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의창] 인포데믹

[의창] 인포데믹

얼마 전 TV광고를 보다가 여성가수가 멋지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누구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놀랍게도 실제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만든 가상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지금도 그 광고를 보고 있지만 가상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인류의 역사가 신화와 종교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올 때 그 밑바닥에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이성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진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연대와 소통이었다. 인터넷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대와 소통을 강화시켰고, 현재는 개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누구와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문제는 이런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근 코로나 19 백신과 관련된 가짜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방접종이 자폐증을 유발한다, 백신을 맞으면 오히려 코로나19변이 바이러스가 증가한다,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 면역력이 약해진다, 불임이 된다, 코로나 진단봉이 발암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진단검사를 거부해야 한다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모두 사실이 아니다.이처럼 전염병 대유행 시기 디지털 환경에서 거짓 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포함한 너무 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것을 '인포데믹'이라고 한다. 인포데믹은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무분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위험한 행동을 하게하는 원인이 된다. 또 보건당국에 대한 불신을 이끌어 내고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예방접종 등과 같은 방역조치의 가치를 훼손하고 방해하기도 한다.문제는 사람들이 가짜정보를 너무 쉽게 믿는다는데 있다. 왜 사람들은 거짓정보에 쉽게 현혹되는 것일까? 과학자, 심리학자, 언론인을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 동물'이란 통설로 이를 설명하려고 한다.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노력해본 사람들은 인간이 쉽게 남의 말을 듣거나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잘 선동한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을 믿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그들이 잘 설득했다기보다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정보를 원했기 때문에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사실과 부합하면 가짜뉴스라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아무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더라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확증편향' 이라고 한다.또 다른 이유로는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들 수 있다. 인간의 뇌는 많은 양의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그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고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사고를 멈추고 많은 양의 정보를 다수가 믿는 사실로 생각해 쉽게 가짜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이유야 어떻든 우리가 가짜 정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가짜정보의 대부분이 사람이 아닌 스스로 메시지를 생산할 수 있는 '소셜 봇'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쓰여지고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소셜 봇'은 스스로 생각해 가짜 정보를 대량 생산하고, 인간은'소셜 봇'이 생산한 정보를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섬뜩한 상황에 놓여있다.'코지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소셜 봇'에 의한 가짜정보가 범람하는 인포데믹에 맞서 진실된 정보를 찾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합리적, 통찰적,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2021-08-03 14:26:19

[경제칼럼] 세상을 바꾸는 무모한 도전, 룬샷

[경제칼럼] 세상을 바꾸는 무모한 도전, 룬샷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레이더의 도입,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 놓은 스마트폰의 등장.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처음 공개됐을 때, 다수가 미친 아이디어라고 손가락질했다는 점이다.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과 같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문샷'(moonshot)이라고 한다. 반대로,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바보 같기에 다수가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물리학자 사피 바칼은 '룬샷'(loonshot)이라고 명명한다. 놀랍게도,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큰 혁신은 바로 이 미친 아이디어, '룬샷'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미국에는 '쿼키'(Quirky)라는 기업이 있다. 오직 회원들의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개발, 제조를 거쳐 유통까지 하는 것이 쿼키의 역할이다. 물론, 아이디어는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쿼키 또한 전문가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키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상품화를 가능하게 해 '꿈을 실현해 주는 공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많은 이들이 창업을 어렵게 생각한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해 낼 기술이 완벽하게 갖춰져야만 창업이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쿼키의 경우처럼 아이디어를 고도화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기술을 구현할 방법은 있다. 어떤 도전은 무모해 보이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이러한 생각을 훌륭하게 반박한 사례가 있다.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 과제 선정에 한 팀이 뇌파를 감지해 뇌졸중을 예고하는 모자 '뇌예모'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 팀은 의학적 지식도, 구현 능력도 없었지만, 초기 뇌졸중을 예견할 수 있는 혁신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제 심사가 진행된 5월 8일 어버이날, 다음 해 오늘 내 손으로 만든 모자를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발표를 마친 뇌예모 팀은 청중평가단에게 최고 점수를 받았다. 당당히 1위 과제로 선정된 이 아이디어는 이후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품질관리 직원 3명과 신입 SW 엔지니어 2명. 즉 관련 전문성도 없고, 논문 한 편 써본 적 없는 팀원들로 구성된 뇌예모 팀에게 의학 영역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뇌 관련 디바이스를 만드는 일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초기 6개월은 아무 진전이 없었다. 아무리 논문과 전공 서적을 읽어도, 모니터 속 데이터가 뇌파인지 노이즈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교수, 종합병원 의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찾아 자문한 끝에 뇌파의 정상 여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이후 6개월간 수백 번 실패를 거듭한 결과, 뇌파 추출 성공률 1%에서 시작한 연구는 성공률 99%에 이르게 됐다.당시 뇌예모 팀의 멘토였던 임원은 이들을 이렇게 평한다. "전공자들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6주가 걸리는 외부 프로토타입 모델 제작 과정을, 직접 3D 프린터를 만들어 단 이틀로 줄여 버리는 정도다. 뇌예모 팀은 무서울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전문가 한 명 없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삼성전자 창조상 1위 수상, 팀 리더 1직급 특진과 함께 글로벌 특허를 취득할 만큼 뚜렷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능력 있고 준비된 자만이 도전에 성공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원대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감한 도전, 룬샷이 필요하다. 이 도전은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괜찮다. 주저하지 않는 도전 정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끈기, 무모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주변의 환경이 만나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다행히, 무모하고 과감한 도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억하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혁신은 바보 같은 아이디어와 주저하지 않는 도전에서 시작되었음을.

2021-08-03 11:38:44

[매일춘추] 컬래버레이션 전성시대

[매일춘추] 컬래버레이션 전성시대

얼마 전 맥도날드와 BTS가 컬래버레이션으로 선보인 'BTS 세트'가 화제였다. 전 세계 50개 국에서 한 달여간 한정 판매된 이 세트는 한국에서만 누적 판매량이 120만 개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례적인 판매 수치도 대단하지만 사람들이 'BTS 세트'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비판매국의 팬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세트를 구한다는 글들이 온라인에서 오갔다고 하니 컬래버레이션의 영향력이 실로 놀랍기만 하다. 기업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매력적인 전략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컬래버레이션은 유행을 선도하는 대세로 나름의 입지를 굳힌 듯하다.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협업', '공동 작업', '합작'이라는 뜻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특성들이 상호 보완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 그래서인지 최근의 컬래버레이션은 새로운 조합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명품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 패션 브랜드와 힙합 뮤지션의 합작부터 이색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된 식품회사 로고가 들어간 패딩, 맥주까지 컬래버레이션은 놓칠 수 없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기업의 컬래버레이션이 가장 눈에 띄긴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도 같은 분야의 아티스트들끼리, 혹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팀을 이루어 협업하는 컬래버레이션은 꾸준히 있어 왔다. 서로 다른 창의성을 마주하고 다양한 특성들과 조우할 수 있는 환경은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아이디어를 끝없이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예술 분야에 가장 적합한 형태일지도 모르겠다.영화도 다른 분야의 예술과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장민승 감독과 '기생충'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정재일 음악가는 아카이브 자료를 기반으로 영상과 전시의 융복합을 시도한 새로운 시청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된 영상은 먼저 전시와 공연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공개된 후 '둥글고 둥글게'라는 영화로 제작돼 상영되기도 했다.오오극장에서도 '커뮤니티 시네마 2020: 영화, 예술과 소통하다'라는 제목으로 영화와 미술의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 기획을 통해 작가들은 한 편의 독립영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해석해 미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업에 도전했다. 작품들은 오오극장 내 카페 갤러리에 전시되고, 영화 GV와 같은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예술 분야에서의 컬래버레이션은 기업의 상품처럼 당장 뚜렷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도전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확장해가는 과정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서로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길 기대한다.

2021-08-03 11:31:59

[종교칼럼] 우리나라의 종교자유

[종교칼럼] 우리나라의 종교자유

사람은 사회적 존재여서 서열이 있고 서로 지켜야 할 것들이 많다. 영적인 일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나아가 더 나은 것과 덜 나은 것을 구분하며 서열을 매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를 타종교보다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하고 타종교를 무시하거나 심하면 박해까지 한 것을 역사 안에서 보아왔다.우리나라에서 종교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최초의 기록은 신라시대 이차돈 사건이다. 이것이 불교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전파하는 데에 불을 지핀 격이 되어 이후 신라는 불교국가가 되었다. 이어진 고려왕조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기존하던 타종교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잘 모른다. 고려와는 정반대로 숭유억불 정책을 기본으로 한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불교 탄압이 있었지만 승려나 불교신자를 죽이기까지 한 기록은 없다.그러나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입국한 이후 가톨릭 신앙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1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는 3만 명 정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1886년 프랑스와 맺은 한불수호조약으로 프랑스인들이 국내에서 종교자유를 가졌고, 1899년 내국인들도 종교자유를 갖게 되었다.종교자유를 갖게 된 이후 시대의 가톨릭교회는 박해 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일제 강점기의 상당히 긴 기간 조심스러워했다. 해방 후 38선 이북 교회는 공산당에 의해 생명력을 잃었고, 6·25사변에 의해 남한 교회도 많은 수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죽임을 당하며 고초에 시달렸다. 그동안 불교와 개신교가 받은 고통도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다.그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종교자유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우리는 국가가 어느 한 종교단체나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집회를 막거나 탄압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물론 대통령의 종교에 따라 특정 종교에 대한 강조점이 이동해 다닌 적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어느 한 종교를 치켜세우거나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박해한 적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오늘날 자신의 신앙과 종교행위가 특정 개인이나 사회질서에 곤란을 초래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믿고 표현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또한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는 물론, 지금까지 신봉한 종교를 떠나 타 종교를 택할 자유도 있다. 나아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 자유까지 있다. 때문에 특정 종교를 강요받거나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이런 호시절이 지속되는 시대에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거나 던지지 않거나, 이렇다고 하거나 저렇다고 하거나, 어떤 답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우리 자신의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가 이렇게도 확실하게 존재한다.문제는 이 자유를 잘 사용하지 않으면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지 않은 사람, 되어가는 대로 끌려가는 노예적인 삶을 사는 사람, 삶을 포기하여 옳은 인간으로서 살지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에 있다. 또한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이고 어떤 것이 사이비인지 구분하지 못하여 심각한 오류에 빠져들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사용해 보다 나은 인간, 본래의 나 자신이 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햄릿의 고민과도 같은 물음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전헌호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2021-08-03 11:30:26

