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남이 작 '장사도 해상공원'

[내가 읽은 책]기묘한 사람들 (랜섬 릭스 지음, 조동섭 옮김, 월북, 2017)

해변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초가을 바람은 조금 호젓하고 조금 쓸쓸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열기와 습기가 얼마 못 가 서늘하고 파삭한 바람이 되는, 이런 계절의 변화는 모든 이론을 떠나 매번 기묘하다. 살갗에 닿는 낯선 바람결의 기묘한 힘에 이끌려 자꾸 들썩이는 발걸음을 가볍게 잡아 앉힐 뭔가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같은 책은 어떨까?'기묘한 사람들'은 어른인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아이 때처럼 바짝 당겨 앉히는 이야기책이다. 편집자인 밀라드 눌링스가 세계 곳곳의 옛날이야기들을 모았고, 작가 랜섬 릭스가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썼다. 대학에서 문학과 영상을 공부한 작가가 30대의 나이로 2011년 부터 발표한 '미스 페레그린' 시리즈는 4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화도 되었다. 이로써 그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제목만으로 벌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이 책 속에는 10편의, 그야말로 기묘한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팔과 다리를 잘라내도 다시 돋는다거나, 몸이 젤라틴 덩어리로 변할망정 갈퀴 혀의 상대를 못 받아들인다는 상상은 단순한 오락적 재미를 넘어선 어떤 뜨끔함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말도 안 된다고, 터무니없다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 보통 사람들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자기 집이 스웜프머크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알려지기 원했지만 이미 팔다리는 엄청난 대출 이자를 매달 갚는 데 쓰고 있었으며 귀는 벌써 팔고 없었다.(36쪽)" '아름다운 식인종'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아하고 예의 바르지만 인육밖에 소화할 수 없는 식인종과, 팔다리가 아픔 없이 잘릴 수도 있고 다시 자라기도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 팔다리 맛에 질린 식인종에게 농부들이 다시 돋지 않는 제 귀, 코, 혀까지 파는 이야기.다시 이것은 물질 만능 사회 속의 사람들,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돈을 미끼로 점점 더 색다른 맛을 추구하는 식인종은 자본주의 사회의 얼굴 그대로다. 더 큰 집과 화려한 외관을 욕망하다가 마침내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몸으로 뒤뜰에 묶여 하루 두 번 물과 음식을 받아먹는 농부들. 그들이 식인종의 식재료인 팔과 다리를 길러내는 것처럼, 나도 내 것이 아닌 몸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묻게 된다.'메뚜기'라는 글은 자기 종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크게 결속력을 느끼는 생물 형태로 변하는 사람 이야기이다. 메뚜기로 변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한테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준 사람이 누구야? (생략)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179쪽)"라고 말한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잘 에둘러 풍자한 책이다.이 사회의 구령에 발맞춰 따라가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을 가끔 상상의 늪에 푹 적셔도 좋으리라. 아이처럼 말랑해져 제 안에서 즐거울 것이다.김남이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0-05 06:30:00

양만재 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

[기고] 포항지열발전소 전문가들의 법적책임

2009년 4월 6일 이탈리아 라퀼라 지역에서 규모 6.4 지진이 발생했다. 300여 명이 사망하고 1천500여 명이 부상했으며 7만5천 가구가 처참하게 사라진 지진이다. 일본의 고베 자연지진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작지만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재난은 아니다. 올해로 라퀼라 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다. 지진재난 전공학자들은 '라퀼라 지진 10년'이란 주제로 연구결과물을 발표했다.8년 세월이 지나면 포항에서도 '포항지진 10년'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것이다. 라퀼라 지진 10년처럼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행사를 개최할 것이다. 외국학자들이 언급한 담론을 검토하면, 포항지진 10년 이후 전개될 학술적 담론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라퀼라와 포항의 지진 성격과 피해 규모가 다르다. 그래도 재난에 대응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계획과 방법이 다소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다. 공통분모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것이 라퀼라 교훈을 살리는 포항지진의 교훈일 게다.서구학자들은 라퀼라 지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정치 집단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가. 이탈리아 정부가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개입했는데 10년이 지난 결실은 무엇인가? '정치적인 역할론'의 결과가 어떤가. 또 정부의 개입 방식이 10년이 지나 얼마나 변화했는가도 물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정치 집단들의 개입은 라퀼라의 '제2의 지진'으로 이름이 붙을 만큼 국민을 실망시켰다. 정부는 개입했지만 주민의 요구나 참여는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도시재활 정책을 하향식에 바탕을 두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학자들은 이를 국가의 '군사적인 통제방식' 혹은 '구조적인 폭력'의 개념으로 해석했다.라퀼라 지진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재난에 대응 및 사전예방 방식과 비교하는 프레임을 적용했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보다 피해주택재건사업에 기업의 참여가 컸다는 점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서로 특이한 소통방식이 있었다. 그 방식은 '진행의 방해' '지연' '부패' 등의 특성을 가졌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연상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특이한 소통방식이었다. 포항도시재건사업이 이탈리아와 같지는 않겠지만 수천억원이 투자되는 사업인 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진과학자들과 과학자 공동체는 라퀼라 지진에서 학습해야 할 특별한 교훈이 있다고 했다.전 세계 과학자들이 주목했던 바로 라퀼라 재판(LAquila Trial)이다. 지진 위기 대응에 참여했던 6명의 과학자들은 1심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지진 예측을 잘 못하고 주민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었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지진과학계는 재판을 통해 지진 위기 예측과 진단, 소통 방법, 기술, 지진과학자들의 접근 방식 등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포항지열발전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열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지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장밋빛 비전만 제시했다. 수리 자극을 다섯 차례 실시할 동안 포항시와 주민 참여도 배제했다. 지진위해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주민 소통 역시 없었다. 그들은 라퀼라 재판의 교훈을 몰랐을까?포항지열발전소의 전문가들이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 결과가 학술적인 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2019-10-04 02:30:00

박태원 '최후의 억만장자' 삽화 (조선일보, 1937. 6. 27)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파리 떼 출현과 조선인 구보 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일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박태원'의 이름이 잠시 인터넷 실검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이광수, 김동인의 이름도 아스라하게 느끼는 요즘 대중들에게 박태원은 어찌 보면 이름조차 낯선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박태원은 손자 봉준호에 버금가는 인기와 역량을 지닌 소설가였다. '조선의 모던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는 상상력이 가득하고, 재치발랄한 작가였다.'최후의 억만장자'(1937)는 그런 재치 발랄함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최후의 억만장자'는 당대 프랑스 인기영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콩트로 그 내용이 기상천외하다.트레몰로라는 나라에서 국가의 안정정책에 따라, 이미 30년 전 박멸된 파리 떼가 갑자기 출현한다. 정부는 파리 떼를 없애기 위해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파리박멸회'를 조직한다. 그리고 파리를 잡기 위해 천 오 백 개의 파리채와 삼천 개의 파리약을 독일에 주문하는 한편 파리 떼를 풀어 국가적 교란을 일으킨 주범 찾기에도 전력투구한다.마침 트레몰로를 방문 중이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이 사건에 개입한다. 결국 조선에서 온 '구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진범을 밝혀내고, 사건을 해결해 트레몰로에 안정을 가져다주며 콩트는 끝이 난다.콩트가 발표된 1937년 6월 말, 참으로 지루하고도 긴 조선의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발표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7월 초, 중국 루거우차오에서 일제와 중국군과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이에 일제가 기다렸다는 듯 중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조선 합병 때부터 계획해둔 전쟁이었다.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잡음을 제거하고자, 통제와 내부단속은 필수적이었다. 10여 개월 전, 동아일보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일제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약간의 소음도 용서되지 않는 진공과 같은 상태가 조선을 짓누르고 있었다.이 긴장감 속에서 박태원은 파리박멸 이야기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콩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리 내어 웃으면서 잠시 일제 지배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웃음의 끝에서 몇몇 예민한 사람들은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이 이상한 나라의 상황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것을. 파리 떼까지 국가 통제 아래 두었던 트레몰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제치하의 현실 그대로였던 것이다.박태원이 길고 힘든 여름을 앞둔 조선인들에게 준 것은 웃음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샬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을 제치고 난제를 해결한 조선인 구보씨. 서양인을 제패한 구보씨의 위대한 능력을 보면서 조선인들은 무기력함 속에서도 작지만 큰 희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10-03 15:04: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내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요즘 유튜브(YouTube)라는 동영상 플랫폼의 인기가 매우 뜨겁다.학생들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던 것을 유튜브에서 검색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하며,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는 유튜버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영상 업로드도 간단하고 인기 유튜버(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면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유튜브는 글로벌 시장이여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 고가의 장비와 훌륭한 편집 퀄리티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콘텐츠에 가치가 있거나 재미가 있다면 대중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콘텐츠로 인정한다.누구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손쉽게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 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환경이 마련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유튜버가 되어 본인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보며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본인만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나의 이야기를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라는 욕구가 1인 미디어의 세계로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닐까.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어떤 면에서는 예술가인 것이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유튜버가 되어 1인 미디어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본직을 버리고 예술가의 삶을 살라는 것도 아니다. '삶은 곧 예술이고, 예술은 곧 삶이다' 라는 말이 있듯 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나답게 살아가고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큰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나 다운 삶에 질문을 던지며 나답게 살아가고자 노력 중이다. 그리고 나 다운 삶에 가까워질수록 행복감을 느끼고, 그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나를 표현했을 때이다. 그렇다면 나 다운 삶은 뭘까? 나 다운 삶이 무엇이라 콕 찍어 말할 순 없으며 어쩌면 정확하게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을 모방하거나 가면을 쓴 것 같은 거짓된 삶은 아닐 것이다. 타인은 할 수 없는 나의 퍼스널(Personal)한 감성, 사상, 철학 등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불편함이 없고 비로소 자유와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앞으로 3개월간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었다. 필자의 직업은 작곡가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와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며 가장 재밌고 편하다. 하지만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글쓰기는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며 더욱 더 다양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음악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리라 기대와 생각이 들어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03 11:09:31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검찰 개혁의 본질

