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조선지위인(朝鮮之偉人)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조선지위인(朝鮮之偉人)

1922년, 식민지 조선에서 출판된 '조선지위인(朝鮮之偉人)'은 서가 한편에 심상하게 놓여 있었다. 모서리가 닳아 손끝에서 스르르 빠지는 책장을 잡아채며 책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해 본다. 이렇게 오래되어 겉장이 나달나달한 책을 펼쳐 종이 냄새를 맡으면 같은 용도의 물건으로서 책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 것이라던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절절히 실감하게 된다. 거추장스러운 별도의 장치 없이 오래 전 인쇄된 책을 그저 펼치는 것만으로 내용에 접근할 수 있으니 말이다.1921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천도교 교단의 자금으로 잡지를 발간하던 개벽사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선의 10대 위인 투표를 실시했다. 개벽사는 잡지 지면을 통해 이 이벤트를 대대적으로 광고했고, 몇 천 명의 독자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 시기의 문맹률이나 비용을 들여 엽서를 보내야 하는 수고로움을 고려하면 투표에 참여했던 독자들의 열기는 상당히 뜨거운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시청자들이 투표로 아이돌을 선발하는 프로듀스 101의 성공이 우연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당시 투표로 선정되었던 10대 위인은 솔거, 최치원, 최충, 문익점, 서경덕, 이황, 이이, 이순신, 최제우, 유길준이었다. 이들은 각각 조선의 예술, 문학, 교육, 산업, 과학, 사상, 정치, 군사, 종교, 사회 개선 분야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꼽혔다. 이듬해 개벽사의 주필이던 김기전은 이들 위인의 업적을 해설하여 책으로 엮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조선지위인'이라는 책이다.'조선지위인'에는 독자들이 뽑은 위인 외에도 두 명이 추가되었다. 김기전은 굳이 부록이라는 형식을 택해 김옥균과 전봉준을 책 뒷부분에 포함시켰다. 투표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둘을 위인의 반열에 나란히 놓고자 했던 것이다. 김옥균과 전봉준은 각각 갑오개혁과 동학혁명이라는 미완의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경술국치 이후 10여 년이 경과하고 연전의 3.1운동마저 좌절되었던 1922년의 조선에서 이들은 조선의 앞에 펼쳐질 수 있었으나, 끝내 가지 못한 길이었다. 목차의 '부록'이라는 굵은 글자 위로 당대 조선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회한이 스친다.경북대도서관에는 1922년에 인쇄된 초판본뿐 아니라, 1926년 재판본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조선지위인'은 재판을 찍고, 출판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베스트셀러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책이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은 반만 년의 지난 역사를 훑어 뛰어난 인물을 선정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최치원, 이순신을 비롯한 위인들의 구체적인 업적을 살핌으로써 조선의 영예로운 과거를 곱씹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과정은 독자들에게 손상된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경험이었을 것이다.너무나 당연하게 위인으로 꼽히는 인물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위인들은 당대의 필요에 의해 호명된다. 식민지 시기 내내 위인전과 각종 서사물에 빈번하게 등장했던 것은 이순신이었다. 최근에는 성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만덕 등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여성 인물의 위인전이 속속 출판되었다. 그리고 대중문화,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반영하듯 방탄소년단이나 아이유 등 K-팝스타의 위인전이 시중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만약 2021년의 위인을 투표로 뽑는다면 어떤 인물이 새롭게 등장할지 새삼 궁금해진다. 지금, 당신의 위인은 누구인가요?김도경 경북대 교수

2021-01-23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눈(雪)-羅隱(라은)

[이종문의 한시산책] 눈(雪)-羅隱(라은)

다들 눈이 오면 풍년이 온다는데 盡道豊年瑞(진도풍년서)그래 풍년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건가 豊年事若何(풍년사약하)서울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은데 長安有貧者(장안유빈자)눈이 많이 오면 안 되고 말고 라네 爲瑞不宜多(위서불의다) 난데없이 함박눈이 펄펄 내리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동네 강아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눈 내리는 들판 속에서 눈을 뒤집어쓴 채 서로 뒤엉켜서 마구 나뒹군다. 얼마나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지, 저러다가 혹시 꼬리가 부러질까 걱정이 덜컥 될 정도다. 신이 나기는 개구쟁이 아이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천지를 모르고 깨춤을 춘다.어른들도 나름대로 감회가 새롭다. 그들 가운데는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면서 놓쳐버린 첫사랑을 생각하는 낭만주의자도 드문드문 있다. 하지만 나이든 축들은 대부분 눈이 좀 풍성하게 내리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현실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꼭 믿는 것은 아니지만,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민간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먹고 사는 문제가 발등의 불이었던 시절이니까, 눈이 많이 내려 풍년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틀림없이 있는 법이라서, 사람들 모두가 눈이 많이 내리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눈이 많이 내려 풍년이 들면 좋기야 물론 좋겠지만, 풍년은 내년이 되어야 비로소 오는 것. 내년이 되기도 전에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내년의 풍년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신문지를 이불 삼아 혹독한 겨울을 넘겨야 하는 노숙자들에게는 내년의 풍년보다 눈앞에 닥친 혹독한 눈보라가 지금 당장 넘어야 할, 아찔하기 짝이 없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이다. 그러니 설사 내년에 풍년이 든다 하더라도 지금 눈이 많이 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 '화로를 피운 방 안에서/ 주인어른이 창문을 열고 과일을 사 오라며 말씀하신다/ "춥지도 않은 날에 불을 너무 많이 피웠어/ 열이 나 못살겠군!" 처마 밑 거지 하나/ 북풍에 이를 으드득 갈며 죽을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처마 밑과 안방 사이엔/ 단지 얇은 창호지 한 장뿐' 근세 중국의 시인 유복(劉復: 1891-1934)의 시 '창호지 한 장 사이로'이다. 창호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도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이토록 다르다. 정치란 게 뭘까?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서로 다른 마음들을 잘 조절하여 우리 모두가 화해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일 게다. 잘하고 있는가? 올해는 좀 잘해 봐라, 제발!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1-23 06:30:00

[책CHECK]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책CHECK]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코로나19로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으로 마음이 어두워져가는 요즘,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며 잠시 잊고 있었던 내 안의 순수한 나를 만나 호흡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10년 만에 발간된 그림찻방의 두 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정겨운 174개의 그림과 글로 우리를 어린 시절의 그 마음으로 이끈다. 마음 가는대로 책을 펼쳐 글과 그림을 읽고 잠시 차 한 잔의 여유를 갖는 것만으로도 깊은 명상에 빠졌다 돌아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빛명상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소개와 함께, 차명상을 통해 일상의 여유를 찾는 방법도 알려준다.저자 정광호는 그림찻방 외에도 '천상의 보물, 침향', '행복순환의 법칙',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등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383쪽. 2만3천원

2021-01-23 06:30:00

[책]김춘수의 풍경

[책]김춘수의 풍경

김춘수의 풍경/ 이기철 지음/ 문학사상 펴냄"그는 그야말로 시 아닌 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등산도 바둑도 스포츠도 자동차 운전도 하지 못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도 타지 못했고 쉰일곱 살에 경북대학교에서 영남대학교로 교수 자리를 옮겨 연구실이 연구동 22층 건물의 복판, 12층에 배정되었을 때, 그 방에 들어가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아……!" 하고 주저앉았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는, 높이에 대한 공포를 가진 병증(病症)의 시인이었다."(16쪽)이기철 시인은 시인 김춘수의 인간과 문학에 대해 묘사하고 서술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는 동안 머릿속에 산재한 소재가 불분명한 생각들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자료와 연대와 시인의 행적을 일관되게 꿰어 맞추는 일은 고증이라는 까다로움에 막혀 자꾸만 글의 흐름이 더뎌졌다. 초고에서부터 탈고를 할 때까지 필자는 잊힌 생각의 파편들을, 너무 아끼다 깨버린 백자 항아리의 반짝이는 조각을 주워 맞추는 것처럼 조심해야 했다. 시인이 떠나고 없는 자리에 남은 말의 흔적, 만날 수 없는 시인과의 일방적 대화는 때로 독백이 되어 사라져버린 희미한 시간을 원고 위에 재생시키는 두루마리 풍경화로 되살아났다.필자는 김춘수 시인을 우리 시 문학사상 최초의 '예술시인(Artistic Poet)'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지적이었고 인위적 실험을 체현한 시인으로, 어떤 무늬로 수놓을까를 끝없이 묻고 대답한 시인이다. 동양적 사유보다는 서양적 사유에 더 많이 의존하긴 했으나 그것은 우리 시의 방법적 자장을 넓히기 위한 힘든 시도였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이 책은 김춘수 시인의 전기(傳記)가 아니다. 필자는 이 글을 시를 쓰듯 쓰고 싶었고 평론 쓰듯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손은 문체를 간섭하지 않았다. 추억록이라면 추억록이고 시의 탐구라면 시의 탐구, 일화라면 일화뭉치일 이 글을 필자나 동세대의 누군가가 남기지 않으면 한 '예술시인'이 살고 간 참모습의 장면들이 영영 어둠 속에 묻힐 것 같아 없는 시인의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가감 없는 이 책을 쓰게 됐다. 이로써 필자는 시인에게 진 최소한의 빚을 갚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영남대 명예교수인 저자 이기철은 1963년 경북대 주최 전국대학생 문예작품 현상모집에서 시 '여백시초'가 당선되면서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춘수 시인과 만났다. 저서로는 첫 시집 '낱말추적'을 비롯해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등 다수가 있다. 368쪽. 1만5천원

