에 장희로 개명한 뒤 1924년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하면서부터 줄곧 이 이름을 사용하였다. 시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계기도 그렇거니와 시적 세계관 구축에 있어서도 불우했던 유년기와 아버지와의 사상적 대립, 불화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음독자살로 인한 그의 이른 죽음도 이러한 시인이 처한 가족사적 현실의 모순과 갈등의 연장선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고월의 아버지는 이병학으로 대구에서 중추원 참의(參議)를 지내면서 실력자로서의 권력을 휘둘렀으며, 3명의 부인과 21명의 자녀를 두었다. 고월은 첫 번째 부인의 삼남으로 태어나 일찍 여읜 어머니를 대신한 두 계모와 배다른 형제들의 질시와 갈등 속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은 그를 내성적이고 시니컬한 성격으로 만들었다. 이병학은 1911년 오구라 다케노스케를 도와 남선합동전기회사의 전신인 대구전기회사 설립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2년 조선미술품제작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오구라가 조선의 문화재를 수탈하면서 만든 오구라콜렉션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년기의 가정환경과 친일 행적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대립, 삶의 불화에서 역설적으로 시인으로서 시발점과 시작 활동에서 표현되는 섬세하고 관능적인 기법의 근간을 찾을 수 있다.어린 시절부터 수재라 불리던 고월은 대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가업을 잇길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든든한 지원 속에서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망과는 달리 고월은 당시 일본에서 형성되던 근대시와 시인 하기와라 사쿠다로, 야마무라 보쵸오 등의 작품을 접하면서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시인으로서의 모습을 그려갔다. 본격적인 시작 활동은 목우 백기만의 주선으로 의 동인이 되면서부터인데, 1924년 등 4편을 시작으로 , , 등에 총 42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발표된 작품 중 34편만이 전하며 8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최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예술인들에 의해 아카이빙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한 그의 삶과 작품이 공연예술로 점진적으로 조명되고 있어 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물아홉 해라는 짧은 생을 자살로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닥에 자유로이 헤엄치는 금붕어를 그리며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한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냈던 이장희. 박연이라는 상반된 글귀처럼 자신만의 작지만 넓은 세계에서 최대의 저항을 하며 자유를 꿈꾸었을 그의 모습은 이제 옛 문우에 의해 몽타주로만 전하고 있다. 아카이빙된 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표박하고 있는 고월의 젊은 날의 초상이 지역 문화예술의 다양한 형태로 조금 더 풍성한 풍경으로 그려지기를 기대해 본다.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2020-05-25 11:42:09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이른 아침에]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달 7일, 기자회견을 끝내며 이용수 할머니가 한 말이다. 파장은 컸다. '이용수 할머니, 위안부 단체에 이용만 당해'라는 제목의 뉴스가 줄을 이었다.보통의 경우라면 뭐 이런 나쁜 사람들이 다 있냐며 화를 냈을 법도 한데 이번엔 좀 달랐다.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그랬다. 그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30여 년을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피해자 할머니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반인륜적 범죄의 진상을 밝힘으로써 더 나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래서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있고 나서도 감히 윤미향 당선자를 함부로 의심할 수가 없었다.오히려 정의연을 악의로 대하고 사태를 정쟁으로 몰고 가려는 듯해 보이는 몇몇 언론의 태도와 저의가 더 의심스러웠다. 그들은 왠지 신나고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정의연을 공격하는 단체들도 볼썽사나웠다. 소녀상 철거 주장에 이어 윤미향 당선자가 수요집회를 통해 성노예, 매춘 등의 개념을 청소년들에게 주입했다며 그를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고발하는 대목에 이르면 정의연에 대한 없던 호의도 생길 지경이었다.그런데 정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의심스럽다.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의혹이나 비난의 목소리 때문이 아니다. 검찰 수사 또한 지켜보면 될 일이다. 정작 정의연과 윤미향 당선자가 뭔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 건, 그리고 그게 갈수록 심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해명' 때문이다.이를테면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 날, 정의연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성금 1억원을 전달한 영수증을 공개했다. 피해자 할머니와 자신들이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라면서 말이다. 이건 낯설고 삭막하다. 설사 부모가 돈 때문에 화를 냈기로서니 돌아서기 무섭게 그 부모에게 얼마를 줬다며 영수증을 공개하는 자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그 태도로만 보면 그들에게 이용수 할머니는 이미 '저쪽 사람'이었다. 쉼터 관련 해명은 더 이상하다. 굳이 경기도 안성까지 간 이유, 건물을 비싸게 사서 싸게 되판 이유 등이 말은 될지 몰라도 납득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어쩜 그렇게 연달아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자신의 부친을 쉼터관리인으로 고용한 것에 대한 윤미향 당선자의 해명은 좀 기가 막힌다. 우리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는 건 시민운동 단체의 대표가 할 소리는 아니다.그리고 한나절 만에 말을 바꾼,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사게 된 경위에 대한 해명도 이해가 안 된다. 적금 3개를 깨고 가족들로부터 돈을 빌려 집을 샀던 겨우 8년 전 일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도무지 있을 것 같지가 않다.그들의 말처럼 정의연의 활동이 피해자 지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닌 건 맞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은 정의연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시작이며 끝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할머니들의 생각이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만큼 윤미향 당선자는 출마하기 전에 먼저 이용수 할머니에게 허락을 구했어야 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자고 했으면 그랬어야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쉼터 관련 해명에서도 당시 '상황이 급박해서'라고 했다. 앞으로 그 '급박한 상황'이 얼마나 더 생길지 모를 일이다.정의연은 국회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다른 시민운동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활동 이력은 금배지를 달기 위한 경력이 아니다. 이번 논란으로 친일파가 준동하는 것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왜곡하던 사람들이 정의를 떠벌리는 것도 문제지만 먼저 윤미향 당선자는 사퇴하는 게 맞다. 피해자 할머니가 가슴 아파 한다.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그리고 하나만 덧붙이면 윤미향 '당선인'이 아니라 윤미향 '당선자'가 맞다. 후보일 때는 '자'(者)였다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인'(人)이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헌법에도 당선자가 있을 뿐 당선인은 없다.

2020-05-24 15:52:11

[기고] 코로나19와 대구, K-방역…어느 119대원의 참여기

[기고] 코로나19와 대구, K-방역…어느 119대원의 참여기

"윙, 딩동." 오늘도 어김없이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생활수칙 안내문자가 온다. 마스크 착용과 수시로 손 씻고 소독하기, 한동안은 보고 싶은 친구와 친척들과도 모임 자제 등 우리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월 29일에는 최대 700명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대구시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전국은 물론 전 세계가 대구를 주목하고 있을 때 대구시와 의료진은 망연자실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방역과 생활수칙, 환자 이송, 확진자 관리 등 대구시의 발 빠른 대응 시스템으로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연일 사투를 벌였다. 생활치료센터 등 급박한 현장에서 대구만의 아이디어도 탄생했다.전국의 의료진이 자원봉사를 위해 대구로 몰려왔고, 소방청 동원령에 따라 전국의 구급차가 대구로 모여들었다. 대구시민들은 누군가에 의한 봉쇄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봉쇄를 선택했고 방역관리대책을 따르며 생활 속 불편을 감수했다. 전 국민이 "힘내라, 대구경북"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응원을 해주었다. 대구는 힘들었지만 외롭지 않았다.대구소방도 옛 두류정수장 자리에 집결지를 마련하고, 확진자를 하루 300~400명씩, 일일 최다 584명을 이송했다. 입기만 해도 땀범벅이 되는 보호복을 착용했다. 인천과 광주 등 왕복 6~8시간 거리를 이송해야 하는 구급대원들은 만일에 사태를 대비해 기저귀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누구 하나 불만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새벽까지 이어지는 환자 이송으로 인한 졸음과 보호복을 착용한 불편함보다 우리 대원들을 더욱 아프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환자들은 주변에 피해가 될까 봐 아파트 입구에선 구급차 소리를 꺼달라고 부탁했다. 이송해준 대원들에겐 고개를 숙이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감염 방지를 위해 비닐장갑을 끼고 나오라 안내했는데, 장갑이 없어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감싼 채 "죄송하다"며 훌쩍이는 20대 앳된 환자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이달 들어 대구에는 신규 환자가 발생하지 않는 날이 적지 않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대구시의 성공적인 방역 관리의 결과다. 하지만 아직 코로나19는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시민참여형 상시방역체계에 맞추어 고강도 7대 기본 생활수칙을 지키는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대형화재 현장에서도 큰불을 잡은 뒤 혹시 모를 잔불을 제거하는 데 전체 진화 시간의 90%를 할애한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도시이자 2·28민주운동의 발원지다. 대구시민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냈고, 많은 불편함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었다. 대구에선 누구나 악착같이 마스크를 쓴다.잔인한 3월, 희망찬 4월을 지나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이해인의 '5월의 시'에서)이다. 코로나19에 우리의 봄은 빼앗겼지만, 대한민국의 여름은 대구에서 희망을 되찾았다. 대구의 성공적인 방역이 대한민국의 방역 성공을 이끌어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코로나19를 극복한 K-방역은 '신한류'로 세계의 표준 모델이 되고 있다.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명대사를 떠올리며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외친다. "그 어려운 걸 우리가 또 해냅니다."