국민 통합 이루어내야 할 대통령 진영 논리 대립으로 나라 두 동강검찰 개혁 핵심은 정치적 중립화윤 총장이 개혁 몸소 실천하는 셈조국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자못 크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최한 '조국 수호' 대규모 군중집회, 광화문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이 총동원되는 '조국 사퇴 촉구' 집회가 등장했다.문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해 '하조대 대통령'(하루 종일 조국 장관만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생길까 봐 걱정된다.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되길 요구한다.한편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 심각한 모순과 착각에 빠져 있다. 이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치켜세웠지 않았는가. 더구나,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권은 검찰이 조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하니까 느닷없이 '개혁 저항' '정치 검찰' '과잉 수사' '고의적 피의 사실 유출' 등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 반대'와 '조국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수천 명의 전·현직 대학교수가 '조국 파면' 시국 선언을 하고, 서울대 등 수많은 대학생들이 '조국 아웃'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여는 현실은 왜 외면하는가? 최근 KBS 여론 조사(10월 26~27일) 결과 조 장관 가족 수사와 관련해 '지나치지 않다'(49%)가 '지나치다'(41%)보다 훨씬 많았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허용돼야 한다'(64%)가 '금지돼야 한다'(24%)보다 2배 이상 많았다.분명, 집권 세력의 생각과는 달리 민심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인 조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는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 관행 등과 관련된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에 진행돼야 진정성이 담보된다.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주장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단언컨대,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별개다. 개인 조국의 실패는 진보의 실패가 아니다. 이제 진보는 폐쇄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짓과 위선, 각종 의혹으로 진보를 깊은 수렁 속으로 빠뜨린 조국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미래가 보인다.

2019-10-03 09:46:20

전영평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전영평의 귀촌한담] 행복 만들기

눈부신 가을이다. 행복하다. 비계산 들녘에는 벼 이삭이 추수를 기다린다. 한 해 농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몸이 불편해지고 정신적 위기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귀촌을 해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늘어난 일거리와 소외감이 최대의 적이다. 집 안팎 잡일, 농사, 주민 접촉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후회와 불행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긍정적 역발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집 안팎 잡일은 나태해진 나를 독려하는 가정 선생이고, 텃밭 농사는 건강 음식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이고, 주민 접촉은 소외감을 줄여주는 묘약이라고 믿어야 한다.귀촌 대선배인 스콧 니어링 교수는 친환경 철학을 토대로 행복한 여생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는 매일의 삶을 육체노동 4시간, 공부 활동 4시간, 친교 활동 4시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100살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건강하게 살다 가셨으니 그의 충고를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 선생도 평생을 농사, 글짓기, 풍류로 보냈으니 귀촌의 행복 공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하지만 스스로의 각성이 확실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농사일은 시작만 해도 반나절이 금세 지나가니 큰 어려움이 없다. 지친 몸으로 밥해 먹고 누우면 책 읽기나 글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 교수 생활을 했으니 책도 잘 읽고 글도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티비나 유튜브 강의를 듣다 보면 꿈길로 직행이다. 하지만 꼭 책 읽고 글을 써야만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관찰하고, 깨닫고, 되새김질하고, 공상하고, 계획 세우는 것도 참 좋은 공부라고 믿는다. 주민들과는 인사, 덕담, 나눔, 봉사를 통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도시에 계신 퇴직자의 삶과 행복의 조건도 시골과 비슷할 것이다. 일, 공부, 사교 활동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고 긍정적 역발상으로 남은 인생을 잘 즐겨보자.

2019-10-02 18:0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역사를 말할 권리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아이히만을 통해 악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일깨워준다.독일과 일본은 똑같이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상처를 입힌 전범국가다. 하지만 사과와 반성의 모습은 정반대다. 독일은 전범들을 끝까지 찾아내 그 죄를 물리고 사죄를 위한 보상도 꾸준히 한다. 하지만 일본은 전범기인 욱일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국가적으로도 비양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역사 인식을 말할 때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우리 역사에서 근현대사는 민족이 민족을 유린한 끔찍한 시대다.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은 친일 경찰들에게 학살되기도 했다. 시월의 대구에서도 그랬다. 쌀값 폭등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항의하자 친일 경찰들은 사람들에게 총을 겨눴다. 앞장선 사람들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몰살당했다. 대구의 가창골에서만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됐다. '골로 간다'는 말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 10월 항쟁은 '빨갱이'라는 누명으로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유족회의 노력으로 몇 해 전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6년에는 '10월 항쟁 위령사업 지원 조례'가 대구시에서 통과됐다. 대구지역 작가들은 10월 문학회를 만들어 문학 안에서 10월 항쟁의 진실을 규명해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의 10월은 왔다. 대구의 10월은 제주의 4월이고 광주의 5월이다. 이제 대구시민들은 이런 역사를 말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

2019-10-02 18:00:00

김은아(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북돋움] 아이들이 어른에 추천하는 책…'흔한 남매' '바꿔!'

요즘 아이들 책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다. 그런데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기 또래들 사이에서 통하는 책을 열심히 본다. 부모가 원하는 책을 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된 책임이 어른들한테 있다고 지적하는 작가가 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다니엘 페낙이다. '말로센 시리즈'와 '까모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다.페낙은 그의 독서에세이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을 통해 아이들이 책 읽기 싫어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풀었는데 목차부터 신선하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독서 행동들을 목차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페낙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든, 침해당할 수 없는 스스로의 권리가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등이다.30여 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독서 지도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아이들은 어느 날, 어른들이 다정하게 읽어주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추상적인 글자의 세계로 던져진다고. 게다가 권장도서 목록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아이들이 책을 떠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책의 세계에서 쫓아낸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권장도서 목록에서 뜨끔해졌다. 독서교육을 주제로 강의하러 가면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오래 전부터 만들어 놓고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어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어른들이 기를 쓰고 읽히고 싶어 하는 책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권장도서 목록이 과연 아이들 마음에 들까? 반대로 아이들도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 텐데…. 그래서 초등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면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책을 읽어라" "이런 책이 좋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교육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거꾸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목청껏 외친다.자신 있고 당당하게 제목을 말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이들은 상대방의 나이와 독서 취향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 옳다고 믿는 것 같다. 책의 장르와 격을 따지면서 당신이라면 벌써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어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최근에 가장 많이 추천받은 책은 "흔한 남매"(아이세움)이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 심지어 아홉 살 난 조카도 "흔한 남매"를 얘기했다. 그렇게 "흔한 남매"에 입문한 이후 짬짬이 만화책을 펼쳐 보며 '큭큭' 거리며 웃었다. 심지어 원작인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어린이의 웃음코드에 맞췄다는데 오누이의 티격태격하는 일상이 어른들에게도 추억을 소환한다.책에는 과장된 대목이 더러 있지만 '공감'이라는 코드가 존재한다. 남매가 있는 집뿐만 아니라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서로 아웅다웅하는 게 일상이니까. 원수같이 싸우다가도 장난감이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아빠 엄마에게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의기투합한다. 그것이 바로 형제애다.은근히 빠져든다. 아이들이 목소리 높여 추천하는 이유를 알겠다. '흔한 형제', '흔한 자매'라는 제목으로 패러디 만화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유독 큰 목소리로 동화책 "바꿔!"(비룡소)를 외친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가족과 친구, 다양한 관계 속의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지만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꿔!'라는 앱은 상대와 1분간 통화하는 것만으로도 역지사지를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열한 살 아이가 이 책을 내게 권한 이유가 뭘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보다.가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 보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어?" "엄마한테 책 한 권 추천해 줄래?" 하고.