2021-01-23 06:30:00

[안동을 걷다,먹다] 17. 안동 '오류헌' 고택스테이

[안동을 걷다,먹다] 17. 안동 '오류헌' 고택스테이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17번째 이야기. 안동 고택(古宅) 스테이설날이 다가오면 우리는 늘 설렜다.설날에는 어른들로부터 세뱃돈을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한동안 만나지 못한 사촌들을 만나 같이 놀 수 있었다. 보릿고개를 갓 넘긴 가난했던 시절, 평소 먹지 못하던 푸짐한 명절음식들도 우리들의 입을 궁금하게 했다.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골 큰집은 전형적인 옛날 한옥이라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추웠다. 화장실은 또 바같에 있어 불편하기도 했다. 편안한 집을 떠나 그런 옛날 집에서 하룻밤 자야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에는 고역이었다.한옥의 하룻밤은 그렇게 불편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도심 속 편안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한옥 중에서도 특별한 '고택스테이'는 요즘 남다르게 다가온다. 호텔이나 고급 펜션을 숙소로 하는 편안한 여행도 좋지만 안동이나 경주 같은 역사문화도시를 찾아나서는 여행이라면 '고택스테이'를 권하고 싶다.특히나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자처하는 안동의 수백 년 이상된 유서깊은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더 특별할 것이다.안동에서도 제대로 된 고택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안동에는 도처에 고택들이 즐비하다. 마음만 먹으면 고택에서 아예 살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안동에는 고택을 빌어 책방을 낸 '가일서가'도 있는 등 고택은 '박제된' 문화재가 아닌 우리 생활의 일부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고택스테이'가 문득 남다르게 다가와서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조선 중기 이현보의 농암종택이나 묵계종택, 혹은 학봉종택, 오류헌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대의 학자와 가문의 종택에서 하룻밤 묵는 것은 어떨까. 길 가던 나그네가 해질녁 낯선 고택의 대문에서 '이리 오너라!' 라며 공손하게 주인장을 부르면, 마치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온 듯 기꺼이 방 한 칸 내어주면서 종가의 기풍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분으로 말이다. 안동의 여염집에서는 길 잃은 나그네를 소홀히 대접하지 않았다.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곤궁한 이웃을 구휼하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선비들의 마음이었고 누구나 공유하는 생활철학이자 미덕이었을 것이다.안동 고택 중에서 어디가 좋을까 고르다가 '오류헌'으로 정했다. 이현보의 '농암종택'과 호사스런 '구름에 리조트' 등에 이르기까지 안동에는 이름난 '고택스테이'가 많이 있지만 '하루에 딱 한 팀만 예약을 받아, 고즈넉하게 고택의 정취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오류헌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오류헌'은 안동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임하면에 있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20여분 독립운동의 얼이 서린 '내앞 마을'과 '경북독립기념관'을 지나 임하댐 쪽으로 가다가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다리를 건너가면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다.임하댐에 가로막혔던 '반변천'이 내앞 마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만나는 마을이 오류헌이 있는 '임하리'다. 오류헌은 원래 임하댐이 조성되면서 수몰된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다. 1990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본채와 주요 건물을 지금의 임하면으로 어렵사리 이건한 것이다.오류헌은 마을의 제일 안쪽 산자락에 있었다. 대문에는 큼지막하게 '五柳軒'이라는 현판이 적혀있어서 호기롭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이 넓었다. 문득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무대인 대구 반월당의 그 깊은 마당이 생각났다. 마당에 들어서서 눈앞에 바로 보이는 한옥이 사랑채다.시골 큰 집에 모처럼 놀러온 듯 편안했다.오류헌은 국가민속문화재 제 184호로 지정돼 있는데다, 지난 해 한국관광공사로부터도 고택스테이 품질 인증을 받은 인증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오류헌은 조선 숙종 때 대사성을 지낸 지촌 김방걸(金邦杰)의 셋째 아들 증좌승지 목와(木窩) 김원중(김원중(金遠重)이 1678년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래서 '목와고택'이라고도 부르는데 본채에 대청에 '木窩古宅'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기도 했다.오류헌은 무엇보다 본채와 별채 등의 생활공간을 담장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 독특했다. 김원중의 14대손인 주인장 김상돈 선생은 본채와 사랑채 및 별채 구조에 대해 문화해설사를 자청, 상세하게 설명에 나선다. "문살과 마루는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고 있으며 이런 섬세한 문살은 다른 고택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며 오류헌을 지키는 종손으로서의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사랑채는 1920년에 새로 지은 100년이 된 한옥인데도 350년이 지난 본채와도 잘 어울렸다.'오류헌'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을 본떠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던 김정환(金廷煥)의 호를 따서 지었다.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눈 내린 마당과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보면서 주인장이 내주는 차 한 잔을 함께 했다. 고택스테이는 보이차 한 잔으로부터 시작했다.오늘 머물게 된 숙소는 별채인 '영모제'(永慕齊)다. 별채는 본채 및 사랑채와 별도로 담장이 둘러쳐진 구조여서 독립적이어서 아늑하고 좋았다. 완벽하게 분리된 독립 공간이었다. 방안에는 정갈하게 개켜진 목화솜이불 몇 채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하게 데워진 방안에 들어서자 오후에는 그냥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뒹굴뒹굴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방바닥은 장작불로 데워졌다. 아파트 온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드러누워서 '늘 욱신거리는 오십견이 있는 어깨와 허리'를 지지고 싶었다.창살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세상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오류헌 만의 선물이었다.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고택에서의 하루를 보내라는 신호 같았다.눈발은 그치지 않고 본채 안 마당 장독대위로 흩날렸다. 장독대를 하얗게 덮은 눈이 장독대를 가지런하게 정리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운 좋게도 '눈 내리는' 고택의 하루를 만들어 준 겨울하늘에 감사드려야겠다.오후 늦게서야 눈이 그쳤다.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 짹짹 거렸고 툇마루에는 고양이 한 무리가 올라앉아 재롱을 부렸다. 길고양이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양껏 먹을 양식을 챙겨주는 주인장의 인심이 길고양이 무리들을 제집처럼 만들었나보다. 모두 길고양이들이었다. 주인장은 '순후(淳厚)가풍'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든 인심을 후하게 베풀어온 것이 오랜 가풍이었다는 것이다.고택에 살면서 지키는 것은 오래된 박제된 집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오류헌의 지혜와 함께 나누는 삶의 철학이라는 것을 배웠다.화장실은 별채에 딸려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전통한옥 구조에서 원래 화장실은 집안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별도로 공간을 만들어 짓거나 따로 두기 때문에 '뒷간'이라고 한 것이다. 화장실과 세면실은 따로 있었지만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잘 꾸며놓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고택의 밤은 무서울 수도 있다. 창호지로 흘러들어오는 교교하게 비치는 별빛과 달빛이 고층아파트에서 느끼는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밤늦게 들려오는 산 속 축사를 지키는 사나운 개들의 컹컹거리는 소리는 늑대소리처럼 사납고 산골짜기를 스쳐 지나는 서걱거리는 바람, 삐걱거리는 대문소리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심 어디에서 그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주인장이 챙겨준 단아한 안주에 안동소주 몇 잔으로 달콤한 밤을 보냈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고택의 저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택스테이가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팀들이 함께 머무는 다른 고택이라면 때로는 사람들로 인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짹짹거리는' 새 소리에 아침잠을 깬 적이 있는가. 요즘 같은 겨울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부지런한 새 소리에 새벽잠을 깨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선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단다. 정해진 아침 시간은 없다. 그러나 별다른 숙취랄 것도 없는데 안주인은 해장에 좋은 녹두닭죽 한 그릇에 정갈한 반찬을 가지런히 담아 아침밥상으로 내놓는다. 안주인의 정성이 한껏 드러나는 아침밥상이었다.고택스테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고급 호텔에서 느껴보지 못한 고택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것이 고택의 맛일 것이다. '고택스테이'는 오래된 집이 주는 편안함이 아니라 그 고택을 지키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역사를 생각하는 하루였다.오류헌 고택스테이 예약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할 수 있다. 하루에 한 팀밖에 받지 않아, 한 가족이든 한 팀이든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별채든, 사랑채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주인장의 인심은 덤이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1-23 06:00:00

[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광장] 라캉의 팔루스…색즉시공의 권력

"나는 떠나요, 영원히" 이 말을 남기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인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 아름다운 해안 도시 소렌토에서 나폴리까지 'ㄷ' 자로 파인 바다를 나폴리만(灣)이라 부른다. 허리춤이 잘렸지만, 그림 같은 곡선미의 베수비오 화산이 쪽빛 바다 한쪽으로 아름답다. 호사가들이 나폴리를 세계 3대 미항이라 입방아 찧을 만하다. "내 배는 살같이…" 명곡 '산타루치아'의 선율이 어린 산타루치아항 달걀성(Castle dell'Ovo)에서 시내 안쪽으로 나폴리 국립박물관이 자리한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 때 묻혔던 폼페이 출토 유물들이 경이로운 로마 문명의 실상을 전해 준다. 2층 '비밀의 방'에는 낯 붉히는 각종 음화와 조각들이 탐방객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중 하나가 거대한 남근(男根)이다.로마인들은 번영과 행복을 바라는 의미로 남근 조각을 실내에 두거나 대문에 그렸다. 기호학 창시자 소쉬르의 용어로 해석하면 남근은 기표(記標)이고, 행복이 기의(記意)다. 남근 조각 밑에 'FELICITAS'(행복)라고 쓴 폼페이 유물에 일상의 쾌락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던 로마의 가치관이 잘 묻어 난다. 현실을 즐기는 로마의 카르페디엠 문화가 2천 년 넘게 면면히 이어진다.19세기 스위스의 프로이트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잠재된 무의식을 들추며 정신분석학을 연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성적 에너지)를 삶의 동력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라캉은 프로이트 사상을 계승하며 팔루스(Phallus·남근 이미지) 개념으로 진화시킨다. 라캉은 '주체'(나) 이외의 모든 것을 '타자'(他者)로 명명한다. 프랑스어로 남을 가리키는 'Autre'의 대문자 'A'를 써서 '대타자 A'라고 부른다. '주체' 이외의 삼라만상이 '대타자 A'다. 이 가운데, '주체'의 마음, 충동(drive)이 꽂혀 향하는 대상을 소문자 'a'를 써 '소타자 a'라고 이름 짓는다. '주체'가 추구하는 모든 것, 가령 갖고 싶은 옷, 살고 싶은 집, 사랑, 심지어 권력 모두가 '소타자 a'다. 라캉은 '주체'의 욕망을 남근 이미지, '팔루스'로 규정한다. 팔루스 추구로 얻는 대상 즉, '소타자 a'는 판타지(fantasy·환상)로 텅 빈 공허함이라고 설파했다. 라캉에 앞서 이를 꿰뚫은 동양철학이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형상 즉, 색(色)은 텅 빈 공(空)이라는 의미다. 정치에 빗대면 권력무상(權力無常)이다.문재인 정부 집권 5년 차다. 2020년은 권력의 주역 청와대, 추미애 법무부 장관, 민주당이 혼연일체로 법치와 상식을 무너트린 해였다. 추미애 장관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서울 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부터 없앴다. 권력 연루설이 돌던 각종 금융 범죄 수사는 좌초됐다. 정권 관련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결과는 문재인 정권 지지율 하락과 윤석열의 대권 후보 등극이었다.민주당 전략기획위윈장 출신 이근형이 대주주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신문 의뢰로 조사 발표한 1월 19일 자 여론조사에 답이 들었다. 양자 대결에서 윤석열(46.8%) 대 이낙연(39%), 윤석열(45.1%) 대 이재명(42.1%)으로 윤석열이 누구랑 붙어도 이겼다. 추 장관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추 장관의 욕망, 즉 팔루스가 서울시장 혹은 대통령이라는 '소타자 a'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게 공(空)이 됐다.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죽기 전 읊은 "정치는 허업(虛業·헛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2021-01-23 05:0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술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추운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술

사랑하는 사람보다 좋은 친구가 더 필요할 때가 있듯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 속까지 스며들며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추운 겨울을 녹이는 데는 따뜻한 술 한 잔이 제격이다. 술도 은근히 계절을 탄다. 뜨거운 여름날이면 등골까지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제격인 것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따끈하게 데운 정종이나 은은한 온기가 느껴지는 약간의 알코올을 가미한 커피나 차와 함께 마시거나 살짝 데워 마시는 방법까지 겨울을 나기 위한 다양한 음주법이 있다.술은 계절을 타고 계층을 탄다. 소주나 와인, 양주가 각각 서민과 문화적 중산층, 부유층을 대변한다면 맥주나 사케는 각 계절의 흥취를 담아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술은 차게 해서 마셔야만 제맛이지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술은 지친 마음 까지 녹이는 매력이 있으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며 몸에 온기가 느껴져 추위를 달랠 수 있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겨울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따뜻한 칵테일을 마시면 포근하고 따끈한 정겨움을 나눌 수 있다.포스트코로나 시대 집콕 하며 늦은 밤 간단하게 음주를 즐기고 싶을 때 따뜻한 글뤼바인(Gluhwein)을 마셔보자. 글뤼바인은 레드와인에 레몬, 계피, 정향 등을 넣고 20~30분 정도 뜨겁게 데워 마시는 독일식 음료로 감기 예방과 원기 회복에 좋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뱅쇼(Vin chaud)', 미국에서는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 부르며, 겨울철 야외활동(캠핑, 등산, 스키, 골프 등)을 할 때 매서운 한파에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힐링 와인이라 할 수 있다.날씨가 쌀쌀할 때 따끈한 정종 한 잔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정종이라 불리는 술은 쌀, 누룩, 물로 빚어 발효시킨 맑은 술이라는 의미의 '청주(淸酒)'를 말하며, 사케는 니혼슈(日本酒)라고도 하며,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를 말한다. 사케는 우리나라의 청주와 맛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주원료인 쌀과 누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술을 만들기 위한 쌀을 별도로 재배한다.또, 밀로 누룩을 만드는 우리 술과 달리 쌀로 누룩을 만든다는 점이 다르다. 보통은 준마이슈, 혼죠조슈를 데워 마시기 좋은 사케로 꼽으며, 사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끓이거나 데울 때 적정 온도는 40~55℃ 중탕이 적당하다. 복어 지느러미를 굽거나 태워서 따끈한 사케에 넣어 내놓는 히레사케에 복어 향이 잘 배어들게 70℃ 정도로 뜨겁게 데워 마신다.겨울철에 주당들이 술로 추위를 녹이기 위해 즐겨 마시는 따뜻한 칵테일로는 위스키, 브랜디, 럼 등의 기본 주에 뜨거운 커피, 우유, 꿀, 코코아, 레몬, 계피, 물 등을 섞어 마시는 핫 토디(Hot Toddy), 럼에다 따뜻하게 데운 애플주스, 시나몬, 버터 1조각을 섞어 마시는 핫 버터 럼(Hot Butter Rum), 아이리시 글라스에 각설탕, 위스키를 넣고 뜨거운 커피로 잔을 채워 저어준 후 휘핑크림을 띄워 마시는 아이리시 커피(Irish Coffee), 브랜디 글라스에 B&B와 그랑마니아를 넣고 불을 붙여 살짝 데워 마시는 스키 롯지(Ski Lodge) 등이 있다.겨울 별미로 전통주를 살짝 데워 마시는 것도 좋다. 술을 데워 마실 때는 대략 40~45도 정도로 체온보다 높은 온도로 따끈한 느낌이 들게 중탕을 해서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집에서 혼자 편안하게 즐기는 가벼운 혼술은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과의 관계를 다지기 위함이며, 소량의 음주와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보약이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날 삶의 속도를 늦추고,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술 한 잔으로 지친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보자.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1-22 14:35:00

