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서오릉에서 지는 꽃을 보다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 진흥원(KOFICE)원장·시인 김용락 한국국제문화교류 진흥원(KOFICE)원장·시인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바람에 거리마다 피어 있던 꽃잎들이 난분분 휘날리고 지난겨울 검은색으로 딱딱하던 길가 느티나무 가로수의 연초록 빛깔이 혼돈스러운 인간 세상에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과 같은 우주 만물의 철리를 새삼 알려주려는 듯이 환한 등을 켜며 공기를 싱싱한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봄빛도 완만하고 서울 생활도 거지반 끝나가기도 하는 어제는 운 좋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무실에서 가까운 서오릉을 다녀왔다. 서울의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해 있는 '서쪽에 있는 다섯 기의 능'이라는 의미의 서오릉에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과 숙종의 후궁이었던 장희빈의 묘를 비롯해 왕릉 5기, 2기의 원과 1기의 묘가 조성돼 있는 사적 제198호이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울의 북쪽인 이곳은 아직 벚꽃이 만발해 있고 목련이 막 지려 하고 있다.

서오릉에 오니 신영복(1941~2016) 선생의 '청구회의 추억'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1966년 봄 당시 대학 강사이던 신영복 선생이 후배인 서울대 문학회 회원들과 서오릉에 소풍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만난 허술한 옷차림의 국민학생 꼬마 여섯 명(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산동네 판자촌에 사는 극도로 가난한 아이들로 중학교 진학을 못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하기도 한다)과 만남을 이어가다가 청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던 중 신영복 선생이 1968년 7월 소위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이 아이들과 만남이 끊어지게 되는데, 그 만남과 헤어지는 과정을 담담히 기술한 내용이 청구회의 추억이다.

서오릉 경내를 걸으면서 나는 숙종이나 인현왕후, 장희빈 같은 인물들 대신에 신영복과 또 한 사람을 떠올리게 됐는데 그분은 경북 봉화 출신의 재야 문필가 전우익(1925~2004) 선생이다. 한때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분인데 젊어서 시국 사건에 연루돼 수형 생활을 한 후 봉화 시골에서 농사와 나무 키우기로 평생을 보냈다. 신영복 선생과 전우익 선생은 생전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는데, 전우익 선생이 작고하시자 신영복 선생께서 우리나라 지도에서 봉화라는 지명을 없애야겠다 하시면서 슬픔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전우익 선생을 통해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인 루쉰(魯迅·1881~1936)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의 잡감인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조화석습)라는 책을 특히 좋아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이 구절은 어떤 상황에 즉각즉각 대응하지 않고 저녁까지 기다린 다음 매듭을 짓는 게 현명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늘 다른 은유로 읽어 왔다.

꽃은 줄기나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가 절정이다. 그 화사한 빛깔도 그렇고 싱싱한 향기도 그렇다. 그래서 비바람이 불거나 수명이 다해 꽃이 땅바닥에 떨어지면 즉시 쓰레기 취급하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러나 루쉰은 떨어진 꽃도 꽃이라 귀하게 여기고 오랫동안 두고 본 후 저녁에 줍자고 한다. 사람도 꽃처럼 피어 영화를 누리며 잘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평생을 제대로 한 번 꽃 피지도 못하고 시들거나 떨어진 사람도 있다.

그 보잘것없는 민초들에 대한 비유가 '조화석습'이다. 신영복도 전우익도 루쉰도 다 낙화(落花)를 사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서오릉에서 힘없고 가난한 그 판잣집 아이들과 우정을 텄다. 그게 진정한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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