2019-10-02 18:00:00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어느 산사의 설법

계절의 변화가 실감이 난다. 바람 끝은 쌀쌀하고 나뭇잎은 붉게 물들어간다. 여름의 긴 시간이 끝나고 곡식이 여무는 가을로 들어선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황금 들녘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펼쳐 놓은 가을 들판은 희망이고 결실이다. 인생도 가을이 오면 후회 없이 넉넉해야 한다.어느 기업을 경영하는 분이 오랜 사업으로 몸이 지쳤다. 몸을 추스르며 안식의 날을 보내기 위해 휴업을 하고 산에 취미를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산사에서 열린 법회(法會)를 구경하다가 이런 설법을 들었다."극락과 지옥의 환경은 다를 바 없었는데 극락 사람들의 얼굴은 윤기가 나고 복스럽고 행복하다. 반면 지옥 사람들은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것처럼 피골이 상접하더라. 극락이나 지옥이나 똑같이 팔 길이보다 훨씬 긴 밥숟가락을 하나씩 주는데 왜 그러느냐. 극락 사람들은 먹을 것을 큰 테이블 중앙에 놓고 그 긴 숟가락을 가지고 서로 떠먹여 주다 보니 제때 밥을 먹어 윤기가 날 수밖에 없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만 퍼넣으려고 하니 흘리고 버려서 결국 쫄쫄 굶더라."이 우화 같은 얘기에서 "아! 내가 남에게 활용될 때 내 가치가 있구나.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남을 도와야 그 대가로 얻어지는구나"라며 깊은 감동을 했다."범죄를 짓거나 경우에 어긋나는 짓은 안 했지만 남을 위해 살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이제껏 생각하며 살았는데 절에서 설법을 듣고는 '이게 진리야. 남에게 도움을 안 주고는 나도 돈을 벌 수 없다. 잘사는 것은 결국 남을 돕는 경쟁이다'라고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남을 잘 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돕는 능력을 향상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남에게 쓰인 만큼 얻어진다"라고 이재호(76) 리골드 회장은 자서전에서 말한다.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주고 최대의 것을 얻어야 최대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주는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으로 얻을 수가 없고, 얻을 수가 없어 실망과 긴장으로 끝나게 된다. 왜 주는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는 얻을 수가 없을까?하루는 산책을 하다가 꿀을 따는 동박새와 벌을 관찰한 적이 있다. 꽃은 벌에 의해서 수술의 꽃가루를 옮겨 받는다. 그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열매를 맺어 번식한다. 꽃은 벌에게 꿀을 주고 벌은 꽃의 씨 맺음을 돕는다. 꽃이 꿀을 주지 않으려 하면 꿀벌이 오지 않아 수정이 안 된다. 꿀벌이 수정을 도울 수가 없다면 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해 꿀을 줄 수 없다. 자연은 꿀벌과 꽃의 현상을 통해서 주는 마음을 가르친다.우리는 주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무언가를 받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자연계는 모두 한 생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지만 주는 행위로 끝나지 않고 내가 나에게 주어 스스로 번성해지는 것이다. 흔쾌한 나눔은 연기법을 알 때 가슴으로 열린다.조용헌은 "작은 부자들은 돈을 아껴서 부자가 되지만 큰 부자는 돈을 써서 부자가 된다. 인색하면 적은 돈은 몰라도 큰돈은 못 번다"라고 말한다.애벌레가 오랫동안 낮고 긴 고통을 땅속에서 거쳐야 나비나 매미와 잠자리로 우화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난다. 사람도 거듭 태어나는 우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베풀수록 위험은 줄어들고 복은 늘어난다. 부유한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가 되고, 얻어먹고 구걸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가난하거나 거지가 된다.지옥과 극락의 환경 조건은 똑같다. 지옥으로 살 것인지, 극락으로 살 것인지는 마음에 달렸다.

2019-10-02 14:10:53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묵호(墨湖)

명예퇴직을 신청했던 고등학교 동기가 강원도 '묵호항'이라며 전화를 해왔다. 시를 쓰는 친구인데 퇴직을 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묵호였다고 한다. 송수권의 시 '묵호항',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 등 문학에서 '묵호' 란 지명은 신비롭게 등장한다. 과연 한문 글자의 뜻처럼 '검은 호수' 같은 바다일까?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한마을에 살던 영구 아버지가 야반도주를 했다. 신작로 옆 색시집 골방에서 노름을 하다가 논문서, 밭문서 다 잡혀 전 재산을 날리고는 그길로 읍내 쪽으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졸지에 풍비박산이 난 영구네는 초상집으로 변했다. 하얀 쪽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영구 할머니는 눈물만 뚝뚝 흘렸고,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줄줄이 딸린 아이들도 같이 울었다.영구 아버지는 그길로 읍내로 가서 중앙선 열차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는 영주역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묵호역에 내렸다. 묵호항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고향집에 편지를 보냈다.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내 친구 영구는 주소를 들고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겨우 열 살짜리가 "영주역에서 내려 '기리까이(바꿔 탐. きりかえ)' 해서, 어쩌고…. " 어른이나 쓸 법한 말들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세상으로 걸어갔다.영구 엄마도 묵호로 떠나고, 영구는 학업을 포기하고 친척이 있던 대구로 갔다. 여자 형제들은 식모로, 남자 형제들은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집을 내어주고 마을 오두막집에서 지내던 70이 넘은 노모와 어린 딸도 몇 달 후 묵호로 떠났다. 떠나던 날,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와 눈물을 훔치며 배웅을 했다. 꼬깃꼬깃 종이돈을 쥐어 주는가하면, 먹을 것을 싼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백발노인의 퉁퉁 부은 눈가에 번들거리던 눈물은 아직도 아른거린다.영구 아버지가 묵호항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을 했는지, 고기잡이 배를 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육체노동을 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로, 하던 일이 고되어서일까 아니면 파멸의 구렁텅이로 전락한 것에 대한 회한 때문일까 술을 엄청 마셔댔다고 한다.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자로 폐인이 되고 말았다. 고향을 떠난 지 십년도 못 되어 간경화로 목숨을 잃고 영구차에 실려 돌아와 선산에 묻혔다. 단 한 번의 일탈치고는 대가가 너무 가혹했던 셈이다.무지와 가난을 습관처럼 안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참 대책없는 가장도 많았다. 가장이 무능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혹자는 '가난은 죄가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은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가난은 불편뿐만 아니라 구차하고,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까지 위태롭게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제위기를 보면서 50년 전 영구네 가족 잔혹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2019-10-02 11:29:25

배지훈 대구 달서구의회 의원

[기고] 단체장의 정치적 중립의무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각 당의 선거 준비를 위한 행보가 빨라지고 서로의 정치적 행위와 발언들에 대한 민감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각 자치단체는 중앙정치의 거친 격랑 속에 휘말리지 말고 오로지 자치단체 본연의 업무에만 전념해야 한다.우리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나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이 때문에 공무원은 SNS에 특정 후보가 올린 게시글에 응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만 눌러도 선거법 위반 행위에 해당해 기소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은 직업 공무원은 물론이고, 정치적 공무원인 대통령, 자치단체장도 포함한다.반대로 선거에 영향을 받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지방의원은 예외가 된다. 이들은 정당의 대리인이자 선거운동 주체로서의 지위로 인해 근본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될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다. 즉 선거에 영향을 받는 정당 소속 의원들과 달리 행정기관 단체장은 공정선거를 보장하고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다.단체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곧 정치활동의 금지나 완전한 정치적 무관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 활동이 금지된 다른 공무원과는 달리 단체장은 정당의 당원이나 간부로서,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고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당대회에 참석해 정치적 의견 표명도 할 수 있다.그럼에도 단체장이 정치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 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 제7조 1항의 요청에 어긋나거나 자신의 언행이 향후 정치적으로 파장을 불러올 것이 예상된다면 단체장은 그에 상응해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할 것이다. 주민 시각에서 볼 때, 직무 외에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장이 더 이상 자신의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특히 정부나 자치단체의 장은 자신의 직무 기능이나 영향력을 이용해 선거에서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정당 간의 경쟁 관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훨씬 크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의 장에게는 더욱 엄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오늘날 지방의 큰 화두는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은 재정적 독립뿐만 아니라 정치적 독립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중앙정치의 격랑 속에 자치단체가 흔들린다면 결코 완전한 지방분권은 실현될 수 없다.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구조 속에서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지역의 단체장들에 대한 정치적 압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기일수록 단체장들은 전체 주민의 시각에서 중립적으로 처신할 필요가 있다.최근 논란이 되었던 권영진 대구시장의 '조국 사퇴' 1인 시위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단체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대구시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기초단체장들은 여야를 모두 아울러 중립적 처신을 해야만 지역 발전은 물론이고, 지방자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지방분권의 실현에 이르는 길이다.