[박창원의 기록여행] “소”값은 떠러지는데  “소고기”값은 왜 올라

[박창원의 기록여행] “소”값은 떠러지는데 “소고기”값은 왜 올라

'소값은 날로 떨어지고 있는 반면 소고기값은 한번 인상된 채 가격의 변동이 전연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사실인가 하는 일반의 여론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소값은)대폭 저락 시세가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작년 6월 22일 식육업자 조합단과 부 당국에 체결된 정육 근당 230원이란 무변동 가격에는 커다란 차이를 두고 있어 일반소비 대상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당국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2월 15일 자)소값이 떨어지면 소고기값은 내릴까. 새해가 밝자 소값이 하락했다. 대구부민들은 입맛부터 다셨다. 고깃값이 내려 소고기를 맛볼 수 있으리란 기대였다. 소고기는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부민들의 원기를 회복하는 음식으로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어쩌다 소값이 내려도 이미 오른 소고기값은 요지부동이었다. 부 당국을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1949년은 올해처럼 소띠 해였다.당시 농우 한 마리는 8만 원을 오르내렸다. 이는 1년 전의 가을보다 30%나 내렸다. 소값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해방 후 치솟기만 하던 물가는 1948년 봄부터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보릿고개를 앞두고 식료품만 약간의 오름세를 이어갔다. 고무신 같은 일상용품도 하나 둘 내렸다. 왜 그랬을까. 해방이후의 사회적 혼란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시점과 맞물렸다. 경제적으로는 저축강조운동으로 저축액이 늘었다. 또 추곡수집자금이 순조롭게 지급되면서 경제활동에 숨통을 틔었다. 전체적으로는 통화량이 축소되면서 물가의 오름세가 진정되었다.소는 농가에 없어서는 안 될 일꾼 중의 일꾼이었다. 국가차원에서 소의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고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육류였다. 농우든 육우든 소의 공급과 수요를 적절히 맞추는 일이 중요했다. 그해 말에 소값이 다소 안정되자 소고기 한 근 값을 400원에서 500원으로 올리겠다는 식육상 조합의 결정이 있었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저지했다. 고깃값이 오르면 농가에서 소를 내다팔게 된다는 이유였다. 농가에서 소를 팔면 그만큼의 일손이 줄어 수확량이 줄어들게 뻔했기 때문이었다.소고기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소비량이 많았다. 1938년의 경우 대구부민이 그 해에 쓴 식육비는 60만원이었다. 소가 3천900마리로 55만원을 차지해 대부분이었다. 돼지와 염소, 말이 그 뒤를 이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의 소비량이 소고기보다 많은 지금과는 달랐다. 이러니 소고기 값이 조금만 올라도 부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부유한 집안에서만 고기를 사먹게 된다는 불만이었다. 당국은 고기값을 마음대로 올린 업소를 단속 하겠다고 부민들을 달랬다.소 사육두수와 상관없이 과거에는 기상재해로 소값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심한 가뭄 등이 닥치면 소값이 내렸다. 사람조차 입에 풀칠할 양식이 없는데 소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소가 먹는 꼴까지 다 말랐으니 농가에서는 소를 내다파는 일이 예사였다. 하지만 소값 파동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소는 다시 돌아왔다. 다만 소값은 떨어져도 소고기값이 그대로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소띠 해인 신축년 새해에도 코로나19의 시름은 여전히 깊다. 그때의 소값 파동과는 아예 견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우보천리'(牛步千里)는 고사하고 한걸음을 떼기도 버거워하는 사람이 널렸으니 말이다.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21-01-22 14:22: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이 두려워하는 사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이 두려워하는 사람

'토마토가 빨개지면 의사의 얼굴은 파래진다'.그만큼 토마토가 건강에 좋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광고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갑질하는 광고주일까? 아님 광고를 할 수 없을 정도의 불경기일까? 정답은 그저 묵묵히 본질에 집중하는 광고주이다. 나는 그런 광고주가 제일 무섭고 가장 존경스럽다. 여기 재미있는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가슴에 돌덩이가 앉은 듯합니다".내가 아는 한 변호사님은 항상 이 말을 달고 살았다. 본인이 수임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당연한 듯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말이다. 변호사도 사람이고 일과가 끝난 후엔 자기 시간을 가져야 할 권리가 있다. 소주에 닭볶음탕을 안주삼아 아침 해와 조우할 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다. 팔공산 아랫자락에서 차박을 하며 캠핑을 즐길 수도 있다.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의뢰인의 사건을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마치 본인이 피고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과음도, 캠핑도 할 수 없었다. 변호사 자신이 이미 그 사건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너무 갑갑하게 사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 말에 변호사는 이렇게 답한다."제가 쓰는 서면이 제 얼굴입니다"지극히 본질에 충실한 태도였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카피하기 시작했다. 본질에 집중하는 그의 태도를 따라 해봤다. 광고주의 매출이 떨어지면 우리 회사 매출이 떨어지는 거라 생각했다. 광고주 가게 주변에 유사 브랜드가 오픈을 한다면 위기의식이 생겼다.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이 생기니 광고주한테 한 번 더 전화하게 되었다. 한 번 더 미팅 요청을 하게 되었다. 광고 회사의 관심을 싫어하는 광고주는 세상에 없다. '우리 브랜드를 이렇게 신경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광고주와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본질에 집중한 결과였다.10년 가까이 광고 일을 하며 다양한 성향의 광고주를 만났다. 정에 호소하는 광고주, 돈이면 다 된다는 광고주, 일시키고 잠수 타는 광고주 등 참 다양했다. 하지만 결국 잘되는 광고주는 본질에 집중하는 브랜드였다. 광고가 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철학이 중심이 되는 브랜드였다. 그저 묵묵히 '어떻게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고객이 우리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물론 본질에 도달하는 길은 두렵고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름길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을 하면서 무수한 변칙적인 지름길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광고비를 1억을 쓰면 나는 1억 천원이라도 써야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사업을 해보면 가장 빠른 지름길은 결국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느린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길이다.의뢰인의 사건을 자기 일처럼 감당한 변호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개업 1년 만에 고객이 줄지어 현재 법무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다. 상대방 변호사가 서면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한다.'아, 이번 사건 어렵겠구나.' 이게 다 본질 때문이다.(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 저자

2021-01-22 13:32:48

[도용복의 골프 에티켓]골프 문화 패러다임 바꾸자

[도용복의 골프 에티켓]<35>골프 문화 패러다임 바꾸자

팬데믹 발생 1년이 지났다. 마스크 쓰기는 생활화가 됐으며 저녁 9시가 되면 간판 불이 일제히 꺼진다. 모든 종류의 모임은 취소나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경조사를 알리는 문자에 계좌번호를 표시하는 건 에티켓이 됐다.코로나19 백신을 제조한 미국 바이오 회사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CEO는 "이 바이러스와 영원히 함께 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세상은 불확실해졌다는 사실이다. 뉴스 속보로 듣는 확진자 숫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2주단위로 변경 또는 연장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관심이 간다.코로나19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인류는 이미 14세기 유럽 흑사병, 1918년 스페인 독감을 거치며 문명의 대전환을 경험했다. 코로나19가 골프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코로나19의 나쁜 영향이 골프장까지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야외활동이라는 이점으로 최근까지 '부킹대란'을 맞이했다.5인이상 집합금지에도 골프장만큼은 예외를 인정받았다. 해외원정 길은 당분간 완전히 막혀있다. 그렇기에 골프장도 기존의 단순한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외부 프로그램과 연계가 필요하다. 지금이 골프문화에 있어서 패러다임 변화에 적기이다.먼저, 최근 골프연습장과 백화점의 콜라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대규모의 실내 골프연습장이 백화점에 들어섰다.골프에 빠진 고객들을 백화점으로 끌어들이면서 관련 매출도 자연스레 확대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가 가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플랫폼만 변경된 것이다.또한, 골프 프로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이처럼 백화점 업계가 골프 관련 콘텐츠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스크린 골프문화의 확산으로 골프인구의 저변확대가 급속도로 이루어졌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골프관련 상품의 매출 비중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다.제주지역 골프장은 '코로나 특수'로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해외 골프 수요가 제주로 발길을 돌린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코로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이럴 때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의 관광상품과 연계해 단순히 골프만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제주지역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특화된 프로그램 개발이 절실하다.제주여행은 온라인 정보의 홍수시대에 어쩌면 비슷비슷한 패턴을 강요하는 양상이다. 유명맛집과 관광명소 위주의 일정은 제주만의 색깔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많은 외국 관광객들로 몸살을 알았던 제주지역은 여전히 아름답고 가는 곳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만, 비싼 물가와 획일적인 관광 일정에 대한 대변혁이 필요하다.동계시즌에는 수도권과 강원도권 골프장은 잦은 눈과 영하의 기온으로 제대로 된 골프를 즐길 수 없다. 프로골퍼와 주니어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럴 때 영남지역 골프장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후를 앞세워 제대로 된 훈련시설과 골프텔을 정비하여 더 많은 선수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한다.국내 골프관광시장의 규모는 약 10조원으로 세계 9위 수준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 당분간 내수시장 활성화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변혁의 시대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도용복 대구한의대 특임교수

