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의 아침놀] 눈을 보지 말고 눈물을 보라

인간은 '눈'이 아니라 '눈물' 때문에 위대하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지구적 존재'라 하지만, 나는 '눈물의 존재'로 바꾸고 싶다.인간의 눈은 마그리트가 그린 '가짜 거울'이 잘 말해준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스스로 '신의 눈'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 인간의 이성과 그것이 만든 과학기술은 인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또 다른 노예이다. 눈의 본질은 보는 것(분별-심판-단죄-폭력-지배)이 아니라 눈물(동정-배려-용서-포용-참회)에 있다.다니엘 다 볼테라의 그림 '십자가 아래의 여인'이 생각난다.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한 예수의 죽음을 통곡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두 손으로 감싼 여인. 이 모습이 인간들의 '조건'이거나 '자화상'이 되면 어떨까. 관자재(觀自在)의 '이성-지혜'도 좋으나 관세음(觀世音)의 '구원-자비'에 더욱 관심이 간다. "성경"의 루가복음에 근거하여 그린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은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균형 잡힌 희망을 제시한다.근현대사에서 우리의 정치는 투쟁이고 상처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서로가 가해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였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논해야 할까. 머리카락은 빠지고 옷도 신발도 다 해진 작은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을 보자. 왼손은 억센-강한 남자의 손이고, 오른손은 여린-부드러운 여자의 손이다. 왼손은 모든 시련을 해결해 줄 아버지의 강한 능력의 손이고, 오른손은 자식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사랑의 손이다. 양 극단화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은 돌아온 탕자를 따사롭게 감싸 안고 용서해주는 도량이리라.눈물은 감정의 시편(詩篇)이자 능동적 관계성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처럼, 희로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자락엔 늘 대롱대롱 눈물이 맺혀 있다. 어떤 눈물이든 이성-논리의 문맥에서 일탈한-도망친 자아의 그림자이다. 뭐라고 말 못할 복잡한 감정은 '눈가'에서 서성댄다. "꽃을 보지 마라! 꽃이 너즐브레 떨어진 저 꽃자리를 보라!"는 말에 나는 동감한다. 눈가의 주름과 눈물을 살피는,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사회는 이미 마비된 신체와 같다. 이성-논리로 무장한 투쟁의 정치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에 대해 차릴 기본 예의란 없다.물론 눈물에도 진위(眞僞)와 등급이 있기 마련이다. 황하의 넘실대는 물결 앞에 서서, "아름답다, 강물이여. 저렇게 출렁대는구나! 내가 이 강물을 건너지 못함은 운명이로다!"라며, 뜻을 펴지 못하고 돌아서서 탄식하던 공자의 체념 어린 눈물도 있다. 중국 고대에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들자, 혹여 그런 말단허위에 골몰해 굶주릴까봐 밤새 슬피 울었다는 자애로운 귀신의 눈물도 있다.그뿐인가. 로마를 떠나 밀라노에 와서 살 때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 꿇어앉아 과거를 반성하며 펑펑 쏟아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에 빠진 눈물도 있다. 아니,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피고름 나는 눈물은 민생고에 지친 서민들의 한숨소리 아닐까. 민주(民主)는 민생(民生)이 핵심이다. 나머지는 허울이다.동양의 전통에서 보면 통치자들이 반드시 보살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다. '환'은 홀아비, '과'는 홀어미, '고'는 어려서 부모 잃은 아이(고아), '독'은 자식 없는 독거노인을 말한다. 모두 천하에 의지할 데 없는 빈곤층이다. 환과고독-네 글자 가운데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환' 자인데, 물고기 어(魚) 변에 '눈(目)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양의 글자가 붙어 있다. '환'은 전설상의 큰 물고기 환어(鰥魚)이다. 요놈은 늘 혼자 돌아다니는데 근심이 많아 밤잠을 못 이룬다. 요즘 경제침체로 시름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닮았다. '눈물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뜻의 '회'(懷) 자가 자꾸 눈에 어른댄다.부디 우리 정치여, '밥 한 그릇 따숩게 먹고파하는(食一碗)' 서민들의 눈물과 주름을 살펴라! '일자리'에서 '살 자리' 찾기로 몰입해갔으면 한다.

2020-04-08 18:00:00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광해군 태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왕가에서 자손이 출생하면, 명당 또는 길지를 선정하여 그의 태를 묻고 보호 시설인 태실(胎室)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장태문화(藏胎文化)이다. 태실은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아기태실은 국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터를 지정하여 항아리에 태를 담아 묻어서 만든 태실이며, 가봉태실(加封胎室)은 아기태실의 어느 왕자가 훗날 즉위하면 아기태실에 화려한 석물과 비석을 설치하여 제작한 태실을 일컫는다.대구 지역 조선 왕실의 태실로는 광해군 태실이 유일하다. 광해군 태실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1동 산 83번지 태봉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광해군 태실의 태호(태를 담은 항아리)와 태지석(태의 주인공이 탄생하고 태를 매장한 날짜를 기록한 비석)은 199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2003년 10월에 안타깝게도 도굴을 당하였다.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왕자였다. 선조 스스로가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서 명종의 왕위를 계승한 서자 출신의 국왕이었다. 선조는 의인왕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여 세자 책봉을 미루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에 신립이 이끌던 조선군이 충주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천을 결정한 상황에서 선조는 광해군을 전격적으로 세자로 책봉하였다.곧이어 선조는 분조(分朝·조정을 둘로 나눔)를 실시하였고, 이에 광해군은 서북 지방과 강원도 일대를 옮겨 다니며 민심을 달래고 의병 모집과 전투 독려에 매진하였는데, 이정암(李廷馣)에게 황해도 연안성을 사수하도록 지시하였고 강화도에 주둔했던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였다.임진왜란이 마무리된 이후,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는 선조가 죽은 당일에 광해군을 즉위시켰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소북파 영수였던 유영경을 제거하였고, 친형인 임해군이 오래전부터 역모를 도모했다는 혐의로 교동으로 유배 보내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1612년 봉산군수 신율이 이이첨의 사주를 받고 군역을 피하고자 관문서를 위조했던 김제세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김직재와 그의 아들 김백함이 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양자인 진릉군을 추대하려 했다고 발설하자, 연루자들이 줄줄이 희생되었다.이듬해에는 양반가의 서얼 7명이 문경새재에서 일으킨 '은상(殷商) 살해 사건'이 계축옥사로 비화되었는데, 그중 한 명인 박응서가 김제남(영창대군 외조부)이 주도하여 광해군과 세자를 살해하고 영창대군을 옹립시켜서 인목대비가 수렴청정을 실시하기로 계획하였다고 토로하였다. 이에 김제남은 처형되고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신분이 강등되어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아홉 살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인목대비는 서궁으로 유폐되었다.(광해군은 어머니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함으로써 스스로를 적자로 만듦) 한편 허균은 폐모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음에도 나중에 의창군(선조의 서자)을 추대하려 했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그러나 광해군은 경기도에 한해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지주들에게 토지 1결당 12두씩을 부과하여 백성들의 공물 부담을 줄였다. 또한 광해군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복간하였고, 무주에 적상산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광해군은 귀양 갔던 허준을 불러들여 「동의보감」을 저술하게 하였고, 흐트러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자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간행하였다.또한 광해군은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였고, 후금과 명의 대립 속에서 조선이 다시금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립외교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능양군(광해군이 죽였던 능창군의 큰형)에 의해 재조지은(再造之恩), 폐모살제(廢母殺弟), 인경궁·경운궁·경덕궁 건립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이런 광해군의 일생을 기억하고 태실의 의미와 형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하루속히 광해군 태실의 원형을 고증하여 복원해야 할 것이다.

2020-04-08 18:00:00

지난달 12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50사단 장병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기고] 코로나19 위기는 대구가 더 단단해질 기회

전 세계가 지난해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집단 발병한 신종 폐렴인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2월 18일 대구 31번 확진자의 등장으로 가파른 증가세가 이어졌다. 지난달 15일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이 자연재해가 아닌 전염병으로 특별재난지역이 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코로나19 여파는 더 잔인하다. 대구 방문객이 끊기며 직격탄을 맞은 지역 관광업계, 호텔 숙박업도 최악의 체감 경기를 감내했다. 극심한 내수 부진으로 대구 지역 상가, 대형 상점, 백화점은 물론 주요 전통시장의 매출도 반 토막이 났다. 시민들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문을 닫는 자영업자,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취약계층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웃들이 속출하고 있다.그러나 시민들은 부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서둘러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을 되찾았다. 코로나 사태 극복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대구시와 남구청도 모든 행정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현재 확진자 증가세가 완연하게 꺾이는 상황에서 대구 시민이 보여준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과 정신적, 물질적인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하고 싶다.시민들의 격려 편지와 지원품, 그리고 크고 작은 기업에서 보내온 각종 후원은 최일선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행정 인력들 모두에게 큰 힘이 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었던 지난달 초 경기도 안산에서 온 소포 하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마스크 25장과 함께 "구청장님이 흘린 눈물은 대구 시민의 눈물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눈물입니다"는 따뜻한 응원의 글이 적힌 편지를 아직 잊을 수 없다.대구 8개 구·군 중 증가세가 가장 빨랐던 남구는 코로나19 극복에 사활을 걸었고 전 직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불철주야 쉼 없이 달려왔다. 특히, 집단거주시설 검사 등 감염 확산을 위한 선제 대응은 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모범적인 사례다. 재정자립도 9%, 열악한 남구청의 조건 속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아울러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한 경험이 앞으로의 행정 방향에 좋은 나침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과거 사스의 거대한 태풍 속에 휘말렸던 싱가포르는 정부의 강력한 조치와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두 달여 만에 사스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시기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도 이듬해 급속한 플러스 성장을 보였을 만큼 전염병 극복 후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불신과 분열이라는 것을 지난 몇 달 동안 명확히 경험했다. 그러나 대구 시민의 단결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면서 대구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했다. 코로나19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가 앞으로 대구가 더 단단해지는 초석이 됐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앞으로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다시 행정 당국과 대구 시민들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힘을 모아 국난을 해결하려고 했던 국채보상운동과 불의에 항거한 2·28 민주운동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코로나 사태의 조기 종식은 물론 앞으로 우리 사회에 닥칠지 모를 어떠한 위기도 지혜롭게 이겨나갈 것이다.

2020-04-08 16:03:59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오정일의 새론새평] 내가 여론조사를 무시하는 이유

다음 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많은 미디어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여론조사는 전문기관이 시행한다. 하지만 나는 여론조사를 무시한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에게 특정 정당 또는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정직하게 응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내가 A후보를 지지하더라도 B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할 수 있다. 내가 정직하게 응답할 이유는 없다. 어떤 조사기관은 응답자에게 약간의 보상을 한다. 나는 보상을 받고 정직하게 응답하지 않는다. 정직하게 응답할 이유가 없으니까.사람들이 정직하게 응답하지 않는 것은 여론조사의 한계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대표적인 지표가 주가와 환율이다. 주가와 환율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돈이 걸려 있다. 돈이 걸리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주가와 환율에는 사람들의 진의가 반영된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1.1%, 당시 주가지수와 환율은 2,286, 1천129원이었다. 2020년 2월 셋째 주 주가지수와 환율은 2,163, 1천212원이다. 주가와 환율 변화를 반영해서 추정한 2020년 2월 셋째 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38.6%이다. 반면, A조사기관이 발표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7.4%였다.여론조사는 통계학이다. 통계학은 경제학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알기 위해 1천만 명을 조사하는 것은 통계학이 아니다. 1천 명 또는 5천 명을 조사해서 1천만 명의 생각을 추정하는 것이 통계학이다. 조사 대상자가 많으면 설문조사의 정확도가 높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표본(sample)이 작으면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비용이 적게 든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여론조사의 목표이다.정기적인 여론조사는 대체로 1천 명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이 경우 오차는 약 6%p이다. 여론조사에서 A후보의 지지율이 B후보보다 6%p 높아도 선거에서 B후보가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표본이 2천400명이면 오차는 4%p로 감소한다. 오차를 1%p로 줄이려면 약 3만8천 명을 조사해야 한다. 매주 3만8천 명을 조사하면 조사기관은 파산한다. 1천 명을 조사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1천 명이면 충분한가?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자. 서울·경기·인천 132개 지역구 중에서 득표율 6%p 내에서 당락이 결정된 곳이 39개, 1%p 내에서 결정된 곳은 15개이다. 수도권의 경우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는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현행 여론조사는 표본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 2019년 11월 A조사기관이 시행한 여론조사의 응답자는 1천508명이다. 이 중 대구경북 응답자는 136명이다. 136명이 대구경북 여론을 대표하였다. 136명 중에서 나이가 60대 이상인 응답자는 50명, 30대 이하 여성은 6명에 불과하다. 다른 지역에 대한 표본도 이와 유사하다. A조사기관의 여론조사 10건에서 제주도·강원도의 40대 이하 응답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선거 결과를 예측할 때는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모든 지역의 표를 합산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의 지역구는 실질적으로 하나이다.이번 국회의원 선거 지역구는 253개이다. 1만 명을 조사해도 지역구별 표본은 약 40명에 불과하다. 지역구별 표본이 1천 명이 되려면 25만3천 명을 조사해야 한다. 대다수 미디어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만을 발표한 이유도 돈 때문이다.자칭 전문기관이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였다. 이는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조사기관은 여론을 조사하는 기관이지 해석하는 기관이 아니다. 해석은 정치적인 행위이다. 해석은 미디어와 시민의 몫이다. 부정확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코미디이다. 허구와 상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0-04-08 15:58:32

