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 삽화('소년', 1909. 2.)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조선의 로빈슨 크루소

서구 문물이 몰려들던 개화기. 중국과 일본 이외,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조선어로 서툴게 번역된 서양소설은 큰 도움이 됐다. 줄거리 중심의 어린이용으로 번역된 서양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이름조차 낯선 새로운 나라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워갔다.소설 주인공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영국, 프랑스, 독일, 아프리카, 브라질을 방문하기도 하고, 바다 밑을 여행하기도 했다.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새로운 법체계를 접하기도 하고, 상인이 힘을 지닌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기도 했다.딱딱한 지리책이나 역사책과 달리, 소설은 세계지리와 역사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쉽고 재밌게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로빈슨 크루소'(1791)를 번역한 최남선의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無人絶島漂流記, 1909)도 그 중 하나였다. 28년에 걸친 한 남자의 무인도 표류기를 다룬 이 소설에는 조선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듬뿍 담겨 있었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선원이자 타고난 장사꾼으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에서 만든 공산품을 아프리카에 팔고, 대신에 아프리카의 상아, 곡물을 유럽에 가져다 팔아 큰 이윤을 남긴다.배를 타고 영국과 아프리카, 브라질을 넘나드는 해상무역업자 로빈슨 크루소의 행보를 읽으면서 조선 독자들은 세계 지리와 문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그렇다고 최남선이 지식 전파에만 목적을 두고 번역을 진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어로 번역된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가 발표된 것은 한일병합조약을 1년 앞둔 1909년. 조선의 운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달해 있던 때였다. 최남선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해상무역을 통해 '재화를 축적하고 그 재화로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의 힘을 배우기를 바랐다. 그 힘은 전통적으로 조선이 천시하고 간과해 온 것이었다.아울러 최남선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를 읽으면서 그 힘을 배우고 키워 자주적이며 강력한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가기를 바랐다. 사농공상의 신분적 위계질서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던 조선에서 상인의 가치와 해상 무역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강건한 뿌리를 흔드는 역할을 개화기 조선에서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를 비롯한 번역 소설이 담당해내고 있었다.'걸리버 여행기', '해저 이만리', '엉클 톰스 캐빈', '레미제라블' 등등, 최남선을 비롯한 젊은 선각자들은 '소년'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고자 서구 소설 번역에 힘썼다. 비록 일본어 번역된 것을 다시 조선어로 번역하는 데 불과했지만 그들은 열심히 조선 소년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서구 소설을 번역하고, 또 번역했다. 이미 조선은 식민지상태로 전락해가고 있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화기 조선에서 서구 번역소설은 그런 그들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

2019-12-14 06:30:00

권영희 작 '그리움'

[내가 읽은 책]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 김난주 옮김/알에치코리아/2017

어린 날의 싱그러움도, 젊은 날의 화려함도, 어중간한 날의 안정감도 차츰 그리워지고 익숙해지고 있을 때 운명처럼 다가온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는 195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이 책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담백한 감성으로 써내려갔다.여섯 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가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작가는 흔하디흔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만의 잔잔한 감성으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열다섯 딸을 잃은 아빠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르는 작품 '성인식'."다들 스즈네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타인이니까."(24쪽)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 타인이 아닌 그와 아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딸의 성인식을 치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의 스무 살을 기억하고자.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들의 생채기는 아물어질지…….사그라질 듯 병원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언젠가 내가 그녀의 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엄마는 이제 내 엄마 일 적의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라며 자신 있게 부르기가 겁이 난다. 존재하지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른 그와 그의 아내처럼 나도 이제 기억 속에 내 엄마를 각인시켜 둔다.두 번째 단편 '언제가 왔던 길' 또한 치매에 걸린 엄마와 찬란했던, 엄마의 나이만큼 먹은 딸이 다시 만나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이야기이다."오래 떨어져 사는 중에 그 옛날의 엄마 나이를 지나버린 나는 지금은 그런 것들을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그런 엄마의 일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85쪽)여려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애쓰는 엄마의 흔적이 내내 아팠다. "또 올게."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차곡차곡 담겼다. 앙상한 엄마의 손을 잡고 나도 자그맣게 말했다."또 올게. 나도."책 제목이기도 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읽는 내내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찾아온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손님."자, 얼굴을 다 시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앞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는지 신경이 쓰여서." (142쪽)차마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마지막 문구다. 가슴이 아렸다. "엄마, 나 한 번 더 쳐다봐." 병실 문을 나서기 전에 서너 번은 더 엄마를 재촉했다. 힘겹게 팔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언젠가 겪게 될 먼 이별을 생각한다.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운 날들은 이제 하나하나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다. 언젠가 그 기억 속에 머무를 또 다른 나를 생각하면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그렇게 우리에게 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웠던 날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권영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14 05:30:00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매주 한 편씩 방송하는 KBS '인간극장'과 일요일 점심 때마다 전국에 울려 퍼지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극장'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까지 5부작으로 잔잔하게 우리의 이웃들이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마다 전 국민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이웃의 노래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매주 휴먼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결같은 공통점은 묵묵히 자기 직분에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진솔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긴 인생을 비록 5편으로 보여주기에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TV란 창을 통해 그분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과 그 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고통과 갈등 등이 엮여 한 편의 인간드라마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을 가진다.'인간극장'을 통해 보여주는 매주 1편씩의 이야기는 다소 극적인 감동은 없을지 몰라도 정말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오래 장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배움과 남녀와 세대를 떠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와 헌신과 봉사의 가족애는 이웃과 자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슴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짧은 인생에 있어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어찌 다 보고 경험해 볼 수 있으리오? 이런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나 곳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진실은 통하는 법이기에 이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보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느끼게 한다.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또 하나는 '전국노래자랑'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지방 축제의 장에 모여 같이 쉽게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차이의 갈등이 심한 요즘이지만 이 모든 것을 허물고 한자리에 온 세대가 어울려 무슨 노래를 부르던 간에 같이 들어주며 웃고 호흡할 수 있는 화합의 장(場)이기 때문이다.지역사회에서 저마다 숨은 끼와 장기를 가지고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수십 년을 이어오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도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압축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진실성의 위대함이 이런 장수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이유라고 본다. MC 송해 사회자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장점이자 약점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프로그램이 세계사적으로도 없을 정도이다.위대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의 강연이나 토론도 물론 유익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애환을 함께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인간극장'과 '전국노래자랑'이라고 본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이웃의 웃음과 애환과 삶의 진솔된 모습에 진정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가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열광하는 삶보다는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고 본다.

2019-12-13 19:29:56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누구를 위한 리허설 무대?

최근 한 무용가 공연의 공연비평문을 쓰기 위해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이번 공연이 1회 공연이라 한 회 공연을 보고 글을 쓸 때 아쉬운 점이 있어서, 리허설 할 때 미리 한 번 더 보려고 일찍 간 것이다.깜깜한 객석을 더듬어 한 쪽에 앉으니, 피날레 장면을 체크 중 이었다. 주제 속에 꽃이 나오니 무대 상부에서 거대한 화관(가랜드)이 내려오고 있고, 무용수들이 꽃비를 받듯이 조용히 팔 벌려 화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웠다.최종 리허설이 시작되고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데, 공연 도중 안무자의 무대, 조명, 위치 등을 수정하는 마이크 소리로 어수선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대장치는 자리를 정하지 못해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조명은 주인공과 바뀌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해 산만하게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소도구들은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나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력자들은 아직 정리 중이었다. 최종 리허설인데 이렇게 산만할까 맘이 불평으로 불편했다. 필자도 마음을 바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본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숨소리와 시선, 호기심 등이 올라가는 무대 막과 더불어 공연에 합세하게 된다. 관객은 공연의 또 다른 출연자이다. 관객이 있기 때문에 무대는 빛이 나고, 응원의 에너지로 공연자들은 힘을 받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리허설과 전혀 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소재는 같을지라도 분위기와 흐름이 다른 새로운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됐다. 조명은 고즈넉하게, 때로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강렬한 빛으로 무대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장치는 제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역할을 감당하고, 눈치 못 채게 아름답게 장치들이 변화되어 나갔다. 무대 소품들이 조명의 힘으로 무대 밖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여줘야 할 것은 훤히 드러냈다.리허설은 본 무대를 위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무대이다. 사전의 뜻에 의하면 '실제 공연 전의 연습'에 불과하고, 막이 올라가기 전, 무대에서 해보는 마지막 연습인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지인들이 공연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개인사정으로 리허설을 보러오기도 하고, 공연을 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리허설을 보고 싶다면, 본 공연을 본다는 전제 하에 봐야 한다. 전혀 다른 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안무자나 공연관계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극장 문 닫고 리허설을 하세요." 특히 공연문화를 아는 예술가들이 리허설 때 잠시 들렀다 가는 태도는 관계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야한다. 리허설은 본 공연 관객을 위하여 준비하는 연습 무대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13 10:28:28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진정한 힐링

자연 상황서 안빈낙도 현실선 불가 방송 보며 대리만족 착각은 아닌지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 독서는 마음만은 부자로 만드니까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 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 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 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의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 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 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 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 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 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 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 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