[기고] 다시 맞이하는 광복절에 즈음하여

[기고] 다시 맞이하는 광복절에 즈음하여

광복절은 한반도가 일본의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는 36년 동안 일본의 압제하에 나라의 글을 빼앗겼으며, 창씨개명으로 이름까지 쓰지 못했다.피땀 흘려 지어 놓은 농사는 공출이란 이름으로 수탈당해 배고픔의 세월을 보냈으며, 마을의 어린 처녀들은 일본군의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가 처참한 인간 노예가 됐고, 장정들은 징용으로 끌려가 포탄과 군량미를 나르다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마을의 공터는 일본식 제식훈련 연습으로 연병장이 됐고, 월요일 아침에는 어김없이 학생들을 일본 신사로 줄지어 끌고 가 뜻 모르는 참배를 강행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력설을 못 쇠게 하기 위해 학생들을 등교시켰으나, 어르신들은 설 차례를 지내고 고유의 민속놀이를 함으로써 전통을 잇고자 노력했다. 또한 전쟁 말기에는 가정마다 대대로 물려받은 놋그릇을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죄다 헌납당했다.이와 같은 온갖 수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나라의 치안은 혼란의 늪으로 빠졌다. 나라의 관공서는 텅텅 비어졌고 일본인들은 몰래 숨어 귀국선에 올랐다.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반도는 두 토막으로 나뉘어 남한은 미군이, 북한은 소련군이 주둔해 군정 체제하에 놓이게 됐다. 38선이 생겨 한국은 분단국으로 살아가는 비운의 나라가 됐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남한의 지도자로 부상, 건국 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북한은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나누어진 나라에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닥쳐 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고 나라는 온통 폐허가 됐고 6·25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무승부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했고 한마음이 된 국민들의 굳건한 재건 정신과 앞날을 바라보는 지도자들의 지혜로 발전을 거듭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풍요롭고 힘센 나라로 우뚝 서게 됐다.필자는 오래전 몸담고 있던 학교의 교장을 모시고 부산에 있는 월남 난민촌에 위문품을 전달하러 간 적이 있었다. 판잣집 문을 노크하니 한 여인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위문품을 전달하고 나서 "지금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했더니 "내 조국 월남 땅에 국기를 꽂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 여인은 좋은 음식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더 괜찮은 주거 환경도 아닌, 나라의 국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유 조국의 국기를 원했던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태극기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에 대해 반성해 보자. 다가오는 광복절에는 모든 국민이 하나 된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해 전국 방방곡곡에 태극기 물결이 넘쳐 나기를 바란다.임진왜란이 있기 전 율곡 이이 선생은 "왜적이 침범할지 모르니 10만 대군을 양성해야 한다"고 조정에 건의했으나 묵살당했다. 만약 이 양병설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전쟁은 승리로 끝났을지 모른다. 아니 왜군이 우리 10만 대군에 겁을 먹고 아예 침략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우리는 뜻깊은 광복절을 맞아 나라를 잃었던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다시 한번 무장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을 바친 독립투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제야말로 화합과 단결로 하나 되어 힘차게 도약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 본다.

2021-08-02 11:52:33

[세계의 창 ] 대구 오리엔탈리즘

[세계의 창 ] 대구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은 주로 서양 사람들이 중동 아랍·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 또는 편향된 시각을 말한다. 19세기 서양 열강이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신비의 지역'은 본격적으로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같은 묘사는 아랍과 이슬람에 대해 얼마나 공정한 시각이었던가. 중동 지역을 처음 여행했을 때 그들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나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놀란 기억이 있다. 이런 풍습은 막상 속사정을 알게 되면 전혀 다른 평가를 하게 된다. '야만적'으로 보이는 풍습이 실은 위생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채소 쌈을 먹기 위해 손을 씻는 한국인들은 손으로 먹는 문화를 비교적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휴지를 쓰지 않는 그들의 문화가 비데로 발전했다는 말도 있다. 실제 코란은 '청결은 신앙에서 나온다'며 일상에서의 청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상기적 편견에 대한 비판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극적으로 표출되었다.한국에서 대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대구의 이미지는 주로 이렇게 요약될 것이다. 꼰대에다가 수구적이며 시끄럽고 타협이 잘 되지 않는다, 가부장적이고 여성 폄훼적인 보수 꼴통, 이런 이미지다. 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하는가.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기는 어렵지만 대구와 부산의 단체장, 국회의원들을 비교하면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난다. 21대 대구 국회의원 12명의 경력을 분석해 보면, 한 명을 제외한 11명이 공무원 출신이다. 판검사 출신이 3명, 차관이나 경찰청장, 구청장 등 위급 공무원 출신이 8명이다. 역대 시장은 전원이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 출신이다. 부산의 경우 국회의원 18명 가운데 5명이 기업인 출신으로 대구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선출직 공무원으로 선택을 받은 이들이 판검사, 장차관, 고위 공무원 출신이라는 사실은 대구 시민들이 '사농공상'의 전통을 따른다는 분석도 있다. 20대 시절, 주변에서 '사' 자 직업을 가진 남성과 결혼하는 여성은 '시집 잘 갔네'라는 말을 들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공무원과 기업인은 대체로 정반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공무원은 기존의 법 테두리 안에서 사회의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면 기업인은 융통성을 발휘하여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야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생존이 가능해진다. 전쟁 취재를 할 때 중동에 진출한 기업인들로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상사원이 진출하여 물건을 팔면 건설회사가 들어와 길을 닦고, 그러면 그 길 위로 외교관(공무원)이 차를 타고 부임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공영방송에서 일했고 남편은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했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는 비슷한 시기에 창립되었으나 현재 두 회사의 위상은 천양지차이다. 공영방송사는 위축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데 반해 자동차 회사는 명실상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공영방송사는 정부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아 혁신의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자동차 회사는 한국을 넘어 세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대구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은 오해일까, 사실일까. 대구는 대한민국의 여타 지역에 대고 "우리는 꼴통이 아니다, 수구가 아니다, 혁신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할 수 있는가?

2021-08-02 11:49:55

[매일춘추] 골목길의 인사법

[매일춘추] 골목길의 인사법

주택 골목가의 우리 서점을 찾아오는 방법은 네 가지쯤 있는데 그중 금호강둑을 따라 오는 길을 좋아한다. 아양기찻길을 건너자마자 곧바로 왼쪽 모퉁이를 찾아 들어야 하기에 내비게이션도 감히 추천하지 않는 숨은 코스다. 여행이란 누가 알려주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발생하므로 동네를 여행하려면 이처럼 골목길로 접어드는 것이 첫걸음이다.은근히 차량 흐름이 끊이지 않는 이 강둑길에는 나름의 룰이 있다. 좁다란 길로 들어선 지 몇 초 안 지나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맞닥뜨리는 고난도를 체험할 수 있다. 이때 두 차량 중에서 사정이 나은 쪽이 반드시 비켜서 주는 게 이 동네의 법칙이다. 그것도 상대방이 망설이거나 난감해지기 전에 신속히 멈춰주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배려해야 진정한 배려이기 때문이다.만약 항공촬영을 할 수 있다면 자그마한 차들이 비좁은 길을 찾아 들어가 서로 비켜주고 양보하는 모습이 흐뭇하게 비칠 것이다. 또한 그 곁의 벚나무 터널길을 걷는 사람들, 또 그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의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항공촬영 동영상 끄트막에 '살기 좋은 도시, 대구'라는 공익성 자막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장면이다.운전 중 여러 번 감사함을 느낀 뒤로 이제는 나 또한 먼저 비켜주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저만치서 낯선 차가 들어오면 벌써 멈춰줄 자리를 확보하고 기다린다. 그러면 대부분의 차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비상등을 두 번 깜빡이고 지나간다. 간편하고도 즉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인사 방식이다. 10초간의 기다림은 2초간의 화답으로 금세 보상받곤 한다.이 경험 때문인지 나는 주차장에서 스마트키를 누를 때에도 비상등을 두 번 깜빡이는 내 차가 나에게 인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 여깄어. 오래 기다렸어"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백야'에 나오는 청년이 건물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산책한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 서점 건물도 어쩌면 이미 행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지 모른다. "여기 아늑해요, 오래 머물다 가요."나보다 좀더 성격이 급한 서점 식구들은 오래된 강둑길로 들어서는 일을 그리 반기지 않지만, 맞은편 차에 길을 양보하며 잠시 강둑의 풀꽃을 바라보는 일은 소중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두 달 전부터는 이 강둑길에 꽃을 심고 있다.주민 대부분이 저녁을 먹고 TV를 볼 무렵, 서점 식구들은 몰래 강둑으로 향한다. 책방의 맏언니께서 목장갑을 끼고 "가자!" 외치면 물뿌리개를 들고, 모종삽을 챙겨 게릴라 가드닝을 하는 것이다. 인근 불로화훼단지에서 사온 우단동자, 아욱꽃, 메리골드, 천일홍 등을 심고 '우리 동네 공동 정원'이라는 미니 팻말까지 꽂으니 더 눈길이 간다.내비게이션이 잘 알려주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는 강둑길. 이곳을 오가는 주민들은 이제 상대를 위해 기다려줄 때 이 꽃들을 보며 쉬게 될 것이다. 골목에 살면서 인사를 건네는 방식을 또 한 가지 배워가고 있다.

2021-08-02 11:26:53

[매일춘추] 공문 한 장

[매일춘추] 공문 한 장

지난해 1월 28일 공문이 한 장 접수됐다. 제목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대비 문화예술회관 대응 안내 자료 배포'였다. 당시 해외교류사업으로 진행하는 칼스루에국립극장과의 제작 공연 준비로 바쁜 시기였다. 공연을 며칠 앞두고 리허설이 한 창 진행 중이었던 2월 18일, 지역 첫 확진이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고 이튿날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첫 공연 취소였다. 그로부터 연말까지 코로나19 관련 공문은 약 300여 건이 들어왔다. 올해도 60건 정도가 접수됐으니 사나흘마다 한 건씩 나온 셈이다.정부가 7월 1일 네 단계로 개편된 사회적 거리두기 공문을 보내왔을 때 문화예술계는 반색했다. 개편된 방역 수칙에서 공연장 객석 운영 부분은 사실상 두 단계로 나뉘었다. 1단계 '거리두기 없음'과 2~4단계 '일행 간 거리두기'가 적용된 것이었다.임시 휴관과 부분 운영을 반복했던 지난해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객석의 50%만 운영해야 했던 올해 5월까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비해 크게 완화된 조치였다. 6월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섯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특히 최고 단계는 공연 진행 불가(집합 금지)로 명시돼 있었다. 최고 단계가 적용된 적은 없었지만 심리적 압박감이 컸던 터였다. 7월 1일 도착한 공문이 문화예술계에 반가운 소식으로 다가온 이유였다.그 영향일까, 내가 근무 중인 공연장은 최근 두 차례 수시대관을 접수한 결과 약 80건이 접수됐다. 앞서 진행된 정기 및 세 차례 수시대관에 접수된 60건보다 다소 늘어난 수치다. 움츠려 있던 지역 문화예술계가 활기를 찾고 있음을 알리는 지표이며, 예술가들도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전달한 것이다.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코로나19 상황은 염려하던 4차 대유행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심장을 철렁이게 하는 '수도권 외 지역 공연장 관련 추가 조치 안내' 공문이 접수됐다. 제목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지고 심장 박동이 요동쳤다. 다행히 본문을 확인해보니 공연법에 정규 공연시설로 등록된 공연장 외에서 이뤄지는 행사가 대상이었다. 7월 중순 열린 대중가수 콘서트 이슈에 따른 정부의 방침으로 보였다.뉴스에서 '4차 대유행의 갈림길에 섰다'는 메시지가 등장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 등 코로나19 관련 공문은 계속 접수될 것이다. 동시에 기획공연 출연자, 대관자들은 불안에 떨며 연락해올 것이다. 말 한마디에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술가들을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이다.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방역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활기를 찾아가고 있는 문화예술계가 다시 침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구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이다. 음악도시의 중요한 자산 '예술인'이 외면받지 않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2021-08-02 06:30:00

