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백지’에 대한 기대, 그리고 현실 직시

유광준 서울정경부 차장

사진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인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와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 일대 모습. 매일신문 DB 사진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인 군위군 소보면 내의리와 의성군 비안면 도암리 일대 모습. 매일신문 DB
유광준 서울정경부 차장 유광준 서울정경부 차장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대구에서 출발한 차가 3시간 정도 달리면 차창 밖으로 '신천지'가 나타난다. 인천대교로 접어들 무렵 왼쪽으로 보이는 인천 송도국제도시(이하 송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치솟은 마천루도 절경이지만 잘 정비된 도시 전경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6위와 9위(20일 현재)를 달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52조6천억원)와 셀트리온(42조원) 본사를 품고 있다. 탄탄한 일자리 기반에 누구나 부러워하는 국제학교와 공원, 그리고 풍부한 녹지까지. 비결을 물었더니 철저한 계획도시, 그것도 가장 최근에 설계한 도시라서 그렇다는 설명이 돌아온다.

대구국제공항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로 이전하면 대구 시내에 694만여㎡의 빈 땅이 생긴다. 여기에 경북도청·대구시청 이전터까지 포함하면 송도 크기(신항만과 매립예정지 제외)만 한 공간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구와 경북의 30년 후 모습은 달라진다.

그래서 지역에서 고민이 많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이번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대구경북이 재기에 성공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다.

관건은 '어떻게'다. 주민 의견을 청취하고 도시계획 전문가에게 관련 연구용역을 맡기는 방식이 기본이다. 실제로 칼자루를 쥔 대구시의 움직임도 이렇다.

송도 형성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인연이 있어서 몇 가지 생각을 적는다. 대구가 송도보다 훨씬 악조건이다. 그래서 더욱 꼼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먼저 대구는 빈 땅을 활용해 번 돈의 상당액을 공항 이전 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 매립만 하면 새로운 땅이 생기고 그 땅을 전적으로 개발에 활용하는 송도와는 완전히 다른 여건이다.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다. 송도는 개념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 1980년대에 구상한 내용을 찬찬히 가다듬으면서 20년째 구축 중이다. 대구는 통합신공항 건설을 앞당기기 위해선 이전 지역 개발 얼개도 서둘러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송도는 인천대교로 연결된 바다 건너편에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인천국제공항이 있고, 사람과 돈 그리고 정보가 몰린 수도권이 배후 시장이다. 대구공항 부지가 기댈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은 동대구역 정도이고 배후 시장과 산업 기반은 안타까운 수준이다.

이와 함께 최근 도시의 핵심 혁신 역량으로 꼽히는 관용도 측면에서도 인천에 밀린다. 인천은 자유의 바람이 부는 개항장의 유산을 머금고 있는 지역이다. 반면 내륙 분지에서 구성원 간 탄탄한 유대를 강조해 온 대구는 아직 외부에서 다가서기를 꺼리는 지역으로 통한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뜻일 뿐 고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접근하는 이유는 여건 좋은 인천에서조차 송도가 애초 설계에서 벗어난 실패 사례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보다 산업·문화·여가 공간은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아파트가 채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자리, 산업유발효과가 거의 없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매립만 하면 새로운 땅이 생기고 엄청난 배후 수요로 부동산 경기가 펄펄 끓는 수도권임에도 '경제성 측면에서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아파트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 나온다.

대구시가 쳐다보지도 않는 송도를 내세워 기를 죽이려는 뜻이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아주 어려운 숙제라는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허황된 청사진도 찌질한 패배주의도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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