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가난이 우리에게 묻는다

지난 9일 대구 북구 산격주공아파트 단지에서 어르신들이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산격1동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대구시내 141개 동 가운데 가장 높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9일 대구 북구 산격주공아파트 단지에서 어르신들이 쉼터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산격1동의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은 대구시내 141개 동 가운데 가장 높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가난한 동네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찻길 옆 동네까지 싹 밀어 버렸다. 도심 곳곳이 아파트 공사장이다. 낡은 동네를 아파트 숲으로 만든다고 난리다. 대구에서 올해 추진 중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은 60여 곳.

재개발·재건축은 새로운 기회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배제의 다른 이름이다. 헌 집을 준다고 새 집을 주지 않는다. 개발은 두꺼비가 아니다. 거주자의 상당수는 세입자다. 이주비 몇 푼 받고 떠나야 한다. 이들이 갈 곳은 점점 줄고 있다. 주택 소유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파트 입주권이 있어도 돈이 없어 포기해야 한다. 다른 동네를 둘러봐도 답이 없다. 집값이 다락같이 올라 버렸다. 결국 집주인은 세입자로 전락한다.

세상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땅값으로 목돈을 쥐었을 거라 한다. 모르는 소리다. 그들이 살던 곳은 작은 집이다. 마당이 없는 집도 있다. 재건축사업 원주민 조합원 중 청약 포기자는 절반 이상이다. 노후한 동네의 주민 60~70%는 노인층. 방세를 놓아 생계를 잇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아파트 생활은 꿈같은 삶이다. 개발 이익은 대부분 외지인 투자자의 몫이다. 재개발 후 원주민의 평균 재정착률은 15%란 통계도 있다.

개발의 빛과 원주민의 그늘은 맞닿아 있다. 1970년대 조세희의 소설 '뫼비우스의 띠'는 재개발 빈민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1970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1천100달러. 2020년은 3만1천755달러. 반세기가 지났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커진 파이는 함께 나눠 먹는 게 아니었다.

오래전 부산, 통영으로 벽화 마을을 찾아다녔다. 민초의 삶, 가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란 기대와 함께. 산뜻한 벽화로 꾸민 산동네.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붐볐다. 여기선 가난도 상품이 됐다. 낡은 대문과 담장은 '빈티지 사진'의 배경. 주민들은 타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감내한다. 관광 명소가 됐으니, 아파트단지로 바뀌진 않을 것이란 바람이기도 하다.

담장 너머 한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구멍 난 난닝구(러닝셔츠), 깊은 주름, 텅 빈 눈…. 삶터를 지켜 내려는 처연함이었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소년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 후 벽화 마을을 가지 않는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도 가난은 여전하다. 빈부 격차는 심해진다. 코로나19는 불평등의 골을 깊게 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작년 2~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분기 평균 소득 감소율(전년 동기 대비)은 17.1%였다. 반면 5분위(최상위 20%)는 1.5%에 불과했다. 실직이 저소득층에 집중된 결과다. 소득이 끊겨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지는 노인도 많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3.4%(2018년 기준). OECD 평균(14.8%)보다 3배 높다.

가난이 묻는다. 세상이 왜 이렇게 야박하냐고, 삶은 왜 이다지 서럽냐고. 가난은 오늘도 편의점 바코드를 찍으며 날짜 지난 김밥을 씹는다. 불 꺼진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만이 외로운 가난을 기다려 준다.

'삼인행필유주부'(三人行必有株不), 세 사람만 모이면 주식과 부동산 얘기다. 세상은 가난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정치는 가난의 불안과 위험을 덜어 주지 못한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으로 하세월이다. 진보는 연민에서 나온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자기가 사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가장 혜택받지 못한 계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장 폴 사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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