[노동일 칼럼] 윤석열 입당은 정권교체 보증수표가 아니다

[노동일 칼럼] 윤석열 입당은 정권교체 보증수표가 아니다

윤석열 예비후보(본인의 희망)가 국민의힘에 합류했다. 입당은 기정사실이었지만 시기는 설왕설래가 계속되던 시점이었다. 캠프에서 '8월 2일 입당'이라는 언론 보도를 부인한 직후여서 '전격적'보다 '기습 입당'이란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지도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서둘러야 할 사정이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지지율 하락인지, 독한 검증인지, 고독한 결단인지 몰라도 입당 과정이 개운치는 않다. '정권교체'가 지상 과제일 뿐 다른 건 중요치 않다는 인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야권은 현 정부의 결과 지상주의를 비판해 왔고, 윤 후보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친구의 당선을 위한 청와대 비서진 동원,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위한 경제성 조작 등에 칼을 댄 윤 후보 아닌가. 지지율 배경이 아무리 든든해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설명과 순리적 과정을 거칠 때 다수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단순히 입당에 관한 개인의 결단이나 선택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다. 야권 경선 과정에서 첫째로 확인해야 할 리더십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검사와 검찰총장의 리더십은 고독한 결단이 주를 이뤄도 문제 될 게 없다. 정치는 다르다. 종합예술이라는 말처럼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낼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윤 후보 입당으로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은 무려 12명이 됐다. 합류가 예정된 장성민 전 의원에 이어, 안철수 대표, 김동연 전 부총리가 함께할 가능성도 있다. 풍부한 인적 자원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경쟁은 치열하고 싸움은 격렬해질 게 분명하다. 계파, 경선 룰 등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논쟁이 가열되며 1위 후보에게 견제구가 집중될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모든 주자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태클을 거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포용적이고 의연한 리더십을 발휘하는지에 따라 대통령감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야권 경선에서 리더십 검증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보수 정당의 정체성에 적합한 후보가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작업이다. 민주당에서 전개된 이른바 적자 논쟁도 당의 정체성에 맞는 후보가 누구인지로 바꿨다면 긍정적인 토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은 그들이 삶의 주인이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영국 보수당 당수였던 마이클 하워드가 2003년 공표한 '보수주의자의 신조' 중 일부이다.재난지원금 등 명목으로 정부가 국민의 머리 위에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를 뿌려대는 시대다. 삶의 모든 영역을 규제하는 정부의 간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국민은 자율성을 잃고 점점 더 국가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로 변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영합한다면 보수 정당 소속 후보로 가치가 없다. 정당의 확장성에 기여할 후보가 누군지도 중요하다. 여당의 지역주의 다툼도 후보의 확장성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면 건전한 논쟁을 벌일 수 있었다. 지역적 확장성도 물론 중요하다. 우리 정치와 선거에서 지역 문제는 노골적으로 거론하지 못할 뿐 아직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지역적 요소와 함께 이념적, 계층적 확장성까지 토론이 이어진다면 후보 선택에 있어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윤 후보의 입당은 본인의 말처럼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야권에 긍정적이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가장 큰 흥행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의 입당이 승리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리더십, 정체성, 확장성 등에 대한 국민의 엄격한 검증을 통과해야만 누구든 야권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입당'으로 한숨 돌릴 때가 아니다. 이준석 대표를 포함한 야권 구성원 모두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인식의 고삐를 조일 때이다.

2021-08-02 06:14:48

[기고] 탄소중립 사회, 무공해차로 앞당긴다

[기고] 탄소중립 사회, 무공해차로 앞당긴다

불과 재작년까지 자주 비어 있던 경북도청 내 전기충전소지만 요즘에는 전기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들이 늘면서 다음 차를 구입할 때는 자연스럽게 미래차를 우선순위에 두는 세상이 됐다. 최근 차를 구입한 젊은 직원도 전기차, 하이브리드, 휘발유차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이제는 차종 못지않게 어떤 연료를 쓰느냐가 차를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세계 자동차 시장이 전기 및 수소차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위에서 든 두 사례에서 보듯 바로 내 주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100년 이상 '기계공업의 꽃'이라 불리던 내연기관 자동차는 기후 위기를 맞아 퇴출의 압력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선진국에서는 앞다퉈 내연기관 자동차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2036년을 기점으로 전기차가 글로벌 승용차 신차 판매 점유율 50%를 넘어 내연기관차를 앞서갈 것이라고 예측한다.특히 수송 부문은 도심 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5%, 미세먼지 배출량의 13.8%를 차지하는 핵심 오염 배출원이다. 2030년 우리나라의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는 약 1억520만t으로, 정부의 감축 목표율 29.3%를 적용하면 7천440만t을 배출할 수 있다. 혁신적인 전환 없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경북도에서는 2050년 수송 부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무공해차로 전환을 앞당기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충전소 확충, 공동주택 충전기 설치 의무 대상을 확대해 전기차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 충전 불편을 줄이고 있다. 그 덕분인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 동안 도내 4천477대에 불과했던 전기차가 최근 2년간 9천378대가 보급됐다. 특히 운행 거리가 길어 환경 개선 효과가 높은 전기화물차는 2019년 60대에서 현재 2천51대로 34배 이상 보급 대수가 증가했다.수소충전소 설치 공모 사업에도 도내 4개소가 선정됐다. 그동안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수소차 보급에 한계가 있었으나 경북도는 올해 100대를 시작으로 꾸준히 보급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기존의 구매 지원 정책과 함께 도민과 자동차 생산 기업의 동참을 이끌 정책도 구상하고 있다. 기업은 저공해차 보급목표제에 따라 연평균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저공해 자동차로 의무적으로 판매해야 하고, 늘어난 미래차 수요에 따른 생산도 확대해야 한다.물론 미래차 확대가 탄소중립의 모범 답안은 아니다. 미래차가 주행하는 동안은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 소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발전에 사용하는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와 수소를 생산하도록 하는 대책도 필요하다.친환경 미래차는 미래가 아니라 이제 오늘의 이야기가 됐다. 이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답은 간단하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줄이고 불편 사항을 개선하는 것이 바로 행정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경북도는 보조금 지원 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편리한 충전 인프라를 구축해 도민들이 미래차를 지금,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도민들도 친환경을 위한 미래차 보급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란다.

2021-08-01 14:35:47

[내가 읽은 책]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읽은 책]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미루야마 마사키 글 / 황금가지 / 2021년)미스터리 소설 '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는 코다(CODA) 출신의 법정 수화 통역사 아라이 나오토가 주인공인 '데프 보이스'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이다. '데프 보이스(Deaf voice)'는 선천적인 농인의 목소리, 코다(CODA)는 농인 부모를 둔 청인이다. 아라이는 여느 코다들이 그렇듯 글을 배우기 전부터 가족 전담 통역사, 농인과 청인 두 세계의 연결자였다."아라이는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돌아보는 일도, 멈춰 서는 일도 없었다. (중략) 앙, 엄마는 듣지 못하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리이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동시에 배우기도 했다. 넘어져서 울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 이후 그는 넘어져도 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저자 마루야마 마사키는 '데프 보이스-법정의 수화 통역사'로 제18회 마쓰모토 세이초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는 치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코다와 농인처럼 장애를 가졌거나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소설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통곡은 들리지 않는다'는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다 죽은 한 농인의 비극적인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아라이는 수화를 배우지 못한 농인들의 수화, 오랫동안 소외된 지역의 수화는 방언처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현실 속에서 코다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또 병원, 회사, 방송, 재판 등에서 농인 가정의 청소년, 농인인 산모, 연예인, 직장인 등이 겪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이타마 현에서 17년 간격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계기로 법정 수화 통역사가 된 아라이는 법정에 서서 소수의 농인이 다수의 청인과 일하는 농인의 노동현장에서 투명인간처럼 취급받는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노력한다."저는 있는 힘껏 들리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민폐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입 모양을 읽어 내려고.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어 전하도록. 저는 그렇게 해서 열심히 걸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들리는 사람들인 당신들은, 조금도 옆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아라이는 청인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 농인에게 있다면, 모두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들리는 사람과 들리지 않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자신의 몫을 다하는 모습이 울림을 준다.최근 방탄소년단의 신곡에서 즐겁게 춤추는 것은 허락 받을 필요 없으니 함께 춤추자고 국제수어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내게 춤추자고 했어!"라며 몇 년 만에 말을 걸어온 사촌과 '퍼미션 투 댄스'를 춘다는 아미의 글이 보인다. 영상에 보라색 풍선을 든 아이들이 맑게 웃으며 뛰어간다. 'Don't need to talk the talk(말은 필요 없어)'서미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1-07-31 06:30:00