2019-10-02 11:22:17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사랑의 단상

종종 사랑에 관해 질문하거나 받을 때 있지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간편하고 납작하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눈이 멀고 숨이 멎으면 사랑의 잔혹은 사랑의 매혹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복잡성과 만만치 않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에는 등을 돌려버리는데요. 어디 사랑에 관한 직무만 그러할까요. 사랑 안에 서식하는 '유치'와 '찬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잘 번식하기 위해 불완전하기로 결심한 개체 같아요.어느 날 사랑이 찾아와 내 곁에 앉아 말하지요. '네가 왜 웃는지 혹은 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랑의 불완전, 사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그녀)의 사랑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은,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이라는 언어의 욕망,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고 실현한 적 없으므로 사랑은 순순히 욕망의 자리에 놓이게 되지요.언어를 '살갗'이라고 하며 바르트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고 합니다. 열없는 이마에 따뜻한 손을 얹으면 이마는 문득 펄펄 끓어야 하고, 세상의 입들은 모두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하여 '많이 아파?'라는 말은 그 대답을 위해 스스로 만든 '꾀병'에 걸려야 합니다. 말만으로도 온몸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괜찮아요. 이 아픔은 '사랑이 내미는 호의'라서, 온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픈 몸은 새의 날개처럼 즐겁기만 합니다.사랑을 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혹은 이 만짐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고 하죠. 그래서 사랑의 기쁨은 '영원'이나 '통속'을 소환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영원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지요. 따라서 서로에게 충족된 연인들은 글을 쓸 필요도 없고,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몸이 앞서 기울어져 있으니까요.그러니까 사랑은 생각의 가지를, 생각의 날개를, 생각의 뿌리를 갖게 합니다. 나를 보다 수다스러운 나로 바꾸어 놓지요.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허약하고. 절절하여 사랑의 언어 속에서 당신을 읽으며 나를 잃어요. 사랑의 언어를 유감없이 발설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혼을 만지고, 만진 손으로 자신의 영혼을 만지려는 이중의 접촉을 시도한다죠. 따라서 사랑의 언어는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며 거대한 심연의 바닥을 종횡무진 합니다.대체로 사랑의 푼크툼에 빠진 이들은 시시콜콜해져요. "사랑해", "뭐 하고 있어?", "밥 먹었어?" 시시콜콜한 유희를 반복하지요. 그들만의 방언을 만들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극점에는 모든 것이 '감각화'된 채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 거울이 등장해요, 말랑말랑한 감각은 망각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중의 거울이 되지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만 더 사랑의 배반을, 고통을, 고독을 긍정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01 11:24:04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의창] 의료기관 '1인 1개소 법'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29일 국내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소위 '1인 1개소 법'이라고 일컫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합헌 판정을 받은 것. 즉,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사법부 최고기관에서 확인했다.사실 일반인들에게는 '1인 1개소 법' 자체가 생소하고, 더군다나 이 법이 왜 헌재 판결을 받아야 할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는지 잘 모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법 조항이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추구를 방지해서 의료 공공성 및 의료윤리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겼기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대한치과의사협회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 단체가 합헌 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1인 1개소 법'의 탄생 배경에는 한 사람의 의료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함으로써 발생한 지나친 영리추구와 그로 인한 비윤리적 문제들이 있었다. 헌재도 합헌 판결의 이유로 "의료인 1인이 주도적인 지위에서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지배·관리하는 형태의 중복운영은 의료행위에 외부적인 요인을 개입하게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주체와 실제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을 분리시켜 다른 의료인을 종속케 하는 등 지나친 영리추구로 나아갈 우려가 크다"며 1인 1개소법의 입법 취지와 타당성을 설명했다.'1인 1개소 법'은 새로운 법이 아니고, 이전에 있었던 규정인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다'로 개정해서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표현했고, 여기에 덧붙여서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 일부 네트워크 병의원에서 흔히 사용하던 '차명개원' 방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절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사회의 양극화, 비인간화와 같은 부작용과 폐단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개인의 경제활동이 일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은 고도의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의료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의료제도를 통하여 의사에게 양심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물론 의료윤리 실천은 일차적으로 의사의 책임이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의사는 '언제나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의료윤리의 실천을 전적으로 의사 양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의사에 대한 진료자율권 보장, 진료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요소의 배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진정한 의료윤리가 실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이번 헌재의 판결은 의사들이 독점자본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양심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의료계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아무쪼록 '1인 1개소 법'의 합헌 판정이 모든 의료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의료윤리와 인간성과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지를 한 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런 고민은 모든 의료인에게 지워진 숙명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최재갑 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2019-10-01 11:17:57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엽공호룡(葉公好龍)-겉과 속이 다르다

옛날 엽공(葉公)이라는 자가 있었다. 용(龍)을 너무 좋아해서 장신구, 그릇, 담장 등 온통 용 그림으로 떡칠을 하고 살았다. 그의 용 사랑은 하늘의 용에게도 전해졌다. 어느 날 하늘의 용이 그의 집을 찾았다. 용이 그의 집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자마자 그는 기겁을 하고 도망갔다. 엽공이 용을 좋아한다(好)는 '엽공호룡'(葉公好龍)의 유래다.엽공이 겉으로는 용을 좋아하는 척하지만, 실은 용을 싫어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다. 집에서는 폭군인 자가 남녀평등을 말하고, 은밀하게 특권을 누리는 자가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자기 나라에 온 외국인을 차별하는 자가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그런데 문제는 엽공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심제양(沈諸梁)이 바로 그이다. 그는 관리로 있는 동안 백성들에게 선정을 폈다. 공자(孔子)도 그를 찾아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엽현(葉縣) 지방을 다스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엽공이라 높여 불렀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그의 백성을 위한 선정에 심히 불편했다.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 '엽공호룡'이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렸다. 엽공은 얼마나 억울했을까.지금 중국에서는, 아니 세상에는, 엽공의 공적은 잊히고 엽공호룡의 이야기만 남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을 혁파하고 개혁을 꾀하던 사람들이 기득권자들로부터 엽공호룡으로 힐난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검찰은 한편에서는 과잉수사로 비난받고, 한편에서는 공정수사로 칭찬받고 있는 것 같다. 공정수사로 검찰 개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척'하면서 검찰 개혁을 또 뭉개려는 것일까. 궁금하다. 검찰이 자기 보신을 위해 '엽공호룡'하는 것이 아니고, 참된 엽공의 공적을 따르기를 바란다.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9-30 18:0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덤, 덤으로 사는 인생

덤, 국어사전에는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 또는 그 물건'이라 돼 있다.2013년 4년 차 부장검사 윤석열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사표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에 충성한다.' 멋지게 들리는 그 말을 할 때는 모든 게 끝났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윤석열에게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은 덤으로 사는 검사 인생이다.26년 전, 2년 차 지방사립대 교수 조국은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는 순간 인생 끝이라 느꼈을 것이다. 복직은커녕 사회 복귀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국에게 천신만고 끝에 복직한 이후의 교수 인생은 덤이다. 둘에게 검찰총장이나 서울대 교수는, 본전보다 훨씬 더 큰 덤이다.덤으로 주어진 인생을 사는 방식은 두 가지다. 굵고 짧게 또는 가늘고 길게. 총칼 쓰는 사람은 전자가 옳다. 결정적인 순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대의명분을 살린다. 칼 쓰는 윤석열은 여당이나 위선 집단, 궤변 집단이 뭐라 악다구니를 쓴다 해도, 소신대로 단죄하고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글 쓰는 이는 조용히 참회하며 겸허하게 사는 게 맞다. 타인을 비난하고 제도를 원망하라고 덤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문필가 조국은 자신을 성찰하며 겸허하게 살 의무와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조국은 시끄럽고 길게 살려고 권력을 휘두르려 욕심을 부렸다.민정수석 조국은 부실한 검증으로 인사를 망쳤다. 민정수석 취임 전의 특혜와 반칙, 이후의 불법,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의 허위로 검찰 개혁의 동력을 떨어뜨렸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신인도를 낮췄다. 세상에 어느 다른 국가나 정부가, 허위로 점철된 법무부 장관의 국가나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분노하지 않을 하늘이 있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권력을 탐하는 불나방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른 불나방까지 함께 불꽃으로 끌고 들어가 공멸시킨다.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9-30 18:00:00