2019-12-12 14:47:42

이진국 (사)자연생태연구소 소장

[기고]상원천에 물고기가 노니는 그날까지

금호강 권역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대구 시민에게 대구를 관통해 흐르는 신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1980, 90년대에 비해 수질이 크게 좋아진 신천은 현재 다양한 물고기·새·수달 등의 서식처이자 시민들의 휴식 및 힐링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친숙하다. 둔치에는 수영장, 썰매장 등 계절별 테마 놀이시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도 잘 모르는 산업화의 그늘이 숨겨져 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의 대구텍과 중석타운 자리는 과거 대한중석이 있던 곳이다. 대한중석은 무기의 주원료인 중석을 생산하는 소위 방위산업체로, 달성광산에서 중석을 캐냈다.한때 중석 단일광종 세계 생산량 3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적인 광산이 달성광산이었다. 월남전을 끝으로 냉전시대로 접어들자 달성광산은 중석 시세의 하락과 더불어 국제 중석 생산량 급감의 여파로 인해 휴광을 거쳐 폐광에 이르게 됐다.문제는 생산량이 많은 만큼 폐석도 많았으며, 지금은 환경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 있는 달성폐광산 인근은 과거 광산촌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 있다. 여름철이면 폐갱에서 나오는 시원한 (황산)바람을 쐬기 위해 굴 앞에 장사진을 치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폐광산은 폐석·광미·폐갱 등으로부터 AMD(산성광산배수)가 발생된다. 이 속에는 중금속을 비롯한 다양한 오염물질이 함유돼 있다. 반영구적인 오염원인 것이다. 발생된 AMD는 상원천으로 바로 유출돼 신천에 합류된다.또 달성폐광산지역의 토양은 국내 다른 폐광산에 비해 고농도의 중금속으로 오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달성폐광산과 그 인근 지역의 토양은 광산의 광화작용 시기에 광범위하게 오염돼 토양의 산성도가 높고, 중금속 함량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폐석 등에서 발생된 황산 가스는 대기질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상원천의 상류와 중류는 생태적 건강성이 높고, 생물종다양성도 높다. 그러나 달성폐광산의 AMD가 합류된 지점에서부터 신천 합류 전까지 약 1.7㎞ 구간에는 물고기는 물론이고 식물성 플랑크톤조차 서식하기 어렵다. 반면 동물성 플랑크톤인 부착규조는 관찰된다. 특이하게도 중금속 오염도가 높은 곳에서만 사는 특정 종만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AMD 처리를 비롯한 폐광산의 관리는 광해공단이 맡고 있다. 달성폐광산에는 1998년 인공소택지라는 처리장이 조성돼 AMD를 처리해 왔지만, 초기를 제외하면 처리 효율은 극히 낮다. 특히 최근에는 관로의 폐색으로 인해 침출수가 처리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하천으로 직접 배출되고 있으며, 오염된 물은 고스란히 상원천을 거쳐 신천으로 흘러든다.이에 대해 광해공단은 달성폐광산 침출수 처리장을 개보수할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으며, 조만간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중금속으로 오염된 침출수는 상원천과 신천을 오염시키고, 물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상원천과 신천은 대구의 하천이자 생명이다. 신천에는 사시사철 물고기와 수달이 노닐고, 여름이면 아이들도 수영을 한다. 우리는 이런 자연환경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깨끗한 환경을 위해 대구시는 깨어 있어야 한다. 달성폐광산과 상원천을 제대로 관리함으로써 '생태도시 대구'의 위상은 한단계 높아질 것이다. 상원천에 물고기가 돌아오는 그날을 꿈꾼다.

2019-12-12 10:42:28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상상의 자유, 감상

우리는 '감상'이라는 행위를 떠올릴 때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감상이라는 행위를 위해 풍경이 아름다운 자연을 찾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기도 한다. 수많은 미술관 중, 어느 미술관을 방문하여 감상을 할 것인가?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이 감상이란 행위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게 되었다.사진기가 발명되고 산업혁명 등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을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우리가 감상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 보다는 어떠한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감상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마르쉘 뒤샹의 '샘'이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남성 소변기에 R.MUTT 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한 뒤 미술전에 출품하였다. 당시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이게 무슨 예술이야'라는 평을 하여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샹은 본인 작품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이것도 예술이라는 싸움을 하였고, 이후 '샘'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레디메이드 개념을 최초로 예술에 도입한 사례인 것이다.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필자의 감상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에 담겨 있는 개념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미술이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때론 영감을 주는 장르가 분명했다. 그러다 현대미술을 소재로 쓴 연극 대본을 만나게 되었고 연말에 드디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공연은 현대미술의 개념과 미술 시장 등 미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한국이 낳은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적확하게 해석하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해석을 하는 세 자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해 나간다. 주어진 기회는 단 두 번이다.이 작품은 장황하게 미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만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해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만나고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발상들이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체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연극이 그러한 경험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2 10:31:03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우리 시대의 유리천장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능력과 자격이 충분한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거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고위직을 맡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 생소한 이 단어는 1970년대 미국의 한 경제 일간지에서 처음 사용했다. 보이지만 갈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 막혀 있는 유리천장 앞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쓴맛을 봤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야'라고 자조도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리천장은 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고위직에 가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과연 유리천장이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말일까?작가 이문열 씨는 '선택'이라는 소설을 통해 현대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했다. 이런 불합리함은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강요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꼭 여성이 현모양처로만 살았어야 했나? 그것이 과연 모든 여성에게 적용됐어야 했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없이 여성의 삶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제대로 된 삶인 것처럼 왜곡했다. 남존여비의 사회가 만들어낸 유리천장을 지금 시대에 적용시킨 예다.젊은이들에게 유리천장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운전을 하고 교통사고까지 냈는데도 귀가 조치를 하고, 수십억원의 신종 마약을 밀반입했는데도 어리다는 핑계로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뉴스 뒤에는 국회의원이 있었고 상류층인 그들의 부모가 서 있었다. 만약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자식들이었다면 법의 판결은 어땠을까?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도 거기에서 출발한다.우리 시대의 유리천장은 불합리하고 박탈감에 빠지도록 강요한 사회 그 자체다. 정의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말처럼 박제되고 돈과 권력이라는 새로운 계급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부딪혀 추락하는 사회, 버드세이버 같은 장치 하나로 유리천장을 극복했다는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짜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눈물 흘리는 하루가 될 것이다.

2019-12-11 18:00:00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커피와 우유를 섞은 맛있는 라떼가 말(horse)이라니, 말(wording) 같지도 않은 말처럼 들린다. '라떼는 말이야'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의 풍자적 표현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과거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확신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훈계하는 사람들을 희화화한 표현이다.선배가, 어른이, 유경험자가 도움을 주기 위한 조언을 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후배를, 나이 어린 사람을,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을 자기의 뜻대로 바꾸려거나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지편향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지편향'은 개인이 자신, 타인, 상황, 환경에 대한 해석과 판단에 있어서 잘못된 방식으로 현실을 지각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우리는 살면서 수천 가지의 결정을 한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자신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정을 한다. 그런데 의사결정을 할 때, 우리의 인지(認知)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 현실을 지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정보 처리 과정에서 현실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인지편향이라고 한다.인지편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 사고 체계, 믿음, 생각 등과 일치하는 정보만 듣고 믿으려는 편향이 있는데,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판단, 기대에 합치하는 확증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편향된 인식 방식을 말한다.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부합하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반대되거나 부정하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인한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정보나 전혀 새로운 정보를 잘못된 정보로 인식하고 무시해버린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확증편향의 원인은 자기만의 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개인도, 집단도, 국가도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부정도, 다른 정치 진영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도, 특정 연예인에 대한 악플과 조롱도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2019년 1월 필자가 매일신문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첫 칼럼의 주제는 '말의 잔치'였다. 대표적인 보수와 진보의 논객인 홍준표와 유시민의 유튜브 방송이 칼럼 주제였다. 우리 사회가 자신과 입장이 다른 타인과 집단을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는 말의 잔치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지금 인터넷 공간은 확증편향의 1인 매체들이 유튜브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몇 번 검색만 하면, 유튜브는 나의 성향을 분석하여 이전에 보았던 내용과 유사한 방송이나 프로그램들을 친절하게 리스트업해서 준비해놓는다. 공중파도, 종편도 이제 더 이상 정보의 제공과 해석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을 걸러서 알아서 제공해주니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1인 매체라는 방송의 특성상 더 자극적인 정보와 판단이 재생산되면서 더 많은 확증편향들이 확대된다.심리학자 니커슨(R. Nickerson)은 확증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침투성이 좋아서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논쟁과 오해, 갈등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판을 치는 한국 정치와 사회를 정확하게 갈파하는 표현이다.'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라는 이해인 시인의 말을 기억하자.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지 말고 라떼, 커피, 홍차, 주스 중 어떤 것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자. 가치, 신념, 취향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2020년에는 많아지길 바라며 2019년의 칼럼을 마무리한다.