[김순동의 발효이야기] 무염김치

[김순동의 발효이야기] 무염김치

고혈압이 심한 지인이 무염 김치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삼시 세끼 김치가 없으면 음식을 먹지 못했다. 부인은 김치를 즐겨 먹는 남편을 위해 연중 각종 제철 채소로 다양한 김치를 만들어 상에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을 찾은 그는 소금이 많이 든 김치나 젓갈 같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권고를 듣고 전화를 한 것이다.소금의 과잉섭취는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다. FDA는 나트륨의 하루 권장량을 2g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소금 양으로 환산하면 5g 정도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염도가 2% 이하인 저염 김치를 선호하고 있으나 염도가 낮은 김치는 발효 과정 중에 불필요한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하여 위생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김치는 채소를 자연 발효시킨 식품으로 채소와 젖산균 그리고 소금의 3요소가 필요하다. 채소에는 젖산균이 부착되어 있음으로 결국은 채소와 소금이 있어야 한다. 혹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던 젖산균이 떨어져 발효가 된다고 하나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닌 듯싶다. 삶은 채소에 소금을 넣으면 김치 발효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금의 역할은 무엇인가.채소에 소금을 뿌려두면 삼투작용이 일어나 세포조직이 손상되고, 손상된 세포벽을 통해 영양분으로 채워진 세포액이 밖으로 솟아져 나온다. 외곽에 붙어 있던 젖산균은 이 영양원을 이용하여 발효를 일으킨다. 세포 외곽에는 젖산균 이외의 부패 미생물도 많이 존재하나 소금에 대한 내성이 약해 도태되고 소금에 강한 젖산균이 주로 번식하여 김치가 된다. 따라서 무염 김치를 만들려면 세포벽을 손상하는 일과 부패를 막는 일을 겸하는 처리가 요구된다. 즉, 자연 발효가 아닌 통제 발효가 필요하다.소금의 조직 손상기능은 믹서를 사용하여 조직을 파쇄하거나 여타의 물리 화학적 방법으로 조직을 손상해야 한다. 보존성 확보를 위해서는 재료나 용기 등은 가열처리를 하여 무균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발효에 필요한 젖산균은 순수하게 배양하여 첨가하거나 시판 요구르트를 사용하면 편리하다.이같이 살균한 김치 주재료와 부재료를 혼합한 후 무균적으로 발효를 수행하는 것이 통제 발효다. 마치 최근에 시판되고 있는 살균한 우유나 여기에 살균한 딸기나 그 즙을 혼합하고 젖산균을 접종하여 발효한 요구르트나 딸기 요구르트와 같은 제조방식이다. 김치의 관점에서 보면 요구르트나 딸기 요구르트는 통제 발효로 만든 우유 김치 또는 딸기 우유 김치라 할 수 있다.통제 발효는 자연 발효의 반대 개념이다. 소금의 역할과 발효에 필요한 모든 여건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발효다. 다만 파쇄 살균하거나 채소조직을 여타 물리적인 방법으로 처리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김치 고유의 풍미를 잃을 수도 있다.자연 발효에서는 재료나 초발 pH, 발효 온도 등에 따라 젖산균을 비롯한 김치 내의 미생물 패턴이 달라진다. 따라서 생성되는 유기산의 종류나 풍미도 차이를 보인다. 주로 나타나는 미생물로는 루코노스톡 메센트로이데스 (Leu. mesenteroides), 바이셀라 코리엔시스 (Weissella Koreensis), 패디오코크스 세르비지에 (P. cerevisiae), 락토바실루스 브레비스 (L. brevis), 락토바실루스 플란타룸 (L. plantarum) 같은 젖산균들이다.반면에 통제 발효에서는 자연발효에서 나타나는 젖산균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통제발효에서는 시판되는 요구르트나 그 외의 특정한 프로바이오틱스 (probiotics)를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최근 요구르트 제조에 이용하고 있는 장 기능 강화나 면역력 증진, 해독, 우울증 개선, 항염, 항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락토바실루스속 (Lactobacillus) 젖산균이나 비피도박테리움속 (Bifidobacterium)의 다양한 젖산균을 스타터(starter)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림 참조).김치 고유의 맛과 조직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초저염 김치를 만드는 한 방법으로 식초 등을 사용하여 초발 pH를 4.5 정도로 떨어트린 후 젖산균을 풍부하게 함유한 요구르트 같은 젖산균 스타터를 넣어 발효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변질될 우려가 있다.

2021-07-30 14:30: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영국인은 정원 있는 집을 좋아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은 1990년에 지어진 반 이상의 집이 아파트'인데, '영국은 15퍼센트만이 아파트'라는 것이 그걸 말해준다. 그들은 아파트가 주는 '편리'보다 집이 주는 '여유'를 좋아한다.화분과 꽃바구니로 장식한 집들이 참 예쁘다. 낮은 담장으로 뒷마당의 꽃 풍경은 나누면서도, 더 넓고 더 아름다운 앞마당은 주인만 누린다. 허리를 굽혀 꽃과 채소를 가꾸고, 오후의 차 한 잔을 챙긴다. 친구들을 불러 바비큐를 즐기고, 모임과 수업을 하고, 자선활동을 벌인다. 삶이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런 일을 집에서 한다."파리는 파리지, 프랑스가 아니다."라는 프랑스 친구의 말처럼, 런던은 런던이지 영국이 아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집은 커지고 가격은 낮아진다. 도시에서는 원하는 물건이 많아지고, 시골에서는 원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런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런던에 살지 않는 이유다. 사람들은 영국을 보기 위해 런던에 오지만, 나는 영국의 시골이 더 영국적이라고 생각한다.영국인에게 집은 '자기 영토일 뿐만 아니라 자기 정체성'이다. 종종 집에 이름까지 지어준다. 모퉁이라서 코너 하우스(corner house), 작은 시골집이라서 리틀 커티지(little cottage)라거나 꽃과 나무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들은 돈이 많이 생겨도 이사를 잘 가지 않는다. 나는 친구를 만나러 20년 전에 살았던 마을에 갔고, 딸의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곳에서 만났다.집을 꾸미는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다. 집을 수리하는 일에 유난스럽고, 손수 집을 고치는 일은 흔하고, 집을 예쁘게 바꾸는 티비 프로그램이 많다. 집들이 저마다 특색 있으며, 오래된 집이라도 예쁘다. 딸이 어릴 적 친구를 만났다. 결혼을 앞두고 둘이 헌집을 사서 직접 수리할 거라면서, 모든 외식을 끊고 돈을 모은다고 했다. 베스트 프렌드끼리 이십 년 만에 만났는데, 겨우 음료수 한잔 마시고 헤어졌다.도미니크 로로는 에서 "건축가와 인류학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의 정신을 찍어내는 게 바로 집이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했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집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내 집이 곧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누릴 줄은 몰랐다. 집은 집안일만 떠올리게 했고,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하는 것 같았다. 이따금 내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충족되지 않은 뭔가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그게 밖에 있는 줄만 알았다. 집에 살면서도 집을 보지 못했고, 집이 보이지도 않았다. 원하는 삶의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때의 나는 고작 그랬다. 이제는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집이 편안하다. 친구와의 대화는 오붓해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며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사이가 깊어지고 각별해진다. 떨어져 사는 딸은 집에 오면 밀린 잠을 잔다. 집이란 그렇게 편히 쉬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좀 다른 말을 한다. 집은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란다. 집의 새로운 발견이다.우리가 삶을 죄다 밖으로 몰아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집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다.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한 집에서 잠만 잔다. 수십 년을 만난 친구끼리 서로의 집에 가본 적이 없다. 조이스 메이나드는 "A good home must be made, not bought.(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원하는 삶이 있어야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다. 삶을 가꾸는 일은 집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집을 애써 아름답게 가꾸어야하고, 유용하게 사용해야하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해답이 집에 있는지도 모른다.

2021-07-30 14: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전 세계에서 광고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은?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전 세계에서 광고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은?

설탕물을 파는 기업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브랜드를 좋아한다. happiness(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광고 덕분이다. 이 브랜드의 광고를 보면 늘씬한 미남, 미녀가 해변을 뛰어다닌다. 그리고 이 음료를 나누어 마신다. 그러면서 happiness라는 단어가 반복 노출된다. 마치 이 음료를 마시면 몸짱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음료를 주는 것은 행복을 나누는 일 같은 느낌을 준다. 전 세계에 수 만 가지의 브랜드가 있다. 하지만 이 브랜드는 내가 생각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광고를 잘 만드는 기업이다. 바로 코카콜라다.코카콜라가 두바이에서 펼친 캠페인을 보고 이런 생각이 굳혀졌다. 캠페인의 아이디어는 이렇다. 두바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나라이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타국으로 온 것이다. 목적이 어찌 되었든 타국에 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가족이다. 나의 유학 생활도 향수병으로 가득했다.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싸우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하물며 유학도 그러한데 노동은 어떠할까. 그 그리움이 더 심할 것이다. 코카콜라는 이점을 활용해 특수한 자판기를 만들었다. 코카콜라의 음료수 뚜껑을 이용하면 조국의 가족들에게 국제 전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즉, 음료수 뚜껑이 동전의 역할을 하는 자판기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카콜라는 더 이상 설탕물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조국에 있는 내 사랑하는 가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귀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 설탕물은 생명수로 변신한다. 몸에 나쁜 음료가 아니라 내 소원을 들어주는 성수가 되는 것이다.이렇듯 광고는 시선의 싸움이다. 누군가에게는 살을 찌게 하는 해로운 물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명수가 되기도 한다. 코카콜라의 광고를 찬찬히 살펴보자. 늘 사람들은 웃고 있고 활발하다. 건강미 넘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항상 happiness라는 단어로 광고를 마무리한다. 마치 이 음료를 마시면 행복해질 것 같다.이 캠페인이 참여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코카콜라가 설탕물처럼 보이는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가 광고판에서 코카콜라와 마주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타국에서 자신과 가족을 이어준 고마운 브랜드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기억의 유통기한 평생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광고의 힘이다.

2021-07-30 09:57:22

[광장] 푸른 별과 이상기후

[광장] 푸른 별과 이상기후

연일 폭염 경보가 여름을 더 뜨겁게 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잠시라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 거기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생활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지 못한다. 백신 접종에도 돌파 감염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국지적 현실이 아니라 전 세계적 상황이 이렇다. 이런 현실을 한마디로 말하면 뭘까? '생지옥'이라면 지나친 말이 될까? 종교에서 말하는 혹세무민 종말론이 아니라 과학을 숭배하는 서구의 저명한 인류학자 J.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은 지금부터 30년 뒤인 2050년에 지구가 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근대화, 산업화의 결과 지구에 기후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 배후에는 자연과 타자(인)를 오로지 개발과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인간들의 합리적 이성이 있고, 자제할 줄 몰랐던 물질 소비와 과잉된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그 결과 각종 재앙이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전 지구적으로 홍수, 태풍, 감염병, 폭염, 가뭄 등 미래의 재난을 예고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는 그런 현실을 호주의 산불, 서유럽의 홍수, 미국의 가뭄 및 산불과 같은 무시무시한 현실로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며칠 전 지인의 모친상을 문상하러 경북 경주시 외곽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문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앞마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그중 서울에서 오래 살다 온 한 친구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야, 여기서는 별이 다 보이네요" 하면서 약간 들뜬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밤 아홉 시 경이었는데 정말로 밤하늘의 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안마당/ 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 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 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마지막 남은 목숨 모깃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초저녁 샛별이 뜨고/ 연기 맵고 모기 극성스러울수록/ 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 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 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 올 여린 멍석 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 밤이슬에 반짝이고/ 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 누나들의 발짝 소리가/ 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의 숨결을 마저 이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못내 잠이 들면// "밤이슬은 몸에 해롭다/ 방에 들어가서 자그래이"// 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 내 누웠던 그 자리엔/ 덩그러니 별 하나 떨어져 누워 있지요/ 나는 푸른 별이지요….'('푸른별', 1987)인용한 시는 내가 20대 초이던 40년 전에 쓴 것이지만 시의 배경은 1960년대 후반이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기 전 농경문화 끄트머리의 흔한 농촌 풍경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여름이 되면 동네 형과 누이들을 따라 소를 몰고 뒷산에 가서 소를 먹이고 해가 지면 내려왔다. 골목을 지나 대문에 들어서면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소 이까리(고삐)를 받아 들고 우물가에 가서 "너도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며 소에게 구정물통에 가득한 쌀뜨물과 구정물을 먹인 후(당시는 세제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임시로 만든 시원한 마답에 소를 묶어두고, 비로소 식구들은 멍석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려고 고개를 쳐들면 밤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우르르 쏟아질 듯이 초롱초롱 빛났다. 비록 가난하고 소박한 저녁을 먹었지만 마당에서 별을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이젠 정녕 시(詩) 속에만 남은 것인가?