[세월의 흔적]<41>맞춤 양복

1945년 광복이 되자 중앙로 일대에 맞춤 양복점이 하나둘 들어섰다. 맞춤 양복이란 미리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옷을 지어주는 것을 말한다. 천이며 모양새 같은 취향은 물론, 신체의 치수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는 재단을 해서 옷을 대충 만들어 미리 입어 보게 하였다. 그 같은 과정을 가봉(假縫)이라 하는데, 재단사가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고치고 다듬어 옷을 완성하였다.1970년대에 이르자 맞춤 양복점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솜씨 좋은 재단사와 양복지의 원활한 공급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당시 대구에는 제일모직과 삼호방직이 있었다. 그 가운데 제일모직은 1965년 국내 최초로 국제양모 사무국으로부터 '울 마크'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고급 양복지가 공급되면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맞춤 양복은 가격이 비쌌다. 웬만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 시절 양복 한 벌 값이 6급 공무원의 한 달 치 월급보다 많았다. 그래서 상당한 재력이 있는 집안의 자제들 또는 결혼 예복 정도를 맞춤으로 지어 입었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부모를 모시고 중앙로의 양복점을 드나들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중앙로에 있는 유명 양복점의 상품권이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은 영진양복점이다. 1945년에 창업하였으며, 지금도 자리를 옮겨서 영업하고 있다. 모모양복점․런던양복점․신성양복점은 그곳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이 차린 양복점이다. 또한 향촌동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은 형제양복점이다. 1955년 창업하였으며,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밖에 명통구리양복점․보스톤양복점․이글양복점․양치상양복점․신성양복점․만우라사․일신라사 같은 양복점이 유명세를 누렸다. 1980년대에 이르자 전성기를 구가하며 1천여 개 양복점이 있었다.만우라사를 창업한 이상동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당시 중앙로에는 양복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 때는 다들 양복을 맞춰 입었으므로 양복점은 성업이었고, 일을 시키고 밥만 먹여주어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기술까지 가르쳐주는 양복점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양복은 유행을 많이 탄다. 기성복의 등장과 패션문화의 변화로 많은 양복점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맞춤 양복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맞춤 양복 한 벌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양복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연전에 대구에서 '아시아 맞춤 양복점 총회'가 열렸는데, 대구․경북지역의 맞춤 양복점이 263개소로 서울․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9-30 18:00:00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보기만 해도 상행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말 사고 싶지 않은 물건들 사이를 실눈을 뜨고 지나다 필자도 모르게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동물 표본을 진열해 놓은 곳이었다. 흉측한 박쥐 표본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자 필자가 탄 보트가 그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거기선 무얼 보든, 뭐에 놀라든, 뭔가 사야 할 거 같았다. 재빠르게 진열된 물건을 훑어본 필자는 태국의 수상시장에서 파란 나비를 샀다.파란 나비는 중남미 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모르포나비를 닮았다. 파란색은 동물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색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어 검정이나 갈색 계열의 색을 띤다. 빨갛고 노란 새들은 그들이 섭취하는 먹이에 함유된 색소로 화려한 색깔을 갖는 것이다. 파랑새는 어떨까. 파랑새의 깃털도 검은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검은색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모르포나비는 날개를 살짝 기울여 보면 파란색 음영이 진하게 변한다. 다른 종의 나비 표본이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바래지는 데 반해 그것은 변치 않는 사파이어처럼 영롱하다. 이는 나비의 파란색이 색소가 아닐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우리가 파랑새와 모르포나비를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깃털과 날개 비늘의 구조 때문이다.모르포나비 날개 비늘의 횡단면을 주사전자현미경을 통해 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미세 구조가 규칙적으로 촘촘히 들어차 있다. 1㎜를 1천 개로 나눈 것보다 작은 나노 간격이다. 백색광이 이렇게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트리의 가지 모양 구조에 빛이 부딪쳐 반사해 나올 때 회절이 일어난다. 회절은 빛이 좁은 틈을 통과할 때 퍼지는 현상이다. 회절하는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한다. 이때 길이가 비교적 긴 빨간색이나 노란색 파장의 빛은 서로 상쇄해 없어지고, 길이가 짧은 파란색 파장의 빛은 중첩해 날개를 강렬한 파란색으로 보이게 한다. 이렇게 정밀한 나노 단위 구조로 인해 빛이 분해되어 나타나는 색을 구조색이라 한다.모르포나비는 수컷만이 구조색을 띤다. 그것도 등 쪽 날개만 파란색이다. 수컷의 안쪽 날개나 암컷의 날개는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그들이 날개를 접고 있으면 낙엽으로 오인할 정도다. 수컷의 날개가 구조색으로 진화한 이유는 생식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거라 추측한다. 화려한 색깔은 암컷의 눈에 잘 띄고 다른 수컷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날개 안팎으로 다른 색깔을 갖는 것은 날아가며 날개를 접었다 펼 때마다 색깔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여 적을 교란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자연에서 생물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왔다. 나비의 경우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나뭇잎과 비슷하게 생긴 색으로 날개를 위장하거나, 애벌레의 경우 몸에 커다란 눈 모양 무늬를 만들어 나비의 천적인 새들이 그것을 자신의 천적인 뱀이나 부엉이로 오인하게 한다.또한 독성이 있는 풀에 알을 낳아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그것을 먹고 자라며 서서히 몸에 독이 쌓이게 한다. 독 물질은 나비나 나방의 날개에 강렬한 색소로 나타나 성충이 되었을 때 화려한 날개를 갖게 한다. 새나 도마뱀, 거미는 요란한 무늬와 색깔의 나비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비의 화려함은 위험을 나타내는 경고다.한 해가 기울어간다. 넉 달 남짓 살아가는 모르포나비의 숨 가쁜 일생도 끝나간다. 나비의 목표는 한 가지. 알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면 그들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나비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 물론 사람은 추구하는 목표가 다양하고 성공의 기준도 각기 다르며 전략 또한 다채롭지만 말이다.구조색은 빛의 마법이다. 빛의 마술을 부리는 나비의 전략은 때로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최선이다. 먼 이국땅을 건너온 파란 나비가 등을 활짝 펴 보이고 있다. 당신의 최선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2019-09-30 18:00:00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지금 대구로 오10미까?

문장이 이상하다. 문장 안에 숫자가 들어가서 문법을 파괴했다. 어찌 보면 받침 없는 발음이 일본어 같기도 하다. 사실은 이번에 개발한 '대구 10미(味)'의 광고 카피이다. '지금 대구로 오십니까?'라는 문장에 '10미'라는 단어를 넣어서 표현했다.대구 10미 광고를 의뢰받고 좀처럼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대구 10미의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어떤 음식이 대구 10미에 포함되는지 몰랐다. 대구 10미를 기발하게 알릴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이디어 노트에 대구10미라는 단어를 써보기도 하고 붙여보기도 하고 오려보기도 했다. 필자는 아이디어가 막힐 때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문제 하나를 노트에 써두고 360도로 동그라미 원을 그리며 수십 가지 관점에 대입해보는 것이다. 사실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방법인데 정말 답이 없을 땐 그렇게 아이디어를 찾는다.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대구10미는 결국 대구에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전통 음식이 아닌가. 그래서 쓰게 된 카피가 '지금 대구에 계십니까?'였다. 그다음에 '그렇다면 누른 국수를 드세요!'라는 서브 카피를 붙이는 식으로 10개의 음식을 대입했다. 말 그대로 대구에 계신다면 대구 10미를 드시라는 단순한 의도였다.그리고 존재감이 없는 대구 10미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계십니까?'를 '계10미까?'로 교묘하게 10미라는 단어를 집어넣는 방법이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디자인이 예쁘지 않았다. '계10미까?'라는 글에서 '계'와 '10'이 얽혀서 문장 읽는 것을 방해했다. 대구시청 팀과 이 문제로 회의하던 중 '계십니까?'를 '오십니까?'로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랬더니 '오10미까?'라는 문장이 만들어지며 디자인도 예쁘게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대구로 오10미까?'가 최종 카피로 결정되었다.하지만 카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버스에 대형 간판을 붙이는 기획을 했다. 소비자들이 식당을 찾을 때 사실 간판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간판의 디자인이나 색감, 그리고 이름에 따라서 맛집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이용해 세련되지는 않지만, 옛날 맛집 같은 허름한 간판 디자인을 버스 광고판에 올렸다. 그랬더니 맛집 간판을 붙인 버스들이 마치 이동식 맛집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렇게 대구 10미 광고는 카피와 이미지의 균형을 맞춰 태어났다.대구 10미 광고를 진행하며 대구시청 위생정책과와 우리는 한 팀이 된 것처럼 작업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막창을 제외한 음식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고 경상도 음식이 생각보다 풍미가 떨어진다는 인식이다. 광고판의 간판에 붉은색을 많이 쓴 것도 식감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대구만큼 단위 면적과 비교하면 음식점의 수가 많은 도시가 드물다. 가까운 부산이나 대전만 가봐도 대구만큼 음식점이 많지 않다. 치맥 페스티벌이 대구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된 것만큼 대구 10미에 관한 끊임없는 홍보가 필요할 듯 보인다. 이제 '경상도 음식은 맛없다'라는 얘기를 그만 듣고 싶다.(주)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19-09-30 18:00:00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세계의 창] 대왕고래의 희망

1881년 문을 연 런던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규모와 더불어 외벽을 장식한 갈색과 회색 테라코타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으로,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로 소개되곤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탁 트인 넓은 공간에 거대한 대왕고래가 마치 헤엄치듯 유유히 떠 있기 때문이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이 화석은 길이가 자그마치 25m에 달하며, 지구상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큰 대왕고래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준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동식물의 화석과 표본은 생명체의 다양함과 풍부함, 더 나아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한다.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이 절멸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갑자기 텅 빈 마당에 혼자 서있게 된 사람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동식물의 개체 수 급감이나 멸종에 관한 뉴스가 늘어나는 추세라 더 그렇다. 대왕고래도 한때는 인간의 마구잡이식 고래 사냥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분별한 포획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된 후 가까스로 멸종 위기는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라져가는 동식물이 희귀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늘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많던 참새들, 다 어디로 갔을까? 포장마차마다 참새구이를 팔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흔하던 참새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께서 가끔 옥상에 새 모이를 한 줌 뿌려주시면 참새 떼가 금방 모여들어 짹짹거리곤 했었지만, 이제는 쌀을 뿌려주어도 찾아드는 참새가 별로 없다. 꿀벌이 사라져서 인공수분을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사라져가는 동물들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다급한 경고가 아닐까?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불러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요즘 전 세계의 화두가 된 기후변화도 그 주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서유럽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에서 빙하가 녹아내려 붕괴 위기에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지구 곳곳에서 태풍과 홍수, 그리고 가뭄과 기근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일대는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고, 유럽은 폭염과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가 하면, 브라질과 볼리비아는 아마존의 산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달 20일,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 나이로비, 멜버른, 마닐라,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의 수천 개 도시에서 기후변화 반대 시위가 열렸고, 여기에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극의 과학자들도 동참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화석연료 감축이나 소비와 생산 방식의 재검토라는 문제에 가로막혀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번 시위가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전 세계적 청년 운동'이 된 것은 기후변화와 그 원인인 환경파괴에 대해 젊은이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래가 있어야 한다"는 스웨덴 16세 소녀의 외침은 어떤 꾸지람보다도 호되다.젊은이들의 요구에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답을 해야 한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혹독해지는 자연재해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이며 문명의 도전이다. 소비문화에 근거한 개발과 경제발전 논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환경을 돌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자연사박물관의 대왕고래에게 '희망'(Hop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할 때다.