김사윤 시인

[매일춘추] 나의 기타 이야기  

코로나 사태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을 훼손하고 터전을 잃은 미물들의 반란으로 인해 생긴 역병(疫病)이다.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터전이 있다. 그 터를 침탈당하고 가만히 있을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다. 식목일을 맞이하여 식수를 하며 '자연보호'를 외치는 것이 일회성 구호에 그쳐선 곤란하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선거철에 후보자들이 'OO지구개발' 따위의 공약 대신 'OO생태보호'를 내세워야 설득력을 가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생명의 존엄을 깨닫고 서로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것이 서로의 종족을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천재보다 인재가 더 많아진 것은 날이 갈수록 개척과 간척의 도구들이 흉포해진 탓이다. 속도와 성과에만 치우쳐진 정책은 부작용을 낳는다. 이를 호도(糊塗)해선 안 된다.1970년대에서 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포크송의 필수품이었던 통기타는 머리, 목, 몸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송창식의 노래 가운데 '나의 기타 이야기'라는 곡이 있다. 기타의 몸통(body)과 동그랗게 뚫린 울림통(sound hole)을 한 소녀에 비유해서 쓴 4절에 걸친 가사가 전설처럼 아름답다. 기타의 소리에 바람 한 줌, 냇물소리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까지 담아내고자 하는 장인의 혼(魂)도 엿볼 수 있다. 그뿐인가. 내가 사랑했던 한 '소녀'를 닮은 기타의 여섯 줄은 밤하늘의 은하수로 흐르며, 이 시(詩)는 노래가 되어 남았다.한 가수가 '송구스럽지만, 제가 아끼는 통기타를 내놓습니다. 필요한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4월 잔인한 새날이 될 듯하여 잠이 오지 않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전 공연이 취소되고 소극장까지 운영하는 그녀가 겪을 이중고는 불 보듯 빤하다. 결국 손때 묻은 자신의 악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은 어떨까. 시집도 출간하고 지상파 방송의 제법 큰 무대에도 섰던 가수 박강수 이야기다. 8집 음반까지 낸 가수가 이렇게 힘들면, 무명 가수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들의 무대와 우리의 객석은 이렇게 텅 비었다.코로나 사태가 쉬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국가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내 아이들의 배는 굶기지 않겠다'는 의지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공동의 다짐으로 잘 이겨내 왔다. 진정한 행복은 현실에서 노동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꿈의 새싹을 틔우길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다. 마치 통기타의 가는 현에서 굵은 현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소리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삶은 서로를 아우르고 버무리며 빛나는 하모니를 이루는 일이다.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고 시를 쓸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나' 혼자면 견디기 힘들겠지만 '우리'가 함께 겪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여태 그래왔듯이 말이다.

2020-04-08 14:03:53

아이들이 보는 광고라면 아이들의 언어를 써야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눈을 맞추면 팔립니다

왜 팔리지 않을까? 오늘도 누군가는 치킨집을 창업하고 곧 망할 예정이다. 내일은 누군가 카페를 열고 곧 망할 예정이다. 시작부터 망할 생각을 하면 너무 비참하다. 도대체 왜 팔리지 않을까?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 회사를 창업하고 이런 광고주분들을 많이 만났다. 본인의 마음이 너무 높아 고객의 마음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그런 분들의 특징은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아, 우리 제품이 이만큼 좋은데 왜 몰라주지?' '사람들은 정말 바보야. 이렇게 좋은 제품을 두고 사지 않으니'라고 생각한다. 고객과 눈 맞을 리가 없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객과 눈을 맞추기는커녕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 눈이 맞지 않는데 마음이 동할 리가 없다. 말 그대로 동상이몽이다.동상이몽 정신은 사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공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교육청 광고를 떠올려 보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나? 잔디밭 위에서 남녀 학생이 책을 읽으며 서로 미소 짓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완벽한 거짓말이다. 이건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생은 이렇게 자라야 해!'라는 규칙을 정해주는 것이다.당연히 학생들은 이런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에 고개가 돌아갈 뿐이다. 이렇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모습 때문에 많은 공익 광고들이 실패한다. 교화하려 하고 가르치려는 순간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낀다.그러던 중, 인천시 교육청에서 의뢰가 왔다. '인재의 천국'이라는 카피가 기억에 남으셨는지 다행히도 다른 일까지 맡겨주셨다. 인천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학교에 다니며 아이들이 가장 잘 배워야 하는 것이 뭘까 고민했다. 그것은 수능에 나오는 국·영·수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공부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공부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봤다. 그때 비로소 아이들의 눈이 가장 빛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기 싫은 공부로 야자를 채우면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흐리멍덩할까?필자가 좋아하는 영어 중에 'enlighten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로 '계몽적인, 밝혀주는'이라는 뜻이다. 굉장히 교육적인 단어라고 생각하는데 '밝혀주는'이라는 뜻이 참 좋다. 공부의 즐거움이 잘 녹여져 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갈 때, 어떤 문제에 관한 통찰을 얻었을 때 깜깜했던 눈앞에 불이 켜진 것처럼 기쁘다. '눈이 반짝인다'. '눈에 불이 켜진다'라는 아이디어를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싶었다.톤 앤드 매너는 소위 아이들이 말하는 병맛 컨셉으로 갔다. 아이들은 진지한 교육청 광고에 고개를 돌리며 그런 콘텐츠는 소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아이디어는 이렇다. 길바닥에 떨어진 '인천 교육'이라는 책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마치 책을 열어보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은 책을 펼쳐보고 그 속에 빠져든다. 책에서 얼굴을 떼니 눈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두웠던 세상이 너무 밝아 보이는 것이다. 오른쪽을 봐도 빛이 나고 왼쪽을 봐도 빛이 난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니 눈에서 나오는 불빛이 밤하늘까지 밝힌다. 그러면서 카피가 나온다. '교육이 인천을 더 빛나게'아마 눈에서 빛이 나오는 교육청 광고는 인천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인천시 교육청과 한 작업을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있다. '인재의 천국'은 줄임말을 활용했다. 교육이 인천을 더 빛나게는 눈에서 빛이 나오는 걸 찍었다. 둘 다 어른 취향이 아니라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교육청 광고가 없는 이유는 어른들의 취향에 맞췄기 때문이다. 줄임말 역시 요즘 아이들이 워낙 많은 말을 줄여 쓰기 때문에 쓴 카피이다. 눈에서 불이 나오는 설정도 지극히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광고와 심리 상담은 닮았다. 한 심리 상담가의 말이 기억난다. "제 역할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고민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내담자분들은 많이 좋아하세요" 광고도 마찬가지다. 말하기인 것 같지만 사실 광고는 듣기이다. 우리가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힌트를 주는 것이다. 팔리는 광고를 하고 싶다면 키를 낮추어라. 그리고 바짝 엎드려 고객과 눈 맞춤하라.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눈동자를 바라보아라. 마케팅은 거기서 시작된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4-08 12:05:29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꽃은 피건만 사람이 없다

하늘에 뜬 달이 둥글고 밝다. 보름이 가까워진 것이다. 다정헌 정자에서 바라보는 달빛은 하늘과 낙화담을 비추고 너와 나의 찻잔에 담기고 너와 나의 마음에 담긴다. 경포대나 해운대의 달도 장관이지만 망월 누각에서 완상하는 6개의 달은 한결 심원하다. 그 뜻은 경허 선사의 열반송에 잘 드러나 있다.心月孤圓(심월고원) 마음 달이 홀로 둥글어光吞萬象(광탄만상) 그 광명이 삼라만상을 삼키었네光境俱忘(광경구망) 광명과 경계를 모두 잊으면復是何物(부시하물)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이 시를 생각하며 계절 따라 찻잔에 작설차를 부어 놓고 하늘의 달을 담아 달빛 차회를 즐기다 보면 찻잔도 환해지고 바라보는 주인도 객도 그 마음이 둥글어지고 밝아진다.사람의 마음은 본시 둥글고 밝았다. 때도 묻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을 살다 보니 부와 명예와 권력과 사랑에 의해 둥근 마음이 모가 난다. 이런저런 상처를 입어 밝은 마음은 어두워지고 오염이 되었다.하늘의 둥글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 달을 본래대로 회복하라는 뜻으로 내가 사는 암자를 망월(望月)이라고 했나 보다. 심월(心月)이 고원하니 어찌 고통 받고 어리석게만 살 수 있으리오. 자기 관념에만 빠지지 말고 남을 인정하며 둥근 인성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코로나 전쟁 같은 세상의 환란에도 자연의 순환과 주기는 변함이 없다. 무한한 우주는 중력을 통해 변화와 생명을 탄생시키고 소멸하게 한다. 물질은 중력의 영향으로 밀도가 높은 곳으로 모여들어 별과 은하를 만들었고 높고 낮음을 나타냈다. 꽃이 씨앗을 남기듯 인간은 자신의 선과 악의 행위로 행불행을 만든다.코로나 탓에 천지에 꽃은 피건만 영춘(迎春)하자는 사람이 없다. 저녁은 있건만 잠들지 못한다. 집을 나서는 식구들의 뒷모습은 불안하다. 서로의 얼굴을 마음껏 바라볼 수도 없다. 멀찍이 떨어져야만 하고 부고가 와도 조문할 수 없다. 어둡고 무거운 이 시절은 언제까질까?따뜻한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는 오늘. 모두가 아픈 오늘. 병실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거짓말처럼 끝날 일이라 믿으며, 그렇게 희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하자. 죽음이 삶이 된 이 시간에도 돌아온 계절은 꽃피고 물이 흐른다. 예전처럼 마주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손잡고 걸으며 따뜻한 만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코로나19로 초·중·고교의 개학이 연기됐고, 외출·산책·여행·공연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정지되고 사라졌다.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창살 없는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점령되어 한계에 다다른다.역설적이지만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코로나19로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서 지구가 깨끗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중세에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할 때는 격리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에 있는 별장에 10여 명이 모였다. 2주간 머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썰을 풀었다. 그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전염병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나눈 대화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위기를 기회로 삼아 종교인들은 이기적 집회를 보류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확산 방역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국민들의 일상을 이젠 희망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말했던 유마 거사의 대승 정신은 현재 상황에서 종교가 나아갈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음에 치유가 필요하다. 모두의 안부를 묻는다. 다들 무사하기를….

2020-04-08 09:50:39

봄철이면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비료를 뿌리는데 그 중 피마자(아주까리) 유박비료를 동물이 먹고 리신(RISIN) 중독증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들이 있어 보호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픽사베이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봄철 애견산책 주의, 피마자 유박비료

태양이(진돗개·4살)가 "구토와 설사를 하며 힘이없다"며 보호자와 함께 내원했다. 보호자는 산책을 다녀온 후부터 식욕부진과 구토 설사 증상이 나타났다고 하셨고 오늘부터는 피설사를 본다고 말했다.평상시 매우 건강한 중형견이 급속히 기력이 떨어지고 구토와 혈변이 나타난다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예측할 수 있다. 분변검사, X-ray, 혈액검사가 이루어졌고 전염성질환과 이물섭식에 대한 감별 진단이 이뤄졌다. 태양이는 급성 중독에 의한 위장출혈과 패혈증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태양이의 심각한 상태를 설명드리자 보호자는 산책로 주변에 텃밭이 있었으며, 아마도 태양이가 텃밭에 들어가 뭔가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봄철이면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비료를 뿌리는데 그 중 피마자(아주까리)가 함유된 유박비료를 개가 먹으면 급성 리신(RISIN) 중독증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안타깝게도 태양이도 리신 중독증으로 확진되었다. 리신은 맹독성으로 체내에 흡수되면 혈구를 응집시키며 각 장기 세포를 파괴하여 장기 부전증으로 대부분 사망하게 된다. 초기에는 구토와 설사, 기력저하가 나타나고 증상이 심해지면서 장점막이 탈락되어 혈양성 설사 증상이 나타난 것 이었다.리신 중독은 해독제가 없다. 태양이는 곧바로 입원하여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을 교정하고 간독성을 고려한 적극적인 영양수액치료가 집중되었다. 다행히 4일 후부터 기력을 찾기 시작하며 부드러운 유동식을 먹기시작하였고 활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간독성에 대한 휴유증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의하여 검진을 받아야만 한다.봄철이면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농부들이 유기농 비료를 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비료 중에서 개와 고양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독성 유박비료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유박(Oil cake)이란 기름을 추출하기 위하여 식물의 씨앗(깨, 해바라기, 아마인, 야자 등)을 압착 가공처리 후 남은 부산물(깻묵)을 말한다. 유박은 단백질과 무기염류가 풍부해서 가축사료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유박을 이용한 비료를 유박비료라 부르며 식물의 성장에 도움되는 양질의 유기농비료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피마자(아주까리)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피마자 유박은 동물과 사람에게 매우 위험한 리신(RISIN)이라는 독성물질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유박비료의 원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성있는 피마자 유박이 유박비료의 재료로 사용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식물에는 해가 없으므로 농사 목적의 비료 첨가제로 사용은 허용하고 있는 현행 제도도 피마자 유박비료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다.유박이 발효되면 고소한 냄새가 나며, 알갱이 형태가 사료와 유사하여 호기심 많은 개와 고양이가 곧잘 먹게된다. 불행하게도 피마자 유박이 함유된 유박비료를 먹은 개와 고양이는 설사, 구토, 혈변, 장기 부전증으로 대부분 사망한다. 발이나 털에 묻는 리신 성분을 혀로 핥더라도 중독증이 발생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야생동물에게 치명적이며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리신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6천배이며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는 생화학테러물질 B군으로 분류하고 있다.봄철 잔디밭, 화단, 텃밭 주변으로 산책하는 반려견은 보호자가 목줄을 잛게 잡고 예상치 못한 이물질을 먹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또 보호자는 산책하는 길 주변에 사료 알갱이처럼 흩트려진 알갱이가 발견된다면 비료임을 인지하시고 개와 고양이가 접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봄철 개와 고양이가 바깥을 돌아다닌 후 갑자기 기력이 저하되고, 구토, 설사 증상이 발현된다면 피마자 유박비료를 먹었을 가능성을 의심해야 하며 지체없이 동물병원을 방문해야 한다.애견까페, 훈련소, 개인 정원 관리시에도 피마자 유박이 함유된 비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당부드린다. 또 정부는 피마자 유박을 이용한 비료의 제조를 금지시켜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2020-04-07 18:00:00