2019-12-11 17:19:13

김경덕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실패의 미학

12월이 되면 투자 유치를 원하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행사인 '데모데이'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된다. 필자도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스타트업들을 만날 수 있는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했다.마침 지역 출신이면서 창업 2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투자 유치에 성공한 유명 스타트업 대표와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 시작과 함께 후배 스타트업을 위한 격려를 건네는 순서가 오자 스타트업 대표는 연단에 올라가 놀라운 고백을 했다. "저는 그동안 4번의 실패를 거쳤으며 이번이 5번째 도전입니다."'스타트업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필자는 주로 '실패의 미학'이라는 단어로 비유하곤 한다. 여러 번의 창업 실패를 통해 기업을 경영하고 성장시킬 능력이 모자란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실패의 미학'을 통한 아름다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혁신적인 기업들도 창업 초기에는 '실패의 미학'을 거쳐 현재에 도달한 사례가 대부분이다.세상 모든 혁신의 흑역사를 대표하는 '실패의 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추천한다. 2년 전 출간되었지만 지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새파란 표지의 '블루 스크린'이라는 책이다. 이름부터 실패의 의미가 가득한 이 책은 너무 이른 혁신으로 실패한 사례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었으나 시장의 외면을 받은 비운의 제품까지 다양한 '실패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모토로라, 블랙베리 등 왕년의 스타 브랜드는 물론이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등 현재를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숨기고 싶은 실패까지 언급하며 실패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교훈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한 해를 정리하고 다시 새해를 향해 달려가야 할 스타트업들에게 일론 머스크의 말로 덕담을 전한다.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2019-12-11 17:13:15

영화 '아내를 죽였다'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새 영화… '아내를 죽였다', '매리', '속물들'

◆아내를 죽였다감독:김하라출연:이시언, 안내상, 왕지혜동명의 웹툰을 영화로 옮긴 스릴러. 회사 사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정호(이시언 분).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장을 찾지만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 어느 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와 술을 마신 후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별거 중이던 아내 미영(왕지혜 분)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자신의 옷에 묻은 핏자국과 피 묻은 칼을 발견한 정호는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친다. 알리바이를 입증하고 싶지만 간밤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 아내를 죽인 남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정호는 어젯밤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아이들'(2011),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의 이시언이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안내상이 그를 쫓는 지구대 대원으로 출연했다. 97분. 15세 이상 관람가◆매리감독:마이클 고이출연:게리 올드만, 에밀리 모티머뱃사람을 유혹하는 마녀 사이렌과 배와 비행기가 사라지는 불가사의의 버뮤다 삼각지대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관광객을 대상으로 레저업을 하는 데이비드(게리 올드만)는 무언가에 홀린 듯 딸의 이름을 가진 매리라는 배 한 척을 사게 된다. 뱃머리에 사이렌 흉상을 한 50년 된 낡은 범선. 어딘가 미심쩍어 하는 아내 사라(에밀리 모티머)와 달리, 그는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 두 딸과 선원들을 태워 첫 항해에 나선다. 승선한 이들은 점점 기묘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매리 호에 얽힌 숨겨진 진실들이 점차 드러나면서 이 가족의 목숨을 위협하는 정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던 그들에게 놀라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명배우 게리 올드만이 가장으로 출연한다. 85분. 15세 이상 관람가◆속물들감독:신아가, 이상철출연:유다인, 심희섭, 송재림2007년 신정아 사건 당시 미술관 불법 비자금 발견, 미술품으로 회삿돈 횡령 등 미술계 비리가 잇따라 터졌다. 이 영화는 이를 소재로 미술계의 비리를 그리고 있다. 애인 김형중(심희섭)과 동거중인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은 동료 작가의 작품을 베끼다시피 모사한 작품을 차용미술이란 말로 포장해 팔아먹고 산다. 원작자들로부터 소송이 끊이지 않는 그녀에게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는 촉망받는 작가들만 참여한다는 유민 미술관 특별전을 제안하며 잠자리까지 갖는다. 이런 우정 앞에 고등학교 동창 탁소영(옥자연)이 나타난다. 소영은 우정의 양다리 비밀을 빌미로 우정의 애인을 꼬셔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세 사람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네 남녀의 속물성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12-11 13:58:49

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특별 기고] 페놀의 도시에서 물의 도시로

물클러스터'물기술인증원 잇단 유치대구, 대한민국 물산업 전진기지로시민 똘똘 뭉쳐 이뤄낸 기적 스토리정부 예산·정책적 지원 끌어내 완성여기 대구시민이 똘똘 뭉쳐 이뤄낸 기적의 스토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 이야기'입니다.상수원이 거대 산업단지 하류에 있는 대구는 제 어린 시절부터 유독 수질 오염사고가 잦았습니다. 특히 대구 수돗물 사고를 세계적으로 알린 1991년 페놀 사태 때는 수돗물을 마신 임산부들이 유산했고, 작년 과불화 화합물 유출 사고 때도 대형마트마다 생수가 동나는 통에 마치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하지만 이제 '페놀의 도시'는 '물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대구 달성군에 물산업클러스터가 들어선 데 이어 한국물기술인증원 유치에도 성공해 지난 26일 개원식을 했습니다. 대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물산업 전진기지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된 것입니다.물기술인증원은 물 기술과 시제품의 국외 수출을 위한 인·검증절차 등을 주관하는 전문기관으로, 내로라하는 물 기업들이 모이는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기관입니다.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 물기술인증원 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저로서는 개원식을 보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되어 있는 대구로 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 대구경북이 국책사업에서 밀리는 경향 속에 유치를 장담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당 자치단체장을 두고 있고, 물 기업이 밀집해 있는 강력한 경쟁도시 인천의 도전으로 발표날까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대구시민의 유치 염원과 대구시 관계자들, 지역 국회의원들이 일치단결해 노력한 결과 물기술인증원 유치라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당연하다지만 당연한 것을 현실화 하는 데 수많은 노력과 땀이 숨어 있었습니다.이 글을 빌어 감사할 분이 많이 계십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TK출신 기업인으로서 고향 산업단지에 500억원이 넘는 투자를 결심하셨습니다. 출향 기업인의 모범적 향토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인종 물산업클러스터 입주기업협의회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입주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K의 영웅인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줘야 고용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도 뒤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또한 본 의원의 지적을 합리적으로 수용해 인증원 입지에 있어 공정한 심사로 행정의 귀감이 된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박천규 차관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물산업은 선진국이 각축을 벌이는 '블루오션'입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라 강조한 바 있으며, 한국수출입은행도 중동과 중국 등이 견인한 세계 물 시장은 2025년까지 900조원 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초기 단계인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세계적 물산업 인프라로 발돋움하려면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이 잘 작동해야 합니다. 실제로 세계 시장 석권을 노리는 프랑스와 싱가포르는 자국 물 기업을 육성하고 외국진출에 정부 예산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또한 이는 시민의 뜻이기도 합니다. 앞서 본 의원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은 "물산업클러스터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중앙정부의 예산 및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40.7%에 달하는 답을 주신 바 있습니다.실제로 물산업클러스터 기업 대부분은 중소기업입니다. 사업화와 기술개발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재정능력이 부족해 체계적 기술개발이 힘듭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중·단기 대책이 예산 지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클러스터 초기단계 연착륙을 위해 정부 예산 지원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 때문에 본 의원도 11월 14일 651억원의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 '3종 예산'의 상임위원회 증액 통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10일 집권여당의 예산안 날치기로 유체성능시험센터 예산 등 일부 증액안만 반영되는 데 그쳤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이에 대해서 환경부 산하기관의 다른 R&D 자금을 전용하는 등 다각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겠습니다.부디 국가 물산업클러스터의 성공으로 경제가 어려운 대구에 물 산업이라는 새 시대의 경제 지평이 열리길 기대합니다.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2019-12-11 11:36:14