2019-09-30 14:05:33

손경찬 독도지킴이

[기고]'조국 사태'는 우리 시대의 불행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과 그에 관해 얽힌 온갖 의혹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이 마침내 현직 법무부 장관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일이 이쯤 되니 여론을 무시하고 조국 장관 임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력히 추천했던 여당 지도부가 다급해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검찰을 맹비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될 때만 해도 개혁의 적임자라며 정의와 공정의 잣대로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에 철퇴를 가하라는 주문까지 했던 여당이 아닌가.검찰의 칼끝이 의혹이 한두 건이 아닌 여권의 실세에게 바짝 조여오자 그간에 추켜세웠던 말과는 다르게 검찰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검찰이 압수수색하면서 '사전에 통지하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가 하면, 사실과 다른 말들을 퍼트렸다. 장관 집을 11시간 압수수색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압수수색 당일 자장면을 주문해 시간을 때우고 휴지통까지 뒤졌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퍼트렸는데, 검찰에서도 어이없고 답답한지 조목조목 반론했다.통상적으로 주택 압수수색의 경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나 정경심 교수가 변호사를 입회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고, 변호사 입회 후에는 압수수색 내용에 일일이 이의를 달아 이와 관련해서 두 번의 영장을 추가로 신청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점심을 자장면으로 시킨 것도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끝내겠다는 말에 "그렇게 하면 (나도) 점심식사를 못하겠다"는 정 교수의 말에 점심을 시켜 먹었고, 수사진의 식사 비용은 검찰이 별도로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가짜 뉴스까지 흘리면서 불평을 해댔다.'조국 사태'를 보는 입장은 정치 진영에 따라 두 갈래로 상반되고 있다. 한편은 의혹투성이 속, 그것도 배우자가 피소돼 재판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조국은 부적격자이며,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독선이라는 것이다.또 다른 입장은 의혹만 있지 아직까지 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자에 대해 대통령의 임명은 당연하며, 검찰 개혁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이런 논란에도 분명한 것은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이 국민이 의심하는 각종 의혹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점이고, 또 언론 보도에 따르면 관계인들이 그 의혹을 감추려 한 사실들이 하나둘 나타나는 것이다. 누구든 권력을 등에 업고 두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실체적 진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분명 아닌 것이다.'문재인 정부가 핵심으로 꼽고 있는 검찰 개혁을 통해 정치 검찰이 아니라 국민의 검찰로 태어나야 하는 당위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그렇더라도 각종 의혹에 휩싸여 대한민국의 여론을 양분시키고 갈등을 유발케 하고 있는 조국 장관 건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더욱이 그 가족이 피의자 입장에 선 마당에서도 흔들림 없는 조국 수호에 안달하는 정부여당과 당사자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2019-09-30 11:13:27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비오는 날의 슈퍼맨

올해 여름은 유독 더 더웠던 것 같다. 아마 어디에나 있는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긴걸 보니 가을이 오나보다. 연신 부채질을 하던 손은 이제 추위를 피해 호주머니를 찾을 것이고,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땀에 옷이 젖어 괜히 짜증이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여름의 끝을 알리듯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특유의 비 냄새와 빗소리는 못 보던 것을 보게 만들거나 기억하지 못하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어린 시절, 비가 오면 우산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 짓(?)이 시작되었는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 긴 기간 동안 호사를 누렸다. 우산을 들고 다녀야하는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워진 기분이랄까?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다보면 땀과 비 때문에 옷이 흠뻑 젖었다.(물론 비가 올 때마다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어느 날, 비에 옷이 젖어 바닥에 떨어진 빗물위에 서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웃으셨다. 아마 내 몰골 때문이거나 맷돌의 손잡이를 잃어버리셨던 모양이다.하루는 비가 오자 어머니께서 빨래통에 있던 옷 한 벌을 내어주셨다. 매번 멀쩡한 옷을 버려오니 어차피 젖을 옷을 꺼내주신 것이다.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이 통과된 사람처럼 나는 기뻐했다. 이제 합법적으로 비를 맞을 수 있게 된 것이니까. 그렇게 법의 보호아래, 슈퍼맨이 공중전화부스에서 옷을 갈아입듯 비가 오면 나는 옷을 갈아입고 슈퍼맨이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될 무렵 더 이상 빨래통에서 옷을 찾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의 이상한 시선이 의식되었던 것 같다.여전히 빨래통에는 옷도 많은데 비오는 날 슈퍼맨은 더 이상 없다. 이유 없는 행복에 대한 의심과 머리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이제는 움직이는 일에 주저함이 생긴다. 우리는 사회적 위치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작은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연출가

2019-09-30 11:13:05

노동일 경희대 교수한국경제사회연구회 이사, 사우스웨스턴대 대학원 법학 박사

[이른 아침에] 원칙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 대통령 발언윤 총장 그만두라는 말과 같지만검찰 수사 받는 법무장관 나라서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경우이다. 박지만 씨 친구라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유족 사찰' 죄목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그에게 유독 가혹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검은 헝겊인지 수건인지를 덮었지만 선명한 검찰 마크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수갑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검찰의 관행이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법집행이었다. 흉악범도 아니고 도주 우려도 없었다. 포토라인에 선 유명인치고 영장심사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경우는 없었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안희정 전 지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도 그랬다. 집권층의 심기를 헤아린 검찰의 과잉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인의 명예에 대한 의도적인 짓밟기였다. 이 전 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에는 그 같은 모욕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지인들에 대한 수사 등 검찰의 끊임없는 괴롭힘이 있었다고도 한다. 현직 신분의 변창훈 검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역시 비슷한 충격이었다. 오전 7시 아이들 보는 앞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검찰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싶다.인권 보호, 엄정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 지난 정권 관련 수사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여권 누구도 말하지 않던 단어였다.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건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정치공세라며 일축했다. 더욱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독려만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이다.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검찰권 행사'의 핵심 지침으로 검사들의 가슴에 담아야 할 내용이다.문제는 발언 시점이다. 앞서 본대로 검찰 수사가 숱한 부작용을 나을 때 문 대통령이 같은 발언을 했다면 어땠을까. 반대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천금의 무게로 작용했을 게 틀림없다. 검찰 조직 전체가 스스로 조심하며 절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에 대한 불만 표출로 해석될 뿐이다. 적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혹독해도 우리 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다행인 것은 과거와 같은 구도가 되풀이 되지 않은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각영 검찰총장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사표를 던졌다. 강정구 교수 수사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로 김종빈 총장이 물러난 적도 있다. 관행적으로 볼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윤석열 총장이 그만두라는 말과 진배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진중권 교수의 말대로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을 상실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수사는 "아내와 검찰 사이의 다툼일 뿐"이고 본인은 검찰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한다.임기가 보장된 윤 총장이 물러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어떤 압력이 있어도 중도 사퇴라는 '과거의 관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재차 "검찰이 해야 할 일은 검찰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검찰은 원칙대로 수사를 하면 된다. 빠른 시간 내에 조 장관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조 장관 아들 수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이 비판 받는 별건 수사이기 때문이다. 애초 제기된 의혹에만 집중하여 결과를 밝혀야 한다.여권 전체도 영웅시하던 윤석열 검찰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멈추고 국정에 집중해야 한다. 조 장관 수사에 보복하듯 '검찰 개혁'을 외칠수록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검찰 개혁의 요체임은 다 알고 있다. 검찰이 개혁을 방해해도 필요하다면 국회의원들이 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조국만이 할 수 있다"거나 촛불집회가 있어야만 한다면 스스로 의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 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문 대통령, 조 장관, 정치권, 윤 총장, 검찰 모두 호랑이 등에 탄 형국이다.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제 할 일을 할 때 국민들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9-29 16:36:00

하병문 대구시의회 경제환경위원장

[기고] 극일(克日)의 시작은 뿌리산업 육성부터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로 일본이 가하는 위협은 그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기초소재·부품을 납품받으며 국내 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뿌리산업 기술 개발 및 지원을 등한시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 볼 수 있다.물론, 글로벌 전문화·분업 시대에 모든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이번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도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기술력 확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일(反日)이 아닌 극일(克日)을 위해 일본이 어떻게 부품·소재 강국이 됐는지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성이 있다.일본 제조업의 특징은 '모노즈쿠리'란 단어로 가장 잘 설명된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성된 이 용어는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일본은 모노즈쿠리를 통해 소재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재 확보와 고용 안정, 직업 능력 개발·향상, 노동 능력 평가와 노동 조건 확보, 산업 집적 유지, 중소기업 육성 등에 힘을 쏟았다. 자율주행자동차·로봇 등 전략 분야 육성, 학교 육성, 생애학습 진흥, 국제협력 등의 분야도 체계적으로 나눠 자금·제도·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우리가 이에 대응하려면 '뿌리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대구지역의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 및 기계부품과 안경산업 등의 성공은 뿌리산업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역의 미래먹거리인 로봇산업, 첨단의료기기산업, 신재생 에너지산업, 미래형 자동차산업 또한 뿌리기술의 첨단화와 융·복합화를 통한 기술력을 구현하지 않고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하지만, 지역의 뿌리산업은 '3D 업종'으로 인식돼 그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저평가돼 제조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또한 낮은 임금과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해 인력 확보의 문제 및 자금 확보, 기술개발 등에도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게다가 기업 지원 기반이 취약하고 생산 현장 인력의 고령화, 인력난 심화, 소규모·영세기업의 비중까지 높은 실정이다.따라서, 극일(克日)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정책적 관심과 관련 예산이 수립되는 시점에서 대구 지역 뿌리산업의 근본적 체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3가지 제안을 대구시에 주문한다.첫째, 기술경쟁력 확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뒤처진 지역 뿌리기업의 부가가치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뛰어난 기술경쟁력이 필요하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 학계·연구소·지원기관 등과 연계한 기술 지원 및 특허 공유 등이 이뤄져야 한다.둘째, 근로 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최저 수준이나 산재율은 높아 3D 산업 이미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셋째, 체계적인 인력 수급 시스템이 지원돼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은 증가하고 기술·기능직 인력은 감소 및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관련 인력이 충원될 수 있고 뿌리기술이 지역에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의 소재 부품산업을 통해 시작된 위기가 뿌리산업 활성화를 통해 대구시 지역 경제 활성화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9-09-29 15:39:02