장현우(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경제칼럼] 현실을 직시하고 희망을 바라보자

코로나19 이후 대변혁의 시대 도래비대면·비접촉·온라인 확산 급물살정보 활용 대응이 국가 경쟁력 기준새로운 세계 질서 맞을 준비도 해야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로 심한 독감을 앓고 있다. 세계를 장악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중세 작품에서나 보았던 페스트, 천연두 대유행이 문학과 기억 속에서 현실의 세계로 소환되고 있다.항공기는 하늘이 아닌 공항에 발이 묶여 있고 바다를 누비던 선박들도 항구에 매여 있다. 중남미 페루는 단속의 편리함에 '남녀 외출 2부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참 이게 무슨 일인가.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었던 마스크가 전략 물자로 평가돼 공항과 항구에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으로 결혼식을 중계하고 부모와 하객들이 인터넷으로 축하했다고 하니 필자 개인으로서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모습들이다.인류의 대격변기에 사람들의 삶과 산업을 변화시킨 것은 인간의 의지 이전에 전염병의 대유행이었다. 14세기 흑사병(페스트)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돼 기존 사회질서인 봉건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질서의 출발이 요구돼 르네상스의 시작점이 됐다.대변혁의 시기에 우리는 미래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 방역과 위생으로 악수를 하지 않는 행동이 반복돼 습관이 되고, 조만간 비접촉 문화가 대세가 될 것이다. 이에 기초한 우리 생활과 산업구조 등 경제, 문화의 대격변이 있을 것이다.우리는 이제 '비대면' '비접촉' '온라인'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해당 부분은 비약적인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어렸을 때 국가적 재난 상황이 오면 적십자가 재난 현장에서 물품을 트럭에서 나눠 주는 뉴스를 자주 봤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재난 물품을 온라인과 택배를 통해 나눠 주고 적십자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혁명이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젊은 층에서 장년층 등으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 SNS 소통 등 어렵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면 문화 현상이 될 것이다. 온라인 접근과 반복 활용을 통해 진입 장벽이 무너지면 이에 기초한 경제 상황의 급격한 변화와 확산이 올 것이다.온라인 교육은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됐다. 원격 의료도 도입에 탄력을 받을 것이고 관련 IT 산업이 성장할 것이다. 가정의 사무실화도 급격하게 진행될 것이다. 집마다 온라인 활용 공간이 개선돼 만들어질 것이고, 앞으로 공급되는 주거와 사무실 공간은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공간과 연계성 편리에 맞추어 설계될 것이다.무엇보다 개인과 관련한 정보와 데이터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고 있다. 우리는 현재 개인의 이동 동선과 건강 정보를 매일 문자 메시지를 통해 받아 보고 있다. 인터넷을 통하면 보다 구체적인 개인 정보의 확인도 가능하다. 가끔 문자를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개인 정보가 모여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중요한 공적 자원이 되고 있으며, 마스크처럼 새로운 전략 자원이 될 것이다. 관련 개인 정보의 수집과 활용 및 신속한 대응이 새로운 국가 경쟁력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사생활 침해 논란도 있으나 산업 현장에서의 각종 빅데이터 활용에 있어서의 제한과 접근이 해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또한 새로운 세계 질서에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코로나 대응에서 리더로서의 역할과 방향성 제시에 실패했다. 대응에 있어서 방심했고, 상호 협력하지 못했고, 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오만하기까지 했다. 향후 방역을 이유로 한 개인이나 국가 간 자유를 제한하는 세계 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계획하고 먼저 움직이는 자가 위기를 극복하고 더 자유로운 높은 곳에 서 있을 것이다.우리는 국경을 넘기 힘들고, 학교에 가지 못하며, 모임을 제한받고, 격리돼 있으나 코로나는 국경도 여권도 비자도 필요 없다. 우리의 직업, 명성, 성별 관계없이 코로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나아갈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는 '펄벅' 여사의 말이 떠오른다.

2020-04-07 15:01:59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매일춘추] 1920년대 소년운동과 대구화단

지금 우리는 전환의 시점에 놓여 있다. 사회의 거대한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를 전환시키고, 그러한 변화를 예술가들은 앞서서 반영해왔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한 시대의 사건이지만, 이것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오늘 여기의 모습을 만들었기에 그러한 변화의 시점을 조금씩 이야기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 그래서 대구의 사회와 예술의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고, 어떻게 방향을 잡아 갔는지를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기준으로 몇 회에 걸쳐 조금씩 서술해 보고자 한다.먼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로 거슬러 가보자. 1927년에서 1929년 사이 대구에는 10대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과회'(영과회 또는 공과회로 불리기도 했다.)라는 예술 단체가 있었다. 1920년대에 이러한 조직이 나타난 배경에는 1919년 3·1운동으로 자극된 사회운동, 그중 전국 각지에서 불붙은 소년운동과 관계가 있다.3․1운동 이후 민족운동가들은 점진적으로 실력을 양성하고, 독립의 힘을 모으고자 문화운동을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1920년대 소년운동은 전국적으로 붐을 이루었는데, 1926년에는 전국에 126개의 소년단체가 존재할 정도였다 한다. 특히 이때의 소년운동은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었고, 소년을 위한 운동임과 동시에 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소년운동이었다.지난해 대구예술발전소에서 크게 조명했던 이상춘(1910-1937)은 영과회를 조직하고 주도한 인물로 1920년대 중반 대구노동소년회와 1927년 대구소년동맹 등에서도 활동하였다. 영과회의 조직은 소년들의 예술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 문화운동이었다. 영과회에서는 소년들의 시와 동요, 그림을 공개모집하여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10대의 소년들 가운데는 미술에서는 이인성을 비롯해, 배명학, 이갑기, 김성암 등이 있었고, 동요와 문학에서는 신고송, 윤복진 등이 다음 세대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그리고 영과회가 있게 된 또 하나 중요한 배경에는 이들의 활동을 후원한 선배 성인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1927년 영과회에 찬조출품 형식으로 동참하였다. 미술에는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김용준, 문학에 이상화 등과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1920년대 초 이미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대구의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알렸고, 이제 다음 세대를 이끌고 있었다.선배의 후원과 후진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1920년대 대구의 근대 화단은 조금씩 모습을 갖추어 갔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도 없었고, 일본인들에 의해 이식된 화풍이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처럼 예술에서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하려 하였다. 거기에 당시의 신진들이 새로운 문화운동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2020-04-07 14:17:06

소크라테스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소크라테스, 플라톤과 4·15 총선

코로나와 중세 페스트, 피렌체대구경북을 비롯한 대한민국이 전례 없는 전염병 국면에 악전고투 중이다. 한국만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적으로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미국이 25만 명을 넘어 가장 많지만, 사망자는 이탈리아가 1만4천 명을 넘어 제일 심하다. 지금부터 700여 년 전에도 그랬다. 흑사병 페스트는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흑해 연안 우크라이나에 세워 유럽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킵차크한국을 거쳐 서방 세계로 전파됐다. 1347년 이탈리아를 초토화시킨 뒤, 유럽과 지중해 전역을 휩쓸며 유럽 인구의 5분의 1을 집어삼켰다. 코로나 국면에서 최상의 전파 방지책은 자가 격리지만, 당시는 한적한 시골로의 이주였다. 그때 나온 근대문학의 효시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지금도 피해가 큰 르네상스의 고장 피렌체 교외를 배경으로 한다.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소크라테스피렌체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30분여 남쪽에 로마가 나온다. 1천 년 로마제국의 심장부이자 가톨릭의 구심점 바티칸이 자리한다. 시가지 한복판에 카피톨리니 언덕이 솟았다.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한 B.C 509년 최고신 유피테르(주피터, 그리스의 제우스)에게 바친 신전, '카피톨리움'이 들어섰던 자리다. 공화정의 중심부 포럼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피톨리니 박물관이 탐방객을 맞는다. 교황 식스투스 4세가 1471년 그리스로마 조각을 기증한 이래 1734년 교황 클레멘트 12세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서유럽 유수한 박물관 가운데, 그리스로마를 빛낸 인물의 두상을 가장 많이 전시한다. 역사책에서 이름으로 되뇌던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 브루투스, 그리스 학문의 출발인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 그리스 최초의 문학 작품 「일리아드」의 저자 호메로스,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B.C 5세기 3대 비극 작가…, 학문과 민주주의의 상징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두상도 감흥을 안긴다.아테네의 소크라테스, '지행합일'발길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살던 아테네로 옮겨 보자. 로마 카피톨리움의 모델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아크로'는 '높다, 크다'이고 '폴리스'는 '도시'다. 그러니, 아크로폴리스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 신의 영역으로 신전을 짓는다. 지금 보는 파르테논 신전은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불탄 것을 B.C 438년 재건한 것이니, B.C 399년 사형당한 소크라테스도 매일 바라봤을 터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서쪽 아래가 장도 서고, 정치 집회가 열리던 아고라다. 소크라테스가시민과 제자들을 만나며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길'인지 문답을 통해 답을 찾던 곳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영원한 스승으로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요즘 시국에 제일 먼저 떠오른다.플라톤 "정치인은 극도로 검소해야"소크라테스는 그럴듯한 말로 민중을 현혹하는 선동가(데마고그) 대신 능력을 보고 공직자를 뽑으라고 충고했다. 독재를 꿈꾸는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미워했고, 결국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민회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도록 부추겼다. 제자들은 탈옥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소크라테스는 '탈옥'이라는 잘못된 일을 할 수 없다며 독배를 마셨다. 잘못된 일을 직접 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간접적으로도 간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말뿐 아니라 실천에 옮겼다. 지행합일의 숭고한 표상으로 인류사에 영원히 남은 거다. 제자 플라톤은 선동 정치가들에게 속은 시민들의 그릇된 결정으로 스승이 사형당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경계하는 사상은 여기서 나온다. 정치란 이성을 갖추고, 극도로 검소하게 사는 철학 현인이 맡아야 한다는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국가론」에서 이상으로 내세운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정의에 대하여'라고도 부른다.플라톤의 '중우정치' 벗어날 총선4·15 총선이 눈앞이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 웅변했던 지행합일의 후보, 플라톤이 강조한 극도로 검소하며 정의를 세울 후보는 누구인가? 거꾸로 생각하면 쉽다. 스스로 말한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정당이 어디인지, 입으로만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뒤로 반칙과 돈벌이에 혈안이 된 세력이 어디인지. 지난 8월 조국 법무부장관 지명 파동 이후 다 드러났으니 말이다. 2천400년 전 플라톤이 경계했던 중우정치를 벗어날 총선 뒤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2020-04-06 18:00:00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31일자

[박창원의 기록여행] 수돗물로 세수하게 해달라

'목하 개최 중인 미소공동위원회와 정부수립 문제가 급 전개하고 있는 차제 각 지방의 실정을 조사하여 건국사업에 참고자료를 만들고자~사회실정조사단을 조직하는 동시에 단원은 각 단체의 권위자 1명씩을 선출하여 구성하였다.~본대는 호남선 경부선 방면의 2대로 하여 오는 31일 오후 출발하기로 하였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3월 31일 자)해방은 되었지만 사회‧경제적 상황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한반도의 신탁통치와 임시민주정부 수립 논의를 시작한 미소공동위원회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자 사회단체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미군정 등에 전달할 필요성이 생겼다. 사회실정조사단을 만들어 여론 수집에 들어갔다. 이처럼 당시에는 당국이나 신문사조차 여론조사반을 결성해 일반 지방민들의 여론 동향을 알아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지금의 여론조사와는 비교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민심을 듣는 도구는 바로 발품이었다. 지금의 전화기를 발품이 대신했다. 그렇다고 매번 사람을 일일이 만나서 물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 투표함처럼 생긴 여론함으로 주민 여론을 듣는 것이었다. 해방 이태 뒤인 8월 초, 사람이 많이 오가는 도청과 역전 등 대구시내 10군데에 여론함이 설치됐다. 그 여론함에 의견을 적어 넣도록 했다.여론함에는 주로 어떤 내용들이 들어왔을까. 정치 관련 의견이 80건이 넘을 정도로 가장 많았다. 정당 관련 의견이나 정치인 체포령 철회 같은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정치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이념적인 대결도 정치 관심에 한몫했다. 정치 관련 의견 중에는 국호를 인민공화국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는 앞서 실시했던 조선신문기자회의 여론조사에서도 적지 않게 표출됐던 내용이었다.이와 함께 주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쌀을 날짜에 맞춰 제때 배급해달라는 요구였다. 굶주림이 낯설지 않았던 식량난은 시간이 흘러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악질 경관을 제재해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악명 높았던 일제 경찰의 습성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수돗물에 대한 불만이 눈에 띄었다. 수돗물로 세수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두 차례씩 찔끔 나오는 수돗물이 시간조차 들쭉날쭉하다 보니 세수를 못하고 출근하거나 퇴근 후에도 씻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수돗물 혜택을 받는 사람도 적었지만 불만은 높았다.사회실정조사단의 발품 조사나 여론함의 의견은 그 시점의 민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해방 직후 '수돗물로 세수를 하게 해달라'나 '쌀을 제때 배급해 달라'는 그때로서는 다급한 사안이었다. 그런 여론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차츰 사그라졌다. 여론을 '순간의 스냅사진'으로 빗대는 이유다. 이번 4‧15 총선의 스냅사진도 그렇다. "누가 1위인가"는 눈에 띄어도 "꼭 필요한 사람은 누구냐"는 숨은그림찾기가 되었다.