김부섭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

[기고] 천년의 꿈, 신라왕경 다시 꽃피다

경북도민이 그토록 바라던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11월 19일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문화관광 웅도를 표방하는 경상북도의 목마름이 어느 정도는 해갈됐으리라.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천년 도읍지 경주의 관광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2017년 5월 김석기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의 골자는 신라왕경의 핵심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것이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천년간 잠자고 있던 찬란했던 신라 역사 유적이 빛을 보게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로 눈부신 문화 번영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역사 유적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지 않고 부분적인 발굴과 복원에 그쳤다. 다행히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 기본 계획을 수립해 2006년부터 신라왕경의 주요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경북도에서 문화재청, 경주시와 함께 2025년까지 총 9천4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신라왕경의 핵심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사업이다. 신라 왕궁인 월성, 9층 목탑으로 유명한 황룡사, 외교 사절을 접견하던 동궁과 월지,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를 맺어준 월정교,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고분군인 쪽샘지구, 서라벌의 도시계획인 신라방, 신라왕들의 무덤인 대릉원, 천체를 관측하던 첨성대 주변 등 8개 핵심 유적을 복원하는 일이다.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 옥동서원 등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천년 역사를 품은 세계적인 역사 유적 도시이다. 그리스·로마 문화가 서구 문화의 원류이듯이,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 유적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다시 찾는 일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현재 경주시)은 전성기에 인구 100만이 넘는 세계 4대 고대 도시(서라벌, 중국 장안,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이라크 바그다드)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그 규모를 자랑한다.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직접 신라 왕궁을 거닐며 과거 삼국통일에 대한 신라인의 염원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신라의 화랑정신은 1천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소중한 정신 문화이자 훌륭한 자산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경주 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이다.정부는 이번 특별법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신라왕경 복원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 실효성 있는 복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시행령 등 관계 법령을 만들 때 관계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정성을 기울여 특별법이 더욱 실효성 있게 추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디지털 재현, 수요자 중심의 복원 등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는 의미 있는 복원사업이 되도록 추진돼야 한다. 지난해에 복원된 월정교와 같이 복원된 유적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천년간 숨어 지낸 귀중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금강경에 '신화장구지'(新花長舊枝)라는 말이 있다. 새 꽃은 묵은 가지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유산이 왜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제 천년 신라의 역사 문화가 신라왕경특별법을 통해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2019-12-11 11:35:30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눈물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 본다는 말이 맞겠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단절은 요즘 젊은 연예인이 누가 누군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연예계 깜깜이가 되고 말았다. 간혹 식당에 켜놓은 화면에서 어딘가 본 듯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부자연스런 얼굴에서 세월 따라 마음대로 늙을 수도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직업적 고충을 읽을 수가 있다. 성형수술로 인해 주름과 함께 표정도 없어져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예전에는 '환갑노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60대는 노인 취급을 받았다. 막상 그 나이가 되었지만 청춘으로 착각을 하다가 거울을 보고서야 깨어나기도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되어 여성화 된다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잘 흘린다는 점이다. TV를 접하지 않으니 내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게 노화 탓인지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감정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지난 주 토요일은 전주를 다녀왔다. 고교 동기 자녀의 혼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북 전주 출신이면서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교편생활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처가가 전주에 있는 전형적인 영호남 커플이었다. 큰 아이도 외가가 전주에 있어서인지 대구에서 고교까지 다녔지만 전북대학교로 진학을 했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오명의 88고속도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원하게 확장개통 되어있었다.식이 진행되고 아이들 성장 과정의 영상이 화면에 비춰지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의 부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아이가 고교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떴다. 터울이 많이 진 동생이 형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고, 뒤로는 아이들과 같이 찍은 생전의 엄마 모습이 화면으로 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사연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 늦둥이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고인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부터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 곁에 못 오게 했다고 한다. 정을 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 아들은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의 배려가 담긴 천진난만한 그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했었다. 예식장에서는 엄마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울었지만 축가를 부르는 작은 아들만은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객관화된 슬픔이 더 서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결손에도 잘 자란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배로 행복하기를 빈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1 11:31:51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연예인 관찰카메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지금 지상파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건모 사태를 보면 연예인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이 보인다.◆김건모 논란으로 후폭풍 맞은 '미운 우리 새끼'SBS '미운 우리 새끼'는 최근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미혼으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철없는 일상을 그 부모들이 관찰하는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김건모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개국공신으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집에다 정수기에 물 대신 소주를 가득 담아 이른바 '정술기'를 만들기도 하고, 소주 기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아들이 하는 일상의 '해괴한 짓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거나 "뭐하는 짓인지"하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진 불편함을 대신 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의 초반 전성기를 만든 주역들은 출연자들보다는 그 엄마들이었다.하지만 엄마들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때론 과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 챙기는(?) 그 멘트들도 점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을 엄마들이 들여다보는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더하기 시작했다.최근 생활고를 토로했던 슬리피가 이상민을 만나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듣는 광경이나, 배정남이 이성민과 함께 화보를 찍는 장면, 임원희와 정석용이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가서 펼쳐지는 짠내 가득 여행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소개됐다. 그렇게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는 듯싶었다. 김건모 논란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고 피해주장 여성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안이 아니지만 이런 의혹제기는 공교롭게도 '미운 우리 새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김건모의 결혼소식이 전해졌고, '미운 우리 새끼'는 그의 프로포즈 장면이 나갈 거라는 예고를 내보낸 상황이었다.논란이 터진 후 '미운 우리 새끼'는 방송을 내도, 또 내지 않아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내지 않는다면 마치 김건모 논란이 사실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낸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운 우리 새끼'는 편집 없이 방송을 강행했다.◆김건모 사태가 끄집어낸 관찰카메라의 맹점해외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쇼는 말 그대로 리얼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들은 일반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때론 폭로에 가까운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다소 유화된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담는 내용도 폭로라기보다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게 관찰의 주체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달리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MBC '나 혼자 산다'가 한 때 15%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승승장구했던 건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관찰 영상에 대해 이런 저런 멘트를 덧붙이면서다. '나 혼자 산다'의 관찰 주체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 영상을 보며 던지는 짓궂은 농담들은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 관찰의 주체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밉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관찰카메라는 관찰 주체의 호감과 애정이 기본 전제가 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김건모 사태는 이런 관찰 주체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호감이 일순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었다. 아직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랬다. 그간 엄마의 시선이 상쇄시켜줬던 김건모의 갖가지 기행들은 호감이라는 필터가 치워짐으로써 달리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이런 문제는 '미운 우리 새끼'만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나 MBC '전지적 참견 시점'같은 관찰카메라들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나 혼자 산다'는 기안84의 기행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줬지만, 때때로 그의 작품이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전현무와 한혜진의 연애와 결별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과 부딪히며 구설이 되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에 대한 매니저의 과한 관리(?)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본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관찰의 초점이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매니저의 연예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시점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은 조금씩 식어버렸다.◆연예인 관찰카메라 득만큼 실도 커연예인 관찰카메라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것으로 해당 연예인의 호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별한 끼나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들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형식이다. 출연자는 그저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를 관찰하는 이들의 호감어린 멘트들이 덧붙고, 자막과 편집까지 마술을 부리면 그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관찰카메라는 결국 그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그 호감어린 시선이 지워지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 고스란히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커진 호감은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날 때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간다. 그건 해당 연예인에게도 큰 타격이지만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에도 직격탄이 된다.'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는 그래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한껏 집중된 관찰카메라의 조명을 그 연예인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지만, 조명이 꺼져버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실체는 더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이것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출연만 하면 존재감을 확 키워줄 것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실체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11 11:31:00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 일상 같은 성탄절

교회 집무실 창가에 성탄 촛불을 켰다. 흰색 양초 모양의 램프 열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전등이다. 켜고 끄는 것이 그저 스위치를 한 번씩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도 기분은 켤 때와 끌 때가 사뭇 달라진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시선이 창가로 가면 성탄 촛불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지금이 성탄의 계절임을 기억한다.교회 봉사부 교인들은 이미 김장을 하여 필요한 이웃에 나누었다. 수고 하는 중에도 다들 즐거운 표정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양념을 버무렸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과일과 금일봉도 드릴 예정이다.시내 중심가에는 대형 트리가 세워졌고, 불빛 찬란한 포토존에서 너도나도 셀카 촬영에 열중이다. 한결같이 환한 표정이다. 거리에는 빨간색의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구세군이 종을 치며 관악기를 연주한다. 상점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방송에서도 캐럴이 자주 나온다. 빨간 코트, 빨간 머플러, 빨간 모자가 어울리는 계절이다.연말연시의 아름다운 리추얼이다. 리추얼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회행위이다. 때로는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그냥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직업과 직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시계추가 흔들리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그냥 끼니때가 되어 먹는 것이다. 세 끼가 걱정거리가 된다거나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물어보고 감격하여 눈물 콧물 쏟아가며 먹는 식사라면 아마도 행복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일도 리추얼의 반복인 것이 더 행복한 삶의 증거일 때가 많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을 베푸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그저 반복되는 일상인 양 여긴다면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의미와 가치를 물을 것도 없이 그냥 해야 되는 일이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한다면 아름다운 것이다.올해도 작년처럼, 아니 작년보다 더 태연히 성탄절을 보내자.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듯, 서로 도우며 사는 삶이 너무나 당연한 리추얼로 살아가자. 이것이 더 성스러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다. 구세주는 특별한 곳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평범한 삶의 자리에 오셨다. 예수님은 특별할 것 없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목수 청년이었다. 매일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꾸리는 일상적 삶이 성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의미를 묻지 않는 곳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내가 피하고 싶은 비참한 현실로서가 아니라,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현실로 여기자. 아무렇지도 않게 자비를 베풀고, 특별하지 않은 마음으로 봉사하고, 즐겁게 남의 짐을 지고, 기쁘게 섬기자.연말이 되면 마음속에 우울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은 겨울의 우울을 떨쳐버리고 새 시간을 맞는 리추얼이다. 성탄의 불빛이 거리마다 밝혀져 있다. 마음까지 환해지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올린다.

2019-12-11 10:33:29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첫눈을 기다리며

네거리 신호를 기다릴 때 첫눈을 맞으면 좋겠습니다. 마땅하게 기다릴 것이 없어 첫눈을 기다립니다. 그렇다고 첫눈 같은 세상을 기다리는 건 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만도 아닙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듯 오지 않는 첫눈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들은 대체로 더디게 옵니다. 말라붙은 상상력을 애 태우며 와야 진정한 기다림입니다.흰색이 좋습니다. 눈이 멀 것 같은 흰색의 아득함이 좋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공중에 귀를 대고 들어볼 만한 '소리 없음'을 들어봅니다. 비가 아니라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눈이 아니라 눈이 오는 풍경이 좋습니다. 눈이 오는 풍경 속에는 들어볼만한 조용함이 있습니다. 조용함 속에 들끓는 함박웃음이 들립니다. 누군가 사랑스러운 웃음을 허공에 흩어놓습니다. 고달픈 불빛이 반짝거립니다.'닥터지바고'와 '러브스토리'의 테마 음악을 듣고 '첫눈이 온다구요'를 따라 부릅니다. 첫눈에는 보편성과 관념을 뛰어넘는 마법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마법의 힘으로 정치를 하면 성군이 되고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 마법의 근육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떠나간 사람을 되돌아오게도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기어이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기다림이 지쳐 노여움이 될 때까지.'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기는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문정희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사방이 온통 흰 것으로 뒤덮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묶였으면, '눈부신 고립'을 외치는 시의 행간에 동참할 수 있는 첫눈이 오면 좋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지상낙원을 눈으로 그려봅니다. 구름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눈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눈을' 자꾸자꾸 뿌려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생을 헐어 뿌려 주는 걸까? 궁금합니다. 눈이 된 생은 그래도 잘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낯선 곳을 떠돌아 몸을 누이며 눈은 금방 녹아내립니다. 일체의 잡음이나 군더더기 없이, 흰 눈이 텅 빈 허공을 가득 메워주면 좋겠습니다. 손등에 입술에 달라붙은 눈에게 하하, 호호, 온기를 전해 주고 싶습니다. 눈이 내려도 뛰어 내려도 허공은 제자리에 있습니다. 눈이 오지 않을 때에도, 눈이 왔다가 갈 때에도 허공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머지않아 눈이 올 허공의 눈부심이 좋습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10 11:11:06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는 달리 비타민C를 별도로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 개와 고양이는 정상적인 신체대사를 통해 비타민C가 합성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iloveadog.com.au)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비타민C는 동물에게 약일까? 독일까?