비단에 담채, 29.5×26.4㎝,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정선(1676-1759), '시화환상간'

9월의 주제는 그림을 중심에 놓은 동호(同好)의 우정이었다. '기명절지' 부채의 이도영과 고희동 그리고 스승 안중식, 심사정의 그림과 강세황의 글이 나란히 표구된 '경구팔경첩'의 '산수', 강세황의 '월매도'에 써 넣은 친구 허필의 비평 등은 그림을 매개로 한 한국문화사의 의미 깊은 장면들이다. 겸재 정선의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또한 사천(槎川) 이병연(1671-1751)과의 우정과 고전 회화의 인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맨 머리를 드러낸 소탈한 차림의 두 노인이 두루마리를 펴 놓고 냇가 소나무 아래 풀밭에 마주 앉아 있다. 한 사람은 화가 정선이고 한사람은 다섯 살 위인 시인 이병연이다. 두 분은 한 동네에 살았는데 정선이 경기도 양천 현령으로 떠나게 되자 두 노대가는 서로의 소식을 시와 그림으로 전하기로 한다. 30대부터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정선이 66세, 이병연이 71세 때인 1741년(영조 17년)이었다. 정선은 한강 주변의 명승지를 화폭에 담아 이병연에게 보냈고, 이병연은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보냈다. 두 분은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이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실력을 겨루었다. 그림이 가면 시가 오고, 시가 가면 그림이 오는 '시거화래'(詩去畵來)의 왕복에서 탄생한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첫 머리에 이병연이 아래의 시를 써서 보낸 편지가 실려 있다. 아시군화환상간(我詩君畵換相看) 경중하언논가간(輕重何言論價間)시출간장화휘수(詩出肝腸畵揮手) 부지수이갱수난(不知雖易更雖難)내 시와 그대 그림을 서로 바꿔보는데경중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며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시는 마음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데어느 것이 쉽고 어느 것이 어려운지 알 수 없다네 정선이 '시화환상간'에 써 넣은 화제는 위의 이병연 시 중 앞 두 구절이다. 정선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세계관을 나타내는 중국풍 관념산수가 주류를 이루며 실제의 경치인 실경(實景), 진경(眞景) 그리기가 약했던 조선 산수화에서 우리 산천을 그림으로 옮긴 '진경산수'로 한국회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정선이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모델을 창안할 수 있었던 것은 "공력의 지극함은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던 평생의 노력과 이병연을 비롯한 문인, 사대부 지식층과 교류하며 당대의 문예흐름과 시대정신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선이 부임했던 양천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인데 2009년 '겸재정선미술관'이 강서구 궁산 자락에 개관했다. 미술사 연구자

2019-09-29 06:30:00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文靑들에게 보내는 편지

소설이 쓰고 싶다는 분을 더러 만납니다. 꼭 쓰고 싶은 글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해요. 소설이 무엇일까요? 소설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적재된 상처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듯이 풀어내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하고 싶은 욕구와 같은 억압된 초자아와 대면하게 해서 카타르시스를 행하게 만드는 그것이 소설입니다. 소설로 형상화된 초자아는 이드가 용납하지 않는 충돌을 도덕적으로 이끌고 자아를 컨트롤하며 대리만족을 끌어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첫 소설은 '자아 찾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얘기를 쓰든지 자기검열을 접어두고 마침표 찍을 때까지 자아가 나아가는 대로 따라가세요. 누가 주인공이 되든지 소설 속의 인물은 하나의 시점에 불과해요. 소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개인 중심의 글이 되거나 시대정신을 담은 글로 변모해요.오르한 파묵은 소설이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어요. '그림과 관련된 세밀화가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그와 같이 '무엇을 쓸까?' 하는 글감이 주어지면 '어떻게 쓸까?' 하는 구성이 시작되어요. 인물, 사건,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한 줄로 엮는 과정에서 소설의 가독성이 주어지죠. 이야기는 단순한 시간의 나열이 아니라 인과관계로 밀집되는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에요. 인물의 움직임과 서사의 흐름에는 반드시 합당한 동기가 주어져야 해요. 소설에는 우연이 없고 오로지 합리성과 필연성이 있을 뿐이니.이제 곧 신춘시즌이에요. 문청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며 매일춘추를 마감할까 해요. 신춘문예에 소설을 응모할 때 오타와 띄어쓰기, 단락구분 같은 기본기를 꼼꼼하게 살피고, 글씨체는 신명조나 바탕체 11포인트로 출력하는 것이 좋겠어요. 응모작 중에 단락과 단락 사이를 한 줄씩 띄운다거나 단락을 아예 무시한 작품, 원고 분량이 모자라거나 두툼하게 원고지를 묶은 소설까지 다양한 형식이 눈에 띕니다. 반듯하고 짜임새 있는 A4용지 출력에, 표지까지 입히는 정성도 작품의 격을 높이는 부분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소설은 서두가 가장 중요해요. 서두에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지, 문장은 깔끔하게 정서되어 있는지 거듭해서 살피고, 첫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인물이나 스토리의 움직임이 없으면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단편소설은 압축의 미학을 높이 사는 장르란 걸 기억하고, 소설 속의 모든 에피소드와 소도구가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기로 해요. 간결한 대화, 늘어지는 묘사, 서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보고형식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은지. 장정옥 소설가

2019-09-29 06:30:00

정화섭 작 '안데르센 동상'

[내가 읽은 책]안데르센의 지중해 기행/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송은경 옮김/예담 펴냄. 

한때 어린아이였을 어른들을 위하여 축배를 든다. 저자는 어린 시절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등의 많은 동화로 우리에게 상상을 품게 해준 인자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1805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에서 태어난 저자는 1875년 70세의 일기로 사망하기까지 동화와 희곡, 기행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코펜하겐에서 동방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이 책은 9개월간의 긴 여정을 적고 있다. 제1부 위대한 어머니 덴마크, 제2부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리스, 제3부 신비의 땅 동방에 가다, 제4부 다뉴브 강을 거슬러 오르다, 제5부 다시 덴마크로 구성되어 있다. 자신을 물과 같다고 표현했던 저자의 말대로 새로운 여정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임을 암시한다."그 모든 것을, 그 신성하고 깊은 적막감을 내 어찌 다 기억하랴!"P108 옛날 옛적부터 신성시 되었던 델포이(델포)에서 사슴의 눈은 눈물로 무거워지고 금지된 노랫가락 속에는 어머니가 있음을 떠올린다. 부재의 이미지를 찾아가듯, 여행의 서곡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나 자신으로 끝나는 나그네이다. 일상의 탈출로 인한 정신의 재충전과 여행담을 통해서 버무리는 사유의 짜릿함이 책속에는 있다.저자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비평가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여행길에 나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 결점만 보려고 한다. 이제 고국에 가서 헤쳐가야 할 길은 험한 폭풍우 속의 바닷길이다. 항구에 닿기까지, 수많은 거센 파도들이 머리 위에서 부서질 것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내 미래가 결코 지금보다는 더 나쁘진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p274 지중해 기행을 통해서 재현된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린 불운의 이야기는 자전적인 요소가 많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 고통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차가운 소나기를 맞아야만 부글부글 끓다가 꽃으로 터진다고 한다. 저자의 발자국에 채색된 그림자는 감동적인 운치와 낭만이 묻어있다."덴마크에 산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덴마크 문학이야말로 산이다. 숲이 우거진 높은 산이다. 이웃 나라들이 볼 때는 지평선 위 푸르스름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언제든 환영하니 와서 우리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산야를 거닐어 보시라." -p282 저자가 고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귀환의 첫 순간이야말로 그간의 여행으로부터 받는 환영의 꽃다발이라 한다.올해로 한국과 덴마크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덴세 시립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로 작가의 200년을 기념하는 국제교류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다룬 휴머니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내 작품을 이해할 것이고"…….이제 추석도 지나고 훌쩍 가을의 문턱을 넘어섰다. 저자가 집세를 내지 못해 거듭 이사를 했던 그 옛날 뉘하운을 떠올리며 이 책을 펼쳐도 좋으리라. 동화보다 아름다운 지중해기행은 더욱 풍성한 계절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정화섭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9-28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좀 자세히 살펴보게 박제가