2020-04-06 18:00:00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종(왼쪽부터)

[세상속의 종소리] 세 교황이 재위했던 1978년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코로나는 망자의 손을 잡고 뺨을 만지는 전통적인 마지막 인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그냥 참는 중일 것이다, 봄비가 내리던 3월 27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홀로 서서 코로나로 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달라는 특별 기도를 올렸다. "짙은 어둠이 광장과 거리와 도시를 뒤덮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배를 탄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이다. 모두 같이 노를 저어가며 격려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모두 하나가 되자"며 연대를 호소했다.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는 영적 리더의 권위를 보여 준 것이다.교황은 13억 신도의 가톨릭교회 수장이자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초기 교황들은 로마의 주교로서 기독교의 전파와 교리의 판정 및 해결을 맡았고 중세 이후에는 유럽 역사의 중심이자 종교적 영주였다. 교황을 제외하고는 유럽 역사를 논의조차 할 수 없다. 강해진 세속 권력에 의해 흔들린 적은 있었으나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지시할 수 있을 정도로 왕과 제후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현대에도 가톨릭 신앙과 인권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다,교황이 서거하면 15일 내에 콘클라베의 비밀투표로 새 교황을 선출한다. 남자 신도는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오직 이탈리아인 추기경만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20세기 들어서야 변화되었다. 1978년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었고 이어 독일의 베네딕토 16세와 현재 아르헨티나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이어졌다.사람들은 교황으로 선출될 때 모두 큰 교구의 주교였을 거라 생각하나, 과거에는 권력자의 아들과 성직자의 친척도 있었다. 로마 백작의 아들 요한 12세는 18세(또는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였고, 베네딕토 9세는 20세에 처음 선출되어 3차례나 중임하였다. 이들은 세속적인 통치자와 교회 지도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중세 이후 교황의 재임기간은 평균 10년이었다. 32년을 재임한 19세기의 비오 9세가 최장이었고,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이다. 대부분 고령이었고 격무에 시달렸던 교황이 일찍 서거한 경우도 많다. 15일을 재임한 90세의 보나파시우스 6세를 비롯하여 1개월을 넘기지 못한 분이 9명이나 된다. 선출된 새 교황이 또 서거하여 같은 해에 세 분의 교황이 있었던 해도 12번이나 된다. 1978년 8월 바오로 6세가 서거하고 10월에 65세의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다. 신망이 높던 그는 선출 직후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라고 했다. 교황직의 무거움과 부담감을 말한 것이다. 그 요한 바오로 1세는 취임 33일 만에 서거하였고 그해 말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해는 373년 만에 세 분의 교황이 재임했던 특별한 해가 되었다.1978년 독일에서 만든 '세 교황의 해, 1978년'이란 주석종이 있다. 이 종을 제작한 장인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한 해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세 명이나 모셨다는 기쁨을 남긴 것일까? 역병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어른조차 없는 이 봄에 세 분의 교황께 우리의 갈 길을 여쭈어본다.

2020-04-06 18:00:0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계의 창] 동해안 관광명소를 개발 국제화시키자 -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지금은 꽉 막혔지만, 다시 관광 수요가 살아날 것이다. 지금은 차분하게 준비할 때이다. 관광산업도 국내 수요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야 한다. 경북 동해안은 자연경관이 무척 아름다고 먹거리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지역이 여럿 있어 국제 관광벨트로 성장할 수 있다.예를 들면 영덕군 영해에 있는 관어대 주변도 국제적인 관광 후보지로 손색이 없다. 참 기이하게 생긴 산(180m)이다. 동해 바다로 향하던 산이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가서 동해 바다 앞에서 절정을 이룬 다음 절벽처럼 뚝 떨어지는 모습이다. 관어대에 올라서면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보인다. 왼쪽 아래로는 송천강과 넓은 영해평야가 보인다. 외가인 괴시마을에서 자라면서 관어대에 자주 올라가서 놀았다는 목은 이색 선생은 관어대소부라는 명문장을 남겼다. 고기가 유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관어(觀魚)대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목은 선생이다. 고려 말의 원천석 선생, 점필재 김종직 선생 등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관어대 관련 글을 남겼다. 관어대에서 바닷길을 따라 차로 10분 거리에 대게의 고장 축산항이 있다. 한때 섬이었던 죽도산이 동해 바다를 막아주면서 천혜의 미항이 만들어졌다. 고려 말인 1380년대 성을 쌓고 수군 만호를 두어 왜구의 침입을 막았다. 그 축산성터는 지금도 남아있다. 적의 침입을 알렸다는 봉화대도 있다.1830년대 축산항에 살던 선비가 이장우 영덕현감에게서 받은 편지글이 최근 번역되었다. 그 선비가 보낸 명란이 너무 맛있다는 내용이다. 김에 대한 기록도 나온다. 권근 선생의 양천록에 나오는 대게와 함께 축산항은 명란과 김의 고장임이 고증된다. 임진왜란 때 경주부윤으로 승전보를 올린 박의장의 종택이 있는 무안 박씨네 도곡도 축산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이다. 관어대의 바로 이웃마을로서 양반가의 가옥이 즐비한 괴시마을도 방문할 가치가 있다. 이렇게 괴시마을-관어대-축산항-도곡을 잇는 4군데는 자연환경, 먹거리 및 역사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바다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명하여 만들어졌다는 신라시대 문무왕의 수중왕릉인 대왕암을 중심으로 한 경주의 감포 해안가도 좋은 후보지이다. 자신이 용이 되어 왜구를 물리치겠다고 했다니 이렇게 훌륭한 왕이 또 있을까? 신라는 선부(船府)를 둘 정도로 바다를 중요시했다. 현재 해양수산부의 전신인데, 이렇게 오래전인 7세기부터 선박과 바다를 위한 국가기관을 두었다니, 세계 최초가 아닌가 싶다. 얼마나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것인가? 이와 관련된 감은사지탑도 있다. 올해 개항 100주년을 맞는 인근 감포항의 신선한 수산물과 연결시키면 훌륭한 국제관광자원이 될 것이다.이렇게 동해안의 자연풍경, 먹거리 그리고 역사성이라는 삼박자를 갖춘 지역을 발굴하여 국제관광지로 개발해보자. 동해안의 관광산업도 이제는 국제화되어야 한다. 관광안내표지 등이 외국인의 방문에 적합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된 표지, 안내서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KTX 노선이 포항이나 경주까지 이어지므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편리하게 맞이할 수 있다. 역에서부터 해안의 관광지까지는 관광버스를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관광가이드가 버스에 승차하여 영어 등 외국어로 직접 안내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1박 이상 관광을 하는 외국인을 위한 숙소나 편의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민박을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있을 것이다. 민박을 제공할 현지인들에게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외국어 교육을 시켜서 외국 관광객용 민박집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아침에 동해안 어촌에서 잡아오는 생선과 그 출하 과정에 대하여 설명할 가이드도 필요하다. 외국인 단체관광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마을들과 자매결연을 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동해안 자연의 아름다움과 먹거리를 역사와 더불어 외국에 체계적으로 알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동해안 관광은 기존 내륙 중심의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차별화된 경북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 내륙에 위치한 이들과 달리 바다라는 자연환경과 수산물 먹거리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가 환동해의 중심지인 포항에 경북 동부청사를 두고 해양수산, 항만, 독도, 해양관광레저 등을 동해 바다 경영에 열심이다. 경상북도는 자연환경, 수산물, 역사성 등 삼박자를 갖춘 동해안 명소들을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작업에 가일층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2020-04-06 14:58:45

김종수 국장

[기고]코로나19에서 식량안보를 본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마비시키고 있다. 발생국이 178개 국가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 수는 6만여 명을 넘어섰고, 기세 또한 가파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경제, 종교,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먹거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력한 이동 제한과 봉쇄 조치에 따른 불안감으로 일부 국가에서 식료품을 위시한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자국 내 식량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이미 쌀 수출 3위국인 베트남 정부는 3월 24일부터 수출 중단을 결정했고, 러시아 또한 밀, 콩을 비롯한 모든 곡물에 대해 수출을 중단하고 있는 등 여러 국가들에서 자국산 농산물에 대한 자물쇠를 준비 중이다.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수급과 공급망의 불안정 확산으로 자국 내 식량 생산과 공급 부족 현상이 우려됨에 따라 주요 농산물에 대한 대외 유출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쌀, 밀을 비롯해 축산물 등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의 생산 차질과 공급 제한 조치에 따라 국제 식량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코로나19 사태의 이면에는 세계적 먹거리 공급 쇼크 사태라는 강력한 폭탄이 존재하고 있다. 식량전쟁, 식량안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각인할 때다.코로나19 상황이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유연하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농업·농촌이 국가 수호의 안전핀으로 우리의 먹거리를 굳건히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戰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식량 원조를 받았고, 1970, 8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과 1997년 IMF 사태 등 대내외적으로 수없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굳건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오롯이 농업·농촌이다. 농도(農道) 경북이 그 중심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자국민을 보호하고, 자국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는 식량전쟁이라는 냉혹한 국제 생태계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3% 정도에 불과하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또한 50%에 미치지 못한다. 밀, 콩, 옥수수를 비롯해 주요 곡물의 7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자급 가능한 쌀과 감자, 고구마 등을 제외하면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식량자급률은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따른 대체작물 재배 및 품종 개발과 안정적 농업용수 공급 시스템 확충, 외적 요인에 상대적으로 강한 스마트 팜 확대, 노동력 절감을 위한 밭작물 기계화 촉진은 물론 식용 곤충산업 육성, 축산물 대체 배양육 개발 등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미래 후손들에게 물려줄 먹거리 창고를 꾸준히 키워나가야 한다.아울러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곤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국가 먹거리 공급망을 더욱 공고히 하고, 로컬푸드 시스템에 의한 '국내산 농산물 입맛 들이기'에도 한층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립운동가이자, 농민운동가인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가 농민독본(農民讀本)에 남긴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 나라로 변하여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빌려 먹거리를 지키는 농업인이 있기에 코로나19의 빠른 종식과 대한민국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2020-04-06 13:52:10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매일춘추] 문화예술 아카이브 이야기

흔히 '아카이브 구축'의 의미를 기록을 축척한다로 쓰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코로나19 전세계 실시간 정보도 질병 바이러스계의 아카이브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아카이브(arcchive)란 '기록보관소'나 '기록을 보관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로 쓰이며, 주로 컴퓨터 분야나 전문분야에서 사용되었다.알게 모르게 '포노 사피엔스' 시대를 맞아 스마트폰 필수 시대가 되면서 아카이브는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익숙하게 녹아든 상태이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아카이브 구축을 통하여 재조명하고 활용함으로써 전방위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적극 아카이브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가에서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각 지역의 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진행·시도하고 있다.대구는 예향, 문화예술 도시로 1910년대부터 걸출한 문화예술인들을 배출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빠른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문화예술의 아카이브는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못하였다. 그로 인해 소실되고 사장된 문화예술의 자료들이 사라져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대구는 대한민국의 근대문화예술의 발원지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는 지역으로 1900년대부터 1960년대 근대문화예술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곳이다.2019년 대구시 및 '대구문화'를 중심으로 '대구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발표하였고, 각 기관(단체)별 산재된 문화예술의 아카이브를 통합하여 대구문화예술의 전반적인 아카이브 컨트롤 타워로서 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하였다. 8년간 아카이브 구축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며칠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대구문화예술회관 디지털 아카이브(온라인 서재)'를 일반인에 공개하였다. 우선적으로 1964년 이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공연 전시의 역사를 디지털 아카이빙화 하였다. 두 곳의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지역 문화예술자료들의 소실과 훼손을 방지하고, 디지털 변환을 통해 영구적 보존의 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대구문화의 '대구문화예술 디지털 아카이브'와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온라인 서재'는 앞으로 대구 문화예술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한국전쟁 이후의 자료들만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전쟁 이전,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문화예술자료들을 발굴하고 수집하여 영구적인 디지털 아카이빙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또한 지역의 원로 예술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근대의 문화예술 자료를 수집하고, 개인이 지닌 문화예술자료의 보존을 위해 아카이브 커리큘럼을 개설하는 방안도 있었으면 한다.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든 것처럼, 일상 속에 아카이브가 스며들어 사장 되어 있는 문화예술 자산을 발굴하고 재조명한다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2020-04-06 11:50:16