2021-07-29 11:38:09

[기고] 교단의 천사

[기고] 교단의 천사

유월의 짙은 햇살이 적의를 뿜어 대는 어느 토요일이었다. 더위를 피해 자전거를 타고 신천에 나왔다. 느티나무 그늘에 좀 쉬어 가려는데 어디서 기타 반주와 리듬 밴드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 가 보니 동촌중학교 음악 밴드 동아리 팀이 김광석 거리 야외공연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중 1, 2학년으로 구성된 음악 밴드 동아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이곳에서 공연하는데 오전부터 무대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공휴일이라 많은 관광객이 연습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다.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총지휘를 하는 밴드마스터는 앞을 못 보는 삼십 대가량의 총각 선생님이었다. 같이 온 학생에게 물었더니 그 학교 영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음악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어 선생님이란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가냘픈 청바지 차림의 여학생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은 기타리스트이며 총지휘를 맡아 유려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대 앞에서 지휘 선생님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엎드려 음악을 청취하며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시각장애인 안내견은 가죽 벨트를 차고 선생님 사진과 명함을 등에 달고 열렬한 팬이 되어 응원하고 있었다. 반려견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길을 안내하고 같이 숙식을 하며 배우자 역할까지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보다. 비록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 기타리스트로 연주단의 지휘를 하는 것을 보고 신이 주신 선물인 것 같아 내 머릿속에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시각장애인이 기타를 치거나 색소폰을 부는 장면을 간혹 본다.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신은 장애를 가진 자에게 그 보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탁월한, 한 가지 재능을 선물로 주는 것 같다.그뿐인가. 두 팔이 없는 장애인이 발가락에 붓을 끼워 글씨를 쓰는가 하면, 붓을 입에 물고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볼 때면 신이 인간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그 기능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은 공평한 재능을 부여받게 되는가 보다.오늘날 사람들은 장애의 크고 작음에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은 장애를 가지고 산다.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쓴다거나 소리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는 사람들도 장애인에 속한다고 보면 온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이 먹어 운동 부족으로 비만증에 걸린 사람 또한 장애인으로 취급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지금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연 준비에 바쁜 동촌중학교 음악 동아리 연주단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특히 앞을 못 보는 밴드마스터 선생님께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나도 큰 박수로 화답했다. 선생님 또한 신이 나서 더욱더 열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비록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지만 남다른 열정을 다해 노력하는 '교단의 천사'가 오늘따라 우러러 보이는 것은 왜일까?

2021-07-29 11:37:27

[춘추칼럼] 8월 문어에게 배우는 지혜

[춘추칼럼] 8월 문어에게 배우는 지혜

지구상의 사람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면서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큰소리를 치기는커녕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을 보면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희생된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밀집된 곳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산업화 도시화를 핑계로 점점 더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으니 균들은 늘 사람들 곁에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 적(?)을 파악하고 싶지만 정작 그들은 우리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미물이다.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잘살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사는 것은 기본이고 나를 향해 달려드는 다양한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살아야 하니 내 안에 어떤 능력을 길러야 이 시대를 살아낼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운동해서 몸 온도를 높이고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일뿐인 듯하다.사회적 관계가 줄면서 컴퓨터를 통해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을 보는 일이 점점 많아졌는데, 최근 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바다에 사는 문어를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내가 문어를 처음 본 것은 몇 해 전 정월 전남 완도의 전복 가두리양식장에서다. 그때 양식장에 가서 전복을 가두어 둔 틀을 들어 올렸는데 전복의 주 먹이는 놀랍게도 다시마였다. 비싼 전복을 먹을 필요 없이 다시마만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켜켜이 쌓인 다시마 틈 사이로 문어가 전복을 먹고 있었다. 현지인 말에 따르면 완도에서는 전복보다 문어를 더 귀한 음식으로 친다는 것.문어는 단백질이 풍부해서 겨울에 먹을 수 있는 계절 별미인데 안동 지역에서는 특이하게도 문어를 제사상에 올린다. 선비의 고장 안동에서 문어를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는 문어의 문 자가 글월 문(文)이어서 해물 중에서도 똑똑할 것 같아서 올린다고 한다. 문어는 실제로 똑똑한 해물일까? 2020년에 나온 문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니 문어는 지능이 좀 높아 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남아프리카의 바닷속을 찍다가 우연히 문어를 만나서 친구가 되고 그 모든 과정을 담은 것으로 제목은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이다.다큐멘터리 속 문어는 평화로운 바다에서는 유유자적하게 물살을 가른다. 여기까지만 내가 생각하던 문어였다. 그다음부터 문어는 다양한 개인기를 보여주는데 바위 아래에 숨어 두 눈만 내놓고 바깥 세계를 살피더니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몸 전체를 영지버섯처럼 만들고 두 발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도 하고 위급한 상황이 생겼는지 몸을 동그랗게 만들어 바다풀 속으로 숨기도 했다. 상어가 공격해 오자 상어를 피해 바위 속에 숨어 있다가 다리 하나를 뜯기자 이내 반격에 나선다. 문어의 빨판에 각종 다양한 조개껍데기를 고정해 자신을 조개껍데기 모양의 둥근 물체로 만들어 놓으니 상어가 문어를 한입에 넣으려 해도 넣을 방법이 없다. 상어가 문어를 포기하는 순간 문어는 상어의 등에 올라타 상어 등에 빨판을 고정해 오히려 상어를 공격한다.문어의 눈에 게가 보이자 문어는 차렷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눈으로 게의 움직임을 살피더니 게가 가는 방향을 확인한 후 전속력으로 게를 향해 돌진했다. 잡히지 않으려고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게와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문어의 한판 대결이 벌어진다.문어가 몸을 넓게 펴서 도망가는 게를 뒤에서 바로 보쌈을 해 버리니 게는 집게발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만다. 문어가 노리는 먹이는 게뿐이 아니다. 게보다 몇 배나 더 큰 바닷가재도 문어를 만나는 순간 문어의 성찬이 되고 만다. 문어 다큐멘터리를 열 번, 스무 번 다시 보기를 계속하면서 이름값 하는 대서(大暑) 더위도 떨치고 나는 내 안에 어떤 역량을 쌓아야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낼 수 있을까 생각이 깊어졌다.

2021-07-29 11:31:24

[매일춘추]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매일춘추]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도서관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방학과제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탐구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공도서관을 찾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집 근처 도서관을 찾기가 쉽질 않아 여행을 떠나듯 설렜던 기억이 선명하다.자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알리는 게시물이었다. '정숙하세요', '음식물 반입 금지', '뛰지 마세요' 등 금지된 것들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독서라는 행위가 즐거울 리 만무했다. 한마디로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은 아니었다.도서관 강국인 네덜란드는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여행 필수 코스로 언급되는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 전 세계 최고의 공공도서관으로 선정된 School 7 등 서로 다른 개성의 도서관을 만날 수 있어 도서관 투어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도 많다.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의 바탕이 되는 철학은 바로 '눈길을 사로잡고 계속 머무르고 싶게 만드는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운하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 사람 옆에서 게임, 음악, 영화를 즐기고 전시, 공연 등 갖가지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 공간은 놀이터를 연상토록 하여 누구나 개방된 자유로움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 속에 함께 한다.폐교를 개조한 공공도서관인 School 7 안에 있는 카페는 지역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고 생일 파티도 함께 한다. 심지어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예식 장소로도 변신하며 모든 것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도서관이라고 해서 책을 소장하고 장서량을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조용히 책만 읽는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을 느끼고 사람들과의 유쾌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공간 자체가 행복함을 전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데 있어 공간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무슨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 할 맛이 난다. 최근에는 책도 그저 읽는 것에서 '읽고 즐기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읽는 행위를 넘어 책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책의 표지를 찍은 사진, 마음에 드는 문구를 필사하여 SNS에 업로드 하는 등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책을 즐기는 것이다.해시태그를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공감을 얻으며 책 읽는 문화를 독려하기도 한다. 이 같은 행위들은 책 한 권을 다 읽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준다. 책을 즐기기 위한 모임도 다양하다. 일과 후 편안하게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운영되는 심야 책방, 북팅, 북맥 등의 방식으로 책을 읽는 모임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책 읽기를 즐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올 여름 모두 나만의 공간과 방법을 찾아 참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보길 바란다.

2021-07-29 11:30:51

[주동식의 새론새평] 탄핵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망해서 탄핵당한 것

[주동식의 새론새평] 탄핵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망해서 탄핵당한 것

우리나라 우파들은 자신들의 몰락이 탄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대한민국이 좌파 천국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사건의 인과관계를 피상적으로 판단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사건이 아닌,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사건이라면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평지돌출이 없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영웅의 결단이나 악당들의 음모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야담과 설화'식 세계관이다.우파가 탄핵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고, 실은 우파가 몰락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다. 왜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상당수 여당 국회의원들이 거기 동조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존재한다. 집권 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자당 소속 대통령을 배신(?)하고 탄핵에 동참한 것은 그것이 권력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판단한 직접적인 이유는 최순실 사건의 파문이었지만 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다.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무난하게 원내 다수 의석을 확보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진박 논쟁과 공천 파문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 석 차이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됐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가 나오고, 다시 한 달 만에 최순실 보도가 터져 나왔다. 이후 탄핵까지는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20대 총선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대통령은 파면당했다.그렇다면 친이-친박의 갈등이 우파 정당의 몰락을 불렀을까?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보면 다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후보를 48.7%대 26.1%라는, 역대 최대의 득표율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게다가 서슬 퍼런 임기 초반이었다. 그런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광우병 선동에 밀려 사과해야 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레임덕 상태였다.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 1월 전격 발표된 3당 합당도 있다. 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우파 정당 단독으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당시만 해도 좌파 진영의 일원이었던 김영삼을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이런 일련의 정치적 변화를 구조적 관점에서 짚어 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우파는 일반적인 상식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상에 처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연원을 거슬러 가면 끝이 없지만 적어도 1987년 체제의 성격에 대해서는 분석해야 한다. 현재의 헌정 체제가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이기 때문이다.1987년 체제는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좌파 특히 NL 주사파의 정치적 승리의 결과였다. 우파가 6·29선언이라는 정치공학적 대응으로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정치적 명분과 주도권은 좌파의 손에 넘어갔다. 좌파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을 설립해 진지전의 요새를 구축하고 제도권을 포위·압박해 지분을 확대했다. 참여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1987년 체제 이후 등장했다.좌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87년 체제에서 정치의 무게중심은 현저하게 좌파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우파 정치인 대부분이 좌파 코드를 공유한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파는 좌파가 던지는 정치적 어젠다를 숙제 삼아 푸는 처지로 전락했다.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 즉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이었다. 하지만 우파는 정치를 한 적이 없다. 반면, 좌파는 정치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탄핵이고 대한민국의 위기다. 우파가 '탄핵의 강'을 건너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내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좌파보다 더 탁월한 정치를 해야 한다. 우파의 정치적 고민은 이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2021-07-28 11:15:46

