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동의 발효이야기] 무염김치

김치없인 못 살아, 고혈압에 "무염김치"

김순동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김순동 대구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고혈압이 심한 지인이 무염 김치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삼시 세끼 김치가 없으면 음식을 먹지 못했다. 부인은 김치를 즐겨 먹는 남편을 위해 연중 각종 제철 채소로 다양한 김치를 만들어 상에 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을 찾은 그는 소금이 많이 든 김치나 젓갈 같은 음식을 먹지 말라는 권고를 듣고 전화를 한 것이다.

소금의 과잉섭취는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다. FDA는 나트륨의 하루 권장량을 2g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소금 양으로 환산하면 5g 정도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염도가 2% 이하인 저염 김치를 선호하고 있으나 염도가 낮은 김치는 발효 과정 중에 불필요한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하여 위생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김치는 채소를 자연 발효시킨 식품으로 채소와 젖산균 그리고 소금의 3요소가 필요하다. 채소에는 젖산균이 부착되어 있음으로 결국은 채소와 소금이 있어야 한다. 혹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던 젖산균이 떨어져 발효가 된다고 하나 이것은 맞는 말이 아닌 듯싶다. 삶은 채소에 소금을 넣으면 김치 발효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채소에 소금을 뿌려두면 삼투작용이 일어나 세포조직이 손상되고, 손상된 세포벽을 통해 영양분으로 채워진 세포액이 밖으로 솟아져 나온다. 외곽에 붙어 있던 젖산균은 이 영양원을 이용하여 발효를 일으킨다. 세포 외곽에는 젖산균 이외의 부패 미생물도 많이 존재하나 소금에 대한 내성이 약해 도태되고 소금에 강한 젖산균이 주로 번식하여 김치가 된다. 따라서 무염 김치를 만들려면 세포벽을 손상하는 일과 부패를 막는 일을 겸하는 처리가 요구된다. 즉, 자연 발효가 아닌 통제 발효가 필요하다.

소금의 조직 손상기능은 믹서를 사용하여 조직을 파쇄하거나 여타의 물리 화학적 방법으로 조직을 손상해야 한다. 보존성 확보를 위해서는 재료나 용기 등은 가열처리를 하여 무균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발효에 필요한 젖산균은 순수하게 배양하여 첨가하거나 시판 요구르트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이같이 살균한 김치 주재료와 부재료를 혼합한 후 무균적으로 발효를 수행하는 것이 통제 발효다. 마치 최근에 시판되고 있는 살균한 우유나 여기에 살균한 딸기나 그 즙을 혼합하고 젖산균을 접종하여 발효한 요구르트나 딸기 요구르트와 같은 제조방식이다. 김치의 관점에서 보면 요구르트나 딸기 요구르트는 통제 발효로 만든 우유 김치 또는 딸기 우유 김치라 할 수 있다.

통제 발효는 자연 발효의 반대 개념이다. 소금의 역할과 발효에 필요한 모든 여건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발효다. 다만 파쇄 살균하거나 채소조직을 여타 물리적인 방법으로 처리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김치 고유의 풍미를 잃을 수도 있다.

자연 발효에서는 재료나 초발 pH, 발효 온도 등에 따라 젖산균을 비롯한 김치 내의 미생물 패턴이 달라진다. 따라서 생성되는 유기산의 종류나 풍미도 차이를 보인다. 주로 나타나는 미생물로는 루코노스톡 메센트로이데스 (Leu. mesenteroides), 바이셀라 코리엔시스 (Weissella Koreensis), 패디오코크스 세르비지에 (P. cerevisiae), 락토바실루스 브레비스 (L. brevis), 락토바실루스 플란타룸 (L. plantarum) 같은 젖산균들이다.

반면에 통제 발효에서는 자연발효에서 나타나는 젖산균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통제발효에서는 시판되는 요구르트나 그 외의 특정한 프로바이오틱스 (probiotics)를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최근 요구르트 제조에 이용하고 있는 장 기능 강화나 면역력 증진, 해독, 우울증 개선, 항염, 항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락토바실루스속 (Lactobacillus) 젖산균이나 비피도박테리움속 (Bifidobacterium)의 다양한 젖산균을 스타터(starter)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림 참조).

김치 고유의 맛과 조직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초저염 김치를 만드는 한 방법으로 식초 등을 사용하여 초발 pH를 4.5 정도로 떨어트린 후 젖산균을 풍부하게 함유한 요구르트 같은 젖산균 스타터를 넣어 발효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변질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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