송필용 작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문제는 매력이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산다. 책을 써도 그것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글을 발표해도 그것이 실린 매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결국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삶이다. 목적은 단 하나다. 나의 완성과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나라)의 독립과 자존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완성'이라고 해 놓으면 그 단계가 있기는 한지, 완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느니, 꿈도 야무지다느니, 완성을 꿈꾸지 않아야 완성된다느니, 잘난 체 한다느니 하고 말도 많을 것이다.그냥 죽기 전에, 산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이었는지 정도의 자각만 할 수 있어도 그것을 나는 완성이라고 해버릴 터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내 깜냥에 열반이니 초월이니 하는 정도의 단어가 어찌 가당치나 하겠는가. 하지만 보살행이니 지적인 삶이니 실천가적 삶이니 깨달음이니 하는 단어들을 남몰래 말해보기는 한다. 가끔은 미학적 삶, 대장부의 삶을 떠올려보기도 하다가, 허파에 바람이 단단히 들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떠올라 바로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린다.그 정도의 허풍과 이 정도의 소심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방황한다. 방황하는 나를 보며 또 방황한다.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는 정도의 말을 짓고 그대로 한 번 해 보려도 하고, "지식인은 정답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곳에 처하는 사람이다"는 말도 지어서 그대로 한 번 해보려고도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한다.말하는 자가 감당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짐은 뭐니 뭐니 해도 그 말이 옳은지의 여부다.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옳은 말로 확신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 전문 사기꾼이라도 스스로 옳은 말을 하는 자로 확신하지 않으면 사기 행각은 성공하기 힘들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각자에게 다 옳은 말이다. 틀린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하다. 틀린 말은 지고, 옳은 말은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동반하기 때문에 옳은 말에게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들끼리 벌이는 것이 거의 다다. 심지어 예수님과 율법주의자들의 다툼도 이치는 같다. 예수님은 자신이 옳다 하고,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옳다 했다. 우파는 자신이 옳다 하고, 좌파는 또 자신이 옳다 한다. 사회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하고, 자본주의자는 끝까지 자신이 옳다 한다. 이러하다면, 세상의 거의 모든 다툼은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이다.그래서 세상은 해결되는 일이 없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옳은 말과 그른 말 사이의 다툼은 간단한 일이지만,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해결난망일 수밖에.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은 논쟁과 토론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우리는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여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관념에서나 가능하지 실제 세계에서는 없을 일이다. 양보하는 일이 실지로 일어났다면, 이는 필시 말로 한 대화의 힘이 아니라 말을 넘어선 어떤 것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우파나 좌파도 국익만을 생각하고 국민만을 보고 가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포용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이 정치 현실에는 없다. 나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아름다운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가는가? 그것은 옳고 그름 너머의 다른 어떤 힘을 가진 자에게로 간다. 그래서 주먹이 있고, 정치가 있고, 전쟁이 있다. 주먹도 정치도 전쟁도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을 넘어가는 특별한 방식이다. 말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예수의 말이 논리와 정당성으로 힘을 얻었을까? 논리라는 것은 대부분 힘을 얻은 후에 그 힘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예수는 무엇으로 힘을 얻었을까? 말과 전혀 다른 어떤 것인데,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며,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은 자들이 가진 정당성을 자신에게로 옮겨놓지 못했을 것이다.일본에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막부는 낡았고, 미국을 필두로 한 외세의 침략은 거칠었다. 막부를 타도하고 왕을 모시는 새로운 체제라야 일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체제개혁을 시도한다. 쇼카손주쿠라는 조그만 학교에서 90여명의 인재를 배양하여 메이지 유신의 실행자들로 키워냈다. 새로운 독립국가로서의 일본을 완성하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반 막부 운동을 하다가 막부 세력에 의해 처형이 되지 않았다면, 요시다 쇼인의 말이 제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요시다 쇼인의 말은 말 이상의 어떤 것을 얻어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요시다 쇼인에게서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이 바로 처형당한 사건이다. 요시다 쇼인은 스스로 처형당함으로서 처형한 자들이 가지고 있던 정당성을 자신에게로 뺏어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좌파가 주도권을 가졌다. 해방 후부터 권력을 잡으려는 집요한 노력이 완성되었다. 좌파가 반공 이데올로기로 가해졌던 극심한 탄압을 겪으면서도 결국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좌파의 말은 옳고 우파의 말은 틀렸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좌파는 좌파대로 옳고, 우파는 우파대로 옳다. 나는 좌파가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옳다고 하면서 버티는 쓰잘데기 없는 긴장을 돌파했다고 본다.말 이상의 어떤 것이 예수에게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이고, 요시다 쇼인에게서는 막부로부터 당한 처형이다. 좌파가 가진 말 이상의 어떤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이나 요시다 쇼인이 처형당한 일에서 조직되는 것과 비슷한 어떤 흡인력인데, 그것을 매력이라 하자. 우파에게는 매력이 없다. 좌파는 이런 매력을 가졌기 때문에 힘의 중심축이 좌파 쪽으로 이동하였다.삶은 정치 영역에서 종합적으로 노출된다. 정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란 것이 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의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 말은 말 아닌 것을 영양제로 해서 산다. 말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말을 압도해야만 매력이 만들어진다.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은 그것을 티메(TIME)라고 했다.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소명을 장기간 수행하여 탁월함에 이르면 공동체는 그에게 존경이라는 선물을 준다. 지도자가 발휘하는 힘은 공동체가 주는 이 존경에 의지한다. 말이 아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발휘하는 흡인력을 매력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이 티메에 관심을 가지면 이로울 것이다. 지도자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져야 한다.좌파들은 자신들에게 스스로 부여한 소명을 장기간 수행했다. 반독재 투쟁을 오래 했으며, 통일 운동을 오래 했으며, 노동운동을 오래 했으며, 환경운동을 오래 했으며, 인권운동을 오래 했으며, 빈민운동을 오래 했으며, 참교육 운동을 오래 했으며, 민주화 투쟁을 오래 했다. 그들이 오래 붙들고 늘어졌던 '반독재', '통일', '노동', '환경', '인권', '빈민', '참교육', '민주화' 등등의 주제가 말은 좋지만 실재로는 엉터리라느니, 결국은 반정부하다가 반국가로 빠져버렸다느니, 이제는 완장으로 전락했다느니, '내로남불'의 전형이라느니 하는 비판들은 정치 영역에서 설득력의 확보라는 면에서 말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그들은 어쨌든 그 주제를 가지고 청춘부터 말년까지 불사른 투신의 역사를 가졌다. 어떤 문제를 붙잡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고, 그 과업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보았다. 예수의 십자가나 요시다쇼인의 처형과 유사한 것을 자기 자신의 운명으로 삼아본 경험이 있다. 게다가 없는 돈에서라도 이런 과업을 위해 스스로 호주머니를 턴 사람들이다. 후속 세대를 기르기 위해 야학을 했으며, 야학을 위해 자신의 부귀와 출세를 포기해봤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소명에 자신을 전부 바치고 게다가 목숨까지 걸어본 인간에게 어찌 매력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 과정에서 발각된 인격적 결함들이 가끔 폭로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세운 매력을 뿌리부터 흔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좌파는 말 이상의 어떤 것을 가졌다.우파는 이런 매력을 건축하는 데에 실패했다. 건국(새정부수립)과 산업화 과정에서 건축했던 매력은 이미 약발이 다했다. 우파가 권력을 뺏긴 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산업화 이후까지 지속될 매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력을 가지려면 우선 자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해야 한다. 우파는 보편적인 이념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다. 그래서 우파에게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필수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국방과 조세로 실현된다.우파는 반드시 군대를 가야하고, 세금을 잘 내야 한다. 국방과 조세가 어찌 우파만이 해야 할 일이겠는가. 좌파에게도 당연한 일인 것은 맞다. 우파에게는 이 두 가지를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감수능력이 좌파보다는 훨씬 더 강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정치적 근거로 삼아야 한다. 군대를 기피하고, 세금을 회피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우파에 많이 있다면 이는 '입우파'일 뿐이다. 군대를 기피하고, 세금을 회피한 사람들이 좌파에도 많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항변으로 자신들을 정당화 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더 문제일 뿐이다.국방과 조세 방면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우파 진영에 있다면, 이는 이런 사람들이 좌파 진영에 있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다. 좌파에 비해서 우파는 돈이 많다. 좌파들은 좌파 이념의 확장을 위해서 없는 돈에서라도 조금이나마 헐어 바치지만, 우파는 자신의 이념 확장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계급의식 자체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정치의식 또한 약하다. 당연히 우파 이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후속 인재 양성을 위하여 야학이라도 하는 좌파에 비해 우파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공적 헌신보다는 이기심과 탐욕으로 더 뭉쳐있다. 게다가 좌파가 옳지 않다는 것만을 계속 지적할 뿐이다. 좌파가 얼마나 나쁜지, 얼마나 국력을 약화시키는지에 대하여 말 만 하고, 말 이상의 어떤 것을 시도하지 않는 한 좌파를 이길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파는 매력을 갖기 어려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 지금 우파 진영에서 벌이고 있는 공천 파동이나 선거 전략이나 인재 등용을 보면 권력을 뺏기고 와신상담을 한 집단이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참 한가하다. 매력을 건축하려는 파괴적 혁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좌파를 비판하는 것 말고 자신에게만 있는 적극적인 무엇을 가졌는지를 알기 어려운 곳에는 사람의 시선은 고사하고 파리조차 모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좌파의 매력도 약발은 이미 다했다. 약발이 다한 매력을 살리려고 하니 억지스럽고 염치없는 행동이 난무하고 있다. 이제는 염치고 뭐고 없다. 거짓말도 대놓고 하고, 억지스럽고 앞뒤가 뒤집힌 논리를 구사하면서 부끄러움도 없다. 우리의 비극은 매력을 상실한 두 세력의 매력 없는 충돌에 하릴없이 운명을 맡겨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많은 강의와 교육 일선에서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말만으로 교육 효과를 얻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말 이상의 것이 요청된다. 그것은 인격적 감화력이나 정서적 친밀감으로도 나타난다. 사명감을 공유하는 연대의식도 좋은 장치다. 어떤 것도 고정된 마음이나 정해진 마음을 흔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을 넘어선 말 아닌 어떤 것으로만 가능하다. 우파 좌파 걱정할 여유가 없다. 우선 당장 내가 급하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의 처형장은 어디일까?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ifston@daum.net

2020-04-06 11:49:57

종이에 담채, 30.2×35.5㎝, 개인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유신(18세기 후반 활동), ‘가헌관매’

석당(石塘) 이유신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활동한 화가이다. 생애는 잘 알 수 없지만 돌을 사랑하는 벽이 있었다고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나온다. 어느 해 정초 자하(紫霞) 신위의 집에 세배 갔다가 책상 위의 괴석을 보자 이를 어루만지며 손에서 놓지 못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을 본 신위가 하인을 시켜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이유신은 거듭거듭 감사하며 직접 돌을 받쳐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그가 백수(白首) 노인이었을 때의 일이라고 하니 호의 돌 석(石)자 대로 장수한 듯하다.제일 앞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어 화면이 양분되는 구도가 되었는데 그 뒤로 규모 있게 쌓은 축대 위에 난간을 두른 초가지붕 사랑채와 여러 칸의 주택이 있고 서쪽으로 정원이 있다. 눈 쌓인 대숲과 커다란 괴석이 담 안으로 보이고, 사랑채 처마 아래에도 좌대에 올려 진 괴석 두 점이 보인다. 이유신은 '가헌관매(可軒觀梅)'로 제목을 써 넣었는데, 가헌이라는 이 집 모습을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등장인물은 모두 6명이다. 괴석과 함께 분재한 매화나무에 꽃이 피자 집 주인 가헌(可軒)이 함께 관매(觀梅) 하자고 친구들을 불렀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은 중국 옛 그림에 나오는 도인(道人)이나 고사(高士)의 차림새다. 매화가 피었다고 한겨울에 친구들을 부른 사람이나 그 꽃을 보겠다고 오밤중에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온 이들의 정서적 시공이 꼭 그랬을 것 같다. 이 6명 중 한 분이 썼을 화제는 이렇다. 회좌고등하(會坐孤燈下) 매화설리진(梅花雪裡眞)오제청시성(吾儕淸是性) 수죽여비린(瘦竹與比隣) 천원(泉源)외로운 등불아래 함께 모여 앉았는데 매화가 눈 속에 정말 피었네우리들은 맑음이 본래 성품이니 수척한 대나무와 이웃할 만하지 물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윤필(潤筆)로 형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수수한 멋이 있고 청색, 황색, 갈색 등을 연하게 사용해 밝고 투명한 색채감각이 신선하다. 간단하고 느슨한 붓질 임에도 인물 묘사가 자연스러운데다 방안의 책상과 술병, 쌓아 놓은 책 등 세부도 빠트리지 않아 보통 실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촛대 위에는 촛불이 켜져 있다. 지금으로 치면 동호회 모임 날 인증 샷이라고 할 이런 그림을 아회도(雅會圖), 아집도(雅集圖)라고 했다. 이유신은 이 모임의 춘하추동 사계절 아회도를 다 그렸는데 '가헌관매'는 겨울 치 그림이다.화제와 제목에 머리도장으로 찍은 한장(閑章)은 '추수일방(秋水一方)'과 '이청(怡淸)'이다. 이 그림의 주제이자, 주인공들이 이런 행위를 통해 주장하려는 삶의 지향은 인장의 뜻 그대로 '청(淸)', 곧 '맑음'이다. (* 인장 해석에 도움 주신 대구서학회 회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술사 연구자