2021-01-21 14:03:51

[매일춘추] 빅데이터를 통한 전략적 포지셔닝

[매일춘추] 빅데이터를 통한 전략적 포지셔닝

지난해 7월 국제박물관협의회가 내놓은 '박물관, 박물관 근무자 및 COVID-19'라는 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해 4~5월 박물관에 대한 공공 및 개인의 펀딩(재정지원)이 40% 이상 줄었고 운영프로그램은 80% 감소했다. 인력마저 30% 감축됐다.박물관·미술관에도 과제가 생겼다. 기존의 수동적 자세를 탈피하고 능동적인 마케팅에 나서야할 때가 된 것이다. 재정자립도와 관람객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공공성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한다.타 기관과의 차별성, 관람객의 타깃팅, 어떤 점을 마케팅 활동으로 강조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여 박물관의 포지셔닝을 결정하고 이미지와 가치를 브랜드화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수적인 때가 된 것이다.전통적인 의미의 박물관·미술관은 여러 대상을 수집, 보존해 대중에게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지금까지는 관람객의 성별, 연령별, 계층별 문화 수용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서비스 제공이 박물관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빅데이터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2012년 미국 댈러스미술관은 관람객의 다양한 참여와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Dallas Museum of Art Friends'(프렌즈 프로그램)를 운영했다. 이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성공 사례로 미국 덴버미술관, LA카운티미술관, 미니아폴리스미술관, 그리고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도 동참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협업하여 디지털기기(오디오 가이드, 전시 앱) 등을 활용, 관람객의 동선과 패턴을 수집·분석해 전시의 효율적 구성에 적용하기도 했다.국내에서도 2012~2016년 블로그·SNS 등에 기재된 미술관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해 전시장 내 작품 촬영 확대, 야간 개장 등의 변화가 있었고 2020년 사비나미술관에서는 윤동주 작품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추출된 시어를 예술가들과 협업한 '빅데이터가 사랑한 한글' 전을 기획했다.정부도 보폭을 맞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 발표한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을 보면 관람 목적, 빈도 등 관람 패턴의 심층적 데이터 분석을 진행하고 2023년까지 박물관·미술관을 1천310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예산·인력 낭비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근래 들어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은 고무적인 성과다. 박물관·미술관의 다양성과 창조적 공간으로서의 상생을 위한 변화임을 인식하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주길 기대한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1-21 12:17:49

[기고] 대구 도심융합특구 과제는

[기고] 대구 도심융합특구 과제는

대구시는 지난 12월 22일 열린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옛 경북도청 부지-대구삼성창조캠퍼스-경북대를 잇는 트라이앵글 지역(북구)이 정부의 도심융합특구 선도사업지로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도심융합특구는 국토교통부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지방 대도시의 도심에 기업·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산업·주거·문화 등 우수한 복합 인프라를 갖춘 '판교2밸리' 같은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북구에 위치한 옛 경북도청 터는 반경 1㎞ 안에 경북대와 삼성창조캠퍼스가 있어 기존 인프라와 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활용하기 쉽다. 또 반경 3㎞ 안에는 제3산단, 검단공단, 금호워터폴리스, 엑스코,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대구역, 오페라하우스, 복합스포츠타운, 동성로 도심 등이 있어 산업·교통·문화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을 받는다.여기에 특구를 지나는 대구도시철도 엑스코선은 특구와 대구시 주요 거점 간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다.정부는 특구를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한 청년이 뿌리내려 일하기 좋은 지역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기업과 청년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 수단을 이 공간에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수도권 이전 기업에는 기업 이전 지원금을 제공하고, 특구 내 창업 기업에는 사업화 자금 등을 지원하며, 법인세, 재산세, 취득세 등 세제 혜택도 제공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연내 특별법 발의, 기본계획 수준의 마스터플랜 수립,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도심융합특구 지원협의회 구성 등 세부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대구시도 이와 같은 정부 계획에 발맞춰 특구를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등 신기술 산업이 중심이 되는 '대구형 실리콘밸리'로 조성한다.그러나 사업 추진 시 우려되는 점은 특구 조성 기본계획 용역 예산 외에 당장 대규모 예산 지원도 없고, 민간투자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가 설정한 입주 기업 500곳 유치, 신규 일자리 1만 개 창출, 20·30대 청년층 고용 비율 65% 달성 등의 목표는 자칫 공염불이 될 수 있다.대구형 도심융합특구 조성에 따른 지역 청년과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특별법 제정을 통한 정부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 옛 경북도청(14만㎡) 및 경북대(75만㎡) 부지 고밀 개발을 통해 기업과 청년들이 좋아하는 문화·창업·정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삼성창조캠퍼스(9만㎡)와의 산학연 연계 시너지는 필수적이다.아이디어만 갖고 융합특구를 찾아온 창업자를 위한 기술 및 금융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도 필요하다. 창업 공간 활성화를 위해 임대료를 주변 시세보다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청년인구 유출 방지 및 타 도시 인재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 또, 이 두 곳을 지나는 대구도시철도 엑스코선은 특구 육성을 위한 필수적인 교통망이다.도심융합특구는 기업 성장과 청년창업 및 일자리 창출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된다. 기업과 청년이 공존하고 만족할 수 있고, 자생적인 산업융합 생태계를 갖춘 특구 조성을 위해 과감하고도 혁신적인 발상으로 촘촘한 마스터플랜 수립도 필요하다.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규제 혁파도 필수적이다.그래서 대구에서 제2의 이병철, 제2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성공 스토리가 쓰이고, 그 성공 스토리를 바탕으로 향후 대구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로 기업하기 좋은 도시, 청년의 꿈을 키우는 도시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2021-01-21 12:16:14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춘추칼럼]문 대통령 지지율과 레임덕

대통령 임기 1년 4개월을 남겨 둔 연말 연초에 여러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35% 전후까지도 내려가는 등 대체로 35∼40%의 지지율을 보였다. 최근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에서는 40.7%, 갤럽 1월 2주 조사는 38%였다.그럼 대통령 지지율이 얼마가 되었을 때 레임덕으로 봐야 할까? 물론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단지 역대 대통령의 4・5년 차 무렵 레임덕 현상을 보인 시기의 지지율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대체로 역대 대통령의 경우 30%가 무너지면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20%가 무너지면 레임덕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단순 지지율로만 판단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레임덕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 지지율뿐만 아니라 지지율의 강도와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 지지율은 정량적 측면이고 지지율 강도는 정성적 측면이다. 그리고 정치적 상황은 수치와 강도의 역학이 작동되는 에너지의 장이 된다.먼저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로 레임덕 여부를 보면, 현재 문 대통령의 35% 전후∼40% 초반 지지율로는 레임덕이라 보기는 어렵다.그러나 정성적 측면 즉 지지율의 강도를 보면 달라진다. 한길리서치 1월 2주 조사의 대통령 긍정평가는 40.7%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20.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9.8%다. 반면 부정평가는 56.9%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41.3%,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15.6%다. 이러한 문 대통령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즉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중립적 합의형이 아니라 대립적 갈등형 분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의 전체 긍정평가(40.7%) vs 부정평가(56.9%) 배율이 1.40이지만, 매우 긍정(20.9%) vs 매우 부정(41.3%) 배율은 1.98로 더 커진다. 결국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의 힘도 크지만, 레임덕 원심력인 비토층의 힘이 두 배나 더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한 심리적 체감 현상이 나타난다.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당선된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적으로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탄핵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보수층의 반동적 저항은 당연히 강하다. 또한 중도층도 탄핵에 동의했기에 현 정부에 대한 잣대나 기대치는 전 정부보다 더 높고 엄격하다. 이런 정치적 역학의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전의 대통령에 비해 10%포인트 정도는 더 높아야 한다. 즉 정치적 역학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40%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의 30% 정도 지지율의 국정 장악력이 된다.결론적으로 말해 문 대통령의 단순 지지율 35∼40% 수준으로는 레임덕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비토 그룹의 크기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체감 지지율은 레임덕 상황이다. 그래도 현시점에서 이 정도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전 정권보다는 선방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대통령 지지율은 4년 동안의 국정 수행에 대한 결과적 평가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 운영의 동력이다. 그럼 문 대통령의 임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지지율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앞서 말한 대로 과거 정권 말기 레임덕이 시작된 30%보다는 10%포인트 더 높은 40% 수준이다.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 지지율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기 말은 국민들이 임기 초기 기대감으로 바라보던 허니문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으로 4년을 기다린 국민들은 구체적 성과를 보고 평가한다. 따라서 임기 말 대통령이 정쟁을 통한 비교우위나 책임 전가, 현란한 언변(레토릭), 인사나 국면 전환용 대증요법으로 국정 운영을 하면 역효과가 나타난다.국민의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진정성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사회 양극화가 해소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문 대통령도 이 기대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2021-01-21 12:15:31

[도태우의 새론새평] 중공과 중국

[도태우의 새론새평] 중공과 중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이 2만5천 명의 군인들로 얼어붙었다. 1월 6일 선거인단 표결 당시 있었던 의사당 난입 사건이 그 이유라지만 시민들을 분노케 한 부정선거와 중공에 의한 선거 개입 정황은 국가정보국(DNI)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대중(對中) 정책에 대한 맞불이었을까? 여하튼 키신저 회담 이래 미·중 관계 50년이 근본적인 시험대에 올랐다.일찍이 소설가 이문열은 두 개의 중국을 구분한 바 있다. 하나는 '힘의 제국'으로 군림한 중국이고 다른 하나는 '인문문화'의 빛을 발산한 중국이다. 오늘날 두 측면은 중공(중국공산당)과 중국으로 구별된다. 힘의 제국을 계승한 중공 노선의 특징은 최근 홍콩 민주 인사 50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데서 잘 드러나며, 미·중 갈등의 심화는 바로 이런 측면의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다.지난 7일 미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 존 랫클리프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 출처에 근거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2020년 미 연방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밝혔다. 랫클리프 국장은 또한 미 중앙정보국(CIA) 지도부가 중공의 선거 개입 분석 결과를 철회하도록 정보분석가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며 미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를 인용했다. 자기 나라에는 선거도 실시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중공의 행태는 자유 체제를 위협하는 전체주의 세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사실 차이나(China)의 어원인 진(秦)나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체주의 국가의 모델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혹한 통제 위에 강력한 국가를 세운 진은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했지만 15년 만에 멸망한다. 그러나 뒤를 이은 한 제국도 기본 틀은 진을 본뜬 것이며, 이후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에 이르기까지 중국 왕조의 기본 원리는 통치수단적 법치(rule by law)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실상은 권력적인 명령에 의한 지배였다.이런 중공과 대립되는 인문적 중국은 공자와 소동파의 나라이다. 그들은 시문을 숭상하며, 예치와 덕치를 추구한다. 진시황적 제국에 대한 영원한 대척점을 이루었지만 '적법절차에 바탕한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이상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의 두 얼굴인 진시황의 힘과 공자의 정신은 여전히 법 속에서 종합을 이루지 못하였다.한편 우리 역사 속에는 이 두 측면의 중국과 대결하여 부분적인 극복을 경험한 빛나는 사례들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멸망 후 귀환한 소정방에게 당 고종은 '왜 연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소정방은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함부로 도모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힘의 제국에 맞서 독립을 지켜낸 예다.또, 정조 대에 진나라 이전 원시 유학의 뿌리를 탐구한 정약용은 천주교를 통해 서양 문명을 접한 뒤 '천자란 추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섯 집이 인장을 추대하고, 다섯 인이 이장을 추대하며 이런 단계를 밟아 마침내 여러 제후가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천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산은 상향식 민주정이 동양 역사의 시원에 존재함을 알렸다.이렇게 우리 역사 속에 신라처럼 힘의 제국(중공)에 맞서고 다산처럼 중국과 서양을 종합하여 신문명의 지평을 펼쳐간 전통이 존재함에도 오늘 우리는 힘의 제국으로서 중공에 굴종하고, 중국과 서양의 깊은 뿌리를 배워 종합할 기상은 다 팽개친 듯하다.거대한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치러질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식을 맞아 자유민주주의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대양 건너 세계 최강국도 뒤흔들어 놓은 중공의 권력술에 경악하며 최인접국으로서 고도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공과 중국을 구분하고 힘과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그 극복을 추구하는 것은 수천 년 우리 역사의 운명적 과업이라 할 것이다.

