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들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최근 몇 분의 연극인이 집필하신 대구연극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옛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대구 연극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그 중 2014년에 쓰인 '대구연극사'라는 책을 펼치면 첫 구절이 「대구연극, 아니 지방연극, 누군가 말했듯이 "애써 기록할만한 '현상'이 있는 것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황폐하게" 보일 수도 있다」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구연극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현재 대구에서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조차도 대구연극사를 공부하면서 생각보다 긴 역사에 깜짝 놀랐다.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구연극은 1917년 개관한 '대구좌'를 대구 최초의 극장으로, 1918년 김도산이 창단한 극단 '신극좌'를 대구 최초의 극단으로 보고 있다. 자유를 억압당해 평범함 삶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일제강점기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은 피어났던 것이다.

또, 6.25 전쟁 때는 극장이 피난민 수용소가 되기도 하고, 국립극장이 대구로 내려오고,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온 타 지역 연극인들이 단체를 만들어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7년에 국립극장은 다시 환도되었지만, 많은 예술인들은 계속해서 대구연극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나는 특히 1980~90년대의 기록이 흥미로웠다. 전쟁 때에 비하면 상황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재정난으로 인해 소극장이 생긴지 1년 만에 문을 닫는 슬픈 사건, 소방시설 미비로 극장이 폐관되는 안타까운 사건, 여러 극단이 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전국연극제에 출전하는 놀라운 사건, 돈을 받지 못한 조명기사가 1부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겠다고 해서 배우들이 말리는 당황스러운 사건 등 정말 연극에 대한 열정만으로 뭉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그 때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겪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일들이 내겐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가 몇 년 전 선생님들께 들은 "연극하면서 돈 벌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라는 흔히 말해 꼰대(?)스러운 말이 그 시절 연극인들이 그토록 바랐던 꿈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요즘은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많은 예술인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계속 연극을 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극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설렘에 대한 달콤함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연극전공자가 아닌 나는 종종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꿈도 직업이 되니까 일이더라"라는 말로 웃어넘기지만, 솔직히 행복하다. 아직도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설레고, 무대에서 바라보는 객석은 벅찬 감동을 준다. "무대에 한 번도 안 서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선 사람은 없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처럼 그 설렘을 잊지 못해 오늘도 난 대본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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