2020-04-06 06:30:00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3일 대구 서구 상중이동 거리에 21대 국회의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이번 선거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까지 선거권이 부여됐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이른 아침에] 선거는 중간고사 시간이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기회사실상 선거로 평가 외에는 없어정책 기조 원하면 집권 세력 선택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 선택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학생이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성적에 대한 두려움이 큰 이유일 것이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생 된 입장에서도 시험이 썩 달가운 건 아니다.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서 열심히 가르친 결과가 이런 정도인지 나의 능력을 반성하게 된다. 보다 직접적 이유는 시험 문제에 있다. 객관식 문제는 출제가 번거롭지만 주관식 문제는 채점이 힘들다.모두가 반기지 않는 시험이어도 교육과정에서 시험을 통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교육학에서 평가는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교육과정과 평가의 관계에 관하여 랠프 타일러(Ralph W. Tyler)는 "의도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산출 간의 비교"라고 정의한다. 처음 설정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여 교육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평가이다. 최우수(A)부터 낙제(F)까지 과거의 성취를 평가하여 미래의 질적 향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험을 중간과 기말로 나누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선거 역시 시험과 유사하다. 선거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평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대표성의 부여, 평가와 선택, 정책 결정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평가와 선택은 특히 중요하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국민에게 다양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선택받는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이 제시한 목표와 성취 결과를 비교 평가하여야 한다. 평가를 통해 같은 선택을 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정권 담당자들이 흡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는지 검증하고 평가해야 한다. 잘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상을, 잘못했다면 기회를 박탈하는 벌을 과해야 한다.미국은 선거의 평가 기능이 비교적 확실하게 작동한다. 4년의 대통령 임기 2년 차에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일부에 대한 중간 선거가 치러진다. 자연스레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루어진다. 중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국정 운영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패배 시 국정 운영의 기조 변화가 뒤따른다. 우리는 총선의 중간 평가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총선을 통해 국정 운영 방향을 새롭게 점검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번 21대 총선은 중간 평가라는 총선의 성격에 적합한 선거이다. 2017년 5월 출범한 현 정부 임기 3년 차를 지난 마당이다. 지난 3년의 국정 운영 성과를 검증하고 평가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미래의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집권 세력이 향후 2년 동안 국정 운영 기조를 유지할지 변경할지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선거의 형식은 객관식이지만 내용은 주관식이다. 채점자 나름대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각 분야에서 꼼꼼하고 세밀한 채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집권당이 내민 답안지를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권력에서 소외된 야당보다 국민의 위임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집권 세력이 주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정파적 시각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청이다. 선거법 개정 등 집권 세력이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권력을 운용해 온 정치 기조,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주 52시간제·탈원전 등 경제 정책 기조, 한미·한중·한일 관계 등에서 드러난 외교 정책 기조,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등을 내세운 사회 정책 기조 등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려진 선거의 평가적 기능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원하면 집권 세력을, 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을 선택하면 된다. 진영 논리에 치우쳐 허술한 답안지에 합격점을 매기면 안 된다. 그 반대 역시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채점자가 중간고사에서 까다롭게 점수를 매겨야 학생이 기말고사를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 집권 세력이 성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선거 외에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2020-04-05 16:06:44

윤석현 수성구선거관리위원회 선거주무관

[기고] 자세히 보아야 예쁜 민주주의의 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단 세 줄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한 시다.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수미상관도 없고, 직유법도, 의인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세 문장으로 이뤄진 짧은 시지만, 그 세 문장이 나오기 위한 시인의 고민을 알기 때문이다.최근 한 신문에서 나태주 시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여러 문장 중 한 문장이 눈에 띄었다. 그에겐 '일상이 시'라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넘어갔던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그는 그의 시처럼 일상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면서, 짧지만 긴 세 문장을 진득하게 뽑아낸 것은 아닐까?우리들의 대표를 뽑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다가온다. 눈썰미가 좋은 유권자라면 발견했을 수도 있겠지만, 투표함에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사실 선거도 풀꽃과 비슷하다. 그저 기표하는 데 3초에 불과한 행위 역시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본다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민주주의의 꽃을 발견할 수 있다.'꽃길만 걷자'는 격려가 유행이다. 그런데 꽃길이 건강하고 오래 유지되려면 좋은 토양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의 좋은 토양은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다. 꽃이 없는 흙길은 걸을 때 먼지만 날릴 것이고, 좋은 흙 없이 꽃만 있는 길의 꽃은 금세 시들어 버릴 것이다. 꽃과 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민주주의에서의 꽃인 '선거'와 흙인 '정치에 대한 참여'는 분리될 수 없다.하지만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바쁜 탓에 직접 정치인을 만나 그들에게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커녕 자기 지역의 현재 이슈만을 따라가는 것도 벅찬 경우가 많다. 결국 선거일이 임박해서야 묵혀 둔 선거공보를 펼쳐, 우리가 평소 풀꽃을 훑어보듯 대강 보기 바쁘다. 이해한다. 정책을 꼼꼼히 확인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바쁘게 사는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정책을 일일이 분석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니 공약을 통한 선택보다는 정당이나 학연·지연·혈연과 같이 표면적인 정보만을 보고 후보자를 선택하기 쉽다.최근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 각종 이슈를 지도로 정리한 '대한민국 공약이슈지도'와 유권자가 직접 공약을 제안하는 '유권자 희망공약' 제도로 유권자의 참여를 돕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공약이슈지도'는 국민신문고의 민원 약 1천400만 건과 언론 기사 약 130만 건의 빅데이터를 종합 분석하여 키워드화하고, 이를 시각화된 자료로 나타내 지역 이슈를 쉽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봄에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흙을 미리 일궈야 하듯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를 일구는 좋은 흙이 된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이는 만큼 참여도 할 수 있는 법이다.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공약을 꼼꼼히 살피고, 그중 지역에 진짜 필요한 공약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기표에 걸리는 시간 3초,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지금부터 부지런히 쟁기를 손질해야 한다. 그렇게 숙고의 시간을 보낸 3초가 풀꽃의 세 문장처럼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꿀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선거라는 꽃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값진 열매로 다가올 것이다.

2020-04-05 15:15:04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매일춘추] 하모니

자정을 넘긴 시각, 방호복을 껴입은 소방대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구급차에 올라탔다. 들것에 실려 누워있는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는 것도 잠시, 이 시국에 이 정도의 문제로 도움을 받아도 되나하는 미안함이 스친다. 구급차에서의 응급처치와 상태체크는 계속된다. 하지만 우리가 갈 병원은 쉬이 결정 나지 않는다.매뉴얼에 따라 몇 군데의 병원과 통화가 있고서야 겨우 한 병원에 도착한다. 구급차는 병원 내 지정된 주차구역에 멈춰섰다. 문진과 함께 환자와 보호자의 체온 검사부터 시작된다. 구급차 내에서 4차에 걸친 의료진의 문진과 상태체크가 있은 후 들것은 겨우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매뉴얼대로, 약속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한 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규모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른다. 무대 위의 배우에서부터 관객들의 입장을 돕는 하우스 어셔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와 객석을 담당하는 무대감독과 하우스매니저의 지시가 필요하다. 이것을 소위 'Que(큐)'라고 하는데 한 작품에는 음향, 무대, 조명, 음악 등 파트별로 나눠진 수백 개의 큐가 존재한다.무대감독이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큐 사인을 보내고 그때마다 파트별 담당자들은 조명을 바꾸고, 무대를 전환하고, 효과음을 낸다. 하지만 자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관객들은 극이 아닌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약속과 매뉴얼 속에서 완벽한 하모니를 내며 움직였을 때 관객들은 집중하며 작품에 빠져들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공연의 완벽한 마무리라 할 수 있다.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코로나19가 미국을 넘어 유럽까지 집어 삼키면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극장들은 문을 닫았고, 재개관은 기약이 없다. 한해를 들여 준비한 DIMF도 기약 없는 블랙홀 속에 빠진 기분이다.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작품들로 준비하려고 했던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국내에서도 공연하려던 작품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심지어 배우가 코로나19에 감염돼 돌연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무후무한 역사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신선하지만 조금은 불편하다. 나의 작은 일상뿐만 아니라 마치 전 세계가 멈춘 것 같은 날들이다. 대체 이 상황은 언제쯤 회복될까?하지만 한 편의 뮤지컬이 성공적인 엔딩을 맞이하는 것처럼, 119에 전화를 걸던 순간부터 응급실을 나오던 모든 순간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향한 신뢰와 약속들이 모이고 모이면 소중한 일상도 곧 제자리를 찾아오리라.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 한여름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을 넘치게 달궜던 뜨거운 박수소리가, 마스크 없이도 맘 편히 객석으로 들어가 작품에 빠져들던 시간들이 그립다.

2020-04-05 14:30:00

이상철 자유기고가

[2020 세상 읽기] 발로 하는 투표

인류의 대부분의 삶은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닌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루하루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굶어야 했으며 기후변화나 재난이 닥쳐 먹거리를 구할 수 없으면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먹거리는 늘 중요했다.인류의 생존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한 갈래는 초원으로 가 유목민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갈래는 강 하류 퇴적지에 정착해 농사짓는 정주민이 되는 것이었다.늘 그렇듯 불균형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척박한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거칠게 살았던 자들은 생산력이 풍부한 지역을 약탈하였고 심지어 정복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인류는 끊임없는 이동과 전쟁, 그리고 지배계층의 교체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가 되었다.민족의 생존을 위한 대이동은 문명과 세계사를 바꾸기도 했다.목초지를 마르게 한 기후변화는 중앙아시아의 훈족을 유럽으로 이동하게 만들었고 훈족의 압박에 밀린 게르만족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중세 유럽시대를 열었다. 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시작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아메리카로 이동한 청교도인들, 세계 각국으로 이주한 화교들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인류의 본능을 느끼게 만든다.먹고 살기 위해 이동하는 인류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나라도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지역을 이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더욱 더 집중되고, 그 외의 많은 지역들은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들은 인구 유입을 위해 정책을 발굴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전남 해남군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전국 최초로 7년 연속 합계출산율이 1위인 도시가 되었으나 인구는 매년 계속 줄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 수준이지만 인구는 매년 계속 늘어 1천3백만 명이 훌쩍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은 경기도민인 셈인데 인구유입을 위한 재정 인센티브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예산 확보를 공언하고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공약을 내건다. 주민들도 지역 출신이 장·차관이 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고위직 승진 누락 시에는 이를 지역차별로 보고 분노를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자기 지역 출신이 출세해야 예산도 많이 가져오고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아닌 믿음이 기저에 깔려서 생긴 듯하다.과거 고도의 압축 성장 속에서 지역 소외는 못 가진 서러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었을까? 한 때 자기 고향에 4년제 대학교를 유치하고 공설운동장을 건립하는 것은 지역 유력 정치인들의 숙명이었다. 뿐만 아니다. 인프라만이 지역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신념은 고추 말리는 공항, 철로 녹슨 경전철, 텅빈 국가산단 등으로 대표되는 표(票)퓰리즘을 낳았다.마강래 교수가 지적했듯이 많은 도시들은 장밋빛 인구 증가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도시계획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인구는 줄고 도시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빈집은 늘고 있다. 과거 일본처럼 대도시 인근 신도시 아파트가 텅텅 빌 수 있다는 두려움은 도시의 집중과 압축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러한 논리는 확실한 곳만 투자한다는 신념을 낳아 부촌의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했다.일자리와 계층상승의 기회를 얻기 위한 이동은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화시켰으며 좋은 교육환경, 안정된 치안, 쾌적한 거주환경을 위해, 발로 이동한 결과물들은 마태효과처럼 국토의 균형개발을 저해하고 도시 내 부촌과 빈촌의 그 격차를 더 커지게 만들었다.이런 의미에서 다산 정약용이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지금도 유효할지도 모르겠다.얼마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모든 후보의 공약을 다 보지 못했지만 인프라 확충, 기업유치, 교육환경 개선 등의 내용이 그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리고 지방정부들은 양질의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지만 유권자의 최우선 선호인 양질의 일자리, 명문 학군, 그리고 우수한 문화인프라를 다 갖춘 지방도시는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어쩔 수 없이 유권자는 자기 거주지를 이사로서 선택하는 '발로 하는 투표'로 그들의 선호를 나타낸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는 4년마다 열리지만 유권자의 발로 하는 투표는 이론상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구와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각종 재정지원금과 보조금 관련 먹튀 문제는 언제나 논란거리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금도 그 기준이나 혜택 범위가 지역이나 업종별로 다를 경우 '발로 하는 투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진정한 지방분권은 공정하게 나누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저한 국토균형개발에 입각하여 차별화된 각 지방들의 성장만이 분권과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발로 하는 투표'를 이길 수 있는 좋은 정책은 만들어 질까?이번 4월 15일, 20대 총선에서 뽑힐 300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해 본다.이상철 자유기고가

2020-04-05 08:00:00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4) 코로나 사태와 4.15 총선