2020-05-24 15:51:39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획수도강’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획수도강’

예스러운 차림의 한 인물이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서 있어 얼핏 보면 신선도나 고사도(故事圖)처럼 보인다. 부채에 그리면서 그림 속 주인공도 깃털 부채를 든 재미있는 그림이다. 근대기 한국화가 이도영의 작품으로 '획수도강(畫水渡江)'으로 제목을 써넣었다. 제목 옆에 써넣은 글은 이렇다. 갑자(甲子) 중원일(中元日) 공축위옹(恭祝葦翁) 선생육십일세수(先生六十一歲壽)관재(貫齋) 풀어보면 1924년 7월 15일(음력)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 선생의 회갑에 이도영이 그려드린 축수도(祝壽圖)임을 알 수 있다. 생일이 더운 철이라 이 부채를 훨훨 부치시며 더위를 쫓고, 머리도 식히고, 나쁜 기운까지 날려 보내 더욱 장수하시라는 뜻을 담았을 것이다. 바로 전 해에 오세창은 2년 8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세창과 이도영은 인연이 길다. 오세창은 1906년 대한자강회를 이끌 때 이도영에게 교육부 간사원을 맡겼고, 1909년 창간한 『대한민보』에 제국주의 일본과 친일파를 풍자하는 시사 삽화를 그리게 했다. 이로 인해 이도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로 자리매김 된다.이도영은 자신을 이끌어준 오세창의 생일 때 그림을 그려 자주 선물을 했는데 이 해는 회갑이 되는 해였으므로 각별하게 아이디어를 낸 이 그림을 선물했다. "물을 가르고, 강을 건너다"라는 제목처럼 물결을 헤치고 강을 건너는 인물로 오세창을 그렸다. 획수(畫水)는 곧 획수(劃水)로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 주몽의 고사이다. 동명왕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장마로 넘치던 물이 가라앉는 신이(神異)한 일이 일어나 비류국이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못했다고 이규보의 장편서사시 「동명왕편」(1193년)에 나온다. 이규보가 동명왕을 문학화하며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자부심을 북돋웠듯이 이도영은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기 오세창의 분투를 동명왕에 빗댄 것이다. 머리에 쓴 상투관과 신선 풍 옷차림으로 동명왕이자 오세창을 나타냈는데 물을 내리치는 획수의 도구로 채찍 대신 우선(羽扇)을 든 것은 환갑의 오세창에게 어울리는 점잖은 물건으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획수는 독립운동사의 획기적 사건인 삼일운동에 독립선언문의 인쇄 책임을 맡았던 오세창의 구국적 행위를 나타내고, 도강은 오세창의 호와 연관된다. 물 위에 서서 맨 몸으로 강을 건너는 도강의 인물은 달마대사이다. 석가모니로부터 이어진 불교의 28번째 조사인 보리달마는 520년 남인도에서 중국 양나라로 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갈대 한 가지를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갔다는 일위도강(一葦渡江), 절려도강(折蘆渡江)의 고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세창의 호 위창의 갈대 위(葦)와 큰물을 뜻하는 창(滄)은 여기에서 나왔다. 아들 오일륙에 의하면 오세창은 김홍도의 달마그림을 애장했는데 평소 "나의 호는 이것이다"라고 했다.이도영은 오세창이 실천한 독립운동을 동명왕의 획수로 비유하고 오세창의 호 위창을 도강으로 풀이했다. 김유신 고사를 그린 '석굴수서(石崛授書)'를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역사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구상을 할 수 있었다. 오세창 선생은 개혁사상가, 개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으로 민족의 스승이시고, 서예가, 전각가, 서화 감식가, 서화 수집가, 미술사학자이신 한국미술사의 큰 스승이시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생각하며. 미술사 연구자

2020-05-24 06:30:00

[광장] 나는 인정받을 때 더 잘한다

[광장] 나는 인정받을 때 더 잘한다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한다. 칭찬이 없으면 불안하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할까 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일수록 인정 욕구는 간절해진다. 조직관리 전문가인 피터 브레그먼(Peter Bregman)은 미국 IT회사의 유능한 직원인 래리의 사례를 소개한다. 래리는 1억원이라는 통 큰 보너스를 받고도 돌연 사표를 냈다. 그의 팀장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책상 위에 수표를 놓고 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래리의 지갑은 채워졌지만 심리적 보상은 충족되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보상은 당신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물론 물질적 보상은 인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두 달에 한 번씩 보너스를 주는 회사가 왜 존재하겠는가. 물질적 보상이 지나치게 적으면 근로 의욕의 저하나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물질적 보상이 2배 늘어났다고 해서 근로 의욕이 2배 또는 그 이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 등 외적 보상은 휘발성 높은 알코올이나 복용량이 늘어나는 진통제와 같다. 직원이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방법일 뿐, 오로지 돈 때문에 하는 일로 변질되거나 금세 그 이상의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특히 변화가 빠른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외부의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인정이라는 중독에 취약하다. 회사에만 가면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는 직장인들의 호소가 그 방증이다. 인정 욕구의 결여는 절망과 분노를 야기하고, 오히려 다른 물질적 보상을 통해 그 허기를 채우려 하게 된다.우리 사회는 여전히 칭찬에 인색하기만 하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한다고 해서 모든 이가 항상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가급적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바쁘다거나 질투, 경쟁심과 같이 칭찬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의해 정신적인 인정은 결여되고 물질적인 보상에만 그치게 된다. 리더라면 직원들의 노력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감사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칭찬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일치한다고 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보너스를 준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칭찬은 가성비 최고의 방법이지 않은가.물질적 보상과 정신적 보상은 인정 욕구를 구성하는 2개의 축이다. 전자는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후자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 개인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느 쪽에 더 방점을 찍느냐는 문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는 인간은 삶의 전 차원에 걸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고 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인정할 때다. 인정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열정 엔진이 돌아가게 하는 연료다. 인정 욕구는 사람마다 요구 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타인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2020-05-22 17:30:00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춘추칼럼] 한 사람의 힘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는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2020)라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전염병은 어쩌면 지금 꼭 필요한 '생각으로의 초대'일지도 모른다. 유예된 활동, 격리된 시간들은 그 초대에 응할 기회이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우리는 단지 인간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 섬세하고 숭고한 생태계에서 우리야말로 가장 침략적인 종이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서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고 말한다.정확한 지적이다. 이 '전염의 시대'에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거나 쓸모없는 생각을 한다. 그저 매일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보면서 불안과 안도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 불안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확산 주범을 찾아 분노하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빠져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인지,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다. 하지만 묻는 이들도 알고 있다. 여기에 정확한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그저 서로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잠시나마 불안을 떨쳐보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예측은 빗나가고, 막연한 희망은 무너진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지연될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다시 제자리에 서 있다. 이 지연과 반복을 견디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의 한복판에서 그나마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건너가고 있는 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이르게 된 인류의 삶을 생각하고, 언젠가 종식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상황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국가의 역할과 정체성, 기본소득의 필요성, 수많은 방역과 검사와 역학조사, 진료 등을 통해 지방정부와 공공의료에 대해 생각한다. 일상의 변화에 따라 삶과 인생, 가족, 공동체, 생태환경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한다.그중에서도 '감염'과 '전염'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본다. 언론에 보도된 '학원강사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라는 감염 경로는 '한 사람'이 어디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일터와 삶터를 통해 만나는 타인에게 일종의 '감염'이 진행되고, 감염된 주체는 또 다른 타인을 감염시킨다. 이렇게 반복되는 감염이 결국 전염으로 이어지는 것이다.모든 전염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귀하다는 말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 대란이 고작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한 사람은 대구 신천지 신도나 인천 학원강사의 사례처럼 부정적인 사례인 것은 맞지만, 역설적으로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생각해보면 다른 상상이 가능하다. 바이러스 감염의 주범으로서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감염시키고 확산시키는 '한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힘'을 생각하자는 말이다. 이때 '힘'은 일방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효과'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이 무제한적인 힘을 행사함으로써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와 관계, 우연성, 상호성 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것이다. 한 사람이 의도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시작점을 찍는 행위에 가깝다. '한 사람'은 악하고 부정적인 것의 숙주가 될 수도 있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나누는 최소이자 최선의 단위이다.그 '한 사람의 힘'을 주목해보자.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 동물, 풍경에 보내는 눈빛과 몸짓, 말이 모여 그 사람이 감염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상상해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공존과 협력, 연대와 희망, 우정과 환대, 공감과 위로, 감동과 찬사를 전파하고 전염시키자.