[기고] 학력 간 임금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기고] 학력 간 임금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올해 대학 신입생 모집에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이 최악의 미달 사태를 빚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엘렌 러펠 셸은 한국에서는 이미 교육 프리미엄이 소멸해 한국 대학 졸업자들의 평생 소득은 최근 들어 고등학교 졸업자의 소득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특히 대학 진학률 세계 1위인 한국은 전체 실업인구 가운데 50% 이상이 대학 학위 소지자로 확인됐다고 한다. 미래학자인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쯤엔 전통적인 대학 50% 정도가 소멸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대학의 종말을 의미한다.셸은 오히려 학위를 소지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옥스퍼드대 조너선 거슈니 교수는 한국 교육열은 마치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떠올린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 약 70년 동안 교육의 힘을 통해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와서도, 시험 위주의 능력주의에 집착한 결과, 오히려 한국 교육이 미래의 한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한국에서 고등학생들이 줄기차게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산업화 세대로서 학력에 의해 커다란 성공을 맛본 학부모들의 맹신 때문이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사람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다. 결정적으로 고졸자는 대졸자와의 임금 격차가 상당하고 승진 등에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셸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은 보다 높은 수준의 소득과 상관관계는 있지만, 고등교육이 반드시 고소득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프레이는 2030년쯤엔 무고용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겠지만, 사라지는 일자리가 이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현재 절망적인 대학 신입생 미달 사태는 단순히 학령인구의 감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학력 간 임금격차 해소와 관련해 일본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고졸자들에게는 다양한 취업 기회가 존재하는데, 1990년부터 고등학교가 취업처를 찾아주는 제도가 정착돼 일자리를 구하는 데 문제가 없다. 더욱이 대졸자와 고졸자 간의 월급 차이·차별 대우가 한국만큼 심하지 않다.놀랍게도 일본 대기업 대졸자 초봉은 한국보다 낮다. 특히 기술직은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어 오히려 일본의 고졸자들은 기술을 습득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취업처를 선호한다.인문계 고교에서도 공부를 원하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해 진로 지도를 완전히 달리하는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 진학률 35%에 불과한 독일의 아우스빌둥, 즉 직업전문센터를 모델로 삼아 기업이 학생을 직접 선발해 맞춤식 기술 교육을 함으로써,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구축하자는 얘기다.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임금격차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학력 간 임금 불평등에 대한 국민 전체의 새로운 인식과 이의 실행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선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대학의 종말은 곧 국가의 종말을 의미한다.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고졸자와 대졸자 간의 임금격차를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대학 신입생 미달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21-07-28 11:15:31

[매일춘추] 그림 가격은 누가 결정하는가?

[매일춘추] 그림 가격은 누가 결정하는가?

얼마 전 화랑가에 들러 해외 유명화가 작품 가격을 문의한 적이 있었다."요즘 작가들 그림값이 많이 올랐죠? 해외시장과 비교해 보면 국내가격은 어때요?"그러자 화랑 주인의 한숨 섞인 대답은 "아휴 가격이 한없이 올라가요. 작품 구하기도 힘들지만, 화랑은 팔아도 손해인 것 같아요. 팔고 나면 다시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도대체 누가 그렇게 비싼 그림들을 계속 사는지 모르겠어요."요즘 소위 잘나가는 해외 유명작가들의 거래현황이다.코로나19가 불러온 미술 애호가들의 구매 양식 변화로 봐야할지 모르겠다. 억눌린 욕구를 사치스러운 소비로 분출하는 '보복소비' 또는 '보상소비'가 고가의 미술품 구매로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문화소비 욕구가 증가한 탓인지도 모른다. 이는 1990년대와 2006~2007년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며 미술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도대체 미술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생각들이다. 이는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핵심적 요소로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요소들이다. 공급자는 작품을 그리는 화가 또는 작고 작가의 경우 유족이나 소장가이고, 수요자는 개인 컬렉터와 미술관에 의해 창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화랑(갤러리)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을 맡게 된다.지금처럼 수요가 몰리게 되면 화랑의 기능은 단순히 작품을 공급해주는 기능만 갖게 되고 미술품의 평가에 관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의 미술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랑의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화랑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으로 작품성 있는 작가를 발굴해 전시회를 갖는 게 주된 역할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림 가격은 화랑의 노력과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그중 최우선은 미술품의 절대가치인 작품성을 꼽을 수 있다. 더불어 구매자의 기호도와 사회적 역학관계, 즉 경제상황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지막으로 보존상태, 크기, 제작연도, 재료, 소장 이력 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요인들을 충족시켜 건전한 미술시장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미술품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수요에 쫓겨 인기 작가 작품만 거래하다 보면 또다시 깊은 불황에 빠져 버릴지도 모른다. 개인 컬렉터 역시 특정 작가에 편중된 구매보다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함께 이어간다면 유명작가의 양적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미술시장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서양문화를 선호하다 보면 우리 문화의 독자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2021-07-28 11:12:38

[매일춘추] 커피 한 잔의 여유

[매일춘추] 커피 한 잔의 여유

연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무더위에 금세 체력이 바닥나고 지칠 때면 나는 무엇보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절실해진다. 터덜터덜 카페로 들어가 막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크게 한 모금 들이켜면 강렬하고 쌉쌀한 맛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커피는 악마의 열매라 불릴 만하다.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는 편이긴 하다. 종종 친구들과 맛있는 커피를 찾아 카페 투어를 하기도 하고 새로 생긴 카페가 보이면 꼭 한 번은 들러 맛을 보기도 한다. 미묘하게 다른 커피들 속에서 내 입맛에 맞는 맛있는 커피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할까.내가 이렇게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아직도 커피를 마실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오래 전의 일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을 하시고,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서빙을 하는 테이블이 다섯 개 남짓한 작은 카페가 있었다. 조용하고 늘 커피향이 가득한 그곳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 자주 드나들곤 했다.다른 손님이 없는 어느 조용한 오후, 혼자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쓰읍 쓰읍'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서 카페 안을 둘러보니 바에서 사장님이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은 작은 컵 세 개에 분쇄한 원두를 담아 물을 부은 후 스푼으로 떠서 '쓰읍' 소리를 내며 커피의 맛을 보고 있었다. 신기하게 보고 있었더니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커핑 중인데 와서 한번 해보겠냐고 나를 불렀다.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커핑(Cupping)'은 커피의 향과 맛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으로 커피 샘플의 전반적인 품질과 개별 특성을 수량화해 분석하는 전문적인 영역의 작업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의 나는 그저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커피를 맛보고 질문에 답했다.사장님은 각각의 커피에서 어떤 향과 맛이 나는지 질문하셨는데, 막상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마치 스무고개 하듯이 대화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내가 "과일향이 나요"라고 하면 사장님은 "오렌지인가요, 레몬인가요?"라고 다시 묻고, 내가 "신맛이 강해요"라고 하면 사장님은 "1에서 5중에 어느 정도 신맛인가요?"라고 되묻는 식이었다.처음 접하는 경험에 신이 나 한참을 맛본 후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세 잔 중에 어느 것이 제일 좋은 커피인가요?"라고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셨다. "세 잔 다 좋은 커피에요. 다르게 좋지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세 잔의 커피에 등수를 매기고 줄을 세우려 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특징과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그날의 커핑 체험 이후 커피 전문가로 거듭났다거나 하는 극적인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커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커피의 맛과 향을 느끼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21-07-27 14:40:45

[종교칼럼] ‘일상’의 ‘문턱’을 넘어

[종교칼럼] ‘일상’의 ‘문턱’을 넘어

사람들이 저마다 휴가를 떠나고,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계절이다. 더군다나 올해 여름은 코로나19로 학교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이때가 연구실에 칩거하며, 쌓아뒀던 책을 읽고, 미처 끝내지 못한 과제에 몰두하기 좋은 시간이다.몇 주 전이었다. 이른 아침 연구실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려는 순간, 옆 연구실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그곳은 분명 빈 연구실이었다. 그곳을 사용하던 C교수가 지난 3월 캐나다 토론토로 안식년을 떠났기 때문이다. 돌아올 시간이 7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돌아왔단 말인가?반가운 마음이 앞서 연구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달려가 노크했다. 그런데 그 연구실에는 C교수가 아니라 K목사가 있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이라 반가웠다. K목사는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양해를 구한 후, C교수의 연구실과 도서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K목사는 대구 서구에서 꽤 규모 있는 교회를 담임하고, 매주 기독교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 분이다. 그분은 소신이 분명하고, 생각이 유연했다. 우연한 만남에서 미처 몰랐던 목회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분은 50대 초반의 젊은 목사이지만 한국교회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그분은 코로나 시대나 코로나 이후 시대에 직면할 교회의 위기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그분은 교세 증감의 문제보다는 미래 사회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에 '봉사'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당장의 문제,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역했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에서의 다양한 목회 경험이 이러한 성찰로 이어진 것일까?C교수의 안식년과 K목사의 논문연구로 인해 필자는 당분간 그분과 이웃으로 살아야 했다. 우리는 간간이 내 연구실 좁은 탁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서로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신학과 철학, 공간과 건축, 자연과 영성, 그리고 시대정신 등을 찾는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정성껏 내려드리며,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나를 찾았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분의 집중력에 놀랐다. 그분은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논문에 몰입했다. 그분은 자신의 마음과 머리를 텅 비운 채, 단 하나만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고요 속에서 순수하게 그것만을 의식하고 있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일을 멈춘 휴가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과거라는 '문턱을 넘는 의식'을 경험한다. 그런데 K목사에게 이 시간은 목회라는 일을 떠난 휴식의 시간이자, 자신의 문턱을 넘는 계기였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도 자신이라는 '문턱' 또는 일상이라는 '경계'를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휴가철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현대인은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만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하루는 꽉 찬 일정의 연속이다. 잠시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한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쉼 없이 달린다. 속도감, 효율성, 경쟁도 중요하지만 시간에 쫓겨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도 없고, 지금이라는 '문턱'을 넘을 수도 없다. 이번 여름에는 속도를 늦추고,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일상의 문턱'을 넘어 보자.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21-07-27 14:39:48