2021-01-20 14:02:11

[기고] 코로나 상황 속 장애인 고용유지 관심 필요하다

[기고] 코로나 상황 속 장애인 고용유지 관심 필요하다

지난 1년 내내 뉴스 1면을 장식하다시피 한 코로나19가 사회 전체에 미친 영향은 이전에 국내외에서 유행했던 여러 전염병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영화나 역사책 속에서만 접해 왔던 전염병의 대유행이 우리 가족, 이웃과 직장 동료를 덮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렇듯 코로나19의 경험은 남의 일로만 여겨왔던 상황이 나 자신의 상황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사실 우리가 이처럼 방관적인 시선을 보냈던 대상에는 장애인과 같은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고용 취약계층도 포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축은 양질의 일자리를 갖지 못한 비중이 높은 장애인 계층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0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256만여 명 중 경제활동 참가 비율은 37.0%로 전체 인구 기준 경제활동 참가율(63.0%)에 비해 여전히 취약한 수준이다. 그나마 직업을 가진 장애인 취업자 89만 명 중 상용근로자의 비중은 39.5%이며, 그 외에는 대개 임시근로자나 일용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이 수치는 전체 인구 취업자 기준 상용근로자 비중인 53.7%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은 바로 장애인과 같은 사회의 '약한 고리'다.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을 비교적 일찍 경험한 대구와 경북에서도 경제활동을 하던 장애인들이 급여 감소나 실직 등을 경험하여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심리적·재정적 어려움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인의 직업재활에 힘을 쏟아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안정적으로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지역사회의 약한 고리를 보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이러한 필요성을 인정하여 정부는 장애인의 안정적인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 대책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근로지원인 지원 등 중증장애인의 고용안정을 위한 사업 예산 규모가 크게 증가하였으며, 발달장애인의 직업체험을 지원하는 발달장애인 훈련센터 6곳이 추가로 개소하였다. 내년부터는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정부기관과 지자체에도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전방위적인 지원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2021년은 장애인 고용과 관련하여 기념해야 할 중요한 10년 주기 시점을 맞는 해이다. 장애인 편의 제공과 차별금지 등 세계 장애인 관련 입법에 한 획을 그은 미국장애인법(ADA)이 제정된 지 30주년이 되었으며, 국내적으로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만들어진 지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추위를 견딘 매화나무가 결국 봄에 새 꽃을 피우듯, 올 한 해 얻은 교훈을 토대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포함한 소외된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30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1-01-20 11:51:08

[매일춘추] 도사과정

[매일춘추] 도사과정

친구들이 외국으로 유학 갈 때 나는 산으로 유학을 갔다. 지인들이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나는 산 속에서 혼자 도사과정을 밟았다. 한때 하산하여 박사과정을 이수해 봤지만, 내게는 박사보다 도사가 맞는 듯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한 건 순전히 능력부족 탓이지만, 체질적으로도 박사보다는 도사 쪽인 듯싶었다. 나는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산속 재실로 갔다.박사학위가 학계의 인증이라면 도사는 자연계의 인정이다. 외국어(外國語)가 필수인 박사처럼 도사는 자연과 대화할 수 있는 언외어(言外語)가 필수다. 박사가 많은 사람과 객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논문을 써야한다면, 도사는 오로지 자신의 몸에 성취를 새겨 넣어야 한다. 박사가 뭔가 분석하고 연구하여 가치 있는 논문을 쓰는 것이 목적이라면, 물론 대부분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이지만, 도사는 과정이 곧 목적이다.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이다. 도사는 객관적이지 않다.박사와 도사를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그런 길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박사는 넓고 깊게 제대로 자신만의 지적 성취를 이루어내야 한다. 요즘은 AI가 박사논문의 표절시비를 순식간에 가려내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박사는 정말 어렵다. 아무나 따는 것이 아니다.내가 도사과정에 입문했을 때는 학구열에 불타거나 뭔가를 이루어내기 위한 의지와 희망으로 가득했다, 라기보다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내려놓았을 때였다.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는 엉키고 꼬여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절망에 빠져 자신을 팽개칠 때가 오히려 도사과정에 입문하기 좋은 시절이다. 세상의 가치를 집어던지고 자신의 가치를 뒤집어 쓸 수 있는 용기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찾아온다.자의 반 타의 반 도망치듯 산으로 가 도사과정을 시작했을 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해방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조퇴하고 텅 빈 운동장을 가로 지를 때 느꼈던 '외로운 적막감' 같은 것. 마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데 나만 홀로 떨어져 나온 듯한 낯선 해방감.산에 눈이 내리면 세상은 멈추고, 진공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푹푹 내리는 눈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 본래 길은 없고 걷는 순간 생긴다. 길은 묻는 게 아니라 걷는 것이고, 가기 위해 걷는 게 아니라 걷기 위해 간다. 도사는 무슨. 도사는 없다. 걷는 사람은 있다. 덧없음을 부지런히 실천하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다 도사로구나. 눈이 녹자 풍경이 보였다.여기 문제가 하나 있다. '곤충의 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 □ □' 라는 문제다. 아마도 이 문제의 객관적인 정답은 머리, 가슴, 배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우리네 도사들의 정답은 다 다를 것인데, 어느 초딩 도사가 삐뚤빼뚤 적어놓은 정답은 이랬다. 죽, 는, 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1-20 11:41:17

[관절 클리닉] 신경이 눌려 생기는 팔 저림, 일찍 치료해야

[관절 클리닉] 신경이 눌려 생기는 팔 저림, 일찍 치료해야

팔 저림의 원인은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 신경이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 목디스크, 팔꿈치 터널증후군, 그리고 손목 터널증후군이다.목 디스크의 주요 증상이라 하면 목 통증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실제로 목 디스크가 발병할 경우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증상뿐 아니라 두통, 어깨 결림, 팔 저림 등의 증상까지 겪는다. 경추 불안정성이 지속되면서 주변 신경을 자극해 다른 신체 부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특히 경추 주변은 어깨와 팔로 이어지는 신경이 자리하고 있다. 추간판 내에서 탈출한 수핵이 이러한 신경을 자극해 팔 저림, 어깨 저림을 일으키는 것이다.목 디스크 발병률이 높은 것은 경추 주변 근육 및 인대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목의 경우 허리보다 인대의 이완이 발생하기 쉽다. 무거운 머리를 지탱해야 하지만 목의 인대가 너무 얇고 근육 힘도 떨어지기 때문에 목 디스크 발병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팔꿈치 터널증후군의 주요 증상은 4번째, 5번째 손가락의 저림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팔꿈치 안쪽 통증을 동반하는데, 앉아있을 때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목 디스크로 오해되는 경우가 흔하다. 자다가 저려서 깨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 앉아서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직장인들에게 흔하게 발생하며 팔을 무리하게 많이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흔하게 발생된다.손목 터널증후군의 주요 증상은 정중신경의 지배 영역인 엄지, 검지, 중지, 약지의 일부분 또는 손바닥 부위의 저림 증상, 운동기능저하, 손목 통증,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손과 손목의 통증이다. 손목 터널증후군은 지속적으로 무리하게 손목을 사용할 경우 발생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요리사, 운전기사, 가정주부, 사무직,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의 사용량이 많은 경우에 수근관의 크기나 공간을 줄이는 현상이 지속돼 정중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이 유발되는 경우가 많다.이처럼 신경이 눌려서 저림이나 통증이 계속될 경우에는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신경의 압박이 장기간 유지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근육 위축으로 근력이 약해지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만큼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개개인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비교적 간단한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부터, 신경치료, 재생치료, 체외충격파치료, 수술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고려된다. 최근에는 신경 프롤로 치료도 하나의 치료법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눌려 있는 신경이 어딘지 초음파로 정확한 위치를 찾은 뒤 신경을 재생 시킬 수 있는 주사액을 주입해서 눌려 있는 신경을 재생하는 치료 방법이다.배기윤 대구 완쾌신경과 대표원장

2021-01-19 16:11:14

[경제칼럼] 하찮은 아이디어는 없다

[경제칼럼] 하찮은 아이디어는 없다

'크게 될 작은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하는 하찮은 안목만이 있을 뿐'. '2019 기업가 정신 실태조사'에서 대구경북 청년들의 창업 의지가 전국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구경북 청년창업 활성화를 위해 처음으로 던진 구호이다.이는 삼성전자 재직 당시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을 운영하며 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할 때 하곤 했던 말이기도 하다.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작은 아이디어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혁신 아이디어로 진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여기 교훈이 되는 몇 가지 사례가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C랩 과제를 선정할 때 있었던 일이다. 3D 프린팅 산업 육성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던 때였는데, '음식을 프린팅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푸드 프린터'를 과제로 도전한 팀이 있었다.불과 2주 만에 만들어낸 푸드 프린터 프로토타입 카트리지를 통해 나오던 피자 반죽을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이란! 누구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참신하고 생소한 아이디어였지만 '누가 프린팅된 음식을 먹겠어?' '시장의 수요가 있겠어?'라는 회의적인 평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그 아이디어는 최종 과제로 선정되지 못했다.하지만 머지않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3년,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식 개발을 위해 3D 푸드 프린터 분야에 12만5천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NASA는 푸드 프린터로 만들어낸 음식은 폐기물이 없다는 점, 고체 형태의 음식을 만들 수 있어 우주인들의 저작 운동과 위장관 운동에 도움이 된다는 점, 필수 영양 성분을 쉽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푸드 프린터 분야에 관심과 투자가 증가했고, 이를 시작으로 푸드 프린터는 미래의 생활상을 바꾸어 놓을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로 평가되기 시작해, 현재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10대 유망 기술로 지정되는 등 촉망받는 산업으로 성장했다.또 하나의 사례로 지난 2013년, 직접 끌지 않아도 주인을 인식해 따라오는 캐리어 제작을 목표로 C랩에 선정되었던 아이디어가 있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겨울 왕국의 눈사람 모형에, 소형 UWB 레이더를 장착해 연동된 휴대폰을 졸졸 따라오게 만든 모델을 구현하는 데 성공해 생소하고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이 신선한 아이디어는 초기 기술 구현 및 비즈니스 미팅까지 추진되었지만, '과연 그게 되겠어?'라는 다수의 부정적 평가들에 결국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데 실패했다.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 레이더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와의 거리를 감지해 이동하는 데 성공한 스마트 캐리어가 해외에서 처음 출시됐다. 크게 될 기회를 놓친 작은 아이디어는 이후 스마트 캐리어, 자율주행 캐리어, 로봇 캐리어 등의 이름으로 AI(인공지능) 센서, GPS(위성항법장치) 등의 다양한 기능을 탑재해 고도화되기 시작했다.현재는 오프라 윈프리, 제시카 알바, 토리 버치 등 유명 셀럽들이 앞다투어 구매하며 대기 명단에 1만 명 이상을 올릴 만큼 주목받는 아이템이 되었다.위의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처음부터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도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격려하며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초의 자동차는 시속 5㎞/h의 속도로 경쟁 상대인 마차보다도 느렸고,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비행기 플라이어호는 고작 12초에 40m를 비행했다.이들의 시작은 비록 형편없었지만 그 시작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현재와 같은 눈부신 발전은 결코 불가능했을 것이다.이처럼 위대한 창업의 시작은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정부와 지자체에서 아이디어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창업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찮은 아이디어란 없다. 숨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하찮은 안목만 있을 뿐.