2020-05-21 17:30:00

[매일춘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그 사이

[매일춘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 작곡을 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일이 즐거운지,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회사원을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말이다. 직업에 있어서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난 내 삶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게 된다.매일 스케줄이 다른 나는 하루를 마무리 하는 저녁에 다이어리를 꺼내 해야 할 일을 적는다. 내일 안에 다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잔뜩 내 가득 적어 내려간 후, 무엇을 먼저 처리하고 어떤 일이 더 중요한지를 따져 색깔이 있는 펜으로 밑줄까지 긋는다. 근데 이 밑줄을 긋고 일의 중요도를 따져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 치부하고 고집 부려보지만 마음은 그게 아니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주어진 삶의 권리와 의무로 생각할 수 있다.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이 질문에서의 긴 방황을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오히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중학교 2학년부터 전공을 해온 나에게 작곡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보통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는 전공자는 다른 일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 길만을 걸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갈등과 시련의 연속이기도 하고, 가슴 뛰고 떨림이 가득한 시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엄청난 두려움이 날 엄습하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생각하는 설레는 가슴이, 저녁 잠자리에 들쯤이면 피로와 갈등, 상처로 범벅이 돼 하고 싶은 일이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돼 있기도 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야 하는 일을 해오다보니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있었고, 그런 내가 되기까지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였다.무언가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하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험을 하고, 실패를 하고, 다시 일어섬을 반복한다. 그러한 반복 속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하나로 합쳐지도록 묶는 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아닐까. 가야만 할 귀중한 삶의 길에서 너무 많은 고민으로 때를 놓칠 바에는 도전해보자. 새로움을 찾아가도 좋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이 되도록 기다려도 좋다.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만 되어 있다면, 완벽한 내일을 위해 조금은 부족한 오늘로부터 시작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면, 까짓거 해보자!나의 위치와 일이 바뀌더라도 그 시행착오 속에 얻은 나의 경험치는 그대로 남아 있을테고, 그 경험치가 또 다른 하고 싶은 일로 데려다 줄 것이고, 그것 하나로도 모든 것을 걸어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박성미 작곡가

2020-05-21 17:30:00

[매일춘추] 설렘과 꿈의 자리

[매일춘추] 설렘과 꿈의 자리

많은 현대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약간의 틈이라도 생길 때면 여행을 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떠난 순간의 즐거움보다는 출발 전에 미리 계획하고, 일정을 정리하면서의 설렘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이 주는 약간의 긴장감과 루틴에서 벗어나 즐기는 일탈이 아드레날린을 잔뜩 솟구치게 하기에 늘 여행을 동경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재미와 휴식을 위한 1차원적 욕구 해소의 여행에서 일과 삶, 꿈이 공존하는 다차원적 쪽으로 여행의 이유가 조금씩 옮겨가는 듯하다. 나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떠나는 것인가.처음 런던을 갔을 때, 보통의 여행자들과 같이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여러 상징물들을 실물로 맞닥뜨리면서 흥분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난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런던의 곳곳에 숨어있는 문학과 예술의 정취가 또 그것을 대한 영국인들의 태도가 참 좋았다. 그렇게 템스강을 따라 길을 걷던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한 건물이 나타났다. 17세기 셰익스피어 시절의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었다. 원래의 자리에서 고작 230m 떨어진 곳에 1997년에 개관한 글로브는 연중 셰익스피어의 희•비극들로 공연 라인업이 채워진다. 직접 들어가 본 극장 안은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으로 둘러진 객석이 3층으로 감싸고 있었고, 무대 앞에 펼쳐진 마당은 지붕이 없어 뻥 뚫려 비가 내리침에도 불구하고 3시간도 넘는 공연시간 동안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는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2016년, 딤프(DIMF)에서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가 중국 하얼빈에 진출하는 성과가 있었다. 순수 국내 창작뮤지컬이 해외 초청을 받아 공연 한다는 것이 이례적이었기에 큰 성과라는 평이 많았고, 특히 하얼빈오페라하우스의 개관작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라 더 뜻 깊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들은 터라 막연한 두려움이었을까? 배우들과 스태프를 인솔해야 하는 부담감이 더해져 긴장감만 가득했다. 하지만 극장을 처음으로 마주하던 순간, 습지 위에 세워진 모던한 형태의 극장 건물이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뤄 신비로움 자아냈고, 진정한 '대륙'의 스케일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또한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이 수려하기까지 했던 극장 내부를 보았을 때의 그 전율을 잊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은 할까?오늘도 마스크를 쓰고 신천을 따라 가볍게 걸어본다.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와볼까 생각하며 시선을 멀리 떨어트려 본다.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인지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모습을 지나 여러 다리들과 저 멀리에는 반짝반짝 관람차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도 템스강을 걷다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셰익스피어 글로브와 습지 사이로 위용을 드러내던 하얼빈오페라하우스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만약 '뮤지컬 도시 대구',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대구에도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과도 같은 근사한 뮤지컬 전용극장이 하나 있다면? 신천을 걷는 시민들, 멀리서 극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여행 이상의 설렘과 꿈을 심어줄 수 있진 않을까.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2020-05-21 14:00:37

[기고] 코로나19를 통한 ‘K-재난구호’ 모델의 발견

[기고] 코로나19를 통한 ‘K-재난구호’ 모델의 발견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417만 명, 사망자 28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감염병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와 청도·경산·봉화 등 경북 일부 지역에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이뤄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안정을 위해 의료진의 뜨거운 헌신과 방역 당국 및 대구경북 시민을 시작으로 온 국민이 전심으로 협력하여 이루어낸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성공으로 눈에 띄게 진정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제 사회로부터 호평을 받은 'K-방역'이 세계의 방역 모델 표준이 되고 있다.사실 방역 모델뿐만 아니라 민간기관의 재난구호 활동 역시 'K-재난구호'라고 불릴 만하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사회재난으로는 역대 최대인 약 2천520억원의 국민 성금이 모아졌다. 국민 성금은 긴급구호는 물론 제도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재난 취약계층 지원 등에 폭넓게 사용되어 지역사회 감염 확산 방지와 대응 그리고 다음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는 재난관리 전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우리나라 민간단체의 재난구호 지원은 놀라울 정도이다. 대표적인 구호 및 모금 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등 3개 기관이 코로나19 재난구호를 위해 제공한 마스크만 4월 중순 기준으로 약 2천731만 장에 달한다. 그 가운데 947억원이라는 소중한 돈이 재난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에 기탁되었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현재까지 마스크, 손소독제,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생필품 키트, 자가격리자 식료품 키트, 의료진 응원 키트 등 다양한 구호 물품 약 529만여 점을 대구경북 중심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대구경북의 침체된 지역 경제 활성 및 안전 취약계층 생활안정 지원을 위해 상품권 193억원이 지원되었다. 일선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전국 의료진에게도 건강 키트 1만6천 세트를 지원했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에 맞춰 전국 중·고등학교의 정보 소외계층 학생을 대상으로 스마트 패드 3만 대를 지원했다.특히 대구경북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아동센터·척수장애인협회와 골목식당을 연계한 도시락 지원과 대구경북 봉제 기업들과 연계한 경북형 면 마스크 지원, 지역자율방재단과 함께한 다중이용시설 방역 작업 등은 고용 유지 및 창출 등 지역 공동체 상생협력 모델로도 훌륭하다.민간 구호기관들은 지자체와 협력하여 국가가 지원해야 할 그리고 아직 제도상 미비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영역과 다양한 대상의 재난구호까지 묵묵히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초기,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의 임시생활시설에 머물렀던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 및 유학생들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응급구호 세트가 아닌 기업과 희망브리지가 사전에 제작한 긴급구호 키트와 생수, 위생용품, 생활용품 등의 지원이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가 구호를 하든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국민 모두가 너무나 어려운 때이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귀한 돈과 소중한 물품을 기부해 주신 국민과 기업들, 'K-재난구호'를 만든 보이지 않는 이들이 진정한 우리의 영웅이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2020-05-21 11:03:03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통찰력은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탄생한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통찰력은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탄생한다