[경제칼럼] 플랫폼기업 부작용에 대응하는 큰 그림

[경제칼럼] 플랫폼기업 부작용에 대응하는 큰 그림

플랫폼기업 전성시대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으로 대표되는 플랫폼기업들은 식료품 배달부터 우주여행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최고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국내에서는 카카오, 네이버뿐만 아니라 2010년 전후 탄생한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 등도 기업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유니콘기업으로 도약했다.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과 단숨에 국내 은행 부문 시가총액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카카오뱅크는 국내 플랫폼기업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플랫폼기업은 소비자에게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편익을 제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며, 작은 기업들에도 새로운 기회를 준다. 하지만 우려되는 면도 있다.폴 그레이엄은 창업기획사(accelerator)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수많은 유니콘기업을 키워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이자 창업 멘토로 꼽힌다. 2016년 그는 창업기업을 키울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난처함을 고백한 적이 있다.이는 특정 기능 또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시장에 안착한 후, '함께하는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효용이 더 증가한다'는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해 사업을 키우는 플랫폼기업에는 지속적인 규모 확대와 독점 추구가 불가피해서다. 플랫폼기업에 독점은 존재 기반이자 성장 방식이기에 자본주의의 본토이자 플랫폼기업의 고향 미국에서조차 '플랫폼 독점 사업 금지법'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플랫폼기업에 대한 제재는 독점의 폐해를 막는 긍정적인 면과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고 혁신을 지연시키는 부정적인 면이 상존한다. 섣불리 결정할 수 없고 견제의 수준에 대한 지속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또 다른 문제는 플랫폼기업이 기업 독점을 넘어 국가 또는 지역 사이에서 부를 편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기업들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디지털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기에 플랫폼기업의 성장은 사실상 본사가 있는 국가 또는 지역에 한정되고, 오히려 나머지 지역은 플랫폼 비즈니스가 활성화될수록 부의 유출이 심화된다.유럽 의회가 플랫폼기업의 합법적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구글세' 도입을 검토하는 이면에는 미국의 플랫폼기업들이 유럽에서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유럽 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기여도는 거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수수료만 챙기는 글로벌 플랫폼기업은 여러 나라의 제조 거점에 상대적으로 싼 노동자를 고용해 이익을 창출하던 소위 '다국적기업'들에 비해서도 더 악독해 보일 수밖에 없다.한 나라 안에서도 플랫폼기업의 성장 과실은 특정 지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국내 플랫폼기업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플랫폼기업에 수수료 등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반면 플랫폼기업의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 지역기업과의 협업 등은 미미한 수준이다. 물류센터 등 일부 파급효과가 낮은 투자만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넘긴 배달의민족은 대구경북 음식점으로부터 수백억 원의 수수료를 걷었음에도 지역 내 고용 창출과 지역기업과 협업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이처럼 플랫폼기업의 성장은 수도권 집중을 초래하는 또 다른 악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비수도권의 대응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지역기업과 플랫폼기업의 협력을 주선하기도 하고, 지역기업이 플랫폼기업에 지급하는 수수료 일부를 지자체가 지원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플랫폼기업의 횡포에 맞서 경쟁 플랫폼을 만드는 등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플랫폼기업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한 채 무조건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손 놓고 있다 보면 부작용만 부각돼 오히려 규제 일변도로 흐를 수 있다. 플랫폼기업과의 비즈니스 협력도 중요하고, 지역에서 예비 플랫폼기업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며, 때로는 대안 플랫폼을 만들어 견제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개별 사안에 따른 플랫폼기업에 대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으니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에 맡기기에는 지역과 수도권의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지금부터라도 플랫폼기업이 주도하는 시대를 전제로 지역 경제를 키우기 위한 큰 그림을 마련해야 한다.

2021-07-27 14:18:15

[매일춘추] 모두의 고영희 씨

[매일춘추] 모두의 고영희 씨

잘 되는 서점의 법칙이라 믿고 있지만, 우리 책방에도 '고영희 씨(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이 고양이를 가리키는 애칭 중 하나)'가 드나든다. 아침이면 뒷마당 소파에서 흰 털뭉치를 찾아내 이를 갈면서도, 저녁이면 서점 입구에서 애교를 부리는 그에게 홀려 간식을 바치게 된다.동네에는 고영희 씨에게 끼니를 주는 이들이 시간대별로 존재하므로 어쩌다 별미가 필요할 때 외에 그는 늘 우리를 우습게 본다. 서열에서 밀릴 수 없다고 혼자 다짐하건만 막상 길에서 고영희 씨와 마주치면 손부터 공손히 모으는 나를 발견한다.서점에 함께 있는 식구들이 귀여워하며 사진을 찍어댈 때마다 우리 동네 스타는 귀찮아하면서도 이 자세 저 자세를 취해주며 너끈히 밥값을 해낸다. 플래시가 양쪽에서 터지는 기회를 틈타 나는 우리도 '반려동물'을 키우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묻는다. 그들은 일시에 갑자기 전화가 온 척하거나 인터넷 속보를 보는 등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보여주며 자리를 뜬다.나 또한 카렐 차페크의 반려동물 에세이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를 들춰보며 아쉬움을 달래보지만 팔공산 동화사 아래에서 자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동물 친구들이었다. 그 시절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고보살'이었는데 생선도 고기도 입에 대지 않았기에 불교사상에 심취했다고 추정되는 친구였다. 반야심경 독송을 틀어줄 때마다 오디오 스피커 앞에 앞발을 모으고 엎드려 경청하던 고보살이었기에 어느 날부터는 누군가 염주를 걸어주기도 했다.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부터 고보살은 세속의 뭇 중생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뿜게 되었다.그런 고보살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었다. 두 번이나 중성화 수술을 했기에 매우 희박한 확률일 테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임신이 된 것이었다. 축 처진 배를 보고도 자꾸 살이 찌는 줄 여길 만큼 눈치가 없었던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난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보고 단박에 아차! 하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돈오(頓悟)'라 붙여졌다.생명을 이었으니 비로소 속세를 벗겠다는 듯 고보살은 돈오의 젖이 떨어지자 마루 아래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고보살은 어디로 되돌아간 것일까. 이후 만난 모든 고양이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고보살이라면 윤회의 사슬을 끊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골목길에서 마주하는 고양이는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채 모두의 고양이로 살아간다. 소유하고 집착하느라 아웅다웅야옹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고영희 씨가 어쩜 그렇게 무념무상의 표정을 유지하는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영희 씨가 편안히 사는 동네야말로 안전한 마을이라는 사실이다. 동네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책 주문을 하는 틈틈이 동물 보호 사이트까지 드나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07-26 11:19:32

[세계의 창] 정저우 홍수와 담장 안의 황제

[세계의 창] 정저우 홍수와 담장 안의 황제

'산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다'는 속담이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내려온다.베이징 자금성 담장 안에 있는 황제는 담장 밖은 물론 드넓은 중국 대륙에 산재한 지방과 괴리돼 있다는 뜻이다.우리나라도 서울에서 일어난 재난이나 사건은 크게 보도되지만 지방에서 일어난 대형 재난은 축소되거나 아예 무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듯이, 중국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중국에서 폭우와 홍수, 태풍 피해는 해마다 겪는 자연재해다. 땅이 워낙 넓다 보니 겪게 되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그러나 지난 20일 허난성 정저우시에 사흘간 내린 617㎜의 폭우는 연간 강수량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규모였다. 허난성 당국이 '5천 년에 한 번 올 법한 폭우'라고 규정했을 정도의 엄청난 폭우였다.정저우시 도심은 비에 잠겼다. 운행 중이던 지하철에 갑자기 물이 들이차서 지하철 운행이 멈췄고 500여 명의 승객이 대낮에 물속에 갇히는 초유의 재난 상황이 벌어졌다. 도심을 관통하는 1㎞가 넘는 지하차도도 5분여 만에 물에 잠겼다. 200여 대의 차량이 뒤엉켜 빠져나가지 못했다. 대형 병원도 물에 잠겼고 중국 전역을 이어 주던 사통팔달 정저우역도 제 기능을 못한 채 문을 닫았다. 그래서 허난성을 거쳐 가는 노선은 철로가 유실된 탓에 일주일째 운행을 멈춰야 했다.허난에서 정저우시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다. 인명 피해가 58명에 달한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었지만 시중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민심은 흉흉하다.그런데도 베이징은 물론, 전 중국에서 허난의 폭우와 대홍수 피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도 않고 보도도 비중 있게 하지 않은 모양이다.지난해 장강 유역에서 대홍수가 났을 당시에는 리커창 총리가 직접 달려가 장화를 신은 채 진흙탕에 들어가는 등 이재민을 위로하는 모습까지 연출했지만 이번 정저우 폭우 사태에 대해서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관심과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특히 중국 관영 매체가 폭우 당시 재난방송을 제때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의 대홍수 사태는 크게 보도하면서도 정작 허난의 폭우 사태에 대해서는 보도조차 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한 것이다.허난의 한 지역 매체는 지하철과 지하차도가 물에 잠긴 20일 저녁 보도에서 "갇혀 있던 정저우 지하철 승객들이 차례로 대피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보도해 정저우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지하철 승객 12명이 사망했고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에서도 40여 명이 희생됐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정저우시의 폭우 피해가 뒤늦게 보도된 23일 중국공산당 관영 인민일보는 최고지도자 시진핑 주석의 동정을 화보 여러 장과 함께 실었다. 정저우와 허난성 인민들이 쏟아지는 폭우 피해에 속절없이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그 시각, 시 주석은 티베트(시짱장족자치구) 라싸를 방문한 것이다. "시 주석이 21일 티베트 린즈(林芝)의 공항에 도착해 티베트 관리 및 현지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것이 관영 매체의 보도 요지다.2012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후 처음인 이번 티베트 방문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와 신장(新疆) 등의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며 대중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담장 안의 황제', 시 주석에게 허난의 폭우 사태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전달되거나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가 됐다면 티베트를 찾는 일정 대신 허난의 폭우 피해를 위로하는 일정을 짰을지도 모른다. 직접 재난 현장을 챙기지 못하더라도 리 총리라도 보내지 않았을까?정저우시에 내리던 비는 10여 일 만에 그쳤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봉쇄된 '우한 사태' 당시 '우한 힘내라!'(武汉加油!) 캠페인을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허난에 대해서도 재난 극복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허난성에서도 '허난인이여, 우리 함께 재난을 극복해 나갑시다'(河南, 咱们一起扛过去)라는 구호가 난무한다.이번 정저우 홍수는 베이징의 황제가 얼마나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삶과 분리돼 있는 것인지 잘 드러내 준 계기가 될 것 같다.