탄이(4·슈나우저)가 소변을 못 보고 힘들어 해 내원했다.검사 결과 탄이는 방광에 결석이 있었고 결석 중 일부가 요도를 막아 소변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배뇨장애는 심한 통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방광이 팽창되어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되면 급성신부전이나 요로감염증으로 악화되기도 한다.탄이는 급하게 수술을 받았다. 방광을 절개해 방광 내 결석을 제거하고, 요도에 막힌 작은 결석도 수압을 이용하여 방광으로 역류시켜 제거했다. 탄이는 4일 동안 방광 카테터를 장착한 채 입원 치료를 받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소변을 볼 수 있었다.탄이의 방광 결석을 성분 분석한 결과 옥살레이트 계열의 결석으로 확인됐다. 결석의 발생 원인을 찾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자와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탄이 보호자는 탄이에게 자신이 즐겨먹는 비타민C를 자주 나눠 주었으며 귤과 사과도 즐겨 먹였다고 하셨다.탄이 보호자에게 옥살레이트계열의 방광 결석이 비타민C와 관련성이 높다고 설명드렸다. 비타민C는 아스코르빅산(ascorbic acid)으로 불리기도 하며 체내에서 아미노산 글리신과 결합하여 결정체가 형성된다. 슈나우저를 비롯하여 다수 품종의 개와 고양이에서소변이 약산성일 때 잘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탄이 보호자분이 "비타민C가 개에게 해가 되느냐"고 물었다. 비타민C는 항산화 효과로 질병 예방, 노화·종양예방에 있어서 사람에게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와 고양이도 비타민C가 질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개와 고양이는 사람과는 달리 비타민C를 별도로 공급받을 필요가 없다. 개와 고양이는 정상적인 소화대사와 신체대사를 통해 비타민C가 합성되기 때문이다. 해적이나 선원들이 과일이나 비타민C를 공급받지 못해 발생하는 괴혈병이 개와 고양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이처럼 비타민C를 개와 고양이이게 별도로 급여할 필요는 없으며, 비타민C는 개와 고양이의 혈액 내에 일정 농도가 존재하면서 건강 유지와 질병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개와 고양이가 질병이 생기면 혈중 비타민C 농도가 급속히 소실된다고 한다.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개와 고양이에게 투여할 수있는 비타민C의 함량을 어린이에 비교하여 급여량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반려동물은 옥살레이트계열의 결석 발생이 높음을 염두에 둔다면 비타민C 급여는 동물병원에서 소변검사와 건강 상태를 검진을 받은 후 결정하는 것이 좋다.특히 슈나우저, 요크셔테리어, 푸들, 시츄, 비숑 등의 품종은 옥살레이트 계열의 방광결석이 다발하므로 비타민C 급여와 과일 급여는 자제해야 한다. 또 과일은 당도가 높아 비만과 영양과잉이 의심되는 반려견에게는 급여를 자제해 주셔야 한다.야채에도 비타민 C가 많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야채도 위험할까? 그렇지 않다.식탐은 있고 수분 섭취가 적고 간식을 자주 먹는 반려견의 경우 결석 발생 위험성이 훨씬 높다. 과잉 섭취된 미네랄이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소변이 농축되거나 방광염이 있으면 결석이 형성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반려견에게는 포만감을 유도하고 수분 섭취를 증가시키는 목적으로 야채(브로컬리, 양배추, 파프리카, 오이, 당근 등) 식이를 권하기도 한다.야채식이는 비타민C로 인한 결석 형성 위험보다는 소변이 묽어져 자주 배뇨함으로써 결석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비타민C 외에도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포함돼있는 점도 야채식이를 권장하는 이유다.비타민C는 개와 고양에게 영양제로 급여할 필요가 없다. 질병 치료와 예방의 목적으로 비타민C를 급여하고 싶다면 수의사의 진단하에 처방받길 바란다. 급여량이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2-10 09:37:21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惻隱之心(측은지심), 乘人之危(승인지위)와 공보사수(公報私讐): 인간의 삶

사람들은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구하려 든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위험이나 불행에 처했을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편에서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며, 곧 인(仁)이라고 했다.자신과 이해 충돌이 있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경우에도 측은지심이 발휘될까. 중국 후한(後漢·25∼220) 때 양주(涼州)라는 곳에 개훈(蓋勳)이라는 젊은 관리가 있었다. 당시 양주에는 무위태수(武威太守)라는 자가 횡포를 부려 소정화(蘇正和)라는 관리의 감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무위태수의 배후 세력을 두려워하고 있던 이 지역의 감찰관(刺史)인 양곡(梁鵠)은 오히려 소정화를 죽여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부하인 개훈에게 의견을 물었다. 소정화에게 원한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개훈에게 이 기회에 공보사수(公報私讐), 즉 공권력(公)으로 사(私)적인 복수(讐)를 하(報)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개훈은 "남의 위급한(人之危) 상황을 틈타(乘)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며 양곡을 설득해 소정화를 죽일 마음을 거두게 했다. '후한서'(後漢書) 우부개장열전(虞傅蓋臧列傳)에 나오는 이야기로 타인의 위급한 상황을 틈타 해치는 행위를 비꼴 때 쓰는 승인지위(乘人之危)의 유래이다. 개훈은 나중에 고위직에 오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듯, 인생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측은지심보다는 승인지위나 공보사수를 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非人). 한 해를 보내며 나는 인간다운 사람이었던가를 묻게 된다. 사람에 따라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해 시비가 갈린다. 측은지심, 승인지위, 공보사수 가운데 나는 어느 마음일까 궁금하다.

2019-12-09 19:17:41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진영논리 내 편 지키기와 도편(陶片)추방제

그리스 아테네에는 2천500년 전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현대 건물과 오순도순 키를 잰다. 고대 유적을 간직한 상징적인 장소가 아고라(Agora)다. '너른 광장'을 가리킨다. 현대 철학의 비조 소크라테스가 거닐었을 아고라 판아테나이카 도로 서쪽 끝 지점에 기둥이 죽 늘어선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탈로스 스토아(Stoa)다. 스토아는 지붕을 갖추고 한쪽이 야외로 트인 복도식 건물을 말한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을 둘러싼 회랑이나 경복궁 근정전 주변 회랑을 생각하면 쉽다.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고 비를 피할 수 있어 물건도 팔고 정치 토론도 벌였다. 아탈로스 스토아 전시 유물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ΘΕΜΙΣΘΟΚΛΕΣ)라는 이름이 적힌 도자기 접시가 눈길을 끈다. 무슨 사연일까?◆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승리 주역 테미스토클레스영화 '300'은 그리스 아테네 북방에서 BC 480년 펼쳐진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렸다. 당대 세계 최대 제국 페르시아가 아테네에 쳐들어왔을 때 스파르타가 보낸 300명의 지원군 전원이 죽음으로 대항했던 전투다. '테르모'(Thermo)는 '열기'라는 뜻이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BC 480년 상황을 떠올려봤다.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왕 결사대가 페르시아 대군을 일시 막아주는 사이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궤멸시킨다. 주역은 테미스토클레스 장군. BC 483년 은광을 발굴해 번 돈을 시민들에게 무상 배분하지 않고, 최신 3단 갤리선 100척을 건조해 전쟁에 대비한 테미스토클레스의 선견이 아테네를 구한 거다. ◆테미스토클레스를 내쫓은 도편추방제전쟁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운세가 기운다. 아테네는 당시 정치 지도자 선출은 물론 정책 결정. 재판을 국민이 맡았다. 아고라에 모여 개최하는 회의를 에클레시아(Eklesia)라고 불렀다. 민회다. 전쟁 승리 8년 뒤 BC 472년 민회는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조국을 배반한 혐의다. 조국을 구한 영웅이라도 민심을 거스르면 배반자로 낙인찍혀 한순간에 명예를 잃고 추방당한다. 도자기 접시나 파편을 오스트라콘(Ostrakon)이라 부르고, 여기에 추방하고 싶은 정치인의 이름을 적어낸 제도를 도편(陶片)추방제,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라고 부른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주민소환제, 혹은 탄핵제도다.◆도편추방 결정나면 10일 내 출국, 10년간 입국 금지아테네 민주주의에 도편추방제를 도입한 인물은 아테네의 민주개혁가 클레이스테네스다. BC 504~501년 사이다. 보통 2만여 명 가까이 모인 민회에서 6천 명 이상 찬성하면 해당 인물은 10일 이내에 아테네를 떠나야 했으며 10년간 민회의 번복 없이는 귀국할 수 없었다. 과거의 공적이나 진영, 파벌, 명망 가문을 가리지 않고 죄를 물었다. 전쟁 영웅 테미스토클레스가 8년 만에 민심을 잃고 쫓겨난 것은 물론 BC 490년 마라톤 전투 승리의 주역 밀티아데스 장군의 아들 역시 민심의 탄핵을 받고 추방됐다. 심지어 도편추방제를 만든 클레이스테네스의 조카도 도편추방제에 걸려 쫓겨났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페리클레스의 부친 크산티포스도 BC 484년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에서 하루아침에 도편추방당했다. 아테네 주권자인 국민들은 BC 5세기 13명의 정치 지도자를 그렇게 권력에서 몰아냈다.◆정치 명망가나 영웅도 한순간에 국민 이름으로 탄핵'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해 멋진 문구를 지어낸 미국의 19세기 작가 애드가 앨런 포. 1849년 40세에 의문사로 생을 마감하기 전인 1845년 '헬레네에게'(To Helen)라는 제목의 시에서 "영광은 그리스의 것이요, 위대함은 로마의 것"(To the glory that was Greece, And the grandeur that was Rome)이라고 읊조린다. 포가 찬미한 '그리스의 영광'은 바로 이런 민주주의다. 국가에 기여한 점이 있더라도 명망가라도 민심을 거스르면 가차 없이 단죄했던 아테네 도편추방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비롯돼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감찰무마 사건,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 등에서 정치권이 보여주는 내편 지키기 꼼수들은 2천500년 전 아테네 도편추방제에서 보여준 추상같은 신상필벌과 사뭇 다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비록 공이 있어도 내편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춘풍추상(春風秋霜)에서 더욱 빛난다. 집무실에 액자로만 걸지 말고, 실천할 때 국민의 감동을 얻는다.