통찰력(insight)라는 단어는 정말 매력적이다. in이라는 접두어는 '안'을 의미한다. sight는 보는 것이다. 즉, 인사이트는 안을 보는 것이다. 참 오묘한 단어이다. 밖에서 안을 어찌 꿰뚫어 본다는 말인가.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속에 보석이 있을지 똥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사이트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광고인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능력 중 하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까? 이제 겨우 40대인 내가 인사이트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다. 하지만 강연을 다닐 때마다 이런 질문을 늘 받으니 아는 만큼 설명해 드리고 싶다.인사이트는 작은 것을 크게 사랑할 때 얻을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실 말이 좋지,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 혼자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세상에 무슨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단 말인가.하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끝판왕 격인 구절이 등장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힘드니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선에서 합의를 보자.어느 여름날,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로등에 벌레, 파리, 모기들이 엄청나게 꼬여 있었다. 여름철 흔히 볼 수 있는 가로등의 모습이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게 가로등이어서 그렇지. 사람 같았으면 엄청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하지만, 이게 웬걸,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지구 정반대편의 아프리카 아이들. 어릴 적 TV에서 본 그 친구들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굴에는 파리가 들끓었고, 몸에는 벌레가 붙어 있었다. 가로수 등을 보며 그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동시에 번쩍하고 이미지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그래 이거다. 가로수 등에 아프리카 아이 얼굴만 붙여두자. 스티커 한 장으로 공익 광고가 될 수 있겠다!'하지만 메시지가 관건이었다. 밤에 벌레들이 꼬인 얼굴이 된다 해도 광고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의미 정박이 필요했다. 벌레가 꼬인다는 건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말라리아라는 병이 벌레 물림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가 유행이다. 모기장을 기부해달라는 메시지는 어떨까? 고민했다. 모기장을 받을 수 있다면 자는 순간에라도 편히 잘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말라리아라는 병에서도 한발 물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냥 널빤지에 모기장을 기부해달란 카피를 쓰기엔 뭔가 심심했다. 낮엔 보이지 않는 카피지만 밤에 그 카피가 노출된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아프리카 아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등의 아랫부분에 카피를 거꾸로 붙였다. 이렇게 되면 낮에 카피가 보이지 않는다. (가로수 등 뒤에 감춰져 있으므로) 그리고 가로수 폴대에 널빤지를 붙여뒀다. 이렇게 되면 밤에 불이 들어왔을 때 카피가 널빤지에 비치게 된다. 거꾸로 붙여둔 글이니 반사되면 그대로 보인다. 결국, 거꾸로 써둔 donate mosquito net(모기장을 기부해주세요)이라는 카피가 제대로 보였다. 나는 광고에 이런 장치들을 숨겨두었다. 낮엔 사람들이 이 광고를 당연히 지나쳤다. 아무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광고가 되었다. 스티커와 벌레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임팩트를 줬기 때문이다. 나는 광고에서 이런 점을 꼬집고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관심한 사람들. 눈에 보여야 비로소 이타심을 갖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고 싶었다.슬프게도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로 살았다. 하지만 이런 공익 광고를 만들었으니 조금 양심의 가책을 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뉴스에서 봤던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에 충격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광고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내게 그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조금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 사랑이 이런 아이디어를 만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인사이트는 그렇게 작은 것도 크게 사랑할 수 있을 때 탄생한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20-05-21 10:08:58

[찬란한 예술의 기억] 카잘스와 번스타인이 응원한 대구

[찬란한 예술의 기억] 카잘스와 번스타인이 응원한 대구

'대구교향악단 창단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단체는 한국에 있는 음악가들, 음악 애호가들을 비롯해 일반 사람들 모두에게 행복과 문화적 충만함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한다. 음악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소통되는 신비로운 언어이며,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신의 선물임을 믿는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대구방송교향악단(대구시향의 전신) 창단 연주회를 축하하며 보낸 편지의 일부다. 1963년 2월 28일, 대구시향 창단을 한 해 앞둔 때였다. 1960년대 초반,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던 시기에 교향악단이 창단되고, 세계적인 음악가가 축하 편지까지 보냈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이기홍(1926~2018) 지휘자를 비롯한 음악가들은 6·25전쟁 직후부터 교향악 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으로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7년 대구현악회를 창단하고 뒤이어 대구교향악단, 대구관현악단 등으로 변모시켰지만, 항상 자금난에 허덕여야 했다. 안정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단체로 자리 잡게 하려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모아야 했다. 우선 대구방송국(KBS대구방송의 전신) 사장을 설득해 후원을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더 노력해야 했다. 이들이 생각한 방법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우편 상황이 좋았을 리 없는데도 세계 무대에 이름난 음악가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찾아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소식을 알렸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친 이들의 진심이 국경을 넘어서도 통했던 것일까. '그들'이 일제히 회답해왔다. 명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피에르 몽퇴, 유진 오르만디, 스토코프스키,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첼리스트 카잘스 등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짧은 축하 전보를 보내왔지만, 카잘스는 특별히 한 장 분량의 편지를 친필 사인까지 해서 보냈다.세계적으로 이름난 80대 후반의 첼리스트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 작은 도시의 오케스트라 창단 소식에 상당한 분량의 편지를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공연 날짜에 맞춰서 편지가 도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문구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살펴보면 카잘스의 이름 앞에는 항상 '휴머니즘'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카잘스의 조국은 에스파냐 왕정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부단히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카탈루냐다. 약소민족의 일원으로서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삶을 온몸으로 겪은 카잘스에게,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과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던 한국의 음악가들이 보낸 SOS는 특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카잘스의 편지는 대구방송교향악단 창단 연주회가 끝나고 한 달가량 뒤에야 도착했지만, 그 편지를 받은 대구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의 상처, 그리고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 말이다.이기홍 지휘자는 생전에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다. 숙원이 이루어져야만 그 가치가 높다. 현재 대구의 음악계는 교향악 운동을 하면서 오로지 음악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음악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이 지휘자는 어려운 시기 자신들을 응원해준 예술가들의 메시지들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서재 깊숙이 들어있던 그들의 편지가 얼마 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의 가족이 유품 중 일부를 대구시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예술에 평생을 바친 선생의 뜻을 기리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예술가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카잘스의 말처럼, 이기홍 선생을 비롯한 이 땅의 예술가들은 보다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생을 살아오신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그 정신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20-05-20 17:3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계성학교와 독립운동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계성학교와 독립운동

계성학교는 1906년 10월 15일 미국 북장로계 선교사 아담스에 의해 약전골목 구(舊) 제일교회 내 선교사 사택을 임시 교사(校舍)로 개교하였다가 2년 뒤에 대신동 동산에 2층 양옥의 아담스관을 개축하면서 자리를 옮겼으며, 1912년 6월 17일 사립 계성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1919년 3월 8일에 이만집(남성정교회 목사), 김태련(남산교회 조사), 김영서(신정교회 장로 겸 계성학교 교감) 등은 계성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신명여학교, 성경학교 강습생들과 함께 서문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다짐하였다. 이에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고, 3월 8일에 이만집, 김태련, 김영서 등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자, 학생들과 시민 등 1천여 명이 뒤따라 행렬에 동참하였다. 독립만세를 부르짖던 시민들과 학생들은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 부근)에 다다른 후, 일본군 보병 80연대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고 강제해산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157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71명이 구형을 받았는데, 계성학교 교감 1명, 교사 4명, 학생 35명이 징역 6개월에서 3년형까지 선고받았다.이외에도 계성학교 학생들은 대구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발족된 자제단에 항거하여, 만세운동을 방해한 대구경찰서장 시라이와 자제단장 박중양을 암살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계성학교 학생들은 보다 조직적인 투쟁을 실천하고자 1919년 4월 17일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였다. 혜성단은 독립에 관한 각종 문서를 제작하여 배포하였고, 독립운동이 활발한 만주 방면에 단원을 파견하여 국내외의 항일투쟁을 연결시키고자 도모하였으며, 민족자본가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발송하기도 하였으나, 그해 5월 중순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해체되었다.다음으로 계성학교를 다녔던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면, 고인덕(1887~1923)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한 후 이종암과 협력하여 최수봉에게 폭탄 2개를 건네주었고,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그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감행하였다. 또한 그는 밀양읍 교회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안락의 본(本)은 고초에 있다'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는 이종암과 함께 동경 거사 준비와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는데(경북의열단 사건),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악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대구형무소에서 자정순국하였다.이윤재(1888~1943)는 경남 김해 출생으로, 김해 함영학교·합성학교·마산 창신학교·의신여학교·영변 숭덕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역사를 가르쳤다. 그는 1924년 이승훈이 건립한 정주 오산학교 교원으로 지내다가, 1925년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여 기관지 「동광」(東光)을 발행하는 데 힘썼다. 한때 그는 윤우열이 작성한 '허무당선언서'에 연루되어 갑종요시찰인으로 낙인된 적도 있었다. 훗날 조선어학회 간사로 활동하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마련하였고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의 편집을 맡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되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온갖 고초와 극형을 버티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순국하였다.김단야(본명 김태연·1900?~1938)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는데, 상해로 망명하여 한인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단에 가입하였다. 그는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와 극동청년대회에 고려공산청년단 대표로 참석하여 레닌과 직접 면담하기도 하였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하였고,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기관지 「불꽃」의 주필로도 활약하였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와해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일제의 밀정으로 몰려 1급 범죄자라는 혐의를 받고 모스크바에서 처형되었다.