2021-07-26 11:16:24

[매일춘추] 평생직업의 꿈

[매일춘추] 평생직업의 꿈

요즘 시대에 평생직장을 꿈꾸는 사람이 있을까? 평생직장이란 단어보다 '평생직업'을 더 자주 듣게 된다.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응시하는 공무원 시험. 매년 20만 명의 응시자 중 높은 경쟁률을 뚫고 5천여 명이 합격하지만, 재직 기간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6천명을 넘는다. 조직이 보장하는 안정감 외에 삶의 만족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 유튜버로 활동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1980년부터 2000년대 출생자를 일컫는 MZ세대에게 직업이 주는 삶의 만족도가 직업 선택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과거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가지려 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나는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음악을 전공한 이유도 있겠지만 공연의 A부터 Z까지 책임져야 하는 공연기획자의 특성상 나의 성격, 성향과도 맞다. 처음부터 공연기획자의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성악을 전공한 남자라면 누구나 목표로 하는 '제2의 파바로티'를 꿈꿨었다.꿈이 바뀐 것은 군 제대 후의 일이다. 흔히 군대에 다녀오면 '철든다'라는 말이 있듯, 나 또한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다면 해외 유학 등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유학을 다녀오면 언제부터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등의 내적 갈등이 심했다.그래서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군을 찾아 공연기획자의 꿈을 꾸게 되었다. 음대생이라면 거쳐야 하는 졸업연주회를 마친 후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기 위해 취업계를 내고 사회에 나왔다. 사회생활 초반에는 대학 졸업 후 유학길에 오른 선배, 친구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요즘 강제귀국하고 있는 주변 예술인들을 보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공연기획자는 나의 운명과도 같은 직업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고등학생 시절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무보수로 무대감독의 일을 도왔다. 무대가 좋아서였을까? 나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무대 스태프를 자처했었다. '공연기획자'라는 직업도 몰랐던 때, 나는 어쩌면 10대 때부터 공연장 언저리를 맴돌았던 것 같다.공연 업계에 있으면 워라밸은 반쯤 포기해야 한다. 워라밸의 기준으로 삼는 나인 투 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는 공연기획자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것이 공연기획자의 하루다. 그런데도 공연을 준비하고 관객에게 선보이며 느끼는 보람이 워라밸의 불균형을 해소하게 하는 것이 공연기획자의 삶인 듯하다.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저서 '규칙없음'에 담긴 메시지가 인상 깊다. "직원들이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기길 바라지 않았다…, 더는 직장에서 배울 것이 없거나 자신의 탁월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그 자리를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나는 그의 메시지처럼 평생직장을 꿈꾸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직업을 꿈꾸는 '공연기획자'로서 내가 속한 공연장과 넓은 범위의 지역 문화예술계에 좋은 영향을 주는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

2021-07-26 06:30:00

[홍성걸 칼럼] 2022 대선의 의미

[홍성걸 칼럼] 2022 대선의 의미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이는 하버드대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가 2018년에 쓴 책의 제목이다. 두 사람은 수많은 국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독재자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지적하고 그 전조(前兆)와 과정을 분석했다. 그 논리가 어쩌면 그렇게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주요 내용은 부분적으로 보도된 내용도 있지만 독자들을 위해 다시 정리해 본다.민주주의의 핵심은 묵시적으로 합의된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첫째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의한 선거라는 전제하에 서로 상대의 집권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한 페어플레이의 전제 조건이다. 둘째는 집권 세력이 상대방을 약화시키기 위해 민주적 제도에 대한 통제력을 악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다. 집권 후 제도를 악용해 경쟁 상대를 억압한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진다.민주주의가 정착된 현대 국가에서는 민주적으로 집권한 정치 세력이 합법적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히틀러(독일)나 무솔리니(이탈리아), 차베스(베네수엘라), 페론(아르헨티나), 후지모리(페루) 등 독재자의 등장은 놀랍게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들은 포퓰리스트 아웃사이더였으며, 독재자로 등장하기 전에 장차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잠재적 신호들을 보였으나 국민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독재적 특성을 보여주는 잠재적 신호 네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거나 이를 준수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고, 둘째는 경쟁자들을 부정하거나 헌법 질서의 파괴자, 범죄자 등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셋째는 때때로 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것이고, 넷째는 언론 및 경쟁 상대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잠재적 독재자의 집권 여정은 대체로 유사한데, 이들은 모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술에 뛰어났고,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가 높아 새 인물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계에 진출하거나 집권하는 길이 쉽게 열렸다. 이렇게 선출된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방법도 매우 유사하다. 심판을 매수하거나 위협해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도록 하거나 경쟁 상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각종 비리를 발굴하거나 없으면 만들어 제거한다. 대법원과 헌재, 선관위 등의 법관, 위원 등의 매수 또는 교체, 주요 언론·방송사의 폐간 위협, 야당을 지원한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와 과세 등 민주적 제도들을 악용해 궁극적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운동장 전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울여 독재를 완성한다. 독재자의 등장을 막아야 할 정당은 무력해지고, 오히려 독재자의 수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실상 민주주의를 사망하게 만드는 데 동조한다.집권하기 전 문재인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자신의 이념과 가치에 반대하는 상대를 부인하거나 종종 민주적 가치를 거부했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지지 세력들의 폭력과 헌법 질서의 유린을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것이 다반사였고,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이뤄져 집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정치적 경쟁 상대를 수시로 헌정 질서의 파괴자로 비난했으며, 집권 후에는 적폐로 몰아 청산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물론, 선관위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우리 사회의 심판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을 모두 지지자들로 채워 운동장을 기울였고, 입법부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야당의 동의 없이 선거법과 같은 경기의 규칙을 모두 바꿨다. 집권 후에는 갖가지 감성적 호소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면서 미디어를 통제하고 소득주도성장과 문재인케어 등 지속가능성이 의심스러운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정책을 총동원해 지지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한국의 민주주의는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는 좌파 운동권에 의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그나마 채널A 이동재 기자와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판결에서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 사법부를 본다. 필자는 다가올 2022년 대선이 한국 민주주의의 종말이냐 부활이냐를 선택하는 중차대한 선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2021-07-26 06:22:23

[특별기고] 물 보기를 금(金)같이 하라

[특별기고] 물 보기를 금(金)같이 하라

석유를 블랙 골드(black gold)라고 부른 지 오래됐다. 요즘은 물을 블루 골드(blue gold)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구가 급증하고, 인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깨끗한 수자원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물 보기를 금과 같이 해야 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생활용수, 산업용수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물 부족 현상을 겪거나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줄어 식수 부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세계 각국은 지금 깨끗한 물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가장 절감하는 곳이 바로 대구다. 대구시는 1991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후 깨끗한 물 확보에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왔다. 이러한 투자가 지속돼 2015년 세계물포럼을 대구에서 개최하기도 했다.물을 확보하고 정수(바닷물의 경우는 담수화)한 후 공급하는 과정, 사용한 물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하수로 보내거나 재활용하는 과정, 빗물을 안전하게 흘러가게 하고,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여 물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과정 등 물순환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산업을 물산업이라고 한다. 최근 효율적인 수자원 관리를 위해 다양한 스마트 기술이 도입되는 등 물산업 분야에도 많은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2020년 기준 전 세계 물시장 규모는 약 920조 원(8천34억 달러)으로 연평균 3.4%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2020년 기준 약 50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2배 정도다. 이러한 물산업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 독일,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선진 국가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현재 물산업 규모가 약 1조5천억 원으로 세계 12위를 기록하는 우리나라도 물산업을 육성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대구시는 달성군 구지면 16만8천㎡ 부지에 국가물산업클러스터를 조성(2019년 9월)하고, 한국물기술인증원을 유치(2019년 11월)해 '기초연구→제품 개발→성능 확인→인·검증→사업화→해외 진출'을 포괄하는 전 주기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는 6월 말 현재 119개 업체가 입주했고, 10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도 10곳으로 늘었다. 대구는 물의 도시, 물산업의 도시로서의 위상과 이미지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 자체 노력만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는 힘들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첫째,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 실증플랜트 연구개발 수행, 한국물기술인증원 기능 확대, 물산업 관련 인력 양성 기관 신설 등을 위한 예산이 요구된다.둘째, 대구에 물산업진흥원을 신설하고, 물산업 관련 주요 기능을 집적해 효과적인 기술개발과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한편 대구시가 제안한 '디지털 상하수도 통합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을 통해 대구시의 물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마지막으로 세계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 국내 굴지의 엔지니어링 회사와 대구시가 힘을 모아야 한다. 물산업이 국내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여 다른 지자체와의 협력 체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다.물산업은 특정 지역의 일이 아니다. 인류 미래를 담보하는 물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침체하는 지역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대구시와 중앙정부의 줄탁동기(啐啄同機)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2021-07-25 19:21:31

[기고] 농업은 과학이다

[기고] 농업은 과학이다

'인공지능(AI)이 농부를 이겼다.'(Artificial intelligence beats grower in Autonomous Greenhouse Challenge 2019/2020) 세계 최고 수준의 농업과학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연구소(WUR)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뉴스 타이틀이다.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처럼 인류 문명의 집약체인 농업에서 인간과 Al 중 누가 농사를 잘 지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열린 세계 농업 Al 대회는 중국 게임업체 텐센트가 후원하고 바헤닝언대학&연구소가 주관했다. 방울토마토를 대상으로 한 3개월간의 경쟁에서 5개 Al 팀 모두가 농사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농부를 이겼다.특히 이산화탄소와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Al 전략을 잘 운영한 팀이 우수한 품질의 토마토를 가장 많이 생산해 순수익과 지속가능성 등의 채점 기준에 높은 점수를 받아 우승했다.이산화탄소와 빛의 양, 물과 양분의 공급 등 작물 생산과 핵심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광합성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가장 중요하며 이를 관리하는 역량이 생산성과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1950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멜빈 캘빈 교수가 식물이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해서 빛을 받으면 포도당과 같은 유기 분자를 만드는 핵심 경로를 밝히면서 농업을 포함한 생물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다.최고 수준의 시설재배 기술을 보유한 네덜란드도 토마토 등 주요 농산물의 광합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해 왔다. 유리온실에서 탄산시비(광합성을 높이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는 것)와 보광등을 설치해 일조 부족을 해결하고 센서를 이용,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했다.우리나라도 농업과학이 발달해 1980년대 백색혁명을 시작으로 겨울철에도 과일과 채소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경북도에서 약 90%가 생산되는 대표 과일인 참외는 필자와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 연구원들이 빛을 잘 투과하고 보온력이 좋은 PO 필름(Polyolefin film)과, 탄산솔과 같이 농가에서 사용이 쉬운 이산화탄소 공급 등의 광합성 증진 기술을 개발·보급해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기술로 태양에너지를 참외 농사에 충분히 이용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식물의 실시간 생장 평가 시스템과 생육 모델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약 560GWh의 태양에너지가 참외 생산에 이용됐고 1만8천750GWh는 식물의 증산을 통해 수증기로 배출됐다. 태양 빛을 이용해 국민의 먹거리를 만들고 공기를 시원하게 만드는 천연 발전소 역할을 한 셈이다.더욱이 지금보다 약 2배 많은 40만t까지 참외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 성과로 참외 생산의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이산화탄소, 물, 빛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 이 일에 AI가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지금 농업은 기술혁신과 시스템의 변화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경북도는 참외, 오이, 딸기 등 시설재배 주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농업 분야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스마트 온실을 구축하고 광합성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 수집, 인공지능 기반 환경 제어 등 디지털 농업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할 때다.

2021-07-25 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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