이번 4.15 총선은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현 정권에 대한 두 번째 중간평가의 기회다. 2018년 지방선거는 소위 적폐청산으로 경황없이 넘어가더니 이번 총선은 코로나 블랙홀이 선거의 쟁점을 삼켜버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아무리 격한 홍수가 밀려닥쳐도 지난 3년간 정권의 행적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으면 더 큰 고난을 부를 수 있다. 그 3년 동안 대한민국은 광정, 폭정, 난정으로 나라의 정신과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에 실패하면 세계 현대사의 기적인 대한민국이 지옥으로 끌려들어갈 것 같은 공포감을 준다. 우리 역사에 두 번 다시 이런 정권, 이런 정당이 태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현 정권의 국정운영은 1980년대 중반 폭력과 선동으로 대학가를 질식시켰던 386 종북 주사파 운동권의 행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당시 주사파 운동권은 북한의 절대독재를 찬양하는 주체사상을 훈장인양 가슴에 달고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이들 386이 현 좌파 정권의 586주체가 되면서 나라 전체가 폭력과 위선, 패륜, 탐욕으로 넘쳐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체인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주체사상 곧 사회주의로 덧칠되고 말았다. 나라 망쳐야 성공하는 좌파 정권현 정권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하면 나머지 행적에 대한 의문들은 실타래처럼 풀려나간다. 국가의 외교안보는 친중, 종북으로 치달아 전통의 맹방인 미일로부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일본을 동맹에서 내치기 위해 고릿적 친일 인민재판을 동원하는 작태까지 벌였다. 공산 중국과 북한에 대한 목불인견의 굴종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사파 외교안보는 그야말로 자살골과 자책골의 연속이었다.그렇다면 내치에는 성과가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권의 국정목표는 나라를 망쳐 북한과 비슷한 체제를 만드는데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체제 변동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사회의 기둥인 기업을 죽이고, 부자와 중산층을 없애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주52시간 근무, 탈 원전 등으로 그 목표는 상당 부분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GDP 대비 국가채무 40% 초과금지를 어기며 512조원의 슈퍼예산을 편성하고, 현금복지를 대폭 늘린 것도 같은 궤도의 정책이다. 국민들을 현금복지 중독자로 만들어 체제 구축을 쉽게 하자는 발상일 것이다. 3년 동안 늘어난 국가채무는 이미 100조 원에 달하니 이는 손자, 증손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파렴치가 아닐 수 없다. 세계적 코로나 경제위기에서 2년 더 같은 일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그리스, 스페인, 베네수엘라 같은 꼴을 당할 지도 모른다.이 정권으로서는 경제를 망치면서 동시에 국민을 정권의 노예로 만들어야 유사 사회주의 체제를 굳힐 수 있다. 그래서 적폐청산이라는 폭력으로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관제언론, 가짜언론을 앞세워 정권에 대한 비판을 차단했다. 역사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인민민주주의로 뜯어 고친 것은 사상개조 작업의 일환이었다. 공수처법은 헌법과 삼권분립을 무력화시켜 독재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장기집권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 파괴이번 4.15 총선은 이처럼 경각에 달린 나라의 운명을 구해내느냐 못 하느냐의 선거다. 여기서 실패하면 현 정권이 저지른 그동안의 수많은 부정, 비리, 파렴치가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은 물론 유사 사회주의를 고착시키는 길을 열게 된다. 현 정권은 그런 정황을 잘 알고 있기에 총선을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사람들은 어떤 인물의 과거 행적을 보고 현재를 판단한다. 현 대통령은 2016년 야당 대표 시절 호남에서 총선을 승리하지 못하면(23대3으로 패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지키지도 않을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광범한 댓글 여론 조작을 벌였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청와대와 정부 조직을 동원해 울산시장 부정선거를 획책했어도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15 총선이라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현 정권은 선거 전에 심판들을 모두 자유민주주의 불신자들로 채워 넣었다. 행정부의 선거관련 장관들은 물론 선관위, 방통위, 공영언론, 경찰까지 장악을 마쳤다. 지난 연말에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법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해 사회주의 일당국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개정된 준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를 둘러싼 여당의 해괴한 행동은 선거 승리를 위해 인성파탄의 비난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제대로 익지도 않은 긴급재난지원금 9조 원을 1400만 가구에 뿌리기로 발표한 것은 백주의 매표행위로 기록될 일이다. 보수 야당의 실패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현 정권의 광정, 폭정, 난정에는 보수 야당의 협조 내지 방관이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대략 3할 정도의 책임은 야당에게 돌아가야 한다. 보수 야당은 주사파 정부의 실체를 보고도 자신이 누구이며 누구를 상대로 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몰랐다. 자유민주 체제를 뒤엎으려는 사악한 기도를 바로잡기는커녕 반쯤은 그에 부화뇌동해 보수의 지리멸렬을 가져오게 했다. 배부른 베짱이와 썩은 새끼줄로 동여맨 야당 조직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정치는 절차 이상으로 결과가 중요하다. 성실함이 때로 악덕이 될 수 있다. 야당 대표의 모범생 리더십, 착한 리더십은 국가 파탄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이렇듯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이제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해야 할 처지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현대사의 고비마다 국민을 억압하고 배신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그 70년의 잠재력이 코로나 블랙홀을 뛰어넘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온 국민이 눈을 부릅떠야 할 잔인한 4월이다.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04-04 08:00:00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학과 교수

[광장] 달구벌국(達句伐國)은 존재했을까?

대구의 옛 지명 중 하나인 달구벌은 과거 삼한시대 당시 '달구벌국'으로 불렸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과연 그럴까?원삼국시대 즉, 삼한(三韓)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인 기원 전·후∼3세기 간에는 영남 일대의 진한(辰韓) 영역에 12개의 소국이 있었다는 내용이 '삼국지'와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의 '한조'(韓條)에 기록돼 있다. '삼국지'는 3세기 후반 중국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다. '위서 동이전'에 실려 있는 삼한과 관련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왜(倭)와 접한다. 사방 4천 리에 달한다. 한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세 종족이 있고, 진한은 옛날 진국(辰國)이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반면, 진한과 변한은 2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다."김부식이 저술한 '삼국사기'에 나오는 삼한시대 진한(변한 일부 포함) 영토의 소국들은 감문(甘文)국, 거칠산(居漆山)국, 골벌(骨伐)국, 다벌(多伐)국, 비지(比只)국, 사벌(沙伐)국, 실직(悉直)국, 압독(押督)국, 우시산(于尸山)국, 음즙벌(音汁伐)국, 이서(伊西)국, 조문(召文)국, 초팔(草八)국 등으로 신라의 모체인 사로(斯盧)국과 동시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 소국들의 이름은 '삼국지'에 기록된 진한의 소국들과는 이름이 달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삼국지'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진한 소국 명칭들이 왜 서로 다른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삼국지'에는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진한과 변한의 소국 규모는 작은 경우가 600~700호이며, 규모가 큰 경우는 4천~5천 호에 달해 총가구수는 4만∼5만 호로 추정하고 있다.이제 대구의 모체인 달구벌에 대해 알아보자.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두루 살펴봐도 달구벌국에 대한 국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원로 사학자 한 분이 '삼국사기'에서 "신라 파사 이사금 29년(108년)에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기록을 참고하여 이름이 유사한 다벌(多伐)국을 달구벌(達句伐)국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달구벌국의 유래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과연 다벌국과 달구벌국을 동일 국가로 볼 수 있느냐이다. 필자 생각에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본다. 신라시대에는 지금의 두산동, 파동, 대명동, 가창면 일대에 해당하는 위화군(喟火郡, 수창군) 아래 4개의 영현을 두고 있었다. 4개의 영현은 달성을 중심으로 하는 달구화현(達句火縣, 대구현), 팔달동과 칠곡 일대의 팔리현(八里縣), 다사읍·하빈면 일대의 다사지현(多斯只縣, 하빈현), 화원읍 설화동·명곡동 일대의 설화현(舌火縣, 화원현) 등이다. 즉, 위화군보다 규모가 작았던 달구화현이 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만약 우리 지역에 소국이 있었다면 위화군과의 관련성에서 찾아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로국이 진한 12소국을 차례로 병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볼 때 이러한 추정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신라가 병합한 소국을 행정조직에 편입시키는 경우, 군(郡) 이상의 행정 규모로 편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사벌국이 사벌주, 압독국이 압독주, 조문국이 문소군, 감문국이 청주(나중에 감문군), 실질국이 실직주, 거칠산국이 거칠산군(나중에 동래군)으로 편제된 사례가 그렇다. 아무튼 삼한시대 진한의 12소국 중 하나가 우리 지역에 존재했다면, 그 명칭이 달구벌국이라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달구벌국 명칭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2020-04-03 14:30:00

박성미 작곡가

[매일춘추] 겨울에 가려진 봄, 그래도 봄!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우리가 사는 일상을 덮쳤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갈 길을 잃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에게 더한 경계심을 갖고 시간을 보낸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차가운 기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공연들이 줄을 이어 취소되고 상반기의 모든 계획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지만 각 공공기관에서는 라이브 중계를 통한 음악회를 선사하고, 책을 읽어주는 사이버 도서관 등 또 다른 해결책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우리는 지금 전쟁과도 같은 재난을 겪고 있다. 전쟁은 겪는 사람들의 영혼과 정서에 크나큰 흉터를 남기고, 음악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 예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은 각각의 이유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독일 군이 파리를 향해 포격을 시작한 직후인 1918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드뷔시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독자적인 아이디어와 참신한 멜로디, 기발한 화성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을 남겼다. 전쟁당시 몸이 좋지 않아 직접 참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애국심을 표현하기도 하였다.또 같은 시기 라벨은 전쟁에서 부상당한 연주자를 위해 음악을 만들기도 했는데, 폴란드에서 벌어진 전투에 나갔다가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일을 위해 '왼손을 위한 협주곡'(1930)을 작곡하였다. 왼팔뿐인 피아니스트를 위해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곡이었고,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변화무쌍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오른팔을 잃은 연주자를 위함이 아니었다면, 우린 이 작품을 여전히 듣지 못했을 것이다.절박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을 지켜냈던 음악가들의 노력은 시련을 뚫고 피어난 작품이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동은 더욱 벅찰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음악가들이 그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하고 있을 것이다.우리에게 닥친 코로나의 위기가 아무렇지 않게 당연시 여겨왔던 관중들과의 만남을 회상케 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그리워지게 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됨은 위기가 그저 위기만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닿을 듯 닿지 못하는 우리의 봄을 하루라도 빨리 만끽하기 위하여 잠시 거리를 두는 미덕을 우리 모두가 보여줘야 할 때이다. 모든 예술인들의 따뜻한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와 우리의 봄을 만끽할 수 있길 기대한다.

2020-04-02 13:42:43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

[기고] 코로나19 대응과 지원책의 우선순위

산불도, 응급환자도, 감염병도 대응 조치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모든 위기상황에서 우선 빠른 초동 대응은 시작이고 과정과 끝맺음, 사후 조치까지 모든 과정과 단계마다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가 중요하다.재난관리는 재난의 예방·대비·대응 및 복구를 위하여 단계별로 이루어진다. 특히 감염병 재난은 다른 종류의 재난과 달리 사회관계망을 타고 상당한 기간 지속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피해가 증폭되는 경향이 있어 단계별로 차별화된 대응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위기 대응도 발병·확산·회복 3단계로 구분하여 대응해야 한다. 현재 코로나19는 미국과 대부분 유럽 국가가 한가운데 속해 있는 확산단계에 있다. 지금 한국도 확산단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으며, 안정화된 회복단계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은 아직 멀리 있다.우선 확산단계에서는 중증환자에 대한 응급의료지원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증환자의 격리·돌봄을 위한 생활치료센터 운영,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확산단계를 진정 국면으로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재난에 취약한 홀몸노인, 장애인에 대한 긴급복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대구사회서비스원의 '코로나19 긴급돌봄서비스'와 민간의 자율적인 봉사활동 등이 그 예다.둘째, 일상적인 생활과 방역을 함께 할 수 있는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면,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지원정책을 본격 시행해야 한다. '위험사회'(1986)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재난은 근본적으로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공유되는 평등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각종 재난의 피해 규모는 지역, 계층, 소득 등에 따라 불평등하다. 따라서 코로나19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지역, 계층, 소득, 업종에 대한 선별적, 지속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피해가 연쇄적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고용 기반과 생산 기반의 붕괴를 막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셋째, 회복단계에서는 개인의 삶과 지역사회, 지역경제를 재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재난에 대응하고 재난 이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자원, 사회자본, 정보와 소통, 지역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중요하고, 이의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특히 회복단계에서는 재난불평등과 재난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며, 재난 이후의 새로운 다음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공동 의사결정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역량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감염병 재난상황에서는 섣부른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때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전도 대비하는 '건강한 비관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 방역당국은 과부하 상태에 있고, 시민들도 힘겹게 견디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와 피해 확산 경로를 예의 주시하면서 감염병의 진행단계에 따라 적절하고 충분한 재난관리를 할 수 있도록 마라톤 선수의 심정으로 안정적으로 대응 속도를 조절하고 유지해야 한다.

