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달밤(月夜·월야) - 두보

오늘 밤 부주에도 떠 있는 달을 今夜鄜州月(금야부주월)

아내가 제 혼자서 바라보겠지 閨中只獨看(규중지독간)

가엾구나, 철부지 아들딸들아 遙憐小兒女(요련소아녀)

포로된 아비 생각할 줄도 몰라 未解憶長安(미해억장안)

구름 같은 머리칼에 향기로운 안개 香霧雲鬟濕(향무운환습)

옥 같은 팔 맑은 달빛 싸늘하리라 淸輝玉臂寒(청휘옥비한)

어느 때나 빈 휘장에 나란히 기대 何時倚虛幌(하시의허황)

달빛에 눈물 자국 말려나 볼까 雙照淚痕乾(쌍조누흔건)

두보(杜甫·712-770)의 나이 마흔다섯 살 때, 그는 안록산(安祿山)의 반란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이 몹시 밝았다. 두보가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는 순간, 낯선 타향 부주에서 피난살이 중인 아내의 얼굴이 불쑥 떠올라 골똘한 상념에 잠겼다.

오늘 밤 장안에 달이 밝으니 부주에도 응당 달이 밝을 게다. 아내와 늘 함께 바라보던 달인데, 오늘은 아내를 생각하며 혼자서 저 달을 쳐다보고 있다. 아내도 오늘 밤에 내 생각을 하며, 혼자서 우두커니 저 달을 바라보고 있을 게 뻔하다. 저 달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저 달에 반사되어 내 눈에 들어오듯, 저 달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저 달에 반사되어 아내의 눈으로 들어갈 거야. 가엾은 철부지 아들딸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그 어린 것들은 장안에서 포로가 된 제 아비를 생각할 줄도 모르고, 제 아비를 걱정하는 제 어미의 마음도 알 리가 없겠지.

오늘 밤 아내는 어떤 모습으로 저 달을 볼까? 향기로운 안개가 보얗게 피어올라 구름같이 틀어 올린 아내의 쪽 찐 머리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겠지. 맑은 달빛은 아내의 옥같이 아름다운 팔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을 게고. 상상만 해도 환상적이고 몽환적으로 아름다운 아내, 그래서 더욱 더 보고 싶다. 물론 아내가 본디부터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어. 실제로 지금 부주에 가보면 아내는 피난살이에 지치고 찌들어 차마 바라보기 민망할 거야. 하지만 현실 속의 아내와는 상관없이, 아내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으로 상상해보는 것은 내 자유잖아. 누가 그것까지 말릴 수가 있겠어.

아무렇거나 환한 달빛 아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상상 속의 아름다운 내 아내를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어. 만나게 되면 아내와 달빛을 받으면서 나란히 앉아, 그 환한 달빛에 그동안 흘렸던 눈물 자국을 죄다 말리며 등이라도 토닥토닥 토닥여주고 싶어. 그런데 도대체 그 날은 언제 올까 몰라.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그런 좋은 날이 언젠가 오기는 오겠지. 달은 저토록 밝건마는, 아아!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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