2020-05-20 17:30:00

[홍성걸의 새론새평] 어느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본 5·18

[홍성걸의 새론새평] 어느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본 5·18

1979년 유신체제 말기 대학에 입학한 나는 시위 구호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기를 보냈다. 법학통론과 헌법 과목을 처음 접하면서 대통령 긴급조치권과 국회의원 3분의 1 지명권, 7년 임기에 중임제한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이 법 같지도 않아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아련하다.10·26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진 후 1980년의 봄을 만끽하던 우리는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반대해 다시 시위 속에 몸을 실었다. 5월 중순, 서울 시내는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의 집단시위 속에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했고 곳곳에서 시위대와 진압경찰 간 충돌로 많은 학생들이 다쳤다. 5월 15일에 절정을 이루었던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던 17일, 갑자기 계엄령의 전국 확대가 발동되었다. 이때 광주에서는 민간인을 향한 발포와 무력 진압으로 차마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까맣게 몰랐었다.1980년 5월 광주는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그곳이 대한민국이었다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국민인 광주시민을 그토록 참혹하게 짓밟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광주 시민을 향한 신군부의 무력 진압은 있을 수 없는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고,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진상조사와 처벌,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밝히지 못한 사실이 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하려는 진상조사에 당연히 동의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동안 비밀로 분류되었던 미국 측의 많은 기록이 해제되었으니 사실관계를 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대통령의 말처럼 처벌을 위한 조사가 아니라 역사를 바르게 전하기 위한 기록 차원에서라도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다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서 몇 가지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먼저 진상조사는 모든 선입견과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재 찾고자 하는 발포 명령 책임자의 경우, 명령자가 있었다는 전제로 접근하기보다 당시의 상황적 증거와 가용 자료들, 그리고 명확한 사실관계 증언들을 바탕으로 찾되, 밝히지 못한다면 후세에 확인될 수 있도록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계엄군으로 동원되어 진압을 담당했던 군인들도 가해자의 시각만이 아니라 그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수의 진압 군인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우리의 자식이요 형제였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진압작전에 투입되어 평생을 죄의식 속에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진압에 동원된 장병들 중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었다. 그들도 국민이다. 이렇게 접근할 때, 비로소 당시 진압군 입장에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앞에서 진실을 증언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끝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포함 문제는 대통령의 지시나 생각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수많은 중요 사건이나 운동 중 오직 3·1운동과 4·19만 포함되었고, 거기에는 뚜렷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3·1운동은 임시정부 설립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선포하였기에 그 법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4·19 민주항쟁은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3·15 부정선거와 독재를 타도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대표적 민주이념으로 헌법 전문에 포함된 것이다.5·18은 민주항쟁이지만 본질적으로 광주 지역에 국한된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그래서 3·1운동이나 4·19정신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없다. 만일 5·18이 포함되어야 한다면 과거 일제강점하에서 일본의 압제에 항거했던 광주학생운동이나 광복 직후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일어섰던 신의주 학생의거 등 모든 지역적 저항들도 헌법 전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도 마찬가지다.5·18 광주민주항쟁은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다.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그리고 광범위한 진실 규명을 통해 화해와 통합의 새 출발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0-05-20 16:02:51

[기고] 통합당, 준비행위를 혁명적으로 하라

[기고] 통합당, 준비행위를 혁명적으로 하라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준비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준비행위가 기회를 얻도록 한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맏아들이 승계를 받을 준비행위가 되어 있지 않아 승계를 하지 않았으며, 홍종렬 전 고려제강그룹 회장도 장남이 승계를 받을 준비행위가 안 되어 승계하지 않았다.축구, 야구, 농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서도 준비행위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유능한 감독, 우수 선수 확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한 강한 훈련 등의 준비행위에 사활을 건다.미래통합당은 과연 어떠한가? 준비행위가 그지없이 부족했다. 위기의 절정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어느 조직, 어느 국가 할 것 없이 똘똘 뭉쳐 대응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인 것이다.그들은 내부를 향해 사정없이 총질을 해댔다. 그것도 모자라 적들과 내통하며 야합까지 하였다.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인데 내부를 침몰시키는 데 급급하기만 하였다.더불어민주당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조국 사태는 역사에서 보기 쉽지 않은 큰 사건이었다. 그때 그들이 보여준 단결력은 대단했다. 똘똘 뭉쳐 어느 누구도 방해 못 하도록 공격하고 싸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위기를 막았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자연법칙과 같은 진리를 미래통합당, 그들은 외면하면서 적과 공동전선을 펼친 것이다. 보다 더 크게 시대 상황을 냉철하게 보아야 했고 자기 성찰의 준비행위가 있어야 했다. 사적 감정과 표피성과 단순성은 도를 넘고 있다. 당 최고지도자 선정에서 무지가 그대로 나타났다. 정치가의 최소한의 요건인 지혜와 용맹, 의(義)와 도(道)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도, 고려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문 공부에서 천자문(千字文)을 익히는 것과 같은 기초적인 것이다.항간에 40대론, 또는 1970년 이후 출생의 경제통을 운운하고 있다. 또다시 불안케 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한 모퉁이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무총리 그것 하나만을 보고 당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한 것과 같은 것의 편향인 것이다. 4·15 총선 참패가 여기에서부터 온 것인데도 그 길을 다시 걸어가려 한다.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을 단편적이고 단순성으로 결정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명약관화한데도 말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통이어서 오늘의 이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였던가! 높이 보고 크게 보고 넓게 보고 깊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살고 부흥키 위해서는 박정희와 같은 제2의 인물이 나와야 한다. 박정희 같은 지도자란 높은 애국심과 역사 인식, 용기,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도전 정신, 창조적 정신, 개척 정신, 리더십, 통찰력, 결단력, 공감을 통한 국민 동원력을 갖춘 것을 말한다.미래통합당은 갈림길, 막다른 길에 와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는 지체 없이 험난한 길과 장애물을 헤치며 뛰는 것이다. 혁명적이어야 한다. 철저한 준비행위와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그리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보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집권은 요원할 것이다.우리 국민 모두가 제2의 박정희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2020-05-20 15:56:09

[매일춘추] 오월의 노래

[매일춘추] 오월의 노래

1968년 3월 프랑스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것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사무실을 급습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5월에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마침내 노동자들까지 총파업을 하게 된 이들의 사회변혁 운동을 두고 '5월 혁명' 또는 '68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혁명은 미국의 반전운동, 여성해방 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세계 시민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를 한층 진화시킨 일대 사건이 되어준 셈이다. 당시 그 나라의 혼란은 정제(精製)를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혁명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폭정과 무책임한 정부를 침묵하지 않고 나선 정의로운 시민의식 때문이다. 적폐의 첫술은 항상 생계를 이유로 불의를 보고도 참아내는 비겁이 아니었던가.1894년 3월과 9월, 이 땅에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동학(천도교)은 당시 경주의 몰락 양반이었던 최제우가 1860년 서학(천주교)에 맞서 창시한 민족종교였다. 주된 교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란 의미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이었다. 이에 전봉준은 고부 군수였던 탐관오리 조병갑을 척결하기 위해 농민들의 힘을 결집했고, 과연 가공할 만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동학혁명은 청나라와 일본의 첨병 역할에 충실했던 당시 사대부들에 의해 실패했지만, 그 불씨가 살아남아 5·18민주화운동으로 다시 피어올랐다. 17년 만에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 동학농민혁명은 125년이 지난 2019년 5월 11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5월 1일 제정된 근로자의 날은 1986년 미국의 총파업을 기념하는 날이다. 1970년 11월 13일은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는 구호를 외치고 세상을 떠난 날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출생한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노동운동이 있었던가. 이토록 간절한 외침이 또 있었던가. 그가 분신한 그 날을 대한민국 근로자의 날로 제정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다.올해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무차별 양민 학살의 만행이 이루어진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 들어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 망월동 5·18 묘역을 찾는 인사들이 많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되려면 먼저 진보와 보수진영의 보상심리와 생색내기부터 털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대화합이라는 숙원사업을 이루어낼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정권 재창출의 기회나 수단으로 쓰여선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5월이다. 어린이날을 필두로 해서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다양한 기념일들이 모여 있는 달이다. 화해와 감사가 가득한 달이기도 한다. 나폴레옹조차 찬사를 보냈던 독일의 문호 괴테는 찬란한 5월의 햇빛과 자신과 소녀의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했다. 5월을 노래한 또 한 명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5월의 하루를 잎사귀들의 향기로운 불꽃 사이로 너와 함께, 서로에게 사무친 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5월은 어떤 의미일까. 배웅보다 마중은 어떠할지.김사윤 시인

