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철없는 데이트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아침이 되면 일터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중간에 다른 곳을 가는 일도 잘 없고 만나는 사람의 반경도 그리 넓지 않다보니 반복되는 일상에서 크게 슬픈 일도, 크게 웃을 일도 없다. 어지간한 일에 잘 웃는 편도 아니다. 그러던 몇 달 전, 나를 폭소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현재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나이는 35살이다. 유행 지난 체크무늬 남방에 한쪽 눈을 가린 머리스타일. 첫 만남부터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을 하더니 "이쁘다", "귀여워"라며 느끼한 말들을 남발하고 느닷없이 "바보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커피가 좋아서 에티오피아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이 남자. 그는 바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B대면 데이트'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준'이다.

물론 그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개그맨 김해준이 연기하는 '부캐(부캐릭터)'이다. 그의 영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담스러워서 못 보겠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자 '준며들다(최준+스며들다)', '준독되다(최준+중독되다)'라는 단어까지 탄생시키며 그는 많은 이들의 비대면 애인으로 등극했고 요즘 예능, 광고계의 엄청난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갑자기 유행하는 개그코드 같지만 그저 웃고 넘기기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개그라고 불릴 만큼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살아오며 어디선가 한번쯤 만나봤을 법한 눈치 없고 뻔뻔하고 부담스런 군상들의 총합이 '최준'으로 탄생했다. 그는 입만 열면 닭살 돋는 말만 골라서 한다. "귀여운 꼬마 아가씨", "밥은 냠냠했어요?", "얼마나 더 이뻐지려고 그래?"라며 밀당을 모른 채 오로지 직진한다. 게다가 그는 전형적인 미남의 외모와 거리가 멀지만 자기애가 넘친다. 겸손이 미덕인 문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뻔뻔해서 어이가 없다.

그는 유튜브 '니곡내곡'이라는 코너를 통해 원곡 가수들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함께하는 가수에 비해 현저히 실력이 떨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노래하는 내내 자아도취된 그의 감정표현과 몸짓은 어느새 원곡 가수의 목소리마저 싹 잊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최준의 비호감적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묘한 대리만족을 선물한다. 사랑도 밀고 당기며 두뇌를 써야하는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작은 인정조차 받기 힘든 각박함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넘치는 예쁨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타인의 시선이나 객관적 상황과 상관없이 자기 감정에 심취한 그의 뻔뻔함 역시 경계가 풀리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아도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혐오에서 호감으로 변하는 양가감정을 토로한다. '불쾌한데 설렌다', '꼴보기 싫은데 자꾸 보는 나에게 화가 난다'는 반응이다. 이쯤 되면 최준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유머 그 이상인 듯하다. 타인은커녕 자신을 사랑하기도, 자신에게조차 솔직하기 힘든 많은 이들에게 최준은 반면교사가 되어 솔직하게 사랑하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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