2019-12-09 18:30:00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정부 개입 줄여야 경제가 산다

11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3% 감소하는 등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상품 수출이 10.2%나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 상태다. 미중 무역 분쟁에 한일 무역 분쟁이 겹쳤고, 결국 세계 수출에서 한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10년간 지켜온 3% 선이 무너졌다. 내년에도 수출이 크게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부터 9개월 연속으로 우리 경제에 대해 '부진' 판정을 내렸다. KDI는 "수출 부진으로 광공업 생산이 감소하고 서비스업 증가세도 낮아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低)성장이 저물가를 낳고, 저물가가 저성장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1월 말 "2%대 성장을 위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1970년대 연말 실적을 위해 밀어내기 수출을 하던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지난해 4분기에도 정부가 막바지 쏟아붓기를 했다가 올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를 기록했다. 환율도 하루 만에 10원이나 급등해 금융 시장에 대혼란을 불렀다. 그런데도 올해 다시 막판 쏟아붓기를 반복한다니, 내년 1분기도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된다.수출과 건설, 투자 부진에 따른 성장 둔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또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이 적극 개입하는 것은 현대 국가의 의무다.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성장률 1.9%에 대해 민간 기여도는 0.5%, 정부 기여도가 1.4%라 한다. 정부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경제활동을 주도해야 할 민간 부문의 창의성이나 적극성은 사라지고 재정 의존도만 높아질 것이다. 인위적 단기 처방은 경제주체의 의존 심리를 심화하고 경제의 기초 체력을 해친다. 탈규제, 감세로 민간 활력을 높여야 경제가 산다.

2019-12-09 18:00:00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서민들의 애환, 연탄

'연탄에 관해서는 약 만t가량 확보될 것인데 현재 원료 6천t을 받아 방금 제조 중이니 나머지는 곧 대구연료조합이 확보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부언해 둘 것은 일반 부민 각자가 당국의 월동 연료의 배급만 의존하지 말고 각자가 자력으로 확보에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이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6년 9월 24일)찬바람이 불면 부민들의 걱정은 하나둘 늘었다. 추위가 몰아치는 엄동설한을 무사히 넘기려면 그만큼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당국은 가을이 시작되자마자 각자 알아서 겨울 준비를 하라고 다그쳤다. 부민들은 우선 겨우내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했다. 곡식을 미리 챙겨두지 않으면 보릿고개 훨씬 이전부터 굶주릴 게 뻔했다. 무엇보다 추위를 견디려면 월동 연료가 필요했다. 그 시절에는 땔나무인 장작이나 목탄, 연탄 등이 주요한 겨울 연료였다.당시 대구의 사회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해방 3년이 지나도록 문전걸식을 하는 부민들이 2만여 명에 이르렀다. 전재민과 이재민들이었다. 이들은 대구역 앞이나 길거리에서 행상을 하며 입에 풀칠하기조차 버거웠다. 집이 없어 천막이나 움막, 길거리에서 한뎃잠을 자기 일쑤였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그들은 땔나무를 주워 오거나 산에 가서 나무를 구해 와 불을 붙이고는 언 몸을 녹였다. 이렇듯 장작 같은 땔나무는 그나마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월동 연료였다. 밥을 짓고 방을 데우는데 장작불은 그만이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땔감은 시장에서 사고팔았다. 신탄상(시탄상)으로 불린 장사꾼은 장작이나 목탄인 숯을 팔았다. 대구의 경우 칠성시장 인근에 땔감을 팔러오는 땔나무꾼이 낯설지 않았다.땔나무를 대표하는 장작은 통나무를 베어 잘라 쪼갠 나무다. 이러다 보니 장작으로 인해 산림 훼손이 뒤따랐다. 일제강점기 때 무분별한 나무 베기로 벌거숭이산이 된 데는 땔감 채취도 한 원인이었다. 산림 훼손을 줄이는 데는 장작 대신에 석탄이 제격이었다. 하지만 석탄은 채취나 수송 등의 문제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게다가 값마저 비쌌다. 부산에서 대구로 석탄을 수송하는 도중에 도난당하는 일이 잦았던 이유다.시간이 흐르면서 석탄가루로 만든 원통형의 연탄이 난방 연료로 자리 잡았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새해가 되면 정부는 서민들을 위해 생활필수품의 가격 안정을 발표했다. 쌀과 보리, 밀가루, 소금 등 먹을거리와 고무신, 비누, 등유, 무명과 비단 따위의 천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연탄이 빠지지 않았다. 연탄은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었다.연탄은 구공탄(구멍탄)으로도 불렀다. 불이 잘 타게 하려고 아래위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다. 연탄은 오래 타고 다루기 쉽고, 화력이 좋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에 연탄가스로 인한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지금이야 연탄은 북성로 석쇠불고기를 맛있게 익혀주는 연료로 익숙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연탄은 여전히 이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2019-12-09 18:00:00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

쉽게 쓰고 마구 버려지는 일회용품몇백 년간 썩지 않고 환경 재앙 야기식음'호흡 통해 사람 몸에 대량 흡수사용 줄이고 대체품 개발 서둘러야최근 미국 CNN방송은 스코틀랜드의 한 섬으로 밀려와 숨진 무게가 20t인 향유고래의 위에서 어망의 일부, 플라스틱 컵 및 빨대 등으로 이루어진 약 100㎏의 쓰레기 덩어리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전했다. 지난 8월에는 북극에서 내리는 눈에도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영국 BBC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또한 지난 5일 영국 데일리 메일 등에 따르면 약 58만 마리의 소라게들이 인도양과 태평양 섬 두 곳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죽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들 보도는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플라스틱이 사용된 지는 100년이 조금 넘었으나 수천가지의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의 개발과 생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속화해 지금은 플라스틱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플라스틱은 생명을 구하는 장치들로 의학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고,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했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경량화해 연료와 대기오염의 절감에 기여했고, 헬멧, 인큐베이터, 정수 장비 등을 통해 많은 생명을 구했다.그러나 플라스틱이 제공하는 편리성으로 인해 플라스틱의 어두운 면인, 쉽게 버리는 문화가 생겨났다. 오늘날 일회용 플라스틱이 매년 생산되는 전체 플라스틱의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플라스틱 봉투와 음식 포장용기 등과 같이 많은 플라스틱 제품은 사용 기간이 불과 몇 분에서 몇 시간 밖에 되지 않지만 몇 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우리 환경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플라스틱 오염은 주로 재활용이 잘 되지 않고 매립지에 버려지거나 자연에 방치되는 개인 및 가정 폐기물로부터 온다고 한다. 이들 폐기물은 바람과 비에 의해 하수구, 소하천, 강을 거쳐 해양으로 흘러간다. 80%의 해양폐기물은 육지로부터 온다고 추정되고, 이는 매년 약 8백만t에 이른다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더 많아진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해양에 도달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햇빛, 바람 그리고 파도에 의해 작은 입자로 부서진다. 많은 경우 5㎜ 이하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이 돼 해류와 기류를 타고 해양과 육지로 확산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더욱 작게 부서져서 극세 플라스틱 입자가 되고 이들은 상수도에서도 발견되고 공기 중에도 떠다닌다.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으로 인해 조류, 육지 포유류 그리고 물고기와 해양 생물에 이르기까지 매년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사망하고 있다. 또한 우리 식탁에 오르는 물고기, 새우, 홍합을 포함한 100개 이상의 수생 종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이로 인해 동식물의 개체 수 감소와 이에 따른 식량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은 식음과 호흡을 통해 다량의 미세 및 극세 플라스틱 입자를 섭취하고 있다. 결국 플라스틱의 편리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일단 플라스틱 폐기물이 해양에 도달하면 제거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들이 강이나 바다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선된 플라스틱 폐기물의 관리 및 재활용과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선 각 개인은 불편을 감수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 나아가 기업들에게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사용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들 대체 제품이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구매하며, 정부에 대해서는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은 규제하고 이를 대체하는 제품의 생산과 소비는 장려하는 제도와 법규를 제정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교육기관과 언론도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시민 의식을 전환하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개인은 행동하지 않으면서 기업과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려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개인의 의식 전환과 작은 행동이 가장 효과적인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2019-12-09 11:19:21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선생에게