2020-05-20 15:17:09

[종교칼럼]행복은 연결 되어 있다

[종교칼럼]행복은 연결 되어 있다

5월의 숲은 어머니를 닮았다. 모든 생명들이 왕성하다. 연초록 잎들이 청색으로 변한 숲에는 연령초 등 야생화들이 만발하다. 그 속에 새들이 집을 짓고 알을 품는다.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 이루어지고 치유와 회복의 순환을 이어간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아낌없이 내어준다. 맑은 아침이면 뻐꾹새 우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늘 고향에 온 것 같다.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오빠 생각」 동요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말 타고 서울 가신 오빠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나뭇잎 우수수 떨어진 가을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여러 차례 물러간다던 코로나가 언제 물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기다림의 나날을 살아가라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숲이 파괴되면 생명들은 어디서 살아 갈 수 있을까? 흙과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사람과 동물들이 다르지 않다. 인간보다 먹이사슬에서 열등한 동물이 환경오염으로 모두 사라지면 사람과 생명이 살 수 없다. 인간과 모든 생물은 생태계에 의존하여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유지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행복과 평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번 코로나는 '너'와 '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건강하거나 또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회복되어도 다른 사람이 진행 중이라면 다시 감염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코로나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일이 자신을 돕는 일이다. 전염병은 온 인류가 하나의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만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적극적인 이타행이 나를 위한 길이다. 다른 존재를 사랑함으로써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내가 설 수 있는 땅은 발바닥이 닿는 한 뼘의 조그마한 땅뿐이다. 얼마 안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서 있는 이외의 땅을 다 파내 버리면 어떻게 될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머지않아 자신이 서 있는 땅도 무너지고 만다. 연관되어 있음을 모르면 자신도 불행해진다. 나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받으려면 겸손, 친절해야 하고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존재와 대상은 나의 행복을 위해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의 행복과 안녕은 타인 그리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사회적 안녕'이 높아져야 한다.사회적 안녕은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가능하다. 사회를 위한 행동은 자신을 위하는 것과 절대 대립하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를 보면 이타적 행동은 건강·장수와 상관관계가 높다. 다른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행복감이나 활력이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정신 면역을 높여준다.애벌레는 나뭇잎을 다 갉아먹지 않는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자신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벌레도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지혜가 있는 걸까?달라이 라마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따로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위대한 인물들은 자신을 위해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헌신의 삶을 살았더니 위대해졌다고 한다.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아니라 상의 상관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緣起)에 눈뜰 때 따뜻한 사랑이 피어난다. 그리고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진다.5월의 정원은 꽃들로 하모니를 이룬다. 화려한 목단이 지고 나니 작약이 뒤를 이어 피어나고 이팝나무가 하얀 쌀을 뒤집어쓴 듯 장관이다. 노란 송홧가루가 온 집 안을 뒤덮고 닦고 닦아도 끝이 없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오고 불두화가 뭉글뭉글 피어나 맺힌다. 뒤뜰 대숲에는 죽순이 땅을 헤집고 올라온다. 거리에는 장미 넝쿨이 붉은 꽃과 향기를 나른다. 생명들은 세상과 연결되어 자신의 참된 모습을 평화롭게 드러내고 행복을 전한다.

2020-05-20 15:10:4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내 개가 물건이라고?"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내 개가 물건이라고?"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체리(푸들·2살)가 교통사고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대기실이 소란스러워서 나와보니 사고를 낸 운전자와 보호자 간에 고성으로 언쟁이 오가고 있었다. "치료비를 다 보상할 수 없다"는 운전자의 주장과 "아이가 다쳤는데 빠져나갈 궁리 만 한다"는 보호자의 주장이 맞부딪혔다.급기야 경찰이 왔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후에야 소동은 가라앉았다. 보호자는 개가 다쳐서 황망스러운 상황에 운전자가 위로는 커녕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 탓에 더 화가 치밀었다 하셨다.경찰의 판단은 냉정했다. 개 교통사고는 인명사고가 아니라 대물사고니까 보호자는 운전자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가입해둔 보험사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크게 낙담했다. "내 개가 물건이라니…."우리나라 민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다. 개와 고양이를 가족이라 부르며 동물보호가 시대 정서로 공감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법과 현실 사이엔 괴리가 있다.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는 이면에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원인이기도 하다.체리의 경우를 법리적으로 해석해보면 운전자가 누군가의 물건을 손상시켰으니 보험사는 운전자의 과실을 대신하여 동물 치료비, 즉 물건을 수리하는데 해당하는 비용을 보상해주어야 한다. 반려동물의료보험이 생명보험사가 아닌 손해보험사에서 취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동물을 개인의 소유물로 여길 경우 생명을 경시하고 학대하는 행위가 얼마나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지 그 사례를 소개한다.2016년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고발된 '강아지 공장'은 동물이 돈벌이에 눈이 먼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잔혹하게 학대받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뜰창에서 살아가는 번식견의 처참한 모습, 불법 마약류를 투약하며 이뤄진 잔혹한 제왕절개수술, 호르몬과 항생제를 남용하는 불법진료 행위들이 만연해 있었다.국민들을 공분케 했던 사건의 학대 당사자는 의외로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당시 동물학대죄에 대한 판례는 대부분 경미한 벌금형에 불과했으며, 불법 수술과 자가진료 행위들은 명백한 수의사법 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주들을 배려한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허용 규정'을 면죄부 삼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물권 단체는 불법자가진료를 또 다른 형태의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농식품부는 2017년 7월 동물학대 처벌을 강화하고, 수의사법 개정을 통해 수의사가 아닌 사람이 진료할 수 범위를 기존 '동물'에서 '가축'(소, 돼지, 닭, 오리, 말, 염소, 당나귀, 토끼 등)으로 제한시켜,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행위는 불법자가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동물학대와 불법자가진료에 대한 처벌 형량이 동일하다.하지만 처벌 형량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뒤인 올해 2월 부산 수영구에서 고발된 '고양이공장 사건'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동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에 의한 동물학대와 불법자가진료 행위는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이처럼 동물을 소유물로 이해하다보면 동물에 대한 치료 행위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동물약국에서는 소비자가 편하고 비용이 절감된다며 백신을 구입하여 개와 고양이에게 직접 주사하라고 권장한다. 약국에서 아이에게 맞추는 백신을 부모에게 판매하지 않는 상식과 배치되는 주장이다.수의사인 나는 예방접종이 늘 조심스럽다. 백신을 주사한 반려동물의 10% 정도가 발열과 설사, 구토, 두드러기 등의 접종앓이를 호소한다. 생명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예방주사를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해 반려인에게 권장하는 이면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담겨져 있다. 시간과 비용이 덜더라도 윤리적으로 예방주사는 수의사의 검진에 의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의료 행위이다.생물학적 주사제재를 일반 가정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위험하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독화하거나 사독화시킨 생물학 제재이다. 동물병원에서도 생물학적 감염물질이 묻어있는 주사바늘과 폐백신은 의료폐기물 중에서도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해성 의료폐기물로 분류되어 별도로 분류하여 지정된 의료폐기물 위탁업체가 처리한다. 위해성 의료폐기물이 생활쓰레기로 버려져서는 곤란하다.헌법에 동물보호를 명시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인도, 브라질, 룩셈부르크, 이집트 등이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독일은 1990년, 스위스는 2002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생명은 보호하여야 할 대상임을 법으로 규정했다.영국은 2016년 개와 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시켰으며, 2017년 부터는 동물학대 처벌을 징역 5년으로 강화시켰다. 미국은 2017년 부터 동물학대 행위자를 반사회적 범죄자로 이어질 위험성을 인정하여 모든 주 정부에 동물학대 사건 가해자를 반드시 FBI에 보고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2019년 에는 연방정부가 동물학대범을 처벌하는 팩트법(PACT Act·Preventing Animal Cruelty and Torture)을 통과시켜 동물을 압사시키거나 태우는 일, 익사 또는 질식시키는 행위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할 경우 최대 지역 7년형에 처하도록 명시하였다.2019년 농축식품부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0%에 해당되는 591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반려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동물을 즉흥적으로 입양하거나 개인의 소유물 정도로 다루는 반려인도 많음을 예상할 수 있다.반려동물 입양은 동물의 한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생명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아플 수 있다. 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하지 않고 입양이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동물의료보험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사람의료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정착돼 소득이 낮은 국민일수록 개인 부담금은 줄고 보험혜택은 많이 받는다. 반면에 소득이 많은 국민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공익적인 구조이다. 반면에 동물의료는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보니 반려인이 개별적으로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만큼 보험혜택도 비례하여 보상받는다.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일수록 동물의료비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동물 등록시 기본적인 반려동물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시킬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동물의료가 반려인의 경제적 부담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또한 동물을 즉흥적으로 입양하거나 개인의 소유물 정도로 여길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아야할 대상임을 법에 명시하여 국가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동물의료보험 확산에 기여해주길 소망해본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5-19 18:30:00