2020-04-02 13:39:55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보름 앞둔 지난 31일 대구 한 인쇄업체에서 시선관위 관계자가 인쇄된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보여주고 있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은 35곳으로 투표용지 길이가 48.1cm에 달해 전자개표가 불가능해 수작업으로 개표해야 한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새론새평] 엉터리 비례대표 후보 있는 당은 찍지 마라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1야당의 동의 없이 집권 여당이 정의당 등 군소 정당 4개와 추악한 야합을 통해 만든 복잡한 제도이다. 그러나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이에 맞서 비례용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고, 위기를 느낀 더불어민주당이 약속을 깨고 그토록 자신들이 비난하던 비례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거기에 집권세력 3중대 격인 '열린민주당'까지 생기면서, 정의당은 이제 설 자리가 거의 없다. 정의당은 지금 와서야 조국 전 장관의 옹호에 나선 것 등에 대해 반성을 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그런데 기괴한 새 제도에서 치러질 비례 선거에서 각 당이 내세운 많은 후보들이 결격이다. 민주당 공식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후보들은 몇 사람 지적하기에도 숨 가쁘다. 공영방송인 KBS 부사장으로 방송 장악에 앞장섰던 정필모는 선거 직전 사표를 내고 안정권인 8번을 받았다. 부사장 임명 때에도 불법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부사장 취임 후 숙청위원회인 '진실과미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이 위원회는 현재 법원에 의해 사실상 불법 판정을 받았다. 또한 KBS 노조와 KBS 공영노조는 정 씨가 '공직자 행동강령, KBS 윤리강령, KBS 취업규칙, KBS 편성규약을 전부 다 어겼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의 출마가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언론단체인 한국기자협회장과 한국PD연합회장이 정 씨를 특정 정당에 추천했다는 경악스러운 사실도 밝혀졌다. 아예 KBS와 이 단체들이 권력의 홍위병임을 대놓고 선전한 셈이다. 정 씨는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사퇴해야 한다.마찬가지로 3번 순위인 권인숙 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공직선거법상 공직자 사퇴 시한(선거 전 30일)을 어겼음이 지적되고 있는데도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민주당의 공식 '파견 순번'인 11번 최혜영 후보는 약 4억여원의 기초생활비 부정 수급이 드러났고, 무면허 운전 전과까지 있다. 14번 김홍걸 후보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로 김 정권 시절에 36억7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조국 무죄 프로젝트당'이라고 자기들의 진영에서조차 조소의 대상인 열린민주당은 그야말로 역대급 악성 타순을 선보였다. 2번 최강욱은 공직기강비서관 재직 시에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일본 척결'을 외치면서 정작 본인은 1억원이 넘는 일본 렉서스 차를 타고 다녔다. 친북반미주의자인 더불어시민당 7번 윤미향 후보가 딸을 미국 음대에 유학 보낸 것과 같은 셈이다. 전형적인 한국 좌파의 이중성이다. 4번 김의겸은 그 유명한 흑석동 상가 부동산 투기 논란 때문에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사임했고, 8번인 황희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국의 사람이다.비례제도 파동의 주역인 정의당은 1번 류호정 후보부터 문제다. 그는 대리 게임을 시인했는데, 이것은 프로게이머 세계에선 대리 시험과 마찬가지의 부정이다. 온갖 비판이 있음에도 사퇴를 거부하는데, 이것이 정의당이 주장하던 공정인가. 범여권의 민생당은 손학규 전 지사를 2번으로 올렸다 비판을 받고 14번으로 내렸다. 우리공화당이 2번에 서청원 전 의원을 배치한 것과 더불어 '노욕'이라는 질책을 같이 받았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자기 사람들을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미래통합당에 파견해 지역구에 출마하게 하고, 자기 당은 비례대표만 내는 '실속형' 혹은 '얌체형' 전술을 폈다. 과연 간철수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선택이다. 그러나 비례 2, 3번이 모두 안 씨의 최측근인 이태규·권은희로, 지역구 의원 출신을 비례에 배치하는 한심한 구태를 보였다. 미래한국당 역시 공천 갈등을 겪었으나 분란을 수습해서 그저 무난한 공천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익단체장과 직능단체장이 대거 순위권에 들어가는 문제가 생겼다.비례대표는 지역구 선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 취지와는 어긋난 경우가 요번 선거에서도 있다. 300개 국회 의석에서 비례대표가 47석을 차지한다. 적지 않은 숫자이다. 유권자들은 지역구만큼이나 비례대표 선거에도 주의를 기울여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투표 시에 부적격자가 넘치는 정당부터 제외할 일이다.

2020-04-02 13:36:44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창환의 같이&따로] 코로나 이후, 새로운 시작

신천 산책로에도, 팔공산에도, 학교 교정에도 벚꽃이 피었다. 두 달 전부터 시작된 대구 지역의 고통과 어려움을 난 모르겠다는 듯, 벚나무들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따뜻한 봄날의 햇살을 받아 자태를 뽐내는 벚꽃들은 봄바람에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우리를 유혹한다. 답답한 현실 때문인지 유달리 올해의 벚꽃은 더 유혹적인 듯하다.두 달 동안 힘들게 버티고 있는 우리의 사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벚꽃의 흔들림이 오히려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여느 때처럼 겨우내 움츠리고 굳어졌던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꽃은 피지 않고, 무심한 벚꽃이 피었다.꽃피는 계절이 오고 자연의 변화는 여지없이 다가왔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곧 더위가 올 것이다. 무심한 자연 같으니…. 이제 더위가 오면 이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끝이 날지…. 그러나 야속하게도 기온이 올라도 이 바이러스는 사라질 가능성이 낮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코로나바이러스도 자연의 일부. 자연 속의 서로 다른 생명체 간의 전쟁이다. 두 개체 간의 전쟁에 자신은 관심 없는 듯 벚꽃이 피었다.일상이라는 것이 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고 있다. 초·중등학교 개학은 한 달 넘게 연기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학의 온라인 수업도 교수와 학생 모두 처음 겪는 사태에 여의치 않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이용하는 시설들은 폐쇄되고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많은 것들이 중단되었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삶의 유지에 필요했던 것들이 멈춰버리면서 고통을 받고 있다.그래도 지금껏 우리는 잘 버텨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에게 인내의 시간도 점점 고갈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이제 건강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자영업자들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든 상황이다.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동네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고, 서비스업·제조업·항공업 등 모든 산업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소비의 위축은 생산의 감소를, 생산의 감소는 기업의 고용 축소로 이어지는 경제 불황기의 고리가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이너스 성장률 및 심각한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있다.수년 전부터 시작된 저성장 기조는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운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또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가 처한 문제라는 점에서 탈출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1998년 외환위기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위기였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위기라는 점에서 지역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어려운 상황이다.20여 년 전 외환위기에서 우리는 경험했다. 실업자의 증가는 가족의 파괴와 빈곤의 대물림, 사회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업급여 신청자가 전년 대비 34% 늘었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었다는 신호이다. 한계 상황에 몰린 개인과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100조원의 돈을 풀고,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소득 하위 70%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와중에 재정이 어디 있어서 그런 돈을 푸느냐는 목소리도, 긴급재난지원금이 현금이 아니라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상황은 매우 절박하다.바이러스 감염은 종식될 것이다. 이제는 경제와 사회의 건강함에 대해 걱정해야 할 때이다.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공포와 혐오를 만들어간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코로나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묵시록 같은 생각이지만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마음을 다잡고 고통이라는 강을 건너야 할 때이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위기를 견디고 버텨야 할 시간이다.벌써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내 파란 잎들이 녹음을 자랑하고, 또 낙엽이 떨어질 것이다. 내년 봄에는 신천의 벚꽃을 조금이라도 희망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0-04-01 18:00:00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불가사의 인도] 인도 하층민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

필자와 흉금을 트고 대화를 나누며 백년지기처럼 친숙해진 인도 출신 동갑내기 친구 토마스 싱(Thomas Singe)에게 어느 날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절교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하와이대학 동서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도의 가문에 대한 참고 자료가 눈에 띄어 살펴보던 중 '싱'(Singe)이라는 말은 '사자'라는 뜻이며 Singe을 성씨로 쓰는 사람은 인도에서 최고 명문 혈통 집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동갑내기 인도 친구인 토마스 싱이 이전에 자기는 인도에서 최하층 신분 출신이라고 고백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토마스 싱이 나에게 신분을 속인 셈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만나자마자 "친구의 성이 Singe이 진짜 맞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나에게 더욱 배신감이 들게 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실은 Singe은 내가 외국에서만 쓰는 성씨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기 때문이다.그는 내가 귀담아듣건 말건 상관 않고 다음과 같은 독백을 늘어놓았다."한국 친구, 내 말 좀 들어보게. 내가 친구에게 내 출신 성을 속인 것은 맞아. 그러나 그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고 절반은 사실이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자 이에 내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돌아앉아 버렸다. 그래도 그는 같은 말로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실은 나는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어머니로부터 '너의 아버지는 Singe이라는 성을 가진 지체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조선시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 문득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생각났다. 바로 돌아앉아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필자가 한국의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도 서자라서 적자와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소설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토마스 싱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르지만, 인도에서는 최상 계급 아버지의 성뿐만 아니라 얼굴도 영영 모르고 살아야 한다. 만약 자기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성을 들어 바깥에 나가 들먹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어. 그러니 그런 사생아가 외국으로 나갈 길만 생기면 외국으로 가서 지체 높은 부계 성씨를 마음 놓고 쓰지."그리고 인도인 친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 친구는 내가 거짓말한 것에 대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인도에서는 하층민들의 생계형 거짓말은 무죄라는 인식이 의식의 바탕에 깔려 있어"라고 말했다.인도인들이 말하는 생계형 거짓말이란 "인도의 유명 관광지에서의 잡상인, 접객업소 안내원, 질병치료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하는 거짓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도인들은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걸고 쉽게 친해지게 되며 친밀감을 느껴 무슨 약속을 하면 백발백중 그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만나 전에 약속한 일을 왜 지키지 않았는지 물으면 '약속할 때는 기분이 좋아서 했는데 그 기분이 사라지니 약속 지킬 마음이 안 나더라'고 말하면 끝이다"고 말했다.대영제국 식민지 시절, 인도 주재 영국총독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Dr. Leaper가 인도의 자연부락에 인구조사를 가면 주민들이 거짓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혀가 내둘린다고 했다. 보통 30~40명 단위의 대가족이 함께 사는데 무슨 혜택을 주기 위해 인구조사를 할 때는 38명이었는데, 바로 다음 날 무슨 의무를 지우기 위한 인구조사를 하면 3분의 2로 줄어든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면 누구누구는 군에 갔으며, 누구는 병들어 죽었고, 누구는 가출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예사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두고 그는 식민지 근성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며 인도의 생계형 거짓말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2020-04-01 18:00:00

나태주 시인

[춘추칼럼] 사랑의 거리

예전, 젊어서 고향에 살 때의 기억이다. 금강 하구 철새도래지로 가끔 청둥오리 사냥을 가는 젊은 축들이 있었다. 그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백조에 대한 것이다. 백조는 우리 말로 고니라고 불리는 몸집이 크고 털 빛깔이 새하얀 새이다.녀석들은 갈대숲이나 습지에 무리 지어 앉아 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사람이 다가간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거리인 셈이다. 동물 치고는 참 영리하고 똑똑한 녀석들이라 하겠다. 인간 세상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사이라 해도 너무 거리가 가까우면 진력이 나고 싫증이 나게 되어 있다. 좋은 사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면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친구나 이웃이나 직장 동료 사이도 그렇고 심지어 애인 사이도 그렇다.가까운 사이 좋은 사이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세심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한집에 사는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호 존중할 것은 존중하고 삼갈 것은 삼가고 눈감거나 비켜 갈 것은 또 그래야 한다. 그러기에 옛날 어른들도 부부유별이라 했다.부부 사이는 구별이 안 되는 밀접한 인간관계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매우 평범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교훈이라 하겠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사귀면서 내가 지키고 있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누구하고든 거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사람, 내가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지만 지나칠 정도로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도 모조리 하지는 않고 조금은 아껴 둔다.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미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연유로 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나빠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오래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좋은 느낌으로 그 자리에 그냥 멈추어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좋은 관계로의 새로운 복원이 가능하다. 이것을 나는 사랑의 거리라고 말하고 싶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말은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사람들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경향이다. 언어폭력이든지 성추행이란 말까지 나돌아 특히 남녀 사이가 많이 경직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이 얼마나 따스한 말이고 좋은 말인가. 그러나 그런 말조차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그야말로 이것은 마음의 거리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랑의 거리가 아니고 강제로 만들어진 마음의 거리다. 왜 우리가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 서로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살게 되었는가. 많이 서글픈 마음이다.최근엔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사회적 거리란 것이 다시 생겨났다. 일상의 평범한 삶은 멈추고 갑자기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삶과 살아보지 않은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신종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거리를 두어야 하고 신체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다. 우리 풀꽃문학관만 해도 계속 휴관 중이다. 뜨문뜨문 관광객들이 오고 아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갑지가 않다.멀리서 바라보며 인사하고 좋은 시절이 오면 다시 오시라 인사를 보낸다. 물론 악수도 하지 않고 사진도 같이 찍지 않고 책을 들고 와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다음에 하자고 미룬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참 많이 소원해진 느낌이다.어쨌든 다 좋다. 고니들에게는 생명의 거리. 나에게는 사랑의 거리. 미투 사태에는 마음의 거리. 코로나19에는 사회적 거리. 모든 거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음의 단절이 있을 수 있고 소통의 부재가 있을 수 있겠다.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 모든 '거리'들이 사람을 살리는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섭섭함과 공허함과 불편함이 있겠지만 그것들을 넘어서 생명의 거리, 소생의 거리, 끝내는 사랑의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0-04-01 14:46:40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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