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업에 대하여

대현스님 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업에 대해 확실한 뜻을 알지 못하고 추상적인 생각으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식이 속을 썩여도 내가 업이 많아 이런 과보를 받는구나? 내가 무슨 업이 있어 저런 사람을 만났는지? 사람들은 갑자기 큰 병이 오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무슨 업이 많기에 이런 고통을 받는지 모르겠다. 죄 짓지 않고 착실하게 열심히 살아 왔는데 왜 하필 내가 하면서? 회환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보면 과거 자신의 행동과 말과 생각을 살펴보면서 원인을 알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운명론으로 자신을 위로하곤 한다.

불교의 진리로 본다면 본인이 지어놓은 것에 대한 업인의 결과를 받는 것은 당연한데 마치 짓지 않는 과보를 받는 것 같아 매우 억울해 한다.

업에는 별업(개인의 업)과 공업(함께 짓는 업)의 두 종류가 있으며 선업과 악업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별업은 개인의 몸, 입, 생각의 삼업으로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은 살생하는 것, 도둑질 하는 것, 삿된 음행이 있다.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은 거짓말, 남을 속이는 말, 이간질하는 말, 욕하는 습관이다. 생각으로 짓는 세가지업은 탐심, 진심(嗔心), 어리석은 마음이다. 개인의 업으로 어떠한 지나간 행위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본인이 지은 업으로 인한 결과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며, 앞으로 업보를 받지 않으려면 참회로서 뉘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모르고 막연한 업이라고 생각하면 허무하기가 짝이 없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불교에서는 '삼시업'(三時業)이라 하여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시간적 차이를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순현업이다.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것이다. 둘째는 순생업이다. 전생에 짓고 금생에 받거나 금생에 짓고 내생에 받는 것이고, 셋째는 순후업이다. 선업이나 악업이 커서 여러 생애 동안에 공덕이나 죄업을 받는 것이다. 현생에 지은 것이 아닌데 지금 받고 있는 것은 전생의 업이 지금 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죄를 많이 지어 못 살아야 할 사람이 버젓이 잘사는 사람도 있고, 진실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이것은 전생에 있었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생의 과보는 내생에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그 예로 어린아이가 현생에 배우지도 않았는데 재능이 뛰어난 것을 종종 볼 수 있다.이것은 전생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함께 짓는 공업으로는 우리가 요즘 느끼는 미세먼지나 공해로 인한 발병이라든가, 코로나로 인해 온 국민이 괴로움을 받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이 짓는 업의 과보로 받은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 공동적으로 원인이 만들어져 그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잘살아 보겠다고 공장들을 짓고 매연을 내뿜은 것들이 어찌 개인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생활은 옛보다 훨씬 편해졌지만 주변에 알지 못하는 병들의 고통은 우리가 감내해야만 하는 함께 지은 업의 결과라고 하겠다. 나 개인이 아무리 잘살고 깨끗하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지구상에 점점 탁해져가는 공기를 볼 때마다 세계가 함께 발전하는 만큼 환경에 대해서도 함께 삶의 태도와 생활양식, 가치관에 대한 성찰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미세먼지와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이 지어서 결과를 받는 업이든, 함께 지어서 함께 받는 업이든, 그 결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날 뿐이지 전혀 원인이 없었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도 모두 우리가 지은 업의 과보임을 인식하여 지금이라도 후대를 위해 청정한 공기를 넘겨주려면 개개인의 삶의 가치관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대현스님 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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