[경제칼럼] 이면지를 쓰는 이유를 설득하자

[경제칼럼] 이면지를 쓰는 이유를 설득하자

예전에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이면지를 사용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나와 직장 동료들은 우리같이 큰 회사에서 이면지를 아껴봤자 얼마나 아끼겠냐면서 회사의 정책을 비판하곤 했었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떤 강연에서 강사가 왜 회사에서 아껴도 얼마 되지 않는 이면지를 쓰게 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을 아끼지 않는 조직은 큰 것 또한 아끼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조직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아끼는 문화와 습관을 가지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과거 이면지를 쓰라고 하셨던 상사들께서 그 이유를 나에게 설명해 주셨더라면 이면지 사용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갑자기 이면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의 기업 환경과 구성원들의 생각이 예전과 많이 바뀌어 회사를 이끌어 가는 방식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먼저 기업 환경은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급변하고 있으며 매일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특정 개인의 과거 경험을 통해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지식과 시각을 믹스해 기존에는 한 번도 내려 보지 않은 새로운 의사결정들을 내려야만 하는 시대다.결국 다양한 인원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내어 놓고 이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만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그리고 조직 구성원들도 더 이상 과거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없이 하는 세대들이 아니며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냐" "일일이 내가 다 설명해줘야 돼?"라는 말로 더 이상 그들을 억누를 수도 없다. 이제 어떤 일을 시키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당사자와 조직에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줘야 젊은 직원들은 동기부여가 돼 성과를 낸다.오늘날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는 조직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에 반해 조직원들이 개인의 안위와 편협한 시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는 그에 따른 제재를 조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이처럼 오늘날의 기업에서 서로 간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됐다. 사실 나 또한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소통을 꼽는다. 물론 나의 소통 역량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고 열정을 불태우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조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회사의 철학과 입장을 정기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의 간극을 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통은 쉽지 않다.많은 회사의 리더와 구성원들을 만나보면 서로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리더는 자신의 마음고생과 어렵게 내린 결정을 조직원들이 몰라줘서 답답하고 조직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리더가 그것을 몰라줘서 섭섭해 한다. 이처럼 기업의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한다면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과거 히딩크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팀을 냉혹한 카리스마와 자유로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원팀(One Team)으로 만들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뤄냈었다. 이제 2020년 경제위기 속 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도 히딩크처럼 기업을 열린 마인드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문화가 있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사실 오래전부터 좋은 리더란 혼자 똑똑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끌어안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원들에게 그들이 할 일이 무엇이고 조직의 공통된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여 스스로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지금 시대에는 이면지를 쓰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조차 조직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경영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2020-05-19 14:57:07

[매일춘추] 1950·1960년대의 추상미술과 세대교체

[매일춘추] 1950·1960년대의 추상미술과 세대교체

1950년대 이후 대구의 추상화가들은 꽤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50년대는 전후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고, 그들은 단체 결성을 통해 화단에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1955년에는 정점식을 중심으로 장석수, 신석필, 강우문 등이 함께 '대구미술가협회'를 창립하였고, 다시 1957년에는 정점식이 새롭게 작가들을 규합하여 '경북미술협회'를 창립하였다. 특히 '대구미술가협회'는 전쟁에도 사회와 무관하게 이어진 자연주의 미술을 비판하였는데, 창립문에 '변동하는 사회나 이체(弛體)되어 가는 일단의 인간'을 두고도 회피하는 '쇄말(瑣末)적인 묘사'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 중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신석필, 정준용 등은 1950년대 말 당대 한국의 전위적 미술을 집대성한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1957년 창립)에도 수차례 참여하면서 중앙화단에 이름을 알렸다.전후 아직 안정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은 1960년 4·19혁명이다. 부정하게 권력을 연장하려던 세력에 반발했던 민주화운동으로 이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권력화된 것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재에 저항했던 것처럼 아카데미적인 경향을 고집하던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에 대해 젊은 작가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박상은, 박병욱, 박홍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이영륭 등이 참여한,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열린 '벽(壁)전'은 덕수궁 벽에 작품을 거는 방법으로 국전의 구태의연함을 일갈하였다. 전시에서는 철망, 콜타르와 같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재료가 등장하였고,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듯 한 앵포르멜 형식의 평면과 설치, 오브제, 액션을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특히 '벽전'에 참여한 이영륭, 이동진, 유병수, 유황, 김익수 등은 대구에 정착해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구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1960년대에는 대구 화단에도 앵포르멜의 영향이 컸는데, 1950년대와는 또 다른 신진들이 집단화된 목소리를 내었다. 1963년 열린 '앙그리전'에는 당시 앵포르멜 경향에 영향 받은 소장교사, 룸펜, 군인 등 다양한 이력의 작가 김진태, 김구림, 김인숙, 정도화, 이정혜, 정주호(정일), 이륭(이영륭), 마영자, 권영호, 박병용, 박휘락, 박곤, 박설 등이 참여하였다. 단체명 '앙그리'는 영국의 전후 저항정신을 담은 문학운동 '앵그리 영 맨'에서 착안한 이름이라 한다. 이들은 '무서운 인간의 고독이 벽을 부수는 허무한 고독', ' 링케리의 사막에서의 폭음'과 같은 문학적 서사의 선언문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갈구와 변화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추상이 주를 이루었고, 표현에서는 흘리고 찢거나 우연성이 혼재된 기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저항적 패기가 넘쳤던 그들은 작품을 제목 없이 전시하였는데, 화면에 구현된 대상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사유하는 대상으로 작품의 위상 변화를 시도하였다.

2020-05-19 14:34:29

[백옥경의 과학둘레] 진화적으로 안정된 색깔

[백옥경의 과학둘레] 진화적으로 안정된 색깔

차가 다니는 골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을 즐기려는 듯 표정이 느긋하다. 차가 다가가도 피할 생각이 없는지 미동도 안 한다. 행여 다칠까 조심하며 최대한 간격을 벌려 고양이를 지나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고양이. 먹을 걸 주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을 피하는 습성을 가진 길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난 걸까.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어떤 대체 전략도 그것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러한 전략이 유전자 단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ESS 이론의 동물행동연구 사례를 예로 설명함으로써 진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켰다.호전적인 매와 유순한 비둘기로 이루어진 집단에서의 싸움 전략을 예로 보자. 그곳에서는 언뜻 싸움꾼 매의 전략이 유리해 보이지만 공격적인 매의 전략은 비둘기를 만났을 때만 이득을 본다. 매끼리 부딪치면 본전도 못 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작위적인 그들의 싸움에서 손익계산을 해보면 매가 비둘기보다 약간 더 많은 비율로 존재할 때 두 개체의 평균득점이 같아진다. 이때가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개체 수준에서 보면 품위 있는 비둘기보다 공격적인 매의 전략을 조금 더 많이 구사하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인 것이다.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갈매기 집단이 있다 하자. 어느 날 그들 중에 잡은 물고기를 낚아채는 얌체 돌연변이가 생겨난다. 애써 고생해 먹이를 구할 필요 없는 그들의 얌체 전략은 이득을 보기 시작하여 그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자 어부 갈매기가 감소하고 가용한 물고기가 줄어들어 얌체 갈매기는 어느 시점부터 이득을 볼 수 없게 된다.다시 어부 갈매기가 증가한다. 이러한 집단에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어부 갈매기와 얌체 갈매기가 8대 2의 비율일 때이다. 혹은 각 개체가 시간의 8할을 어부로 2할을 얌체로 사는 전략이 진화적으로 가장 안정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에서 벗어나는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어 사라지게 된다.다시 길고양이로 돌아가 보자. 만일 모든 고양이가 길고양이 전략을 택한다면 어떨까.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동료들과의 영역 다툼에서 희생되거나 인간의 영역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로드킬을 당하기 쉽다. 만일 이들 중 사람에게 다가가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이들은 생존에 이득을 보기 시작한다. 사람을 따르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아늑한 잠자리와 양질의 식사를 보장받는 것이다. 고달프고 배를 곯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야생의 생활과 작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전략을 택하는 고양이가 늘어날수록 집고양이 수는 늘어나고 길고양이 수는 줄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길고양이가 집고양이 전략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에게 선택받는 개체는 일부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선택되었다 버려지는 경우에는 애초에 길고양이였던 것보다 못한 신세가 된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현상은 팍팍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진화적으로 안정되기 위한 길고양이의 유전적 전략인지도 모르겠다.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우리를 놀랍게 만든 것은 왼쪽은 파란색으로 오른쪽은 핑크색으로 물든 한반도를 보는 것이었다. 선거 결과는 그러지 않아도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를 다시 동서로 나누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블루나 핑크 지역의 유권자들이 100% 같은 색깔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 시사하는 바는 한 가지 전략으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개체는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집단에 집고양이가 생겨나는 것처럼 그 하나의 전략이 매우 잘하지 않는 한 언제든 돌연변이 전략이 침입해 세를 늘릴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어떤 전략도 대체 불가능한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는 색깔 패턴도 그러한 종류인지는 지켜봐야 될 일인 듯싶다.

