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유럽: 지리학 독본'

콘스탄티노플 상점가의 간판

콘스탄티노플 상점가의 간판 사진. 책 마지막 페이지엔 '상점의 간판에 쓰인 다양한 언어를 주목하라'는 설명이 있다. 콘스탄티노플 상점가의 간판 사진. 책 마지막 페이지엔 '상점의 간판에 쓰인 다양한 언어를 주목하라'는 설명이 있다.

도서관 고문헌 목록을 검색하다가 보면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해서 도서관에 들여왔는지 그 경로가 궁금해지는 책이 있다. 'EUROPE: A Geographical Reader'(유럽: 지리학 독본)가 그런 책이다. 1925년 미국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의 초판본이 대한민국에는 단 한 권,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이 건립된 것은 1952년, 이 책의 출판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지난 때였다. 그러니 이 책은 상당시간 여기저기 떠돌다가 도서관에 안착한 것이다. 책이 떠돈 그곳이 어디였건 간에 이 책은 자립을 꿈꾼 여성과 바깥세상을 알고 싶어 한 모험가, 그리고 제국의 속국 상황에 있던 가난한 나라의 지식인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듯하다.

'유럽: 지리학 독본'은 유럽 여러 나라의 문화 지리적 풍토를 소개한 책이다. '어린이 교육서'를 내걸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저자 비니 비 클락(Vinnie B. Clark)은 1878년 태생으로 작가이자 세계 여러 나라를 탐사한 지리학자이다.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이 1920년이었으니 그녀는 여성의 자립에 우호적이지 않은 보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이었다. 그 젊은 시절 동안 클락은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 내의 편견에 맞서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경험의 영역을 넓혀갔다. '유럽: 지리학 독본'에는 그런 그녀의 다양한 경험과 강인한 마음의 힘이 녹아있다.

책은 덴마크에서 시작해서 식민지 상태에서 막 벗어난 알바니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도시 콘스탄티노플에서 끝난다. 1921년 독립국의 위치를 차지한 알바니아를 목차에 넣은 것도 의외이지만 국가가 아닌, 터키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책의 끝을 맺는 것은 신선하면서 파격적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게재된 콘스탄티노플 시장 사진 밑에는 상점의 간판에 쓰인 다양한 언어를 주목하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다. 저자 클락은 세계 여러 나라 문화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사진 속 간판을 채운 다양한 언어를 보고 있으면 서양과 동양을 구별하고 문명의 우열을 거론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 시절의 서양이 제 아무리 동양을 두고 미개한 계몽의 대상이라고 소리를 높였던들 콘스탄티노플의 좁은 시장 간판에서는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다수 나라들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해있던 1920년대, 미국 지리학자 클락은 적어도 서양과 동양의 관계를 '차등'이 아닌 '차이'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흥미로운 한 권의 지리학 서적이 언제 누구를 통해 한국에 유입되어 경북대학교 도서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식민지 시기였을 수도 있고 해방 이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책을 선택했을 때 분명히 그의 마음을 끈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 무엇 중에는 콘스탄티노플 좁은 시장가 사진도 있지 않았을까. 이 사진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은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혜영 경북대 교수

관련기사

AD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