대학 졸업 후, 아르떼 예술 강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선발과정에서 운 좋게 최후 2인으로 남게 되었다. 평소 연극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부푼 마음으로 대구 소재의 어느 고등학교에 수업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일까?' 수업 준비를 하며 과거 학창시설 좋아했던 선생님들을 모두 섞어놓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롤모델 선생님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학생들에게 화내지 않기,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명령하지 않고 설득하기….몇 가지 다짐을 하며 사전 답사를 위해 학교로 찾아갔을 때,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담당선생님을 보자마자 어쩌면 상처받은 청소년들을 연극으로 위로하고 싶었던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담당선생님은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중앙계단만 이용하세요." "바로 옆 반에 이어서 강의가 있더라도 쉬는 시간에는 교무실로 내려오세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첫 수업을 앞두고 있는 외부강사에게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충고였다.어느 날, 나는 수업 시간에 늦어서 무심코 교문에서 가까운 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담당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그 계단은 외부에 노출된 계단이었는데 그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계단에 줄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오르기 시작한 계단을 다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태연한척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한 학생이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이에요?" "아마 그럴걸?" "아, 선생이구나." 그제서야 길을 비켜주었다. 이 외에도 날 당황하게 만드는 경험은 계속되었다. 쉬는 시간에 내가 앞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행각을 벌이는 학생들, 수업 중에 울리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 학교선생님들에게는 그런 일이 일상인 듯 개의치 않았다. 속상한 마음에 담당선생님께 울분을 토했다. "어떻게 선생이 학생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선생님도 처음엔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개도하려면 선생님들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회의감이 몰려왔다. 소득수준으로 계층을 구분하는 국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가정, 맞벌이를 해야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교권은 누가 무너트린 것인가?먼저 선(先), 날 생(生). 선생님의 한자 풀이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뜻일 것이다. 부모를 포함, 누구나 누구에게는 선생이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을 욕할 수 없다. 나는 그 학생보다 선생이므로 그 학생이 내뱉은 담배연기에 책임이 있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09 11:18:21

최주원 대구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 위원

[기고] 3․1운동 100주년 한해를 뒤 돌아 보며

대한민국 역사상 유난히 뜻깊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한 해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저물어 가고 있다.우리 대구에서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예비검속 등에도 불구하고 3월 8일 토요일 오후 1시, 종교계와 학생, 일반 시민 등 약 1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문시장(현 섬유회관 맞은편 실 골목)에서 첫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이어 3월 10일 오후 4시경 약 200명과 3월 30일 오후 2시 무렵 2천여 명이 남문 밖 시장인 덕산정 동문시장(현재 염매시장)에서 두 차례 시위를 펼쳤다. 4월 15일에는 50여 명이 모여 남구 대명동(당시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공동묘지 옆 도로에서 네 번째 시위를 가졌다.특히 4월 26일 밤 10시경에 팔공산 자락 동구 미대동(당시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의 채갑원, 채희각, 채봉식, 채학기 등 네 사람이, 28일 밤에는 네 사람 외에 미대동 채경식, 채송대, 채명원, 미곡동 권재갑 등 19세부터 26세까지 젊은 여덟 청년들이 미대동 여봉산(礪峯山)에 올라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두 차례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는 대구 유일의 마을 단위 독립만세운동이다.3·1운동 100주년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대구시는 지난해 100주년 기념사업 시민추진위원회를 각계각층으로 구성하고 올해 시와 구·군별로 대규모 3·1절 기념식 및 만세 재현행사를 개최했다. 호국보훈대상 제정, 국가유공자 명예의 전당 조성, 독립정신 계승·발전 국제 세미나 등 기억과 기념, 발전과 성찰, 미래와 희망 등 3개 분야에 30여 개 사업을 계획하여 완료하거나 추진 중에 있다. 구·군에서는 뮤지컬 공연, 태극기 동산 조성, 청소년 그림 그리기 등을, 대현도서관 등에서는 3·1운동 발자취 인문학 강연도 수차례 있었다. 그리고 각 단체에서 대구 독립운동 유적 100곳 답사여행, 대구의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구 여성 독립운동 등 책자 발간은 매우 뜻있는 일이다.대구에는 특별한 기념사업이 있었다. 동구 팔공산 자락에서 민간단체 주도로 100년 동안 묻혀 있던 '미대마을 애국지사·여봉산 유적지 재조명' 사업을 벌인 것이다.먼저 '광복소나무사랑모임' 봉사단체에서 지난 1월부터 미대마을 만세시위 자료 조사, 8인 애국지사 생가 및 유족 찾기, 마을 전체에 태극기·꽂이 기증 및 달기, 마을에서 여봉산까지 약 2㎞를 '여봉산 독립만세 운동길'로 명명 선포하고 안내석도 설치하였다.2월에는 지역 주민 10여 명이 뜻을 모아 '기념비건립위원회' 발족에 이어 7개월 동안 건립비 확보, 대구시 조형물 심의, 비 제작 등 건립 절차를 거쳐 8월 15일 광복의 날에 여봉산이 바라보이는 미대마을 앞에서 역사적인 '미대 여봉산 3·1 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제막하여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했다.한 해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3·1운동 100주년,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있다. 동구 미대 여봉산과 남구 대명동 만세시위 자료 발굴 집대성, 애국지사 예우, 기념비 현충시설 지정과 홍보를 통한 학생과 시민들의 애국심 고취 등 할 일이 남아 있다. 또 대구 지역 3·1운동과 애국지사의 발자취와 정신을 기리는 일들을 찾아 수행하여야 한다. 애국지사 유족, 각급 민간단체, 보훈청, 행정기관의 관심과 노력으로 3·1운동 기념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2019-12-08 15:49:24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만들어 의제와 무관한 발언 허용 안 돼 다음 회기 때 첫 번째 안건 표결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 봤으면모두가 필리버스터라고 한다. 언론은 물론 심지어 국회의장과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이 199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결과 국회가 마비되었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이를 필리버스터라고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틀렸다. 자유한국당이 신청한 것은 필리버스터가 아니라 무제한 토론이다.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긍정적인 제도이다. 무제한 토론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거나 본질을 외면한 채 필리버스터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 있다.필리버스터(Filibuster)는 미국 상원의 독특한 의사 진행 모습이다. 하원에서는 엄격한 발언 시간 제한이 있지만 상원의원의 발언 시간은 원칙적으로 무제한이다. 한 의원이 단상에서 발언을 계속하는 경우 재적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없이는 중단시킬 수 없다. 동화책, 요리책, 헌법전 낭독 등 의제와 관련 없는 발언도 무한정 허용된다. 그 결과 의원의 발언 중 회의가 지연되는 '의사진행방해'가 된 것이다. '해적'을 뜻하는 단어가 어원이라는 말처럼 회기를 넘겨 특정 의안을 폐기시키려는 게 필리버스터의 목적이다.무제한 토론은 다르다. 관행적으로 인정된 필리버스터와 달리 국회선진화법 일환으로 우리 국회법 제106조의 2에 명확히 규정된 제도이다. 한 사람에 의한 단상 점거 발언인 필리버스터와 달리 무제한 토론은 재적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의원들이 발언을 이어간다. 의제와 무관한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 점도 다르다. 필리버스터는 시간을 끌어 회기를 넘기면 해당 의안이 폐기돼 버린다. 회기불계속의 원칙 때문이다. 반면 회기계속의 원칙이 적용되는 우리 국회에서는 회기가 끝나도 해당 의안이 폐기되지 않는다. 회기 종료 후 다음 회기 첫 번째 안건으로, 무제한 토론 종결 즉시 해당 안건을 표결해야 한다.필리버스터는 '의사진행방해'를 통한 법안 폐기에 목적이 있는 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쟁점 사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무제한 토론은 본질적으로 "쟁점 안건의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이유이다.문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가 무제한 토론 제도를 정쟁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데 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반대 토론을 실시한 바 있다.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총 38명 의원이 192시간 27분 동안 발언을 이어나갔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이라지만 그런 기록은 의미가 없다. 여야의 '토론'이 아닌 야당의 일방적 연설로 그쳤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의 의견이 함께 표출될 때만이 국민이 진실을 알 수 있다. 무제한 토론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한 반쪽짜리로 그친 것이다.현재 문제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이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법안 상정을 마치겠다고 한다. 한국당이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더라도 정기국회 후 바로 임시회를 소집,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이다.문 의장과 여야 모두에게 호소하고 싶다. 제대로 된 무제한 토론을 한번 해 보라고.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좌파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민주당과 일부 야당은 국회와 검찰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고 한다. 최종적으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법안 내용도 아직 확실치 않거니와 솔직히 국민들은 진영을 갈라 싸우는 각 당의 주장에 동조할 뿐 그 내용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국회의원들 스스로 도입한 제도가 무제한 토론이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엄청난 성능의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도 전화기 정도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 사용설명서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사용법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가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닮았다. 무제한 토론이라는 스마트폰급 제도가 있음에도 여전히 돌멩이 싸움 수준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 지금이라도 무제한 토론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어보기 바란다.

