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야간산행

이나리 소설가 이나리 소설가

야간산행을 꼭 해내고 싶었다. 작년부터 바라왔던 일이었다. 올해 초, 무작정 실행으로 옮겼다. 그간의 등산 횟수와 정상석 인증의 효과로 한껏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해발고도 1천m가 넘는 산도 타는데, 그깟 200m 동네 산쯤이야. 나는 호기롭게 한밤의 산에 들어갔다.

첫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산에 오르기 전, 너무 어두울까봐 걱정된다는 내 말에 아빠는 "보름달이 뜨면 다 보여"라고 말했다. 아빠 말을 믿고 일부러 보름의 맑은 날을 고른 거였는데. 다 보이기는 무슨. '눈 뜬 장님'이라는 말이 이런 건가 완벽하게 실감하기만 했다.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집 앞에 있는 동네 산이라고 얕본 대가였다.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만 믿고 겁도 없이 또 나섰던 거다. 당연하게도, 손전등 기능은 어두운 산길을 다 밝히기엔 부족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느라 손이 묶여 있어 움직임도 둔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100번도 넘게 다닌 길이었는데도 밤의 길은 너무 낯설었다. 기괴하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들어간 지 10분 만에 포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번 주, 세 번째 시도 만에 드디어 야간산행에 성공했다.

'생텍쥐페리'하면 대부분 '어린 왕자'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야간 비행'이 먼저 떠오른다. 무슨 말인지 몰라 한 줄, 한 줄 오기로 읽어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어려워서 책을 덮는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읽었던 '야간 비행'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밤은 아름답지만 언제나 망쳐질 수 있었다."

산에 오르자 이 구절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저 예쁜 말이라고 생각해 외워둔 구절이었는데, 이제는 그 뜻을 완전하게 알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심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별빛이 바닥에 고여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끄고 주저앉아 한참이나 내가 사는 도시를 내려보았다. 얼핏 보면 예쁜 빛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사방은 조용한데 내 마음은 반대로 시끄러웠다. 나는 한참을 그곳에 앉아있었다. 야간 비행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소설 속 그와 비슷한 시선이리라 생각했다. 사소한 실수로 언제든 망쳐질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인생에 해결책이란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힘뿐. 그 힘을 만들어내면 해결책은 뒤따라온다네."

소설 속 다른 구절이 뒤따라 생각났다. 내 시끄러운 속마음에 대한 그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더,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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