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걷다, 먹다] 22. 따끈한 봄 냄새 나는 '신세동 벽화마을'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

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

사진: 신세동벽화마을 초입의 동부초등학교 교사에 그려진 벽화 사진: 신세동벽화마을 초입의 동부초등학교 교사에 그려진 벽화

22번째 이야기. 신세동 벽화마을 이야기

지금은 기차가 오가지 않는 폐쇄된 안동역. 그 안동역 건너편 영남산 아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산동네. 신세동이다.

그곳에도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선가 더 짙은 쉰내나는 삶의 냄새가 배어있는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정겹다.

아버지의 시대, 할아버지의 시대가 오롯이 남아있는 우리 시대의 박물관처럼 집들마다 보물을 가득 담고 있는 보물창고 같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부터 인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새 절이 있었다고 하여 '새절골'로 불리다가 일제식민시대에는 신세정(新世町)이 되었고 해방 후 신세동이 으로 일제잔재를 털어냈다.

마을 앞에 안동역이 생긴 것은 일제치하인 1931년 10월이었다. 고즈넉한 내륙 선비마을에 검은 화통을 달고 칙칙폭폭 거리는 기적소리를 내면서 검은 열차가 들어서면서 안동역 주변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업중심지로 변했다.

안동역 근처에 공설시장 신시장이 생겼고 안동역에서 신시장을 잇는 거리는 안동의 중심상업지가 됐다. 안동역 인근 평화동에는 200여채의 철도관사가 생기면서 일본인들이 몰려 사는 '1등 거주지'가 됐고 신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조선인들은 신세동 등 산비탈 마을에 주로 모여 살았다.

지금은 산동네 달동네처럼 한적한 마을이 된 처지지만 이 마을은 안동의 역사를 지켜봤다. 마을 앞으로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신세동도 한 때 도심의 일부가 된 적도 있다.

해방후 안동사범학교가 들어섰다가 그 자리는 안동시청으로 바뀌었고, 안동세무서와 경북도콘텐츠진흥원 등이 속속 들어섰다. 안동의 도심 지역은 안동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의 남쪽인 정하동과 정상동에 법원과 검찰청 등 '신행정타운'을 조성하고 옥동신도시 개발에 나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벽화는 인류가 남긴 최고(最古)의 예술품이다. 구석기시대 최고의 벽화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그 시대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동굴벽화와 암각화에서 시작된 인간의 벽화는 구석기시대부터 고구려와 신라의 고분벽화에 이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냥 등 수렵문화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한편 풍요와 자연에 대한 숭배 등 종교적인 벽화는 물론이고 한 시대의 삶과 사랑을 온전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벽화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도심 산비탈에 위치한 오래된 동네를 되살리기 위한 '구도심재생 공공프로젝트'로 벽화로 퀘퀘한 곰팡내나던 마을에 사람들의 숨결을 불어넣으면서였다.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문현동안동네 벽화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죽어가던 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활력을 되찾자 전국에서 벽화마을 조성이 공공프로젝트로 추진됐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동피랑마을과 감천마을 등의 벽화들이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위적인 냄새를 지우지 못했다면 안동 신세동 벽화마을은 삶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자연스러운 벽화들이 두드러진다.

신세동 벽화마을 역시 2009년 공공프로젝트의 일환인 '마을미술프로젝트'로 조성됐다. 소외된 도심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공미술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도록 한 것이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동부초등학교 옆길로 들어서면 '신세동 그림에 문화마을'이라고 적힌 노란 입간판과 함께 할매점빵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벽화마을이 시작된다. '할매점빵'에서는 기념품과 간단한 생필품 등을 판다. 이 마을에는 흔하디 흔한 '동네슈퍼마켓'이 없다. '슈퍼'대신 '점빵'이 있는 마을이다.

'꽃보다 우리 할매'라는 점빵 오른쪽으로 난 황토색 골목길을 따라가면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는 '그림애'가 나온다. 좁은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이고 아지매, 어디가니껴? 무슨 좋은 일이니껴?'라고 묻는 구수한 안동 사투리를 만나게 된다. '벽화마을 구경하러 왔니더..'라고 대답해주자.

지붕위로 집집마다 이어져있는 전선들이 무질서하게 뒤엉켜있는 모습도 여기서는 묘하게 사랑스러워진다. 담장들은 어른정도면 폴짝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아서 그저 집과 집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일 뿐이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하늘을 향해 소리쳐주고 싶은 단어였다. '사랑해 오늘도'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던, 입속에서만 웅얼대기만 하던 사랑이 아니었던가. 오늘 여기서는 마음껏 소리질러보자. 사랑해 오늘도! 그대와 가족 그리고 세상을.

그네를 타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 지붕 위로 살찐 동네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녀석은 한 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제 갈 길을 갔다. 지붕사이를 훌쩍 뛰어서 말이다.

벽화 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벽화마을 속 삶들이 궁금해질 때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불쑥 그림 속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그 길 끝에서 동부초등학교 교사에 새겨진 할머니와 손녀손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2009년의 일상이었다. 그 왼쪽 교사에는 그 후 7년이 지나 부쩍 큰 소녀와 소년이 그려져 있다. 7년이 지난 후 할머니의 부재가 두드러져, 마음이 아팠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탈길이지만 마을 언덕길 중턱에는 공용주차장이 조성돼있어 혹시라도 자동차로 오는 사람들도 편하게 주차한 후에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전봇대에는 타고 오르는 나팔꽃이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옆에는 뒷다리를 번쩍 든 동네 검둥개가 진짜인 듯 눈에 들어왔다. 예전 '동네개'들은 검둥이와 흰둥이 혹은 메리와 쫑이라고 부르면 한 번씩 뒤돌아봤다. 자전거를 배경으로 한 중년의 아저씨의 얼굴이 평온하게 다가왔다. 혹시 이장님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이 동네에 있었을 법한 점박이 포인터개가 묶여있는 벽화도 있었고 스파이더맨이 처마에 매달려 익살스럽게 'kiss me'라고 하는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한참 벽화를 따라 오르다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오르면 안동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발 아래 집안 풍경을 나도 모르게 훔쳐보게 된다. 저 건너집 할머니는 빨래를 널고 계시고 길 건너 정자아래에서는 봄바람 살랑살랑 불면서 마실 나온 아지매 두서너 명이 앉아서 이웃집 아저씨 험담을 하는 모양이다. 삿대질까지 해댄다.

멀리서 볼 때는 때이른 소매없는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인줄 알았다. 전망대를 지키는 '하늘을 향해 망원경을 치켜 든 아가씨'였다.

볕좋은 골목길에 매어놓은 빨랫줄에는 갓 빨아서 널어놓은 듯한 파란 이불과 내복에 줄무늬가 들어간 양말까지 가지런하다. 식구 구성까지도 짐작할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다.

시멘트블럭 담장을 타고 넘으려는 개구리 세 마리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궁금하고 옹벽에 다닥다닥 붙어서 벽을 타는 고양이 군상들의 모습도 눈에 확 들어온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해바라기 벽화는 벌써 초여름인 듯 활짝 폈다. 난간에 앞다리를 짚고 고개를 쭉 빼고 올라선 '백구'는 마실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신세동 벽화마을 신세동 벽화마을

봄이 온 모양이다. 벽화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늘어나고 있다. 조금 있으면 따뜻한 봄볕 아래 마을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뒷산에서 캐내온 냉이를 다듬으며 서울로 간 큰 아들네, 부산에 시집간 딸 소식을 자랑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겠다.

신세동의 봄은 그 어느 곳의 봄보다 더 반갑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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