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백신 민족주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오늘도 여느때처럼 외래가 북적거린다. 순환기내과 외래는 그 병만큼이나 극적이다. 동반질환이 많은 만큼 질문도 다채롭다. 약이 많다면서 영양제는 뭐가 좋은 지묻는가 하면, 몸에 좋은 음식을 찾으면서 술·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하는지를 묻기도 한다.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다 보면 외래가 시작되자마자 진이 빠지기 일쑤이다. 최근에는 단골질문이 하나 더 추가됐다. 바로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되느냐는 것이다.

심장환자들은 대개 고령으로 심장질환 그 자체가 기저 질환자일 뿐만 아니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같은 동반질환도 많아 당연히 걱정이 많다. 기저질환자들에게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이 발생하면 위험 할 수도 있지만, 백신 접종을 받지 않고 코로나 백신에 감염되면 사망률이 절반 이상으로 더 위험하다고 설명드리고 백신을 맞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백신을 거부하는 것 보다 거부할 백신 자체가 없다는데 있다.

코로나 19로 우리는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단어들에 익숙해져 있다.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집단 면역'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백신 민족주의'라는 단어를 추가하고자 한다.

백신 민족주의는 정부가 다른 국가보다 먼저 자국민에게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제약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미국과 영국 같은 고소득 국가는 세계 인구의 14%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백신 공급량의 최대 53%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모더나 백신 공급량의 100 %와 화이자 백신 용량의 96 %에 해당한다. 캐나다는 전체 인구가 5번 예방 접종을 할만큼 충분한 백신을 확보한 반면 67개 저소득 국가는 전인구의 90%가 올해 말까지 예방 접종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

글로벌 백신 불평등은 도덕적 문제이자 국가 안보 문제이다. 불평등이 건강과 경제적 복지 사이의 불균형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WHO) 테드로스사무 총장은 백신 공급의 도덕적 실패의 대가는 세계 최빈국의 생명으로 고스란히 지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집단 면역'은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더 이상 집단에서 쉽게 퍼지지 않는 지점을 말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전인구의 70% 이상이 백신을 2회 접종했을 때 집단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

백신 강대국들은 현재 마스크를 벗고 축제를 즐기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전 세계가 집단 면역을 얻는데 약 4.6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적 집단 면역력을 얻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코로나19의 변종에 의해 현재의 백신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러면 백신 강대국만 즐기고 있는 '백신의 봄'도 수포로 돌아갈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저소득 국가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백신을 확보한 강대국의 백신 민족주의는 비도덕적이고 근시안적이며 비효율적이고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백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백신을 시장 상품보다는 공공재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위해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에서 보호하고 있는 백신의 특허를 일시적으로 포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전세계적 코로나19의 극복은 부유한 국가가 먼저 예방 접종을 받을 때까지 가난한 국가가 생명을 희생하면서 기다려서는 결코 달성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백신 형평성'을 위한 국제적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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