2019-12-08 15:48:55

종이에 담채, 155.5×4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용준(1904~1967) '수화소노인가부좌상'

근원 김용준은 자화상도 그렸고 지인들도 그렸다. '수화소노인가부좌상(樹話少老人跏趺坐像)'은 아꼈던 후배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를 그린 소조(小照)식 인물화이다. 최근 한국 미술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바로 그 김환기이다. 김용준은 『근원수필』에서 김환기를 애정 어린 어조로 여러 번 언급했고 '키 장다리', '항아리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며 인물 스케치를 곁들여 대중매체에 「키다리 수화 김환기론」(『주간서울』57, 1949.10.17)을 발표한 일도 있다. 김환기는 6척 장신에 마르고 목이 길어 학 같았다고 하는데 큰 키와 어울리는 장축(長軸)으로 화면을 구성했다.'수화소노인가부좌상'을 세로로 큼지막하게 써넣어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전서나 예서로 써넣는 표제 양식을 제목으로 활용한 것이다. 조선회화를 연구한 김용준의 미술사학자로서의 식견과 그 식견을 지인을 그린 인물화에 멋지게 적용시킨 화가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글씨는 조형성이 풍부한 김정희 고예(古隸)의 영향을 받아 자기화한 서풍이다. '상(像)'자를 전서로 쓴 것 또한 한 작품에 다른 서체를 섞음으로서 파격의 생동감을 준 김정희의 방식을 응용한 것이다. 그려진 인물로 보나 입고출신(入古出新)으로 고전을 체화한 양식으로 보나 김용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색이 없다.조선 도자를 애완(愛翫)한 김환기의 모습도 드러난다. 김환기가 오른쪽 팔을 기댄 책상 위에는 책 4권과 붓 3자루가 꽂힌 필통이 있는데, 필통은 순백자로 보인다. 가부좌하고 앉은 김환기의 무릎 앞에 물고기가 그려진 큰 그릇은 이 날 근원과 수화의 담소(談笑)거리였던 철화 분청사기일 것이다. 김환기는 온 집안에 항아리가 가득한 '항아리광(狂)'이었다. 김용준은 그런 김환기를 "삼도화기(三島畵器)에까지 발을 뻗쳐서 항아리 열(熱)로 말미암아 탕진가산을 하다시피"한다고 했는데, 삼도화기는 그림이 그려진 분청사기이다. 김환기의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연기가 꼬불꼬불 올라가고 있어 유머러스한 현장감이 생생하다.화면의 왼쪽 아래에 두 줄의 작은 글씨로 "시 정해 불탄절 후일(峕丁亥佛誕節後日) 근원 점오선생 목수 사(近園點烏先生沐手寫)"라고 쓰고 '취중락(醉中樂)'으로 보이는 유인(遊印)을 찍었다. 1947년 초파일은 양력 5월 27일이므로 바로 뒷날이라면 28일 그린 것이다. 이 때 김용준은 44세, 아홉 살 아래인 김환기는 35세였다. 제목에서 김환기를 '소노인(少老人)'이라고 한 역설적 조어 또한 그림과 글씨만큼 멋스럽다. 30대 중반인 김환기가 마치 노인네인양 골동을 좋아하므로 노인이라고 하면서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어린 노인'이라고 한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12-08 06:30:00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개는 훌륭한가? 

요즘 개 헌혈 공익광고가 전파를 타고 있다. "헌혈 한번이 반려견 4마리를 살린다"고 하며, '아임 도그너(I'M DOgNOR)'를 써 붙인 차가 헌혈 제공견을 찾아가는 광고다. 'DOgNOR'는 개(DOG)와 제공자(DONOR)를 합한 표현이다. 2~8세까지 몸무게 25kg 이상인 대형견이어야 헌혈 할 수 있고, 헌혈하면 '아임도그너'라고 적힌 노란색 스카프와 조끼, 헌혈증을 제공해 준다.개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은 의아해 할 수도 있고,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공감할지 미지수다. 그러나 개가 아파서 수혈을 해봤던 사람들은 공혈견의 존재와 수혈용 개를 사육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반려견 천만 시대'가 되었다는데, 이번 광고로 참여자가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또 TV프로그램 중에 '개는 훌륭하다'가 관심을 끌고 있다. 매주 한 번 방영하는데,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이 문제해결을 요청하면, 남녀 진행자, 애완동물 상담사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스태프들이 상황을 점검하다 새끼를 지키려는 엄마 개에게 물리는 등 쉽지 않은 진행이지만 잔잔한 감동을 준다.식용으로 키워지는 여러 마리 개를 외국으로 입양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도 하고, 같이 자라던 동료 개가 다른 곳에 입양될 때, 그들의 슬픈 이별장면 등을 세밀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어린 새끼들이 잘 적응하도록 양육법을 가르쳐 주며, 새 식구가 된 개와 키우던 개와의 영역싸움 갈등을 해결해 주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의 대안을 모색해준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필자도 시골집에서 대형견 삽살개와 함께 살고 있다. 종교단체에서 키우던 개인데, 주변 아파트 공사로 스트레스를 받아 털이 빠지고 몸도 고달파 괴로워했다. 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어 안타까워하다 시골집으로 데려와서 치료하면서 돌보게 되었다.지금은 건강해지고, 자기 뜻도 많이 표현한다. 비 오는 날은 배변도 참으며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나가고 싶으면 버티고 서서 주인이 나오길 압박하기도 한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온 후에 좋아하는 뒷산 오르기를 거부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습할 때 생기는 나무 냄새를 싫어한다고 한다. 감정이 서로 통해서 마음이 아련할 때가 많다.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오랜 교감으로 가족애를 갖게 된다. 알고 보면 개 뿐 아니라 대다수 반려동물은 훌륭하다. 단지 관심도가 낮아서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실천이 배려하는 삶의 출발이고, 그것이 기본임을 깨달아 가는 사회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개가 훌륭하려면 인간이 훌륭해야 한다!채명 무용평론가

2019-12-08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정약용(丁若鏞)

곡식이 많은 집엔 그걸 먹을 사람 없고 / 有粟無人食(유속무인식)자식이 많은 집엔 꼭 배고파 걱정일세 / 多男必患飢(다남필환기)높은 벼슬하는 놈은 어리석은 놈들이고 / 達官必憃愚(달관필준우)재주 있는 사람들은 통 등용이 안 된다네 / 才者無所施(재자무소시)온갖 복 다 갖춘 집 찾아봐도 거의 없고 / 家室少完福(가실소완복)지극한 도가 항상 쇠퇴하기 마련일세 / 至道常陵遲(지도상능지)아비가 아껴본들 자식들이 펑펑 쓰고 / 翁嗇子每蕩(옹색자매탕)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꼭 바보라네 / 婦慧郞必癡(부혜랑필치)달이 둥글고 나면 구름이 자주 덮고 / 月滿頻値雲(월만빈치운)꽃이 피었다 하면 바람이 떨궈놓네 / 花開風誤之(화개풍오지)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다 이 꼴이라 / 物物盡如此(물물진여차)나 혼자 웃는 마음 아는 사람 없을 거야 / 獨笑無人知(독소무인지)* 원제 : 혼자 웃어봄(독소, 獨笑)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먹을 것 많은 집엔 그걸 먹을 사람 없고, 식구가 많은 집엔 배고파서 죽을 지경.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높은 벼슬하는 놈은 바보 천치 등신이고, 재주 있는 사람들은 다 내버려지고 있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청복 홍복 다 갖춘 집 '못 찾겠다 꾀꼬리'고, 지극한 도가 항상 쇠퇴하고 마는구나.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아비가 아껴본들 자식들이 펑펑 쓰고, 아내가 똑똑하면 남편은 얼간이라.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달이 둥글고 나면 구름이 냅다 덮고, 꽃이 피었다 하면 세찬 바람 불어오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다 이 꼴이라, 나 혼자 웃는 마음 아는 사람 없을 거야.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여당은 야당 보길 무슨 벌레 보듯 하고, 야당은 반대 외엔 하는 일이 전혀 없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여야가 서로서로 실수하기 시합하며, 그 실수 꼬리 잡고 내동댕이치려 하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아파트 값 잡는다고 정책을 쏟아내도, 강남의 아파트값 하늘 끝을 모른다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다 같이 잘 살자고 그렇게 외쳐대도, 빈부간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네.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개혁의 나팔수가 이미 엉망진창이라, 적폐청산 외치면서 적폐를 쌓아가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이게 나라냐며 촛불 든 사람들께, 이게 나라냐며 다시 촛불 들고 싶네,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이 세상 온갖 일들 모두 다 이 꼴이라, 나 혼자 웃어보네, 아는 사람 없을 거야.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 허허 그것 참 이거야 나 원.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12-07 06:30:00

우남희 작 '계산성당에서'

[내가 읽은 책]시대의 소음/줄리언 반스/2017. 다산북스

씩씩거리며 언덕배기로 올라오는 차 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의 주범은 다름 아닌 쓰레기 수거차다. 이틀이 멀다하고 고요를 깨우는 생활의 소리는 분명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소음이라고 할 수 있다.허나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은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소음이라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폭력과 부조리라는 소음으로 탄압받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레닌 사후,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대적인 탄압과 숙청을 단행하게 되는데 일명 '피의 숙청'이 그것이다. 이 소설은 그 시대를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쇼스타코비치는 빅토르 쿠바츠키가 이끄는 지역 오케스트라와 함께 생애 첫 피아노 콘서트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는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러시아식으로 번안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공연하는데, 그 공연을 본 최고 실권자인 스탈린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혹평하며 금지 및 탄압을 한다.스탈린 정권의 눈 밖에 벗어난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여행 가방을 들고 승강기 옆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며 과거를 생각하며, 미래를 두려워하며, 짧은 현재의 시간동안 담배를 피우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이 내 양손을 자른다 하더라도 나는 입에 펜을 물고서라도 작곡을 할 것이다."(p74)라며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진정한 작곡가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무게 앞에 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이다.하지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타협 없이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스탈린에게 헌정하는 '숲의 노래'와 같은 선전용 음악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쇼스타코비치의 이중적 태도를 두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잣대로 권력층의 그늘 아래서 산다고, 기회주의자라고 감히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까. 친일 행적을 한 예술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들의 행적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들이라고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갈등과 번민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영국에서 태어난 줄리언 반스는 역사와 진실, 사랑이라는 주제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영국 소설가로는 유일하게 프랑스의 메디치상을 수상했으며 포스터상, 쿠텐베르크상 등을 수상했고,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맨부커상을 그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수상했다."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p135)에 밑줄을 긋고 머뭇거리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피아노 반주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우남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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