2020-05-18 17:30:00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 어머니의 얼굴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 어머니의 얼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눈을 맞춘 사람, 어머니와의 만남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어머니의 따듯한 품에서 고이고이 길러져 넓은 세상으로 나왔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넓은 세상보다는 어머니란 따듯한 둥지가 더 그립다. 아주 가끔이지만 연로하신 노모의 무릎을 베고 누운 시간이 나 역시 세상 그 어느 시간보다 평화로우니 말이다.가정의 달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19란 복병에 발목을 잡힌 탓에 올해 5월의 풍경은 애처롭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을 잃어가고 있고,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들은 가족들과 생이별 중이다. 멀리 사는 가족들은 언제 만나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 2020년 가정의 달은 참으로 기가 막힌 풍경으로 추억될 듯하다.죽으나 사나, 앉으나 서나 자식이 최고요, 자식이 최우선이었던 어머니. 철없던 시절에는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왜 우리는 이렇게 고생할까, 불만의 마음이 슬쩍 일렁이기도 했지만 하루를 쪼개고 쪼개 열심히 사시던 부모님 모습에 그런 마음조차 내비칠 수가 없었다.어린 시절,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단 같은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서 팔고 온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이 설핏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머니들의 지극한 정성이 소위 말하는 고급 인력을 만들어 내고, 이들이 경제발전을 이끌었으니, 어머니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이 사진가 윤주영의 생각이다.아침엔 갯벌로 조개를 캐러 나가고, 오후엔 시장에 내다 팔 채소를 가꾸고, 밤에는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가전제품 부품 조립에 나서는 1인 3역의 과중한 노동도 마다 않던 강한 어머니들, 그렇게 사진가 윤주영은 우리나라의 정직한 어머니, 부지런한 어머니, 참을성 많고 의지가 강한 어머니, 겸손하고 분수를 중하게 여기는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던 헌신적인 어머니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1928년생, 전 문화부장관을 비롯해 정계에서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던 그는 은퇴 후 사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던 성품은 인생 후반에 새로이 시작한 사진가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뭐, 호사가의 취미 정도 아니겠어'라 생각했던 이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듯 보였다. 1987년에 첫 사진집을 출간한 후 26회의 개인전과 14권의 사진집을 냈고, 팔순을 기념하며 출간한 사진집의 주제가 '어머니'였으니 말이다.평생 사진만 해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열정 넘치는 사진가의 삶을 걸어온 그, 사진가 윤주영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이요, 인간의 삶이었다. 그의 바람처럼 젊은이들이 그 옛날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다지고,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미덕을 돌아볼 수 있다면, 코로나19로 빼앗긴 '가정의 달'이 조금은 덜 억울해질 것 같다.

2020-05-18 17: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부부적 거리 두기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부부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행인데 부부간에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모 업체 대표님께서 술잔을 내려놓으며 울부짖었다. '제발 부부간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며 술잔을 움켜쥐었다. 웃자고 한 농담이겠지만 슬펐다. 대표님의 꼭 다문 입술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늘 머리 위에 안테나를 켜 아이디어를 구해야 하는 광고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역시 세상 모든 것이 워딩의 싸움이구나.' 최근 졸혼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는 뜻인데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네이버 국어사전). 어르신들은 얘기한다. 그게 이혼 아니냐고. 따로 사는 것이 이혼이지 왜 졸혼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냐고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그 속뜻은 차갑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워딩이다. 하지만 최대한 냉정하지 않게 코로나에 맞서는 워딩을 만들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워딩의 싸움은 광고에서 빛을 발한다. 작년 한 법무법인의 이혼 광고를 맡게 되었다. 사실 이혼이라는 워딩이 주는 느낌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옛날에야 숨기고 싶은 일이지만 '돌싱'(돌아온 싱글)이라는 단어로 인식이 변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여전할 것으로 생각했다.안 그래도 이혼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부에게 광고에서조차 화를 주기는 싫었다. 그래서 쓴 문구가 '당신이 이혼하는 이유는 결혼했기 때문입니다'라는 카피이다. 당신에게 큰 문제가 있어서 이혼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그저 '결혼하면 이혼을 할 수도 있으니 쿨하게 생각하자'라는 의도였다. 생각해보라. 광고가 자신을 다독여 주면 얼마나 그 변호사가 이뻐 보일까.술자리에서 들은 '부부적 거리두기'라는 워딩도 마찬가지다.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부부를 사이에 두고 '부부적 거리두기'라고 쓰니 누가 봐도 이혼 광고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2m이지만 나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2혼'이라고 썼다.우리는 하루에 약 5천여 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일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의 광고를 봐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은 세탁소, 학원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운전해 거리에 나오면 택시 광고와 간판으로 도배된 세상을 만난다. 우리는 그만큼 광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혼 광고조차 머리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재산을 얼마 빼앗아 올 수 있다든지 외도, 불륜에 관한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상심하지 말라는 얘기를 유머러스하게 말하고 싶었다.나의 광고주분들은 오늘도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가 유명해질 수 있냐고.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죽기 살기로 자신의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렇다. 지금 사회적인 이슈를 잘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코로나와 관련된 것들이 이슈이니 그것에 숟가락을 얻는 방법이다. 부부적 거리두기가 바로 그런 형식의 광고이다. 코로나, 부부의 세계, 미국에 중계되는 KBO 리그가 요즘의 이슈이다.그중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대입해보라. 자신의 브랜드에 맡게 조금 변형해보는 것이다. 그 변형의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워딩이다. '부부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단어 하나만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따라 그 현상을 받아들인다. 당신의 브랜드를 광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워딩으로 판을 바꾸어라. 당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이다.

2020-05-18 16:14:43

[기고] 월성원자력 맥스터 증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며

[기고] 월성원자력 맥스터 증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며

5월 들어 경북 경주 지역은 중수로형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건식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위한 주민 수용성 확보를 두고 찬반 여론이 뜨겁다.현재 월성원전에서 추진 중인 맥스터 증설은 처음 시도해 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경수로에 비해 사용후핵연료가 비교적 많이 배출되는 중수로 특성상 29년 전부터 단 한 번의 문제 없이 맥스터를 안정적으로 운영 및 관리해 오고 있다. 저장 용량이 한계에 이르러 맥스터 7기에 대해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심사에서 승인을 얻어 기술적인 안전성을 입증했다.현재는 경주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문제는 시간이다. 기존의 맥스터 설비 저장 용량이 내년 11월이면 포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맥스터 증설은 본공사에만 19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올 상반기에 증설 공사가 시작되지 못하면 월성 2, 3, 4호기 운영을 조기에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이는 국가 전력 수급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월성 2, 3, 4호기가 설계수명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후핵연료저장설비의 여유 공간이 없어 원전 조기 폐쇄라는 결정을 내린다면 천문학적인 국가 자산을 폐기 처분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합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결정이다.사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수준의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러나 그 양은 많지 않다. 1g의 우라늄이 300만 배인 석탄 3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니 폐기물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며 발생된 양은 약 1만5천t이다. 석탄발전으로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했다면 석탄회는 2억t, 이산화탄소는 35억t이 발생했을 것이다.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원전은 저마다 고유의 설계된 수명을 갖고 있고, 한수원에서는 설계 기간의 운영 과정에서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설비투자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안전성이 확보되면 수명을 추가로 연장해 운영하고 있다.상업용 원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원전의 수명을 2회에 걸쳐 40년을 추가해 연장 운영하고 있다.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운영만 잘 하면 충분히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그런데 우리는 원전 운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해 둘 설비를 갖추지 못해 법으로 정해진 수명조차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정지될 운명에 놓였다.이는 혈세 낭비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 전체의 손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반면 환경단체나 반원전 시민단체들은 막연하게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맥스터 증설을 반대해 궁극적으로는 원전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합리적인 주장이 될 수 없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이 화석연료에 의한 탄소배출량 감축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방지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월성원전 3호기 가동 여부가 지역 주민의 결정에 달린 만큼 맥스터 증설에 대해 대안 없는 반대로 경주 지역 경제 및 원전 생태계의 잇따른 붕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맥스터 건설이 적기에 추진돼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속에서 지역 경제도 타격을 피할 수 있다.지금은 지역과 함께 윈윈(Win-Win)하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2020-05-18 14: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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