2021-01-19 14:14:59

[매일춘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

[매일춘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

창의력만 있다면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광고, 드라마, 영화까지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영상 분야의 진입장벽을 허문 기술 발전이 재능과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창작자들의 등장도 촉진하고 있다.대구영상미디어센터를 찾는 청년 중에도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다. 몇몇은 어린 나이에 영화 데뷔작을 찍기도 했고, 영상 제작 사업자로 등록해 일찌감치 창업한 친구도 있다.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얼마 전 창업한 K도 그 중 하나다. 매사에 열심인 그가 내심 기특해서, 광고 경력이 있는 선배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관공서나 공기업 입찰을 공략하라"고 조언했더니, "그러고 싶지만 갓 시작한 1인 사업자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K는 답했다. 나는 속으로 '청년이여, 도전도 않고 이 무슨 나약한 소리인가'라고 생각했다.얼마 뒤 대구시의 홍보영상 입찰 정보를 찾아봤다. 영상 분야의 증명 취득 최소 기준이 2인 이상, 4대 보험 가입 사업장이었다. 카메라, 음향, 편집 장비의 보유 여부도 현장 확인을 받아야 하고 생산 공정, 납품 실적 등 제출서류도 많았다. 진입 장벽 자체가 높았던 것이다. 불가능한 일을 노력하라 닦달했던 이 꼰대유망주를 보며 K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겸연쩍은 미소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직접 생산 확인 증명 제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부정입찰, 허위입찰을 막고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다만 모든 분야에 일괄적용하기에는 산업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광고, 드라마 등 영상분야가 대표적이다. 규모 있는 회사를 능가하는 1인 사업자가 넘쳐난다. 민간기업들도 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이럴 광고 분야를 중심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대구시가 변화에 먼저 반응해보면 어떨까. 광고홍보 제작 예산 일부를 청년 1인 제작자를 위한 공모로 할당하면 어떨까. 건당 제작비를 낮추고 여러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규정 위반 여지도 줄일 수 있다.무엇보다 광고효과 측면에서도 낫다. 청년들의 도전을 가로막는 비가시적 장벽을 없애려 세심하게 배려하는 대구시의 시도 자체가 홍보거리가 된다. 청년 1인 기업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처진 분야가 비단 영상제작뿐일까.비록 이 꼰대유망주는 사정도 모르고 도전을 설파했지만, 정책을 입안하시는 분들께서는 청년의 눈에만 보이는 장벽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세심하게 살펴봐 주시길 바란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1-19 11:40:13

[종교칼럼]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

[종교칼럼]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

새 신을 갈아 신은 신축년 새해가 따뜻한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올해도 우리는 건강한 가정,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사회를 소망하며 달려왔는가. 1945년에 나온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두 권의 책은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닫힌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라고 했다. 그가 말한 닫힌 사회는 '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등이 활개 치는 곳이다. 그러면서 그는 열린 사회야말로 우리 인간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라고 했다.열린 사회란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 잘못을 인정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는 사회, 다른 사람과 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내가 틀릴 수도 당신이 옳을 수도 있음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사회다. 칼 포퍼는 단지 2차대전 당시 히틀러가 자신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런 열린 사회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고, 성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당하지 않는 사회가 모두가 꿈꾸는 사회이기 때문이다.그렇다. 배제와 차별은 좋은 가정, 열린 사회의 적이다. 우리가 사회의 제반 활동에 참여할 수 없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수도권에 살든, 중소도시에 살든, 높은 위치에 있든, 낮은 위치에 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 위치에서 차별받는다면 삶이 싫을 정도로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가난은 참을 수 있고 차이는 견딜 수 있지만, 차별만은 참을 수 없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지지하지 않을 국민이 없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방역에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그런데 방역이 강화되자 스키장에 이어 헬스장과 카페 사업자의 불만이 분노로 바뀌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코로나 방역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방역에 차별받는다는 생각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차별이 존재한다. 심지어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인간이 타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마음이 본능'이라고까지 한다. 더 절망적인 것은 '교육 수준이 높고,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끊임없이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사회 복지에서 사용하는 노멀라이제이션(Normalization) 이론의 기여는 놀랍다. 노멀라이제이션은 우리말로 일상화, 보편화, 정상화가 아닌가? 이 이념의 본질은 장애인이 격리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정상화이다.그러나 돌이켜보자. 차별의 벽을 쳤던 사람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람들인가. 우리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를 정상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족이나 공동체의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 가족이나 공동체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배려심이 많고, 따뜻하다. 사실 우리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를 정상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며 어린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18:16)고 하셨다. 어린 아이야말로 변변찮은 존재고, 약자가 아니었던가? 예수님은 연약한 어린 아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셨다. 올해는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2021-01-19 11:38:28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세계의 창] 사담은 떠나고

1990년 5월, 필자는 바그다드에 있었다. 티그리스강 변에 위치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 이름도 '바그다드 호텔'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유서 깊은 호텔은 티그리스강 서쪽의 카르흐 지역에 있었다. 5월이면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가 티그리스강 변을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간혹 바람이 불면 강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지금이야 이라크 하면, 도시를 뒤집을 듯 퍼붓던 포탄과 함께 불의 도시가 된 바그다드를 떠올리지만 1990년 5월만 해도 바그다드는 평온한 도시였다. 저녁이면 손에 손을 잡은 가족들이 잉어 구이 마스구프를 먹으러 티그리스강 변의 아부누아스 거리로 몰려들었고, 식당에서는 원시적 욕망을 일깨우는 아랍 음악들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만 해도 이라크는 '정상 국가'였다는 말이다.1990년 5월의 바그다드는 그랬다. 1980년에서 1988년까지 무려 8년을 지속하던 이란과의 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으로 끝이 났고, 국민들은 이제야 미래를 위한 설계를 할 수 있겠구나 믿었다. 희망은 석 달 만에 끝이 났다. 1990년 8월 2일 사담 후세인의 명령을 받은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의 국경을 넘었다. 당시 쿠웨이트 군대는 1만6천 명, 이라크 군대는 정규군만 95만 명이었다. 전력만으로 보아도 상대가 되지 않는 전쟁이었다. 쿠웨이트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라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20세기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사담 후세인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은 명분이 있었다. 이란과의 8년 전쟁은 사실상 미국을 위한 대리전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은 친미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렸고, 미국민들은 외교관 등 52명의 미국인들이 444일 동안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악몽을 겪어야 했다. 1980년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벌였을 때 미국은 얼마나 이를 환영했겠는가. 반미를 부르짖는 이슬람근본주의를 사담 후세인이 막아 주었으니 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후에 국방장관이 되는 도널드 럼스펠드를 특사로 파견해 사담 후세인을 만나도록 할 만큼 이라크는 미국에 필요한 존재였다. 각종 지원도 했다. 그러나 1990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하면서 미국은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고 '마지막 인류'로 스스로를 기록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미국을 위한 대리전을 치렀는데,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아랍국들에 거액의 빚만 지게 되었다. 쿠웨이트에 진 채무만도 140억달러(15조원)로 기록된다. 사담 후세인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에 채무 탕감을 요구했지만 두 나라는 거부했다. 게다가 쿠웨이트는 하는 일마다 눈엣가시였다. 이라크의 주 수입원은 원유 수출, 그런데 쿠웨이트는 오펙(OPEC)의 생산 할당량보다 증산을 해서 유가를 떨어뜨리는가 하면 이라크와의 국경지대에서 이라크 쪽 원유를 빼가는 것이었다.(이라크 측 주장) 이라크 국민들의 불만도 한몫을 했다. 전쟁이 끝나고 귀가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없었고, 클린턴이 부르짖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이라크에서도 작동했다. 내부 불만을 돌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전쟁이라는 말을 사담 후세인은 믿었을까, 걸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1991년의 걸프전과 2003년의 이라크전은 사담 후세인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두 차례의 대전으로 이라크는 삼등분되었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사실상 독립 상태이고, 시아파가 권력을 잡았다. 수니파는 해체되어 일부는 21세기의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로 흡수되었다. 아들과 사위들은 살해되고 부인은 망명, 후세인 가문은 공중분해되었다. 그 가족뿐인가. 199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살이 된 지금, 삶 전체를 전쟁과 함께 보내야 했다. 이라크 사람들은 한 세대를 압류당한 셈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포탄에 목숨을 잃거나 사지를 절단해야 했던 국민들, 그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삶을 압류당했나. 그것은 지도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지도자가 잘못된 판단을 하면 그 결과는 본인은 물론 국민 전체가 뒤집어쓴다. 지도자의 판단력이 중요한 이유이며, 지도자 선택을 잘 해야 하는 이유이다.

2021-01-18 11:48:54

[매일춘추] 트로트, 제대로 알고 부르자

[매일춘추] 트로트, 제대로 알고 부르자

요즈음 트로트 열풍은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트로트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온 국민이 트로트에 울고 웃는다. 하지만 트로트 역사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이토록 트로트에 열광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1914년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4박자 스텝의 사교댄스 폭스트롯이 유행했다. 앞서 일본에서는 1880년대 메이지유신 때 대중 계몽을 위한 연설과 관련하여 엔카(演歌)가 생겨났다. 1920년대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트로트는 엔카와 폭스트롯을 접목한 것으로 흔히 뽕짝이라 부르는 2박 계통의 요나누키음계로 이루어진 가요를 말하게 됐다.요나누키(よなぬき)음계는 7음계에서 네 번째와 일곱 번째 음을 제거한 5음계로, 요나누키장음계(도레미솔라)와 요나누키단음계(라시도미파)로 나눈다. 요나누키장음계는 우리나라 평조와 비슷하지만 율(律)음계라 하여 가가쿠(아악)에 사용되었고 일본국가인 기미가요와 제2 국가로 불리는 우미유가바에도 사용되었다.일제강점기 말 군국정신을 고취하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군가의 대부분은 이들 음계로 만들어졌다. 이것의 국내 전파는 전통음악을 짓밟고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세뇌당한 한국 작곡가들은 자발적으로 이 음계를 사용하여 곡을 만들었는데 춘원 이광수 시, 임동혁 곡 '애국일의 노래'와 홍난파의 '희망의 아침'은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황국신민으로 일왕에 충성을 다짐한다. 이 음계로 만든 가요에는 '홍도야 울지마라', '나그네 설움', '신사동 그 사람' 등이 있다.미야코부시(都節)라 불리는 요나누키단음계는 인(陰)음계로 일본적 색채가 짙고 그들의 민족혼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음계로 만들어진 엔카는 슬픈 느낌으로 일본의 험악하고 퇴폐화되어 가는 도시적 세태를 반영한다. 이 음계로 작곡된 곡으로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비나리는 고모령', '단장의 미아리고개', '돌아와요 부산항에', '세상은 요지경' 등 수없이 많다. 심지어 '독도는 우리 땅', '나의 조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음계의 어두운 면은 암울했던 우리 민족의 식민 정서와 맞닿아 있기도 했다.그렇다 하더라도 일제의 식음(植音)정책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해방된 지 어언 75년이 지난 지금도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는 '트로트의 민족'이란 타이틀로 트로트를 방영했다. 누가 트로트 민족인지, 무엇을 '전통'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장래희망이 트로트 가수란다. 지금 온 국민이 트로트에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트로트의 본질을 알고 부르자.유대안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2021-01-18 11:33:37

[기고] 갑질, 뿌린대로 거둔다

[기고] 갑질, 뿌린대로 거둔다

'당신 자리를 보존하고 싶으면, 나를 잘 접대하라.''인사권이 나한테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한다.''회사에서도 날 자를 순 없으니,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을 나가게 하겠다.'이런 말을 매일 듣는다면, 그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갑질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지위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부당한 대우를 요구하거나 처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갑질 행위의 가해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갑질 사건은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피해가 발생할 시 이를 해당 기관의 상급자나 감사 부서에 신고하더라도 개인정보 보호가 잘 이뤄지지 않아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2018년 이후 갑질 행위 근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음에도 현행법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갑질 행위를 제외한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갑질 행위는 해당 조직 내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 3)이 때문에, 피해자는 여전히 갑질 상황에 놓인 채 해당 기관의 조치만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사내 고충 제도와 담당 부서가 있더라도 피해자와 갑질 행위자의 분리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갑질 행위자가 조직 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까닭에 그와 관련한 조사와 조치가 미흡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갑질로 인한 피해가 대구 몇몇 공공기관에서도 몇 년째 발생하고 있다. DGIST의 한 청소 용역업체의 경우 이미 3년 전에 갑질 피해 사실을 알리고 퇴사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올해도 다른 피해자가 발생해 해당 조직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조치가 늦어지는 사이 2차 피해가 발생했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갑질을 단순히 그 조직 내부의 인간관계 문제로 여기고 당사자들에게 맡겨 놓는 동안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구제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떠나게 된다.따라서 갑질 행위의 근절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서는 해당 조직 내에서 발생한 갑질 행위에 대해 자유로운 피해 호소가 가능한 별도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 대구 시민의 복리 향상과 지역 내 선진적인 근로 분위기 형성을 위해 시 차원의 갑질신고센터 등 지역 근로자의 근로 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또한 필자는 DGIST 청소 용역업체의 갑질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대구시 인권 옴부즈만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다. 현재 대구시 인권 옴부즈만의 업무는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을 대구 시민 전체로 확대한다면 대구 시민의 인권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러한 제도적 지원 체계를 바탕으로 대구시 산하 기관뿐 아니라 우리 지역에 위치한 각종 공공기관 및 대학교와 근로자 인권 보호를 위한 상호 협력을 통해, 해당 기관과 관련된 용역업체에서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를 갑질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점검과 구제도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우리 지역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면서 성공적인 지방분권과 행정통합의 시대를 열어 갈 수는 없다.대구시는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행정관청인 만큼 시 소속이 아니더라도, 공공성 또는 준공공성을 지닌 대구의 모든 공공기관과의 협업 및 관련 조직의 신설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의 어려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광역 행정기관이 되어야 한다.

