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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insight] '인구 절벽', 더는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0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문화제에서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2020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문화제에서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김지석 디지털 논설위원

프랑스는 1990년대에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였다. 1993년의 출산율이 1.66명에 그쳐 국가적인 위기감이 고조됐으나 2000년대 이후 다시 출산율이 상승해 2.0명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0년 이후 다시 하락해 2017년에는 1.88명을 기록했다. 프랑스가 1990년대의 저출산 국가에서 벗어나게 된 데에는 비혼동거 커플을 혼인 가족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보호하는 가족 정책의 변화, 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가족수당 지급, 국가가 아동 보육을 지원하는 획기적인 보육정책 등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출산 장려 및 인구 증대 정책은 국제적인 모범 사례가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양육수당 지급 정책인데 아동기의 두 자녀에 대해 양육수당을 지급하고 셋째 자녀에게는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자녀 양육 지원 및 다자녀 우대 정책이 우리나라 실정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직 불확실하지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위기는 최근에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0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5천182만923명으로 1년 전에 비해 약 2만여명이 줄어들어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최근 10년간 인구 증가율이 계속 떨어져오다가 출생자가 급감하자 결국 감소세로 뒤집힌 결과로 나타났다.

출생·사망 인구 추이를 보면 2017년 이후 출생자 수가 매년 약 3만명씩 줄어들며 15년간 유지됐던 연간 출생아 40만명선이 무너지고 30만명선으로 낮아졌다.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 역시 작년 1분기 0.90명, 2분기와 3분기 0.84명으로 역대 최저이자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7월에 40년 후인 2060년의 인구가 2천500만 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충격적인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5일 결혼하지 않고 사는 비혼이나 동거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26일에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하는 온라인 공청회도 열었다.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 부부에 준하는 지원을 해주는 프랑스의 시민연대협약(PACS)과 비슷한 정책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가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2021∼2025년)에 이같은 내용을 담았으며 그 근거로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 비중이 2010년 37.0%에서 2019년 29.8%로 감소하고 비혼 가구나 동거 등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비혼이나 동거 등의 형태는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으며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아 생활이나 재산에서 가족관련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제는 비혼이나 동거 가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줄어들었고 가족 개념과 관련한 법과 제도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비혼으로 출산한 방송인 사유리에게 젊은 세대가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도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일게다.

기존의 법제도와 현실이 괴리가 큰만큼 정부가 가족 개념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동거·비혼 가구 등이 주거, 의료, 돌봄 등 개인의 기본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인권적 차원에서도 개선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본격적인 논의와 고민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를 이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는 만큼 논란이 커질 수 있으며 논의가 확장되면 매우 민감한 동성혼 논쟁에도 이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도입하고 있는 프랑스의 저출산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으며 우리 실정에 맞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프랑스는 매년18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폭적인 출산과 육아 지원 정책을 실시한 덕분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국가들이 프랑스의 정책을 채택해 시행했으나 출산율이 상승한 나라는 별로 없으며 프랑스 역시 2010년 이후 출산율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역시 프랑스의 정책들을 일부 도입하고 있으나 출산율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김민식 저출산문제연구소장은 프랑스의 출산율이 개선된 것은 출산율이 높은 아프리카와 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출산율이 높은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이민 와 출산 및 육아 지원 정책에 힘입어 출산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프랑스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출산을 점차 낮추게 되었고 프랑스의 출산율도 다시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김 소장은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지 않은 동북아시아나 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주로 받아들이는 호주와 캐나다의 출산율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 절벽'은 우리 사회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므로 우리 실정에 맞는 종합적이고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보육의 어려움과 사교육비가 지나치게 높은 현실 등이 출산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해 그만큼 어려움이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해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이민 정책의 활성화도 고려해 봄직하다.

과거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던 독일이 한국, 터키, 그리스 등지의 노동자를 받아들여 노동 수요를 충당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난민들을 국민으로 대거 받아들여 생산 인구를 채운 것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통한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동남아 등지의 노동자들을 한시적 체류자로 받아들여 생산 인구로 활용하고 있으나 차후에는 이민자들을 더 많이 들여 '인구 절벽'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이민학회 회장으로 선출된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민족을 주류로 삼되 필요한 외국인에게는 문호를 넓혀 국민으로 삼아 융성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유럽 중세 때 1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추방한 펠리페 2세의 스페인 제국과 학살과 배척으로 신교도 위그노 20만여 명을 내몰았던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쇠락한 반면 이들을 받아들인 네덜란드와 독일, 영국 등은 융성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충분히 귀기울일만한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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