눈앞에 핀 꽃들이 다 붉다 해서/ 무장일홍자(無將一紅字)다 같은 꽃이라곤 말하지 말게/ 범칭안전화(泛稱眼前花)암술 수술 꽃마다 다 다르거니/ 화수유다소(花鬚有多少)그 차이를 좀 자세히 살펴보시게/ 세심일간과(細心一看過)*원제: 위인부영화(爲人賦嶺花): 어떤 사람을 위해 고갯마루 꽃을 노래하다. 과거 동양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은 다분히 망원경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맥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산맥 속의 산, 산속의 숲, 숲속의 나무, 나무 밑의 마타리꽃과 뻐꾹나리,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무당벌레와 땅강아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연 전체의 거대한 윤곽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살고 있는 개별적 사물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관찰은 아무래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옛날 우리나라 시문들에 강은 매우 자주 등장해도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꺽지와 빠가사리, 각시붕어와 미꾸라지, 쏘가리와 모래무지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연유가 있다.예컨대 나무. 나무들은 모두 나무이기 때문에 나무로서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무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편성과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특수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따라서 나무를 보면 나무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조선후기의 학자 박제가(朴齊家)가 지은 위의 한시는 동양인들의 이와 같은 자연관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눈앞에 있는 꽃들이 모두 붉다 해서 꽃들은 죄다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말하지 말라는 거다. 왜 그러냐고? 자세히 살펴보면 암술과 수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암술과 수술은 개별적인 꽃들이 지닌 차별성의 대표로 구사된 시어. 그러니 어찌 암술과 수술만 다르겠는가? 그 크기와 색깔, 꽃잎의 수와 꽃잎의 모양이 제각각 천차만별이다.겨자씨 속 수미산! 우주는 크지만 그 우주의 진실은 작은 것 속에서도 살아있다. 때문에 작은 것에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우주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산길을 가다가 여치를 만났으면 여치라고 불러주고, 풀무치를 만났으면 풀무치라고 불러주어야지, 일괄 곤충이라 부르지 말라. 끝순이를 만났으면 '끝순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돌쇠를 만났으면 '돌쇠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사람아' 하고 부르면 어느 누가 대답을 하겠는가.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9-28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광장으로!

광장(廣場)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이다. 쾌적한 공간이 있고, 그 주변엔 커피숍, 서점 같은 상가가 있으며 바닥엔 잔디나 붉은 벽돌이 깔려 있을 법하다. 둘레엔 드문드문 벤치가 있고 마로니에나 라일락 또는 배롱나무가 서 있을 법도 하다. 한쪽엔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다른 쪽엔 청소년을 위한 농구대 하나쯤도 마련되어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광장은 우리 시대에 정신적으로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우선 광장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적이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적절하게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선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남에게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하며, 자유롭게 차려입을 수 있지만 풍속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반려동물을 동반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자유와 평등도 소중하기 때문이다.평등하다면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되고 결국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놀이를 할 때도 부잣집 아이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먼저 온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늦게 온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기다려야 한다.둘째, 광장엔 자정(自淨)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보장하면 평등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균형이 깨어지는 곳에 불화가 생긴다.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시민들의 협의에 의해 도출된 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의 순(順)기능으로 인한 정화(淨化) 작용, 그것이 자정 능력이다. 편향된 이념에 중독된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엔 바로 이 자정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끝으로, 광장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 이념,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누구라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광장에 두 명 이상이 있다면 위의 두 가지 원칙 모두가 지켜져야 한다. 혼자 있어도 스스로 어긋남이 없도록 신독(愼獨)함에 힘써 자정 능력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위의 조건이 맞지 않는 비민주적 공간, 즉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반칙과 특권은 묵인되며, 자정 능력은 실종되고 없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린 폐쇄적인 공간을 '밀실'(密室)로 규정한다. 밀실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다. 정의가 죽어버린 공간이다. 홀로 거(居)해도 바르게 처신하면 그곳은 광장이다. 무리를 지어도 동반 타락하면 그곳은 밀실이 되고 만다.결국 바람직한 삶은 밀실을 떠나 광장으로 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다. 용기와 지혜로써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고 이웃과 함께 광장에 서고자 하는 지난(至難)한 몸짓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거하는 곳을 광장으로도, 밀실로도 만들 수 있다. 마음을 잘 쓰면 온 누리가 광장이고, 잘못 쓰면 처처(處處)가 밀실인 것이다. 가자! 광장으로! 그곳은 반칙과 특권이 없고, 너와 내가 공정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자!전 정부가 '광장의 밀실화'로 탄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러함에도 현 정부는 반칙과 부정을 일삼고 특권은 누릴 대로 누리며 밀실에서 살았던 가정의 가장을 광장의 관리인으로 고용했다. 잘못된 인사다. 계속 국민과 역사에 눈감으면 파국을 부른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본 칼럼의 모티브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얻었다. 그러나 광장과 밀실의 개념은 작품 속의 그것들과 다르며 필자가 내린 정의임을 밝힌다.-

2019-09-28 02:30:00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한반도 비핵·평화에 시동 건 대통령의 정상외교

지난 24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DMZ의 평화 구축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가치를 공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북 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이 보다 현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9·19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군사 분야 합의서의 영향이 크다.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는 DMZ를 둘러싼 육해공 지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었다. 군사 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 남북 간 충돌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우리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 간 합의사항인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작업과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시험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평화의 길 조성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군사 합의에 따라 판문점 지역에서 왕래가 수월해진 것에 기인한다. 판문점 지역의 자유왕래까지는 아직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북 접경지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역대정부에서 늘 있어 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DMZ 한복판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접경지역을 둘러싸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남북이 한반도 번영을 공동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미 DMZ는 남북의 철책을 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평화, 생태, 문화의 보고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적절했다고 본다. 특히 아직 한반도는 수십만 발의 지뢰와 세계 최대의 군사적 화기가 대치하는 정전협정 체제 아래 있다. DMZ는 정전협정에 따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유엔군사령부가 관리하는 지역으로 되어 있다. 유엔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DMZ를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문제 자체가 불가능하다.물론 DMZ만 평화적으로 관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DMZ의 평화지대화는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 과정과 연결되어 있으며 한 단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번에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시한 전쟁 불가, 상호 간 안전보장, 공동번영의 3원칙에 따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한반도 전체의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이 전개될 때 평화지대화 작업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유도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면서 단계적인 방식을 통해 북한의 신속한 조치를 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체제 안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북한에 먼저 비핵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상응하는 조치들을 촘촘히 만들어 연착륙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음은 지난 30여 년간의 협상 경험이 말해 주고 있다. 북한의 핵동결에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유도해 내야 함은 자명하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과 '지켜보자'는 신중한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앞으로 2, 3주 내에 개최될 북미 실무협상을 지원하면서 북미가 유연한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조치들을 도출해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와 DMZ의 평화지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과 공동번영의 이슈들이 상호 선순환하면서 한반도 평화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2019-09-26 15:28:59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아버지와 네 번의 눈물

오늘은 나의 아버지 생신 이시다. 근데 난 가보지 못했다. 이유야 어떻든 굉장히 불효를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평상시 아버지의 생신이라면 온 식구들이 모여 식사라도 같이 했을 터인데…. 사실 지금의 나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리고 청각 및 언어장애를 가지신 분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아버지와의 기억, 아버지로 인한 눈물 몇가지를 적어 보고자 한다.아주 어렸을 적 굉장히 아픈적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터라 그 당시엔 병원도 없었고 교통도 굉장히 불편했다. 이동수단이라야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꽤 먼거리 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를 업고 걸어 갔고 난 아파 정신이 몽롱했지만 아버지의 등에서 배어나오는 땀 냄새를 맡으며 울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마 등짝에 배인 땀이 진통제의 역할을 했는 것 같아 5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내가 사춘기 일때는 아버지가 장애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어느날 친구들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 친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손짓과 묘한 음성으로 반겨 주었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묻자 나도 모르게 "옆집 아저씨"라고 대답해 버렸다. 그 순간 나 스스로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몰랐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죄송함과 막막함이 나를 짓눌렀으며 그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아버지의 몫까지 세상에 다 표현 하겠노라고…. 그 결과 오늘의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스물이 갓 넘었을 때 아버지의 회갑연이 있었다. 자식들이 쌍쌍히 나와 절을 하였고 막내인 난 맨 마지막에 절을 하였다. "아버지 생신 축하 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엎드린 순간 왠지 모를 울음이 터져 나와 버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옆에 앉아계신 어머니도 울고 계셨고 누나도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채 멀뚱히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어머니의 한을 묵시적으로 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아버지 나이 90을 바라볼 때 어머니가 뒷바라지 하기가 힘이 들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를 한번 안아 주면서 "아버지 잘 계세요" 했는데 아버지는 걱정말라고 하는 듯 내 등을 토닥 거려 주셨다. 그것이 또 얼마나 서러운지 돌아서는 순간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곳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삶의 끝의 여정을 보내기 위해 오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제 남은 눈물은 하나 뿐인거 같다. 정말 잘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다. 오늘 아버지 생신 때는 찾아 뵙지 못했지만 내일 이라도 찾아 뵈어 "아버지 날 낳아 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는 꼭 해야 겠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9-26 11: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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