2021-01-18 11:28:42

[매일춘추] 이젠, 독서모임도 온라인으로

[매일춘추] 이젠, 독서모임도 온라인으로

2015년 1월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된 시점이다. 혼자 읽기에서 벗어나 함께 읽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독서토론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결단하고 서울에 있는 유료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참여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두 달 간 매주 토요일 새벽마다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다. 그 전까지는 주로 혼자서 책을 읽었다. 간혹 도서관에서 독서회를 맡아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업무의 연장선에서 빠듯한 일과 중 하나일 뿐이었다.긴장과 설렘을 안고 모임에 참석했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은 어떨까? 내 사투리가 투박하고 촌스럽게 들리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참여자는 30대에서 60대까지의 교사, 회사원, 출판인, 주부 등 다양했다.첫 모임에서 진행자는 세련된 태도와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독서토론은 골방 독서에서 광장 독서로, 평면적인 독서에서 입체적인 독서로 나아가는 활동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과 의견을 공유하며 자신의 주장을 조리있게 말하는 소통의 자리입니다."매주 토요일을 기다리면서 바쁜 업무도 즐겁게 하며, 매주 한 권씩 과제로 주어진 책도 열심히 읽었다.독서모임에 여덟 번 참여하면서 혼자 읽을 때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한 권의 책으로 각자의 감상과 평가, 성찰과 해석 등을 나눌 때 같은 책이 다르게 보였다.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나누다보니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 같았다.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의 소중함도 배웠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책에만 집중하는 토론이 이루어져 신선한 지적 자극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독서토론의 '찐팬'이 되었다.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5월부터 10월까지 전국 독서동아리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시민들의 독서동아리 참여가 독서 진흥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아리 참가자들은 독서모임을 하면서 크게 변화된 점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된 점, 타인과 소통으로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는 점, 독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 학습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점 등이다. 이 조사 결과는 제3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9~2023)에 반영되어 독서 정책의 목표가 홀로 읽기에서 함께 읽기로 전환되었다.지역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 독서동아리 140여 개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독서동아리 모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필자도 수년간 지속해 오던 독서모임을 작년 하반기부터 온라인으로 변경했다. 비대면 모임이 대면 모임보다는 '함께하는 에너지'가 조금 약하지만, 회원들은 화상으로나마 독서토론을 이어갈 수 있어서 만족감이 높았다.코로나 시대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예전처럼 회원들이 만나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은 여전히 힘들다. 그렇기에 도서관 독서모임도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 대안이 필요하다. 랜선 독서모임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2021-01-18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위(1769-1847), ‘방대도’(訪戴圖)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위(1769-1847), ‘방대도’(訪戴圖)

시, 글씨, 그림 세 가지를 다 잘 한 삼절이 조선시대에 여럿 있지만 그 중 자하(紫霞) 신위를 첫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시서화 중 방점을 어디 찍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문인예술의 으뜸인 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신위가 으뜸이 될 것 같다. 신위의 시는 그가 직접 정리한 4천여 수가 전하는데 근대 전환기의 문학가 김택영은 그 중 932수를 고른 '신자하시집'(1907년)을 중국 남통(南通)에서 간행하며 서문에서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신위를 꼽았다.신위의 그림은 묵죽이 유명하지만 산수화도 다수 남아 있다. '방대도'는 제화시를 먼저 읽어야 그림이 이해되는 문인화의 한 전형이다. 일각응빙풍노호(日脚凝氷風怒呼) 햇발은 얼어붙고 바람은 거세게 부르짖으니루음산대합모호(樓陰山黛合糢糊) 그늘진 누각 검은 산 모두 어렴풋하네몽회주기전소석(夢回酒氣全消席) 꿈에서 돌아오니 술기운 모두 사라진 자리에인정향연상재로(人靜香煙尙在罏) 인적은 고요한데 향 연기는 술항아리에 여전하네일점사비융난연(一點斜飛融㬉硯) 한 점 눈 날아들어 벼루에 떨어져 녹고건성취지변한노(乾聲驟至變寒蘆) 건조한 소리 휘몰아치니 차가운 갈대 요동치네우연수묵참황미(偶然水墨參黃米) 우연히 수묵으로 황공망과 미불을 참조해맥지신유방대도(驀地神遊訪戴圖) 홀연히 정신을 노닐으니 방대도라네 초설주후(初雪酒後) 자제(自題) 황불황미불미법(黃不黃米不米法)첫눈이 내려 술 마신 후 쓰다. 황공망이면서 황공망이 아니고, 미불이면서 미불이 아닌 화법이다. 신위는 그 해 눈이 처음 내린 날 "왕휘지가 대규를 찾아간 그림"인 '방대도'를 그렸다. 왕휘지가 어느 날 밤중에 깨어보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노라니 문득 대규가 보고 싶었다. 왕휘지는 소흥에 대규는 소주에 살고 있었다. 곧 배를 타고 찾아갔으나 왕휘지는 대규의 집 문 앞에서 그냥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중국 위진시대 명사들의 별난 언행을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왕휘지는 서성(書聖) 왕희지의 다섯째 아들로 그도 유명한 서예가이다.사람들이 밤중에 그 먼 길을 가서 왜 만나지 않았냐고 묻자 "흥이 일어나서 갔고, 흥이 다해 돌아왔을 뿐 꼭 만나야 하나?"라고 대답했다. 마음이 가는대로 행위의 과정을 향유할 뿐 목적에 구애받지 않았던 왕휘지의 천진한 흥취와 초탈한 태도를 보여주는 이 에피소드에 많은 사람이 공감해 고사도(故事圖)의 한 주제가 되었다. 눈이 내리면, 특히 첫눈이 내릴 때면 누군가가 생각나는 것은 고금에 같은가 보다.미술사 연구자

2021-01-18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질문

"기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된다." 최장수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 기록을 가진 고(故) 헬렌 토머스 기자의 말이다. 토머스는 "대통령에 관한 한 기자들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기자회견은 국민을 대신해서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라고도 했다.그의 말처럼 생중계되는 백악관 기자회견 장면에선 긴장감이 흐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1월 기자회견 석상에서 CNN 짐 아코스타 기자와 말싸움을 벌였다.이민자 배척, 러시아 스캔들 관련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폭발한 것이다. "가짜 뉴스" "부끄러운 줄 알아라"는 삿대질에 이어 마이크를 빼앗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적대적 언론 환경'이라서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르윈스키의 옷에 묻은 액체는 대통령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오바마 케어에 대한 말이 수시로 바뀐다" "지지율이 최저인데, 올해가 최악의 해인가요?"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됐다.기자들이 악의로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다. 백악관이 아코스타 기자에 대해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자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성명을 발표했다."기자들은 업무 수행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고, 기자단은 회원들이 대통령을 포함한 힘 센 공직자들에게 하는 질문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이런 상호작용은 불편해 보이지만 우리 국가기관들의 힘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자들이 어렵고 불편한 질문을 하는 것은 대통령이 힘을 남용하지 못 하도록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는 말이다. 자기 검열 없는 기자의 질문이 필요한 핵심적 이유이다.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다. 연례행사인 기자회견도 문제지만 내용 면에서도 미국과 같은 질문은 언감생심이다. 후속 질문은 물론 추궁성 질문도 없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날카로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무례' 운운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표적이 된다. 기자들 탓만이 아니라 바탕이 되는 문화가 판이한 것이다."대통령께서는 신년사에서 부동산 문제에 관해 사과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거나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과거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청와대 참모들의 장밋빛 보고서였는지, 국토부 장관의 장담인지, 그걸 포함한 여러 경로로 청취한 의견을 종합한 결과인지 궁금합니다.""추미애·윤석열 갈등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어도 대통령께서 전혀 언급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 대통령께서 사과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포기한 게 아닌가요? 윤 총장에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여권의 비난 공세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 총장, 최 원장 모두 우리가 임명한 공직자들입니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감사원은 감사원의 일을 하도록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맙시다'라고 당부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북한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대통령 개인과 대한민국을 모욕할 때 대통령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특등 머저리라는 김여정의 비난이 과감히 대화하자는 요구라는 해석에 동의하시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북한의 조롱과 모욕에는 한없이 관대하고 우리의 국민적 자존심이 구겨지는데도 못 들은 체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부동산 문제, 추·윤 갈등, 남북 대화 등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과 대처는 실망스러웠다. 국민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과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은 국민 모두의 삶에 너무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벼슬의 높고 낮음에 근거하여 의견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의견만 참고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한비자)라는 경고를 상기할 필요도 있다. 대통령직에 대한 존중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왕이 아닌 국민의 공복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질문이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기를 바란다.

2021-01-17 20:30:00

[기고]지방분권 개헌이 답

[기고]지방분권 개헌이 답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30년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강산이 3번이나 변할 때까지 '2할 자치'에 머물러 지방분권 운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안타까움보다 자괴감이 앞선다.문재인 정부 출범 시에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할 때 큰 기대를 했는데 립서비스로 끝났다.그러나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중심으로 지방 4단체와 연대하여 조직적이고 치열하게 준비, 정부와 국회에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 1988년 이후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지난 1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었다.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하나하나 채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선 주민 주권과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들이 신설되었다.첫째, 따로 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방단체장의 선임 방법을 포함해 의회, 단체장 등 기관의 형태를 지역 여건에 맞게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 경우는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둘째,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조례 규칙의 개정, 폐지 및 감사 청구권을 위한 기준 인원과 연령을 낮추는 등 주민의 참여 문턱도 낮추었다.셋째, 지방의회 의정활동 및 집행기관의 조직, 재무 등 주요 지방자치 정보를 주민에게 공개하도록 하였다.넷째, 지방의회 독립성 차원에서 지방자치 단체장의 의회사무처 인사 권한을 지방의회 의장에게 부여하게 되었다.다섯째, 지방의회 의원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책인력지원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의원 정수 범위 내에서 충원하도록 제한하였고 최초 충원 인원의 절반은 2022년, 나머지는 2023년에 순차적으로 충원하도록 하였다.또 법률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을 위해 하위 행정입법에서 제한하는 것을 금지해 지방의회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어 지방의회 의원의 겸직 신고를 공개하고 겸직 규정도 구체화해 이해충돌을 방지하게 했고, 균형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중요 정책에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신설하도록 한 것도 성과다.그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결을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지방자치 관할 구역 경계 변경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방자치 단체 간 상호 협력을 위한 지원 근거를 신설, 지방자치 단체 간 원만한 갈등 해결과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특히 대도시 등 특례 부여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이거나 ▷실질적인 행정수요, 국가 균형 발전, 지방소멸 위기를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군·구에 대하여는 관계 법률에서 행정, 재정, 운영 및 국가 지도 감독에 대한 특례를 둘 수 있도록 하였다.하지만 선진국처럼 진정한 지방화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입법권, 조직권, 재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개헌을 헌법정신에 담아야 한다. 우리도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국가다'라고 천명하여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방자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내년은 대선, 지방선거로 선거 정국으로 들어간다. 전국의 지방분권 단체들은 작은 이해관계를 떠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방분권 개헌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결집할 때이다.최백영 대구지방분권협의회 의장(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2021-01-17 15:50:20

[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4. 인도네시아 섬 여행, 블리퉁

[황수영의 자카르타 체류기] 4. 인도네시아 섬 여행, 블리퉁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인도네시아의 섬은 발리다. 섬나라인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연결되는 직항이 많고, 영어도 잘 통하는 편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자카르타에서 발리로 여행하려면 최선은 아니다. 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비행 거리는 약 2시간, 1시간 시차가 있어 최소 2박 3일은 있어야 여행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섬이 바로 블리퉁(Belitung)이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도착하는 블리퉁은 1박2일 빠듯한 일정으로 자카르타를 벗어나기에 적격이다.지난해 코로나 19가 터지기 직전에 친구와 함께 주변에서 주워들은 정보를 중심으로 블리퉁 여행 계획을 짰다. 발리행 비행기엔 외국인 승객이 많았지만, 블리퉁행 비행기에는 대부분 가족 단위의 인도네시아 여행객들이었다. 블리퉁은(4,800km²)은 제주도 면적(1,849km²)보다 2.5배 정도 큰 섬이다. 블리퉁을 찾는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화강암과 백사장으로 유명한 탄중 팅기(Tanjung Tinggi), 탄중 클라양(Tanjung Kelayang) 해변을 비롯해 스노클링 등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는 호핑 투어를 즐긴다. 특히, 블리퉁의 시골 학교를 살리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도네시아 영화 '무지개 분대 (Lakar Pelangi)'가 2008년 개봉해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 배경인 블리퉁의 인기도 인도네시아에서 더 높아졌다고 한다.인도네시아에서 섬이라곤 발리만 경험한 나는 블리퉁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힌두교가 중심인 발리에서는 술을 찾아 헤맨 적이 없었지만,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블리퉁에서는 술에 엄격한 문화 때문에 호텔을 벗어나면 식당에서도 맥주를 찾기 어려웠다(참고로, 자카르타도 슈퍼마켓, 편의점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맥주가 그리울 때면 귀찮지만 대형 마트 식품관에 마련된 별도 공간을 찾아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한 해산물 식당에서 맥주를 주문하자, 종업원은 당황하더니 콜라, 생과일주스가 잔뜩 적힌 음료 메뉴를 가져왔다. 그래도 자카르타에선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었는데, 해산물 요리와 파파야 주스 조합은 아무래도 아쉬웠다.우리는 맥주에 대한 집착을 다음 날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구글 지도의 식당 후기를 검색해 맥주를 파는 식당을 어렵사리 찾은 뒤 택시로 타고 달려갔지만, 그 식당은 망해버렸는지 입구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 식당에 가면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구체적인 정보를 남겨준 이름 모를 외국인이 고마웠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블리퉁에서 맥주 파는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맥주 후기'를 남겼을 테다. 그렇게 다시 구글 지도를 검색해 맥줏집 한 곳을 겨우 찾았다. 한국인의 집념으로 찾은 그 식당에서 에어컨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신 인도네시아 맥주 빈땅(Bintang)은 이번 여행의 최고 성취였다.블리퉁에서 유명한 해변인 탄중 팅기에 갔을 때도 신선한 문화 차이를 경험했다. 해변에 도착해 비키니로 갈아입고 입수 준비를 한 뒤 주변을 둘러보자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몸을 노출하고 수영하는 여성이 보이지 않았다. 성인 여성들은 물론 다섯 살 정도 된 여자아이들도 히잡을 쓴 채 물놀이를 하는 모습은 인도네시아가 무슬림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블리퉁은 발리 같은 유명 관광지에서 느끼지 못한 시골의 순박한 맛이 있었다. 여행 첫날 택시 기사님에게 구글 검색으로 알게 된 식당으로 가달라고 부탁하자 영어가 서툰 기사님은 구글 번역기를 통해 '가게가 문 닫았다'고 했고, 우리가 두 번째로 선택한 식당을 말하자 '그곳은 맛이 없다'는 번역이 돌아왔다. 충격이었다. 목적지까지 손님을 데려가면 그만일 텐데, 맛없는 식당에 가서 실망할 우리가 걱정됐던 것일까. 기사님은 해산물 전문점 한 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의심이 많은 나는 기사님이 추천한 식당을 구글에 검색해 후기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책임감 있는 동네 주민의 추천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기사님 추천 식당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해산물 전문점이다. 식당에 도착해 택시비를 계산할 때 잔돈이 부족했는데 기사님은 괜찮다며 택시비를 할인해 주셨다. 자카르타와 발리에서 겪지 못했던 호의였다.1만7천 개가 넘는 섬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가보고 싶은 섬이 많다. 인도네시아의 몰디브라고 불리는 까리문자와(Karimun Jawa), 코모도왕도마뱀을 볼 수 있는 코모도섬과 서핑 성지인 발리 등 마음 속에는 여행 목록이 가득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그 날을 간절히 기다려 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직장인. 우리나라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자카르타와 이곳에서의 생활을 소개한다.

2021-01-17 05:00:00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끈끈이 붙은 고양이 살리는 콩기름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끈끈이 붙은 고양이 살리는 콩기름

어린 고양이가 '끈끈이'(mousetrap glue)가 붙어 내원했다. 사무실 구석에 바퀴벌레를 잡으려 비치해둔 끈끈이 트랩에 예삐가 붙어버렸다. 예삐가 끈끈이를 떼어내려 몸부림칠수록 초강력 본드 같은 끈끈이는 뒷다리며 꼬리까지 엉켜 붙여버렸다.쥐와 해충을 잡기 위한 끈끈이 트랩은 초강력 점착력을 가지는 물질이라 고양이에게 매우 위험하다. 끈끈이가 묻은 털은 피부와 밀착되며 살이 짓이겨지는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할 경우 사지가 엉겨 붙은 채 고통스러워하다 탈진으로 사망하기도 한다.끈끈이 트랩이 고양이 몸에 붙었을 경우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처치법을 소개한다.1. 티슈나 종이 타월로 끈끈이가 붙은 부위를 감싸준다. (끈끈이가 더 넓은 부위로 확산되는 걸 막아준다). 빵가루를 두텁게 발라줄 수도 있다.2. 넥카라를 착용한다. (끈끈이가 얼굴 부위로 확산되는 걸 막아준다)3. 라텍스 장갑을 끼고 콩기름을 부어 엉킨 부위를 비벼준다. (콩기름이 끈끈이를 희석시킨다)4. 종이 타월로 희석된 끈끈이 성분을 흡착 시켜 제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5. 제거 과정이 오래 걸려 휴식이 필요할 경우 빵가루를 몸에 묻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빵가루가 끈끈이에 부착되어 확산을 방지하고 일부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6. 건조된 털을 만졌을 때 점착력이 사라질 때까지 콩기름 마사지, 종이 타월 흡착, 빵가루 목욕을 반복한다.7. 끈끈이를 충분히 제거했다고 판단되면 샴푸와 린스를 하고 털을 말려준다.테레핀유, 아세톤, 등유, 스티커 자국 제거제는 고양이에게 매우 해롭다. 소량이라도 호흡기로 흡인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끈끈이가 피부 속까지 엉겨 붙은 상황이라면 가위로 털을 잘라 내려다 피부를 자를 수도 있다. 하지 말아야 한다.끈끈이 제거는 털을 말렸을 때 점착력이 사라질 때까지 반복돼야 한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동물병원에 의뢰해야 경우는 고양이가 예민해 다룰 수 없거나, 얼굴 주변에 끈끈이가 붙어 진정 마취가 필요한 경우로 이해하시면 된다. 동물병원에서도 오랜 시간을 할애해 치료해야 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진료비 부담을 각오하셔야 한다.유성페인트가 묻은 고양이 처치도 동일하다. 몇 해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 방영한 녹색 고양이 치료 과정을 소개해 드린다. 당시 유성페인트를 보관한 드럼통에 빠져버린 고양이는 온몸이 녹색이었으며, 자신의 몸을 핥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양의 페인트를 먹어버린 상황이었다.내과적인 치료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온몸에 범벅된 페인트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콩기름으로 마사지하며 희석된 페인트를 종이 타월로 닦아내는 과정이 무한 반복됐다. 방송에서는 치료 과정의 일부만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8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고양이가 털을 핥아도 유해물질이 섭취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고양이가 입양갈 때의 뿌듯함보다는 그 과정의 수고스러움이 유난히 기억나는 케이스였다.끈끈이를 제거하는 과정은 무한 반복돼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드리고 싶다. 고양이가 털과 피부에 남겨진 유해물질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고양이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1-16 06:30:00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유럽: 지리학 독본'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유럽: 지리학 독본'

도서관 고문헌 목록을 검색하다가 보면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해서 도서관에 들여왔는지 그 경로가 궁금해지는 책이 있다. 'EUROPE: A Geographical Reader'(유럽: 지리학 독본)가 그런 책이다. 1925년 미국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의 초판본이 대한민국에는 단 한 권,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경북대학교 도서관이 건립된 것은 1952년, 이 책의 출판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지난 때였다. 그러니 이 책은 상당시간 여기저기 떠돌다가 도서관에 안착한 것이다. 책이 떠돈 그곳이 어디였건 간에 이 책은 자립을 꿈꾼 여성과 바깥세상을 알고 싶어 한 모험가, 그리고 제국의 속국 상황에 있던 가난한 나라의 지식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듯하다.'유럽: 지리학 독본'은 유럽 여러 나라의 문화 지리적 풍토를 소개한 책이다. '어린이 교육서'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저자 비니 비 클락(Vinnie B. Clark)은 1878년 태생으로 작가이자 세계 여러 나라를 탐사한 지리학자이다.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이 1920년이었으니 그녀는 여성의 자립에 우호적이지 않은 보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이었다. 그 젊은 시절 동안 클락은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 내의 편견에 맞서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경험의 영역을 넓혀갔다. '유럽: 지리학 독본'에는 그런 그녀의 다양한 경험과 강인한 마음의 힘이 녹아있다.책은 덴마크에서 시작해서 식민지 상태에서 막 벗어난 알바니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도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끝난다. 1921년 독립국의 위치를 차지한 알바니아를 목차에 넣은 것도 의외이지만 국가가 아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책의 끝을 맺는 것은 신선하면서 파격적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게재된 콘스탄티노플 시장 사진 밑에는 상점의 간판에 쓰인 다양한 언어를 주목하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다. 저자 클락은 세계 여러 나라 문화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실제로 사진 속 간판을 채운 다양한 언어를 보고 있으면 서양과 동양을 구별하고 문명의 우열을 거론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 시절의 서양이 제 아무리 동양을 두고 미개한 계몽의 대상이라고 소리를 높였던들 콘스탄티노플의 좁은 시장 간판에서는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다수 나라들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해있던 1920년대, 미국 지리학자 클락은 적어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차등'이 아닌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었다.이처럼 흥미로운 한 권의 지리학 서적이 언제 누구를 통해 한국에 유입되어 경북대학교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식민지 시기였을 수도 있고 해방 이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책을 선택했을 때 분명히 그의 마음을 끈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 무엇 중에는 콘스탄티노플 좁은 시장가 사진도 있지 않았을까. 이 사진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은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정혜영 경북대 교수

2021-01-16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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